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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 ㅣ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9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전철역 옆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인다. 어느새 1000여명 그러더니 항의가 터져나온다.
역이 하나 생기니 가난한 상경인들이 모여 동네가 불온해지고 거주는 어렵게 된다. 그런데 더 화가나는 건 여기로 오게 되는 요금을 회사는 더 받으려고 한다. 우르르 모여든 군중 앞에서 전철회사 대표는 당황해하게 된다.
1921년 마포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요즘이야 고층오피스텔을 올리고 역세권이라고 집값이 오르지만 그 시절 풍경은 달랐다.
일제시대는 국권이 강점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근대화를 통해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회의 변화에 대해 우리는 생각만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200만부 판매고의 저자 박영규의 필력은 일제강점시대를 한권으로 녹여낸다.
식민 정치의 중심에는 총독부가 있었다.
지금의 청와대 앞 총독부에서 조선을 통치하던 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총독은 총 9대, 8명이다.
통감부터 시작해 4명까지는 조슈번(야마구치-아베의 고향) 출신이다. 육군을 주도한 군벌들이 조선을 정복지로 생각해서 그 안에서 선후배가 밀고당기며 총독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총리 출신이거나 임기를 마치고 총리가 되었다. 거의 대부분.
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돈 문제는 권력과 뗄 수 없었다.
지금의 주식시장과 유사한 미두취인소(여기에 대해서는 채만식의 탁류 읽어보시기를) 허가건으로 5만원 받았다가 그만두게 된 총독도 있다.
8대 총독 고이소의 경우는 고레가와 긴조가 자신의 후원자로 기록하고 있다. 막대한 금액을 대출받아서 사업을 벌이게 도와주었다. 물론 숨겨진 대가가 있었을 것이다.
9대 총독 아베의 경우는 패전 직후 80톤 배에 자신의 약탈 귀중품 싣고 부산을 건너다가 폭풍에 물건 버리고 몸만 살아왔다.
이들의 색깔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강점초기, 31운동 이후 유화기, 일제말기로 나눠볼 수 있다.
유화기를 보면 사이토라는 예외 인물이 있다. 그는 해군출신이고 고향도 조슈가 아닌 이와테,
조선의 통치규칙을 바꾸려고 매우 노력을 했다. 덕분에 총독을 두번 역임했다.
그리고 우가키. 그는 조선인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해서 조신출신 의원들을 배출하려고 노력했다. 실제 1945년 종전이 아니었다면 선거도 있었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 두사람의 경우 대외평화파였고, 대내적으로는 강경군부와 충돌이 많았다. 사이토의 경우는 강우규 의사에게 폭탄을 받았지만 실제 죽은 건 일본청년 혁명장교들(만주사변 일으키는)의 칼에 의해서였다.
총독의 반대편 조선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독립운동이 다양했지만 국내의 경우 각종 신흥종교가 많았다. 나철의 대종교도 있지만 동학의 한 분파로 백백교라는 교주의 부인만 60명인 황당한 일도 있었다.
현실에 구현되지 못한 이상사회를 정신세계에 분절하여 만들어낸 다양한 종교의 광풍이 그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이었다.
문화인들의 요절은 안타깝다. 재주 있던 사람들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하고 일찍 죽어가는 현상은 한둘이 아니었다.
이 책은 한 사회의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면을 모아서 총체적 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읽다 보니 내가 아는게 참 없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앞서 거론한 마포 전철 사건도 그 시대를 보는 훌륭한 단면이 될 수 있었다. 제주도에 가면 해녀 독립운동 기념관이 나오는데 수천명 단위의 대단한 운동이었다. 이렇게 근대경제의 전초병인 권리와 세금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수탈의 실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비쳐진다.
한편으로는 밀려드는 신문물, 특히 철도와 고무 등의 유익함에 익숙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시스템을 지탱하는 폭력에는 피곤해지는 시대였다.
역사가 흥미로운 건 한 사건의 앞뒤의 흐름을 살펴봄이다. 강점기의 구명망가들의 변절이 있고 그 맥이 이어지지만 종종 예외적으로 유길준(서유견문 저자) 같이 초년의 꿈이 10여년의 연금으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삶도 있었다. 반대로 가난한 시골청년이 출세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다가 김옥균도 만나 감화도 받았지만 마지막은 친일거두가 된다. 송병준이다.
한 잣대로 하나의 균일한 삶을 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굴곡이 많은 인간들이고 그 맥은 지금도 이어진다. 가령 초대 한국은행장은 이완용 사위가문이다.
세월의 빛에 누래진 옛 책을 들추는 것처럼 과거의 일이 결코 낡지 않게 보이도록 호기심을 키워주는 독서였다.
저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