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에서 뱀장어가 나오겠냐고

 

 

 

1

 

독서가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가 상황의 진리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 이러한 진리는 가장 명확하게 확인 가능하고 식별적인 원소들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식별 불가능하게 또는 '모호하게 포함된' 원소들의 집단화와 관련될 것이다. 상황의 진리는, 어떠한 진리라도, 언제나 그 상황에 대해 가장 비식별적이거나 또는 '유적인' 것과 관련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런 군집이 소집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원소들을 모아내는 모든 통상적인 방식에 대한 위반을 통해 발생할 것이다. 참된 또는 유적인 군집은 현 상태(status quo)와의 단절로 인해 일어나는 어떤 것이다.

_ 피터 홀워드, 알랭 바디우: 진리의 주체

 

출구가 없어 뵈는 이런 문단을 놓고 지나치게 오래 싸매는가 하면,


 

  네오 : 우리는 그 유명한 카카오프렌즈 탐정단이다. 스톤 찾으러 왔다. 문 열어.

  무지 : 그런다고 열리겠냐?

  (끼이이익)

  콘 : , 통했다.

  네오 : 거 봐!

_ 이람이, 최우빈, 카카오프렌즈 과학탐정단 4: 놀이공원

 

이런 글(그림)을 치명적으로 귀여운 애들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들여다보고 있기도 하고.

 

알랭 바디우와 카카오프렌즈 과학탐정단이라니 혁신적인 조합이 아닐 수 없군. 여기 주문이요, 아이스 영지버섯 달인 물에 휘핑크림 추가해 주세요.

 

 

 

2

 

요즘은 좀 만나기 어렵지만, 한때 전형적인 드라마 대사의 대표 선수로 치는 나다운 게 뭔데가 있었다. 이 말은 주로 너답지 않게 왜 그래따위의 말에 맞대어 등장한다. 말하는 사람은 보통 울분에 차 있다. 좀 더 냉정한 척할 때는 저 말 앞뒤로 정말 궁금해서 그래같은 장식이 붙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진짜 몰라서 물어본다기보다 어디 한번 네놈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 볼까- 하는 뉘앙스에 가깝고, 결국 뜨거운 울분이냐 차가운 울분이냐의 소소한 차이가 만들어질 뿐이다.

 

하지만 저 말을 할 현실적 기회는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 어쩌다 멍석이 깔려도 정작 내 입에서 나오는 저 말은 울분 100% 착즙 쥬스가 되지 못하고, 약간의 겸연쩍음,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 드라마적 클리셰를 지금 한 번 호들갑스럽게 내뱉어 볼 테니까 우리 같이 비웃어 보자는 공모 의식 같은 게 개입하면서, 나다운 게 뭔지에 대한 실질적 고찰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피식 웃음만 남을 뿐이다. 그래서 현실 속에서 나다운 게 뭐냐는 질문은 늘 혼자 하는 스무고개 놀이가 된다.

 

 

 

3

 

지금은 알라디너라는 게 정체성의 큰 조각이 되었지만, 처음 이곳을 기웃거리던 올챙이 syo는 나다운 게 뭔지에 대한 고민을 줄창 하고 있었드랬다. 이 동네 주민들은 좋은 리뷰를 생산하는 동시에 각자 저마다의 스타일까지 지니고 있었으니, 여기는 무슨 보고 배울 점과 내 글에 훔쳐 넣고 싶은 싱싱한 기술들이 산 채로 전시되는 수산시장 같았다. 이런 거는 이 사람 따라하고 저런 거는 저 사람 흉내 내면서 나 자신 알라딘 마을의 팔딱팔딱 활어가 되고자 몰래몰래 분투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에 안 건데, 뭐랄까, 안 되는 건 끝내 안 되는 법도 있다. 예를 들면, 정말 재미있는 글을 쓰는 친구를 흉내 내려고 노력해도 그건 늘 흉내에 그쳤고, 결국 나오는 건 작위적인 말장난에 절여진 뭔가 공허한 글뿐이었다. 저건 왜 저렇고 이건 왜 이럴까를 고민한 끝에 얻은 결론은 저건 저 사람이 써서 저렇고 이건 이 사람이 써서 이렇다는 것이다. 글은, 쓰는 사람이 두 팔을 뻗은 채 빙글빙글 돌면 만들어지는 양팔 너비 지름의 원 안에서 태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재미있는 사람이 글을 쓰면 그 사람이 가진 재미를 원의 중심으로 하여 어느 영역을 채우는 재미있는 글이 만들어진다. 다정한 사람이 글을 쓰면 그 다정함을 컴퍼스의 한 꼭지점으로 하여 빙글 한 바퀴 돌린 둥그런 영토 안에 다정함을 채운 글이 생겨난다. 그러니까 syo는 늘 재미있고 웃긴 글을 쓰고 싶었지만, 실제 syo가 워낙에 엄숙하고 고요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고 고절하고 숙연하고 진중하고 조용하고 우직하고 격조있고 사려깊고 묵묵하고 지조있고 청초하고 현숙하고 명철하고 웅숭깊고 품격갖춘 그런 성격이다 보니 재미있는 글을 자연스럽게 쓰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 원래 성격이 이런 걸 어쩌란 말인가. 깨달음이란 늘 왜 이리도 슬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재미있는 사람이 자기 삶과 자기 글의 이음매를 일치시키면 매끄럽고 거부감 없이 재미있는 글이 태어나겠지. 하지만 원래 그다지 재미없는 사람은 재미있는 글을 쓰겠다고 아등바등 애써도 그만한 성과물이 나오지는 않을 거잖아. 그런 나에게 나다운 글을 써보자고 스스로 다그치기야 쉽지. 그런데 나다운 게 뭔지 나야 너는 아니? ‘재미없는 성격이 나다운 건지, 아니면 재미없는 성격에 재미있는 글을 쓰려고 악착같이 구는게 나다운 건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내가 나를 잘 아느냐고…….

 

 

 

4

 

나 따위 이런들 저런들 세상은 노관심이겠지만 그러니까 더더욱 나라도 나한테 관심을 두자.

 

 

 

 

--- 읽은 ---

 


172. 꿈은, 미니멀리즘

은모든 지음 / 아방(신혜원) 그림 / 미메시스 / 2018


- 일독(1903xx)

- 재독(210523) 


결국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물건을 비우는 것이다. 물건을 비우기 위해서 먼저 마음을 비워야만 하는 삶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물건을 비우면 결국 도달하는 곳은 비워진 마음이다.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물건만 비우고, 정형화된 스타일의 미니멀리스트 흉내에 취하면 결국 미니멀리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힙한 이데올로기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일이 된다. 그러니까 최종적으로 가벼워지는 것은 집이 아니라 삶이어야 한다는 것, 뭐 그런 이야기인 것 같다. 비판보다는 다짐을 한 것으로 읽히는데, 읽는 입장에서도 다짐을 크게 하는 쪽이 낫겠다.

 

잠자리 한 마리가 소명의 시선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벌써 잠자리가 등장하다니. 한 해의 절반이 지나 버렸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또래 친구가 소유한 것, 회사 동료들이 가지고 있는 것, 그러나 자신은 갖지 못한 것과 여전히 부족한 점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잠시나마 머릿속을 비우는 데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았다.

  「무슨 생각해요?동우가 침묵을 깨며 소근거렸다.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안 해요.

  소명이 말했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정말로 머릿속을 텅 비워 볼 참이었다. 자신에게 그러한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소명은 지금 막 깨달았다.

_ 은모든, 아방, 꿈은, 미니멀리즘

 

 

 


173.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허새로미 지음 / 현암사 / 2019

 

다 알았다. 다른 언어를 공부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들에 대해 수도 없이 보고 들어서, 꼴랑 2개 언어(서울말, 대구말) 밖에 못하는 syo도 그 효용들을 나열하라고 하면 수두룩하게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외웠다. 하지만 그것들은 syo를 다른 언어 공부로 몰아가지는 못했다. 그만한 동력은 되지 않았다. 지금껏은 그랬다. 그랬는데 완전히 설복당했다. 설복이라기보다는 감복이라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외국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수만 개는 다 필요 없었다.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은 이유단 한 개가 생기는 그 순간 공부가 시작된다.

 

언어로 그의 본모습을 전부 알아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어디가 숲이고 어디가 늪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찾는 수밖에는 없다. 내 시시한 농담에 웃어주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해주었던 사람들, 이제 끝장이라는 선명한 감각조차 사치일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 내 장황하고 자신 없는 설명을 듣고도 나를 재워주고 내 짐을 들어주었던 사람들 덕에 나는 아주 멀리까지 갔다 왔고, 잘 지냈을 뿐 아니라 번영했고, 내가 누군지 확신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나의 길 찾는 능력과 주소 기억하는 능력을 대신하는, 말 찾아가는 능력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_ 허새로미,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174. 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스테판 바위스만 지음 / 강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

 

만만해지지 않았다. 애초에 이 정도면 만만해 보이겠다 싶은 것들을 골라서 써놨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래서 나쁘냐면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좋으냐면 그렇지도 않다. 독창적이냐면 그렇지는 않다. 수많은 그저 그런 책들 중 하나냐면 그렇지도 않다. 뭔가 많이 배웠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배울 게 없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지금 이따위 리뷰를 남기는 게 잘하는 짓이냐면 그렇지는 않다. 그렇지만 아무 의미가 없지도 않다. 이렇게밖에 리뷰할 수 없었냐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식으로 리뷰하고 싶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수학,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 수학 분야들에 관한 지식을 우리 뇌에 조금만 장착하면 세상을 훨씬 투명하게 조명할 수 있다. 매일 무언가를 계산할 필요는 없지만, 또 이건 열다섯 살 때의 나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마주치는 모든 것의 기초가 바로 수학이다. 수학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기괴한 모양의 건축물이나 일기예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나온 설문조사 결과나 각종 예측치, 검색엔진과 인공지능 등을 훨씬 제대로 통찰할 수 있다.

_ 스테판 바위스만, 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 읽는 ---

은유의 도서관 / 김애령

하루 15분 명상 / 혜거 스님

물리의 구조 / 이인호

민주주의는 실패했는가? / 나이에르 다산디

중세 1: 만화로 배우는 서양사 / 플로리앙 마젤, 뱅상 소렐

이제 꿈에서 깰 시간입니다 / 김불꽃

오늘부터 부러움에 지지 않고 살기로 했다 / 지그리트 엥겔브레히트

한번은 경제 공부 / 로버트 하일브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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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5-24 13: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3번 문단은 아무래도 거짓으로 가득하군요. 하지만 syo님 다운 글입니다. 아니 그렇다고 syo님이 거짓말쟁이라는 건 아니구요. 저한테 뜨거운 울분과 차가운 울분 중 무엇을 보여주실 건가요? ㅎㅎㅎ
그래서, syo님 이제부터 외국어 공부에 뛰어드시는 겁니까?? >ㅁ<

syo 2021-05-24 14:52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 저 나열된 단어 중에 사실상 진실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
독서괭님도 외국어 공부에 대한 동력이 필요하시면 허새로미 선생님 책 한 번 읽어보시기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한테는 즉효였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5-24 13: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개구리든 뱀장어든 아름다운 수상(또는 수륙양용?) 생물들 아닙니까? (몸에 좋고 맛도 좋다 할 뻔했…) 카카오든 진리 추구든 두루 읽는 독서 언제나 응원합니다. 저는 주디스 버틀러 펴 놓고 의식을 거의 놓은 상태로 왜 이걸 본다고 애쓰고 있어…하다가 다른 책 펴다가 반복하는 주말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뭔가 공감이 되네요…

syo 2021-05-24 14:54   좋아요 5 | URL
카카오 애들 귀여워요ㅠㅁㅠ
주디스 뭐 그런 책은 다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조금 부족할 때 그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읽는 거 아닌가요.
마치 지뢰찾기를 너무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북다이제스터 2021-05-24 15: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 올챙이 연못에서 엄청 많은 올챙이 보고
장어집에서 장어 엄청 먹었습니다. ㅎㅎㅎ
올챙이는 넘 귀엽고 장어는 작년 치어가 넘 많이 잡혀 가격이 평소 반가격도 안 되었습니다. ^^
둘다 제때인 지금 보고 또한 드시길 추천드립니다. ^^

syo 2021-05-25 13:13   좋아요 1 | URL
아니 이런 생활꿀정보 ㅎㅎㅎ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올챙이 본 지도 참 오래되었네요. 어릴 적 그 시절에는 백만마리씩 보고 그랬는데..... 아 옛날이여 ㅠ

