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많은 독서인들의 입에서 탄성 혹은 탄식을 자아내며 가즈오 이시구로가 2017년 노벨 문학상의 월계관을 썼다. 민음사만 노났다. 모르긴 몰라도, 고은보다 이시구로 쪽이 더 짭짤했을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만인보가 날개돋힌 듯 팔려 창비가 춤을 췄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팔린다고 다 읽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syo는 읽어야했다. 응구기를 밀어내고, 무라카미를 자빠트리고, 고은을 한 해 더 귀찮게 하고, 쿤데라로 하여금 불로초라도 찾아다녀야 하나 고민하게 만든 이시구로를,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에. 일단 "가즈오"와 "이시구로"중 뭐가 성인지도 모르는 판이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중요한 문제였다. 표지에는 "가즈오 이시구로"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만약 "가즈오"가 성이라면, 그건 출판사에서 이 사람을 태생에 맞춰 일본인으로, 작품을 일본계로 봤다는 뜻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라카미가 성이다. 반면, "이시구로"가 성이라면 이건 또 작가와 작품을 영미계열로 인정한다는 뜻이 된다. 매거릿 애트우드는 성이 애트우드다. 좀 대중적인 다나카랄지, 사토랄지 그랬다면 보자마자 눈치를 챘을 텐데. 가즈오와 이시구로라니.....


정답은 이시구로다. 그러니까, 글로벌 기준에서 보면 우리가 무라카미를 하루키, 하루키 부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거나 있지도 않은 친분을 과시하려고 주접떠는 걸로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이시구로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면, 가즈오라고 부르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길게 쓰고 있나,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기본적으로 이시구로는 영국 작가다. 그리고 읽어보면 알겠지만, 철저하게 서구 스타일이다. 심지어 영국도 아니고 독일이나 프랑스 느낌에 가깝다. 사실 syo가 온 세상 모든 소설을 읽어본 것이 아니라 이건 일본, 저건 영국, 요건 프랑스 하며 딱딱 발라놓을 능력도 의사도 없지만, 작가 이름과 사진을 가리면 일본 태생의 작가가 썼음을 알 수 없을 거라는 이시구로의 말에는 100% 동의한다. 무라카미만 해도 일본문단에서 이건 영미문학 짝퉁이라는 비난을 배부르게 먹으며 쑥쑥 자랐는데, 솔직히 syo의 허술한 눈으로 볼 때 무라카미랑 대 놓으면 이시구로쪽이 훨씬 일본색이 덜하다. 제인 오스틴과 카프카, 프루스트를 냄비에 넣고 요리조리 지지고 볶고 끓이고 하면 이시구로가 나온다는 레시피는, 전문 셰프가 아니라 그냥 한끼 뚝딱할 메뉴로 이시구로를 골라본 syo같은 무지렁이에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분석이다. 그래서 더더욱, 다들 아니라고 하고, 본인도 아니라고 하고, syo같은 무지렁이 눈에도 아닌 것 같은 이시구로의 작품 속 "일본성"을 기를 쓰고 찾아내, 일본적인 것을 말하고, 일본 문화의 영역과 어떻게든 연관지으려는 사람들의 희한한 분류중독을 syo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일본인들이야 그럴 수 있고 그러고 싶겠지만, 우리까지 왜 굳이? "제인 오스틴(영국)+프루스트(프랑스)+카프카(독일) = 이시구로(일본)" 이라는 공식은 괄호들만 싹 빼면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괄호를 다는 순간 여러모로 똥이 된다. 소설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언어가 미치는 영향은 나머지 다른 요소들이 미치는 영향의 총합과 비등비등할텐데, 일본어를 하지도 못하는 영국 소설가에게 그가 일본 태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핏속에 흐르는 일본 문화의 영향을 짐작하다니..... 일본어는 못하지만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향을 받았으니 일본 문화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아사히 신문의 태도를 보고 있으면 문화로라도 세계를 정복하고 싶은 욕심이 커지면 저런 널을 다 뛰게 되는구나 싶을 정도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하여간, 2주 좀 넘게 들여 국내에 들어온 이시구로의 책 8종 9권을 읽었다. 굳이 출간순으로 한번 읽어 보았다. 어떻게 최대한 스토리를 언급하지 않고 책 이야기를 해야하나 고민입니다.





< 창백한 언덕 풍경(1982) >


재미있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더 재미있을 수도 있었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그걸 한 번 짐작해보는 것이 곧바로 이 소설의 매력, 이 작가의 필력과 닿아있다.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것을 말한다. 독자는 인물들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공간에 능동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 그러니까 이시구로가 보여주는 것은 정말로 멀리 떨어진 어떤 언덕의 창백한 풍경 같다. 텅 비어 있는 황량한 언덕 꼭대기로 하나의 사건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는데, 채 의미를 다 알려주지도 않고 얼른 사라진다. 이내 언덕은 다시 정적에 잠긴다. 잠시 후에, 맥락에 크게 의존하지 않은 또 다른 사건이나 인물이 언덕 위에 나타나 어떤 몸짓을 남기더니 다시 언덕 너머로 사라진다. 언덕 아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도록 위치 잡힌 우리는 처음 나타난 것과 그 후에 나타난 것 사이에 있을 무언가를 꿰어 맞히는데 골몰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라고, 이 책을 읽은 당일 기록해놨는데, 그때만 해도 이런 기억의 숨바꼭질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전작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이 특징은 책의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것이었다. 


지금에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기법이지만, 이 책이 쓰인 35년 전에도 그랬을까. 더 재미있을 수도 있었다는 말은 결국 이렇게 풀이할 수도 있겠다. 작가가 고깃덩어리를 던져주면 독자는 살을 실컷 즐기고 나서 뼈대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이시구로는 뼈를 던진다. 그래서 독자는 그 뼈에 붙어있었을 살들의 맛과 냄새를 상상하는 기회만 가지게 된다. 부디 그것만으로도 배부를 수 있는 독자들이 많기를. 날아오는 뼈에 얻어맞지 않고 무사히 기억을 재구성하시기를.





<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1986) >


화가는 비루하다. 마지막까지 반성을 모른다. 스스로 옳았음을 굳건히 믿고 있으나, 다음 세대가 부인하고 조롱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손자나 어르고 달래며 초라한 권위를 공모하는 뒷방 늙은이일 뿐이다. 무서운 장면에는 눈을 다 가리고 귀를 다 막은 채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고 겨우 버티더니, 영화관을 나오면서는 이모들은 여자라서 절대 이 영화를 볼 수 없을 거라며 거들먹거리는 꼬맹이 손자와, 그는 하나도 다르지 않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을 올곧게 밀고 나가는 행동은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믿음 자체가 나빴다면 세상은 반드시 그 책임을 묻는다.


'부유하는'이 수식하는 대상이 어디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의미가 있겠다. 작품 내에서 처음 "부유"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부유하는 세상을 그리는 예술과 그 세상을 무겁게 고정시키는 예술 사이의 대립을 드러내기 위해 그 말이 쓰이지만, 사실 그것은 이 책이 다루는 여러 주제들 중에서는 그다지 핵심적인 요소라고 보기가 어렵다. syo는 그것보다, 세상이 정말로 부유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싶다. 한때 '이것'이었던 우리는 그 자리를 꾸준히 지켰을 뿐인데도 세상이 부유하는 바람에 어느덧 '저것'이 되어있곤 한다. 물론 모든 흐름을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몰랐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이 아닌 것은 아니다. 윤리나 정의의 문제에서, 운 좋게도 우리에게 혜안이 있다면, 해야할 일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눈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이 와도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부유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화가다. 붓을 들어 어떤 그림을 그릴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린 그림이 세상에 피를 뿌렸다면, 우리가 그 붓을 꺾든 그렇지 않든, 세상이 우리를 꺾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잊지 말자고, 식민지 조선도, 베트남도, 광주도,





< 남아 있는 나날(1989) >


이시구로의 첫 세 작품, 하나같이 수상의 영광을 안은 이 세 작품은 사실 같은 작품이다. 주인공이나 서술자들은 모두 어리석고, 무지에서였건 의지에서였건 자신이 과거에 악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큰 뜻과 품위를 말하면서 어리석음을 가린다. 그러나 결국 세상이 그들을 가르친다. 그들의 삶은 귀퉁이부터 조금씩 깨져나가고, 이내 현재와 이빨이 맞지 않아 겉돈다. 모든 중대한 사건들은 이미 일어났으며, 그들은 회상할 뿐이다. 이제는 그 무엇도 바꾸기에 늦었다. 그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뿐.


