30 thirty, 젊은 작가 7인의 상상 이상의 서른이야기 서른. 무언가 특별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20대의 치기어린 방황을 이어가서는 안되기에 '결단'을 내려야만 할 것 같은 스스로의 압박에 시달리는 때라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 이미 만 서른의 해를 넘긴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서른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에 가까웠기에 죽음과 서른을 결부시켰다는 주제가 딱히 맘에 들진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서른'에 대한 갈급함은 마흔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되기전까지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이 책의 내용도, 그것도 7명의 젊은 작가가 참여했다는 말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른과 죽음을 자살로 연결지은 작품이 많다는 점이 일단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것이 자살도 있고 타살도 있고 혹은 살해가 될 수도 있는데 7개의 작품 중 자살미수 혹은 자살자에 대한 수색자를 제외한다면 2편밖에 없다. 그나마도 서른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굳이 서른이 아니어도 되는 나이였기에 정확하게 서른과 타살에 대한 차별성을 가진 작품은 박주현 작가의 모히토를 마시는 방 뿐이었다. 자신의 사체를 찾아 다니는 영혼, 그 사체를 어디에 유기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도 그녀는 끊임없이 당신을 사랑했노라 고백한다. 서른의 여성은 자신의 영혼이 육체를 떠난 상태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로맨스라 주장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죽음이 주제이기는 해도 시종일관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용준 작가의 그들과 여기까지의 경우는 '하마'의 대한 애착심과 묘하게 얽히는 그들과의 헤프닝은 폭소를 터뜨릴 수준은 아니어도 입가에 미소가 머금게 만들기도 하고 어디서 많이 본듯한 플롯이기는 해도 김성중 작가의 국경시장은 서른과 죽음을 떠나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물론 재미있게 볼만한 가벼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서른이 그토록 힘겨운 나이였는지를 마지막 작품을 다 읽고나서 다시금 생각해봤다. 나오는 인물들의 특징이 하나같이 메마르고 대책없이 슬픈가 하면 죽기 이전, 혹은 떠나기이전에는 느닷없이 활기차다. 인물의 성격이나 외향이 비슷한 까닭에 내용도 크게 다르지않다는게 아쉬웠다. 젊은 작가들이라 서른을 제대로 느껴보질 못해서였을까. 이토록 부족하고 불안하기만한 서른의 이야기를 삼십을 앞둔 후배에게도, 이미 한고비를 넘긴 또래들에게는 물론 한참 선배들에게도 추천하지 못할 것 만 같다. 적어도 서른과 관련된 책으로는 말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그녀의 이름이 맨 처음은 아니더라도 연관지어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싶다'라는 도서와 함께 한번 쯤은 생각나게 되는 것 같다. 그녀가 책 마다 남기는 한 문장, 여공에서 하버드 박사학위 취득이 물릴 법도 한데 연말이면 고향집의 밥이 그리운 것처럼 또 다시 그녀의 책을 꺼내어 읽게 된다. 물론 처음 그녀의 사연을 접했을 때만큼 가슴이 북돋아 오르거나 무언가 큰 결심이 세워지고, 무엇보다 희망이란 단어가 그녀를 수식하는 혹은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가 희망이라고까지 생각되거나 하진 않는다. 솔직히 같은 이야기의 재탕스러운 면도 없지않고 첫 책에 비해 난척한다기보다 어느새 그녀도 저 먼곳으로 누군가의 희망이 아니라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영어에세이를 비롯해서 어느새 일본어까지 마스터한 것과 책의 맨앞에 실린 졸업식 송사에 응모했던 글을 보고 있을 때는 잊혀졌던 벅찬마음이 살아나기도 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동기들과 함께 그룹을 지어 발표해야 하는 작업에서도 뒤쳐지지 않고 오히려 그룹원의 장점을 발견해가며 팀의 조율을 큰언니럼 맞춰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 잠시였지만 군생활을 했던 그녀의 생활습관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희망이다'라는 책을 출간한 그녀의 하버드 동창생 딸의 이야기와 아들의 이야기도 자주 언급되면서 그녀가 가진 희망과 열정의 근원이 가족임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여성들의 성공스토리를 보면 자녀들의 도움이 크게 작용한다. 처음에는 짐이나 부담스러웠던 존재가 오히려 그녀들을 강하게 살리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을 보면 저 혼자만 잘살겠다는 마음보다 누구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삶, 그것이 가족에 제한되더라도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 이전에 출판했던 내용이 하버드 입학까지의 이야기였다면 이 책의 중심은 박사학위 취득 학위수여식을 전후로 학위취득 과정을 담은 스토리다. 이후 2008년에 출간한 책은 아무래도 출판된 시점이 1년이 못되었기에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아 아직 읽진 않았으나 무작정 주문하기는 그렇고 도서관에 들러 꼭 읽어보고 싶다. 누구에게나 현실은 냉혹하며 시련은 늘 우리를 바짝 뒤쫓아온다. 하지만 시련을 이겨내든, 견뎌내든 혹은 스러지든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서진규씨는 그것을 희망이란 이름으로 때로는 견뎌내고 이겨내었기에 늘 스러지기만 했던 나와 같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었던 것 같다.
