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KT&G)말고 에세(몽테뉴)를 사야 합니다

 

 

 

1

 

내 안의 나를 얼마나 온전히 꺼내어 세상에 내보일 수 있고 또 얼마나 설득력 있게 이것이 진정한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는 그저 표현의 문제일 뿐, 그와 별개로 내 안의 나, 그러니까 진짜 나라는 건 나 혼자, 그리고 오직 나만이 빚어나갈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나라는 것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잘 만드는 것과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하는 것, 그 두 가지겠다고 판단했다. 읽는 것과 쓰는 것. 그저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것 이상으로 더 나아갈 수는 없겠다고 진작부터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syo는 반드시 몽테뉴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생각하기라는 이상하고도 재미난 과정에 즐겨 빠져들지만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은편 사람에게 말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가! [펜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으며또 펜에는 그 나름의 습관과 격식이 있다펜은 독재자처럼 군림하여 보통 사람들을 예언자로 만드는가 하면통상 머뭇거리게 마련인 인간의 언어를 엄숙하고 당당한 행진으로 바꿔 놓는다몽테뉴가 뭇 망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단연 생생하게 두드러지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그의 책이 그 사람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그는 가르치기를 거부했고 설교하기를 거부했다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거듭 말한다그의 모든 노력은 자기 자신을 글로 쓰고 전달하고 진실을 말하려는 것이었으며바로 그것이 <보기보다 거친 길>이다.

자신을 전달한다는 어려움 너머에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더 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몽테뉴버지니아 울프어느 보통 독자의 책 읽기

 

1,0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몽테뉴의 두꺼운 중역본을 껴안고 뒹굴기에 반지하 하숙방만큼 적절한 곳은 없었다. 어차피 하루에 한 꼭지 이상을 읽지 않았으니 차라리 도서관 서가에 꽂아놓고 읽으러 다닐 수도 있었지만, 굳이 빌려와 읽고 반납하고 다시 빌려오기를 반복하며 한 계절 긁었던 이유는 그 책이 그런 책이기 때문이다. 나를 제외한 것들을 다 제외한 공간에서 길고 느른하게,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기보다 그 문장을 곱씹고 있는 자신을 곱씹으며 읽어야 좋을 그런 책. 몽테뉴의 에세는 그렇게 읽을 글이고, 동시에 그렇게 읽을 글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글이어서, syo는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syo가 원하던 syo가 되고 있었다. 내 안의 나를 만들고, 드러내고.

 

 

 

1.3

 

그 시점을 반환점으로 찍고 삶을 반으로 접어서 끝과 끝을 맞대면, 지금 syo의 나이는 아마 처음 글자를 읽기 시작하던 즈음의 나이와 맞닿겠다. 오늘의 syo가 생각건대, 온전한 나라는 것은 내 안에 없다. 내 안에는 물론 다량의 내가 있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 내가 한 일들, 쓴 글들, 뱉은 말들 속에 소량의 내가 흩어져 있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좌표로 찍히는 게 아니라 이 세상 전체에 장으로 펼쳐져 있다는 것이 최근 몇 년 syo가 딛고 있는 존재론이다. 자기장自己場.

 

그러니까 나는 나만 뒤져서는 죽는 날까지 나를 다 알 수가 없다. 내 밖에도 나에 대한 진실은 산재해 있다. 그것이 나의 파편임을 인정하는 것이 불편하거나 불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나만이 나를 독점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분명한 오만이다. 세상이 나를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세상의 오해와 나에 대한 나의 오해 사이의 어느 지점에 섬처럼 내가 있고, 아직 그 섬에 누구도 가보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 나에 대한 타인의 관념이 나에 대한 나의 관념과 다르더라도 그 양쪽이 모두 부분적인 나며, 그 불일치를 일치시키기 위해 내가 애를 쓴다면, 그건 나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 나를 고쳐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보면 모든 자기변호는 사실상의 자기계발이고, 자기에 대한 글쓰기는 그 자체로 자기에 대한 만들기인 셈이다.

 

 

 

1.8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더니 신간이 산간처럼 쌓였는데, 그 중 에세가 제일 눈에 띈다. 그렇지 않아도 다시 읽을 때가 왔다. 2,000페이지짜리 책에서 몽테뉴는 자신의 이야기만큼이나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번에는 그런 대목들을 읽을 때 눈에 힘을 좀 주고 읽어야겠군.

 

 

 

1.9

 

사려고 봤더니 적립금이 좀 부족하다. , 이대로 7월까지 글을 써서 8월에 적립금을 탄 다음 이 책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이 책을 지금 사서 읽고 그 글로 8월에 적립금을 탈 것인가, 지금 김칫국을 사발에 받쳐 들고 되게 진지하게 고민 중이오니, 떡 줄 사람이시여…….

 

 

 

2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결국 복잡한 과정을 통해 단순한 명제를 전달할 뿐인 책들- 철학책들이 있다. 반면 일어난 일들은 또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은 일들 역시 언젠가 일어나는 것이 세상이며, 따라서 세상은 클리셰를 답습하는 클리셰와 클리셰로부터 도망치려고 애를 쓰는 클리셰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책들- 소설이 있다. 내 마음이 지금 어떤 꼴인지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타인의 마음이 지금 왜 저런 모양인지 바깥에서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우리는 보통 클리셰에 의존한다.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저게 다 열등감 때문이다. 저게 다 어릴 적 부모에게 입은 마음의 상처 때문이다. 저게 다……. 편한 말이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편한 말은 다 후려친 말이다. 모든 쉬운 말은 쉬운 진실의 부분만을 겨우 포착하고, 심지어 어려운 진실 앞에서는 종종 틀린 명제가 되기도 한다. 어렵고 세밀한 진실에는 어렵고 세밀한 말이 필요하다. 쉬운 말로 캐치한 진실의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는 일이 잦아지면, 자기가 캐치하지 못한 진실은 진실이 아니라고 믿는 습관이 생긴다. 그런 습관은 언어 사용자를 어려운 말로부터 멀리 달아나게 만들고, 진실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점점 더 요원하게 만든다.

 

소설이 그런 편한 말 중독증을 치료한다.


 


레스터 영은 지금 이런 상황이다.

 

 - 점검!

 라이언 중위가 레스터의 사물함을 획 열어젖히고는 그 안을 들여다봤다. 거드름 피우는 중위의 지휘봉-레스터는 늘 그것을 지팡이라고 불렀다-은 사물함 문 안쪽에 붙여진 사진 한 장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한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 자네 사물함인가? .

 - , 그렇습니다. 중위님.

 - 그럼 자네가 이 사진을 붙였나?

 - 그렇습니다. 중위님.

 - 이 여자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었나, .

 - ?

 - 이 여자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게 되었는가?

 - , 머리에 꽃을 꽂고 있습니다. 중위님.

 - 그 밖에는?

 - ?

 - 내가 보기엔 이 여자는 백인이다. 젊은 백인 여성이란 말이다. . 자네 눈엔 어떻게 보이나?

 - , 제 눈에도 그렇습니다. 중위님.

 - 자네는 깜둥이가 사물함 안에 백인 여자 사진을 몰래 붙이고 있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나?

 레스터의 눈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라이언의 군화가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서 발가락에 닿고 있음을 보았다. 중위의 콧김이 다시 느껴졌다.

 - 내 말 들리나? .

 - 예 들립니다. 중위님.

 - 결혼했나?

 - 예 했습니다. 중위님.

 - 그런데 아내 사진 대신에 백인 여자 사진을 붙이고 밤에 이 사진을 상상하면서 자위라도 하나?

 - 저 사진 속 여인이 제 아내입니다.

