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를 타파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더라 (월인스님)





백불관 노인의 생사해탈

중국 청나라에 백불관(百不關)이라 불리는 노인이 있었다.
백불관이란 일체 남의 일에 관여하지 말고
오직 염불에만 마음을 기울이라는 뜻이다.

60세가 넘은 노인이 한평생 살아온
자취를 더듬어 보니 서글픈 마음 뿐이었다.
주변의 친구들도 하나 둘 저 세상으로 떠나가고 자신의 삶 또한
임종이 멀지 않았음을 절감하니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다.

살아 생전 공덕과 선행은 닦지 못하고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만 심어준 일이 생각나 그를 더욱 괴롭게 하였다.
또한 과거에 저지른 죄업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이대로 죽게되면 필히 지옥이나 축생의 과보를
받게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져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 도원이란 스님이 효자암이란 암자를 짓고
평생 염불만 하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노인은 공손히 예배드리고 물었다.

“저는 일생동안 세상일에 얽매여서 성인의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죄만 짓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임종이 가까워짐을 느끼니 앞일이 캄캄하고 두렵습니다.
극락가기는 원치 않으니 부디 악도(惡道)를
면할 수 있는 법이 있으면 저에게 일러 주십시오.”

노인의 간곡한 말을 들은 스님이 고개를 들어 천천히 말하였다.

“그러한 법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노인께서 이 법문을 그대로 믿고 행할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제가 어찌 큰스님의 말씀을 믿지 않겠습니까.
꼭 죄업을 소멸시키고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법문을 일러주십시요.”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다 해도
그것을 진실하게 뉘우치고 오직 염불에만 마음을 기울이십시요.
부처님의 공덕을 의지하여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
생사의 고통을 영원히 벗어나게 됩니다.”

하고는 아미타불의 무한한 자비와 서원으로 성취된
극락정토와 그곳에 태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오직
“나무아미타불”에 전념할 것을 간곡히 일러 주었다.

그리고 다시 말하기를

“염불하는 사람은 많으나 염불공덕을 성취하는 이는 드물며,
염불하는 사람은 많으나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염불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오래 오래 지속하기가 어렵고,
오래 오래 지속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일념(一念)을 이루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염불에 일념이 되어야 염불공덕을 성취하고
임종후에는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됩니다.”

노인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집에 돌아와 염불정진에 온 마음을 기울였다.
일년 이상을 열심히 염불을 했지만 일념의 염불은 되지 않았다.
노인은 다시 효자암을 찾았다.

“이제 염불의 공덕으로 몸도 마음도 가뿐합니다.
죄많은 이 몸을 구원해 주기 위해 정토법문을 베풀어 주신
부처님과 큰스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일심으로 염불은 하지만 지나간 기억 때문에
일념염불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념을 이룰 수 있을까요.”

노인의 말을 들은 스님이 빙그레 웃으시더니

“노인께서는 톱으로 나무를 켜 본 적이 있습니까?”

“네, 많이 잘라봤습니다.”

“그러면 톱으로 톱밥도 잘라봤습니까?”

“톱밥은 자를 수가 없습니다.”

“노인께서는 지금 마음의 톱으로 극락을 건설하고 계십니다.
지나간 과거는 톱밥과 같은 것입니다.
소용없는 것에 마음을 도둑맞지 말고 향기나는 나무를
다듬어 보배궁전을 만들어야 합니다.”하고는 붓을 들어
‘백불관(百不關)이라 써서 노인에게 주면서 다시 한 마디 하였다.

“염불하다가 지나간 일이 생각나면 곧 바로 백불관!하고 부르십시오.
톱밥을 만지던 손을 다시 일념으로 염불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아미타불 아미타불 일성(一聲)에 죄업이 소멸되고
몸이 정화되어 부처님의 가피가 느껴져 올 것입니다.”