세 권을 이어서 읽으면, 의식의 흐름을 연주하는 이시구로의 기량이 점차 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결정적인 순간들을 되짚는 서술자들의 미덥지 못한 기억 속에서 변형되었거나 왜곡되었을거라고 의심되는 사실의 파편들만이 독자들에게 던져지는데, 이런 기법은 과거의 영상을 비출 스크린을 현재의 자리에 어색하지 않게 설치할 줄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 이 책에 오면, 분명 엉뚱한 소리로 시작했는데, 홀려서 듣다 보면 어느덧 뼈대가 되는 기억 속으로 독자를 안내하고 있는 이시구로의 능란함이 아주 작두를 탄다.


syo는 첫 세 권 중 이 책에 가장 엄지를 높이 치켜들고 싶은데, 이시구로가 만든 캐릭터 안에 최초로 유머가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뼈집사'인 주인공은 눈치를 남김없이 팔아치워 그걸로 체면을 잔뜩 사들인 것 같은 인물인데, 여자 마음은 1도 모르는 상등신으로서, 지는 또 그게 다 품위라고 생각하는 구타 유발자다. 책을 읽는 내내 syo는 그의 명치를 노리곤 했는데, 저런 멍청함이 또 웃음 포인트로 작용할 때면 슬며시 주먹을 풀었다. 그렇게 syo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과정에서, 그의 멍청함이 그의 로맨스를 망치고 후회의 어두운 구석으로 그를 인도할 뿐 아니라, 거대한 악을 눈감는 일로 몰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이시구로는 능구렁이처럼 잘도 꿰어 보여준다. 공과 사가 각기 표면에 붙었다 이면에 붙었다 하는데, 심지어 그 표면과 이면 사이의 경계도 한껏 출렁인다. 한나 아렌트가 생전에 읽을 수 있었다면 참 좋아하지 않았을까?


이시구로의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가 지녀야 할 아주 당연한 시선 하나를 재확인할 수 있다. 서술자는 작가가 아니라는 것.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서술자의 입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서술자가 하지 않은 말, 하지 못한 말, 어떤 말을 하거나 하지 않기 위해 대는 핑계 속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이 모든 방식들을 동원해 캐낸 메시지도, 결국 마지막에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필터를 거쳐 하나의 생각이 된다는 것.





<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1995) >


장담할 수 있다. 가장 안 팔리고, 가장 안 읽히는 책일 것이다. 일단 1000페이에 달하는 두께 때문에 시도를 덜 하시는 것 같은데, 열어보면 더 깜짝들 놀라실 듯.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므로, 이 책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수 없겠다. 다만, 가즈오 이시구로의 모든 책을 다 읽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한번 그에게 도전할 일이 생긴다면, 이 책을 제일 먼저 손에 들 것 같다. 카프카 좀 읽고 와서. 아 왜 이시구로를 평할 때 카프카가 자꾸 나오나 했더니.


그러고 검색해보니, 거의 전문가의 냄새가 나는 어마어마한 리뷰가 이미 있다. 아이고, 죽었다 깨나도 저렇게는 못 쓰것다.....





< 우리가 고아였을 때(2000) >


이시구로의 책 안팎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탐정의 자리를 맡아야만 한다면, 그건 바로 syo와 여러분, 우리 독자들입니다. 주인공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탐정이지만 한번도 추리하지 않고 오직 우리에게 문제를 던지기만 한다. 이시구로의 작품은 항상, 앞으로 나가는 듯 뒤로 흘러간다.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서사의 방향이 전후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겪어야 하는 큼직한 사건들을 이미 겪은 상태고, 미래는 그저 그 사건의 가해자들을 평하하고 피해자들을 어르는 데 사용된다.


서술자가 제시하는 과거들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이시구로 소설의 큰 매력이다. 이시구로는 기억의 속성 혹은 속살을 냉정하게 노출한다. 흔들리고, 합성되고, 디테일이 깎여나가고, 아픔을 줄이거나 키우기 위해 변주되고. 서사의 무게추가 과거에 쏠려 있으므로, 결국은 소설 전체가 흔들리고, 합성되고, 변주되는 셈이다. 그러면 읽는 방법이 다양해진다. 해석이 열린다. 합의되는 스토리가 있을 것도 같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요? 하며 이의를 제기해 온다면, 결코 합의된 바를 종용할 수 없는 그야말로 기억의 소설.


인간이 저지른 거악을, 그에 휘말린 개인의 여정을 통해 슬며시 에둘러 보여주는 그의 솜씨는 오롯이 문장에서 시작된다. 건조한 듯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힘을 다 뺀 것 같지만 오히려 힘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진폭이 낮고 파장이 긴 문장. 일단 한 번 책을 덮었다 다시 들춰보면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굵은 문장.





< 나를 보내지 마(2005) >


이시구로는 천생 순문학작가다. 탐정이 나와도 추리소설이 아니고, 과학 소설이나 판타지의 품을 빌려와도 SF가 아니다. 왜냐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착각하기를, 이건 정말 좋은 작품이면서 재미도 있어- 라고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 최곤줄 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재미는 없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정말 위대하다. 인간은, 재미없게 읽은 작품을 인정하기가 쉬운 동물이 아니므로. 특별히 이 책이 재미가 없다는 말이냐고 물으신다면 긍정과 부정의 가운데쯤 syo는 서겠다.『데미안』,『호밀밭의 파수꾼』,『젊은 예술가의 초상』,『마의 산』. 이것들이 syo가 좋은 책이라고 인정한 것들 중, 이 책『나를 보내지 마』 와 필적할만큼 재미가 없었던 작품들이다.


더 많은 이름들을 나열할 수도 있었지만, 일단 저 네 개의 이름이 먼저 떠오른 것은, syo가 이 책을 일종의 성장소설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미세한 마음의 요동을 캐치하고, 얼핏 보면 이해 못하기가 십상인 행동들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능력은 재능이다. 나는 이시구로가 뽐냈다고 본다. 여전히 의식의 흐름에 따라 사건의 배열이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과정에서, 정말 갑자기 툭 이질적인 단어들이 튀어나오면서 독자들을 당황시킨다. 내가 뭘 놓쳤나? 서술자는 아침 먹었으면 점심 먹어야 되는 수준의 당연함이 우리 사이에 깔려있음을 전제하고 기증, 근원자, 복제품 같은 단어들을 내뱉는다. 3라운드 내내 잽만 날리다가 갑자기 니킥이 날아온다. 뭐지? 얘가 잽 말고 다른 것도 할줄 알았어? 잠깐, 니킥? 나 지금 복싱 경기중이었는데?!!!


