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빨갱이는 되는 것이 아니다. 되어지는 것이다. 제아무리 마르크스부터 레닌, 트로츠키, 마오, 심지어 주체사상까지, 짝퉁 포함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사회주의 사상에 통달해 있다 하더라도, 밥 숟가락을 뜨기 전이면 항상 식사기도 대신 김일성 삼대를 찬양고무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나타나서 와, 저 빨갱이 새끼, 하기 전까지는 결코 저 혼자 힘으로 빨갱이가 될 수 없다. 이게 바로 빨갱이 생성 법칙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월화수목금토를 일하게 하시고 보시기에 좋았으므로, 빨간 날 노는 놈들을 보고 와, 저 빨갱이 새끼, 하셨다. 그러자 기적처럼 빨갱이가 있게 되었다. 이것이 빨갱이 탄생 신화다. 물론 신화는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혐오를 담은 모든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은 달라도 같은 방식으로 발생한다. 누가 그 이름을 붙여주기 전까지, 그는 밉고 더러워도 그저 두루뭉수리하게 밉고 더럽다. 이름 붙는 순간 허상이 덩치를 키워 실체가 된다. 알아야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내게 와서 똥이 된다. 그리고 정정하자면, 혐오를 담은 모든 단어가 같은 방식으로 발생하듯이, 가리키는 대상도 결국 다르지 않다. 내가 가진 권능에 근거가 없으니 내어 놓으라는 날강도 같은 자, 그리고 그런 몹쓸 생각을 온 세상에 퍼뜨리는 전염병 같은 자.





"하인즈 씨, 제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게 뭐죠?" 그랬더니 하인즈가 대답을 했지. "우리가 시간 당 25센트를 주겟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다 빨갱이야!" 이 젊은 친구는 그 말을 좀 생각해보다가 다시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지. "세상에, 하인즈 씨, 전 개자식이 아니지만 만약 빨갱이가 그런 거라면 저도 시간 당 30센트를 받고 싶은 걸요. 다들 그래요, 하인즈 씨, 그럼 우리는 전부 빨갱이에요."

_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 2』


이 땅은 '가해자의 땅' 입니다. 가해자가 계속 권력과 영화를 누리는 땅이고, 그 가해가 한 번도 제대로 정리되어보지 못한 나랍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물적 토대를 장악하고 있고, 재생산 구조를 아주 강건하게 가진 그런 구조 속에서는, 인간의 탈을 쓰고 과연 그러한 것을 할 수 있겠나 싶을 정도의 행태도 반성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혐오의 뿌리를 그런 데서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_천정환 홍세화,『홍세화의 공부』



2


솔직히 나는 '보수'라는 말이 웃긴다. 진보는 욕심의 이름이다. 진보는 더 가지려 한다. 현재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진 다음, 더 많이 나누려 한다. 보수는 가지려 하지 않는가? 보수도 가지려 한다. 사람은 누구나 더 가지려 한다. 그런 인간상은 보수가 선호하는 경제학에서 제시하는 기본적 인간형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보수라고 한다. 자신들이 보전하여 지킨다고 한다. 더 가지고 싶다는 말을 숨긴다. 그리고 숨길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를 보전하여 지키기만 하여도, 미래에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비열한 판이 이미 잘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양심이 있어서 차마 더 가지고 싶다는 말을 못하는 건지, 양심이 없어서 부러 더 가지고 싶다는 말을 숨기는 건지는 알고 싶지도 않지만.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지닌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는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_김규항,『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우리는 왜 위로만, 그리고 슬금슬금 오른쪽으로만 향하는가. 우리에게는 왼쪽으로 그리고 아래로도 세상을 탐험할 권리가 있으며, 바로 그러한 자기 확장을 통해서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더 높은 곳으로만 향하는 지루하고 어리석은 경주를 거부하고, 상하좌우로 온전히 세상을 경험하며 자아를 확장할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렸으며, 그들만이 애벌레에서 나비로 환골탈태하는 도약을 경험했으리라.