진실로 감사한 마음의 삼배를 올린 노인은 염불의 정진 속에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밝은 기운이 뻗쳐나왔다.
그리고 길을 갈 적이나 가족들과 함께 할 적에

염불심이 흐트러질 적이면 백불관!하고 소리치며
아미타불 일념을 다시 챙기곤 하였다.
이웃사람들은 그런 연유로 염불노인을
‘백불관 노인"이라 부르며 공경하였다.

염불할 때 잡념을 쫓는 데는‘백불관’이 아주 좋은 약이 되었다.
이같이 하여 백불관 노인은 일념의 염불이 길어져서
삼매를 얻고 그 속에서 부처님 세계를 훤히 보게 되었다.
너무나 환희로운 마음으로 효자암을 찾아갔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해주신 법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었습니다.
스님의 은혜로 악도에 떨어질 제가
생사의 업을 벗어나 부처님 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왕생하게 될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인사 드릴려고 찾아왔습니다.”

하고는 공손히 예배드리고 집에 돌아와 깨끗이 목욕하고
새옷을 갈아 입은 다음 식구들을 모이게 하였다.

“내가 이제 염불의 공덕으로 업장을 소멸하고 극락정토에 가게 되었다.
모두 슬픔의 눈물일랑 보이지 말고 기쁨의 염불로
나의 장례를 장엄하도록 하라.”는 당부를 하였다.

그리고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 합장하고서
“나무아미타불”을 잠깐 염불하더니 그대로 임종하였다.
그때 서쪽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집 안을 비추이고
기이한 향기가 집 안에 가득 차서 사람들이 크게 놀라워하였다.

위의 이야기는 왕생록에 실린 백불관 노인의 왕생이야기에
필자가 약간의 가필을 한 것이다.
각성된 의식으로 자성을 관조하고 대상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수행의 이치가‘백불관’이라고 하는 한 마디에
오묘하게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죄업이 소멸되고 몸과 마음이 정화되면
부처님의 세계를 자기 눈으로 보게 되고
부처님의 가피로 생사의 업에서 해탈하게 됨을 볼 수 있다.

아, 염불공덕의 부사의함이여.
죄업중생의 한 줄기 빛이로다.
아침이슬 우리인생 슬픔 없어지리라.
인간의 삶 의미없다 말하지 말라.
비우고 맑히는 일에 인간의 행복이 있네.
나무아미타불.

자기에게 맞는 수행법을
수행자에게 있어서 수행의 방법이란
가장 소중하고도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수행이란 비유하자면 음식과 같은 것이다.
저마다 식성과 입맛이 다르듯이 업장이 다른 중생들이
닦아가는 수행의 방편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다.

화두선 일변도의 우리 수행환경을 보면 애써
공부하는 사람은 많아도 성취한 사람은 보기 어렵다.
또한 많은 대중들은 수행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소화시키지 못할 음식을 억지로 먹게 되면 병이 들게 마련이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밥맛을 잃게 된다.
자기 체질에 맞고 소화에 자신있는 음식을 고르듯이
자기 적성에 맞는 수행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원래 염불이란‘나무아미타불’을 지칭하는 말이다.
관음정근’이나‘지장정근’은 염불이 아닌 ‘
관음기도,‘지장기도’이렇게 호칭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해탈 성불하여 중생제도를 발원하는 수행자라면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해야 한다.
아미타불의 서원과 공덕에 의지하여 염불하면 생사업을 소멸하게 되고
탐·진·치 삼독이 자비심으로 비뀌어 성불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외곬수 화두 일념으로 고행 정진해 오신 월인 큰스님
(평생동한 선수행에만 전념,화두타파하신 큰스님 세수 90세. 법납 54로
2000년 입적)께서 말년에 정토삼부경을 보고 깊은 믿음을 일으켜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염불정진으로 돌아오신 일은
초심자들에게 무언의 설법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6월 불일회보 인터뷰에 실린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화두만 타파하면 구경(究竟)이 보일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노스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자.