새파랑 2021-05-24 15: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님 처럼 재미있게 글을쓰고 싶어도 누구나 저렇게 쓸수 없을거 같아요. 역시 글쓰기도 재능이 중요한가봐요~!! 근데 적어놓으신 성격이 다 syo님 성격이 맞는지 의문이네요 ㅎㅎ 다양한 독서 범위에 놀라고 갑니다^^

syo 2021-05-25 13:16   좋아요 1 | URL
제 성격 ㅎㅎ글쎄요, 저다운 게 뭘까요? ㅎㅎㅎㅎㅎㅎㅎ
저야 이 책 저 책 펼쳐놓고 기웃거리다 말았다 하는 뜨내기놈이고, 새파랑님이야말로 꾸준히 읽고 빠짐없이 쓰시는 놀라운 독서가시지요^-^

행복한책읽기 2021-05-25 0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저 모두가 다 syo다!!! 새파랑님처럼 이런 글재주는 타고난다에 나도 한표!!^^ syo님 이젠 명상가에 입문하시려구요. 독서 지평이 참으로 넓어 나 또한 화들짝 놀라 불에 덴 듯 발도 못 붙이고 후다닥 달아남다~~~^^

syo 2021-05-25 13:19   좋아요 2 | URL
언제나처럼 읽기님의 과찬 상차림 ㅎㅎㅎ 배터진다 😂
잠 못 드는 밤에 대처하려고 명상 책을 기웃거려봤지만, 역시 잠 안 올 때는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철학책이 직빵이더라구요. 명상은 아마 저걸로 안녕이지 않을까.... ㅎㅎㅎ

얄라알라 2021-05-28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톤, 콜라, 겨울 옷 정리라는 엇박^^
˝엇˝이라고 생각해서 그렇지 사실 그런 의도 안된 행위나 충동적 선택들이 ˝자연스런˝ 박일지도 모르겠네요^^


˝비린내 안나는˝ 수산시장^^




syo 2021-05-29 12:43   좋아요 1 | URL
생각이라는 게 없는 인간 같습니다 가끔 보면.
이거 하다가 저거 눈에 띄면 어,
저거 하다가 또 그거 눈에 띄면 어,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뭔가 처음에 하려 했던 것들은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뜻밖에 이런저런 해놓은 거 많은 하루였다- 하는 희한한 결론이 나고.....

공쟝쟝 2021-06-01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syo는 늘 재미있고 웃긴 글을 쓰고 싶었지만, 실제 syo가 워낙에 엄숙하고 고요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고 고절하고 숙연하고 진중하고 조용하고 우직하고 격조있고 사려깊고 묵묵하고 지조있고 청초하고 현숙하고 명철하고 웅숭깊고 품격갖춘 그런 성격이다 보니 재미있는 글을 자연스럽게 쓰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아, 원래 성격이 이런 걸 어쩌란 말인가. 깨달음이란 늘 왜 이리도 슬픈지?˝ <--- 재미 없어 흥

syo 2021-06-01 17:03   좋아요 1 | URL
제 말이 바로 그거에요. 재미없다는 거.

그러니까 왜 재미가 없냐하면 그게 syo가 워낙에 엄숙하고 고요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고....

공쟝쟝 2021-06-01 17:42   좋아요 2 | URL
아놔 ㅋㅋㅋ 저격글 써야지 ㅋㅋ
 

 

모양의 모양 8

 

 

 

내가 사랑해, 하면, 여자친구는 사랑해, 한다. 나는 그게 참 좋다. 나도, 하지 않는 것. 나도 사랑해, 를 고르지 않는 것. 나는 우리가 그저 사랑할수 있을 뿐, 결코 나도 사랑할수는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하나의 사랑해가 건너가서 깨끗한 사랑해와 닿을 때, 나는 우리가 지금 어떤 거짓말도 하고 있지 않다는 거짓말 같은 말을 기꺼이 믿을 마음이 되고, 우리가 무엇도 착각하지 않고 있다는 착각에 선뜻 빠져들 용기가 생긴다.

 

나도 사랑한다는 말은 항상 거짓말이다. 거짓말인 줄도 모르고 하게 되는 선하고 귀여운 거짓말이다. 모든 사랑은 지문이나 홍채처럼 저마다 달라서 사랑 인식 방식으로 핸드폰을 잠가도 된다. 아니다, 그건 안 되겠다. 사랑이 지문이나 홍채와 다른 점은 시시각각 그 조성이 변한다는 것. 너를 향한 어제의 내 사랑은 너를 향한 오늘의 내 사랑과 완전히 같지 않기 때문에, 사랑으로 잠근 핸드폰은 그 즉시 영영 풀 수 없는 핸드폰이 된다. 이렇듯 내 사랑도 순간순간이 다른데, 네가 하는 그 사랑을 나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많은 뜻을 지닌 다의어는 사랑이라서, 그 마법의 단어는 발음될 때마다 새로운 의미 하나를 사전에 등재하는 것이다.

 

어디 사랑만 그럴까. 행복도 그리 다르지 않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오늘따라 그들은 먹고 싶은 것이 같고, 가고 싶은 데가 같다. 누가 보기에도 우리는 커플입니다, 하는 옷을 약속도 없이 맞춰 입었다. 신발은 사이즈만 약간 다르다. 손을 잡고 길을 걷다 문득 한 사람이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면 상대도 때마침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는 중이다. 그럴 때마다 입을 맞추었더니 모든 길모퉁이에 추억이 남았다. 참다 참다 불쑥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이쪽이 를 지나 의 입구에 들어설 때 저쪽도 의 문을 열고 나온다. 조금 천천히 말을 맞추었더니 에서 두 개의 사랑이 손을 맞잡을 수 있었다. 오늘은 무슨 날인 것만 같다. 둘은 더없이 서로를 원하고 어느 쪽도 오늘은 홀로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유독 천천하다. 카드키를 쥔 손도 유독 떨린다. 애써 차분하게 옷을 개켜 놓고, 함께 샤워하며 살짝살짝 서로를 건드린다. 그리고 하얀 시트 위에 한 사람이 올라가고 그 위에 한 사람이 올라가 서로를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불이 날 기세였는데도, 어쩐지 그들은 천천히 오래오래 서로의 눈을 올려다보고 내려다본다. 오늘 참 신기했어, 그치. , 맞아. 오늘은 정말 네 맘이 다 내 맘 같았어, 그치. , 그랬어. 지금도 그렇지, 그치. , 지금도 그래. 나는 너무 행복해. 나도 너무 행복해. 지금 네 맘을 다 알 것 같아. 내 맘이 네 맘이니까. 우리 같은 생각 하고 있는 거지, 그치. , 그러니까 이제 말은 그만하고…….

 

두 사람은 한 사람같이 오늘을 보냈고, 한 개의 공으로 기나긴 랠리를 이어간 테니스 선수들처럼 하나의 마음을 끊임없이 주고받은 듯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지금 행복하다. 상대가 느끼는 그 행복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건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요즘 A는 되는 일이 없었다. 위태위태했던 프로젝트는 결국 클라이언트의 변덕으로 엎어졌다. 처음부터 A가 반대했던 일이었다.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다며 자기만 믿으라던 부장은 말을 바꾸었고, 프로젝트의 실패에 A의 지분이 크다는 소문을 내고 다닌다. 지난 반기 고과가 예상보다 낮게 나왔는데 이번 반기도 반등은 어렵겠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집에는 당장 돈이 들어갈 환자와 학생이 하나씩 있다. 열심히 일하지만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빚내서 집 사는 꼴 보니 조만간 큰일 치겠다 싶었던 친구가 집값 상승으로 앉은 자리에서 빚을 다 청산하고도 연봉의 몇 배를 남겼다는 소식이 들린다. 주식과 코인을 이야기하며 세상을 정복한 듯한 표졍을 짓는 친구도 있다. 반면 A의 통장 잔고는 조금씩 내리막을 타고 있다. 


그렇지만 A는 지금 더없이 행복하다. B와 함께 있는 이 순간 세상 모든 근심이 녹아 사라진다.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B의 눈빛 속에 역시 그만큼 행복해 보이는 A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지금 우리의 세계는 여기 딱 이 공간뿐이야, 이 안에는 행복한 나와 행복한 너만 있어. 다른 것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AB를 느끼느라 다른 그 어떤 것도 느낄 여력이 없다. A에게 행복이란 두 사람을 제외한 세상 모든 것들에 괄호를 치는 순간에 느껴지는 충만한 감정이다.

 

사실은 B 역시 우울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중이었다. 터널의 입구는 아마도 오래 만나던 연인이 제일 친한 친구와 손을 잡고 B의 인생에서 퇴장해 버린 바로 그 지점이 아니었을까, B는 생각했다. 그때부터 세상이 내미는 모든 손이 B에게는 칼날을 숨긴 손처럼 보였다. 순수한 호의나 배려였을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받아들이더라도 오래 망설인 뒤였다. 망설이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손 내미는 세상은 없었다. B는 자기가 자초한 고립 속에서 낫지도 않는 상처를 핥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것 봐, 결국은 다 이렇게 될 거였어, 끝까지 같이 가는 사람은 없어, 변하지 않는 눈빛은 없어. 웅크리면 웅크릴수록 B는 작아졌다. 작아지고 작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B는 세상에 자기 자리가 없어졌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B가 어디에 있건 세상은 하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내가 없어져도 마찬가지겠지? B는 그렇게 조금씩 없어지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B는 지금 더없이 행복하다. A와 함께 있는 이 순간 이 세상에서의 내 자리를 되찾은 것만 같다. A와 함께 있으면 세상이 둘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을 위해 많은 기적과 우연을 준비해주는 것 같다. 이제는 가끔 혼자 있는 시간에도 분명히 세상에 속해 있음을 느낀다. B에게 행복이란 두 사람을 위한 자리가 세상에 버젓이 마련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충실한 감정이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행복하지만 같은 행복 속에 있다고 착각한다. 그 착각은 서로를 더 가까이 붙들어 놓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진실보다 가치 있다. 우리에게 지금 우리가 같은 마음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따져 밝혀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건 불가능한 만병통치약을 만들어 보겠다며 효과 있는 플라시보를 공개하는 짓에 가깝다. 효과, 그게 전부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냥 그렇다는 믿음, 내가 믿는 것을 너도 믿는다는 그 믿음의 믿음, 여러 겹으로 엉키어 있어서 허물려고 해도 도무지 쉽지 않은 믿음의 중첩, 그냥 그런 것들이다.

 

 

 

--- 읽은 ---

 


168.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

 

너무 한낮의 연애를 처음 읽었을 때쯤의 내 연애는 너무도 아니고 딱히 한낮도 아니었던 것인지, 별 감흥 없이 으응 좋네 으응 하고 넘어갔다. 좋은데 난리칠 정도는 아닌데? 그렇게 미지근하고 떨떠름한 기억으로 김금희의 이름을 묻어두고 살던 어느 날, 뜻 없이 다시 읽는데 눈물이 또르르 흐르더니 이내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쩐지 목놓아 오열하면서 앞으로는 김금희라고 부르지 않고 금희누나라고 부르겠다는 맹세를 하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집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감상의 극적 대전환을 일으킬 만큼의 내적/외적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되었던 것. 나는 소설을 잘 못 읽는 것인가, 세차게 고민했으나 그냥 그렇게 되먹은 것으로. 그러니까 대체로 한 번 읽어서 좋았던 소설이 다시 읽으면 너무 좋은 소설이 되어 자꾸 작가님을 형아 누나 상영이로 부르게 되는 병에 걸린 것입니다.

 

수록작 중 하나인 기괴의 탄생<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0>에서 처음 만나 읽었을 때, 이게 뭐야, 금희누나가 왜 이랬어, 누나……. 이런 느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시 읽으니까 꽤 좋았다. 표제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역시, 한 번 읽고 덮어두었다가 며칠 뒤에 다시 읽었더니 훨씬 좋았다. 일독에서 아, 별 넷인건가- 했다가 재독으로 역시, 그럼 그렇지, 금희누나가 잘못할 리 없어, 잘못은 모두 syo에게 있어- 하며 웃는 낯으로 당당하게 별 다섯 꽝꽝.

 

그나저나 이런 식이면 앞으로 책을 무조건 두 번씩 읽어야 한단 말인가. 얼른 이 병을 고쳐야 한다.

 

희부윰’, ‘형질이라는 단어를 세 번 이상 만난 것 같다. 누나가 근래 좀 꽂힌 듯.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하고 묻자 아이는 박자를 맞춰가며 예준아, 안녕, 방학 잘 보내,라고 대답했다.

  "그건 어제 편지에도 썼잖아. 다른 말 없어?"