_목수정,『월경독서』


사장이 고용인에게 말한다. "젊은 친구, 이 회사에서 아주 빠르게 출세했군. 2년 전 사환으로 시작해서 두 달 뒤 사무직원이 됐고, 판매요원, 부지배인, 지배인을 거쳐 어느덧 부사장이네. 소감이 어때?" 고용인이 대답한다. "고마워요, 아빠."

_버텔 올먼,『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국가권력 사유화와 헌법 파괴, 부정부패, 직무유기에 가까운 태만의 실상이 분명하게 드러난 시점까지 박근혜 정부는 국가주의 국가론을 다르는 일부 국민들의 견고한 지지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국민들이 집권 보수여당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유사한 사태가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단언하기는 어렵다. 자유주의 국가론이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념형 보수'를 무식하다고 경멸하거나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현실과 희망사항을 잘 구별하지 못한 소치일 가능성이 높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생명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끈질기다.

_유시민,『국가란 무엇인가』


지배계급들은 이성이 확산되면 머지않아 전 세계 민족들이 자신들이 주모자가 되어 펼치고 있는 어마어마한 사기극을 알아차리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전 세계 민족들은 교회의 신성함, 왕의 신적 권한, 민족적 자부심, 혹은 부나 권력의 소유 등과 같은 허구에 사로잡혀 자신들이 타고난 권리를 포기한 채, 특권을 요구할 아무런 권리도 없는 소수계급을 부양하기 위해 불평없이 노력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위계구조 속에서 상층에 자리잡고 있는 계급은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자연적 인식이 자기 계급이 갖고 있는 권위의 자의적 성격을 폭로할 위험이 있을 때는 언제나 그런 인식의 발전을 저지한다. 

_이사야 벌린,『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3


읽고 또 읽고 있는데, 간혹 과속방지턱처럼 나타나는 문장들이 의욕을 확 꺾는다. 요새 것들 염색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유행이 개성인 줄 착각한다, 개성은 마음 속에 있는 본성을 드러내는 것인데- 하는 식의 문단을 보면 네이버에 저자의 나이를 검색하게 된다. 76년부터 책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 발견되면, 역시 그렇지, 하는 생각에다 이어서 읽어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포개진다. 그 뿐일까. 여성의 특성이 돌봄 노동에 적합하게 발달되어 있어서 여성이 돌봄 노동을 하는 것이 효율이 높다는 식의 글을 읽고 나면, 혹시 저자의 메일 주소 같은 것이 없나 책날개를 뒤지게 된다. 만사 시장에 맡기면 무조건 오케이라는 말은 보이는 족족 그냥 다 찢어버리고 싶다. 보이지 않는 손, 이 손 이거는 아주 보이기만 해라, 내 눈에. 니빠로 손톱을 다 뽑아버릴라니까.


요는, syo의 좌편향된 사상이, 자꾸만 독서를 왼쪽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이런 충고들은 대놓고 쓰라리다. 




독자는 자신이 알게 모르게 쌓아 온 선입견으로 책을 읽지는 않는지, 그래서 반성적 자아를 키우는 대신 완고한 자아의 성을 쌓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도서는 오히려 세상이 인정한 권위 있는 책과 저자를 내세워 스스로의 부족함을 가리려는 허위의 몸짓이 될 뿐입니다. 자신의 앎과 실천이 아니라 읽은 책의 목록을 훈장으로 삼는 허영의 독서를 하는 것이지요.

_김이경,『책 먹는 법』


끊임없이 책을 읽는데도 안정된 판단력과 정신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은 책에는 조예가 깊을지 몰라도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_조지 스웨인,『공부책』


일상적인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확고한 견해를 가진 인간으로 텍스트를 읽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텍스트 쪽이 우리를 '그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주체'로 형성합니다.

_우치다 타츠루,『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4


자, 이만하면, 나도 충분히 빨갱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syo를 빨갱이로 만들어 주실 분을 찾습니다. 자격요건은 딱 하나 뿐입니다. 한국 공인 빨갱이 자격증 발급을 독점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당원이신 분. 댓글로, "와, 저 빨갱이 새끼"를 올려주세요. 비댓도 환영합니다. 당신이 나를 빨갱이라 불러 주었을 때, 나는 당신께 달려가 아주 새애애빨간 빨갱이가 한 번 되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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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9-20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공부책, 표지가 조금 특이하지만, 읽어보고 좋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해보면 절대 쉽지 않을 책이긴 했지만요.^^;
syo님, 좋은밤되세요.^^

syo 2017-09-20 23:10   좋아요 2 | URL
유유는 사랑입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꿈 꾸셔요^^

책한엄마 2017-09-21 10:09   좋아요 2 | URL
저도 유유책 좋아해요.^^
반가운 마음에 불쑥!!