방심하지 마시길. 아니다, 방심하시길. 얼결에 맞은 발차기가 아프고, 아파야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 녹턴(2009) >


분명히 들었던 것이다. 언제나처럼 안개가 잔뜩 낀 어느 날, 이시구로가 런던 어느 운치 있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며 노트북으로 신작을 끄적대는 중이었을 것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날따라 글이 쭉쭉 뽑히는 것이 더욱 그를 신명나게 했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과 기억을 다루는 대가, 이시구로. 이미 절정에 달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기량이 또 한번 문턱을 넘어서 크게 피어나는 것을 느끼며 미친듯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때였을 것이다. 등 뒤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를 파고든 것은. 야, 이시구로는 글은 참 잘쓰는데, 재미가 없어, 웃길 줄을 모르지. 이시구로의 손이 멈췄다. 뭐라고? pardon? 야, 솔직히 톡 까놓고, 이시구로 책 읽으면서 웃은 적 있냐? 이시구로는 거의 기도하는 심정이다. 있다고 대답해, 어서, 제발, 내가 썼지만 <남아있는 나날>은 웃기잖아, 우리 가족은 그 책 너무 웃기다고, 나한테 소설가 그만두고 코미디언 하라고 그랬는데! 그러나 이시구로의 바람은 바람처럼 허망하게 흩날려간다. 야, 소설이 꼭 웃기고 재밌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이시구로는 재미는 없지만, 엄청나게 좋은 소설을 쓴다구. 이시구로의 귀에는 한 구절만 들렸다. 재미는 없지만. 이시구로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리고 백스페이스를 연타해, 지금까지 나온 그의 작품 중 가장 심오했을 신작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새로운 글을 쓴다. 제목, <크루너>


syo가 웃자고 한 이야기인 것처럼, 이시구로도 웃자고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빵 터지지는 않더라도 썩소도 웃음이고, 웃픈 것 역시 슬프긴 하지만 웃을 일이므로, 웃자고 쓴 책을 읽고는 일단 웃어야 하겠다. 뒷일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독자의 웃음을 가지고 이시구로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생각해 볼 수도 있겠으나, 내 영역 밖인 듯하다. 사실 그런 분석이 큰 의미도 없을 것이다. 다만 웃음이 물러가는 자리에 피어날 감정들, 아마 독자들마다 다른 감정이 될텐데, 여하간 웃음의 꼬리를 붙잡고 왔다가 재빨리 사라질 수 있는 그 짧은 느낌들을 부여잡으면, 좀 더 생각할 거리가 있는 책이다.





< 파묻힌 거인(2015) >


노래는 공기 반 소리 반이라고, 아무리 들어도 잘 하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어떤 남자는 항상 외치고 다닌다. 이전까지 이시구로의 소설에서 기억이란 기법 반 주제 반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 와서는 기억이 주제를 왕창 장악했다! 그러나 이시구로의 작품이 드러내는 주제의식은 시종일관 같다. "덮어도 되느냐" 언제나 그렇듯 덮는 자와 까는 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덮는 자는 지거나 최소한 초라해진다. 전작을 다 읽어보니 더 선명하다. 이시구로는 덮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기가 까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독자가 나서서 까기를 종용한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소설을 불어넣어 독자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간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시구로의 태도가 미적지근하게 다가오거나, 덮으려는 자를 변호해 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빡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처럼 이시구로에게 빡치나, syo처럼 이시구로를 믿으나, 결국 결과는 같다. 우리는 덮기를 원하지 않는다. 최소한 그냥은.


아, 깜빡할 뻔 했다. 장르는 SF판타지다. 그러나 이건, 깜빡할 뻔도 할 만큼 의미 없는 정보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1. 이시구로의 책을 읽을 때는, 항상 "기억"이라는 단어를 명심해야 한다. 기억해야 하는가/기억이란 믿을 수 있는가/기억이 미래를 만드는가/우리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2. 이시구로의 문장은 평평하고 재미가 없다. 의도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syo에게 이시구로는 아름답다. 그러나 전체로 아름답고, 낱개의 문장은 그렇지 않았다. 9권의 책, 모르긴 몰라도 4000페이지는 될 문장들을 읽으며 syo는 그 중 겨우 몇 개에만 줄을 긋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3. 전작을 읽기를 고려하신다면, 읽는 순서를 제시하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남아있는 나날 -> 우리가 고아였을 때/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창백한 언덕 풍경 -> 파묻힌 거인 -> 나를 보내지 마 -> 녹턴 ->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6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7-10-2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시구로 선생의 작품을 압축한 방대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스타일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그를 노벨문학상에까지 이끌지 않
았나 싶습니다.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는 이창래 선생도 곧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면 하지만 아직 작품 수가 부족한
지라. 연륜과 작품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전 이시구로 선생 중에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지지부진하게 끌고 있습니다만, 읽을수록 출판사
에서 마치 화두처럼 제시한 ‘카프카적 악몽‘이 무
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또 한편으론 짜증이 나기
도 합니다.

제일 잘 안 읽고, 안 팔릴 것 같다는 의견에 전적
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syo 2017-10-23 14:35   좋아요 0 | URL
노벨상 발표가 나고, 꾸준히 올라왔던 레삭매냐님의 이시구로 리뷰들을 죄다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의 수고에 비하면 이 글은 ˝방대˝하지도 않고, 그다지 알차지도 않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 어디도 추천하기 힘들겠습니다. 업계의 평가도 호불호가 완벽히 갈렸다고 하더군요. syo한테도 그 책은 그냥 높은 산 정복하는 느낌으로 읽는 재미없고 짜증나는 책이었습니다.

이창래를 노벨상에 가장 근접했다고 보시는군요. 전 아직 한 권도 못읽어봤는데, 이참에 한 번 손대봐도 좋겠네요.

cyrus 2017-10-2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을 연도순으로 읽고, 전작들을 하나씩 평하는 글의 전개가 좋습니다. 이시구로를 이해하려면 워밍업으로 카프카를 읽어야겠군요. 흠좀무.. ㅎㅎㅎ

syo 2017-10-23 14:38   좋아요 0 | URL
음, <성>이나 <소송>을 읽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이시구로의 책 중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을 제외하면 카프카를 워밍업으로 쓸만큼 헤매게 하는 책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시구로가 그 와중에 또 의식의 흐름 기법을 휘두른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카프카적 의식의 흐름˝이 되어 버리니,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은 진짜 눈물 뽑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0-2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고 읽는 쇼의 독서 일기 !

syo 2017-10-23 14:51   좋아요 0 | URL
믿음은 사랑입니다 ♡

단발머리 2017-10-23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아름답네요.
이렇게 시리즈로 쫘악 읽어줘야 하는데요. 방대하고 훌륭한 리뷰예요.
전 역시나, <나를 보내지 마>에 끌리네요.
다만, 이런 리뷰는 나눠서 올려주시면 참 좋겠어요.
하루에 한 개씩, 곶감 빼 먹듯이 하루에 하나씩, 냠냠~~

syo 2017-10-23 14:52   좋아요 0 | URL
이것은 각기 하나가 1/8 수준의 가치밖에 없는 리뷰라서 그렇습니다.
8개가 모두 모여야 하나의 리뷰가 되지요.

그야말로 캡틴 플래닛 같은 리뷰입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sprenown 2017-10-23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근데 댓글에 이창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검색..역시 여기 알라디너님들은 훌륭하네요..배우는게 많습니다. 이젠 이창래 소설작품에 관심을 가져봐야 겠네요...

syo 2017-10-23 17:31   좋아요 0 | URL
저도 이름만 아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sprenown님 뭐 많이 모르는 척 하셔도 전 안 속습니다. ㅎㅎㅎ

sprenown 2017-10-23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처음 들어보는 작가예요..소설도 많이 읽어야지..저의 무식과 게으름을 탓하고 있는 중입니다.^^

sprenown 2017-10-2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가즈오 이시구로도 처음들어 봤었고, 그의 작품도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2권밖에 못읽었습니다. 고아하고 거인..

syo 2017-10-23 17:42   좋아요 1 | URL
ㅎㅎㅎ 다른 것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syo의 눈에 고아와 거인은 이 작가의 에이스가 아닙니다.

sprenown 2017-10-23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 봐요..남아있는~하고 나를~이 호평인가 본데..기회되면 읽어보지요. 근데 당장의 무식을 모면해야할 필독서들이 하도 많아서..언제 읽을 수 있을런지..계획적인 독서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냥 땡길때 손에 잡히는 책이나 부지런히 읽어야죠.^^

syo 2017-10-23 18:04   좋아요 0 | URL
항상 겸손하신 sprenown님의 독서를 응원합니다!!^^

sprenown 2017-10-23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독서는 겸손한데, 글쓰기는 독단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 반성하기도 하지만...뭐, 제 느낌과 생각을 쓰는 거니..ㅎㅎ.

