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 노무현, 왜 그러는 걸까?
이진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호기심에 집어들었지만 읽다 보니 읽는 속도가 막 빨라진다.
훌쩍 한권을 넘겨버리고 드는 생각은 역사를 만든다는게 무척 어렵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기록물이라고 다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했다.

그렇다면 아마 작가가 제목에 붙어 있는 것처럼 비망록인데 무얼 더 바라느냐 항변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이진 작가는 미국유학 시절 미국사회를 예리하게 분석한 책을 내었는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고 기대하는 분이었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노무현 캠프에 합류해 결국 청와대에 들어가 공보관련 업무를 수행하다가 이 책을 내게되었다고 한다.

아쉽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별점을 후히 주기는 어려웠다.
우선 단순한 기록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기록성 문장이 이어져서 재미도 없는데 더 아쉬운 것은 별 의의를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사마천의 저작이 수천년 세월을 넘어서 오늘날까지 가치를 주는 것은 인간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유능한 사람, 무능한 사람, 용기를 보이는 사람, 겁이 많았던 사람 등 온갖 기준에 따라 인간들의 면모를 구분해서 상황에 맞게 잘 보여준다.

반면 이 책은 인간의 아주 표피에 보여주는 건조한 면모 이상을 보이지 못한다. 그냥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이 나눈 어록 수준이다.

차라리 최근 청와대를 나와서 3자 입장에서 참여정부의 공과 과를 반성하는 저작들이 이 책보다는 한결 나을 것 같다. 자신을 좀 더 객관화할 수 있으니까말이다. 아니면 아예 주간지 특히 시사저널과 같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노무현을 평가하는 매체의 기사 모음이 한결 나을 것 같다.

이진씨가 썼고 개마고원에서 나왔기에 무언가라는 기대했지만 너무 동떨어져있다.
왜 이렇게 혹독하게 이야기하느냐 반론이 나온다면 정치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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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6-05-2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망록'이라... 음 그 제목은 거창했으나 내용은 미약하리니... ㅋㄷ

사마천 2006-05-2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큰 기대는 안했지만 그래도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
 
 전출처 : 릴케 현상 >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이다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이다

한때 정치인의 전유물이었던 ‘뻔뻔함’은 이제 대중들의 일상 속으로 … 과연 당신의 진보성은 정치·경제·문화의 삼위일체성을 지키고 있는가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있다. “뻔뻔스럽고 부끄러워함이 없음”이란 뜻이다. 후안무치에 친화적인 정치판에선 상대편을 비난할 때 자주 쓰는 상용어지만, 보통 사람들 사이에선 큰 욕이다. 넓고 묽게 보자. 후안무치를 도덕의 경계선상에 걸쳐 있는 하나의 인간적 특성으로 보자.

김구가 이승만의 적수가 되지 못한 이유

정치인의 제1 자질이 무엇일까? 단연 후안무치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보통 사람의 도덕감정을 고수하면서 정치를 한다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인에겐 비상한 수단을 사용하고 상황에 따라 언행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 정치인의 제1 자질은 ‘후안무치’다. 대통령이 된 사람은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이 자질이 더 뛰어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을 만들어내며 그 능력을 잘 보여주었다. 1990년 1월 3당 합당 발표 장면. (사진/ 연합)

다른 나라를 볼 것도 없이 한국 현대사만 살펴봐도 이는 분명해진다.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경쟁자들과 비교해볼 때 후안무치 자질이 더 뛰어났다. 예컨대 이승만과 김구를 비교해보라. 김구도 다른 독립투사에 비하면 꽤 후안무치한 편이었지만 감히 이승만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이는 대통령들에게 다른 탁월한 능력과 자질이 있었다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른 탁월한 능력과 자질은 기본이고 거기에 후안무치 자질이 더해져야만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영삼부터 살펴보자. 3당 합당과 내각제 각서 파동은 김영삼의 탁월한 후안무치 능력을 보여주었다. 정계은퇴 식언과 ‘20억+알파’ 사건은 김대중의 후안무치 능력을, 대선후보 전 동교동계에 대한 우호적 태도와 지역주의 양비론의 일시적 위장 등은 노무현의 후안무치 능력을 입증해준다.