 레스터는 가능한 한 공격적인 말투로 들리지 않게 하려고 그 사실을 조용하게 말했다. 하지만 사실의 무게는 경멸에 대한 반항을 전하고 있었다.

 - 중위님이라고 안 붙이나?

 - 그녀는 제 아내입니다. 중위님.

 - 사진 뜯어내게. .

 - 예 알겠습니다. 중위님.

 - 지금 당장.

 라이언 중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사물함으로 가기 위해 레스터는 기둥처럼 서 있는 중위를 돌아서 다가가 아내 사진의 모서리를 잡고 회색 금속 테이프를 뜯어냈고 사진은 찢어졌다. 찢어진 사진은 손가락과 사물함 문 사이에서 매달려 있다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 구겨져 버렸다.

 - 구겨서 버리게……. 지금 쓰레기통에 버려.

_ 제프 다이어, 그러나 아름다운

 

라이언 저 새끼는 지금 왜 저러는 걸까요? 이런 질문에 ‘xx같은 쉽고 뭉툭한 명사 하나가 떠오르고 말아 버리는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소설은 다음과 같이 어렵고 세밀한 일을 한다.

 

신병에게 모욕감을 줄 때 아드레날린이 강하게 몸을 휘감는 정상적인 경험 대신에 라이언은 그 반대의 기분을 느꼈다. 그는 전체 중대 앞에서 스스로를 창피하게 만든 것이었다. 레스터의 얼굴은 자존심, 자긍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공허한 표정이었고 상처 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자 라이언은 심지어 영의 노예와 같은 비참한 굴종마저도 반항이나 저항의 한 형태가 아닐까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그는 그 모습이 추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영을 그 어느 때보다도 증오했다. 그는 여성을 대할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여자들이 울면 때리고 싶은 충동이 최고조에 올랐다. 전에는 영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영을 파괴하고 싶어졌다. 라이언은 이처럼 무력한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는 힘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행동하고 있었지만 힘과 관련된 모든 것이 부적절하고 무의미해 보였다. 반역자, 주모자, 폭도들…… 그들은 모두 상대할 수 있다. 그들은 군대를 정면으로 대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해 보고자 행동한다. 하지만 강력한 당신, 바로 군대는 그들을 꺾어 버린다. 그러나 약함, 그것은 군대가 마주할 때 무력해지는 존재다. 왜냐면 그것은 힘에 의존한 대립의 개념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_ 같은 책

 

왜냐면 그것은 힘에 의존한 대립의 개념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장이 단지 이 한 장면만을 위해 마련된 일회용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작가 슨생님도 공을 들인 바가 있겠지만, 그런 걸 차치하고서라도, , 저 라이언 새끼가 왜 저러는 줄 알아? 라는 질문에 빡치고 쪽팔려서라고 쉽게 대답하지 않는 것, 그리고 중간 과정 다 잘라먹고 영의 약함이 힘에 의존한 대립의 개념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랬다라고 대뜸 대답하지 않는 것. 이런 지점들에 소설이라는 장르의 역할이 있는 것 같다.

 

  

 

--- 읽는 ---

 

어느 보통 독자의 책 읽기 / 버지니아 울프

그러나 아름다운 / 제프 다이어

행동경제학 / 리처드 탈러

쓸모 있는 음악책 / 마르쿠스 헨리크

이렇게 인간이 되었습니다 / 박재용

올 댓 이즈 / 제임스 설터

쓸모없는 수학 / 김동진

시소 첫번째 / 김리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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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06-29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ㅋㅋㅋㅋ 나 지금 딱 에쎄 앞에 두고 소요님 같은 생각중이었어요 ㅋㅋㅋ 공공장소에서 혼자 미친듯이 웃고 있음요 ㅋㅋㅋ

syo 2022-06-30 15:22   좋아요 1 | URL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가 에쎄를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물론 몽테뉴 말고 KT&G를 ㅎㅎㅎㅎㅎ

KT&G쪽이 더 지명도가 높겠죠??

반유행열반인 2022-06-29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전 수능 철학지문 싫어요 병이랑 쉬운 말 병 걸려서 진지한 글 못 읽는다구요…예쁘고 재미있고 하여간에 syo님 잘하는 감각적인 글을 내놔라! 는 농담이고 할 일 힘내서 하시면서 더운 여름 건강히 무사히 잘 보내세요 ㅎㅎㅎ

syo 2022-06-30 15:21   좋아요 3 | URL
아니 반님 같은 오구오구 전문가가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이번 글은 확실히 망했나보네요. 으아아아아....
비 엄청 내리는데 건강이며 안전이며 이래저래 조심하시옵소서.

그레이스 2022-06-30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
사세요!
ㅎㅎ
syo님 반갑습니다~^^

syo 2022-06-30 15:19   좋아요 2 | URL
샀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
적립금 있는 거랑 뭐랑 뭐랑 털어서 사버렸어요 ㅎㅎ.

그레이스님 반갑습니다!

공쟝쟝 2022-07-01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아는 에쎄는 담배… 아 그런 에쎄가 있었단 말인가 ㅋㅋㅋㅋ 쇼님 컴백?

얄라알라 2022-07-2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잘 쓰시지 않으십니까?

˝그 책이 그런책˝ ㅋㅋㅋ ˝떡 줄 사람이시여!˝ ㅋㅋㅋ 간만에 읽어도 역시 syo님 스퇄은 유쾌크리에이티비티!!

에세3권 표지가 syo님 포스팅에서 더 새로와보입니다. 플친님들 요새 에세가 대세인가봐요^^

syo 2022-07-21 22:28   좋아요 1 | URL
얄라님 감사합니다ㅎ

그동안에 뭐랄까, 믿고 읽을 만한 에세가 없었다고 할까요.
드디어 갖춰놓고 볼 만한 책이 등장한 셈이지요.
 

 


觀自在菩薩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1

 

다음은, syo가 알라딘에 나타나지 않는 동안 이웃들이 궁금해마지 않았을 알라딘의 반강제 인싸, 동거남 에 관한 소식이다. 비보悲報에 가깝다.

 

 

 

2

 

그 사이 은 이직을 감행했다. 더 작지만 더 비전 있는 회사로 연봉의 손실 없이 옮겨갔고 원하는 직무도 맡을 수 있었으니 노난 셈. 심지어 회사가 집에서 고작 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여차하면 걸어갈 수도 있지만 여차할 일은 없다. 그것이 . 그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고 있는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몸이 돼지가 되어서 사람이 나태해지는 것이 아니다. 돼지의 태도가 먼저 갖추어져 있었고, 몸은 그저 태도의 뒤를 따라 돼지까지 온 것이다. syo보다 5센티 크지만 5킬로 가벼웠던 전성기의 은 이제 없다. 안녕. 물론 그때도 너는 초라했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아니었으니 빛나는 과거라고 해 두자. 아름다운 때가 있었다고 착각해 보자. 지금 너는 반인반수.