  나는 아이가 다른 단어들을 떠올리기를 재촉하며 기다렸다. 아이는 입술을 내밀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친구에게 정말 하고 싶은 다른 말이 없는지, 친구에게 묻고 답을 듣고 싶은 특별하고 색다른 말은 없는지 고민하면서. 얼마 동안 생각하던 아이는 없어,라고 말했고 나는 몇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안녕이라는 단어를 점점이 찍어 색칠공부 책에다 썼다. 안녕이라고, 안녕하라고, 잘 보내라고, 그러다 자꾸 붙들려들어가 생각하게 되었던 원미우동을 떠올렸고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게는 어떤 기회가 있었던 걸까. 그러니까 그건 내가 어떻게 다르게 흘러가게 할 수 있는 여름이었던 걸까. 죄의식이 밀려올 때마다 강하게 부정해왔지만 아이의 부탁으로 그 말을 적어보던 그 순간, 나는 아이가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녕,이라는 말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반복해서 물을 수 있고 그렇게 물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 비록 이제는 맞은편에 앉아 있지 않은 사람에게라도 물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것이 일산의 여름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걸.

_ 김금희,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169. 매일 10분 왕기초 영문법의 기적

키 영어학습방법연구소 지음 / 키출판사 / 2017

 

나에게 반드시 구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심심파적 삼아 후루룩.

 

 

 


170. 어른의 교양

천영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1

 

교양이 없어서 교양 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교양 없이 구는 인간들은 교양 없이 굴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양 없이 구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양있는 어른이 되는 방법은 교양을 쌓는 것보다 어디서나 교양 있게 굴어야지 하는 마음을 먹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세상에는 나를 빡치게 하여 교양이고 나발이고 저걸 그냥 확 그냥 막 그냥 하게 만드는 인간이 천지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도 교양있게 굴라고? 그러나, 내게 교양 없이 구는 인간들도 붙잡고 물어보면 그건 네가 먼저 나를 빡치게 하여 교양이고 나발이고 개나 줘버리고 싶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똑같다. 그러니까 그런 경우에도 교양 있게 날카롭고 교양 있게 당당한 인간이 되려는 굳은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결국 교양을 쌓긴 쌓아야 한다. 그러니까 교양->교양있는 사람2단계가 아니라 교양->교양에의 의지->교양있는 사람이라는 3단계 구조임을 명심하면서 교양을 쌓아야겠다. 가운데 과정이 없으면 교양이란 결국 교양 없는 짓을 똑똑하고 폼나게 하기 위한 탄약보급 정도에 그칠지도 모른다.

 

이 책이 타인에게 교양있게 구는 법을 가르치는 책은 아니다. 저 교양은 그런 교양이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요즘 syo는 모든 철학이 결국 윤리학/정치학 같고, 윤리학/정치학이 되지 못하는 철학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다.

 

지성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본다. 어딘가에서 한 번쯤 들어본 풍월, 책으로 익힌 이론 등이 얽히고설켜 그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틀이 된다. 그리고 그 틀을 통해 얻은 지적 우월감으로 남을 가르치고 이끌려고 한다. 그래서 배운 사람일수록, 전문 분야가 있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더 많은 편견과 아집에 싸여 있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_ 천영준, 어른의 교양

 

 

 


171. 팬텀 이미지

정지돈 지음 / 최지수 그림 / 미메시스 / 2018

 

대한뉴스에서 바버라 존슨이 상을 받고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을 봤다. 정장을 입은 공무원이 바버라 존슨과 아서 존슨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섰다. 아서 존슨은 대머리였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콜라를 마시는 미셸 푸코 같아요. 아서 존슨의 사진을 본 상우가 말했다. 상우는 경주에 가고 싶었지만 경주 맛집을 검색한 뒤 싫어졌다고 했다. 한기는 경주까지 뒤로 걸어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왜요? 길티 플레져예요. 한기가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묻자 한기는 제 길티 플레져는 뒤로 걷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무슨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명을 요구하자 한기는 죄송합니다, 제가 이상한 거 같아요, 은진이도 저보고 아무 말이나 하지 말래요, 라고 말했다. 은진은 한기의 아내다. 나는 한기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에 가끔 놀란다.

_ 정지돈, 최지수, 팬텀 이미지

 

바로 이거다, syo의 제한된 상상력과 고착된 장르 포용능력 때문에, 정지돈을 읽으면 매번 대체 이 문장들이 무슨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명을 요구하고 싶지만, “죄송합니다, 제가 이상한 거 같아요라는 대답 말고, 아니 넌 대체 어떻게 이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니, 라는 타박이라든지, 이해요? 당신은 이해가 무엇인지 진정 이해하고 있습니까, 하는 역공을 당할 것 같아서 물어보지도 못하고, “아무 말이나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입을 다문다. 그러면서도 계속 정지돈을 읽는 것이 나의 길티 플레져인가? 하여간 뒤로 걸어서 경주까지 가는 기분이다.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고, 내가 읽었다고 느끼(기만 하)는 것들이 휙휙 내 앞으로 지나가는 기이한 독서.

 

 

 

--- 읽는 ---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 허새로미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 오혜진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어슐러 르 귄

메리, 마리아, 마틸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무사시노 외 / 구니키다 돗포

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 스테판 바위스만

알랭 바디우: 진리를 향한 주체 / 피터 홀워드

핏빛 자오선 / 코맥 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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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5-20 20: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사랑.... 이거 요즘 이마트에서 한 근에 얼마나 해요?
(한 20년 전에 이렇게 물어봤다가 니주가리... 옥수수 다 나갈 뻔한 적 있는데, 아직도 궁금해서 똑같은 걸 물어봅니다. 큰 용기를 내서 말입죠. 흑흑...)

syo 2021-05-20 20:34   좋아요 3 | URL
니주가리 옥수수 구성지다ㅋㅋㅋㅋㅋ
저도 고등학교 다닐 때 많이 쓰던 어휘네요, 니주가리. 아, 아련하다.....

사랑 그게, 사실은 파는 사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더라구요.
제가 팔고 산 가격 알려드려봐야 폴스타프님이 사실 때는 완전히 다른 값일 것 같아서 큰 의미 없겠어요 ㅋㅋㅋㅋ

청아 2021-05-20 2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후루룩 맛있게 잘 먹..읽었어요ㅋㅋㅋㅋ(주요 뽀뽀대상 노견츄인사람)흙흙

syo 2021-05-20 21:00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 멍뭉이는 사랑입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1-05-20 2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팬덤이미지가 처음 읽는 정지돈이었는데 생각보다 순한 맛이라 다행이었어요. 오한기를 먼저 읽은 덕에 웃을 수 있었다…

syo 2021-05-20 21:02   좋아요 2 | URL
팬텀이미지는 짧아서, 정지돈 선생님의 드리블에 세게 안 말려들 수 있습니다.
저도 웃겨서 저 부분 따온 거긴 한데, 갑작스러운 한기 어택에 웃으려면 사전지식이 필요했네요....

scott 2021-05-20 2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일기는 일기장에 연인에게는 러브레터로만 멍!(ᐡ-ܫ•ᐡ)

syo 2021-05-20 22:55   좋아요 2 | URL
댓글을 오래 생각해봤습니다.
일단 제가 쓴 글이 어딘가 스캇님을 불편하게 해드린 것 같은데, 그것부터 사과하겠습니다.
그게 어딘지를 알려주시면 좀 더 구체적으로 사과할텐데, 그걸 몰라서 그냥 추상적 사과가 되었네요;;

그냥 이 글 자체가 불편해서 알라딘에서 치워버리라는 의미시라면, 그건 조금 어렵겠습니다.

이 글은 제 연인한테 하는 말도 아니고, 제 연인한테 해야하고 하고 싶은 말들은 음성이 되었건 편지가 되었건 잘 전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처음부터 이렇게 서재에 내놓으려고 쓴 글이라 형식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주제나 내용이 걸리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다음부터 이런 글을 최대한 안 쓰는 방향으로 생각해 볼게요. 글 쓸 게 절반 이하로 줄어들겠네요..... 으아....

붕붕툐툐 2021-05-20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 이야기 좋아요~😍
syo님은 능력자! 어쩜 제가 볼 때마다 여자친구가 있어요?ㅎㅎ

난티나무 2021-05-20 23:52   좋아요 0 | URL
쇼님은 다능력자이신 거죠......@@

syo 2021-05-21 08:4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네요, 툐툐님이 보실 때마다 여자친구가 있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몇 명 되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5-21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 이렇게 연애를 진심으로 온 열과 성을 다해 하는 거.... 사랑해라는 말 하나에서도 의미와 거리를 찾는...
어쨌든 이렇게 사랑을 하니 요즘 syo님 글이 막막 물이 올라 갈수록 좋아지는것인듯 하네요.

나이들어 너무 오래된 사랑은 ˝사랑해˝라고 하면 짧게 받아칩니다. ˝나도˝ 이유는 길게 말하는 것도 귀찮아서...
때로는 사랑해라고 하는데 너무 짧으면 좀 미안해서 그래 나도 사랑해하는데 둘다 별 영혼은 없습니다.
오히려 ˝악 자기야 등 간지러워. 사랑의 손길로 긁어줘˝할때 진심 진심 그 손길에 사랑을 느낀다죠.
사랑에서도 나이가 든다는건 조금은 슬픈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syo님에게 질투의 눈길 쬐끔 보냈습니다. ^^

syo 2021-05-21 08:52   좋아요 0 | URL
˝사랑의 손길로 긁어줘˝ 뭔가 절묘합니다 ㅎㅎㅎ
바람돌이 님은 조금 슬픈 것 같다고 말씀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건 그거대로 색깔있는 사랑 같아서, 바람돌이님네 사랑 이야기를 가끔씩 들을 때마다 재미있어요^-^ 많은 과정들을 함께 다 넘어서 나는 가본 적 없는 어딘가에 도착한 사랑에 대한 질투의 눈길을 이쪽에서도 가끔 보냅니다 ㅎ

유부만두 2021-05-21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섬세하게 떨리는 글을 찬찬히 따라 읽었어요. 그러니까, ... B가 사그라지기 전에 A와 만나서 다행이에요 싶다가...응? 이거 불륜이에요? 하고 묻는 아줌마가 여기 있습니다. 한심하다고 하기 없기.

syo 2021-05-21 09:00   좋아요 0 | URL
응? 왜 그렇게 생각하셨지? 하고 다시 읽어봤더니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한심하게 생각할 이유가 하나도 없네요, 으하하하. 특별히 그런 상황을 준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도 읽히겠다 싶네요 ㅎ 망했어.....

유부만두 2021-05-21 13:07   좋아요 0 | URL
아?! 아니에요! 그럼 또 어때요?
올리브 키트리지에도 불륜은 천지삐까리에요! ㅋㅋㅋ
 

 

허무의 할부

 

  


1


공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2

 

마지막 졸업 이후로 누구도 나를 공부시키지 않았다. 이제 공부를 하려거든 알아서 해야 했고, 잘하고 있는 건지 확인할 수 있는 중간고사도 없었으며,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더없이 힘들었다. 공부는 평생 하는 거야- 하는 허망하고 위압적인 말, 이게 다 공부야- 하는 기만적이고 자포자기적인 말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 정작 내가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누구도 도움 되는 말을 해주지 않는 깜깜한 시대가 도래했다.




3

 

뭐하냐고 물어오면 공부한다고 대답하는 때가 많았다. 서른이 넘어서도 그랬다. 전 여친은 선생님 남자친구는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늦게까지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며 웃었고 나를 웃겼는데, 실은 그게 웃을 일이 아니었다는 걸 우리 두 사람이 이미 알았다. 늦게까지 공부하는 일은 훌륭한 일도 아니었고, 웃어넘길 일조차 아니었다.

 

사실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 길고 절절해서공부한다는 줄임말을 대신 쓰는 일도 많다. 그럴 때 공부는 자체로 어떤 목적이 아니라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할 터널 같은 것이 된다. 터널은 원래 어둡고, 그 속에서 울면 울음소리가 크게 울린다. 그러면 꼭 공부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아닌 나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감추기 위해 찍어 바르는 두터운 분 같다.




4

 

공부가 업이고 본분이던 시기에는 그렇게 학을 떼던 사람들도, 단지 그때를 지나왔다는 이유만으로도 공부라는 낱말의 무늬에 어떤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마음 공부, 인생 공부, 돈 공부…… 세상에 있는 이렇게 많은 공부들이, 왜 공부로 불리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마음 연구, 인생 탐구, 돈 학습이 아니라 다 공부라는 꼬리를 달고 있는 이유. ‘공부만큼이나 사람들을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개구리로 만드는 마법의 단어가 없다. 공부는,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때 하고 싶고 또 해야 하며 그래야 남은 인생이 어떤 방식으로든 아름답고 향기로워진다며 끊임없이 자기에게 거는 주문의 고갱이다.




5

 

나도 나만의 공부가 가지고 싶지만, 해 아래 더는 새것이 없는 법이어서, 세상 모두를 깜작 놀래킬 독창적이고 신통방통한 공부를 찾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그저 이 시대의 이런 공부, 저 사람의 저런 공부 가운데 닮고 싶은 것들을 조각조각 훔쳐내 서툰 바느질로 기워낼 수 있을 따름.