대체적으로 보아 높이 오른 사람일수록 후안무치를 저지른 건수가 더 많고 농도가 더 강하다. 피부가 얇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이 정치인이 되거나 조직의 리더가 된 걸 본 적이 있는가? 설사 있다 하더라도 유능하진 않았을 게다.

정치는 인간의 야수적 속성을 다루는 영역이다. 어느 영역치고 그 속성과 무관하랴만, 본격적인 권력투쟁이라는 점에서 정치를 따라갈 수 있는 영역은 없다. 경제 영역의 투쟁도 무섭긴 하지만, 그쪽은 이익 중심이기 때문에 이익과 더불어 이념·명분 등이 칼춤을 추는 정치판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이는 경제계의 거물이었던 정주영과 김우중이 정치판에 뛰어들거나 기웃거리다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졌는가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영역에서도 후안무치가 경쟁력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근의 삼성과 현대차 사태를 보라. 왜 잘나가는 재벌그룹 총수일수록 후안무치의 농도가 강한가? 그건 평소 후안무치했기 때문에 그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답으로 대신하면 되겠다.


△ 올 초부터 대학 내 선거 관리권은 선거관리위원회로 2004년 총장임명 후보자 선출선거를 하고 있는 한 대학의 교직원들. (사진/ 연합 조용학 기자)

주변을 둘러보기 바란다. 후안무치 자질이 비교적 뛰어난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게다. 그들에겐 좋은 점이 많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교섭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비교적 탁월하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이미 권력을 가진 쪽은 후안무치 자질이 뛰어난 즉, 같은 선수를 알아보고 요청·요구에 응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뻔뻔함’은 새로운 철학적 사유 양식

후안무치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자신의 후안무치를 자각할 수 있는가? 없다! 바로 여기서 비극이 싹튼다. 자신이 후안무치하다는 자의식을 갖게 되면 후안무치를 구사하기 어려워진다. 후안무치를 “안녕하세요”라고 가볍게 인사하는 기분으로 체화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보통 사람의 상식적 판단을 넘어서는 일을 해도 그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같은 후안무치 자질을 가진 측근 인사들에게 의존해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

대중은 묘한 동물이다. 그들은 정치인의 후안무치가 필요악임을 흔쾌히 인정하면서도 어느 순간 돌아서서 후안무치하다고 욕을 한다. 언제 어느 경우에 그러는지 그건 확실치 않다. 그들은 “해도 너무하네”라고 하는데, 과연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서부터 너무한 건지 그들 자신도 답을 갖고 있진 않다. 그래서 정치는 늘 대중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게임이 된다.

1920년대 후반 미국 마피아 조직을 주름잡았던 알 카포네는 “상류사회란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고 이익을 만끽하려는 뻔뻔스러운 놈들로 이 ‘훌륭한 사람들’은 합법적인 공갈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폭이 감히 그런 말을 해? 아니다. 상류층의 후안무치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조폭도 당당해진다. 일반 대중인들 무얼 망설이랴. 민주화 이후 한국인에게 나타난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는 후안무치의 일상화다.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의 반열에 올랐다. 보수파들은 그게 민주화 탓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게 아니다. 후안무치의 엘리트 독식 체제에서 대중화 체제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니 일단 긍정적 변화로 보는 게 옳다.

그건 마치 아줌마들의 후안무치를 비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남존여비 가부장 체제하에서 처녀 때까지 억눌려왔던 후안무치 욕구가 애 낳고 폭발하면 원인부터 따져보는 게 옳다. 나는 후안무치해도 좋지만 너는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후안무치의 평준화는 사회 정의다.

독일에 페터 슬로터다이크라는 괴짜 철학자가 있다. 이 사람은 ‘위선적 계몽주의’를 질타하면서 ‘뻔뻔함’을 새로운 철학적 사유 양식이자 실천 항목으로 제시했다. 이론과 명분대로 살려면 위선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표현 양식이라 할 뻔뻔함을 발휘하면서 문제를 짚어보자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깨닫기 어려운 심오한 뜻이 있겠지만, 후안무치를 다시 보자는 메시지만큼은 그대로 접수해도 좋겠다. 사실 한국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돼온 것이다. 한동안 열풍이 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이 기(氣) 살려주기 운동’도 기실 따지고 보면 이 후안무치한 세상에서 내 새끼 경쟁력 키워주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후안무치 경쟁

지금 이 후안무치 이야기를 행여 냉소로 이해하면 크게 실수하는 거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문법에 대해 탐구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후안무치 경쟁’이 이대로 좋은가 하는 걸 정색을 하고 살펴보자는 뜻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혁명의 순수성은 2주일을 넘길 수 없다”고 했다. 민주화운동이나 개혁의 순수성은 얼마나 갈까? 2개월? 2년? 얼마이건 그 주체는 모른다. 왜 그런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주체에겐 후안무치 자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기엔 이미 순수하지 않은데도 자신은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걸 무슨 수로 막으랴.