독서괭 2017-09-21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혐오는 이름 붙이는 순간 실체가 된다는 것, 현재를 보전하여 지키기만 해도 미래에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비열한 판이 이미 짜여져 있기에 ˝보수˝라는 것- 공감합니다.
분노의 포도를 왜 강추하시는지 점점 더 알 것 같네요.

syo 2017-09-21 06:49   좋아요 0 | URL
분노의 포도는 진리입니다. 책은 또 어찌나 퍼뜩퍼뜩 넘어가는지 몰라요....

다락방 2017-09-21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 때부터 빨갱이였습니다. 저를 빨갱이로 칭하였으므로 저를 빨갱이로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 아빠였지요. 아빠...
아빠 말에 대들면 빨갱이, 밤에 늦게 들어오면 빨갱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빨갱이, 빨갱이...
그러니까 이를테면, 제가 아빠가 하라는대로 하지 않으면 빨갱이였던 셈입니다.
그건 지금까지도 그래요. 저는 여즉 빨갱이란 말을 듣고 삽니다. 아빠로부터...

여기있습니다, 빨갱이.....

syo 2017-09-21 08:38   좋아요 1 | URL
우리 아버지도 살아 계셨으면 지금의 저한테 빨갱이라고 하셨을 겁니다. 제가 채 빨갱이가 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참 아쉽네요.
 


1


백 일 정도를 초점 없는 마음으로 멍하니 살다 보니, 겨우 조금씩 희미해지던 짝사랑이 있었다. 유행가 가사가 다 내 이야기 같지는 않았지만, 내 이야기로 유행가 가사를 만들면 정규 앨범 3집까지는 너끈하겠다 싶었다. 담배를 할 줄 알았다면 꽤 태워 없앴을 것이다. 담배값 인상 전이었다. 굉장히 좁은 방에 살고 있었는데, 사방의 벽이 다 코 앞에 있었다. 그러면 코 앞의 벽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국면부터는 그 사람도 그랬다. 코 앞에 앉아 있는데 벽 같았다. 오히려 벽과의 대화는 수월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을 상상할 수 있었으니까. 이기적인 대화는 내가 했던 모든 실수들을 되짚어 수정액을 바르고, 결국 품에 안는 것으로 결말을 정해놓은 채 세부적으로 오가는 말들을 한없이 변주하며 백 일을 갔다. 하나같이 다 더는 일이었다. 주었으나 그 사람이 받지 않았던 것들을 덜 주거나, 하였으나 그 사람이 듣지 않았던 말을 덜 하거나, 바랐으나 그 사람이 주지 않았던 마음을 덜 바라는 식으로. 


쑥과 마늘 대신 환상과 환청을 먹으며 굴 속에서 백 일을 보내고, 나는 인간이 되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윤중로엔 벚꽃이 피었다. 나 말고는 아무 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쌓여 있는 읽을거리들을 하나씩 척척 해치우며, 오늘의 나와 조금 더 가까운 내가 되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재작년에는, 그 전해에는, 이렇게 몇년을 거슬러보다가 떠올랐던 기억이다. 그때는 아직 그 사랑에 희망이 있을 때였다. 행복하고 초조했으며, 미우며 고마웠고, 좋은 사람이고 싶었지만 이미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도 같다.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 인정할 수 있는 과거로 바뀌는 것. 들뜬 흙과 모래가 층을 이루며 찬찬히 가라앉고 얼굴을 비춰 볼 수 있을 만큼 말간 물이 고요히 괴는 것. 이뤄졌든 그렇지 않든, 가끔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다 보면 마음이 꽤 훈훈하게 덥혀진다. 마음의 온도를 유지하며 살기가 쉽지 않다.   