짜라투스트라 2017-10-2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글이 좋아서 어느새 다 읽게 되네요^^

syo 2017-10-23 21:43   좋아요 0 | URL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ㅎㅎ^^

역시 syo는 짧은 글인데.....

임진지 2017-10-30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한 마음에 댓글 답니다.
제가 SF를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우연히 ˝나를 보내지마˝를 만났을 때 이거다 싶어서 읽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출간되지마자 거의 처음 읽었던 것 같은데, 님 후기처럼 SF도 아니었고 정말 재미없었습니다. 이게 나만의 생각은 아니구나 한 느낌이 드니까 굉장한 안도감이 느껴지네요. 사람들은 재미없었던 책을 재미없었다고 이야기할 용기가 없는 걸까요? 그냥 후기를 보면 어느책이나 칭찬 일색이라서 이렇게 객관적인(혹은 적어도 그래보이는) 글을 읽고나니 이시구로의 다른 책들 중 그나마 어떤 책이 재미있을지 가려집니다.
 
아픈 천국 창비시선 318
이영광 지음 / 창비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눈물이 는다. 삶의 양을 정하는 누군가가 눈물의 양은 정해 놓지 않아서, 눈물은 무한정 는다. 어떤 시간은 떠올리는 순간 목이 메고, 어떤 이름은 듣자마자 눈시울이 젖는다. 세상엔 눈물이 참 많이도 있는데, 어떤 눈물은 사랑에 매여 있고, 또 어떤 눈물은 사람을 따라 온다. 그러다보니 큰 눈물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도착한다. 울고 울어도 마르지 않는 울음이 있다. 보이지 않게 되고 들리지 않게 될 뿐, 안으로 안으로 흘러 내 눈에만 보이고 들리는 눈물이 있다. 미안. 원망의 눈물보다 미안의 눈물이 오래 흐른다. 거세지는 않아도 끈질기게 흐른다. 모두 다 썰물처럼 물러간 자리에 미안함은 소금처럼 남는다. 소금처럼 빛난다. 오래 보면 눈이 따갑다. 이내 눈물이 고인다. 그래도 가끔 아름답다. 미안을 생각하는 사람은 눈이 맑다. 눈물이 씻은 눈이 선하다. 미안未安은 편하지 않다고 쓴다. 그러나 지나간 사랑을 생각할 때, 어쩌면 미안은 아름다운 눈美眼이라고 써도 좋겠다. 아름다운 시라고 써도 좋겠다.


 울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이 들어가서 태우는 몸

 네 사랑이 너를 탈출하지 못하는 첨단의 눈시울이

 돌연 젖는다 나는 벽처럼 어두워져

 아, 불은 저렇게 우는구나, 생각한다.

 따로 앉은 사랑 앞에서 죄인을 면할 길이 있으랴만,

 얼굴을 감싸쥔 몸은 기실 순결하고 드높은 영혼의 성채

 울어야 할 때 울고 타야 할 때 타는 떳떳한 파산

 나는 불속으로 아니 걸어들어갈 수 없다.

 사랑이 아니므로, 함께 벌받을 자격이 없다.

 

 <사랑의 미안> 부분




2


지나온 기억 속에, 손 한번 마음 놓고 잡기가 힘들었던 사람 하나 없었다면 놓쳤을 감정들을 헤아려 본다. 그때 그 사람의 손을 잡기 위해 억지로 끌어다 붙인 퍽 유치했던 이유들과, 그 이유들로 인해 조금은 붉어졌을 내 얼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선히 손을 내 주었던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늘 내가 먼저 달라 하고 빼앗듯 잡았던 그 손을 먼저 내밀어 내 손을 잡아 주던 밤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 뒤로도 많은 일들을 함께 쌓아올렸지만, 가장 선명한 기억은 먼저 다가오던 그 작고 따스한 손이다. 나는 속으로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끝내는 함께 쌓아올린 것들이 한 줌 한 줌 쓸려나가고 무너졌지만, 그리고 돌아서서 우리가 나눈 것이 사랑이 아니었고 또 사랑이어서도 안 된다고 세차게 부인했지만, 그 밤, 꼭 그 밤만큼은, 그 사람이 먼저 내밀어 잡아줬던 손에 든 것은 사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맞잡은 내 마음 속에 그 밤만큼은 사랑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겠다. 나빴다면 나쁜 사랑이었겠고, 더러웠다면 더러운 사랑이었겠지만, 사랑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 밤은 이제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나를 삼켰고, 그래서 많은 것을 이제 혼자 감당해야 하고, 어쩌면 혼자 감당해야 해서 서글프게 다행이기도 하지만.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우리가 맨발로 걷던

 비자림을 생각하겠어요

 제주도 보리밥에 깜짝 놀란

 당신이 느닷없이 사색이 되어

 수풀 속에 들어가 엉덩이를 내리면,

 나는 그 길섶 지키고 서서

 산지기 같은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봤지요

 비자림이 당신 냄샐 감춰주는 동안

 나는 당신이, 마음보다 더 깊은

 몸속의 어둠 몸속의 늪 몸속의 내실(內室)에

 날 들여 세워두었다 생각했지요

 당신 속에는, 맨발로 함께 거닐어도

 나 혼자만 들어가본 곳이 있지요

 나 혼자선 나올 수 없는 곳이 있지요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웃다가 눈물 나던 비자림을 찾겠어요 


 <기우> 전문




3


불이라 생각했던 것이 물이었고, 물이라 생각했던 것이 지나고 나면 불이었던, 오래 지나고 보면 참 많이 몰랐던, 그러고도 너는 내가 잘 알아, 나는 내가 잘 알아, 탕탕 큰소리나 쳤던, 사랑이 물에 빠졌는데 불을 끄려하고, 불에 타고 있는데 허우적거리던, 너는 너무 뜨겁다며 되려 뜨겁게 화내고, 너는 너무 차갑다며 훨씬 차갑게 돌아서던, 백지 위에다 이름점을 쳐보며 왜 네가 더 사랑하나며, 왜 내가 더 사랑하냐며 서로 투덜댔지만 실제로 누가 더 사랑하는지는 오리무중이던, 물처럼 불을 끄기 바쁘고, 불처럼 물을 흩어놓기 바쁘던, 안으면 안을수록 텁텁한 증기로만 증발하던, 내가 물일 때 하필 너는 불이고, 내가 불일때면 꼭 너는 물이던, 그래서 내심 우리는 안 될 거라고도 믿었던,


그러나 돌아보면, 그건 그대로 괜찮을 수도 있었던, 다만 어리석은 불과 어리석은 물이었기에 벌어졌던, 그저 서로의 주파수와 주기를 맞출 줄 알았다면 다정하게 공전할 수 있었던, 불이라도 좋았고 물이라도 즣을 수 있었던, 타 죽어도 그만이고 빠져 죽어도 나쁠 것 없었던, 그저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는 눈길이 조금씩 더 필요했던, 모자란 건 단지 그 뿐이었던, 찬란이 부족해도 그저 한 뼘만 부족했던, 찬란했던, 찬란했던,


 1억 5천만 킬로미터를 날아온 불도 엄연한 불인데

 햇빛은 강물에 닿아도 꺼지질 않네

 물의 속살에 젖자 활활 더 잘 타네

 물이 키운 듯 불이 키운 듯한 버드나무 그늘에 기대어

 나는 불인 듯 물인 듯도 한 한 사랑을 침울히 생각는데

 그 사랑으 다음 생까지 운구할 길 찾고 있는데

 빨간 알몸을 내놓고

 아이들은 한나절 물속에서 마음껏 불타네

 누구도 갑자기 사라지지 않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것이,

 저렇게 미치는 것이 옳겠지

 저 물결 다 놓아보내주고도 여전한 수량

 태우고 적시면서도 뜯어말릴 수 없는 한몸이라면

 애써 물불을 가려 무엇하랴

 저 찬란 아득히 흘러가서도 한사코 찬란이라면

 빠져 죽는 타서 죽는,

 물불을 가려 무엇하려


 <물불> 전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prenown 2017-10-20 2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이 가을을 타긴 타는 모양이네요..눈물도 많아지고, 사랑도 그립고..저는 눈물이 많이 필요해요. 가을되면 눈이 건조해져서 인공눈물.
울음이 많은 위 글을 읽으니 갑자기 청산별곡이 생각나네요.. 울어라,울어라 새여. 자고 닐어 울어라 새여.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 닐어 우니노라..syo님, 울더라도 너무 오래 울지는 마세요!

syo 2017-10-21 06:30   좋아요 1 | URL
눈물바람 난 건 나이가 들어서.....ㅎㅎㅎㅎ

감사합니다. 가을을 타긴 타나본데, 신나게 가을 타다가 내려야겠어요. 어차피 가을은 짧은데요 뭐.