“내가 정토발원을 하는 것은 극락세계는 살기가 좋고
훌륭하기 때문에 거기에 호강하러 하고 잘 살러 가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는 내 기능을 양성할 수 없으니 내가 거기 가서
기력을 양성해서 다시 여기에 나와 내 뜻을 발하리라.
이런 원을 가지고 살고 있어.”

업장을 소멸하고 부처님세계에 태어나는 방법을 설법한
‘관무량수경’에서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신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사람은 인간 가운데서 가장 순결한 연꽃이니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그의 친구가 되어 주며
그는 항상 진리를 떠나지 않고 필경에 부처를 성취하게 되느니라.
아난아! 그대는 이와 같은 말을 잘 지녀야 되느니라. 이와같은 말이란
‘나무아미타불’의 명호를 간직하는 일이니라.”

-관무량수경 유통분-

과거전생 부처님을 뵈온 사람은
의심없이 정토법문 믿을 것이니
공경하고 겸손하게 믿고 행하여
환희심에 염불하며 기뻐하리라.

나-무-아-미-타-불

이상 현장스님 법문(대원사 주지)

~~~~~~~~~~~~~~~~~~~~~~~~~~~~~~~


'불일회보'에 실렸던(6월 1일자 제 162호) 월인(月印) 노스님의 기사를 생각한다.
그는 법랍이 54세, 세속 나이 90세에 입적, '수행승 중의 수행승' 이라고
일컬어지는 분이다.

평생 수행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사신 분인데 갈 날이 앞에 딱 닥쳤는데 아직 생사해결을
못했으니 지금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여비 벌고 있는 거라면서 일평생을 참선수행하신
분이 말년에는 정토발원(淨土發願)을 하셨으며 불자들에게도 간곡히 염불을 권하셨다.

그 이유는 우리가 견성(見性)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은 아니며 과거의 업장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며 스님은 백팔예불대참회를 새벽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으셨다고 한다.

화두를 타파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더라고, 그래 이 세계에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아시고 극락에 가서 기력을 보강해 다시 내려오시겠다는 새로운 발원으로
스님은 "극락 갈 여비(염불) 마련하느라 몹시 바쁘다."고 말씀하셨다.

수행자의 생명은 그 정직성에 있다고 본다. 사람마다 자기 특성과 경계를 분명히 깨닫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간 존재의 허약성을 알고 나서 오랫동안 길들여 온 수행 방법에
수정을 가할 수 있는 분의 용기에 대해서 찬탄심을 금할 수 없다.

월인 큰스님이 정토발원을 하는 것은 극락세계가 살기 좋고 훌륭한 곳이기 때문에 거기서
호강하러 가려는 것이 아니고, 여기 지금 사바세계는 자기 기능을 양성할 수 없으니까,
세세생생에 보살도를 행하겠다 는 서원을 이루려면 거기 가서 능력을 양성해서
다시 이 세계에 나와야겠다는 원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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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공부하시는 여러 도반여러분들께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해서 퍼왔습니다.  본문 내용중에서는 염불수행의 공덕과 위대함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어떤 수행인들 그 공덕이 적겠습니까만 쉽게 할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 올려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생에는 힘드니 내생(극락)에서 더 닦겠다라는 마음가짐보다는 이생에서 점을 찍고 끝을 보겠다는 마음이 더 필요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마음을 조급하게 하거나 성급하게 먹으면 오히려 장애가 되니... 참 제가 말씀드리면서도 한편 걱정도 좀 됩니다. 어떤 글이든지 매이면 업이 되고 뛰어넘으면 도가 되니 읽고 이해되면 붙들지 않는것이 현명한 자의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염불의 공덕이야 모르시는 분들이 없을듯하고... 수행 방법상 염불이 같은 장점을 잠깐 말씀드리자면 1)생활하는동안 늘 염불을 마음에 두어야하는 고로 24시간 깨어있는 방편이 됩니다.  하루에 잠깐잠깐 시간내서 하는 공부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 해보신 분들은 느끼실 것입니다. ^^)  2) 염불을 하다가 잡념이나 망상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염불로 되돌아 오게 하는 능력이 커집니다.  즉 알아차리는 수행이 저절로 됩니다.   3) 염불을 지극히 하다보면 마음이 아주 고요한 정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마음이 정해져야 지혜가 나오는 법입니다.  염불일념이라고도 하는데요.  열심히 해보신분들은 잘 아실줄로 생각됩니다.  정은 혜를 키우고 혜가 또 정을 키우니 염불일념 수행의 장점이 아주 크다 하겠습니다.  물론 최종적인 것은 일념에서 무념,공으로 들어가는 상태이고 이것은 그냥 멍하게 또는 눈감고 지극한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속에서 여여하게 생활은 생활대로 하면서 그런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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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님 가족 41명의 출가 동기



