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미국 뉴욕에서 비행기 한대가 강물에 착륙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무사히 155명의 승객이 구조된 이 사건은 미국의 자랑거리가 되고 기장 셜리는 영웅이 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고 주연은 톰 행크스가 맡게 되었다.

톰 행크스의 대표작 <포레스트 검프>, <아폴로 13> 등에서 작지만 미국적인 영웅 역할을 해왔다. 바보지만 달려가면 사업가로 성장하는 포레스트, 위기에 빠진 우주선을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킨 기장 등이 그의 역할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원래 서부영화의 건맨이었다. 무법시대를 총으로 개척하는 작은 영웅이었다. 그러다가 현대극으로 넘어오면서 영웅의 재해석에 주력했다. 그의 마지막 서부극은 아마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이지 않았을까 한다. 


그럼 영화로 들어가보자.

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비행은 실제로는 208초로 매우 짧았다고 한다. 

잠깐 사이 지나가 그 짧은 순간에 비행기가 떠서 사고를 만나고 다시 강물에 내려 앉았는데 이를 1시간 반 긴 영화로 만드는 작업이니 흥미를 가지고 보게 된다.


대체로 스토리 자체는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다. 

비행은 짧았지만 뒤의 이야기는 과연 강물로의 하강이 최선이었는지에 대한 조사였다. 

돈이 드니 당연히 조사가 길어질 수 밖에 없고 어제의 영웅이 오늘은 모험가로 추락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영화는 이렇게 난감해진 기장 셜리의 마음을 다루고 된다.


스토리를 더 풀면 스포일이 되고, 

영화의 의의를 좀 더 살펴보자.


영화의 소재였던 비행기의 착륙에서 기장은 최후에 비행기를 벗어나며 단 한명이라도 승객이 남아 있는지 살피는 최후의 방어자였다. 

여기서 한국에서는 세월호에서는 하는 안타까움이 치솟아올랐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놔두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 사회가 봐줄만하다 할만큼 작은 영웅들이 나타난다. 

맡은 자리에서 자기 일을 충실히 함으로 모두의 행복을 키우는 그런 존재들, 작아 보여도 그들의 가슴에 있는 굳은 신념이 그 사회의 신뢰도를 높인다. 커다란 건물의 기둥들을 버텨내는 바탕의 기반돌들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다. 건맨 출신 답게 총기소유를 강력히 지지한다. 그리고 미국적 가치에 대해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낸다. 지난번에 만든 이라크 전의 저격수를 다룬 <어메리칸 스나이퍼> 등이 그렇다. 지나친 미국스러움이 거부스럽게 느껴지면서도 그의 영화는 무언가 생각할 주제는 던진다.

한국의 보수는 과연 무엇을 만들어낼까?

<인천상륙작전>의 전쟁영웅? 그것 말고 무언 없을런지.. 

아직도 세월호 넘어서를 못 찾아가는 이 시점에서 숙제를 안게 만들어주는 영화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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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버티고 시리즈
마이클 푼케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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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미국 서부개척 시대 변경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사냥꾼인 주인공은 인디언과 문명이라는 두 세계에 걸쳐 있다. 

그들을 보듬고 있는 자연은 광대하고 아름답고 매우 잔혹하다. 

자연속에서의 인간들은 서로 견제하고 갈등하며 죽인다. 원래의 자연과 함께 하던 인디언들의 모둠에 문명은 무기와 돈을 가지고 접근한다.

문명이 가장 탐냈던 돈은 바로 동물의 가죽 즉 모피였다. 이를 얻기 위해 변방 끝까지 쫓아가는 모험가 백인들 그들은 낭만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약탈자일 따름이다.

두 세계와 사이의 경계인은 각자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

이는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나온다. 인디언은 가족,복수를 이야기한다.

문명은 법,재판,신,계약 등을 이야기한다.

이 둘 사이의 거리는 매우 크다.

문명은 인디언이 가지고 있지 않은 총과 돈을 가지고 있다.

그 덕분에 결국 문명은 미대륙을 소위 정복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 디카프리오의 여정은 복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복수가 나온다. 바로 인디언 추장이 딸을 찾기 위해 보이는 집념과 복수다.

복수라는 관념은 인디언 공동체 존립의 핵심이다. 각자 지켜야 하고 친족은 서로를 지켜주고 억울한 일에는 반드시 복수를 해서 안녕을 보장해야 한다.

반면 문명은 복수에 대해 다른 관점을 보인다. 사람이 다 할일이 아니고 이를 신에게 맡긴다. 즉 율법에 의해 살아가면서 인간은 보다 자유롭게 된다. 인간관계 또한 그렇다 기독교의 출발은 자식을 산에 데려가 신에 바치려다가 중지하고, 산에서 율법을 얻은 선지자들의 행적에서 비롯된다.