서니데이 2017-10-21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엔 그리운 사람이 있으신가요.
지나고 나면 남은 것은 기억뿐이고 하지만, 오래 꺼내보지 않으면 기억도 많이 지워지더라구요.
좋은 것이거나, 그렇지 않은 것이거나.
syo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syo 2017-10-21 06:32   좋아요 1 | URL
그리운 사람이야 사시사철 있지요 ㅎㅎㅎ 꺼내보면 좋은 기억도 많아서 꺼내볼만 하고 그래요^^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사실, 발단은 마르크스였다. 


자본론을 읽기 시작했다. 읽어졌다. 읽어져야지. 먹은 입문서가 몇 권인데. 한 꼭지를 읽고 책을 덮은 다음, 자 이제 한 번 써볼까. 써졌다. 그럼, 써져야지. 제낀 개론서가 한 박스다. 다 쓰고 읽어봤다. 응? 그것은 syo가 여지껏 읽어 본 글 중 가장 형편없는 글이었다. 뭐냐하면, 그냥 글. 이 글은 무슨 글입니까 하고 물으면, 한글이요, 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그저 글자들의 집합. 세상에서 제일 못 쓴 자본론 입문서보다 더 못난 글이 여기 있네? 


며칠을 끙끙 앓았다. 나의 독서는 뭐지?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으나, 정작 읽을 수 없는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있는 글을 못 쓰는 독서. 자연히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지치고 세상 만사가 다 귀찮아졌다. 독서판을 떠날까 잠깐 고민해 보았으나, 돌아보니 여기가 이미 벼랑끝인 걸 가긴 어딜 가.


돌아보면, 이건 옛날에 이미 관측이 가능한 결말이었다. 4학년 1학기를 마쳐갈 때쯤 지도교수님을 찾아갔던 일이다.


교수님, 유학가고 싶어요. 어디로. 교수님 박사하셨던 학교요. 거기 좋지. 네. 근데? 추천서 좀 써주세요. 교수님은 말이 없었다. syo는 식어가는 커피잔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렸다. 학점 관리는 잘 했냐. 네, 저 4점 넘어요. GRE는. 그거 할라고 들면 얼마 안 걸린다고 교수님이 그러셨는데요. 내가? 네. 다시 교수님은 말이 없었다. 커피는 이미 싸늘히 식어 있었다. 넌, 어렵다. 왜요, 저 학점도 좋은데. 넌 학점은 좋지만 깊이가 없어. 네? 넌 학점은 좋은데 깊이가 없다고. 깊이가 뭔데요. 너 지난 학기 때 뭐하고 돌아다녔었냐. 영화..... 그래서 그거 찍었냐? 아뇨, 각본만 하고 전 중간에 나왔죠. 너 이번 학기에는 뭐 한다고 그랬냐. 게임 제작...... 그래서 그거 만들었냐? 아뇨, 막판에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그래서 넌 안 되는 거야, 넌 한 가지에 집중을 못하고, 맨날 일만 벌려 놓기 바쁘지 뭐 성과가 없잖아, 뭔가 하나 하다가도 금방 딴 데 한눈 팔고 그러잖아, 맞아 아냐. ......맞습니다. 그래서 넌, 유학 글렀어, 너한테 추천서 안 써줘. 네...... 그러니까 그냥 우리 랩실 와. 네.....네? 우리 연구실 오라고. 교수님, 전 학점은 좋지만 깊이가 없어서 어렵겠는데요. 아냐, 넌 깊이는 없지만 학점은 좋아서 괜찮아.


결국 유학도 못가고 대신 군대를 갔다. 늘상 이런 식이었다. 대학을 5년 다녔으나 일군 것은 하나도 없고 졸업과 동시에 입대. 군대에서 꿀보직을 받아 시간이 꿀처럼 흘렀으나 역시 일군 것은 하나도 없고 제대. 제 버릇 개나 좀 주지 그걸 못 주고 제대 후에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기만 하다 결국 자리를 잡지 못하고 현재 실업자 통계에 일조 중. 이런 처참한 인생이 결국은 다 선택과 집중을 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진단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야 그렇다 치고, 뜬금없이 리영희에 루쉰에......


겉보기엔 유익한 다독 욕심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이 어떻게 생겨먹었나 한참을 들여다 봤다. 많이 읽으려는 욕심은 많이 가지려는 욕심과 똑 닮아 있었다. 많이 가지려는 갈증이 얼굴을 바꾸어 많이 읽으려는 욕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syo는 돈이 없으므로, 곳간에 쌀가마니를 쌓는 대신 두뇌에 정보가마니를 채워놓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병신이 되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는 아닌척 해도 이 나이 먹도록 이룬 것 하나 없는 백수라는 것이 못내 부끄러웠던 거라, 비록 가진 건 없지만 든 건 많으므로 나는 그렇게 후진 사람이 아니라며 스스로의 자존심에 아까징끼를 쳐바르고 살았던 것이다. 아이고, syo야, syo야. 그게 더 쪽팔리는 거야......아이고, 임마.



171011-171019 33권


문학 6권


1. 남아 있는 나날

: 남아 있는 이시구로의 책들이 이미 읽은 책들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2.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3.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2

: 그 행복감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이시구로, 이러지 마세요. 랜덤으로 책을 펼쳐서 한 챕터씩 읽으나 그냥 읽으나 별 차이 없는 책을 만들다니.


4. 시인의 사물들

: 시인. 한 때는 목말랐으나 이제는 추억 속에 못박아 넣고 먼지만 맞히는데도 아쉬움조차 가물거리는 희미한 그 이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이름.


5. 아픈 천국

: 우리가 몸을 잃고 떠도는 유령이라면, 체온을 만나기 위해 세상을 헤매는 괴물이라면, 차라리 서로의 시체를 서로의 가슴에 묻고, 물처럼 불처럼 찬란히 사랑하다 빠져 죽고 타서 죽어도 좋겠다.


6. 우리가 고아였을 때

: K.O.를 노리지 않는 이시구로의 문장. 한 방 없이 이야기를 축적해가는 영리한 전략.




철학 9권


7. 아미엥에서의 주장

: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하나를 꼼꼼히 읽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번역은 그냥 그런 것 같다.


8. 마르크스주의 철학 입문

: 뭐지, 이 괴물 같은 사람은.거의 세상 모든 학자들의 말을 벽돌로 써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이라는 집을 지으려 시도한다. 신기하나 산만하다.


9.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 그러니까, <경제학-철학 수고>와 <독일 이데올로기>를 열심히 읽으라는 말씀이시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요.


10.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 선선히 읽어 나갈 수 있는 푸코와 역사. 밀도는 낮다.


11.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 이 책의 제목이야말로 <철학하는 여자는 강하다> 같다. 강신주 네 이놈, 여성철학자가 어쩌고 어째? 하는 책이다.


12.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 결국 마지막에는 푸코로 푸코를 죽여야 한다. 그말은 곧, 이미 나보다 앞선 많은 사람들이 푸코를 휘둘러 푸코를 죽여놨음을 의미한다. 푸코는 에이즈로 죽었지만 푸코의 철학은 푸코의 철학 때문에 죽었다. 근데 그 철학의 시체가 아직도 다른 말들을 죽이는 데 너무 유용하다.