△ <조선일보>는 문화적으로 ‘좌파 담론’의 상품화에 열을 올리는데, 그건 단지 극우성을 위장하려는 술책일까. 상점 앞의 신문 가판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농민운동가 천규석이 <쌀과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지나고 보니, 60~80년대까지의 그 풍성했던 민주화운동이란 것들도 잘난 놈들에게는 입신출세와 물질적 보상이라는 두 가지의 전리품을 동시에 거두어갈 기회로 활용되었다”고 독설을 퍼부었을 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듣지 않으려면 민주화운동을 한 인사들은 어떤 공직도 맡지 않고 계속 밖에서만 떠돌아야 하고, 공직은 운동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독식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 천규석이 말하고자 한 건 운동가들의 공직 진출 자체가 아니라 공직 진출 이후 보여주는 모습일 거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글과 말로만 운동을 했던 지식인들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혹 나는 나의 글을 입신출세와 물질적 보상이라는 두 가지의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모든 지식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후안무치는 정치인들만의 무기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고종석은 언젠가 ‘글쓰기의 무서움’이란 글에서 “자신의 발언을 자신의 발 밑에 조회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는 절제는 공적 발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모두에게 긴요한 덕목이 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자신이 실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옳은 메시지라면 널리 전파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반론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로 인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너무 심각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한국 사회엔 ‘담론의 거품’이 너무 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좀 유치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구체적 각론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이야기는 유치해질 수밖에 없다는 변명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적어도 <한겨레21> 수준의 잡지에선 ‘부국강병론’이니 ‘소득 2만달러론’이니 하는 것은 경멸받기 딱 좋은 보수파 담론으로 통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멸이 과연 정직한 것인가에 강한 의문을 품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국가주의·민족주의는 무조건 때려야 진보고 품위 있는 지식인으로 통하는 이 풍토가 언행일치를 전제로 한 정직성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잠시 <조선일보>를 보자. 이 신문은 자주 문화적으론 ‘좌파 담론’의 상품화에 열을 올린다. <조선일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극우성을 위장하려는 술책이라는 모범답안을 내놓을지 모르겠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그게 그 신문 독자들이 원하는 상품이기도 하다는 걸 인정할 수 없는가?

“잘 살아보세”는 “잘 써보세”로 바뀌고…

‘보보스의 법칙’이란 게 있다. 미국에서 학생운동권 출신이지만 일류대를 나와 좋은 직장을 갖게 된 이른바 ‘보보스족’이 정치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과거 운동권 시절과 비교해 갖게 되는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문화적으로만 진보 냄새를 피우는 걸 말한다.

과연 <한겨레21>의 독자들은 <조선일보> 독자들과 얼마나 다른가? 당신의 진보성은 정치·경제·문화의 삼위일체성을 지키고 있는가? 물론 삼위일체를 고수하는 게 옳다거나 바람직하다는 법은 없다. 얼마든지 각기 따로 놀 수 있다. 다만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일관된 경향성에 주목해보자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김대중 정권은 물론이고 노무현 정권이 경제적으로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성장주의 패러다임’이 과연 한국인 다수가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인가?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닌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사라진 유물이 아니다. “잘 써보세”로 바뀌었을 뿐이다. 민주시민의 윤리는 소비자 윤리로 대체되었다. 소비자가 악덕 상인에 분노하듯, 민주시민은 악덕 정치권에 분노하는 정도의 윤리는 갖고 있지만, 단지 거기까지뿐이다. 민주주의는 소비주의와 결탁했다. 민주시민은 그 이상의 선은 넘으려 하지 않는다.