아버지가 자식을 신에게 바칠 수 있다는 건 인디언의 관점과는 사뭇 다르다. 즉 사람과의 관계 위에 초월적 존재가 있고 개별 인간사이의 일은 여기에 종속될 수 있다는 관념이 기독교에서는 필수다.

한국영화 <밀양>에서도 복수와 용서는 신에게 맡긴다는 스토리가 나온다.


영화로 돌아가면 문명과 인디언의 차이를 주는 총과 돈은 사회가 진화를 통해 발명해온 산물이다. 절대신이라는 관념으로 가족과 친족을 넘어서면서 보다 커다란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점차 분업이 이루어지고 교류가 되어 발명이 만들어지면서 인간에게 총을 가지게 해준다. 돈도 매한가지다. 노력을 저축하고 먼 거리로 매개하게 해주게 하면서 인간은 죽음을 각오한 모험을 하게 한다. 기회라는 개념도 생기고 한몫 잡아 팔자를 고치겠다는 일념이 오늘의 고통을 이기게 해준다.


결국 승부는 뻔한 게임이다. 

작은 것 같아도 말투와 용어는 수백년 수천년 진화된 사회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자연에 가까이 있는 존재들에게는 되지 않을 싸움이다.

문명의 도구 몇몇이 뿌려지면서 부족들은 원래의 원한을 무력으로 해소하게 되고 당연히 백인과 근접한 집단이 우월을 차지한다. 사라져가는 마을들 이를 원망으로 보는 인디언 여인의 서글픈 눈동자에서 우리는 역사가 주는 흐름의 잔혹함을 읽어낼 수 있다.


역사의 궤적에는 이렇게 가족이 종교를 만들고 다시 국가가 되어 가는 진화의 발자국이 깊게 드리워져있다.


영화의 다른 매력도 많았다.

대자연의 장면 장면은 한폭의 예술 사진이고 그 안으로 관객을 집어 넣고 주는 체험도 좋았다. 복수에 집요한 아버지를 통해 가족애도 돌아보게 해준다.

그렇지만 내게 가장 커다란 물음은 바로 자연과 문명의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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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보급판)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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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를 그린 새로운 영화가 나왔다.

이미 나온 영화가 있기에 여기서는 포커스를 다르게 잡는다

덕분에 나올 떄 가지는 감상도 다르다.

잡스가 계속 되살아나는 큰 이유는 그가 남긴 거대한 업적 때문이다.

그럴수록 독자로서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일어나고 거기에 답을 주려는 시도로 책과 영화가 나오게 된다.


애플은 잡스가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애플이 상당기간 삼성과 매우 가까운 동반자였다는 점을 잘 알지 못한다.

하긴 치열한 소송전에서 서로 죽도록 싸우던 두 상대방의 모습을 보면 선뜻 이해가 안될 듯하다.

에플과 삼성은 적이었는가 친구였는가?

잡스의 장례식장에 삼성의 후계자가 사적으로 참석했던 점도 그런 연유였다.

특히 삼성은 애플의 초기 아이팟 작품에 결정적인 도움들을 주었었다.


그런 삼성은 지금 애플과 인연을 맺은 것을 후회할 것인가?

아니 한떄라도 진정한 친구였을까? 물어볼만하다.


역시 이 질문도 주인공 잡스를 제대로 이해해야 답이 나올 듯 하다.

잡스의 성격은 모순 덩어리였다. 

애플을 묘사할 때 아트와 테크놀로지의 결합체라고 하듯이, 잡스의 성격 안에도 더운 것과 차가운 것, 위대함과 비열함이 모두 공존했다.

그냥 들어오는 여러 요소들을 다 가져다 안에 넣고 때로 필요한 것을 꺼내어썼다.

전작 영화가 서서히 성장해가는 잡스를 묘사했다면 여기서는 그의 내면을 집중 탐구한다. 덕분에 볼거리는 적은 편이다. 인도의 타지마할도 전시장도 아니고 심지어 대학 캠퍼스도 따로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내면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잡스가 놓인 주변과의 치열한 갈등을 드러낸다. 덕분에 좀 더 그를 이해하도로 도와주기도 한다.


성장한다는 의미는 여럿이 있다.

인격도 있고 리더십도 있다. 인격이라면 보통의 성격 위에 가면적인 면이 늘어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척을 해줄수 있다. 특히 경영자라면 여러 유형을 상대해야 하기에 그럴 필요가 있다. 잡스도 처음에는 무조건 욕설을 퍼붓었지만 뒤로 갈수록 그는 타협을 늘려간다. 