토트 씨네, 이런 폭력을 만나본 적있는가! 외르케니 이슈트반의 작품을 토트 씨네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독일문학 및 작가를 좋아하기에 드문 경우긴 해도 헝가리 문학을 접할 기회는 있었지만 이처럼 정신적인 폭력에 대해 웃기면서도 중간 중간 소름돋을 만큼 절묘하게 묘사 한 작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처음인 것 같다. 아무개 '소령'을 만나게 되더라도 토트 씨네를 떠올리지 않을수는 없을 정도다. 화려하거나 특색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나름의 질서와 평안을 유지하는 마트라센탄나의 모범스러울 정도로 화목한 가정 '토트 씨네'에게 놀랄만한 손님이 방문하기로 되어있다. 다름아닌 마을 최연소로 군에 징집된 아들의 상사인 버로 소령의 방문이 그러하다. 단순히 군에 입대한 아들도 아니고 전시중인 경우라 토트 씨네 부부와 그의 누이동생은 소령의 방문이 커다란 중대사일 수밖에 없다. 뿐인가. 마을의 60% 이상의 성인남성이 군에 소집된 상태라 마을 잔치라고 부를 정도의 큰 일이었다. 토트 씨네는 나름 자부심도 생기고 부디 소령의 방문을 통해 자신의 아들의 안위가 어느정도 안정되기를 기대하며 최선을 다하려고 맘먹지만 그랬다면 애초에 '폭력'이란 것이 등장 할만한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을것이다. 신경쇠약, 언제 빨치산이 침입할지 모르는 전시상황에서의 군인의 심리상태는 겪어 본 적이 없어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환한 대낮보다 적군과 아군을 분별하기 어려운 한밤이 더더욱 긴장되기에 버로 소령의 신경쇠약과 밤에는 더더욱 깨어있으려는 그의 상태는 전시중이라 해도 전혀 전쟁의 테두리 안에 속해있지 않는 살던 '토트 씨네'에게는 버거운 상대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외르케니의 다른 몇몇 작품과 함께 연극무대에까지 올려졌던 작품으로 소설 내용만 봐도 눈앞에서 등장인물들의 걸음걸이, 상자를 접을 때의 차마 웃지못할 상황등이 펼쳐졌다. 상자접기에 이어 가로등불에 비춰진 그림자를 개울이라 착각하고 뛰어넘는 소령과 토트씨의 모습은 연극으로 꼭 만나보고 싶을 만큼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웃음이 나는 것은 순간이고 점점 괴로워하다 못해 변소에서 그나마의 평안을 찾는 토트씨의 모습을 볼 때마다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킬 수 있을만한 폭력이란 것이 가히 어떤 정도인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 폭력의 힘은 그저 텍스트를 읽었을 뿐인 나에게마저 전이되어 왔다. 마지막 결말을 마주할 때의 통쾌함이 바로 그것이었다. 통쾌함이라니. 도대체 폭력의 영향력은 머뭇거림도 제한성도 없었던거다. 서문에서부터 폭력의 주제임을 드러내놓을 뿐 아니라 전장, 군인, 소령 그리고 죽음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 책의 경우 정신적인 폭력이 아니라 신체적인 폭력을 떠올릴 확률이 높을 것 같다. 너무 잔인하거나 징그러우면 어쩌나하고 걱정도 했는데 진정한 폭력은 눈에 보이는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폭력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편의 수신여부가 우편부가 수신인을 좋아하는지의 여부에 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독자의 모습을 염두해 둔 설정이 아닌가 싶었다. 단순히 더이상 소령에게 안절부절 할 필요없음을 알리지 않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독자가 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어떤 기분을 갖느냐에 따라 서문에서 물었던 '그'러한 폭력의 존재 여부에 대한 답변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나의 대답은 'Yes'다. 그것도 Absolute!