13. 철학이 필요한 시간

: 철학이 쉬운 건 줄 알았다. 크게 속았다. 


14. 제 2의 성 

: 원전을 읽을 거라면 큰 의미가 없는 평이한 요약서.


15.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 사상사

: 좋은 책이다, 이해가 쉽고 설명이 훌륭하다, 이런 평들을 올리시는 분들 참 부럽습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철학자들에 관해서는 동의하는 바가 있는데, 배경지식이 없는 부분은 거의 이해가 잘 안 된다.....




읽기 / 쓰기 7권


16.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 시키는 대로 하면 나도 막, 막, 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막, 막, 그렇다.


17. 집 나간 책

: 정말 부럽다. 얼굴 빼고 모든 것을 다 가진 당신.


18. 새벽 2시, 페소아를 만나다

: 잘 쓴 알라딘 서재글 같은 책. 그러나 한 건의 실수 때문에 진정성에 살짜쿵 금이 갔다.


19. 글 잘 쓰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 분명 도움은 된다, 되는데, 왜 90%는 똑같은 말로 채워진 책들을 자꾸자꾸 찍어내냐고.


20.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 많이 읽는 사람들의 글은 각기 참 다르다. 자신의 것을 만드는 데는 쓰기와 읽기가 넉넉히 필요하다.


21. 문학은 노래다

: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이 묻혔으므로, syo의 책 같은 건 태어나기도 전에 묻힌 셈이다.


22. 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

: 비록 제목은 낚시지만 내용은 충분히 가치있다. 그러니까 syo처럼 읽는 놈들을 나무라는 책인데, 옳다. 느끼는 바가 많다.




인물 5권


23. 리영희를 함께 읽다

: 스승을 만나러 처음 떠나는 길. 좋은 책이지만 사실은 아무 배경지식 없이 읽기에 적합하지는 않은 듯.


24.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 역시 강준만 선생님 스타일. 자료 인용, 자료 인용. 솔직히 방법론적으로 보면 리영희 선생님 다음 자리는 강준만 선생님이라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25. 리영희 평전

: 딱 이 책까지 읽는 순간, 이제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바로 읽어도 되겠다는 감이 왔다.


26. 역정 

: 자전인데 평전보다 나은 경우가 흔치 않다. 이 경우가 그 경우다.


27. 루쉰 그림 전기

: 참신하지만 장면을 위주로 서술하다보니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다. 그럼 재미가 덜한 법이다.




그 외 6권


28. 프랑스 혁명

: 장난하나..... 아무리 입문이고 총서라지만 역사서 쓰는 데는 자격이 필요한 법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 동아시아가 노려보고 있다, 이 영감아.


29. 시사인 525-526

: 손석희 만쉐. 뉴스룸 만쉐. 뉴스공장 대박.


30. 언어 공부

: 언어학 책 주제에(?) 왜 딱딱하지 못하고 웃기는 거야. 니가 이렇게 웃기면 정작 웃겨야 될 다른 책들은 어떡하라고.


31. 엄마는 페미니스트

: 번역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전작을 다 읽고 다음 작가를 찾던 중 이 책을 펼쳤다. 다음이 결정되었다.


32. 글 쓰는 여자의 공간

: 읽고 쓰기가 지겹다는 생각은 읽고 쓰려면 언제든 그럴 수 있는 여유덕에 생겨나는 비만 같은 증상임을 알아채고 나니 슬럼프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33. 그림 읽는 시간

: 사소하다. 그냥 한 번 피식 웃고 말 책. 





아무튼 그리하여 이런 모자란 짓은 오늘로 땡. 내일부터는 적게, 그리고 깊이 읽는 법을, 그러니까 집중해서 사는 방법을 연마해야겠다. 책탑은 무너졌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prenown 2017-10-19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많은 책을 읽어내는 쇼님의 눈을 존경하면서 이 긴글을 읽다가 잃어버린 제 눈을 찾아야 할 것아요.. 오른쪽 눈알이 빠진것 같은 데 왼쪽으로 구르는 것 같아요... 찾아서 다시 집어넣으면 내일 다시 쇼님의 글을 포함해서 알라디너님의 좋은 글 읽겠습니다...이만!

syo 2017-10-19 21:2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웃겨라.

좋은 밤 되세요. sprenown님!!

독서괭 2017-10-1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하심 교수님...-_-^
독서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것도 좋지만, 그냥 그 자체로 즐기는 게 가장 좋은 거 아닐까요. syo님은 이미 충분히 즐기고 계신 것 같은데요^^

syo 2017-10-19 21:26   좋아요 0 | URL
원래 학생들 다른 대학원 안보내고 붙잡으려고 그래요 ㅎㅎㅎ 대학원은 다들 학부보다 더 좋은데로 지원하거든요 ㅎ

sprenown 2017-10-19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간신히 오른쪽 눈알을 찾았는데, 넣기전에 왼쪽 눈알이 다시 빠지네요..오늘 왠 지랄이야..

다락방 2017-10-1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은 글이고 너무나 귀엽습니다 쇼님 ❤️

syo 2017-10-19 22:04   좋아요 0 | URL
어느 포인트가 귀여우셨을까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할거예요.

AgalmA 2017-10-20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펭귄 클래식판 <공산당 선언> 읽으니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독일이데올로기>에 왜 그렇게 열 올리며 집중했는지 이해 됐어요. 하지만 난 <독일이데올로기>책은 없지-,.-....<경제학-철학 수고> 좋다는 말 하도 들어서 준비는 해 놓았으나 언제 읽을지;;; 다들 노벨문학상 받은 이시구로만 관심주고 노벨물리학상 받은 킵손한텐 너무 관심 없어서 저는 그쪽으로 가기로ㅋㅋ 책청개구리~우후후

syo 2017-10-20 07:1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물리는 어려우니까요!! 일년에 평균 한두 권 읽는다는데 킵손은 부담이 크다..... AgalmA님이 읽고 좋은 리뷰해주시면 저도 꼽사리낄래요.

psyche 2017-10-20 0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의 마음 탓인지 쇼님 글 읽으면서 울컥했네요. 나는 뭔가 나는 왜 읽나 하면서요.

syo 2017-10-20 07:1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왜 읽는 걸까요 이 험한 세상에ㅠ

cyrus 2017-10-2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하니까 ‘루쉰P’라는 닉네임의 알라디너가 생각나는군요. 그분도 책을 열심히 읽었고, 정성을 담아서 리뷰를 썼습니다. 루쉰P님이 마지막으로 쓴 글이 <루쉰 전집> 리뷰였어요. 그 이후로 활동이 뜸해요.

syo 2017-10-20 16:05   좋아요 0 | URL
기억납니다. 제 서재에도 댓글 한번 남기셨습니다. 눈탱이 밤탱이 된 주성치 사진을 프로필 이미지로 쓰셨지요.

캐모마일 2017-10-20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6. 역정 과 30. 언어공부 읽어보고 싶네요. 소개 감사드립니다.

syo 2017-10-20 16:05   좋아요 1 | URL
별 말씀을요. 즐거운 독서 되세요 캐모마일님^^

블랙겟타 2017-10-2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정성스런 글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

syo 2017-10-20 16:43   좋아요 0 | URL
ㅎㅎ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뿌듯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정성스런 글인지는 좀 더 반성해보겠습니다....

블랙겟타 2017-10-20 16:54   좋아요 0 | URL
계속 정성스런 글을 써주십사하는 무언의 압박입니ㄷ....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에요 충분히 좋은 글 써주시고 계세요 ㅋㅋㅋ

syo 2017-10-20 16:56   좋아요 0 | URL
앜ㅋㅋㅋㅋㅋ
 


1


마르크스는 러시아어로 된 통계자료들을 읽기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6개월쯤 지나자 러시아 문학 비평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게 그가 구사하는 몇 번째 외국어더라. 리영희 선생님은 영어 일어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상태에서, 우리 나라를 에둘러 비판하기 위하여 중국 연구에 뜻을 품었고 이내 중국어를 정복했다. 루쉰은 일본어를 모르는 상태로 일본에 건너갔고,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에는 쥘 베른,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비롯해 각종 서구의 문학작품과 과학서 등을 직접 번역했다고 한다.