인간은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뿐이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미래가 과거를 바꾸고 있습니다. 바꿀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고, 바뀌어버린다고도 말할 수 있죠. 과거는 그만큼 섬세하고 감지하기 쉬운 것이 아닌가요?

_히라노 게이치로,『마티네의 끝에서』


소금기 진한 바람은 식당의 빛바랜 간판을 바꾸기도 합니다. 오래 전 '이모네 식당'은 '모네 식당'이 되었습니다. 곰치국의 간이 조금 진해졌지만 여전히 수련 같은 고명들이 가득 들어간 일이나 한해살이풀이 죽은 자리에 같은 한해살이풀이 자라는 일, 어제 자리한 곳에 오늘의 빛이 찾아 비치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그리 큰 일도 아니었습니다.

_박준,『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사랑도 예술도 적당해야 합니다.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푸념이 됩니다. 마음에 품은 걸 다 쏟으려다가 결국은 상대를 질리게 만듭니다. 살짝 비켜서기도 하고 잠자코 들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숨죽여 그 놀라운 기적에 경의를 표하고 감당 못할 축복을 삼가 받들어야 합니다.

_홍승찬,『오, 클래식』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_아니 에르노,『남자의 자리』




2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소설은 정작 사랑의 중요한 순간이면 내 옆에 없었다. 소설을 읽으며 삶의 영점을 맞추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나를 감동시켰던 소설들은 항상 나와는 다른 시간 속 다른 사람,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먼 곳을 그린 것들이었다. 소설을 도대체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은 흔하다. 하지만 그럴 때 해줄 수 있는 대답이라고는 온통 상투적인 것들만 떠올라서 난감하다.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지독한 불일치. 나는 그저 읽을 뿐이므로 공급할 대답이 항상 부족하여, 뭐 꼭 이유가 있어야만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랄지, 대체 미적분 이거 살면서 쓸 일도 없는데 왜 배워야 되는 거냐고 따지는 아이들은 백발백중 수학 못합니다, 랄지, 이런저런 궁색한 말이나 내놓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다. 쩝, 당장은 이유를 알 수 없겠지만, 결국 소설을 읽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소설을 읽는 것 뿐입니다. 다들 그렇게 찾았을 겁니다. 찾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찾은 줄 알았을 겁니다.




상상력이란 사회적인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비슷한 것들을 꿈꿀 때, 그것은 현실화될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실제적인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소설이 힘을 가졌던 시기, 소설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믿게 만들었다. 같은 것을 상상하게 했다. 그렇게 문학은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더이상 아니다. 더이상 소설은 보편적 상상력이라는 과도한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소설이라는 말을 예술로 바꾸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예술은 보편성을 포기했다. 그렇게 자유를 얻은 뒤 거침없이 하찮아졌다.

_김사과,『0이하의 날들』


이 지도과정은 변증법적이다. 문학이 우리를 좀더 삶을 잘 알아차리는 사람으로 만들면, 우리는 삶 자체에서 실습하게 되고, 그리하여 이것이 우리를 문학의 세부사항을 좀더 잘 읽는 독자로 만들면, 그것이 이번에는 우리를 삶을 좀더 잘 읽는 사람으로 만든다.

_제임스 우드,『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문학은 삶의 순간을 포착하고 미미한 것들을 소환해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관념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비슷비슷한 하루의 반복은 그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표상된 외면을 찢고 들여다볼 때 거대한 새로움이 있다. 문학은 우리의 머릿속에 짧게 스쳐가는 단상이나 눈앞에 빠르게 지나가는 파편적인 모습들을 정밀하고 미묘하게 묘사해 내서 결코 인식할 수 없었던 시간에 대한, 현상에 대한, 기억에 대한 문을 열어놓는 것이다.

_최은주,『책들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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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17-09-18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방법은 배우가 되는 것 외에는 소설을 읽는 것이 유일하지 않을까 합니다. 영상물은 이미지가 너무 강해 완전한 몰입이 어려우니까요. 어쨌든 소설을 읽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 못 할사람은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syo님의 s는 soon정파의 s였던 것입니다...

syo 2017-09-18 23:2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soon정파의 s였군요. 제가.

