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서재의 달인이 되었다. 하반기만 반짝 팠지만 어쨌든 올해는 나름 열심히 읽고 열심히 썼으므로 기꺼이 스스로를 칭찬한다. 자식, 참 잘했어요. 그나저나 작년에는 무슨 수로 서재의 달인을 달았던 걸까?
유종의 미를 거두면 참 좋았겠는데 사실은 지금 며칠째 책 한 장을 못 읽고 있다. 한 번 내려놓으니까 손이 아예 안 간다. 이렇게 책 줄이는 일이 쉬웠는데 그간 왜 못했던 걸까. 다음 주부터는 독서생활 대신 독거생활이 시작될 예정이다. 슬기로운 독거생활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평소같으면 말일까지 기다렸다가 정리 포스팅을 했겠으나 이런 식이면 별 의미가 없겠다. 어차피 더 읽을 것 같지도, 읽어질 것 같지도 않으니 올해의 독서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공부로 불타는 한 해를 맞이하고자 한다.
171209-171228 30권
1. 싱글맨
: 이셔우드의 책들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책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좋은 책 같다. '조지'의 이 하루를 빚기 위해 몇십 년을 또다른 조지로 살고 생각하고 글을 썼던 이셔우드의 조금은 지친 눈빛이 책 너머에서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
2. 사상 최강의 철학 입문
: 야무차는 철학 입문서 분야에서는 썩 믿을 만한 저자다. 일단 기본적으로 서술 자체에 재미가 탑재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처럼 이것만 알면 3분만에 뭘 할 수 있다는 둥, 거래처에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둥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겠다.
3. 러시아 혁명사 강의
: 러시아 혁명에 대한 개설도 물론 좋지만, 그 후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다양한 운동들을 얕게나마 알려주는 데에 큰 매력이 있다. 박노자는 사랑이고, 그간 그의 다른 책들에 비하면 오히려 이 책은 상당히 온건한다는 느낌인데.
4. 동성애 is
: 길게 언급할 가치도 없는 최고의 쓰레기. 숫자로 호도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우선, 위생의 문제는 그야말로 위생적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한 이야기고. 사랑과 섹스를 불가분으로 생각하며, 섹스하면 당연히 삽입성교를 떠올리므로 사랑은 불가피하게 삽입성교라는 결론을 낸 당신의 남근주의적 사고에 대한 비난은 차치하고, 댁의 말대로 정말로 에이즈 감염이 동성간 성교와 깊은 관련이 있고, 에이즈가 정말로 동성애를 절멸시켜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쳤을 때, 이성간 성교도 에이즈를 옮기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럼 댁은 댁의 바람대로 동성애가 완전히 절멸되고 이제 에이즈를 옮기는 성교 양식이 이성간 성교 말고는 남지 않은 상황이 오면, 그때 같은 논리로 이성애도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할 셈이신지? 종이. 나무. 산소. 제발 지구 생태 공동체에 파괴적 영향만 끼치는 쓰레기는 만들지 말자. 그것도 크나큰 죄입니다.
5. 철학 읽는 힘
: 예전에 깠던 책. 야무차와 비교해 보려고 슬슬 넘겨가며 한 번 다시 읽어봤지만, 추천할 일은 여전히 없겠네요.
6. 아저씨 도감
: 이 땅이나 저 땅이나 아저씨들이란. 천년만년 이 도감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살겠다는 건 아무래도 이루기 어려운 꿈일 듯.
7.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 어쩐지 다른 독자들은 일기와 산문은 감점이지만, <도쿄 이야기> 각본으로 만회하고 남음이 있다는 감상이지만, syo의 눈에는 일기도 참 좋다. 포탄 떨어지는데 하루도 거름 없이 매일 일기를 쓰는 오즈는 사실 영화를 잘 모르는 syo에겐 거의 미지의 인물이지만, 읽고 보니 어쩐지 농담 잘 하지만 만만하게 보고 깝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매서운 남자일 것 같다. 뱉어 놓고 보니 아무 말이네.
8. HOW TO READ 푸코
: 바야흐로 푸코에 덤벙 빠져들 때인가...... 몸에 물 묻히고 팔다리도 풀고 깊은 물에 들어가야 하니까, 그럴 땐 이 책입니다.
9. 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
: 잘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삐끗했는데, 끈질기게 다시 돌아가 읽어내고 싶지가 않았다. 입문서로는 그다지 좋지가 않고. 입문서로 좋은 책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 이해가 쉬운 책이지, 다 아는 사람이 보았을 때 이건 기초적 개념들 모아놓은 거니까 초보들이 읽으면 되겠구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은 아니니까. 사실 누구도 이 책을 입문서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이 함정이긴 합니다만......
10. 우리는 어떻게 북소믈리에가 될까
: 다시 봐도 함량 미달이네요.
11. 그 개와 같은 말
: 신간이 나오면 책꽂이에 꼬박꼬박 채워 넣을 작가인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중. 작가도 좀 더 자라고, syo는 더 많이 자라서,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12. 은유가 된 독자
: 내가 책 좀 읽는다, 그래서 세상이 나를 똑똑하다고 칭찬한다, 하신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가 책을 좀 많이 읽는다, 그래서 세상이 나더러 멍청하다고 타박한다, 하신다면 당신을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책바보(책을 사랑하는 독자는 책바보가 되고) 만세! 책벌레(책에 걸신들린 독자는 책벌레가 된다) 만세!