 

 

소크라테스 이전에 나타났던 그리스 사상의 또 다른 조류에 대해서도 철학 이전의 철학을 논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적 정신, 교육과 양성에 대한 욕망, 그리스인들이 <파이데이아paideia>라고 불렀던 것에 대한 근본적인 요구와 관련된 이론과 실천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호메로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그리스 이래로 청년 교육은 귀족 계급 밑 <아레테>를 지닌 자들의 크나큰 관심사였다. 아레테는 고귀한 혈통의 후예들에게 요구되었단 탁월성으로, 훗날 철학자들에게서 덕, 다시 말해 영혼의 고매함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는 도덕적 훈계를 모아 놓은 테오그니스의 시를 통해 이러한 귀족적 교육에 대해 알 수 있다. 이 같은 교육은 사회적 집단 체제 내에서 어른들에 의해 주어졌다. 이 안에서 젊은이들은 신체적 힘, 용기, 의무감, 전사에게 걸맞은 명예심 등의 자질을 고양하는 데 힘썼으며, 그들이 귀감으로 삼았던 위대하고 거룩한 조상들은 이 같은 자질들의 화신이었다.

_ 피에르 아도,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존재양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학생들은 학습과정에서 전혀 다른 특질을 보인다. 우선 그들은 첫 강의부터 백지상태로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 강의가 다루는 주제를 미리 고찰하고 특정한 문제와 의문에 대해서 골몰한다. 그들은 강의주제를 놓고 이미 씨름한 바가 있어서 그것에 흥미를 느낀다.

  그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낱말과 사상을 수신하지 않고, 경청하며, 듣는 데에 그치지 않고 능동적이고 생산적으로 수용하고 대응한다. 그들이 들은 것은 그들 고유의 사유과정을 자극한다. 새로운 의문, 새로운 관념, 새로운 전망이 떠오른다. 경청행위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과정이다. 학생은 선생이 말하는 어휘들을 수용하고 그것에 대응하면서 생기를 얻게 된다. 그가 습득한 것은 단순히 집으로 들고 가서 암기할 수 있는 그런 지식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학생은 자기 나름대로 충격을 받고 변화한다. 강의를 들은 후에는 그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_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6


공부해서 뭐가 되는 것보다, 공부하는 뭔가가 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공부하기 위해서 공부 거리를 찾아다니는 삶을 한심하게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숨어 지내는 지하생활자가 나쁜가? 하나의 삶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 다른 형태의 삶을 공격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다수가 선택한 삶의 형태는 힘이 세서, 잔 펀치 한 방으로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도덕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모두 그들과 함께다. 공부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은 공부 속으로 더 깊이 더 멀리 도망친다.

 

하지만 어떤 삶을 선택해도, 언젠가 반드시 도망쳐야 하는 때는 온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도주로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도주로는 돈을 주고 살 수는 없다. 그저 돈을 주고 샀다고 착각할 수는 있다. 착각이 달아나는 순간 허무가 찾아올 것이고, 인간이 감당해야 할 허무의 총량은 어마어마하여, 한순간에 허무가 총량으로 육박해 올 때 삶을 견뎌낼 수 있는 초인은 몇 없을 듯하다. 범인은 매일 조금씩 그 허무를 나누어 감당하는 편이 좋을 수 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런 길을 걷는 것 같기도 하다.

 

 

 

--- 읽은 ---

 


165.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시라이 사토시 지음 /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

 

‘~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개념체계들은 모두가 다 삶의 무기고다. 베지 않기 위해 태어난 칼이 없듯이, 무기로 쓰이지 않기 위해 태어난 체계는 없다. 철학 역시 마찬가지라서, ‘삶의 무기가 되는이라는 수식어는 사실 중언부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런 말이 울림을 가지고 소비자에게 다가오는 건, 개념들이 삶과 유리된 추상적이고 허망한 것들이라는 인식이 세상을 정복했다는 뜻이겠다. 그래서 개념과 삶을 다시 연동시키려는 시도는 자체로 가치가 있다. 단지 저자가 이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그간 읽은 무기운운하는 제목의 책들은 대체로 허접했다. 승진, 혁신, 판매량 제고, 신임 얻기, 자기 표현, 인정 받기…… 이른바 성공의 요소이거나 증거가 되는 것들을 취득하여 경쟁 사회에서 남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런 것을 이라고 상정하고 쓴 책들 속의 무기, 삶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 쓴 책 속의 무기들과 같은 원료를 가지고 만들어도 모양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 무기를 휘두를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그러니까 이런 제목의 책을 읽을지 말지 저울질 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인 것이다. 이 책은 자본론이라는 무기로 신자유주의라는 삶의 모델을 겨냥한다. 신자유주의가 곧 우리네 삶인 이 세상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사실은 사실이므로, 그 삶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어떤 무기를 제공하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독서의 방향은, 자본론을 어떻게 휘두를 것인가 보다, 자본론을 무기로 쓰는 저자의 방식을 공부해서 자본론이외의 책도 무기화하는 역량을 획득하는 것이 되겠다. 

 

자본의 종속 공세에 아무 반격도 하지 않으면 인간의 기초 가치는 점점 떨어질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점령한 과거 수십 년간 그 일이 진행되었다. 인간의 기초 가치를 낮추고 자본에 봉사하는 능력으로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리고 능력이 없으니까 자네의 임금은 이게 다야. 이걸로 가치에 준한 등가교환을 한 거니까 불만 없지?’라고 압박한다. 그 공세에 맞서려면 인간의 기초 가치를 믿어야 한다.

  우리는 사치를 더 누릴 권리가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사치를 누리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풍요로워야 한다. 우리는 모두 그럴 자격이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종속되고 그 가치관에 길든 주체는 그 점을 잊어버린다. 이 망각을 강제하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성과였을지도 모른다.

_ 시라이 사토시,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166.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읽기 수업

박균호 지음 / 다른 / 2021

 

10대 때를 생각해봤다. 이 책 속의 고전들은 당연히 그때도 있었고 역시 당연하게 그때도 고전이었다. 문제는 접근성이어서, 10대의 syo는 이런 고전들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걔들은 당최 읽고 싶지 않게 생겼었다. 읽고 싶지 않게 생긴 책들을 일단 읽게 만들려면, 누군가 미리 읽고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해 꺼내놓은 책들, 그러니까 책의 책이 필요하다. 20대의 syo가 독서의 판을 키우고 영역을 넓힐 때마다 도움이 되었던 책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고전을 모르는 아이들, 혹은 고전에 고전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syo는 체감에 가까운 예감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에서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무리 박균호 선생님이 독서의 달인이라고 해도, ‘책의 책은 어떤 책을 읽은 이의 가치관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책에서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의지, 생각거리를 발굴해내는 눈, 내가 읽은 책의 어느 부분을 얼마만큼 골라 내가 쓸 책에 실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손가락, 그 모든 것에 작가의 세계관이 묻어 있고, 그 결과 모든 책의 책은 하나의 예시에 그친다. 그렇지만 두꺼운 책보다 얇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 어차피 다 기억하지도 못할 거, 정리된 중요한 것들만 읽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겠지. 모르긴 몰라도 박균호 선생님 역시 이 책을 쓰시며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을 듯. 어떻게 아이들을 고전 앞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들 것인가. 그건 참 중요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질문이다.

 

 

 


167.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박병철 지음 / 필로소픽 / 2014

 

- 일독(xxxxxx) / 재독(xxxxxx) / 삼독(1712xx) / 사독(191101)

- 오독(210516)

 

딱히 이 책이 위대하여 다섯 번이나 읽은 것은 아니다. 그저 멍청한 syo가 있었을 뿐. 확실히 비트겐슈타인 개론서 가운데 가장 쉽다. 그래서 까먹고 다시 보고 까먹고 다시 본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봐야지. 다섯 번은 진심 과했다.

 

 

 

--- 읽는 ---


팀 하포드의 경제학 팟캐스트 / 팀 하포드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 오혜진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 김금희

시녀 이야기 / 마거릿 애트우드

생전 유고 ­ 어리석음에 대하여 / 로베르트 무질

을의 민주주의 / 진태원

문명과 혐오 / 데릭 젠슨

어른의 교양 / 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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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6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티나무 2021-05-1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 펀치 한 방에 치명상을 입지 않기 위해!!!

syo 2021-05-16 20:01   좋아요 0 | URL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잔 펀치가 진짜 무섭잖아요.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빈사....

북다이제스터 2021-05-16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구는 단어 무게가 만만치 않아 상대적으로 편한 공부란 단어를 사용해 봅니다. ^^
오늘도 세상이 뭔지 열심히 공부해 봅니다. ㅎㅎ

syo 2021-05-16 20:02   좋아요 0 | URL
북다님께 공부와 연구가 그런 개념이라면, 사실 북다님의 읽기 쓰기는 이미 연구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ㅎㅎㅎ

뒷북소녀 2021-05-1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번에 해당하는 사람 여기 한명이요!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게 하나도 없어서요.

syo 2021-05-20 20:02   좋아요 0 | URL
사람이 다 비슷한가 봐요.
그럴 때는 소소하게나마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ㅎㅎㅎㅎ
힘내자구요^-^

유부만두 2021-05-21 0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철학책을 몇 권 샀잖아요. 샀다고요. 그런데 펼치기 까지 또 몇 년 걸리겠죠, 아마.

syo 2021-05-21 09:15   좋아요 1 | URL
제 책장에도 2011년에 호기롭게 구매하고 10년째 책등만 쓰다듬느라 빛이 바랜 철학책이 한권 있습니다. 그치만 이번 생에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허망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초딩 2021-06-04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으로의 초대 담고 갑니다 ^^
그리고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syo 2021-06-04 23:3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신나네요^-^>

새파랑 2021-06-0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늦었지만 완전 축하드려요. 독서 천재 syo님~!!

syo 2021-06-04 23:3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천재 syo‘는 형용 모순입니다.
syo의 s가 stupid의 s라는 믿을만한 소문이 있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파랑님 ㅎ

이하라 2021-06-0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syo 2021-06-08 12:48   좋아요 0 | URL
ㅎㅎㅎ 늦었지만 감사드립니다^-^

초란공 2021-06-0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공부왕 syo님 축하드립니다~ 생계와 도주로 사이를 고민하는 요즈음입니다.. ^^;;

syo 2021-06-08 12: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란공 님.
초란공님의 고민이 글로 화하여 제게 많은 배움이 되겠지요. 기다리겠습니다^-^
 


영광과 광영 사이에서

 

 

 

1

 

빨래가 끝난 수건을 탁탁 털어서 건조대에 너는 중이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징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오, 저놈의 재난 문자는. 수건 다음에는 바지, 바지 다음에는 속옷, 속옷과 속옷 사이 공간에 양말……. 좋아, 건조대 테트리스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군. syo는 이렇게 생활 속 소소한 만족을 통해 자존감을 저금하는 중이다.

 

그랬는데, 한방에 자존감 로또가 터졌다. 재난 문자겠거니 했던 그 진동이 실은 메일 알림이었고, 꾹 눌러보니 알라딘이 쓴 편지가 나왔다. 축하합니다. 40만 원. 깜짝 놀랬지? 사나흘 뒤에 줌. !

 

서재에는 내 당첨 소식을 나보다 먼저 접한 이웃분들의 축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너가 받을 것 같다고 내가 그랬지? 하는 글들이 많아서 좋았다. 그 말들이 다 진심이셨군요. 여러분들은 진짜로 제가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계셨어요. 나조차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요…….

 


 

2

 

사연 없는 인생 어디 있겠느냐마는, 이 최우수작 당첨의 이면에도 역시 어딘지 짠한 사연이 있었더랬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 짠한 사연의 시작은 도둑놈에서부터다.




거금 4만 원을 투자하여 피에 젖은 땅을 구매, 구매하는 김에 정희진 선생님의 신간과 또 다른 책까지 엮어 약 7만 원짜리 박스를 구성했다. 그리고 그 박스가 도착하기로 예정된 날, syo는 데이트 중이었다. 우리 집 택배 수령 시스템은 벨 누르기도 이름 부르기도 아니라, 그냥 택배형아가 알아서 대문 열고 들어와서 우리 집 현관 앞에 던져놓고 가는 방식이다. 데이트 중에 택배 잘 놓고 간다는 형아의 카톡을 확인했으니 집에 돌아오면 우리집 현관 앞에 알라딘 로고가 찍힌 박스가 있어야겠지? 그런데 없었다. 알라딘 박스 뿐 아니라 1.25kg짜리 하인즈 케찹이 든 박스도 같이 없었다. 택배형아에게 전화를 했는데, 형아는 틀림없이 평소 하던 대로 박스 두 개를, 하나는 책이고 하나는 뭔지 모를 그 박스들을 내려놨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집에 택배 백만 개를 무사고로 가져다 놓았던 형아가 실수를 할 리가 없지. 아랫집 아저씨 역시 오후쯤 우리 집 현관 앞에 살포시 놓여진 박스 두 개를 목격했다는 진술을 보탰다. 그렇다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이건 필시 도둑놈이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도둑놈이 내 책과 토마토케찹을 가져간 것이다. 책과 토마토케찹을. , 천하에 나쁜 새끼, 그 책은 리뷰대회 나가려고 산 책이었고 케찹은 유기농이었단 말이다…….