[일타스님 글]

나의 외증조할머니는 여든여덟의 나이로 돌아가실 때까지
'나무아미타불'염불을 한결같이 하였다

살아 생전에도 가끔식 신통력을 보였던 외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7 일장(七日葬)을 지내는 동안 매일같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다 낮에는 햇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밤이 되면 그 빛을 본 사람들이 '불이 났다'며
물통을 들고 달려오기를 매일같이 하였다

그리고 문상객으로 붐비는 집안 역시
불을 켜지 않아도 대낮같이 밝았다

그야말로 외증조 할머니는 염불을 통하여 아미타부처님의
무량한 빛을 얻었고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한 우리집안
친가와 외가의 41 인은 모두 승려가 되었다

한결같은 염불정진!

그 결과는 반드시 우리를 불국정토에 머물 수 있게 한다
한결같이 염불정진하는 분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부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


◈ 일타스님 가족 41명의 출가 동기 ◈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

[일타 큰스님의 글]


나의 가족은 친가*외가를 모두 합하여 모두 41명이
승려가 되었습니다. 이 41명의 출가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일족의 출가 이후 가장 많은 숫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41명의 출가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인가?
아닙니다. 나의 외증조할머니인 이평등월(李平等月)
보살의 기도와 입적(入寂), 그리고 방광의 이적(異蹟)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안성이씨(安城李氏) 평등월 보살은 일찍이 우리 나라
제일의 양반으로 치던 광산 김씨(光山金氏) 집안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녀는 남편 김영인(金永仁)의 아낌없는 사랑 속에서
삼형제를 낳아 기르며, 학식있는 양반집 안방마님으로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60이 조금 지났을 때 갑자기 불행
닥쳐왔습니다. 남편이 남의 빚보증을 섰다가 대부분의
재산을 날려 버렸고, 연이어 시름시름 앓던 남편은
끝내 저 세상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평등월 보살이 실의(失意)에 잠겨 해어나지 못하고
있자. 이미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던 만수(萬洙)
* 완수(完洙) * 은수(恩洙) 세 아들은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습니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우리가 양반이라고 마냥
이렇게 살 것이 아니다. 노력하여 돈을 벌어야 한다."
이렇게 결의한 세 아들은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염려 마십시오. 이제부터
저희들이 집안을 꾸려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목화를 솜으로
만드는 솜틀기계 한 대를 일본에서 구입하였습니다.
기계를 발로 밟으면서 목화를 집어 넣으면 껍질은
껍질대로, 씨는 씨대로 나오고 솜은 잘 타져서 이불짝
처럼 빠져 나오는 당시로서는 최신식 기계였습니다.

이렇게 공주 시내 한복판의 시장에다 솜틀공장을 차린
삼형제는 작업복을 입고 하루 여덟시간씩 3교대로 직접
솜틀기계를 돌렸습니다.
기계는 24시간 멈출 때가 없었습니다.

공주 사람들은 그 솜틀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공주도 이제 개명을 하는구나." 하면서
'공주개명(公州開明)! 공주개명!'을 외쳤습니다.
마침내 공주 주변에서 생산되는 목화는 모두 이
공장으로 들어왔고, 산더미같이 쌓인 목화가 솜이 되어
나오는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집안에는 돈이
쌓여 갔습니다.

월말이 되면 삼형제는 한 달 번 돈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세 몫이 아니라 네 몫으로 나누었습니다.
남는 한 몫은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바로 어머니 평등월 보살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머니께 직접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한 달 동안 '삼형제 중 누구 집에 며칠을