사실은 순정이라기보다는 집착 쩔어서 걷어차인 것 비슷한 각이었습니다ㅠㅠ

AgalmA 2017-09-18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쑥과 마늘 대신 환상과 환청을 먹으며˝...아이고, syo님 이런 표현 정말 재밌다니까요ㅎ
˝사랑도 예술도 적당해야 합니다.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푸념이 됩니다. 마음에 품은 걸 다 쏟으려다가 결국은 상대를 질리게 만듭니다.˝ 홍승찬 씨 이 문장 쉬우면서 공감되게 잘 표현하셨네요. 많이 읽고 많이 안다고 짜증과 푸념 가득한 태도와 말투 쓰는 사람들 정말 많죠. 엔터테인먼트처럼 비치려고 하지만 성격 안 되는 사람은 곧 죽어도 못하지. 암요. 신영복 선생님 말씀은 그자체가 진짜 말씀이잖아요. 겸양이 뚝뚝 묻어나면서도 인간미 가득한. 사랑도 처음엔 열정이지만 자기 맘대로 안되면 폭력 휘두르기 십상이고.

문학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syo님이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읽고 얘기 좀 해주시죠. 저보다 많이 읽으시니까 대리 독서 문의ㅋ/

syo 2017-09-18 23:58   좋아요 0 | URL
와, 신영복 선생님 말씀은 그 자체가 말씀이라는 AgalmA님의 말씀도 좋은 말씀이네요. 진짜 그러네요.

내 사랑이 열정에서 폭력이 되는 지점은 알기도 힘들고 인정하기도 힘들더라구요. 지나고 나면 너무 선명하게 보이지만.... 차라리 모든 경우에 열정을 제압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쪽이 차라리 낫겠다 싶기도 하고....
 

 

태풍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북한은 미사일을 쾅쾅 쏘고 있고, 합을 맞춰 제 1야당도 헛소리를 쾅쾅 쏘고 있다. 지들이 똥 다 싸놓고 치우느라 식겁인 사람한테 냄새 난다고 삿대질이다. 태풍이 그 당 당사를 후려쳤으면 싶은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지만, 반성한다. 그렇게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 모양 이 꼴인건데. 자연의 힘을 빌려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인간의 손으로 매듭지어야 할 문제다. 정말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10일 지났다. 앞으로, 14년 355일만 더 읽고, 세상에 나갈까 한다. 나가기만 해, 아주 다 쓸어버릴 거야, 호기로운 마음으로 오늘도 군만두처럼 책을 씹는다. 그래봤자 아직 '청소년이 읽는', '쉽게 보는', '3일만에 독파하는' 따위의 타이틀이 붙은 마르크스 입문서나 읽고 있는 처지지만, 나가기만 해, 아주 다 쓸어버린다니까, 너희들의 목숨은 앞으로 14년 355일 남았어, 유언장을 써 놓는 게 좋을 거다, 이 천하의 악당들아!

 

이것이 바로, 중2병 말기 증상 중 하나인, "용사로서의 각성" 입니다. 이런, 이 정도면 완치까지 꽤 시간이 필요하겠어요. 환자분, 육식 줄이시구요. 술 담배 하지 마시구요. 제발 정신 똑바로 차리시구요, 이 험한 세상에.

 

 

 

170907-170916 총 43권

 

문학 12권

 

 

   

 

 

1. 힘 빼기의 기술

: 다 읽었다고 해서 바로 힘 빼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숨 쉬는 것만 해도 힘에 부치는 이놈의 세상에서, 힘 빼고 살자는 말 자체가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

 

2. 은유의 힘

: 학술서와 평론집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 책이다. 나는 장석주가 너무 좋아서 항상 좋게 읽느라 잘 인식을 못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독도 병이지. 너무 넓고 때로는 너무 깊은데, 넓이와 깊이가 시너지를 일으키기보다 따로 노는 경향이 보인다. 한쪽에 엄청 넓은 운동장을 만들고, 다른 쪽에 샘이 깊은 우물을 팠는데, 그 사이 거리가 42.195km인거라,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신나게 볼 차느라 목 마른 아이들은 이제 물 한 모금 마시기 위해 결연한 표정으로 축구화를 벗고 마라톤화의 끈을 질끈 묶는다...... 아, 은유의 힘을 읽어 놓고, 겨우 이런 개똥같은 은유밖에 못하다니.