 

책과 케찹을 잃은 syo는 실의에 빠져 리뷰대회 참가를 포기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연을 페이퍼에도 간략하게 서술하고 더덕단 친구들에게도 알렸다. 친구들아, 나는 축구 결승전에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축구화를 도둑맞아 버렸거든…… 조깅화를 신고 뛸 수는 없는 거잖아. 안 될 거야, ……. 이렇게 슬픈 분위기도 연출했지만 동시에, , 아깝다, 내가 등판만 했으면 그냥 40만 원 집어 삼키는 건데, , 요거 도둑맞는 바람에 날라갔네, , 어쩔 수 없지, 하며 불난 집 지하에 금송아지 있었는데 이제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아쉽게 되었구나- 하는 식으로 까불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syo의 이렇듯 복잡다단한 감정 몸부림을 지켜보던 친구들 가운데, 평소에도 손이 빠르고 약간 기분파에다가 뭔가 하나에 꽂히면 무소의 뿔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친구가 벌떡 일어나면서(채팅이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는 것) 외쳤다. 내가 사줄게! 그러더니 진짜 피에 젖은 땅을 사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어어 아니겠지 어어어 하는 사이에 덜컥 사줬다. 그리고 1등 하라고, 넌 반드시 일등을 해야한다며 느낌표를 삼만 개쯤 날렸다. 일이 점점 커졌다. 11111(이게 뭔지는 pc에서만 제대로 보일 겁니다.)

 

syo는 그 친구의 호쾌함에 얼떨떨한 감동을 받았고, 얼떨떨한 상태로 외쳤다. 그렇다면 여러분, 내가 1등을 한다면 여러분들에게 책 한 권씩을 돌리겠습니다!!!!! 다들 무슨 책 받고 싶은지 생각해 놓으세요!!!! 내가 뭘 쓸지는 나도 당최 모르겠지만, 아 뭐든 되지 않겠어? 나야, , syo라고!! 와아~!!! 맞아맞아!! 너는 syo!! 와와와!!

 

더덕단은 저게 문제다. 다들 무슨 마른 더덕처럼 분위기에 활활 탄단 말이지.

 

 

 

3

 

제정신이 드는 데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 책이 도착했고 책상 위에 올려놨더니 책상이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힘든 것이고 책상은 내 마음을 표현하는 객관적 상관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800페이지였다.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아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고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른 법이다.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할지, 또 어떻게 써야 할지 정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둡도다, 나의 미래여. 그러게 깝치길 왜 깝쳐놔서…….

 

마감일 며칠 전에야 겨우 완독했고, 그 시점에는 증언록 형태로 글을 써야겠구나- 하는 기초적인 윤곽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에도 확신이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형식의 리뷰를 쓰는 참가자는 나밖에 없을 거고, 그렇다면 그건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흉내 낸다는 것이 윤리적으로도 썩 달갑지 않아서, 쓰는 내내 이걸 써도 되는 건지 아니지를 계속 캐묻는 마음한테 괴롭힘을 당했다. 그래도 시간을 많이 들여서 열심히 썼고, 그 결과 미운 자식이면서 동시에 굉장히 아끼는 자식이 태어났다. 이제 낙장불입이다. 밀어붙이자!

 

 

 

4

 

누군가는 고작 리뷰대회 1등 이게 뭐라고 이 호들갑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syo에게 이건 충분히 , 설령 이게 진짜로 뭐가 아니라 치더라도 그렇다면 이렇게 뭣도 아닌 것이 정말 뭐라도 되는 것처럼 기뻐해주고 칭찬해주는 내 친구들이야말로 진짜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어서, syo는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당당히 호들갑 떤다.

 

이 영광을 도둑놈에게 조금쯤은 바치고 싶다. 도둑놈아, 내 유기농 케찹은 얼마나 남았니.

 

그리고 영광의 대부분은 4만 원을 투자해 40만 원을 일구어낸 투자의 귀재, 무소의 뿔 그 친구에게 돌려야 하겠다. 내가 최우수상에 당첨되었을 때 그 친구도 호텔 숙박권에 당첨되었다고 한다. 호캉스는 시어머님 아들이랑 가는 거 아니라는 다른 이웃님의 센스 넘치는 댓글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시어머님 아들과 함께 다정한 호캉스를 떠나기로 했다고. 부럽다. 친구의 시어머님의 아드님께도 겸사겸사 영광을 돌리자.

 

 

 

5

 

syo가 예측한 3명의 1위 후보에 대해 궁금해하셨던 분들이 계셨다. 모든 분들의 글을 다 꼼꼼히 읽은 것이 아니라 좀 그랬지만 이 마당이라 말씀드리자면, syo는 에일로이 님, 잠자냥 님, 초란공 님을 생각했다. 저 세 분이 최우수 우수를 차지하시고 남는 우수 자리 하나를 syo가 냉큼 집어먹을 수 있으면 베스트겠구나- 했는데, 겸연쩍게도 이렇게 되었네요. 허허허.

 

 

 

 

--- 읽은 ---

 


164. 경제학의 모험

니알 키시타이니 지음 / 김진원 옮김 / 부키 / 2018

 

- 일독(1901xx)

- 재독(210511)

 

경제학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정말 기꺼이 추천할 만큼 쉽고 좋은 책인데, 쉽고 좋은 책이라서 자꾸 대충 읽게 된다. 대충 읽으면 당연히 안 된다. 당연한 건데 그게 잘 안 된다.

 

이를테면 syo에 비해 청소에 비교 우위가 있다는 문장은 말로 들으면 syo보다 청소를 잘 한다는 뜻 같지만 실은 저 문장만 가지고는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syo는 설거지하는 데 10, 청소에 30분을 소모하며, 은 설거지에 20분 청소에 40분을 소모한다고 하자. 이 경우 두 사람은 각자 청소 한번 하는 동안에 syo는 설거지 세 번, 은 두 번을 할 수 있다. 이럴 때 syo보다 설거지에 비교 우위가 있다. 반면 청소를 기준으로 따져 보면, 청소 한번 하려면 syo는 설거지 세 번을 포기해야 하지만 은 두 번만 포기하면 된다. 이러면 syo에 비해 청소에 있어서 비교 우위가 있는 것이다. 즉 실제로 은 설거지를 하나 청소를 하나 syo보다 10분씩 더 걸리는 비효율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청소에 비교 우위가 있는 것. 이처럼 비교 우위는 어떤 경제학 책을 읽어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지만, 대충 읽고 넘어갔다가 일상 언어에서 비교 우위라는 단어를 만나면 아, 그게 비교적 우위에 있다는 소리였던가- 하며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쉬운 책일수록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얼마 동안은 소음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아직은 연주로 얻는 이익, 즉 이웃의 즐거움이 연주에 드는 비용, 즉 당신의 가벼운 짜증보다 더 크다. 사회 전체로 보면 이웃이 트럼펫을 계속 연주하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3시간이 흐르자 트럼펫 소리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트럼펫 연습이 3시간째로 접어들지 당신 안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짜증이, 이웃이 연습으로 누리는 즐거움보다 더 커졌다.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웃이 2시간 정도 연습을 하고 트럼펫을 잘 갈무리하는 게 더 이익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종종 이웃이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얼마나 오래 트럼펫을 불지 결정을 내릴 때 오로지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이익과 비용(‘사적이익과 비용)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때문이다. 이웃은 연주하며 느끼는 재미와 쉬지 않고 몇 시간이나 트럼펫을 부는 통에 입술이 얼얼해지는 통증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 더 큰 범위의 비용(‘사회적비용)을 무시한다. 바로 당신에게 일으킨 두통을 등한시한다.

_ 니알 키시타이니, 경제학의 모험

 

 

 

--- 읽는 ---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 에이드리언 리치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 탕누어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 아리스토텔레스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 허새로미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 시라이 사토시

초속 5센티미터 / 신카이 마코토

메리, 마리아, 마틸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이 아래를 읽는 것은 시간 낭비가 될 수 있습니다

 


당첨된 기쁨에 겨워 리뷰를 한 번 더 읽다가, 퍼뜩 깨달았다. syo는 전에도 이런 형식의 글을 쓴 적이 었었다. 그건 리뷰도 아니었고 대회도 아니었다. 그냥 인정욕구에 목마른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어린 syo2007, 그러니까 무려 이십 대 초반에 심심풀이로 써서 작은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이다. 그간 소실된 줄 알았다가 작년인가 우연한 기회에 재발견했다. 지금 다시 보니 고치고 싶은 데가 놔두고 싶은 데보다 훨씬 많고, 특히 마지막 단락은 통째로 들어내고 싶다. 보고 있노라면 저렇게 쓰다니 진짜 어린 나여, 넌 정말 어지간히도 쎄게 빻았었구나- 하게 된다(그런데 사실 이건 뭐 새삼스럽다). 가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글을 고친다고 과거의 멍청했던 syo가 고쳐지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그대로 첨부해 본다. 이걸 쓴 때는 그래도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좀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내 독서량이 좀 늘면서 나는 그냥 하던 대로 반도체공학이나 운영체제론을 열심히 공부하는 게 맞겠다 싶어졌다. 그리고 이러구러 살다 보니 오늘의 syo가 되었다. 소설가도 되지 않았고 되려 하지도 않으며, 공학자도 되지 않았고 역시 되려 하지도 않는 오늘의 syo, 둘 다가 될 수 있다고 믿던 과거에 쓴 글이다.

 

 

 

성춘향 탈옥 사건에 대한 증언들 [20070809]

 


1

 

첫째는 결코 춘향에게 수청 들기를 요구한 적이 없음이요, 둘째는 설사 본관이 그리하였더라도 관기인 춘향이 그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분명 법도를 흐리는 일이라는 것이외다. 춘향이 비록 그 아비가 사대부에 속하여 성씨 성을 받았다 하나 어미가 천기이니 그 신분이 천한 것은 국법이 정한 일이오. 또한, 춘향은 엄연히 그 이름이 기적(妓籍)에 오른 관기란 말이오. 그러니 설사 이 사람이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 하였더라도 그것은 이 나라 조선의 국법에 따라 아무런 과실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오.


공께서 이 고을에 내려와 저잣거리를 지나셨다면 분명 춘향이 내 수청 들기를 거부하였기에 하옥되었다는 풍문을 들으셨겠지요. 허나 그것은 말 좋아하는 천것들의 입에서 나온 한낱 낭설에 불과하오이다. 춘향의 죄목은 다른 것이 아니라 관기로서 점고(點考)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는 엄연히 국법을 어긴 것일진대 내 이 고을의 원()이 되어 어찌 형으로 다스리지 않을 수 있었겠소이까.


분명 춘향은 미색이 범상치 않을뿐더러 재주를 갖춘 기재녀임은 틀림이 없소이다. 이 사람 또한 사내대장부로 났으니 한번 그 꽃을 꺾어보고자 하는 마음을 품은 적이 전연 없다 하지는 않겠소이다. 허나 나라님께서 내리신 남원 부사의 자리에 앉고서야 어찌 사심이 공심을 앞질렀겠소이까. 공께서 부디 저 상것들의 헛소리에 현혹되지 마시고 사대부로서 이 사람의 위신에 손상을 입지 않도록 잘 수습하여 주시기를 바라겠소이다. 공도 이 사람도 공히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 아니오? 핫핫핫.


, 도읍에 계시는 영상(領相)대감께서는 어떻게, 강령하신지 모르겠소이다. 얼마 전에 사람 편에 남원에서 나는 좋은 약재를 보내드린 일이 있는데......

 

 

2

 

, , 그날 밤 소인이 옥사를 지켰습죠. 분명히 옥사 밖으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요.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습죠. 천지신명님께 맹세코 절대 한눈을 판 일은 없었습니다요. 정말입니다요. 어휴. 사또께서는 이놈이 춘향이와 밤도망이라도 치려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천부당만부당입지요. 하긴, 소인 놈이 생각하기에도 칼 찬 죄인이 무슨 수가 있어서 혼자서 이 옥사를 나왔을는지, 춘향이 그것이 귀신이 아니고서야......


