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다에 가고 싶다


그저 허기를 죽이느라 맛도 멋도 없는 밥을 쑤셔 넣은 점심, 조용히 누워 눈을 감고 입 안으로 되뇌어 보았다. 지금은 어두운 밤, 나는 여기 세상 끝자락 어느 바닷가에 오롯이 누워 한 점 빛살도 없는 우주를 아득히 올려다 보고 있다고. 날 달린 쇠붙이에 허리를 깎이는 콘크리트의 비명이, 하루 하루 솟아오르는 거대한 교회의 키만큼 제 살을 파먹힌 하늘이 내지르는 야윈 쇳소리가 자꾸만 내 방 작은 창을 넘지만, 그건 사실 모래를 핥는 파도의 기척이라고. 아스팔트를 긁으며 달려나가는 저 바퀴들은 알고 보면 물 먹은 모래를 더듬어 먹거리를 구하는 작은 바닷게들의 집게발이라고. 봐 봐. 들어 봐. 지금 나는 바다에 있어. 지금 바다는 여기에 있어. 봐 봐. 들어 봐. 그러나 오래 누우면 허리가 절로 아픈 고물딱지 매트리스 위에서 눈을 감고 있는 이 시간은 아무래도 바다와 무관한 시간, 파도와 바닷게가 아련히 멀리 있는 시간, 아무리 열심히 내가 나를 속여도 기어이 내가 나에게 속지 않는 쓸쓸한 시간. 그럼에도 그 자체로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닌, 그러니까 자기 손을 둘러 자기 몸을 안아주는 것 같은, 딱 그만큼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시간. 


자신을 묶어 둔 사람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어쩌면 여행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관념일지도 모른다. 바다가 아니라 바다라는 추억. 세상 끝이 아니라 세상 끝이라는 낯섬.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갈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진짜 나는 지금의 모자란 내가 아니라, 아직 되진 못했으나 되고자 안달하는 미래의 충만한 나라는 위로. 달콤한 착각. 오늘 밤을 채 넘기지 못하고 약효가 떨어질 조잡한 플라시보. 그리고 친구들아, 우리는 그걸 오늘 먹었듯이 내일도 먹지. 진짜 바다는 갈 여유도 없지만, 갈 의지도 없고, 어쩌면 갈 필요도 없을지도 모르는. 우리는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3분만에 땡 하고 완성되는 레토르트식 우울쟁이가 되었지. 같은 건물 같은 지붕 아래 모여 공부하며 서로 돕고 서로 경계하는 열 살도 더 어린 나의 친구들아, 너희들도 벌써부터 나하고 같은 눈을 하고 있더라. 웃는 눈동자 뒤로 노리는 눈동자를 숨겨 놓았더라. 그건 참 슬픈 일이더라. 이해가 될수록 더 슬픈 일이 있더라. 


열흘만이지만, 이런 근황입니다. 

        



 파도.
 그것이 파씨의 표면을 뚫습니다. 파씨는 뒤를 돌아봅니다. 등 뒤에 펼쳐진 바다를 봅니다. 발밑의 모래는 미지근한 거품으로 덮여 있고 수평선은 그저 한 겹의 주름인 듯 흐릿하고도 덤덤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파씨는 줄곧 바다를 바라보지만, 온다던 파도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파씨는 겁을 먹고 소리를 죽여 우는 것에도 지쳐 다만 바다를 지켜봅니다. 그때 누군가 말합니다. 이번 파도는 너무 작았어, 다음 파도를 기다려. 파씨는 놀랍니다. 바다를 보고 있는 어른들을 올려다봅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이미 왔다니. 가버렸다니. 바다를 돌아봅니다. 왔는지도 모르게 왔다 가버린 파도, 그냥 가버린 첫번째 파도의 규모를 생각합니다. 이미 이전과는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생각합니다.
 파도를 기다립니다. 
_ 황정은,「파씨의 입문」, 『파씨의 입문』