리더십도 그렇게 성장해간다. 자신만을 내세우지 않고 조금씩 남을 인정해주어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사실 이런 변화는 일반적인 경영자의 성장이지만 잡스의 경우 기술,예술,경영 등 모두가 복합되어 아주 단기간에 나타나고 그 위업이 말 그대로 지구를 흔들었기에 더 위대해 보인다.


영화에서는 잡스가 관계 맺은 상당히 많은 친구들이 나중에 적대하면서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귀책 사유 상당수가 잡스에 있음도 이해시켜준다.

그러면서도 그 많은 친구들 상당수가 잡스에게 손을 내밀고 한때마다 가까이하면서 일했던 점을 좋은 추억으로 돌리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줌도 그려낸다.


삼성과 애플의 전쟁은 다시 소강상태로 들어섰다.

애플은 여전히 성과를 독식하려고 한다.

잡스가 성격적으로 워즈의 아이디어와 노력을 뺴았고 제록스의 기술을 훔치고 주변의 기여도를 다 깔아뭉개듯이 말이다.


그런 뛰어난 친구가 있다는 건 여전히 불편하다.

복합적 용어인 프레너미가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수도 있을 것이다.


자랑스럽지만 결국 극복해야 할 대상 잡스.

너무 환상을 가져 애플빠가 되어버린 몇 몇 지인도 떠오르지만

그럼에도 그가 남긴 위업도 사랑하는 적당한 이해심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또한 볼만하다.

아니 시각적인 면은 떨어져도 충분히 깊이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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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버드맨 - 아웃케이스 없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에드워드 노튼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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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호작이다. 

비디오로 보면서도 놓기 어려웠다.


영화에서는 

두 가지가 여러차례 포개어진다.


먼저 영화 속의 연극이 흘러간다.

주연은 한물간 영화배우로 연극이라는 새로운 장에 자신을 걸었다.

돈은 없고 배우들은 속 썩이면서 제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렇게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영화는 쭉 비추어준다.


두번째 포개짐은 배우의 내면이다.

어려울 때 수시로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목소리로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남인가 하지만 결국 찾아보니 자신안에 있는 또 하나의 마음이다.


세번째 포개짐은 현실의 인간과 비현실의 인간이다.

현실의 인간은 작은 공간에 갇혀서 고민하지만

비현실의 인간은 버드맨이라는 이름 답게 하늘을 나는 자유를 누린다.


왜 이럴까 묻는다면 주인공은 내가 바로 영화배우잖아라고 답할 것 같다.

카메라 앞에서는 가면을 써야 하는 이중적 존재로서의 삶이 자기 안에 또 하나의 자기를 만들었다. 밖에서는 무한한 자유를 누리기에 하늘을 나는 꿈을 꾸지만 거울 속 진실의 순간은 매우 다르다.


카메라 앞에서 대중의 찬사를 누렸던 이들이 밤잠 잘 때는 노이로제를 이기기 위해 무척이나 고통스럽다고 한다.

그렇기에 더욱 자기 아닌 것을 추구하다 보니 분열은 심해질 수 밖에 없다.

더해서 그는 이상을 지극히 높은 곳으로 추구하는 이카루스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버드맨이라는 말 자체가 그런 상징 아닌가?

사람이 날고 싶어서 버드의 날개를 붙였지만 언제 떨어질까 하는 조마조마함을 안고 살개 된다.

무릇 꿈꾸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추락의 운명이 그렇다.

어느 소설에 나오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문장과 뉘앙스가 비슷하리라.


현대인들이 가진 존재의 고민, 

이를 극대화하여 가진 존재로서의 주인공의 모습은 

그래서 관객의 애틋함을 받아가며 수작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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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 초회한정판 (2disc+40p 부클릿)
부지영 감독, 염정아 외 출연 / 에이스미디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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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짤린다.

참 우울한 시작이다.

까대기를 비롯해 온갖 일을 다하는데

그것도 벌점 하나 없이 수년을 일했다.

그럼에도 돌아온 것은 사람 아닌 물건 취급.

말 제대로 못하던 성실한 아줌마는 이제 노조를 만들게 된다.

돌아온 건 구금에 집안 살림은 어려워지고..

아들은 수학 여행 못 간다고 툴툴대고 등..

상상에 맡긴다.

다 스포일하면 재미 없으니..


그런데 내가 꼭 언급해야 할 감동 대목은 소개해야겠다. ^^

아들이 편의점에서 알바비 못 받고 

주인에게 시달림 당할 때..

엄마가 한마디 한다.

말꼬리 확 잡으며

"아들처럼 생각한다면 왜 알바비도 안주고 애는 패내고"

그 말 한 마디를 던질남큼 얌전한 아줌마는 용감해지고 당당해지고

사회적으로 성숙해졌다.


카트의 보람은 거창한 것 보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사람의 변화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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