 

 

 

3

 

월요일 밤 930. 주말 내내 잘 먹고 잘 논 덕에 그나마 사람 꼴을 하고 출근했던 은 술독에 절여진 비루먹은 짐승이 되어 돌아왔다. 검은 마스크에 하얗게 묻어 있는 그것을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고, 아침에 내가 빌려주었던 갈색 카디건이 그의 손에 무슨 스포츠신문처럼 구겨진 채 들려 있는 것을 보고 불안한 예감에 전율했으며, , 그가 카디건을 바닥에 던졌을 때,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으나, 그런 나를 보는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이 하나도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것저것 막 꺼내서 다 탁자 위에 던져놓는데, 거기에는 84,000원이 찍힌 호프집 영수증도 있어서 syo를 재차 빡치게 했다. 술도 잘 못 마시면서 겁나 호기롭게 주는 대로 다 받아 쳐먹는 이 새끼의 모습과 돈도 잘 못 벌면서 호기롭게 술값을 계산하는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왠지 내 주머니 털린 기분이 든 것. 그러거나 말거나 三은 옷을 다 벗어던지고 팬티만 입은 채 작은 방으로 들어가 새 팬티 하나를 챙겨서 화장실 쪽으로 향하더니 갑자기 우웩질을 시작한다! 이윽고 화장실에서는 되새김질하다 기도에 지푸라기 걸려서 헛기침하는 황소 울음소리 같은 것이 울려펴졌고, 그 소리는 샤워기 물 떨어지는 소리가 시작된 이후에도 적절한 타이밍에 불결한 화음을 이루며 등장하여 관객의 귀를 꾸준히 더럽혔다. 20분 지났으려나,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나온 녀석은 챙겨간 팬티는 어쨌는지 깨벗고 튀어나와서 젖은 수건으로 검열삭제를 가리는 둥 마는 둥, 막걸리 마신 좀비 걸음걸이로 곧장 큰방으로 들어가 제 자리에 그대로 퍼져 눕는다. 앓는 소리는 끝없어서 가엽다. , 내가 저걸 보는구나. 같이 목욕탕 다니던 어린 시절 이후로 한 번도 안 봤던 저걸 오늘 나는 무슨 죄로 봐야만 하는가. 뭐 그런 상념에 젖어 있었지만,

 

syo가 보기 싫어도 봐야만 했던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생각건대, syo가 필력을 총동원하여 그 상황을 묘파한다면, 내 어제 느꼈던 기분의 오 할 정도는 여러분께도 전달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이 alt+F4를 누르거나 핸드폰을 집어던지는 건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올해의 목표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겠다. 그냥 한 마디만, 내가 왜 내 집 안방 바닥을 닦으면서 저 새끼가 저녁에 홍합탕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20년쯤 전, 대학 OT에서 한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 술 취해서 잔다고 방에 들어가면, 3분 뒤에 멀쩡한 사람 하나가 따라 들어가서 그놈을 뒤집어 놓으라고. 천장보고 자다가 풔ᅟᅩᆼㄹ네바ㅓ루피하면 지 ㅇ허ㅔ뎧 ㅑᅟᅢᆼㄹ픠ㅏ에 질식사 하는 수가 생긴다고. 나는 또 한번 저 새끼를 구했다.

 

 

 

4

 

새벽 내내 시간 단위로 화장실로 달려가던 녀석은 아침에도 역시 물 한 잔 마시고 세 잔 치를 게워내더니 회사에 전화해서 못 간다고 하더라. 9시 반에 병원 문 열면 갔다 오라고 당부했지만, 술은 가끔 취해도 게으름에는 늘 취해있는 녀석은 결국 11시 반까지 도합 7번의 잔소리를 더 들은 후에, 이제 진짜 한 번만 또 같은 말 하게 하면 홍두깨로 뚝배기 깰 거니까 내과 가고 싶으면 지금 일어나고 외과 가고 싶으면 계속 누워 있어 보라는 소리까지 듣고서야 침대에서 기어나와서, 주사 한 방 맞고 약 한 봉지 들고 돌아왔다. 그런 이유로 오늘 점심 메뉴는 참치와 새우살을 넣은 죽이었다. 조개 다시다를 넣었더니 삼삼하니 간이 괜찮았다. 녀석은 반 그릇 뜨고는 방에 누워서 웹툰을 본다.

 

 

 

5

 

그냥, 같이 사는 남자의 저딴 드러운 꼴을 보고 그 뒤치다꺼리까지 하는 비극적 운명을 돌파해 이러구러 오늘에 도착한 인격재벌이 서재이웃님들 중에도 반드시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서, 동병상련의 정이라도 한 번 나누고 싶다. 제가 요즘 이렇게 살아요…….

 

 

 

6

 

그래도 정말이지 오랜만에 책이라는 것을 읽게 되었다. 이런 고난을 헤쳐나갈 방법은 늘 스토아철학이기 때문에. syo가 이해하는 스토아철학이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부터는 어찌되지 않는 인간이 되는 방법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저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고, 나는 저것으로부터 내 일상을 흔들림없이 지켜나가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이 목표하는 바를 이렇게 말한다.

 

이쯤에서 이 책의 목적이자 당신이 얻게 될 가치가 어떤 것인지 정리해 보자. 이는 다음과 같다. 더 명확해지고, 덜 두려워하기. 목적을 더욱 분명히 하고, 덜 무기력해지기. 더 집중하고, 덜 산만해지기. 마음을 더욱 다스리고, 감정적인 반응 덜 하기. 더 감사하고, 덜 분노하기. 바꿀 수 있는 일은 더 열심히 하고,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덜 불안해하기. 주인공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더욱 줄이기. 더 용기를 갖고, 덜 후회하기. 더 인정하고, 덜 걱정하기.

  한 마디로 이 책은 당신이 고통을 덜 받으면서 더 많은 걸 이루도록 도와줄 것이다.

_ 마르코스 바스케스, 스토아적 삶의 권유

 

아니, 이 책은 고작 그런 걸 도와주려는 게 아니구만, 보니까. 그냥 더 간단하게 이 책이 너를 신으로 만들어준다- 이렇게 쓰지 그러셨어요.

 

 

 

--- 읽는 ---


스토아적 삶의 권유 / 마르코스 바스케스

탁석산의 공부 수업 / 탁석산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 강혜빈 외

외롭지 않은 말 / 권혁웅

일상생활의 혁명 / 라울 바네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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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4-19 15: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시오님과 함께 삼님도 돌아오셨군요
책 쓰시면 잘 팔릴듯요

북다이제스터 2022-04-19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웰컴 빽!^^

다락방 2022-04-19 17: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쇼왔숑? ☺️

2022-04-19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2-04-19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 저 책 살거야. 삼님은 왜 이렇게 귀여워? 대체

단발머리 2022-04-19 1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제 어디서든 한 번은 만나보리라, 삼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란공 2022-04-19 2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궁금했지요ㅋㅋㅋ 삼님에 대한 애정 뿜뿜ㅋㅋ

Angela 2022-04-20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신거예요? 스토아 철학부터 다시~

감은빛 2022-04-20 08: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라면 절대 syo님과 동거하지 않을 거예요. 필력이 무서워서 같이 살 수가 없어요. 삼님이 제발 평생 이 글을 읽지 못하길 바랍니다.

mini74 2022-04-20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삐삐삐 숟가락으로 퍼냈던 기억납니다. 혹여 죽을까요 ㅎㅎㅎ 너무 반갑습니다 ~~~ 빵 터지며 신나게 읽었어요

독서괭 2022-04-21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님 ㅋㅋㅋㅋ 너무 반가워요 ㅋㅋㅋㅋ syo님 고생하셨습니다. 토닥토닥

scott 2022-04-21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의 셀럽 삼님 ㅎㅎ소요님의 영원한 소울 메이트 ^^

얄라알라 2022-04-26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반가운 나머지 끝까지 읽기도 전에 중간 수다 댓글......!!!!

˝여차하면 걸어갈 수도 있지만 여차할 일은 없다.˝ ㅋㅋㅋ 이 문장에서 syo님 오랜만에 나타나셨어도, 여전하시구마이 !! 아이 반가워라~~좋아라, 얼씨구!
 