마음속에 쌓인 기억이 없고 사물들 속에도 쌓아둔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날마다 세상을 처음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오직 앞이 있을 뿐 뒤가 없다. 인간은 재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
_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무한 경쟁은 결국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 종국에 가선, 결국 무엇를 얻기 위함 싸움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달리 별수 없다는 이유로, 어차피 세상에 다른 존재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맹목적인 경쟁의 공간에 숨을 허덕이며 머문다.
_ 목수정, 『월경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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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0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0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0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0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슨 지랄이냐 하실 분들도 계시겠으나, 하루 한 권을 읽지 못하던 사람이 기를 쓰고 하루 한 권씩 읽는 일 만큼, 하루 한 권을 읽던 사람이 기를 쓰고 하루 한 권도 읽지 않는 일 역시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늘이는 일이 됐건 줄이는 일이 됐건, 오래 묵혀 세심하게 빚어 놓은 삶의 무늬를 건드리는 일은 일이다. 그 모든 버거움을 감당해야 할만큼 밥그릇의 무게는 치열하게 무겁다는 것을 깨닫고, 어차피 성에 차도록 읽지도 못할 거, 이제 앞으로 다섯 달은 책을 한 권도 안 읽어볼까 싶은데.



201802 : 20권



1.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

: 얼마나 읽으면 읽는 법 책을 내는 경지에 오르는 걸까. 어디에나 있는 저 무시무시한 책쟁이들...... 두 시간짜리 강연 듣고 난온 기분입니다.


2. 철학자와 하녀

: 철학을 버무린 생활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건져올 수 있는 것일까? 열린 눈? 먹어치운 책 더미? 치열한 문제제기와 투쟁의 경험? 철학이 작은 것 가운데 큰 것을 보여주는 돋보기일까, 아니면 반대로 작은 것 속에 숨어 있는 큰 것들이야말로 멀고 높은 곳에 있는 철학을 보여주는 망원경일까.


3.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고, 한두 해 지나자 그 손이 부러웠고, 또 한두 해 더 지나고 나니 그 눈이 더 부럽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운이 좋으면 신형철의 손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눈은 가지지 못할 것 같다.


4. 가벼운 나날

: 숨 막히게 아름다운 문장을 뿌려대는 작가를 만나도 질투하지 않는다. syo는 작가가 될 욕심 같은 게 더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나의 이 속 편한 방어병을 거침없이 무너뜨리고 속절없는 부러움과 달콤한 좌절감으로 육박하는 문장의 지배자들이 있다. 그가 죽고 이제 없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이름들이 있다.



5. 대통령의 책 읽기

: 더는 읽을 책 목록을 늘리지 말아야 할 텐데. 대통령까지 불러내니까 도저히 안 보고 넘어갈 도리가 없더라만.


6. 그러니까, 이게 사회라고요?

: 이런 책이 나오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다. 요즘 아이들 사는 거 보고 있노라면 대체로 이런 때 안 태어난 게 참 다행이다 싶지만, 그래도 이런 말랑말랑하면서도 딴딴한 책들이 있는 환경은 아무래도 좀 부럽다. 서른 넘은 지금이라도 읽으면 되지만.


7. 일인분 인문학

: 어쩌면 너무 무미한 문체 때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박홍순 선생님의 책이 덜 읽히는 이유는.


8.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

: 평이한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만, 평범한 것이 치명적인 단점. 약간 자기계발서처럼 읽힌다.



9. 이따위 불평등

: 읽을 책은 늘어만 가는데, 읽을 시간은 줄어든다. 쓸 시간은 눈꼽만큼 남았다. 이 시점에 이렇게 목록만 배불려가는 게 안타깝군. 경제적 관점이 중심이지만, 썩 다양한 측면에서 불평등을 다룬 읽을만한 책들을 소개하는 책 책이다.


10. 존 치버의 일기

: 35년간 거의 매일 썼다고 한다. 한글로 900페이지 되는 분량이 전체 일기의 20퍼센트라고 한다. syo 같은 게으름뱅이는 그저 엎드려 숭앙할 따름이옵니다...... 하루 하루가 치버가 썼을 법한(혹은 쓴) 소설의 한 장면이다. 때론 지루하고, 자주 편협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욕정에 몸부림치는 남자가 일상을 꾹꾹 눌러담아 던져 놓고 간 두꺼운 인생이다.


11.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 거장의 마지막 작품은 아름다움과 즐거움, 개인의 이야기와 공동체의 이야기가 어떻게 꿰매어 질 수 있는가를 능란하게 드러낸다. 그에게 시간이 좀 더 허락되었더라면. 그래서 이 이야기가 조금만 더 길 수 있었다면, 우리는 아마 꿰맨 자국조차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12. 번역에 살고 번역에 죽고

: 정말 잘 하는 번역가가 정말 좋은 에세이스트까지는 아닐 수 있다, 라고만 쓰고 말기에는더 재미있는 책이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전적으로 알맹이의 힘인 것 같다. 글맛은 덜하다.