계셨느냐'에 따라 그 집에 직접 분배를 하는것입니다.
막내아들 집에 열흘을 계셨으면 3분의 1을 막내아들
집에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며느리들은 서로
시어머니를 잘 모시기 위해 갖은 정성을 다 우렸습니다.

집집마다 어머니 방을 따로 마련하여 항상 깨끗하게
꾸며 놓았고,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으로 최고의
호강을 시켜드렸습니다. 때때로 절에 가신다고 하면
서로 시주할 돈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이 집안은 공주 제일의 효자 집안으로 소문이
났고, 벌어 들인 돈으 로는 논 백 마지기를 다시
사들이기까지 하였습니다.

평등월 보살은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매일을 평안함과 기쁨속에서 지내던 할머니가
막내아들 집에 가 있던 어느 날, 한 비구니스님이
탁발을 하러 왔습니다.

그 스님을 보자 할머니는 눈앞이 밝아지는 듯했습니다.
"아! 어쩌면 저렇게도 잘생겼을까? 마치 관세음보살님
같구나." 크게 반한 할머니는 집안에서 가장 큰
바구니에다 쌀을 가득 퍼서 스님의 걸망에 부어
드렸습니다. 그때까지 비구니 스님은 할머니를 조용히
보고만 있다가 불쑥 말을 했었습니다.

"할머니! 요즘 세상사는 재미가 아주 좋은 신가 보지요?"
"아, 좋다마다요. 우리 아들 삼형제가 모두 효자라서
얼마나 잘해 주는지....... 스님. 제 말 좀 들어 보실래요?"
할머니는 신이 나서 아들 자랑을 시작했고, 며느리
자랑, 손자 자랑까지 일사천리로 늘어놓았습니다.

마침내 할머니의 자랑은 끝내 이르렀고, 장시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스님은 힘주어 말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세상일에 애착을 많이 가지면
죽어서 업(業)이 됩니다."
"업?"
충청도 사람들은 '죽어서 업이 된다'고 하면 구렁이가
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죽어서 큰 구렁이가 되어 고방(庫房) 안의 쌀독을 칭칭
감고 있는 업! 할머니는 그 '업'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는 것 같았 습니다.

"아이구 스님! 어떻게 하면 업이 되지 않겠습니까?"
"벌써 업이 다 되어 가는데 뭐.......... 지금 와서
나에게 물은들 뭐하겠소?"
스님은 벼랑을 짊어지고 돌아서서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업만은 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5리, 10리 길을
쫓아가면서 스님께 사정을 했습니다.

"스님, 제발 하룻밤만 저희 집에 머무르시면서 업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간청에 못이겨 다시 집으로 온
스님은 할머니가 이끄는 대로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윗목에서 벽을 향해 앉아 말 한마디 없이
밤을 새웠고, 할머니 역시 스님의 등뒤에 앉아 속으로만
기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발 업이 되지 않는 방법을 일러주십시오. 제발....."

마침내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스님은 할머니 쪽으로
돌아앉았습니다.
"정말 업이 되기 싫소?"
"아이구. 제가 업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스님. 절대로 안됩니다. 인도환생(人道還生)하든지
극락세계에 가도록 해주십시오."

"정말 업이 되기 싫고 극락에 가기를 원하면 오늘부터
행실을 바꾸어야 하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부터 발은 절대로 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고,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만 부르고,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친견하여 극락에 가기만을 기원하시오."

스님의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씀은 몸단속을
하라는 것이고, 나무아 미타불을 불러라'는 것은 입을
단속. '일심으로 극락왕생할 것을 기원하라'는 것은
생각 단속입니다.

곧 몸[身]과 입[口]과 생각[意]의 삼업(三業)이 하나가
되게 염불할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스님. 다시 한번 자세히 일러주십시오."

"보살님 나이가 70이 다 되었는데,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소? 돌아가실 날까지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면 업 같은 것은 십만 팔천 리 밖으로 도망가
버리고, 극락세계에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첫째나 둘째 아들집에도 가지 말고,
이웃집에도 놀러가지 마십시오. 찾아오는 사람에게
집안 자랑하지도 말고. 오직 이 집에서 이 방을
차지하고앉아 죽을 주면 죽을 먹고 밥을 주면 밥을
먹으면서 '나무아미타불'만 외우십시오. 그리고