그래도 참말, 참말입니다요. 되려 소인은 춘향이가 영영 이 옥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싶었는걸요. , 그랬습지요. 나으리는 이 고을 사람이 아니시라 모르시겠지만요, 이 고을 사내치고 양반 상것 할 것 없이 춘향이 미색에 마음자리 한번 들썩 안 해본 이는 없을 겁니다요. 가끔씩 향단이를 데리고 그네터에 가는 날이면 언덕 너머 바위 뒤에는 그 모습 훔쳐보는 사내들로 매번 장사진입지요. 색동저고리에 다홍치마 곱게 차려 입은 춘향이가 그네 구르는 모습 보고 있자면 어찌나 이놈의 가슴이 쿵쿵 내달리는지, 혹시나 그네 뛰는 춘향이가 듣고 놀라 그네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요. , 금박댕기 아래로 출렁거리는 삼단 같은 검은 머리에, 그 새하얀 손은 또 어찌나 섬섬한지......에흠, . 죄송하구만요.


어쨌든 춘향이가 옥에 갇히고 난 며칠 동안 소인은 참말로 좋았습죠. 이곳은 이놈에게는 집 같은 곳 아니겠습니까요. 마치 춘향이가 이놈의 마누라라도 된 양 혼자 들떠서는 하루 종일 옥사에 붙어 지냈습지요. 제발 사또께서 춘향이 옥살이를 하루라도 더 시켰으면 하고 말입니다요. 주제에 못된 맘 품은 죄를 다 받았는지 소인이 춘향이 대신 옥사에 들어앉은 꼴이 되었습니다요.


그러나 저러나 춘향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목에 찬 칼은 또 어떻게 훌훌 풀어낸 건지. 이거야 원 참말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3


그래도 그것이 효성은 지극하였는데 어찌 이리도 독하게 감감무소식인지 모르것소. 하나 있는 딸년이 어릴 적에는 말썽 하나 없이 얌전하더니 과년하여 이리 에미 속을 썩일지 어떻게 알았겄소.


사실 우리 춘향이는 사대부의 핏줄인데도 쇤네가 천한 기생인지라 어쩔 수 없이 기생으로 살아야 했지요. 기생년 사는 게 어디 사람 사는 거라 하겄소. 이 한몸 이리 살았으면 되었지 어찌 딸년한테까지 이리 모진 삶 살라 하겄어요. 그래서 기적에는 올렸지만 양갓집 규수처럼 곱게 곱게 키웠지 않겄소. 다 부질없는 짓이었지요. 한 번 기적에 이름 석 자 박혀버리면 그것 파내기란 대낮에 별을 따는 일인 것을.


얼마나 속이 탔으면 춘향이 갇혀 있는 옥에 찾아가 그냥 눈 딱 감고 변사또 수청을 들라고 했겄소. 이도령이라는 작자는 좋다고 신랑질을 할 때는 언제고, 과거 보러 한양에를 간다더니 춘향이 이것이 옥에 갇혀 다 죽어가면서 수절해도 코빼기도 아니 비치니 어미 된 입장이 다 그렇지 않겄소? 이도령이든 변사또든 어차피 다 양반님네들이니 천기로 옥에 갇히는 것보다야 그게 낫지 않느냔 말이오. 헌데 춘향이 그 고집만 잔뜩 들어앉은 것이 수청을 들래도 절레절레, 이도령을 기다리냐고 물어도 절레절레, 그저 입은 꾹 다물고 답답허니 옥 천장만 뚫어져라 보고 앉았으니 이 속이 터지겄소, 안 터지겄소.


이제는 다 되었소 다 필요 없으니, 아이고 나으리. 제발 제 못난 딸년 좀 찾아주시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옥사에서 도망을 쳤는지, 또 어디로 사라져서 지 에미한테 얼굴도 안 들이미는지, 딸년 둔 에미는 그대로 죄인이라더니 이렇게 하루하루 춘향이 고것이 올까봐 걱정, 안 올까봐 새까맣게 속 태우며 지내는 것도 인제는 도저히 못하겄소. 아이고, 나으리......

 

 

4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었구만요. 저희 도련님께서 분명 광한루에서 춘향이와 노니는 것을 좋아라 하셨지만, 정실부인이라니요. 언질조차 내리신 적이 없습니다. 나으리도 생각을 해보시지요. 뼈대 있는 가문의 장손에다 이번 과거에 장원급제까지 하신 우리 도련님께서 무엇이 아쉬워 그런 기생년을 정실로 들어 앉힌단 말입니까. 그런 말씀은 하지도 마십시오. 행여나 구설에 오를까 걱정입니다.


연정이오? 나으리께서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오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도련님께서는 춘향을 그저 한낱 기생으로 끼고 계셨던 것밖에는 그 어떤 마음도 품은 적이 없으십니다. 아무렴 그렇고 말구요.


춘향이 칼을 벗어내고 옥에서 도망 나왔다는 이야기는 향단이 편에 들었습니다만, 이쪽으로는 절대 발걸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행여, 춘향이가 우리 도련님만 믿고 예까지 왔다 해도 소인이 잡아다가 관아에 끌고 갔을 겁니다. 그러니 얼른 돌아가시지요. 우리 도련님은 지금 행차 준비로 바쁘니 만나지 않으시겠답니다.

 

 

5

 

쇤네가 아씨를 숨기고 있다구요? 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걸요사람들은 쇤네가 좋아서 아씨를 모신 줄로 알고 있나 본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어차피 쇤네나 춘향 아씨나 똑같은 천민인데 어이해 누구는 금기서화에 호의호식하고 어이해 누구는 물동이나 지어야 하냔 말이어요. 아씨라는 말부터가 가당찮은 게 아닌가요?


이 고을 남정네들은 춘향 아씨를 그저 아리땁고 얌전한 규수로 여기고 있지요. 우스울 뿐이어요. 이제와 이야기지만 춘향 아씨는 누구보다 영리하고 스스로를 끔찍이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취기가 오를 때마다 사랑한다고, 정실부인 삼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치던 이도령의 그 거품 같은 약조를 아씨는 단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어요. 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서 그러는 거라고 말씀은 하지만 실상은 아씨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마님의 속내도 이미 아씨는 다 알고 있었지요. 왜 옥을 나와도 집에는 연통조차 주지 않는지 쇤네는 알 것도 같아요.


아씨가 파옥하던 날 새벽에 그네를 뛰시는 모습을 광년이가 봤다고 했어요.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지만 저는 믿어요. 아씨는 그네를 좋아하셨지요. 아마 아씨는 이 남원고을의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는 저 먼 곳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 그네를 타셨을 거여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으실 거여요. 쇤네는 오히려 그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아씨한테도, 쇤네한테도 말이어요.

 


6

 

춘향? 춘향, 춘향 언니! 나 춘향 언니 아니다. 춘향 언니 없다. 날아갔다. 나 봤다. 그네, 그네.


그네, 타도된다 했다. 헤헤, 춘향 언니가 나도 그네 타라 했다. 그래서 해 뜨기 전에 나 그네 타러 온다. 매일 매일 온다. ~. 이렇게 탄다. ~. 발에 힘주고, 발에 힘주고 이렇게 탄다. ~. 헤헤, 춘향 언니가 가르쳐 줬다. 그네 타는 거. 줄 꼭 잡는 거 아니다. 그러면 하늘까지 못 간다고 했다. 춘향 언니가 그랬다.


춘향 언니 하늘까지 그네 탔다. ~기 구름까지 간다고 했다. 헤헤, , 나 너무 멋있어서 좋았다. 근데 햇님! 햇님이 산에서 나왔다. 눈부셔서 손으로 눈 막았는데, 막았는데, 갑자기 춘향 언니 없어졌다. 그네, 그네 위에 있었는데, 갑자기 휙. 근데 나 봤다. 그네가 구름까지 가서, 춘향 언니 날아갔다. 우와, , 새였다. 햇님 쪽으로 새, 춘향 언니 새 날아갔다.


나 다 봤다. 나도 그네, 나도, 나도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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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12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일로이 님, 초란공 님이 받지 않을까 했고요(전 사실 잘 받으면 우수작이려니 했습니다) 근데 syo 님은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파격적인 형식이 받아들여지면 최우수인데, 아니면 우수작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전에 김초엽 책 리뷰 대회는 아마 그 형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 같아서 이번엔 어떨까 싶었는데 그 파격적 형식이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 같습니다. 투자해서 받은 돈으로 즐겁게 책 많이 사보세요~ 근데 요즘 책값이 비싸서 글항아리 책 몇 권 사면 다 없어질 돈이긴 하네요. ㅎㅎㅎㅎ

syo 2021-05-12 00:47   좋아요 3 | URL
그러니까 잠자냥님이 꼽은 최우수-우수 멤버와 제가 꼽은 멤버가 일치했다는 말이네요?

제 리뷰에 대해서는 저도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었는데, 제 모는 우수, 도는 낙방이었거든요. 그런 부분은 잠자냥님의 예측과 차이가 있었네요. 으하하하.

기왕 들어온 적립금이라, 친구들한테 많이 뿌리려구요. 이참에 생일 선물 준 친구들한테 은혜도 갚고 ㅎㅎㅎ


청아 2021-05-12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 든든한 친구의 투자ㅋㅋ👍👍근데 훔쳐간 사람은 과연 그 벽돌을 읽었을까요, 팔았을까요.아님 100만분의 일이라도 리뷰쓰고 혹시 당첨?!!

syo 2021-05-12 13:09   좋아요 2 | URL
제가 낙방했다면 도둑놈을 찾아나섰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마당이라 너른 마음으로 좋은 책 기부한 셈 치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케찹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유기농이니까요.....ㅋㅋㅋㅋㅋ

희선 2021-05-12 0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 님 최우수상 축하합니다 책과 케첩을 도둑맞다니, 그런 걸 가져가다니... 그래도 멋진 친구분이 책을 사주시고 그 책 보시고 글 잘 쓰셔서 최우수상 받으셨네요 안 좋은 일이 좋은 일로 돌아왔군요


희선

syo 2021-05-12 13:1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옹지마가 이런 거군요.
부디 도둑놈의 앞날에도 나쁜 일이 찾아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21-05-12 0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 리뷰대회 최우수상 축하드려요!^^:)

syo 2021-05-12 13:10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호랑이 님도 참가하셨으면 이름 떡 올리셨을텐데요. 참가 안하셔서 다행(?)입니다 ㅎㅎㅎ

겨울호랑이 2021-05-12 13:23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리뷰 대회애 참가하려면 많은 노력과 열정이 들어가는데, 저로서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이후에도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

psyche 2021-05-12 0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 님 축하드려요! syo님 리뷰 읽으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쉬!
syo 님을 알아봐주고 지지해 주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얼마나 복인가요!

syo 2021-05-12 13:11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친구들이 들불처럼 일어나서 내가 너 1등 한댔지!! 난 다 알았다고!! 막 이러는데, 와.....

반유행열반인 2021-05-12 0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둑놈: 경쟁자 암살 실패다... (그리고 계란후라이에 하인즈케찹 짜 먹고 배탈남)
축하드립니다. 글항아리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은혜갚은 까치처럼 소장한 글항아리의 벽돌들을 읽고 리뷰를 부지런히 남겨야 겠네요...)

syo 2021-05-12 13:12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 그러고보니 글항아리를 향한 반님의 거래 제안도 있었군요.
이거 영광을 반님에게도 꽤 많이 돌려야했었던 거였네요....

blanca 2021-05-12 1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 책이랑 유기농 케첩 가져간 사람은 대체 뭡니까? ㅋㅋㅋ 택배 형아에 뿜어요. 사실 저도 작년에 그 비슷한 사건이. 뭔가에 당첨되어 하루키옹의 에세이를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없어졌지 뭡니까. 그냥 포기하려 했는데 택배 아저씨가 너무나 안타까워하며 본인이 직접 CCTV 확인까지 해서 잘못 배송했다는 걸 알아내어 전화연락까지 했는데... 그것 잘못 받은 사람이 그 무거운 걸 다시 들고 직접 집에 방문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여대생이 너무나 미안해하며...이런 헛소리 댓글은 뭐죠? ㅋㅋㅋ

여하튼 다시 정말 축하합니다. 대단한 것 맞아요. 시어머니 아들에도 한번 뿜고 ㅋㅋ 당첨금으로 뭘 하셨는지도 써 주시기를...

syo 2021-05-12 13:14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ㅎ 그래도 블랑카님은 사연은 이래저래 아름답게 마무리되었군요. 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제 케찹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요. 도둑놈에 대한 분노가 식을 줄을 모릅니다....

축하말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1-05-12 1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너무 기쁜 소식을 어디든 자랑해야 하는데 쇼님 아는 사람이 어디있나 찾다가 밤늦게 퇴근한 같이 사는 이에게 자랑했습니다!!!
최우수상 너무너무너무 축하드려요!! 앞으로도 안목 있는 투자자의 말씀 새겨들으셔서 좋은 일 빵빵 터지시기 바래요!