13. 내 이름은 빨강 1

14. 내 이름은 빨강 2

: 아 진짜, 대작이란 이런 건가 보다 한다......


15.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베를린 연대기

: 부드럽게 먹어나가기에는 목구멍에 덜컥 걸리는 문장이 꽤 있다. 물론 벤야민이 원래 그렇게 썼을 수도 있으나...... syo의 읽는 힘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으나......


16. 1인분의 삶

: 웃기긴 한데, 웃긴 것 말고는 특출나다 할 게 없는 글 치고는 충분하달만큼 웃기진 않는다. 그래도 최소 syo보단 웃기다. 그러나 이 말은 칭찬으로서는 대충 "이야, 너 콧구멍이 정말 두 개구나?" 정도의 수준이라 송구스럽다.




17. 사라지는 번역자들

: 나도 번역자가 되어 사라져 보는 것은 어떨까, 택도 없는 욕심을 불러내는 책이다. 화려하진 않아도 단정하고, 화를 내지 않고도 단호한 문장이 모여 그런 책을 만들었다.


18. 철학하는 날들

: '철학'하는 날들 보다는 철학'하는' 날들, 혹은 철학하는 '날들'을 말하는 소담한 책이므로 부담없이 집어들고 읽고 지나갈 수 있겠다. 철학은 작고 날들이 커서, 사실 철학 지식은 1도 늘지 않았다.


19.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 아, 이 쓰레기 새끼들......


20. 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

: 뭘 이새끼야 뭘. 아오...... 이 쓰레기 새끼들 2




앞으로 딱 150일이 남았는데, 그 이야기는 syo의 집중력과 끈기와 체력에 비추어 보아 아무리 용 빼는 재주를 부려 보아도 총합 2000시간 공부하기 힘든 시점에 돌입했다는 이야기고, 어디선가 폭망의 스멜이 스멜스멜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이야기고, 그런 이야기는 이제 독서는 접어야 한다는 이야기고, 또 그 이야기는 알라딘도 접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으아, 이게 다 뭐하는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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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8-02-28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르한파묵 소설 읽으면 딱 저 생각이 들어요!

syo 2018-02-28 09:54   좋아요 1 | URL
그쵸? 역시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ㅎㅎㅎㅎ
<내 이름은 빨강> 추천했다가 욕 들어먹은 적이 꽤 있어놔서 쫄았습니다.....

그렇게혜윰 2018-02-28 13:49   좋아요 0 | URL
전 빨강 안읽고 검은책 읽었는데 그 문화를 몰라 속상했지만 대가의 매력에 퐁당 빠졌습니다만 다행히 남에게 권하진 않았습니다 ㅋ

syo 2018-02-28 13:50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면 빨강이랑 검은 놈 말고 하얀 녀석도 있었죠? ㅎㅎㅎ
색깔 좋아하는 파묵이

북프리쿠키 2018-02-28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좋긴 하지만 저도 가끔 책디톡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긴 합니다.ㅎ 책보다 소중한걸 챙겨야될때 말이죠. 응원합니다^^

syo 2018-02-28 09:5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응원을 너무 많이 받아먹어서 이러고 사는 게 민망할 지경이에요 ㅎㅎㅎ^-^

몰리 2018-02-28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합격을 기원합니다.
하하하. (‘합격‘이 좋은 결과인 게 맞는 무엇이죠....?)

syo 2018-02-28 11:37   좋아요 2 | URL
하하하하 모든 합격은 최소한 불합격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책읽는나무 2018-02-28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이름은 빨강!!!!
오랜만에 들어 보는...하지만 님의 완독 서적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그나마 읽은 책이네요ㅋㅋ
읽는 동안 재미나게 몰입했었던 기억은 있는데 책 내용은 또 가물가물하구요.ㅜㅜ

그나저나 다섯 달 동안이나 안읽는다는 계획은 좀 슬프네요?^^
하지만....정 그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저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ㅋㅋ

syo 2018-02-28 11:39   좋아요 1 | URL
저도 이게 두 번째 읽는 거였는데, 심지어 살인자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여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ㅋㅋㅋㅋ 망각이란 뭘까요 ㅎ