생각으로는 극락 가기를 발원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까?"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머니는 다짐을 하면서 큰절을 올렸고, 스님은 옆에
놓아두었던 삿갓을 들고 일어서서 벽에다 건 다음
슬며시 방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걸망도 그대로 둔 채.....
'변소에 가시나 보다.'
그러나 한번 나간 스님은 영영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사람을 풀어 온 동네를 찾아보게 하였으나 '보았다'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아! 그분은 문수보살님이 틀림없다. 문수보살님께서
나를 발심시키기 위해 오신 것이 분명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욱 발심(發心)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방의 가장 좋은 위치에 스님의 삿갓과 걸망을
걸어 놓고, 아침에 눈만 뜨면 몇 차례 절을 올린 다음
'나무아미타불'만 불렀습니다.

어느덧 할머니는 앞일을 내다보는 신통력(神通力)이
생겼습니다. "어멈아! 오늘 손님이 다섯 온다. 밥 다섯
그릇 더 준비해라." 과연 끼니때가 되자 손님 다섯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루는 막내아들을 불러 각별히 당부하였습니다.
"얘야. 너희들 공장에 화기(火氣)가 미치고 있다.
오늘은 기계를 돌리지 말고 물을 많이 준비해 놓아라.
위험하다." 그 말씀대로 세 아들은 아침부터 솜틀기계를
멈추고 물통준비와 인화물질 제거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바로 옆집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옆집 불을 껐습니다.
만약 목화 솜에 불이 옮겨 붙었다면 솜틀공장은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하였을 것입니다.
다행히 할머니의 예언으로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웃 집의 피해까지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도 외증조할머니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손녀인 어머니가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외증조할머니는 큰아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30리 가량 가면 구름내[雲川]라는
마을이 있다.

김창석 씨네 둘째 아들과 네 딸 상남(上男)이와는
인연이 있으니, 찾아가서 혼사(婚事)를 이야기해
보아라." 이렇게 외증조할머니는 가 보지도 않고
신통력으로 나의 부모님을 결혼시켰습니다.

마침내 주위에서는 외증조할머니를 일컬어 '생불(生佛)
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외증조할머니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지 않고 '문수보살'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런 변화를 걱정한 아들 삼형제는 인근 마곡사의
태허(太虛: 鏡虛대선사의 사형) 스님을 찾아가
상의했습니다. "문수보살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10년 동안이나 아미타불을 불렀으면 끝까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앞일을 자꾸 예언하다 보면 자칫 마섭(魔攝)이
될 수도 있다.내가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라는
글을 써 줄 테니 벽에 붙여 놓고 '나무아미타불'을
항상 부르도록 말씀드려라."

常放大光明! 언제나 대광명을 뿜어낸다는 이 글을
보면서 할머니는 다시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불렀습니다.그리고 앞일에 대한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염불기도를 하다가 할머니는 88세의
나이로 입적(入寂)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야말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7일장(七日葬)을 지내는 동안 매일같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낮에는 햇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밤만 되면
그 빛을 본 사람들이 '불이 났다'며 물통을 들고
달려오기를 매일같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상객으로 붐비는 집안 역시 불을 켜지 않아도
대낮같이 밝았습니다.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

그야말로 외증조할머니는 염불기도를 통하여
상방대광명을 이루었고,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한 가족들은 그 뒤
차례로 출가하여, 우리 집안 친가*외가 41인
모두는 승려가 되었습니다.

몸과 말과 뜻을 하나로 모아 염불하고 기도하는 공덕.
그 공덕을 어찌 작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님의 불가사의가 어찌 없다고 하겠습니까?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기도는 우리 집안을 불심(佛心)으로