윤동주 전 시집 - 최종완결 증보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지음 / 스타북스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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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고 쓰는 일은 뜻밖에 고되다. 먹지 않고 싸려니 왼갖 장기에 붙어 있는 찌꺼기들을 다 긁고 또 쥐어 짜내야 뭐라도 한 덩이 방출 가능한 그런 드러운 모양새인데, 이런 상황에 생산되는 것들이 철학도 소설도 아닌 시의 파편이라는 사실은 또한 스스로에 대한 작은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 , , 시여. 믿을만한 정보통에 따르면 syo라는 닉네임은 시라구요? 이게요? 시요?(syo?)”라는 질문과, “, 이래 봬도 이게 시입니다. 시요……(syo……)”라는 대답의 일부분을 발췌해서 탄생했다고 한다.

 

시와 syo는 정말이지 애증의 관계가 아니라 할 수 없다. 네까짓 게 감히 나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냐며 겁나 차갑고 도도하게 굴어서 syo로 하여금 눈물 흩뿌리며 시인의 꿈을 접게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아픈 사랑의 과거를 다 털고 알라딘의 똥글러로 소소하지만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syo에게 봄이나 밤이나 봄밤이거나 비오거나 밤이거나 비오는 밤이거나 하여간 센티멘탈 냄새만 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전화를 걸어 자니…… 내 생각하니……를 남발하여 잠복 중인 중2바이러스를 흔들어 깨우는 아, 그 뱀 같은 존재의 이름은 시.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럼에도 내장지방처럼 들러붙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질척거리는 시여, 아아, 시여.

 

서로를 향한 우리의 무한 애증, 그 시발점은 중고딩 시절에 있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세 편의 시와 관련이 되어 있다. 하여 시-syo의 애증 비긴즈는 아래와 같은 3부 구성으로 제작되었다.

 

 

1

< 중2가 되어 바로 그 병을 앓던 syo가난한 사랑 노래」>

 

2가 되면 시가 쓰고 싶어진다. 물론 중1때도 시를 쓰고 싶은 아이란 있겠지만, 그런 아이일수록 더더욱, 딱 중2가 되면 시가 마려워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게 된다. , 그것은 뭐랄까, , 일종의, , 말로 설명하기가 좀, , 하여튼 쥰나 멋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써야만 한다, 왜냐하면 후훗 나는 남들과 다르므로- 뭐 이런 비논리가 지동설처럼 당연해지는 것이 중2의 봄이다. 그런 중2들이 보는 국어 교과서에 신경림의가난한 사랑 노래를 싣는 만행을 교육부는 서슴없이 저질렀던 것이다.

 

그해, 옆 반에 범상치 않게 생긴 친구가 있었는데 이름은 범상이었다. 범상치 않은 얼굴의 범상이가 시 쓰기라는 범상치 않은 취미를 가졌음을 syo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건 뭐 범상한 사연이었던 것 같고, 하여튼 기억 속의 범상이는 하루에 한 번 자기가 쓴 시를 가지고 와 syo에게 보여주면서 감상평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청소년이 시를 쓴다는 것은 참 희한한 것으로, 내가 시를 쓰는 것은 자랑거리지만 주변에게 알려지면 놀림거리가 되는 것이 이 나라 남중남고의, 아니 교육계의 참담한 현실이다. 이건 윤동주 선생님이 환생해도 도리 없다. 운도 좋게 이육사 선생님의 환생이 옆 반에 있다면 그냥 둘이서 서로의 시나 돌려보면서 동병상련의 정을 나눌 수는 있겠으나, 그런 그들도 고등학생이 되면 정석이나 벅벅 풀겠지. 요약하면, 윤 선생님도 이 선생님도 아니면서 syo와 범상은 둘이서 서로의 시를 돌려보는 애틋한 관계였던 것.. 그러던 어느 날의 우리가 가난한 사랑 노래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교과서에서.

 


가난한 사랑노래 / 신경림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끌려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는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날 모처에 모인 우리는 굉장히 충격을 받은 얼굴로 마주 앉아 서로의 시는 펴지도 않고 찢어버린 채 오직 가난한 사랑 노래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아니 대관절 시란 무엇이건대, 가난도 사랑도 노래도 모르는 우리에게 가난한 사랑 노래가 뭔지 다 알 것만 같은 기분을 선사하는가 이 말이야. 난 가난은 좀 아는데……. 범상아, 범상아, 그치만 넌 사랑을 모르잖아. 사실 말은 안 했지만 나 노래도 좀 해……. 아이고, 범상아, 범상아, 그치만 넌 사랑을 아예 완전히 하나도 조금도 터럭만치도 모르잖아. ……그래, 몰라. 그치만 니가 나쁜 새끼라는 것은 알겠어……. 하여튼 우리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사랑을 버리는 마음도 당연히 모를 거면서, 우리는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아예 모름-이랄지,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네 숨결-완전히 모름-이랄지, 터지는 네 울음-조금도 모름- 같은 것들에 대해 마치 내가 그것들을 다 만나고 온 게 바로 어제인 마냥 실감나게 이야기하며 감탄하다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번에 다시 만나 주고 받은 서로의 시에는 골목길’, ‘입맞춤같은 시어들이 마치 짜고 쓴 것마냥 공히 들어있었던 것. 그날 우리가 바꿔 읽은 시를 서로에게 돌려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설령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들은 그냥 골목길에서 입 맞추고 헤어진 한 남자의 뒷모습에 대해 쓴 두 장의 종이에 불과했다…….

 


  

2

< 언어 생태계의 혁신을 초래한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메신저에서 범상이는 무슨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계속해서 시를 쓰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시를 보여줄 사람이 없고, 가끔 서로 시를 바꿔보던 시절이 그립다고도 했지만, 미안하게도 그건 이제 니 사정이었다. 그때의 syo는 공부량의 팔 할을 쏟아부어도 바람처럼 흩어지는 수학 때문에 어떤 이는 내 눈에서 등신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쪼다를 읽고 가나 아무것도 뉘우칠 틈 없이 병든 수캐 마냥 헐덕어리며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석定石은 정말이지 syo의 마음을 점점 돌처럼 굳히며 제 이름값을 톡톡히 했고, 이미 시란, 문학이란, 찢고 자르고 쪼개고 으깬 다음 현미경을 들이대어 시험에 나오는지 아닌지를 판단한 후 전자를 취하고 후자를 버리면 되는 한 뭉치 활자의 모임에 불과했다. 그러던 봄이던가 여름이던가, 정말이지 단 한 방에 딱딱해진 syo의 마음을 다 녹여낸 불타는 물의 시를 만난 것이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가난 때문에 사랑을 잃어야 했던 여름 같은 젊은 날이 다 지나가고 어느덧 삶은 가을, 등성이에 이르면 절로 눈물 나는 생의 가을에 불타는 가을 강을 바라보며 생의 한그림을 처음으로 조망하게 된 사람이 거기 서 있었다. 저것 봐, 저것 보라며, 저 가을 강이 소리 죽인 울음으로 환하게 태우고 있는 모든 것 속에 해보지도 않은 사랑과 해보지도 않은 입맞춤과 해보지도 않은 이별이 있고, 아직도 시를 쓰며 중학교 시절을 그리워하는 말랑말랑한 고등학생 범상이와 정석을 풀어제끼며 딱딱해지는 고등학생 syo도 있고, 시를 쓰며 가든 정석을 풀며 가든 어떻게든 가야만 하는 시간이 있고, 기쁜 소리가 사라지고 울음까지 녹아나면서 결국 도착해야 하는 바다가 있고- 하여튼 그 당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 안에 다 있었다. 있으면서 아름답게 있었다. 그렇게 이 시는 벼락 자국이 되어 syo의 어딘가에 박혔고, 그것이 시가 되었건 일기가 되었건 연애뻘글이 되었건 syo는 남은 평생 쓰는 모든 글을 다 이 시의 자장 아래에 두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저건 진지하고 아름다운 버전의 이야기. 물론 그때도 이 시는 지적/감성적 충격으로 syo를 육박했지만, 당시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저런 감상보다는 오히려 이 시의 언어 자체였다. 예를 들면 32행의 네보담도 내보담도같은 것. 저건 뭐지? 네보담도 내보담도 저건 아무래도 너보다도 나보다도 같은데, 저게 왜 저기 있지? 그런 생각을 오래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요한 건 너도 나도 아니고,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너보다도 나보다도 오히려 저 강이라고. 그렇게 오래 들여다 보았더니 저 시행은 뭣이 중헌디비슷한 느낌으로, 네 생각도 내 생각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 하찮다 아무렇게나 해라 어차피 다 하찮다 귀찮다 응닥쳐 하는 느낌으로 수차례 변모를 거듭하면서, 결국 syo를 통해 우리 반이라는 작은 언어 생태계에 최상위 포식자로 등장했다. “네보담도 내보담도가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해 미묘하지만 약간씩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 여러 대답들의 끔찍한 혼종이 된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 문제에서 모든 대답은 옳은 번역의 예시이다.