 

3.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 부질없는 것들은 정말로 부질없지만, 때로는 부질없는 눈으로 보고, 부질없는 입으로 말하기 때문에 부질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죄없이 부질없는 것들에 '부질'을 한 번 더해 본다. 부질없는 것들의 이면에 그림자처럼 작은 '부질'이 생긴다. 그걸로 부질없는 것이 부질있는 것이 되지는 않지만, 가끔 그 그림자 안에 들어 우리는 조그마한 사탕을 아껴 먹듯이 삶의 의미를 한번씩 핥아보곤 하는 것이겠다.

 

4.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 소로의 여러 글들 가운데 명문장들을 뽑아와 일정 기준으로 배치한 책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소로의 글로 이런 책을 만드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게, 월든만 해도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다 명문장이라 한 문장 뺄라치면 갈비뼈를 빼는 기분이라.....

 

5. 아바나의 시민들

: 카메라엔 카메라의 일이, 눈에는 눈의 일이 있다. 두 개의 렌즈는 때로는 서로 돕고 떄로는 다투기도 하지만, 끝내 서로를 대체하지는 않는다.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여행을 다녀보지 못해 좋은 여행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잘 모르지만, 좋은 여행기는 카메라가 카메라의 일을 하고 눈이 눈의 일을 할 때 그 일들 안에서, 혹은 그 일들 사이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안다.

 

6. 그리스는 달랐다

: 기행문처럼 보이지만 소설집이다. 엽편이라고 하기는 좀 길고 단편이라고 하기는 너무 짧은 소설들로 그리스를 소개하는데, 인상적인 이야긴는 몇 안된다. 백가흠이 겨우 이 정도였었나? 차라리 소설이나 여행기 둘 중 하나였으면 좋았으련만. CF를 보면서 별 생각 없었던 제품이 평소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에 갑자기 PPL로 등장했을 때, 어쩐지 제품과 드라마 양쪽에 짜증이 나는 상황이랄까.

 

7.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

: 문학정 장치나 기법, 감정도 숨어 있는 감정을 발라내는 해설이 어여쁘게 보이지 않는다. 내게 그럴 역량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냥 손 닿는 데까지만 만지고, 눈 닿는 곳까지만 바라보아도 시는 충분히 아름다울 때가 많다. 그 아름다움 안으로 들어가 없었던 일을 상상하거나, 그 아름다움이 내 안으로 들어와 있었던 일을 꺼내거나 하면서 즐겁고 또 슬프다. 이 책도 그렇게 한다.

 

8. 분노의 포도 1

: 책이 자신에 대해 침묵하길 강요한다. 네가 말할 수 없는 책이니 말하지 마라. 그러면 syo는 말하지 않는다. 경배를 한다.

 

9. 외투

: 미친 도스토예프스키같은 우리의 고골. 이런 평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들으면 싱긋 웃겠지만 고골이 들으면 빡칠 공산이 크다. 고골의 단편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이 딱 이 책에 든 세 작품이라, 이런 작고 알찬 책 하나 갖고 싶던 차였다.

 

10. 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 별 의미 없다.

 

11. 내 인생 최고의 책

: 솔직히 처음에는 기욤 뮈소의 냄새가 나서 매서운 눈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에 좋은 점수를 매기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다.

 

12.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

: 안 맞아. 나랑 안 맞아...... 장담컨대 이 책에 있는 그 어떤 내용도 일주일만에 내 기억에서 깨끗이 사라질 것이다.

 

 

 

마르크스 7권

 

 

 

 

13. 마르크스 씨, 어떻게 행복할 수 있죠?