잠자냥 2021-05-12 12:59   좋아요 2 | URL
아, 그 집 시어머니 아들한테 자랑했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12 13:0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네, 그러네요. 제가 엄청 흥분해서 밥도 안 차려주고 자랑하는데 무척 좋아하더라구요. 안목있는 투자자분 시어머니 아드님이랑 저의 시어머니 아들이랑 같이 모임이라도 해야할 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5-12 13:14   좋아요 3 | URL
친구들과 친구들의 시어머님들과 시어머님들의 아드님들 모두 어우렁더우렁 행복하세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2 13: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책과 케챱. 꽁트 읽은 느낌. syo님은 입상 후기도 잼나다네요. 글고. syo는 예나 지금이나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사람이군요. 이 일관성이라면, 리뷰 최우수상을 뛰어넘을거요.^^

syo 2021-05-12 13:16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그치만 안 뛰어넘고 조용히 조용히 살 거예요.
번거롭게 뭘 뛰어넘는 것보다 배나 벅벅 긁어가며 가만히 누워 있는 걸 더 좋아합니다 🐷

stella.K 2021-05-12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요, 알라딘 이달의 리뷰 당선만 돼도 좋아라 하는데
거기에 몇배 입니까?
모르긴 해도 알라딘에서도 이달의 리뷰로 선정하지 않을까 하는데
왕관을 견디시겠습니까?ㅋㅋ
암튼 좋은 친구를 두셨군요.
친구를 위해 뭐 한 2만원쯤이면 어떻게든 해 보겠는데
4만원 긋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그 친구도 꽤 좋아했겠어요.
한턱 쏘셔야겠네요.^^

syo 2021-05-13 08:56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2만원을 넘어서 4만원까지 쾌척하는 친구덕에 좋은 경험도 했네요. ㅎㅎㅎㅎ
여러 턱 쏴야되겠어요 탕탕탕 🔫🔫🔫

난티나무 2021-05-13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우와!!
리뷰 읽고 뻥 쪄서 댓글조차 못 달고 물러났었어요.ㅎㅎㅎ
그 친구분 진짜 대박 안목! ㅎㅎㅎ !!! 거기에 부응하시는 syo 님 대박 훌륭하심!!!
🎉🎉🎉🎉🎉🎉

syo 2021-05-13 08:57   좋아요 1 | URL
투자에 소질이 꽤 있는 친구로 밝혀졌습니다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난티나무님 ^-^

독서괭 2021-05-13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예전에 그 도둑놈 얘기 듣고 하이고 7만원어치.. 넘 가슴 아프시겠네.. 했었는데 그책이 이책이었고 이런 아름다운(?) 경위로 최우수상이 탄생하게 된 거군요?? 와 진짜 인생 모르는거네요 ㅋㅋ 너무너무 재밌는 에피소드예요. 나중에 책 쓰시면 꼭 이 에피 넣으세요 ㅎㅎ
춘향전 얘기도 재밌어요. (마지막 문단 왜 없애고 싶으신지는 알겠....) 이런 형식 좋아요. 앞으로도 자주 써주세요~^^

syo 2021-05-16 14:42   좋아요 1 | URL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은 지극히 도둑놈 입장에서 쓰인 이야기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최우수상을 타게 되서 그나마 분노가 사그라들었지, 아니었으면 진짜 도둑놈......

하지만 케찹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는군요. 결국 하나 더 샀잖아요ㅠㅠ

AgalmA 2021-05-13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에 젖은 땅>에 이런 사정이ㅎㅎ!
도둑이 하필 비싼 책을 훔쳐간 것도 속상한데, 리뷰 쓰려면 읽기도 바쁜 벽돌책을 훔쳐가 읽을 시간도 뺐기셨을테니ㅜㅋㅜ! 예전엔 책도둑은 봐준다 그런 말도 했지만 케찹까지 훔쳐가다니 더 질이 나쁜! 요즘 택배 박스 앞에 내용물도 적혀 있는데!
이런 일 당하셔서 이젠 택배받기 무척 염려되실 듯.

저는 택배 기사님이 자꾸 딴집에 갖다주는 게 문제인데 아직 분실은 없었어요^^;

syo님도 책욕심 많은데, 상금은 나누기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책뽐뿌에 쓰시라는ㅎㅎ
축하드려요🎉🎉🎉

syo 2021-05-16 14: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

그러나 여기저기 나누면서 과반을 소진하였네요. 결국 저는 다시 빌리는 인생으로ㅋㅋㅋ
어떻게든 읽는 게 중요하지 사는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라며 거는 자기최면 😵

얄라알라 2021-05-19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 나누면서˝ 중에 책 퀵퀵 사보내주신 친구분께 과반의 반을 보내셨을 듯^^

왜 하필 ˝유기농˝ 케찹이라니!! ^^

다시금 축하드립니다. 간만에 알라딘 서재 들어왔다가 기쁜 소식에 덩달아 기쁩니다

syo 2021-05-20 20: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
열심히 뿌렸고, 남은 것은 뭐 살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2021-06-01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01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01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01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리는 그랬지만

 



 

메리, 마리아, 마틸다 중, 메리를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syo는 이 작품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손에 쓰였다는 것,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쓰인 여성의 주체성에 관한 소설이라는 것, 그러니까 계보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어떤 의의를 찾지 못했다. 메리는 큰 매력이 없는 캐릭터고, 울스턴크래프트는 메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독자에게 떠먹이려 한다. 그건 울스턴크래프트가 이 작품을 쓴 의도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syo는 추측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 작품을 통해 메리들이 이렇게 억압을 당하고 있다보다는, “메리들도 너희 남자들처럼 이성이 있고, 자기 삶의 방향을 자기가 그려나갈 능력이 있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울스턴크래프트가 만든 여성은 당대에는 선취적이었겠으나 그 선취가 도착한 곳 역시 오늘의 우리 눈으로 보면 지나친 과거다. 메리가 택한 방식은 우리가 고려하기에 지나치게 소설적이다. 또한 울스턴크래프트가 사용한 기술 역시 우리가 오늘 참고할 만하지 않다. 오늘날의 여성 역시 이성이 없다’, ‘태생적으로 열등하다하는 식의 통째 공격을 받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인신공격에 불과하여, 닥치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런 것보다는 여성의 특성으로 여겨지는 어떤 특성을 지목하며 특정 분야나 특정 지위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위에 있다는 주장, 그러니까 영역 단위로 분할된 공격과 맞서야 한다. 그럴 때, 그 주장은 오류이며 그 근거가 실은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결과에 불과함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 우리가 택해야 할 수단은 과학이나 통계, 사회적 실험 같은 것들이다. 더는 소설이 아니다. 그러니까 syo의 생각에, 이 작품에 한정해서 보자면 메리에게서도 울스턴크래프트에게서도, 딱히 쓸만한 뭔가를 배울 수 없다.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명제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쩔었네뿐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울스턴크래프트와 동시대 조선에는 연암 박지원이 살았는데, 그는 허생전이나 양반전 같은 당시에는 상당히 선취적인 사상이 담긴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그 선취는 이제 선취가 아니고, 우리는 과거에 선취적이었던 그 작품들보다 지금 나오고 있는 그다지 선취적이지 않은 책들로부터 더 쓸모 있는 것들을 배운다. 그리고 박지원이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데 진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메리는 읽었고, 이제 마리아를 읽겠다.

 

 

 

--- 읽은 ---

 


158.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이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

 

일기를 에세이로 바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굳이 책을 읽어본 게 사실이다. syo에게 그건 뭐랄까, “H2O를 물로 바꾸는 법처럼 들렸다.

 

나는 아직도 뭐가 일기고 뭐가 에세이인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뭐가 일기여야 하고 뭐가 에세이여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것은 수준의 문제인가? 잘 쓰는 일기스트의 일기는 못 쓰는 에세이스트의 에세이보다 당연히 수준 높다. 글은 그냥 잘 쓰는 사람이 잘 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 글의 사적/공적 성격의 함량에 따라 결정되나? 순전히 내가 오늘 겪은 사건만 나열한 글이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분석해 놓은 논문보다 더 큰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기능하는 때도 많다. 그러면 일기란 세상에 내놓지 말고 혼자 쓰고 읽어야 하는 되다만 에세이의 멸칭인가?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역겨운 댓글은 참으로 많고 많지만, 가장 역겨운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일기는 일기장에. 이건 니 이야기는 들을 생각이 없으니 그냥 닥치라는 소리다. 게다가 들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지 없는 이야기인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오만이 깔려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일기가 왜 뭔가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들이 소비자로 존재하므로 이 책은 이런 제목을 달 수 있었을 것이다.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야 좋은 마음이다. 그런데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을 찾는 독자들은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이라는 책에도 같은 크기의 관심을 둘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게 중요하다. 지금 syo가 제목만 가지고 꼬투리 잡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아닌 건 아니다), 뭔가를 쓰는 사람에게 자기 글에 대한 정의는 곧 자기 영토를 포위하고 있는 국경선이다. 내가 승인하고 스스로 둘러친 한계다. 스스로 에세이를 쓴다고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에세이라는 장르의 규칙, 그 장르가 다루는 영역의 한계선, 트렌드(와 트렌드에 올라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판단) 같은 것 안에서 글을 쓴다. 이야기에는 저마다 자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 있어서 우리는 가끔 이야기를 살리기 위해 장르를 횡단할 필요도 있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뭐라고 정의되는 것을 열심히 회피하는데, 그건 실제로 글이 잡스러워서 겸연쩍어 그러는 거기도 하지만, 잡스러우려고 노력하는 바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잡스럽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글은 가만히 두면, 자꾸 정돈되려 한다. 맹렬한 기세로 열역학 제2법칙을 역행한다.

 

syo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다.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이 팔리는 이 세계는 에세이가 일기보다 높은 세계다. 이건 전복할 수 없는 기본적 사실이다. 그런 이 세계에서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이 출간된다면, 그 책은 일기가 에세이보다 높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일기를 써도 그게 그냥 에세이 급이 되어버리는 미친 기본필력을 선사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일 테니까.

 

, 그런데 솔직한 글을 위해 나의 단점을 모조리써야 할까요?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내 흠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써야 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글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상처를 받고 우울해질 것 같다면 절대 그렇게는 쓰지 마세요. 나의 흠을 독자와 공유하는 글쓰기 과정에서 본인이 조금 홀가분해질 수 있기 때문에 솔직하게 쓰라는 것이지 내 단점을 정말 남들한테 말하기 싫은데 사람들이 이거 읽으면 엄청 재미있어 하겠지라는 생각에서 쓰면 안 된다는 소리예요. 그게 과연 누굴 위한 글이 되겠어요? 에세이를 쓰면 가장 먼저나 자신이 첫 번째 독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 독자가 상처를 받으면 안 되잖아요. 에세이를 쓰면서 , 내가 이런 것까지 써야 돼?’ 하면서도 줄줄이 써지는 주제가 있는 반면 이건 아닌데, 이런 건 말하기 싫은데하는 게 있을 것 아니에요? 후자를 쓰지 말라는 겁니다. 아마 전자의 글은 자신의 흠을 드러내면서도 떳떳한 상태일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바꾸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경우일지 몰라요. 어쨌거나 내 글을 보고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면 안 돼요. 그게 나여서는 더더욱 안 되고요.

_ 이유미,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159.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허유선 지음 / 믹스커피 / 2020

 

철학을 지식의 덩어리가 아닌 하나의 방법론으로 본다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가 해야 할 것들을 이미 다 해치워버렸다고 여겨져도 되지 않을까. 그는 물었다. 답이 나올 때까지 물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다른 것을 물으러 갔다. 물었고, 물었고, 물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귀찮게 했다. 그러다 권력 있는 사람들의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자기가 말한 대로 살기 위해 죽었다. 철학자가, 이것들 말고 뭘 더 해야 하는가?

 

만일 철학이 확실한 답을 주어 그 물음이 종결되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철학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철학은 없어지지 않는 물음에 대해 도망가지 않고 생각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생각하고 그에 따라 시도하고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움직임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철학을 통해 우리는 계속 묻고 생각하며 나아갈 수 있다. 곧 철학은 피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는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생각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_ 허유선,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160.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 이재경 옮김 / 반니 / 2019

 

비소설 산문 읽는 양으로 치면 남부럽지 않은 syo, 독서 인생이 20년이 달하는 동안 조지 오웰의 산문을 읽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참 대단하다. 읽지 않아도 좋았을 쓰레기들을 수없이 읽으며 얻은 건 쓰레기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었는데, 사실 그런 건 그다지 필요 없다. 명백히 쓰레기가 아닌 것으로 널리 인정받는 책들만 골라 읽어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읽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인생사다. 쓰레기를 읽고 쓰레기 감별력이 생겼다면 그 시간에 명작을 읽고 명작 감별력이나 갖출걸. 이번 생은 대충 망했다. 헛되고 헛되고 헛…….