 

Q1. , 교실 문 좀 닫아라.

A1-1. 네보담도, 내보담도. 니가 봤음 니가 해라 안 해.

A1-2. 네보담도? 내보담도 춥냐/덥냐? 난 아닌데 안 해.

A1-3. 네보담도, 내보담도?! 니가 시키면 나는 하는 사람이냐?, ? 안 해.

A1-4. 네보담도네보담도오- 응싫어걍싫어꺼져싫어 안 해.

 

Q2. , 솔직히 요다 저 새끼 진짜 겁나 못생기지 않았냐?

A2-1. 네보담도, 내보담도. ㅇㅇ

A2-2.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래도 니보다는 잘생겼다.

 

Q3. , 대체 돈 언제 갚을 거냐.

A3-1. 네보담도, 내보담도! 우리 사이 이것밖에 안 되냐?

A3-2. 네보담도내보담도? 그런 일이 있었던가?

A3-3. 네보담도, 내보담도… → 친구야 저기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렴, 우주라는 것에 비해 우리 인간은 얼마나 작으냐, 우리 인간이 하는 일들은 더욱 작을 것이다. 그렇다. 빌리고 갚는 일, 그런 일들은 정말이지 작고 작고 작은 일이다, 친구야…….

 

이것 말고도 “~나고나체랄지, “~것네체 같은 어투가 소소하게 유행하면서, 6반 아이들은 5/7반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에서 미묘하게 외국인 취급을 받았던 기억이다.

 

 

 

3

< 이럴 거면 왜 나한테만 잘해줬어요 쉽게 씌어진 시」>

 

이렇게 3년 주기로 거대한 감동을 받긴 했지만 아직 syo는 시인보다는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고, 창작보다는 미적을 잘하고 싶은 고3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의고사를 치르다가 시험지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는 평소였으면 3분에 풀고 넘길 것을 13분 동안 시 하나만 쳐다보고 있었으니, 시험치다가 시 감상에 빠지는 것이 꽤 나답기는 한데, 컴퓨터용 사인펜 손에 들고 OMR카드 쳐다보다가, 그래 나는 커서 시인이 되어야겠어-하고 결정하는 걸 보면 나도 참 나다. 시와의 애증관계가 본격화 된 것이 이 지점부터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원흉은 윤동주 선생님의 쉽게 씌어진 시이다.

 

 

쉽게 씌어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오늘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시가 <참회록>이나 <또 다른 고향>, <서시> 등에서 자신에게 너무 혹독하게 굴던 화자가 비로소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최초의 악수를 하는 전환의 순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당시 내 눈을 붙잡은 문장은 바로 끝에서 두 번째 연 2행에 있는 시대처럼 올 아침이라는 구절이었다. 왜 윤동주 선생님은 최후의 나로 하여금 아침처럼 올 시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게 한 걸까? 참고서에는 분명 광복이 올 것이라는 확신의 표현이라는 한 줄의 해설을 달고 말았을 이 시행이, syo에겐 너무나 아름다웠다.

 

비유에서, 어떤 속성을 빌려오는 말은 빌려주는 말보다 그 속성을 더 크게 가지지 않는다. “태양처럼 빛나는 눈동자라는 구절이 있다고 하면, 실제로 눈동자가 태양만큼 빛나지 않기 때문에 태양으로부터 빛남의 속성을 빌려오는 일이 의미를 가진다. 태양보다 더 밝은 무엇의 밝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태양처럼 밝다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걔 입장에서는 뭐야, 태양 걔 나보다 어두운데, 내가 어둡다는 거야 지금? 할 거니까. 할아버지 칠순 잔치에서 손주가 할아버지, 갈라파고스 대왕거북처럼 오래(170년 근방) 사세요- 해야지 코끼리처럼 오래(70년 근방) 사세요 하면 분위기 애매해지고, 독수리처럼 오래(40년 안짝) 사세요- 하면 후레자식은 떼놓은 당상인 것이다.

 

그래서 비유라는 기술의 체계 안에서 아침처럼 올 시대라는 표현은 시대(=광복으로 봐도 좋겠다)가 아침으로부터 <반드시 온다>라는 속성을 빌려옴으로써 정석적인 표현이 된다. 사실 화자가 기다리는 것이 아침이 아니라 시대이기도 하고, 읽는 우리도 자동적으로 아침이 오듯 시대가 반드시 온다는 뜻이로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에, 체계만 놓고 보면 시대처럼 올 아침은 비유의 법칙을 뒤집은 파격이 된다. 그러나 이 파격은 체계에 올라타면 더 큰 의미를 가지는데, 빌려주는 말이 빌려오는 말보다 속성을 더 크게 가진다는 체계의 법칙 안에 다시 저 파격의 구절을 대입해보면 결국 시대가 아침보다 <반드시 온다>라는 속성을 더 크게 가진다는 함의가 생긴다. 아침도 반드시 오는데, 시대는 그것보다 더욱 반드시 온다-는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린 syo는 윤동주 선생님의 이 미묘하지만 파괴적인 기술 한 방에 바로 한 판을 잃었다.

 

나중에 헤겔의 변증법에 대해 읽으면서 제일 처음 떠올랐던 것도 저 구절이었다. 정반합은 하얀 정과 검은 반이 합쳐져서 회색 합이 되는 단순한 합연산이 아니고, 정의 속성이 온존하는 가운데 반도 역시 그러면서 둘이 하나의 합을 이루는 심오한 과정이다. 비유의 체계가 정이라면 시대처럼 올 아침은 반이고, 그것이 합이 되는 과정에서 반은 정에 오르고, 정은 반을 휘감는다. 그러니까 반인 시대처럼 올 아침이 의미가 있는 것은 체계를 자신에게 적용하기 때문이고, 체계는 정으로서 저 구절을 포괄하며 한층 더 아름다운 시의 합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저 문장은 시의 영역을 채우는 동시에 가장자리를 넓혀 더욱 많은 문장이 시의 품으로 유입될 수 있는 여백을 확보한다.

 

이런 것을 나만 알아본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눈 밝은 사람은 매우 적을 것이라고 syo는 믿었다. 시로부터 뽐뿌를 받은 것이다. 나를 알아 봤다? 대단한데? 너는 뭔가 가능성이 있어! 젊은이여, 나를 한번 써보지 않겠는가? 시를 쓴다는 것은 말이지, 굉장히 특별한 일이란다. . . . . 너는 그 특별한 일을 할 수가 있어. . .