가득 채웠고,

41명 모두를 '중노릇 충실히 하는 승려'로 바꾸어 놓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


~~아래는 신문기사 내용~

일타스님,염불 영험담수록 「기도」펴내

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 日陀스님이 자신과 주위
사람및 옛 선사(禪師 )들의 기도 성취 영험담을 모은 책
「기도(祈禱)」를 펴냈다.

전계대화상은 조계종 소속으로 출가하는 모든 승려에게
계(戒)를 주는 원로스님으로 청정계율을 지킨 승려만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영예로운 직책이다.

1929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한 스님은 13세때 출가,
일평생 참선정진과 중생교화에 만 몰두한 수행승으로
유명하다.

친가와 외가를 합쳐 모두 41명이 출가한 얘기며 20 대에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매일 3천배씩 7일동안 기도를
드린뒤 오른 손 네손가락 열두마디를 모두 불태워 버린
일화는 지금도 불가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일타스님은 자신의 저서에서 『외증조할머니인
李平等月 보살이 10년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기도를 한 끝에 「생불(生佛)」로
불리다가 세상을 뜨자 7일간 불을 밝히지 않아도

집안을 대낮같이 밝히는 방광(放光)
현상이 나타났었다』고 회고하면서 『이를 직접 체험한
가족들이 차례로 출가, 결국 석가모니 이후 한 집에서
가장 많은 출가자를 내게됐다』고 말했다.

손가락 연비(燃臂)에 대해서도 스님은 『손가락이
없으면 세속적인 모든 생각이 저절로 뚝 끊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세 명예 행복등 세속적 미련을
손가락과 함께 태워버렸다』면서

『연비후 홀로 태백산 도솔 암으로 들어가 6년동안
조그마한 갈등도 없이 참선 정진했던 시절은
일평생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옛 선사들의 기도에 얽힌 얘기와 1백만배(拜)로
원력(願力)을 이룬 제자 慧印스님, 7일간 3천배로
운동권 아들의 마음을 돌려 법조인으로 만든 보살등
평범 한 이들의 기도 성취담도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도서출판 효림 간행.〈吳明哲〉

[동아일보] 1995-11-12 (문화) 뉴스 15면

ps : 기도는 누가 누구한테 하는 것인지요?  하는 것과 받는 것이 생기면 벌써 둘이 되니 멀어집니다.

모든 것을 하나로 자신안으로 돌려서 일체경계가 다 나한테서 비롯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을 할때 부처가 내 밖에서 있다고 생각하여 밖에서 아미타불을 찾으시면 안되고 내안

을 관하면서 내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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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1-2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처음 발심할때 일타스님의 책이 쉽고도 친근한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기도라는 책, 사서 봐야겠네요. ......()........
 

장서인 ( 북-스탬프) 잘 모르시는 분들 많으시죠?

보통 책을 사면 제일 앞부분 표지에 책을 산 날짜와 서명과 가벼운 소감같은걸 적는 분들 많으시죠?

그때 자기 자신만을 표현하는 장서인, 즉 도장을 찍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활달하게

발달하지 않았고 취급하는 곳도 적지만 한곳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좀더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나는 작품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해요.

장서인...

책을 좋아하시는 매니아시라면 하나쯤 갖고 계시면 마음 뿌듯할때가 있습니다.

http://www.stamp-house.co.kr/stampshop/main.cgi?board=stamp_bookplate   한번들어가셔서

이것 저것 둘러보시면 도움되실듯 합니다.

그럼 즐거운 독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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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한 여인이 말했다.

저희에게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는 말했다.

 

그대들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들의 아이는 아닌 것.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 그대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들이란 그대들의 소유는 아닌 것을.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들의 생각까지 줄 순 없다.

 