: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 마르크스 이론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아마 아닐 것이다.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내 관저메서 가장 터무니 없는 이론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뻔뻔한 가정에서부터 뻗어나가는 주류 미시경제학이다. 자본가가 비용에다가 임의적으로 덧붙여 올리는 가격이 이윤을 낳는다는 생각을 한 번 주입받고 나면, 노동가치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최소한 양쪽 견해를 공정하게 제시하여 아이들이 직접 생각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14.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 두 명의 저자 사이에 오가는 편지글 형식으로 마르크스가 쓴 저서들의 의미를 파헤치는 수작. 두 저자의 의견이 갈리는 지점에서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난다. 그것은 첫 번째로, 관점의 작은 차이에서 시작해 적용되는 판 자체가 완전히 다를 정도로 이질적인 생각들이 발생할 수 있는 마르크스 이론의 놀라운 확장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두 번째로, 그러므로 마르크스를 읽는 정해진 방법 같은 것은 없다는 것, 나아가 어떤 책도, 어떤 생각도 누군가가 정해 놓은 방법대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곱표를 그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15. 마르크스와 함께 A 학점을

: 중요한 말을 읽는 이의 가슴에 박아넣기 위해, 재치를 잔뜩 머금은 느슨한 말들로 그 말의 주변을 둘러싸는 방식. 내가 꿈꾸는 글이 그런 것이다. 만약 사람들에게 반드시 보여주고 싶은 시체가 있다면, 그 시체를 전쟁터에 던져 놓는 것이 아니라 교회당의 십자가에 매달아야 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고, 마르크스의 안경을 쓰고 분석한 세계의 부조리한 풍경화를 던져주며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책이다. 자본론보다는 공산당 선언에 가까이 있는 책이다.

 

16. 돈이 왕이로소이다

: 마르크스의 저작에 있는 주요 문장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각색한 책. 그러니까 말투만 조금 손질한 인용 덩어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걸 읽고 있으니까, 진짜 마르크스가 말하는 거 한번 들어보고 싶다. 불지옥에 유튜브나 팟캐스트 도입이 시급하다.

 

17. 한권으로 보는 마르크스

: 한 권으로 볼 내용이 아니었던 것이, 마르크스가 던진 근본 물음이나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틀처럼 거대하면서 추상적인 것들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는 동시에, 아주 신랄하게 느껴질 정도로 마르크스주의의 불확실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는 척 하면서 까고 있다. 마르크스가 두드려 맞는 꼴을 보는 건, 또 어떤 의미에서 신명나는 데가 있긴 하다.

 

18.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류동민, 내가 지켜보고 있다, 당신. 당신은 분명 언젠가 큰일 하나 할 사람이야. 이런 따뜻한 사람 같으니라구.

 

19. 마르크스 사용 설명서

: 사람들이 사용 설명서를 안 읽는 이유는 많다. 딱딱하고, 재미없고, 어렵고, 복잡하고, 사실 직접 써보는 것이 더 낫고. 이 책 역시 비스하면서 조금 다르다. 딱딱하지는 않지만 재미없고, 어렵지는 않지만 복잡하고, 언제나 그렇듯, 사실 직접 행동하는 것이 더 낫고.

 

 

프로이트 6권

 

 

 

20. 프로이트 & 라캉

: 김석은 정말 많이 알고 잘 아는 것 같은데, 희한하게 책을 읽으면 설명에 두서가 없다는 느낌이다. 글도 어렵지 않고 문장단위로 보면 이해도 잘 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입문서로서 내실은 흠잡을 것이 없지만, 문장에 매력이 없고 무난한 것은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겠다.

 

21.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무의식에 비친 나를 찾아서

: 저자는 아주 쿨하게 "프로이트의 이론이 이상하게 보이면 그냥 넘어가거나 보류해도 좋아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냥 받아들여선 안 되죠. .... 의문이 생긴다면 질문해야 합니다. 판단은 여러분이 하면 돼요. 믿어지지 않는다면 일단 옆으로 밀어두고 넘어가도 됩니다." 라고 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까면서 나온 이야기다. 짱이다. 이런 책 좋지. 취사선택의 자유를 알려주고, 이론 체계의 정밀함보다 사고의 폭을 지지하는. 우리는 연구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이래뵈도 300쪽.

 

22.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

: 이 시리즈는 생각보다 분량도 꽤 되고, 구성도 탄탄하다. 배경지식이나 선행연구 분석부터 시작해 꿈의 해석의 고갱이로 돌아 들어간다. 게다가 충분할만큼 다양한 사회 문화적 현상들과 다른 철학적 개념들을 정신분석의 용어와 연결지어 폭넓은 이해를 도모하는 미덕도 보인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 위에 프로이트의 다양한 사진이 붙어 있는 깜찍한 실수가 군데군데 눈에 띄긴 해도, 전체적으로 그다지 흠이 없는 책 같다.