 

그래서 그 즉시 정석에 깔려 오래 숨죽이고 있던 중2병의 잔당세력들이 다시 준동을 시작했다. , 이것은 뭐랄까, , 일종의, , 말로 설명하기가 좀, , 하여튼 쥰나 멋있는 것인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써야만 한다, 왜냐하면 후훗 나는 남들과 다르므로-

 

그게 시작이었다. 시인이 되겠노라고 향후 5~6년을 설쳐댄 것은.

 

그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많은 시들이 있었고.

 

 

 

에필로그

 

그때는 서른 전에 시인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서른 전에 그 생각을 접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급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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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4-10 1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필로그에 동의할 수 없어욧!! syo님(맨날 스요님이라 했는데 급 시요님이라고 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ㅎㅎ)은 이미 시인이요, 글쓰는 사람이죠. 지금도 이렇게 재밌는 글을 쓰시면서 말이죠. 혹시 아나요? 언젠가 나올 책에 20대 때 썼던 시가 실릴지.

근데 과거의 학교는 여학교든 남학교든 참 글 쓰는 거에 대해 그렇게 구박했는지 모르겠네요. 그쵸?

윤동주님의 <쉽게 씌어진 시>는 다시 봐도 좋네요. 저는 유치환님의 <행복>이랑 서정주(ㅜㅜ)의 <춘향유문>을 참 좋아했는데… 어쩌다 이야기가 이리로 튀는지… 독수리처럼 오래 사세요. 이런 느낌입니다. ㅎㅎㅎ

syo 2022-04-19 14:46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20대때 썼던 시들을 주욱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딱 1편 빼고는 전부 소각 각이었습니다..... 그런 글들은 세상에 나오면 안 됩니다요....

사실 남학교 경우는 학교가 글쓰기를 구박했다기보다, 또래 아이들이 놀렸다는 쪽이 정확합니다.....

새파랑 2022-04-10 1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는 스요? 아닌가요? ㅋ 오랜만에 보는 가난한 사랑노래는 좋네요. 교과서에 실릴만 합니다~! syo님 시인 하셨으면 진작 등단하셨을듯 합니다~!!

syo 2022-04-19 14:47   좋아요 1 | URL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진작 포기하고 빤스런했습니다.
그래서 좌절이 없었지요.
어차피 되지도 못할 건데 좌절까지 먹기는 너무 슬프잖아요...

stella.K 2022-04-10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Q 1, 2, 3는 이상의 시를 연상케 하는데요?ㅎㅎㅎ
스요인 줄 알았는데 마이크로 소프트가 음성지원이 되서
컴퓨터가 어떻게 읽는가 했더니 쇼던데요? 그래도 전 스요님이라고 우기고 싶다는.ㅋㅋ
역시 스요님은 스요님만의 독특한 리뷰를 쓰는군요.
윤동주의 저 시는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syo 2022-04-19 14:4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스텔라님의 이 댓글을 예상했습니다.
알라딘에서 저를 최초로 ‘스요‘라고 부르신 분이 스텔라님인데, 제가 그동안 스텔라님의 글과 댓글을 읽고 짐작한 대로라면, 스텔라님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뭐라고 해도 상관없이 계속 스요라고 부르실 뿐더러, 그럴 거라는 사실을 제게 알리기도 할 분이시죠 ㅎㅎㅎㅎ

이름은 부르는 사람이 정하는 거죠. 저도 제 닉네임을 제 마음대로 부릅니다ㅎㅎ

페넬로페 2022-04-10 2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왕지사 읽지 않고 쓰기로 했으니
그냥 등단합시다요.
일타이피, 일석이조, 일거양득^^

syo 2022-04-19 14:49   좋아요 1 | URL
읽지 않고 쓰는 일은 읽지 않아서 안 쓰는 일과 경계가 모호하군요.....
정말이지 쓸 게 안 생기네요 ㅠㅠ

독서괭 2022-04-10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오랜만에 syo님 이달의 당선작에서 볼 수 있겠네요^^ syo님만의 이 위트 너무나 반갑습니다. 자려다 말고 끝까지 읽어버렸다.. 인용하신 시들 다 참 아름답네요. 새삼… 아직도 말랑말랑한 syo님의 마음도 멋지고요.. 전 중2에 썼던 시들 몇 년 후 다 찢어버리고 다시는 쓰지 않습니다 ㅠㅜ

syo 2022-04-19 14:50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도 중 2때 쓰셨군요. 역시. 어쩌면 우리가 어느 날 같은 순간에 시를 쓰고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같은 순간 그걸 다 찢어버렸을 수도 있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다 찢어없애야 돼 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2-04-11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슨 책 읽는 줄 … 하… 나는 안 부럽다 부럽지 않다 글 잘 쓰는 사람 안 부럽… 흑흑 😿
나중에 다시 읽으러 또 올게요!!!!

syo 2022-04-19 14:51   좋아요 0 | URL
너무 오랜만에 써서 굉장히 못마땅했는데, 난티나무님께서 제가 그럴 줄 알고 이렇게 딱 기운을 불어넣어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새파랑 2022-05-07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복귀하셔서 바로 당선된 syo님 축하드려요 ^^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많이많이 읽고 싶습니다~!!

이하라 2022-05-07 0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당선은 당연하게만 느껴집니다.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기분 좋은 주말되세요~~^^

독서괭 2022-05-0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도 syo의 복귀를 기다렸다!!^^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2-05-07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강나루 2022-05-08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일인용 식탁

 

 

 

어떤 것도 당연하다고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매번 끼니를 차려내는 일을 당연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얻는 것은 그저 한 차림의 밥상에 그치지 않고, 뭐랄까, 어떤 근본적인 것, 그러니까, 당연함을 당연하게 인지하고 수락하는 일에 타인의 강압이 조금도 개입하지 않았을 때, “이건 당연한 거잖아라는 말이 족쇄가 아니라 삶의 굳건한 기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그런 감각은 다른 누구도 함께하지 않는 밥상에서 오직 나 하나 먹을 나만을 위한 식사를 준비할 때에만 오는 것 같다. 다른 이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는 일은 물론 숭고하지만 하나도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양을 조금 늘리고 수저 하나 더 놓는 정도의 수고가 더해질 뿐이라고 해도 그것은 혼자 먹을 것을 만드는 일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고 완전히 다른 감정이 뒤따른다.

 

또한 그저 허기를 쫓아내려는 의지가 앞설 때나, 누가 해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사람이 없는 처지에 목숨 부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할 수밖에 없어서 할 때, 결국에 차려진 밥상 자체는 같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밥상을 차리는 마음이 다르면 밥상이 차리는 마음도 같을 수 없다. 온전한 혼자의 부엌에는 수많은 들여다봄이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열기 전에 먼저 자신을 열고, 지금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들여다보고, 지금 내게 무엇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지금 내게 무엇을 새로이 시도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지 들여다본다. 그렇게 한소끔 들여다본 다음, 그전의 나와는 살짝 다른, 나를 몇 번 더 들여다본 나, 들여다보는 일에 얼마간 더 익숙해진 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선다. 그런 일을 당연하게 반복하는 사람. 내게 무엇이 필요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뜻이 있는지를 잠깐이지만 거듭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하루에 두어 번은 꼭 해내는 사람. 매번 끼니때마다 조금 더 그런 사람이 되는 일요리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겠으나 요리의 반복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는 일그런 일들이 쌓여가고 있으므로 숟가락을 들 때마다 자신이 조금씩 더 어여뻐지는 요즘이다.