왜? 아이들은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가졌으므로.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마저 줄 순 없다.

왜?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들은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가 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그대들 아이들과 같이 되려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들과 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왜? 삶이란 결코 뒤로 되돌아가진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도 않는 것이므로.

 

그대들은 활

그대들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 있는 화살처럼

그대들로부터 앞으로 쏘아져 나아간다

그리하여 사수이신 신은

무한의 길 위에 한 표적을 겨누고

그분의 온 힘으로 그대들을 구부리는 것이다

그분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그대들 사수이신 신의 손길로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왜?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는 만큼

또한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시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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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편이 분할때 맞서지 마라.

  2. 아내의 좋은 점은 자주 칭찬해 주어라.

  3. 밖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첫 말을 조심하라.

  4. 아내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메모하여 기억해 두어라.

  5. 남편의 호주머니를 뒤지지 마라.

  6. 아내의 실수가 남편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라.

  7. 남편을 존경하며 반주 한잔 대접 할 줄 아는 아내가 되라.

  8.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에는 늘 신경을 쓰라.

  9. 퇴근후 1 차, 2 차 가정 불화 시초니라.

  10. 남편의 의복에 때가 묻은 것은 아내의 책임이다.

  11. 남편의 말투가 거친 것은 아내의 책임이다.

  12. 자기 남편과 자기 아내를 남과 비교하여 말하지 마라.

  13. 따뜻한 한마디 대화가 자녀에게 미래의 꿈을 준다.

  14. 여가 있는 생활과 부부만의 생활을 자주 가져라.

  15. 아내는 밝은 표정 남편은 애정이 담긴 눈길을 보내라.

  16. 즐거운 대화는 많이하고 언짢은 예기는 짧게 하라.

  17. 평소 아내의 옷차림과 외모에 관심을 보이고 그 느낌을 표현하라.
  18. 아내가 만든 음식에 대해 말이나 행동으로 칭찬과 감사를 표현하라.

  19. 모든 일을 항상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와 의논하고 결정하는 습관을 기르라.

  20.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솔한 농담이나 행동을 삼가하라.

  21. 가정 불화시 남편은 한걸음 아내에게 양보하라. 아내의 매력이 사랑스러움이라면 남편의 매력은 너그러움이다.

  22. 가정 경제는 아내에게 일임하여 아내가 가정 생활 속에서 보람을 갖게 하라.

  23. 아내의 개성과 취미를 존중해 주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고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라.

PS : 1) 언젠가 좋아서 갈무리해 두었던 것인데 한번 올려 봅니다. ^^  가만히 읽어보면 누가썼는지 정말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2) 물러서지 않는 믿음 - 무조건 믿고 들어가라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왜냐? 본래 있는 것이니 발견하라고 했지, 있느니 없느니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분별하고 머리 굴려서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따지다가는 관념에 박혀서 그걸 지우기가 무척 어렵게 됩니다. 그러니까 무조건입니다. 무조건.

자기를 발견하는 공부는 이론으로나 강의로 되는 공부가 아닙니다.  믿음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입니다. 모든것을 일임하지 않거나 두려운 마음이어서는 안됩니다. 내 육신까지도 내던진다는 그런 믿음이어야 합니다.  - 대행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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