말은 이렇게 해놨지만, 금단현상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장소] 2018-02-2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 거장의 마지막 작품은 ㅡ을 오독해서 거지같은 천국인가 ㅡ 로 그러면서 혼자 크큭 , 아 , 이 쓰레기 새끼 ㅡ에 푸하핫 ~!!^^

syo 2018-02-28 11:40   좋아요 1 | URL
한번에 많은 글자를 읽어들이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발생할 수 있는 오독이로군요 ㅎ

한 줄평이지만 쓰레기 새끼들은 좀 과했으려나요 ㅎㅎㅎㅎ

[그장소] 2018-02-28 11:49   좋아요 0 | URL
아뇨~ 과함(?)이 주는 즐거운 시간였네요. ㅎㅎ 한번에 많은~ 이 아니고 어쩌면 스크롤 탓에 발생한 오독인지도 ... ㅎㅎㅎ 아 덕분에 웃고 갑니다 . 2월 마지막 날 멋진 마무리 하시길요!!^^

비연 2018-02-2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르한 파묵 좋아하는데. ㅎㅎㅎ syo님 생각에 동감.

syo 2018-02-28 13:37   좋아요 0 | URL
파묵은 사랑입니다♡
무슨 성만 써 놓으니 무슨 중국인 이름같네요. 요리 같기도 하고. 파묵.

다락방 2018-02-28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좀해욧!! 😡

syo 2018-02-28 14:46   좋아요 1 | URL
😴 Zzz......

이하라 2018-02-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독서량이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독서하셔도 어마어마한 독서량이니까 티도 안날꺼 같네요. 시험 좋은 결과있기를 바랍니다^^

syo 2018-02-28 15: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무슨 굿바이 스페셜처럼 되어 버렸네요. 별 것도 아닌데 ㅎㅎㅎㅎ

서니데이 2018-02-2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부터는 더 열심히 하시겠군요.
syo님,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syo 2018-02-28 15:34   좋아요 1 | URL
비와서 참 좋네요. ㅎ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오후, 열심히 하시는 3월 되세요.

단발머리 2018-02-28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파묵 좋아해요. 근데, 검은 책은 끝까지 못 읽었네요. ㅎㅎㅎㅎㅎㅎ
찜해둔 책은, 1번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 랑 9번 이따위 불평등이예요.
아무렴, 저는 2번 고병권을 존경합니다.

근데, 갑자기 화가 나려고 해요.
아니, 왜!!! syo님은 이제 다섯달이나 책을 안 읽으려고 해요? 왜 책을 안 읽어야해요? 읽고 요렇게 페이퍼를 써야지요. 왜요? 왜????

syo 2018-02-28 17:05   좋아요 1 | URL
저도 먹고 살아야 되는데, 먹고 살기가 싫은 것은 아닌데, 먹고 살기가 또 싫기도 하고 막 막,

목하 인생 방랑 중이옵이다.....

독서괭 2018-02-28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syo님의 다섯달동안 한 권도 안 읽어볼까 싶은데. 를 싫은데. 로 해석했는데요ㅋ
다섯달동안 잠수타시면 기다리다 환영하겠고, 당장 몇시간 뒤에 글 올리셔도 환영하겠습니다^^

syo 2018-02-28 23:11   좋아요 0 | URL
역시 독서괭님은...... b

짜라투스트라 2018-02-28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글이 재미있어요 그런데 이번 달 저랑 똑같이 20권 있으셨군요^^

syo 2018-03-01 00:52   좋아요 0 | URL
그러나 짜라님은 스무 권을 알차게 읽고 글을 남겼으나, 저는 그저 권수 채우기에 급급하였지요^^

짜라투스트라 2018-03-01 00:55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제대로 글을 안써서 3월달부터 열심히 써보려구요^^;; 어쨌든 syo님 글의 열혈독자로서 다시 돌아오는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ㅎㅎㅎ

psyche 2018-03-03 0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화이팅! 앞으로 다섯달만 꾹 참으시고 좋은 결과 있으시길!
 