 

간결하게 말해 보면 이렇다내가 먹을 음식을 내가 만들 때마다 나는 나에게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된다.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함민복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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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2-04-06 0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syo 님 글 반갑습니다! 요 밑에 보니 며칠 전에 오셨군요. 웰컴 백! 재기넘치는 syo님 글 기대하겠습니다.

syo 2022-04-10 16:32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프님! ㅎㅎ

독서괭 2022-04-06 04: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밥 차리는 일을 항상 하기 싫은 노동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맘을 좀 바꿔먹어봐야겠어요. 물론 나만을 위한 밥상 이야기지만요^^

syo 2022-04-10 16:31   좋아요 1 | URL
저도 차리는 일은 즐거운데 차려주는 일은 엿..... 밥그릇에 엿이나 가득 담아서 먹여주고 싶을 때가 많답니다 ㅋㅋㅋㅋㅋㅋ

scott 2022-04-06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님 웰컴백
따스한밥 든든히
건강잘 챙겨요

syo 2022-04-10 16:31   좋아요 1 | URL
스캇님 반갑습니다.
슥 둘러보니 여전하셨네요. ㅎ

유부만두 2022-04-06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치 보다 먼저 익는 마음! 먼저 시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군내가 나서도 안돼고요. 근데, 김치에 마음을 비유하자니 겉절이 마음은 어떤걸까, 궁금해졌어요.

syo 2022-04-10 16:31   좋아요 1 | URL
전 신 김치 좋아하는데 ㅎㅎ 오히려 겉절이에 손이 잘 안 가더라구요.
같이 사는 놈은 또 신 김치 싫어해서 밥하는 제 입장에서는 뭐 니가 겉절이를 좋아해도 밥하는 내가 신김치 내놓고 찌개 끓이고 볶으면 니가 어쩔건데 하는 식이 되어서 이득이 있네요 ㅎ

딴 이야기를 실컷 했군요.

책읽는나무 2022-04-0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데 왜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지?
이건 쇼님 뱅기 태워드릴려고 하는 말 아닙니다. 구구절절 왜 눈물이 핑~ 돌았는지 나열하려 했지만, 멀미약 챙겨 드실까봐 참습니다. 진짭니다. 약은 자주 먹어 좋을 게 없어요. 건강한 밥상만 챙겨 드세요^^

syo 2022-04-10 16:28   좋아요 2 | URL
쓰는 저는 즐거운 마음에 썼는데 눈물이 핑 도셨군요....
저는 끼니 챙겨먹는 게 하루에 하는 일 가운데 제일 크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별일 없는 삶이어서 늘 잘 챙겨먹고 있습니다. 책나무님도 건강한 밥상 화이팅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04-07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이 글을 읽고 곱씹다가 오늘 수학 여섯 시간 하고 집에 와서 고생한 저한테 스파게티를 해 주었습니다ㅎㅎ그러니 syo님도 계속 syo님 어여삐 대해 주세요ㅎㅎㅎ

syo 2022-04-10 16:27   좋아요 2 | URL
스파게티 그것이 3일전 일이로군요.
수학 여섯 시간이라면 스파게티 여섯 그릇 드실 자격이 있으시네요!

저만큼 자기 자신을 어여삐 여기는 사람도 흔치 않을 거예요 ㅎㅎㅎ 반님도 힘껏 반님을 어여쁘다 어여쁘다 해주세요. 수학 여섯 시간이라면 어여쁘다 육천 번 드실 자격이 있으시네요!
 


읽지 않고 쓰는 syo

 

 

 

1

 

오래 읽지 않음으로써 내 읽기에 관하여 새로 깨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읽기라는 단어가 팔 할의 참으로 이루어졌다면 책 읽기라는 단어는 구 할이 구라라는 것이다.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책이라는 착각이 물처럼 있었고 책을 읽는 내가 물고기처럼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책을 더 오래, 더 많이 읽을수록, 아가미질 꼬리질이 능숙해질수록 syo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생선이 되어갔고, 모든 물짐승들의 비늘이 젖어있듯, 나도 늘 책을 몸에 묻히고 살았다. 책비린내는 자꾸 진해져만 가는 것…….

 

거짓말처럼 독서를 멈추고 반년, 이상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육신과 정신을 들여다보면서 syo가 내린 결론은 결국 내가 그동안 읽어 왔던 게 책이 아니라 나였다는 것. 나는 책이 아니라 책을 읽는 나를 주구장창 읽었구나, 책의 내용을 말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은 나의 내용을 말했고, 책에서 훔친 내용을 내심 내가 획득한 것이라 여기며 어떻게든 뽐내고 싶었면서도 겸손을 가장하기 위해서 이건 책 이야기일 뿐이고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헤헤헤- 하며 기만을 일삼았고, 그럼으로써 책의 내용뿐 아니라 권위까지 동시에 훔쳐서 출처도 불분명한 내 생각을 치덕치덕 쳐발쳐발 곱게 분장한 다음 세상에 꺼내놓아 애정을 구걸했구나 하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그런 것이 독서의 무서운 본성일 수도 있겠다는 것.

 

 

 

2

 

책을 읽는 행위와 책을 읽는 나를 읽는 행위를 명쾌하게 갈라낼 수 없는 것이 독서의 본질이라면, 읽히지 않음으로써 영원히 읽히는 책이 있듯, 읽지 않음으로써 영원히 읽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무한에 가까운 책을 읽었다는데도(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움 방향으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독자가 있듯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뭐냐는 질문에 책 한 권 이름 대기도 어려워 머뭇거리는 비독자들 가운데에도 넉넉히 아름다운 이가 있을 것이다. 이런 씁쓸한 대조를 마주할 때마다 대체 읽기란 뭐며 무슨 의미가 있으며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어찌 보면 이건 읽기에 대한 두어 가지 유명한 명제만 조합해도 간명하게 답이 나오는 문제다.

 

  첫째. 편협한 읽기는 편협한 사람을 만든다.

  둘째. 모든 사람은 책이다.

  그러므로, 무한한 책을 읽는 것 같지만 사실 책이 아니라 책을 읽는 나를 읽고 있을 뿐인 사람은, 결국 모든 책을 통해 나라는 단 한 권의 책만 반복해서 읽는 편협한 독서가일 뿐이다. 하여 어떤 독자는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모든 책을 섭렵하고서도 오직 한 권만 읽은 비독자가 되고, 어떤 비독자는 한 페이지의 활자도 삼키지 않는 하루를 쌓아나가 결국 수많은 사람책을 읽어낸 폭넓은 독자가 되기도 한다.

 

 

 

3

 

읽기 위해서 쓰는가, 아니면 쓰기 위해서 읽는가 하는 질문을 마주하면 syo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저는 오직 읽기 위해서 씁니다. syo에겐 쓰기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이 읽기를 중심에 놓고 영원의 강강수월래를 도는 좋은 친구들 비슷한 위상이다. 읽는 사람, 그것이 생각 끝에 내가 설정하고 사랑한 나의 자아였던 것. 하지만 내 읽기의 모든 길이 결국 나라는 단 한 권의 책에 수렴하는 외길이었다면 나는 다시 내 앞으로 수만의 갈래길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 자리에 잠시 멈춰서야 한다. 내가 읽는 책과 책을 읽는 나를 선명하게 가르고, 갈라놓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시야에 넣고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읽지 않고 써야 하고, 그 쓰기를 통해 책이 매개하지 않는, 독서 뒤에 숨지 않은 나 자신을 더 정밀하고 명징하게 읽어내야 한다.

 

 

 

4

 

라는 구구절절한 말과 함께 은근슬쩍 돌아오지만, 결국 책은 안 읽고 가끔씩 글쪼가리만 찌끄려보겠다는 뭐 그런 속편한 이야기 되겠습지요…….

 

 

 

  계속 걸을까요?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일단 걸어 봅시다.