13. 오독
: C. S. 루이스가 이런 사람이었나 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에다, 심지어 마음 따뜻해지는 존댓말 체, 분량도 그리 두툼하지 않은 그런 책인데, 왜 이렇게 절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을까. 안 맞아서 그렇지 뭐.
14. 그래서 오늘 나는 외국어를 시작했다.
: 와, 이런 사람이 있구나, 그러고 끝.
15. 헬페미니스트 선언
: 역시 어렵다. 페미니즘은 어렵고, 남자한텐 더 어렵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일은 갈수록 쉽지 않고, 심지어는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을 나누는 일도 만만치 않고. 꾸준하고 묵묵히 갈 수밖에.
16.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
: 정말 '작은' 역사다. 좋은 역사책 좀 더 있고, 이 분량 이 함량에 13000원은 아무래도 좀 너무했네.
17. 정신분석의 근본 개념 7가지
: 고등학교 때, <누드 교과서>라는 놈이 나타나 히트를 쳤다. 교과서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하다는 편견과 맞서서 존댓말 구어체로 말랑말랑하게 구성한 좋은 참고서였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라믄 뭐하겠노. 쌈 잘하는 놈 주먹은 그놈을 벗겨놓고 맞아도 아프듯이, 어려운 과목은 누드를 만들어도 어렵다.
18. 그래픽 평전 스피노자
: 사실 스티븐 내들러의 스피노자 평전이 있긴 한데, 걔는 알차지만 좀 지루한 감이 있다. 게다가 종이 질도 별로고. 이 짧은 만화 평전 한 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스피노자의 저작을 읽는 일이겠다.
19. 질문하는 책들
: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이동진이 내는 책이 정말 내겐 거의 필요가 없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이..... 문제도 안 보고 해답지만 읽는 기분이었다.
20. 하룻밤의 지식여행 : 페미니즘
: 도서관 서가에 꽂혔길래 툭 꺼내서 읽어 보았다. 25년 전 책. 자꾸 하룻밤에 뭘 해치울려고 하면 안 되는 건데.
21. 나혼자 끝내는 독학 일본어 문법
22. 시사인 534
23. 세상을 뒤흔든 사상
: 읽을 책만 한 250권 늘었다. 근심도 늘고 한숨도 같이 늘었다. 지성은 안 늘고 주름만 는다.
24.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1
: 이런 책 좀 더 있으면 좋겠다. 숲노래님의 꾸준한 활약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25.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 미셸 푸코의 한계 지점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진짜 목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사상의 국경선이 어디인지 짚어내기 위해서는 그 사상의 곳곳을 두루 다녀볼 필요가 있을테니, 그래서 이 책이 입문서로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26. 자기만의 방
: 1장을 겨우겨우 넘겼더니 2장부터는 미끄러지듯 읽힌다. 한 권 샀다. 아직 이 책이 없었다니.....
27.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 실컷 웃었다. 간혹 부적절한 농담 있었고, 그렇게 평가되는 것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겠지만, 그건 좋은 일이다.
28. 언니들의 페미니즘
: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요......
29. 패러데이와 맥스웰
: 학창시절, 이 사람들 덕분에 공짜로 참 많이 늙을 수 있었다. 그들도 태생이 완성형 괴물은 아니며 그들 역시 푸릇푸릇한 시절, 개고생 딥빡하던 시절이 었었다는 것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그 사실이 왜 이리 놀라울까.
30. 미셸 푸코, 1926-1984
: 와, 어렵다. 이제 푸코를 좀 알아가고 싶으시다던 고양이라디오님께 추천했는데, 또 추천 헛발질. syo는 역시 추천똥볼러.
올해 5월, 그간 읽어놓은 목록들을 전부 삭제하고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시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북플은 syo가 이렇게 읽었다고 말한다.
201705 : 60권
201706 : 83권
201707 : 81권
201708 : 106권
201709 : 126권
201710 : 95권
201711 : 70권
201712 : 6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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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689권
한 달 86권 페이스였는데 이렇게 12달을 채웠다면 1032권을 읽을 수 있었겠다. 꿈의 연 1000권. 독하게 마음만 먹으면 하루 중 23시간 30분 정도를 독서에만 쓸 수도 있었던 여유로운 백수생활과, 친구 없고 돈 없는 방구석 생활양식에 이 영광을 돌린다. 물론 저 689권 안에는 만화책에, 입문서에, 100쪽도 안되는 책들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읽은 권수만 늘리려는 목적을 가진 인간이라면 취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얍삽이가 골고루 들어있었으므로, 실질 독서량이 얼마인지 가늠하기는 어려워도 저것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은 자명하다. 실제로 2017년 5월 이전의 syo를 떠올려 보면, 지금 그다지 나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평생 다시는 이 페이스로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기록에 남긴다. 2017년은 syo에게, 여전히 뭐 하나 갖춘 것도 이룬 것도 없이 또 한줌 늙어가는데 탕진한 한 해였지만, 그런 가운데 어쨌든 읽을만큼 읽어 봤다는 것, 하자고 들면 한 해 천 권도 읽을 수 있는 무지막지한 놈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했다는 것, 돈 한푼 못 벌어들이는 syo는 자본주의의 안경으로 보면 그야말로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지만, 그 안경을 벗고 봤을 때도 여전히 쓰레기로 보이는 핵노답 구제불능까지는 아니라는 것, 뭐 그런 것들을 얻어 가진 뜨뜻한 한 해로 기억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