일부에 지나지 않을망정, 그 패러다임을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매년 해외여행을 하고 중형차를 굴리고 골프를 치기도 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은 재벌 총수들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얻은 돈으로 이른바 ‘대학 개혁’을 하고 있지만, 그것에 저항하진 않으며 그로 인한 수혜만 누린다.

이런 지적은 부당한 것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받았던 미국의 노엄 촘스키가 짜증을 냈듯이, 유치하다고 짜증을 낼 만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논점은 지식인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의 담론 생산이 현실 세계와 맺는 관계다. 그 괴리가 클수록 지식인의 ‘상징 자본’은 튼실해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세계를 바꾸는 데 어떤 실천력을 갖는가는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제도와 법의 차원에선 한국 사회는 개혁을 할 만큼 했다. 물론 할 게 더 남아 있고 앞으로 더욱 해야겠지만, 제도와 법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남아 있으니 그게 바로 의식과 행태의 영역이다. 예컨대 정치판에선 ‘보스 정치’가 거의 사라졌지만, 대학엔 건재하다. 학연주의와 파벌주의는 정치권 뺨을 치고도 남는다. 대학 내 선거 수준도 직업 정치판 선거보다 높지 않다는 이유로 관리권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빼앗겼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 그 바닥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늘 사회를 향해서만 설교를 늘어놓는다.

정치권 동지들을 새삼 경외하다

자신의 후안무치에 대해 가끔이나마 자각을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럴 때마다 글쓰기가 몹시 싫어지니까 말이다. 공적 발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게 되면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언행일치를 하는 사람 위주로 글쓰기 시장이 물갈이돼 담론과 세상의 거리가 좁혀지고 그에 따라 실천력도 강해질 게 아닌가. 정치권의 후안무치 동지들에게 새삼 경외감을 갖게 된다. 그들에겐 이런 고민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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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퍼온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101가지 말과 행동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101가지 말과 행동

아이들에게도 인격은 있다!!!


 ☆ 아이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말과 행동

 

1 쓸모없는 녀석 같으니라구
2 좀 배워라, 배워!
3 어디서 말대꾸야
4 넌 심부름 하나 제대로 못 하니?
5 버릇없이 어른들 얘기에 끼어드는 게 아냐
6 공부도 못하면서 무슨 오락이야
7 잘했구나, 그런데 영철이는 몇 점 맞았니?
8 우리 애는 아직 철이 없어요
9 그런 시시한 음악 좀 듣지 마라
10 네 누나가 너만할 때는 너보다 똑똑했는데
11 옆집얘는 이번에도 1등 했다더라
12 딴 거 틀어
13 오빠는 남자잖아

 

☆ 아이들의 자율성을 해치는 말과 행동

 

14 숙제부터 해
15 쓸데없는 것 좀 사지마
16 지금은 속셈 학원을 다니란 말이야
17 엄마 말이 맞아, 그 옷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18 만화만 보지 말고 책 좀 읽어라
19 더 먹으라니까
20 딴 데로 새지 말고 곧장 와!
21 너희는 매일 싸우니?
22 넌 왜 맨날 돈타령이야!
23 한 번만 더 반찬 투정하면 다신 밥 안 줄 거야
24 용돈 까먹지 마
25 오늘만 특별이다

 

☆ 아이들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말과 행동

 

26 공부 좀 해라, 공부 좀
27 잘 했구나 얌전히 잘 있어
28 당장 하지 않고 뭘 꾸물대!
29 네가 웬일이니? 공부를 다 하게
30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돼, 안 그러면 혼나!
31 당장 안 일어 날 거야!
32 너희 선생님은 왜 그런다니?
33 멋 부리지 말고 공부나 해
34 꾸물대지 마, 이 게으름뱅이야
35 넌 머리가 좋으니까
36 뭘 또 사달래?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37 그런 건 꿈도 꾸지마

 

☆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말과 행동

 

38 그게 얼마짜린데 잃어버려!
39 울지 마! 엄마가 또 사주면 되잖아
40 아무도 안 보는데 뭐 어떠니?
41 집 잘 보고 있으면 맛있는 거 사줄게
42 제발 말 좀 들어라
43 못써, 그런 말 하면
44 넌 허구한 날 맞고 들어오니?
45 잘났어, 정말
46 너희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마라
47 당신 탓이야
48 공부만 잘하면 해 달라는 것 다 해줄게
49 남의 집에서만이라도 조용히 못 하겠니?
50 지니야, 여기 자리 났다
51 넌 텔레비젼이 친구지