황정은백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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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4-02 12: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쇼님이다!!!!!!! 읽지 않아도 멋지다 👍

syo 2022-04-02 13:48   좋아요 3 | URL
내가 나여 😌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4-02 12: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읽는 나를 읽을 뿐. 읽어야만 획득할 수 있는 글자와 개념들은 내 숨통을 틔워주곤 합니다! .일.단. 돌아오신 거 너무 좋아요 🥺

syo 2022-04-02 13:49   좋아요 3 | URL
열심히 읽고 있었죠? 쟝쟝님 자라는 소리가 우리동네까지 들리던데? ㅎㅎㅎ

공쟝쟝 2022-04-02 13:59   좋아요 5 | URL
옆으로 자꾸 자라.. 근데 이제 좀 천재느낌 나기 시작했어… 70년안에 천재임박함 ㅎㅎㅎ

새파랑 2022-04-02 13: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랫동안 쉬셔도 syo님의 필력은 변함이 없군요~! 책을 읽는 나를 읽는다는 표현과 생각에 공감이 갑니다. 왠지 편협한 읽기가 저 같아요 😅 복귀하셨으니 좋은 책 읽고 글 많이 써주세요 ~!!

syo 2022-04-02 13:50   좋아요 4 | URL
제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결같이 꾸준한 대량독서와 알찬 글을 남기고 계셨던 새파랑님이야말로 불변의 상징이시내요 ㅎㅎㅎ 이런 지칠 줄 모르는 사람 같으니라구!!

이하라 2022-04-02 1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쇼님 오랜만이시네요. 읽지 않음으로 영원히 읽는 경계는 저 같은 범부로서는 근접 불가의 경지 같습니다.
다시 활동하신다니 쇼님의 경지까지 이르도록 읽으며 노력해보겠습니다.
반갑고 기쁜 포스팅입니다. 자주 봬요.^^

syo 2022-04-02 13:51   좋아요 2 | URL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이하라님 ㅎㅎㅎ
무슨 경지라기보다는 그냥 안읽고 빈둥거리겠다는 변명의 말을 분칠한 것이지요 ㅎㅎ 늘 열심히 읽고 쓰시는 이하라님께 부끄럽네요

singri 2022-04-02 13: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잘 읽었습니다. ^^
전 책을 읽어 무얼하나~ 하는 생각은
여전히 있는데 가끔씩 이렇게 좋은 글을
만날려고 읽는 것같기도해요. ;;;

syo 2022-04-02 13:53   좋아요 4 | URL
가끔씩 좋은 글을 만나려고 읽는 것 같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 글자만큼은 강력하게 성토합니다 ㅎ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04-02 1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읽지 않았다는데도 무언가 내공을 더 키운 듯한 느낌의 쇼님이다!!!!🤔🤔🤔
이러나 저러나 쇼님은 쇼님일 수밖에 없다!!!
알라딘 이 공간에서 더 빛나는 그대, 쇼님!!

syo 2022-04-02 13:54   좋아요 4 | URL
책나무님 오랜만인데도 늘 운행하시던 syo비행기는 여전히 쌩쌩 작동하네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햇살과함께 2022-04-02 1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님 봄과 함께 오셨네요~ Syo님 글을 다시 읽을 수 있어 기쁘네요!

syo 2022-04-02 13:56   좋아요 4 | URL
뭐랑 같이 오려고 한 건 아닌데 어영부영 와보니까 봄이 먼저 와 있네요 ㅎㅎㅎ 햇살님께 제 글 같은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주는 봄이면 좋겠어요

단발머리 2022-04-02 14: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읽어온 게 책이 아니라 나였다는 이야기, 서늘한 느낌이 전해지는데도 좋네요. 읽지 않아도 좋으니까.... 계속 써줘요.
읽으면서 쓰면 더 좋고요. 웰컴 백, 쇼님!!

syo 2022-04-06 01:45   좋아요 0 | URL
안 읽고서는 쓸 게 바닥이 나서 못 쓰겠다 싶을 때까지는 읽지 않고 쓰려구요!
댓글창에 뭐 써보는 것도 되게 오랜만이라 어색하네요....😁

독서괭 2022-04-02 14: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예요!! 일단 댓글 달고 이따 천천히 읽어야지!

syo 2022-04-06 01:46   좋아요 1 | URL
무플방지위원회 1번 회원님, 잘 계셨죠? ㅎㅎㅎㅎ

독서괭 2022-04-06 03:42   좋아요 0 | URL
잘 있었습니다. 이젠 역사속으로 사라진 위원회네요. 무플될 일이 없어서 ㅎㅎ syo님 글 읽으니 저도 제가 왜 읽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돌아오신 거 환영하고 자주 보길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2-04-02 15: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 반가워요^^
어느새 봄이네요**

syo 2022-04-06 01:46   좋아요 1 | URL
syo의 s가 바로 spring의 s라는 헛소리와 함께, 봄에 다시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syo입니다 ㅎㅎ

프레이야 2022-04-02 1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쓰기 위해 읽는다기보다) 읽기 위해 쓴다는 문장이 쇼님과 타인들을 읽기 위해 쓴다는 말로 이해되지 말입니다. 사람은 한 권의 책이다!
이 명구절이 아니어도 확실히
그게 그런 면이 있더라구요. ^^
약속대로 돌아오신 거 반갑습니다 ~

syo 2022-04-06 01:48   좋아요 1 | URL
책이든 사람이든, 길가의 풀이든 횡단보도에 구르는 검은 비닐봉지든, 뭐든지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해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만요. 사실 읽어도 세상 모르겠는 책도 천지잖아요 ㅎㅎㅎ

반갑습니다, 프레이야님!

감은빛 2022-04-02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글 쪼가리를 읽으면 무척 반갑죠. 거짓말처럼 독서를 멈췄단 말은 좀 의외네요. 책을 읽는 나를 읽었다는 말은 이해는 되지만, 모든 책에 그 말이 맞으려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제 기준에서는요. 물론 syo님 기준에서는 쓰신대로 맞겠지요.

syo 2022-04-06 01:50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이 제 못난 글을 읽는 동시에 제 글을 읽는 감은빛님을 다시 한 번 읽으셨군요! ㅎㅎ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blanca 2022-04-02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새로운 진로를 준비하실 거라 짐작만 했었어요. 반갑습니다.

syo 2022-04-06 01:5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딱히 아무 길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반갑습니다 블랑카님!

꼬마요정 2022-04-02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건강하게 돌아오신 것 같아 좋아요. 이제 스요님의 유쾌한 글을 다시 볼 수 있는거죠? 너무 즐겁습니다^^

syo 2022-04-06 01:52   좋아요 1 | URL
유쾌한 글일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오랜만에 돌아왔음에도 syo가 syo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으하하하.

그레이스 2022-04-02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

syo 2022-04-06 01:53   좋아요 0 | URL
네 ㅎㅎ 그레이스님 반갑습니다^-^

bookholic 2022-04-03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컴백을 환영합니다~~

syo 2022-04-06 01:53   좋아요 0 | URL
북홀릭님, 잘 계셨지요? ㅎㅎㅎ 다시 또 신세지겠습니다.

라로 2022-04-04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웰컴백!!^^

syo 2022-04-06 01:53   좋아요 0 | URL
라로님 오랜만이에요 ㅎㅎ^ㅂ^

난티나무 2022-04-04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방가워욧!!!

syo 2022-04-06 01:54   좋아요 0 | URL
난티나무님 아마도 못 뵌 사이에 엄청 많이 읽고 저기 멀리멀리 나아가셨겠죠? ㅎㅎㅎ

카시오페 2022-04-1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책읽기에 대해 진짜 공감되는 내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