생각의 함정을 온라인 화면에서 보다가 실제 받아봤을 때의 느껴지는 무게감은 피해야 할 17가지의 생각의 함정의 무게만큼이나 버겁게 느껴졌다. 17가지라는 말은 큰 가짓수가 그러한 것이고 그 아래 포함되어 있는 이야기까지 합치면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었으며 예화가 다 따라붙어 가볍게 읽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7가지 큰 가지들의 핵심은 나를 겨냥한듯 예리했지만 그 예리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화를 건너뛸 수없고 그리하면 이 책이 가지는 차별성을 스킵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동명의 다른 저자의 책과 비교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을 정도다. 17가지의 함정이라는 것이 전혀 새롭거나 한 이야기는 솔직히 아니었다. 제자와 스승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예시로 삼은 경우일 수록 특히 그러했는데 잔에 술을 차고 넘치게 부어주며 제자의 마음이 혼잡할 만큼 가득차 더이상 그 어떤 깨달음도 담을 수 없음을 그리하여 마음을 비어야 한다던지의 예, 학생의 꿈이 지나치게 공상적이라며 수정을 강요했으나 결코 물러서지 않고 나중에 제자가 이뤄놓은 공원에서 뜻을굽히지 않았던 제자의 장래와 만나는 것등은 다소 빤한 예시였으며 그다지 공감도 되지 않았다. 다만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줬던 바보빅터의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타인의 말한마디에 꿈을 변경하지 않았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비교 예시로 삼기에는 딱 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식의 비유가 시작되고 나니 '때로는 다른 길도 찾아야 한다'의 경우는 '누가 나의 치즈를 옮겼는가'의 축소판인 것처럼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수많은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의 핵심 요약본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우리가 범하는 생각의 오류를 각각 따로 분리, 상세하게 그 한가지의 함정에 대해 열거해도 독자는 중간즘 가게 되면 대략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수있지만 끝까지 읽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의무감에 책을 다 읽고 만다. 그런식의 도서 수집을 방지하는 차원으로 볼 때의 이 책의 역할을 긍정적이긴 하다. 어쨌든 여러 자기개발서 저자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빠짐없이 모아둔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머리를 띵하고 울리는 예시가 많지 않다는 점, 어디서 본듯한 예시들이 대다수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차별적인 구성임과 동시에 아쉬운 구성인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나눈 '밥'의 기록, 더 테이블 차나 술이 아닌 밥을 먹어야 '교감' 혹은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믿는다는 저자의 뜻은 서른해를 넘게 살아온 나 역시 깊이 공감하는 바였다. 지난 시절 때때로 쉬운만남과 잦은 결별 사이에서 오가던 때를 주의깊게 분석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분류를 나뉘어보자면 그 '밥'을 같이 해느냐 안했느냐의 여부로 나누어도 크게 무방할 정도로 신기하게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상대를 잠시일지라도 내 삶의 일부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되었던 것이다. 하기사. 난 세상에서 정말 하기 싫은 일중에 하나가 싫은 사람과 밥먹는 것이니까. 책을 읽기 전에는 얼마나 많은 P양과 A군이 등장할지 자못기대가 되기도 했다. 에디터들의 에세이들은 하나같이 모 연예인, 그것도 엄청 유명한 연예인 혹은 까다롭기로 소문한 포토그래퍼 C군등의 등장에 당췌 이것은 실제 에디터가 경험한 일들인지 아니면 모 일간지의 분량채우기 전략을 자신의 에세이에서도 발동시킨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거다. 하지만 저자 조경아는 독자가 민망할 만큼, 이 사람 이렇게 다 공개해도 되는걸까 싶을만큼 연예인, 식당, 매거진과 관련된 혹은 개인적인 호불호로 방문하게된 식당들의 이름을 거의 대부분 실명으로 기재했다. 물론 칭찬일색으로 장식된 이지아의 경우는 시기가 시긴만큼 그녀의 잦은 실명거론이 감사하기 까지 할테고 어쩌면 저자가 그렇게나 이뻐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할지도 모른다. 그런가하면 결혼식 피로연으로 인해 여전히 방문하지 않는다는 그 레스토랑(저자도 밝힌 곳을 나는 오히려 주저하게 된다.)은 꼭 가서 맛을 보아야 하는것인지 아님 오히려 내가 더 서운해서 피해야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셀럽들의 이야기나 해외취재시 맛보았던 음식들의 추억도 좋았지만 저자가 하는 가족의 얘기가 참 소박하면서도 마치 밥을 같이 먹으며 듣게된 이야기 같아 좋았다. 엄마만두, 아빠만두의 아기자기함은 나를 비롯 언니도 친구들에게 우리가족들만이 알 수 있는 독특한 단어를 꺼내어 화제 삼기를 즐기기에 크게 공감했다. 같은 여성들은 뭐라하더라도 이성과의 대화에서 이토록 잘(?)먹히는 화젯거리는 드물다. 하지만 암투병으로 고생할 때 엄마를 데려가고 싶은 식당과 메뉴를 점찍어두는 저자의 모습에서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특히 이 수많은 테이블 이야기의 순서에서 김치가 맨 마지막에 오게 된것이 단순히 우리나라의 김치에 대한 자부심과 저자 스스로가 김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점도 있겠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면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되어 엄마의 김치를 얼렸다는'지인의 말을 전해들었을 때 한참을 울었다는 저자의 기록을 읽을 때는 여지없이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가쉽거리일색이었어도, P군과 A양이 난무했더라도 에디터 특유의 필력이 발휘하는 맛깔라는 글솜씨 때문에라도 이 책을 타인에게 권한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것이다. 이따금 '폭염'을 사용했던 허세스러운 아이때의 성격이 글에 베어나오긴 해도 그조차 귀엽게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저자 나름의 솔직함과 진짜 차린 것은 없지만 '맛있게 먹어주러'온 독자의 책임을 다하고 싶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신기한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맛기행을 떠나야겠다는 다짐보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그 수많은 테이블들을 가급적 상세하게 물론 그때의 감정에 충실하게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매년 연말에 올 한해는 누구와 어떤 밥을 맛있게, 혹은 맛없게 먹었는지만 기록해도 충분히 그 한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