 

☆ 아이들의 자신감을 없애는 말과 행동

 

52 넌 정말 구제불능이야
53 이 바보야! 이것도 몰라
54 인사도 제대로 못 하니?
55 넌 이것밖에 못 하니?
56 넌 정말 커서 뭐가 될래!
57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좀 똑똑히 말해 봐
58 거봐, 내가 뭐랬니? 넌 못한다고 그랬지?
59 누굴 닮아서 그렇게 못 생겼니?
60 애들 주제에 뭘 안다고 나서니?
61 너 왜 맨날 그 모양이니? 하는 일마다 말썽이니?
62 네가 한 두살 먹은 어린애냐!
☆ 아이들의 창조성을 없애는 말과 행동
63 네가 뭘 안다고 그래
64 하늘이니까 파랗지 당연한 걸 뭘 물어보니?
65 틀렸어,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66 그런 건 크면 다 알게 돼
67 엄마 지금 바빠
68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해
69 넌 여자애가 왜 그 모양이니? 남자처럼 굴지 마

 

☆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말과 행동

 

70 엄마한테는 너 밖에 없어 넌 꼭 의사가 되어야 해
71 착한 어린애는 그러는 게 아냐
72 네가 이 세상에서 최고야
73 다 널 위해서야
74 꼴이 그게 뭐니?
75 동생에게 양보 좀 해!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
76 학원비가 얼만 데 수업을 빼먹어
77 좀 큰 포부를 가져 봐 소방수가 뭐니, 소방수가
78 무슨 애가 그렇게 말이 많니?

 

☆ 아이들을 불안에 빠지게 하는 말과 행동

 

79 실패하면 안 돼
80 너같은 애는 엄마 자식이 아니야! 꼴도 보기 싫어
81 내가 못살아 정말 너 때문에 내가 못산다
82 놔두고 가 버릴 거야
83 뛰지 말아라
84 말 안들을 거면 없어져 버려!
85 그런 위험한 놀이는 하지 마!
86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만 있어
87 다리 밑에서 주워 왔지
88 한번만 더 그래 봐라, 가만두지 않을 테니
89 조용히 좀 못 해!

 

☆ 아이들을 반항하게 하는 말과 행동

 

90 왜 그랬어? 빨리 말 못해
91 방 좀 치우면 어디 덧나니?
92 동생이 뭘 배우겠니? 네가 잘 해야지
93 네가 그랬지? 바른 대로 말 못 해!
94 아빠 들어오시면 혼내 주라고 할 거야
95 정말 엄마 말 안 들을 거야!
96 어딜 갔다가 지금 오는 거야
97 왜 맨날 그런 친구들이랑 어울리니?
98 또 무슨 말썽을 피우려고 그래?
99 넌 착한 아이니까 엄마 말 잘 들을 수 있지?
100 큰 소리를 꼭 쳐야 말을 듣니?
101 엄마가 어렸을 때는 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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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 마음을 움직이는 힘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1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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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참 논란을 빚는 사건은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구속이었다.

검찰이 도주 우려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기업 최고 의사결정자를 구속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유감이 많다.
그런데 이 사건의 계기가 된 것이 내부자의 투서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작년에 읽었던 한 경제주간지의 기사가 생각 났다. 현대차의 미국 시장에서 선전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상이 높여지고 있다며 정회장의 경영에 대해 호평을 하고 있었다. 외국계 분석가들의 호평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와 대조되면서 뿌듯함을 안겨준다. 하지만 여기에 한가지 지나가는 말로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정회장이 너무 사장을 자주 바꾼다는 것이었다. 약간 우려를 섞은 이 말이 머리에 남아 있었고 이는 삼성의 인사 스타일과 대조가 되었다. 삼성에서는 퇴직 임원에 대한 전관 예우 기간을 늘리고 다독거리기에 나선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었다.

하여간 정회장 구속이후에 나온 기사를 다시 보면 약 400명에 달하는 고위 임원들이 정회장에 의해 내보내졌다고 한다. 더해서 이들에 대한 예우가 그리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과거 정세영 회장이 던진 따뜻한 말 한마디 함께 계속 해보자는 사업기회 제공 등은 전혀 없었고 전별금에도 매우 인색하다는 내용이 주였다.