결혼을 할 거라도 굳이 모히또는 가야 하겠니

 

대다수의 한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두 개의 관문인 군대와 프러포즈를 다소 조잡하지만 확실하게 돌파하여, syo의 사랑하는 친구 콘칩은 이제 결혼을 두 달 앞두고 있다. 결혼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친구란 것들은 소주잔을 넌지시 바라보며 그렇게 애달플 수가 없는 표정으로 syo, 나는 정말 이제 결혼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안 생긴다, 내가 정말..... 라는 말을 내뱉기만 하면 꼭 3달 안에 연인이 생기고, 하나같이 1년 안에 결혼 날짜를 박는가. 8년을 만나도 결혼 예정일을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는 syo 같은 사람도 있는데. 급하다, 니들 참 급하다 이것들아...... 콘칩아 행복하니? 신혼여행 갈 나라의 대통령이 대법원장이랑 대법관 잡아 가두고 민주주의로 콧구멍을 후비고 있다는데, 행복하니? 그래도 기어이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겠니? 어떠니. 너의 행복은 안녕하니...... 민주주의는 무엇이니...... 내가 지금 몰디브 신혼여행을 말리고 있는 거니, 아니면 결혼 자체를 말리고 있는 거니...... 나는 지금 왜 이러는 거니...... 왜 이러고 사는 거니......

 

syo도 가끔은 결혼이 하고 싶다.

 

사실은 가끔보다 좀 더 자주, 하고 싶다. 그 결혼.

 

다 제가 못난 탓입니다.

 



난 메달 같은 거 받아 본 적 한 번도 없어난 시합에 완전 쥐약이거든나는 있는 힘껏 노력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최선을 다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

바스티앙 비베스염소의 맛

 

내가 이루고자 의도했던 것들 중 어느 하나도 성취하지 못한 채(지금껏 내내 지향하며 노력해왔던 심오한 창의성에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채마흔 번째 생일에 다가가는 지금난 내가 초라하고애매하고또 변변치 못한 위치에 있음을 느낀다이는 내 운명은 아니나 내 잘못이다마치 언제부터인지 모르게가까이 있는 본연의 모습 내에서 나 자신을 유능하게 통제할 수 있는 기지와 용기를 잃어버렸던 것처럼.

존 치버존 치버의 일기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것을 경험한다제 딴에는 이성적으로 생각한다고 하면서 수주일혹은 수년 동안 뭔가를 상상만 하고 있다가어느 날 문득 어떤 얼굴어떤 옷어떤 행복한 사람을 보면서자신의 상상이 결코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깨닫는 것이다예컨대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녀를 절대로 당신에게 주지 않으리라는 것혹은 당신은 절대로 어떤 자리에 오르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오르한 파묵내 이름은 빨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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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7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7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8-02-2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주의로 콧구멍을 후비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

syo 2018-02-28 08:55   좋아요 0 | URL
역시, 가장 힘 준 부분을 금세 눈치채는 syo의 개그메이트 독서괭님^-^

다락방 2022-04-09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글이 있었네…

syo 2022-04-10 16:2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ㅋㅋㅋㅋ 인간 안 바뀐다는 말도 늘 다 맞는 말은 아니야 참.
 


김어준의 입 말고 눈, 금태섭의 말 말고 손


곽도원을 둘러싼 해프닝이 있었다. 익명의 폭로자가 한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정리된 분위기고, 곽도원은 뜬금없이 찾아온 위기에서 벗어났다. 대처를 잘 했다는 평이다. 그런 기사 아래 달린 댓글들은 가관이다. "메갈년들은 이게 문제야." "성범죄는 엄단해야 하지만 무고죄 '역시'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익명의 인터넷에서 무고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진짜면 경찰서로 가라." "분별력 없는 김치년들이 그렇지 뭐." 기다렸냐? 


미투 운동의 불을 꺼뜨리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을까? 알바 몇이 등장한다. 유명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가짜 폭로를 한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대상이면 더욱 맞춤하겠다. 30분쯤 뒤에 글이 좀 퍼졌다 싶으면 삭제하고 계정을 폭파한다. 언론이 퍼 나른다. 폭로 대상자가 부인하며 폭로의 모순을 지적한다. 가짜 폭로자는 침묵하거나 시인과 반성의 글을 올린다. 결국 폭로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진다. 미투 운동을 욕하는 글이 몰아친다. 대중의 호응과 관심도가 감소한다.


이런 일을 수 차례 반복함으로써 진짜 폭로와 가짜 폭로의 경계를 흐려버린다. 나뭇가지는 숲에 숨기고 시체는 전쟁터에 숨기는 법이다. 그러면 그걸로 끝이다. 피해자들이 어렵게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지금 그들을 응원하고 함께 가해자를 벌하고자 하는 의지들이 곁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거센 불길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조작으로도 가뿐히 꺼질 수 있다. 물론 김어준의 공작 발언은 미투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그 자체로 피해자의 입을 닫게끔 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비판받을 만하다. 그러나 공작은 미투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미투의 불길도 꺼뜨릴 수 있다는 것. 김어준이 말하지 않은 것 가운데 우리가 뽑아 먹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피해자의 입을 열게 만드는 방법은 오직 하나, 우리의 끝없는 지지 뿐이지만, 피해자의 입을 닫게 만드는 방법은 부지기수다.            