전기문학은 이런 점이 사람을 빡치게 만든다. 위대한 사람에 대한 찬탄은 혼자서 오는 법이 없고, 항상 나 자신에 대한 초라함과 손잡고 온다. 어디서나 당당하게 책을 좋아한다, 읽는 일이 인생의 큰 축이다, 독서만세만만세를 떠들고 다니지만, 만약 syo가 정말 읽는 일을 사랑한다면 저만한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읽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쯤 어깨를 펴고, 내가 독서가요 하고 나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2


읽는다는 것이 감당이 안 되고 그 갈래갈래가 너무 벅차서 누구라도 나타나 방향을 좀 짚어주었으면 할 때가 많다. 그 책을 읽었다면 다음에는 이 책이 좋겠네. 이 책은 이렇게 말하지만 저 책은 저렇게 말하지. 아니, 자넨 아직도 그 책을 읽지 못했단 말인가. 이런 말들이 소중하다. 이런 말들을 해 줄 사람이 귀하다. 코를 쳐박고 마구잡이로 읽고 잊기를 반복하다가 고개를 들어 무한히 많은 책들과 마주칠 때의 그 막막함. 나는 너무나 작구나. 읽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구나. 한 치도 모르겠구나. 이런 무의미를 반복해야 할 의미를 도저히 모르겠구나. 피에르 바야르의 말은 가깝고 고미숙 선생님의 말은 멀다. 카프카의 말로 또 하루 더 읽어야겠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들 앞에서? 아무리 일생을 바쳐 거듭 시도해보아야 영원히 모르는 책으로 남게 될 그 책들을 생각한다면 모든 독서가 그저 헛되기만 하다는 생각을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_ 피에르 바야르,『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르헤스는 말한다. 세상은 책이고, 우주는 도서관리라고. 이반 일리치는 말한다. 모든 자연은 의미을 잉태하고 있으며, 고로 자연 자체가 책이라고.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다. 읽기요 쓰기다!(정화스님) 생명은 쉼 없이 읽는다. 우주와 자연, 세상이라는 텍스트를. 읽었으면 써야 한다. 사유와 행동과 언어 등등, 삶의 모든 과정이 글쓰기에 해당한다. 읽고 쓰고, 또 쓰고 읽고.... 이것이 바로 생명활동의 기본이다.

_ 고미숙,『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네가 평지를 간다고 치고, 그렇게 가려는 소망을 가졌는데도 뒷걸음을 친다면 그것은 절망적인 일일 터다. 그러나 너는 가파른, 너 자신이 발밑부터 보일 만큼 가파른 비탈을 기어오르므로, 뒷걸음질은 오로지 지형 때문에 야기되었을 수도 있느니만큼, 너는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_ 프란츠 카프카,「죄와 고통, 희망 그리고 진정한 길에 대한 성찰」




3


조울조울 하는구만. 한번 더 힘 냅시다. 힘들다고 죽을 것도 아니고, 헤맨다고 안 읽을 것도 아니잖아요. 천천히 한 발씩. 뚝심 있게.



나보다 모든 면에서 갖추어지고 우월한 입장에 서 있는 동료와 선후배들 속에서 직업적으로 대성하려면, 자신의 부족을 겸허하게 시인하고 실직(實直)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한다. 선천적으로 두뇌가 떨어지고 학교에서 배운 것이 이질적이고 부족한 사람으로서는 직업생활에서 성급히 굴지 말고 오로지 진지한 노력으로 보완해 나가야 한다. 빠르기로 말하면, 아첨하고 술수를 부리고 가식을 꾸며서 임기응변으로 세상사를 매끈하게 헤쳐나가는 재주 이상 없겠지. 그러나 모든 사람이 우둔하지 않은 한, 그 '재주'는 조만간 드러나게 마련이다. 또 모든사람이 그런 술수에 능한 이 사회에서 교지(巧智)의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더욱이 어려운 일이다. 참된 인간적 삶도 아니다. 차라리 부족한 대로, 둔한 대로, 성실껏 노력하고 곧게 삶만 못하다. 

_ 리영희,『역정』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0-18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8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8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8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7-10-19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크크크 요즘 syo님 글 읽는 맛으로 북플 자주 들어와요. 초라한 저는 러시아어 배우고싶다~ 요즘 그러는데 아무래도 시작도 못할듯 싶어요~

syo 2017-10-18 23:28   좋아요 1 | URL
부끄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야나님이 여러가지 외국어를 공부하시는 거 종종 야나님 서재에서 목격하곤 했었네요. 러시아어까지 도전하십니까. 저한테 부족한 열정이 다 어디갔나 했더니.....

아무개 2017-10-1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한해는 이러저러 일들이 많아 책을 거의 못읽었지만,
늘 독서의 깊이와 넓이에 대해서 고민스러워요.
말씀처럼 좀 독기를 품고 읽어야 하는데 그저 시간때우기로 읽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네요.

syo님 글은 읽을때마다 미소지어져요^^

syo 2017-10-19 12:06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면 벌써 올해도 서산으로 뉘엇뉘엇 하네요. 뭐 했다고....

syo같은 비직업 독자도 읽기가 이렇게 어렵고 벅찬데, 프로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별 것도 못 되는 글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7


사실, 가시적으로 드러날 만큼 세상을 바꾸는 데 두꺼운 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읽는 이의 마음이 열려 있다면, 아주 얇은 책, 심지어 한 줄의 글을 통해서라도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은 물론 필요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대를 만났을 때 휘둘러야 하니까. 세상엔 오직 이성만을 말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초월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다소의 신음소리 정도는 무시할 수 있으며, 직접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이가 눈 앞에 있는데도 스스로 자신에게 쥐어준 논리와 객관의 밧줄을 휘둘러 아픈 이를 담론의 영역으로 끌고 나오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 있다. 복잡한 이론은 결국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사실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담론의 전장에서 싸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결코 설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종류의 가치 토론을 지켜보며 syo가 발견한 아이러니는, 결코 자신의 견해를 바꾸지 않을 사람일수록 토론하자고 외치고, 결코 타인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을 사람일수록 자신의 말을 정당한 비판으로 포장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얇고 가볍다. 그러나 딱 이 책이 이야기하는 정도만 우리 모두의 상식이 된다해도 세상이 많이 아름다워질 두껍고 무거운 책이기도 하다. syo는 멍청하고 아는 것이 없어서 담론의 전장에서는 그저 학살당하는 양민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담론이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인 한방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담론판의 관우 장비 조자룡들이 창 휘두르듯 자신의 지식을 뽐내어 상대를 쓰러뜨리는 모습이 syo의 눈에는 하나도 멋있거나 설득적이지 않다. 


그냥 여기 쯤. syo가 있는 곳.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


어쩐지 책팔이 노선에 흥미를 보이는 것 같은 행보도, 입방정 구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나저러나 syo는 결국 강신주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매번 속는다. 철학이 쉬운 거라고. 조금만 눈을 돌리면 바로 우리 곁에 항상 철학이 있어요. 능청능청. 과일 가게에서 잘라주는 수박 귀퉁이 같은 책이다. 그러니까 뭐 이런 식의 일이 벌어진다.