이 대목에서 한상복의 이 책이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존귀한 존재다. 태어나 한번뿐인 인생을 살고 자기 자신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무시하기 어려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경영 위기에 빠져 희생양을 찾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회사가 배경이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몰린 영업팀의 과거 실적은 매우 화려했었다. 하지만 다들 침체에 빠진 이 상황을 타개해 간 것은 질책이 아니라 격려였고 이는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가 근저에 자리잡았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리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지도 못했고 화려한 배경이 담긴 것이 아닌 이 소설이 이 만큼 각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시야를 넓혀보면 한국 사회 전반이 바로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반증 아닐까?
주변을 돌아보면 얄팍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 자신의 경영 부실 과오에 대한 반성은 없이 부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상사가 보인다. 나만 살겠다고 동료를 위기로 몰아 넣는 그런 존재들도 많다.

더 크게 보면 나라 전체가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지 않은가 물어 볼 수 있다. 요즘 평택에서는 한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미군에 대해 협조해야 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사람을 꼭 그렇게 짐짝 취급하는게 최선이었는지는 궁금하다. 아마 이게 현 정부의 백성에 대한 배려의 진면목일 것이다.
법대로 하겠다는 말은 전두환도 노태우도 했었다. 민주주의 본질은 대화다. 그리고 대화의 핵심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다. 노무현 또한 그렇게 자신의 민주투사 경력을 들먹이기 전에 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것이 좋지 않을까?

노무현 임기 중 최대의 사건이었던 탄핵도 출발점은 배려였다.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뽑고 같이 뛰었던 사람들을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용도폐기하고 뛰쳐나가 버린 것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과연 이것은 충분한 배려였는가? 요즘 지방선거 기사를 보면 열우당에서는 집나간 토끼를 찾는다고 한다. 백성이 과연 토끼로 보이는가 쓴 웃음을 짓게 만들면서 과연 노무현은 열우당은 자신을 지지했다 반대로 돌아선 사람들에게 충분히 배려 하고 있는지 돌아보도록 권고 하고 싶다. 

부안 핵폐기장 사태, 분당 그리고 이번의 대추리까지 맥은 같다. 
사람은 누구나 제대로 배려 받고 싶어 한다.
표를 달라고 호소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남에게 배려했는지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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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의 위기와 미국
로버트 루빈 & 제이콥 와이스버그 지음, 신영섭.김선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루빈은 골드만삭스 회장을 거쳐 클린턴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장기간 정치와 경제의 권력의 중심에 있다. 미국의 국무부가 전세계 정치를 총괄하듯이 재무부 또한 전세계적인 경제 통치를 전개하고 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미국 경제는 호황을 거듭했지만 후반기에 동남아, 한국, 러시아 등에서 연쇄적으로 외환위기가 닥쳤다. 미국 국내적으로도 은행들이 휘청거리는 대형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는데 루빈은 이 해결과정에서 그린스펀과 보조를 맞추며 많은 성과를 냈다고 한다.

IMF 당시 한국의 위기를 놓고 미 정부 내에서 의견이 대립했는데 국무부 쪽에서는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이 더 이상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지원을 요청했지만 모럴 해저드를 걱정하면서 한국에 냉정한 원칙을 강요한 인물이 바로 재무부장관 루빈이었다. 이곳 저곳 회의는 다니면서도 최종 의사결정은 미루었고 자기의 원칙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 끊임 없이 불만을 이야기했다. 당시 그의 입장은 이 책에서도 잘 나타난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한국 정부가 도청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정신을 차릴 것이니까." 라는 표현은 그만큼 그가 사석에서도 강경발언을 지속했다는 의미다. 결국 국무부의 설득에 의해 지원을 해주기로 했지만 은행들을 설득하면서 한편으로 한국에 많은 압력을 가한다. 이 당시 크루그먼 등 비판자들은 미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원국에 대해 체제 전환을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더해서 고금리를 한국에 강요하는 식으로 밀어 붙여서 많은 기업들의 도산을 통해 헐값 매각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이 대목에서 당시 한국에 활약한 골드만삭스의 기업 사냥을 잊지 말기를.