천천히 모든 이의 인식이 바뀌어가고, 바뀐 인식을 지탱해줄 새로운 제도와 구조가 생겨나고, 인식과 관심이 없던 사람도 조금씩 새로운 구조의 영향을 받고, 더 많은 목소리가 존중받고... 그렇게 세계는 아주 느리게, 상처에 돋아나는 새살처럼 고독하게 바뀌어갈 것이다.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는 내 삶이 다 끝나는 시점에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세계가 고독하게 바뀌어갈 동안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고, 그로 인해 상처를 입기도 할 것이며,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용기의 모양이나 성질은 촘촘하고 굵은 것이기보다는 다소 느슨하더라도 질긴 것이어야 한다.

_ 박소현 외,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


일부러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여성혐오를 하며 살아갑니다. 개개인의 여성혐오는 사회 전반의 여성혐오를 공고히 하는 양분으로 쓰여, 이 공고한 여성혐오에서 폭력이 발현됩니다. 폭력은 경중에 관계없이 도처에 존재하며, 언제든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나는 억울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성혐오로 발현된 언어/신체/성폭력의 행위자였던 기억이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행위자가 폭력을 행하는 데 얼마간의 기여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분명히 겪은 피해의 경험을 함부로 축소하는 것만으로 이미 그는 한 번의 실질적인 가해를 한 셈입니다. ....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의 토대를 키웠거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문제인 양 가해에 일조해 살아왔거나, 적극적으로 가해했거나, 셋 중 하나입니다. 
_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힌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앞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_ 은유, 『쓰기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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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2-26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네요 . 미투 운동도 그렇고 극단의 말들이 오가며 사실과 거짓의 경계에 지치는 사이 흐지부지 될지도 모르겠다 . 뭐 그런 생각요 .

syo 2018-02-26 12:09   좋아요 1 | URL
뭔가를 보태고 싶지만 뭐를 보태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이런 저런 말만 보태는 것이 잘 하는 짓인가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한참을 꺼지지 않는 불이 되었으면 할 뿐입니다.

[그장소] 2018-02-26 12:10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 함부로 떠들지 않으려 애쓰며 그저 응원만 할 뿐입니다 . 저도요.

stella.K 2018-02-2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투 운동만큼은 오래 갔으면 하는데 이 매스컴이 변수란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만 우르르 끊다 사그라드는 게 미디어의 속성이라.
게다가 가해자들 지금은 창피해 죽으려고 하고 반성하는 척 하다
언젠가 다시 방송계 복귀하고, 어디선가 자기할 일 하겠죠.
음주사고 연예인들 얼마 있다 다시 복귀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다르기도 하죠.
제명이란 초강수를 두기도 했으니.
역 미투 운동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봐요.
반대로 남성이 여성한테 당했다는 증언.
암튼 김어준 좀 껄적지근하네요. ㄷㄷ

syo 2018-02-26 14:00   좋아요 1 | URL
미투 같은 경우는 언론이 탐사한다기보다 따라가는 추세고, 어떤 미디어가 보도했는데 다른 곳에서 입 닫고 있으면 거기도 욕먹는 분위기가 될 거라 미디어가 주도권을 잡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미투 운동을 하는 분들의 생각을 다 짐작할 수는 없지만, 남성이 여성에게 당했다는 증언도 ˝역 미투˝가 아니라 ˝미투˝ 아닐까요? 그런 증언을 하면서 이것봐라, 여자들 니들도 가해자면서 어디서 나대냐, 하는 식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성범죄 피해자로서의 남성이 다만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미투의 범위 바깥에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미투 관점에서 보면 김어준은 백번 잘못 했죠. 그 사람이 걱정하는 건 피해자가 당할 고통 보다는 진보 정치인이 당할 고통이구요. 정확히 말하면 개인적 고통이 아니라 진보 ˝진영˝의 피해겠지요.

sprenown 2018-02-26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말이 참 좋군요!