아무 생각없이 산책을 나선 syo는 신주네 과일가게 앞을 지나는데, 네안데르탈꽃미남형 외모에 안경을 껴서 무척 똑똑해 보이는 아저씨가 생전 처음 보는 과일을 죽 늘어놓고 판다. 과일은 생긴 것도 기괴하고 냄새도 알쏭달쏭하다. 먹으면 몸에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머리만 아플 것 같기도 하다. 프랑스 독일 어디어디에서 왔다는데, 이름은 한 번 들어본 것도 같다. syo는 망설인다. 그때 그가 비릿한 미소와 아리송한 말투를 투척하며 다가온다. 여기 제가 조금 잘라 드릴 테니까 드셔보세요. 어때요, 먹을만 하죠? 왜 이런 맛이 날까요? 자, 생각해 보세요, 넓게 펼쳐진 푸른 들판이 있어요, 일년에 절반은 비가 오고 절반은 해가 쨍쨍 내리쬐는 들판이요, 보이세요? 그 한 가운데, 조그마한 나무가 있죠? 자, 이제 그 나무가 자랄 겁니다. 농부 아저씨가 비료를 뿌려요, 아줌마가 풀을 뽑아요, 나무가 자라면 열매를 맺겠죠? 어때요? 어, 열매를 맺었네? 어, 근데 나무에 없네? 그러면 그 열매가 어디로 갔을까요? 그 열매가 여기 있네?


정신이 들었을 때, 어쩐지 syo는 집에 도착해 있었고 식탁 위에는 귀퉁이가 조금 잘려 나간 과일이 놓여 있다. 아, 뭐지..... 일단 샀으니 과일을 쪼갰는데, 이게 뭐야. 안쪽은 그 아저씨가 잘라 준 부분이랑 색깔부터가 완전 다른데? 같은 과일 맞나? 일단 한 번 먹어나 볼까...... 아, 이게 무슨 맛이야, 젠장! 이 프랑스 저머니 미친 포스트모더니즘 과일들아!


과일들은 썩지도 않는다. 냉장고를 열때마다 조용히 syo를 노려본다. 콜라 꺼내 마실때마다 syo를 비난한다. 우릴 고르지 않고 달고 청량한 것들만 먹다니. 네놈의 내면은 곧 개발도상국형 성인병에 걸릴 것이다. 닥쳐, 이 헤겔하이데거비트겐슈타인라캉들뢰즈데리다같은 못되먹은 자식들아.


그러나 다시 과일 가게를 지날 때면, syo는 여지 없이 또 당한다. 이번엔 다르겠지 하며. 심지어 아주 두껍한 놈으로 업어 온다. 속을 잘라보기 무섭다.


뭐 이런 놈들







리영희를 함께 읽다

고병권 외 지음 / 창비 / 2017


syo가 리영희라는 이름을 처음 발견한 것은 희한하게도 군대였다. syo는 이명박 말기에 군대에 가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합니다. 정치무식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낳습니다.) 제대했는데, 그때 진중문고로 선정된 리영희 산문선『희망』이 각 생활관당 한 부씩 배부되었다. syo는 관심이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이 같이 들어와 선점했던 것 같다.『희망』은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군인이 책을 보지 않아서 그런가 하면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도 없는게, 『1Q84』는 항상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었고, 열정이 넘치는 독서가들의 참을 수 없는 지식욕에 희생되어 몇 페이지가 찢겨나가기도 했다(소실된 페이지들은 종종 화장실에서 발견되었다. 상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냥 하루키의 필력에 대한 방증이라고 하자.) 리영희는 그렇게 때타지 않고 깨끗하게 보존되었다. syo도 보지 않고 제대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곳도 아닌 군대에, 아직도(2011) 정훈장교가 이승만이 잘한 일을 가르치고, 박정희와 전두환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며, 베트남 전쟁을 공산주의의 야욕에 맞선 불가피한 전쟁이었다고 가르치는 그 군대에, 온몸으로 칼날을 받아가며 그것들과 맞서 싸운 리영희의 책이 있었다는 것은 참 아찔한 아이러니다. 


어떻게 리영희를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근데 그것보다 어떻게 리영희를 읽지 않고 서른 넘도록 살았는지는 더욱 모르겠다. 리영희는 올바른 한국 빨갱이의 기본 소양 아닌가? 마르크스, 읽어야지. 레닌, 로자, 트로츠키, 아 읽으면 좋지. 지젝, 힙하지.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다 읽었다한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빨갱이가 리영희를 모른다면? 아, 그럼 그냥 연습생 시절로 돌아가는 거지.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불행이 사회의 행복에 기여하는 경우도 있다. 리영희가 바로 그런 경우다. 리영희는 한국 현대사에 최상급의 증언과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왜 '최상급'인가. 투명하기 때문이다. '아사리판'에 어느 정도 타협했거나 그 판을 멀리서 구경만 했던 사람들은 결코 감지할 수 없거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리영희는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_ 강준만,『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21세기에 리영희를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세기 수많은 젊은이들의 감긴 눈을 틔워 정신적, 사회적 수렁으로 몰아넣은 '의식화'의 교과서『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는 이미 그 책을 낳은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그야말로 '역사'가 되어 버린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직접 읽어 보거나 읽어 본 이들의 입을 통해 들어야 알 수 있을 것이므로 그저 책꽂이에 꽂아놓기만 한 syo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리영희의 정신은 지성인들이 좇아야 할 이정표로 어제 오늘 뿐 아니라 내일까지도 남을 것이다. 이런 고풍스럽고 제도권 반공 독후감에나 나올 것 같은 찬사를 하게 될 줄이야. 그러니까, 리영희의 사상도 사상이지만, 진실을 향한 리영희의 태도와 자세는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인 것 같습니다.  


리영희를 처음 만나시려는 분들에게, 리영희의 자전인『역정』과 대담집인 『대화』를 권합니다. 평전은 아직 몇 권 읽어보지 않았지만, 자료의 지배자 강준만 선생님과, 한국의 슈테판 츠바이크 김삼웅 선생님의 책이 있군요. syo가 살짝 넘겨봤는데 김만수 선생님의 『리영희 살아있는 신화』는 그야말로 "한권으로 보는 리영희"라 해도 충분할 만한 책이었습니다. 첫 책으로 권하지는 않지만요. 




댓글(9)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10-17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리영희에 대한 추천이 반갑네요. 읽을 책이 쌓여 언제 읽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이 바로 그 때로다! 생각이 들면 다시 이 페이퍼로 돌아와, 자 뭘 읽으라고 했더라? 해야겠어요. 고맙습니다!!

syo 2017-10-17 21:46   좋아요 0 | URL
리영희가 필요 없는 시대야말로 천국이겠으나, 그런 날이 올까요. 지금은 많이들 읽으면 좋겠어요.

프리즘메이커 2017-10-18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래하는 페미니즘, 대화 사놓고 게을러 보지 못한 책들이네요ㅠ

syo 2017-10-18 06:50   좋아요 0 | URL
많은 독서가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을 프리즘메이커님도 안고 계시네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7-10-18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는... 참 제가 할 말이 많지만서도, 모두 접어주시고.
전 강신주 책은 거의 다 읽은것 같은데.....
문제는 저는 과일을 사지는 않고, 서서 과일아저씨랑 얘기하면서 계속 <맛보기>만 맛보고 있죠.
참, 철학 vs 철학은 못 읽었죠. 두껍잖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리영희 선생님꺼는 위의 <대화>만 읽었는데, <전환시대의 논리>를 더 늙기 전에 읽어야지.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의 명문.

이 책은 얇고 가볍다. 그러나 딱 이 책이 이야기하는 정도만 우리 모두의 상식이 된다해도 세상이 많이 아름다워질 두껍고 무거운 책이기도 하다.

syo 2017-10-18 08:41   좋아요 0 | URL
강신주는 과일가게 아저씨고, 리영희 선생님은 푸줏간 아저씨 같아요. 날카로운 칼로 툭 끊어내 피가 줄줄 흐르는 날고기를 던져 주시는.....

명문으로 뽑으신 문장은 지금 다시 보니까 손 댈 데가 있네요. 글 참 못썼다.... 하루만에 이렇게 느낄 정도면 퇴고만 좀 잘 했어도 고쳐놨을 것을요.

cyrus 2017-10-1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트모더니즘 과일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변색하기 쉬워요. 그러나 절대로 썩지 않아요. 그래서 종종 변색된 포스트모더니즘 과일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syo 2017-10-18 14:20   좋아요 0 | URL
혹시 과일 파시던 그 분이신가요?

cyrus 2017-10-18 14:33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과일 파는 가게에 알바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