그가 자신의 업적을 자화자찬 하고 있는데 잘 들여다보면 미국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한국 지원에 참여 했던 은행들에 대해서도 말레이지아의 부총리였던 안와르의 묘사가 재미있다. 나쁜 채무자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나쁜 채권자도 있다. 책임을 한쪽에만 몰 것이 아니라 나누어 져야하는데 만약 한국이 러시아처럼 디폴트를 선언해버렸다면 미국 은행들의 연쇄 도산 문제도 거론될 정도 상황이었다. 이 때 루빈은 이런 상황을 여러 관계자에 설득하면서 IMF 자금을 동원한다. 당시 미국의 지분은 20% 수준이었지만 의사결정 권한은 일방적으로 행사하고 있었다. 일본의 한국 지원 노력을 차단해버렸는데 여기에는 일본의 YS 정부에 대한 반감도 일부 작용했지만 본질은 미국이 나서는데 중간에 끼지말라는 것이었다. 
사카키바라와 같이 일본의 경제통들도 미국의 일방 주행을 피하기 위해 AMF와 같이 독자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하는데 이 때 미국의 얼굴색이 변했다고 한다.

루빈의 자화자찬은 계속 이어진다. 막대한 지원금이 동원되는데도 국민의 세금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미국의 추가적 부담은 없이 고민은 덜고 생색은 잔뜩 내고 이득은 한 껏 챙겼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이 멕시코에 대해서 강요한 조건도 매우 냉혹했고 지원 금리 또한 매우 높아서 멕시코는 상황이 호전되자 석유 팔아서 신속히 갚아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도 멕시코나 한국의 고된 현실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는다.

당시 지원을 논하는 협상자리에서 미국 의원들이나 고위 관료들은 이 참에 돈 받는 나라들이 미국 정책에 반하는 행태를 보일 수 없도록 강제하자고 주장하는 대목도 루빈의 책에 나온다. 그래 바로 이게 그들의 본색이었다. 은행의 해외 매각이나 여러 가지 조치들의 궁극적 의도는 미국 자본의 이익 확대였다.

협상조건이 가혹함을 호소하는 피협력국들에게 루빈은 계속 쉬운 지원이 만들어낼 모럴 해저드를 경고한다. 하지만 이 원칙은 자국에서 연달아 발생한 LTCM의 파산과 같은 부정적 현상에는 적용되지 못한다. 헤지펀드의 파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양의 통화를 그린스펀과 협력해서 만들어 냈고 그 결과는 계속 확대되어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되고 만다.

또 루빈이 자리를 물러나 시티은행에  경영자로 참여하자 미국식 경영시스템의 부정적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막대한 벤처 거품이 곧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당시 시티은행의 책임자는 한분기 앞만 내다보고 어떻게든 쥐어짜며 실적 맞추기 경쟁만 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우리도 잘 알 듯이 엔론을 비롯한 막대한 회계부정이었다. 과연 미국이 타국에 대해서 높은 수준의 모럴을 이야기할만 했을까?

루빈의 이야기는 백악관, 월가, 전세계 금융시장과 정치지도자를 오가며 이어진다.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어 놓지만 다 듣고 보면 역시 미국은 자기의 이익을 너무 앞세우는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한국 재경부장관에 대한 독설도 이어지는데 어느쪽이 옳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의 협상능력, 위기 관리 능력, 세계를 보는 관점이 부족하다는 점은 미국과 잘 비교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자기 돈은 별로 안쓰면서 마음 대로 세계를 좌지 우지 해야 한다는 권력의 과잉 상태를 주장한다. 이를 무시할수는 없지만 무조건적인 우호적 시각으로 따라가는 것도 결코 현명하지 못 할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오만함은 최근 달러의 약세를 통해 업보를 받고 있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국제정치에서 작은 국가가 생존하는 법은 현명한 지도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책에 더해서 한마디 하면 오역이 지독하게 많다. 이상과열이라고 통상 번역되는 그린스펀의 말에 대해서 쉽게 이해가 안가는 표현으로 번역했고 증권거래에 있어서 포지션이라는 단어도 도대체 말이 안되는 수준으로 번역을 해내어 버렸다. 지적하고 싶을 정도로 불만 있는 번역은 한둘이 아니라 수십군대에 이른다. 출판사의 편집능력이 함께 의심되는 수준이었다. 일반인의 눈에도 이렇게 띄는 오류라면 전문가가 보면 얼마나 많이 쏟아져나올까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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