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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캐슬,팰리스, 아파트 이름이 거창해졌다.
영어 이름이 아우라를 뿜어내고, 40층에 다다르는 거대해진 몸집은 주변을 누르고 위용을 과시한다.
그렇게 잠실주공 아파트 단지는 서민들의 주거지에서 거대한 성곽으로 변모했다.
언제부터인가 어디에 사는지는 사람의 많은 면모를 파악하는 수단이 되었다. 금융가 PB들에게도 고객이 물어보는 질문이 어디 사느냐라고 한다.
성곽속의 사람들은 어떤 존재들일까?
오가다가 깔끔한 간판을 보고 임대료 많이 나가겠구나 그러니 가격을 올리겠군 하는 생각은 해본다. 일하다가 잠시 카페와 베이커리는 들러보지만 힐끔 보는 것으로 속까지 알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대안이 있다. 바로 이 소설이다.
작가 정아은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여러 사람의 여러 시선을 모아 큰 그림을 그려내 나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주인공들은 거주민과 주변인으로 나뉜다.
거주민의 색깔은 주변인의 시선으로 더 잘 구별된다. 아파트 가격에 민감하고, 자가냐 전세냐는 차이도 있지만 공통적으로 애들 교육에 집중한다.
어렸을 때는 영어에 목 매단다. 부모세대는 영어 컴플렉스가 크다. 영어 하나만 잘 해도 성공하는 주변 동기들을 봐았기에 영어 약점을 대물리지 않으려는 집념이 매우 강하다. 영어교사, 원어민 등의 우대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아이 하나를 놓고 8개 뺑뺑이 돌리는 집들도 나타난다. 덕분에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이 교육을 소비로 인식하게 된다. 영어를 배우는데 원어민이 나오는 학원에 비하면 학교선생님 발음은 촌스럽다. 그러다 보니 교육자로 선생님을 대우하지 않게 되고 덕분에 초등생도 "씨발"이라는 욕설을 선생에게 내뱉는다.
맥도날드가 아이들에게 돈내밀어 햄버거 사게 되면서 서비스를 싸게 만들어 버릇없게 만든다는 분석이 있었다. 지금 아이들에게 학교는 수많은 교육서비스 중 하나다. 자판기 처럼 돈 넣으면 물건이 나오는데 학교만 예외적으로 따지는 게 많다.
이런 아이들은 경주마로 비유할 수 있다.
어머니들은 집단 레이스에 뛰어든 경주마들의 후원자들이다. 먹이다가, 조련에도 참여하고 정 급하면 같이 뛰어들어 달리기를 한다.
심판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대는 모습이 나타나니 참 웃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비현실적이지 않다.
요즘 회사에서는 헬리콥터 맘에 의해 신기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면접 후, 연봉협상, 승진 심사 등 쉬지 않고 헬기맘들이 불쑥 나타나니 조직원들은 당황하게 마련이다.
이런 입주민 공간의 차별성은 주변인들의 시선을 통해 더 드러난다.
가사도우미,과외선생,학습지교사 등 주변인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을'이다. 주변에서 걸어들어와 여기로 일하러 오는 이들의 삶에는 다 약점들이 있다. 경제적 약자가되는데는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사연들은 대를 이어 물림이 된다.
따지고 보면 교육을 잘해서 자식에게 현재의 삶을 물려주거나 더 낫게 만들려는 입주민의 열의도 대물림이다.
부도 가난도 대물림이 되는 것인가?
저자의 전작의 말미를 보면 사회의 봉건화에 대한 짙은 우려가 후기에 적혀 있다.
경로의 고착화.
사는 곳은 그대로 신분이 되는 것.
캐슬은 봉건을 상징한다. 영주와 마름, 하인과 농노가 있다.
입주민과 주변인의 삶들은 캐슬 시대의 삶들과 연결이 된다.
그리고 성장률이 낮아짐과 캐슬들의 성장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꿈이 클 때 최대한 자신을 열정으로 불태우는 존재고, 불타는 에너지의 모음이 성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