 

기왕 헛된 거 아주 제대로 헛되어 보기로 했다. 거장들과 그들의 명작들을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게 왜 헛된 일인가 하면 역시 인생이 짧아서다. 짧은 인생, 한 우물만 디립다 파도 그 우물로 몇 사람 목 축이기가 쉽지 않다. 기왕 syo가 쓰레기 판별의 길에 들어섰다면 이번 생은 열심히 쓰레기의 우물을 파는 데 소진하는 게 낫다. 여러분 이 책은 쓰레깁니다, 이 책은 쓰레기가 아닙니다, 이 책은 쓰레기인 듯 쓰레기 아닌 쓰레기 같습니다, 여러분. 이런 자세가 바로 이번 생에 몇 사람의 목이라도 축여줄 수 있는 syo의 작은 우물인 것이다. 그런데 그 분수에 맞는 한 우물을 포기하고 뒤늦게 거장들이 묻혀 있는 땅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으니, 남은 생은 짧고 아무리 파도 물 한 방울 구경하기 어려울 것만 같다., 아아,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내가 오웰의 책을 읽으며 했던 이것과 비슷한 고민을, 오웰도 어떤 책을 읽다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느낌 자체는 내 느낌과 정반대였는지, 아래와 같이 썼다.

 

모든 책이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당연시되는 한, 해결책은 없다. 책을 대량으로 검토하면서 그중 대부분을 극찬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직업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책들이 얼마나 허접한지 알지 못한다. 객관적이고 정직하게 비평하자면 열에 아홉은 "이 책은 무가치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서평가의 솔직한 속내는 아마 이럴 것이다.

  "나는 이 책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며, 돈만 아니면 평을 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책은 사지 않는다. 대중은 어떤 책을 읽으라는 권유와 안내를 원하고, 가치 평가를 바란다. 문제는 가치가 거론되는 순간 평가의 기준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리어왕은 훌륭한 희곡이고, 4인의 의인은 훌륭한 스릴러라고 한다면(거의 모든 서평가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이런 말을 한다.) '훌륭하다'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_ 조지 오웰, 어느 서평가의 고백

 

그러니까 오웰, 왜 허접한 걸 읽었어요. 그런 건 syo나 읽는 거죠. 당신 글솜씨가 아깝네요. 쓰레기는 syo에게 맡겨요. 당신 같은 사람은 좋은 글을 읽고 더 좋은 서평을 남겨야죠. 그러니까, , 예를 들면 조지 오웰 같은 걸 읽으시라구요, 미스터 오웰.

 

 

 


161. Chaeg 2021. 5

()(월간지) 편집부 지음 / ()(잡지) / 2021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읽는 데는 하늘의 뜻이 약간은 필요하다. 읽으려면 어떻게든 맞닥뜨려야 하고, 맞닥뜨리려면 누가 도와도 도와야 하는 것이다. 주로 철학이나 문학 위주의 독서를 하다 보니, 도서관을 그렇게 뺑뺑 돌아봤자 특정 서가에서 syo는 눈뜬 대바늘이나 마찬가지다. 눈이 없고 귀만 있는 셈. 그 좁은 귓구멍에다가 세상에는 다양한 책들이 있다는 사실을 길고 튼튼한 실처럼 꿰어주는 책이 책Chaeg이다. 매달 한 번씩 막힌 귀를 뚫어주고, 새로운 서가에 눈뜨게 해주는 사랑스런 나의 Chaeg.

 

진짜 책 같은 거 신물 나서 거들떠보기도 싫을 때, , 이 Chaeg 한번 잡솨 봐.

 

 

 



162. 우리가 함께 걷는 시간

이규영 지음 / 넥서스BOOKS / 2018

 

당 떨어질 때 한 줌 집어서 사르르 녹여 먹으면 연애의 달달함을 이어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는 귀여운 책들이 있다. 달달한 월드는 일단 곁사람에게 달달할 줄 아는 이들이 모여 만드는 것.

 

syo는 남자 평균 키보다 한참 작은데 지난 연인들은 작아야 여자 평균 키 이상이었고 간혹 높은 신을 신으면 syo보다 커지기도 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손잡고 돌아다니는 것도 그거대로 귀여운 맛은 있었지만, 안 되는 그림도 많았다. 정수리에 턱을 올려놓을 수가 없었고,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한 칸 아래에서 안을 때도 내 코는 그 사람의 엄한 곳, 이를테면 간지러워도 잘 긁을 수 없는 날개뼈와 날개뼈 사이의 안닿아메다 삼각지대 같은 곳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그건 예쁜 그림이 아니고 그냥 냄새 맡는 그림일 수밖에 없었고, 재미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내게 이런 유전자를 물려주신 뿌리 깊은 우리 노비집안 조상님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우유를 처먹지 않던 몰상식한 청소년 syo가 합심하여 그린 그림이었으니, 누구 탓을 하겠는가마는.

 

지금 만나는 사람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작다. 처음 같이 이를 닦았을 때 나는 그녀의 뒤에서 몸을 딱 붙이고 서 있었는데, 그렇게 욕실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각자 서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보기 좋았던 자신들의 모습에 감탄한 우리는 너무 예뻐, 우와, 너무 예뻐를 반복하느라 양치질을 길게 했고, 칫솔을 꺼낸 입이 허전하다며 다른 것을 찾아서 서로의 입술로 즉시 달려들…… 뭐 그랬다고 합니다. 하고픈 말은 그게 아니고(그거면서), 이제는 나도 요런 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쟤네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목이 조금 꺾이긴 하지만. 우리 아빠가 원래 남자는 언제나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고 그랬어.😤



 

 

 


163. 가벼운 영어

가벼운학습지 지음 / 패스트캠퍼트랭귀지 / 2020

 

 

 

--- 읽는 ---


영원한 이방인 / 이창래

경제학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 박병철

어떤 물질의 사랑 / 천선란

빈 옷장 / 아니 에르노

메리, 마리아, 마틸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 박가분

시민의 물리학 / 유상균

미술사 아는 척하기 / 리처드 오스본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 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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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1-05-1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일기장에 ㅋㅋㅋ

syo 2021-05-10 15:02   좋아요 0 | URL
우웩 🤮 ㅋㅋㅋ

난티나무 2021-05-10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는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권력이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 사람을 정의하는 것, 그 사람의 이야기도 정의내리는 것. 중간쯤 읽다 댓글 우선 달고 (까먹을까봐) 나머지 읽으러 갑니다.

다시 왔어요.^^
[오늘날의 여성 역시 ‘이성이 없다’, ‘태생적으로 열등하다’ 하는 식의 통째 공격을 받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인신공격에 불과하여, 닥치게 만들면 그만이다.] - 저는 한번도 면전에서 제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지만 눈빛과 행동과 평소의 말투 등등에서 이런 생각을 읽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이라는 게 있다면)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지금이 겉으로 보기에는 나아보일지라도 속은 그닥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드러나지 않으니 더 무서운 것... 그런 거 느낍니다. 열등하다거나 이성이 없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시집에서 제가 저를 투명인간으로 느끼는 것이 또 이것과 그렇게 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음 그러니까 저는 아직 [메리]를 다 읽지 않았는데, 다 읽으면 정말 ˝쩔었네˝밖에 안 남는 건가요? ㅠㅠ

syo 2021-05-11 11:59   좋아요 1 | URL
저도 난티나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기보다 그런 생각을 쉽게 내뱉을 수 없는 딱 그 정도만큼 환경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현실에서 200년이 지나도록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그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것보다는, ‘여성은 관리직에 젹합하지 않다‘,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진화적 특성 때문에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처럼 연구나 통계, 실험을 통해 반증될 수 있는 것들에 역량을 투입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이런 ‘기계적인‘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아마 제가 남성이라서, 난티나무님께서 겪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소위 말하는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1도 모르는, 공감 부족의 결과 태어난 주장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저렇게 생각했지만 저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권할 자격도 의지도 없습니다. 난티나무 님이 댓글처럼 생각하셨다면, 그게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메리를 읽고 ˝쩔었네˝밖에 남지 않았던 것은 제 독서의 결과입니다. 그건 제 한계지요. 다른 분들의 독서는 다를 거고, 저보다 많은 것들을 느끼고 남긴 다른 분들의 독서를 보고 저는 배우겠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주욱 읽으소서^-^

반유행열반인 2021-05-10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웰 다른 산문집에서 저 서평가의 고백을 읽었는데 역시 돈 때문이죠 억지로 똥글 읽고 글 쓰는 건…돈도 안 주는데 이제 남은 생은 고전 명작만 골라 읽지 하니 안일하고…동시대의 좋은 글이란 무얼까 좋은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하다보면 결국 똥을 조금씩 주워 먹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오늘의 글이 명문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다 죽고 나야 판정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오늘의 우리에게 좋은 글이 미래에는 먼지만도 못할 수도 있고 예전에 눈여겨보는 이 없던 글들이 뒤늦게 미래인인 우리가 찾아 읽기도 하니까요. 쓰고 보니 하나마나 한 소리나 재잘대는 오후네요. ㅎㅎㅎ 하나마나 한 소리라도 더 예쁘게 하고 싶다…일기는 일기장에 써야지…죄송합니다 ㅋㅋㅋ

syo 2021-05-11 12:05   좋아요 2 | URL
저는 오늘의 글이 명문인지 아닌지 읽는 사람이 읽는 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래에 먼지만도 못한 글이 더 먼 미래에는 찾아 읽는 글이 될 수도 있고 그러다 다시 더 미래에는 또 먼지가 될 수도 있어서, 미래의 어느 한 시점이 글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된다기보다, 각각의 미래를 현재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읽는 그 순간 각자의 방식으로 명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넘어가면 되지 않나, 합니다.

꼭 일기장에 써야만 한다고 본인이 판단하는 일기만 일기장에 쓰시고, 이런 의미있는 소리는 계속 알라딘에 써주세요 ㅎㅎㅎ

수이 2021-05-10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알라딘에~ 신승훈 오빠 노래 들으면서 말할 때마다 속눈썹 나풀나풀거리던 레지던트 오빠를 떠올리는 찰나 신승훈 오빠가 그럽니다 슬프기는 하지만 창 밖을 보면 편지를 써야지....... 여기에서 저 왜 이러나요 조증이다 조증 속눈썹 나풀나풀에 순간 조증이 오는 이 갱년기여 영원하라!

syo 2021-05-11 12: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따라잡을 수 없는 텐션의 댓글이다....

수이 2021-05-11 12:08   좋아요 0 | URL
나 글 썼어 1등 축하 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5-1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되고 헛되도다... 안타까운데 웃긴 이 마음 ㅎㅎ 일기든 뭐든 간에 읽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서랍에서 꺼내어 공개할 가치가 있는 거 아닐까요? 오늘도 즐겁게 읽고 갑니다^^

syo 2021-05-11 12:06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이 계셔서 늘 든든하다니까요 ㅎㅎㅎㅎ

AgalmA 2021-05-1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일기장에나 써라. 저도 이 소리를 들은 적 있는데, 공개되는 글을 쓴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듣는 소리 아닌가요ㅎㅎ 요즘은 더욱 그렇고^^;; 원글의 내용보다 도를 넘는 악플이 더 문제가 되고...

존 치버 등등 많은 작가들은 공개될 걸 염두에 두고 아예 일기를 썼잖습니까.
누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구는 저렇게 쓸 수도 있죠. 정치판처럼 말 꼬투리잡기식이 아니라 좋은 대화 나눌 수 있으면 그 글은 어느 정도 의미는 있는 거죠. 님의 이 글과 아래 많은 댓글들처럼.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글의 운명들ㅎㅎ

syo 2021-05-16 14:4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무슨 일기장 감별사처럼 넌 일기, 넌 안 일기, 잘도 정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놓고 그래 이건 일기고 여긴 일기장이다 임마들아- 하고 살지만요.

유부만두 2021-05-1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정말 재미 드럽게 없어요 ㅜ ㅜ

syo 2021-05-16 14:4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없어요 맞아요.
마리아랑 마틸다는 어떨까.....

감은빛 2022-05-0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는 내가 어쩔수 없죠.
저는 유당분해효소가 없어서 어려서부터 우유만 먹으면 탈이 났지만,
만약 우유를 많이 마셨어도 키가 더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아는 어느 작가가 소설로 한 번 등단하고 다음에 수필로 등단했다고 하더라구요.

소설로 등단은 실패했는데, 어쩌면 수필은 가능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했어요. 물론 이젠 포기한 지 오래예요.

일기, 수필, 에세이 그리고 잡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끄적이는 것만으로 재미도 있고 뭔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을 맹렬한 기세로 역행하는 syo님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