syo 2018-02-26 16:48   좋아요 0 | URL
《쓰기의 말들》 좋은 책입니다. sprenown님께도 일독을 권해볼까요 ㅎㅎㅎㅎ

sprenown 2018-02-26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회되면 읽어볼게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지 모르겠지만..ㅋ
 


당나귀와 비상사태


역마살의 마는 당연히 말馬이다. 임壬쌤은 사주에 역마가 들었다고 하는데, 역마 중에서도 글로발 역마가 걸려서 계절이 멀다하고 지구촌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며 팔자에 걸맞는 삶을 누리고 계신다고. 역마살은 그냥 역마살인줄로만 알았던 syo에게 임쌤이 다양한 층위의 말들을 소개해주었다. 날개 달고 국경과 넓은 바다를 한달음에 넘는 역페가수스나, 삼천리 강토를 무시로 호령하는 역적토마는 물론, 심지어 기껏해야 동네 안에서만 뽈뽈 싸돌아다니는 역당나귀도 있다는데. 그 당나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 그거 난데, syo는 그것이 바로 내가 물고 태어난 살煞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역마살이라 하긴 좀 소소하지만 그렇다고 역똥강아지살이라고 부르긴 또 좀 분주한, 바로 역당나귀살. 그쯤. 맞아. 나는 목적도 정처도 하염도 없이 몽유병자처럼 동네를 걸어다니는 그런 남자지. 


신도림에서 신림까지 도림천을 따라 걸었다. 덜 녹은 살얼음이 얕은 물결을 긋고 있었지만 날은 포근했다. 길은 넓었지만 다니는 사람은 적었다. 개울은 조용히 흘렀지만 물비늘에 반사된 햇빛이 다리 아래 그늘에 시끄러운 빛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가지는 마르고 잎도 떠나고 없지만 나무는 태연히 살아있었다. 너른 땅에 뭔가를 그려놓고 그 위로 또 뭔가를 던지며 왁자지껄 모여 놀던 검은 패딩 사내들의 흰머리는 늙었지만 웃음은 변함없이 젊었다. 개울은 흐르고, 나무는 흔들리고, 사람은 달렸다. 2월의 끝자락에 서둘러 온 3월의 햇살이 그 풍경을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결혼은 하지만 신혼여행지가 몰디브란다. 간단한 총기류와 사용하기 편리한 방탄복을 권해 보았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미리 워킹데드 전 시즌 시청하고 가라고, 아무리 험한 세상 속에서도 끝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는 사람들의 굳은 의지를 배워가라고 충심어린 농담을 했다. 친구는 덤덤히 대답했다. 그래도 다행히 시리아는 아니잖아. 역시 나의 친구. syo보다 더 긍정적이고 syo보다 더 미친 나의 오랜 친구여. 그러나 과연 우리가 한 말이 우리가 할 말이었을까. 친구여. 오늘은 비록 우리 웃었으나, 이다음에 만나면 손 마주 잡고 몰디브와 시리아에 사는 사람들께 사과하자. 남편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한번 되어 보자. 




이렇게 여러 날, 몇 주 동안 걸을 때 우리가 결별하는 것은 단지 직업과 이웃, 사업, 습관, 근심, 걱정만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복잡한 정체성과 얼굴, 그리고 가면까지 버린다. 걷는다는 것은 오직 우리의 몸만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더 이상은 지속되지 않는다. 지식이나 독서, 그동안의 관계들 중 그 어느 것하나도 사용하지 않는다. 두 다리만 있으면, 그리고 볼 수 있는 두 눈만 있으면 충분하다. 걸어야 한다. 혼자 떠나야 한다. 산을 오르고 숲을 지나가야 한다. 사람은 없다. 오직 언덕과 짙푸른 나뭇잎만 있을 뿐이다. 걷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어떤 역할을 할 필요도 없고, 어떤 지위에 있지도 않으며, 어떤 인물조차 아니다.
_ 프레데리크 그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_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우리가 지닌 유머와 선의의 저장고는 병에 의해 고갈되는 듯하며 우리가 스스로의 온화함으로부터 멀어질 때 느끼게 되는 비참함은 그 온화함을 되찾아오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듯 보인다. 그저 자갈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어도 정신이 회복되어 마구 요동치는 것을 알 수 있고 이에 우리는 붉은색이나 황금색의 깃발을, 명랑함과 원기를 보여주는 여러 징표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내가 아플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지만 왜 이런 나약함이 내 정서적인 삶에 스며들어올 수밖에 없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_ 존 치버, 『존 치버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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