 

23. 프로이트 무의식을 통해 마음을 분석하다

: "깊이 읽기"라는 타이틀을 달 만하다. 저자는 일단 친절할 생각이 전혀 없어뵌다. 보통 입문서에서는 몇몇 중요개념들을 강조해서 설명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프로이트가 만든 개념들을 골고루 평등하게, 그냥 프로이트 좀 알아볼까-하는 마음으로 접근한 뜨내기들에게는 불필요할 정도로 골고루 평등하게 분량을 할애해 설명한다.

 

24. 프로이트 심리학 연구

: 내용은 좋은데, 번역이 희한하다. 엉망진창이라는 게 아니라, 알아먹긴 알아먹겠는데 영혼이 없달까, 억양이 없는 로봇의 말하기를 듣는 기분이랄까. 용어도 주류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들을 애써 무시하는 느낌이다. 역시 그렇게 써도 알아먹긴 알아먹겠는데 어색하달까. 책 자체야 원체 프로이트 입문서로 괜찮다고 평이 떠르르한 Hall의 것이니..... 같은 저자의 다른 번역을 권한다.

 

25. 지그문트 프로이트 콤플렉스

: 여기까지 읽은 입문서들 중에선 단연 제일 뛰어나다. 문체가 안정적이라 짧지 않은 문장인데도 이해가 쉽다. 번역자의 역량일까. 이 시리즈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철학 / 인문 일반 4권

 

 

 

 

26. 위로하는 정신

: 몽테뉴가 살아온 방식이 지금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내야하는 우리에게 전하는 지혜의 크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좋은 재료에 가까웠고, 츠바이크라는 불세출의 요리사가 조리하지 않았더라면, 날것으로 씹어 피와 살로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27. 장자를 읽다

: 장자는 크다. 작은 책으로 시작하지만 크게 끝날 것이다. 아니면 끝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시작은 작아도 좋다. 그러나 한 권만 읽기로 하자면, 이 책은 그리 좋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내가 유유를 까는 날이 오다니.

 

28. 시대를 매혹한 철학

: 요즘 이런 통통 튀는 입문서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읽어본들 별로 많이 알 수 없다는 자포자기 때문인지, 후려치는 책들에 관대해진다. 그렇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던 사이토 다카시를 재평가할 시기가 온 것인가? 그런다고 해도 아마 사이토 다카시는 야무차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고 쉽다. 그리고 거대한 의미를 겨냥한다. 자기완결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붕괴나 거기로부터의 탈출. 와, 입문서에서 이런 짓을? 사이토 다카시는 기껏, 3분안에 설명할 수 있어요- 이러고 마는데?

 

29.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 더 많이, 더 깊이 읽으면 갑자기 눈이 확-하고 열리는 순간이 오는 걸까? 그게 아니면 아주 낮은 계단을 밟아 높은 산을 올라가듯, 한 권이라도 읽는다면 거의 미분적일 정도로 얇게 눈이 더 떠지는 걸까? 읽고, 그 안에서 뭔가를 캐내는 일은 어렵고, 어려워서 내겐 없는 힘이고, 내겐 없어서 누군가가 부러워지는 것이다.

 

 

읽기 / 쓰기 5권

 

 

 

 

 

30. 거장처럼 써라

: 말은 쉽다. 다 아는 댁부터 한 번 해 보쇼, 따지고 싶긴 하다. 자, 여기를 이렇게 썰고 저기를 포크로 콕 찔러서 씹어드시면 됩니다, 이 다이아몬드 한 접시를요. 어쨌든 먹는 법은 알려주니 쓸모는 충분히 증명한 책 아닐까. 이빨은 내 책임이지.

 

31. 다른 생각의 탄생

: 현암사에서는 꽤 좋은 '책 읽은 책'이 나온다. 이다혜 기자의 최근작은 약간 실망이었지만. 이 책은 책 한 권을 기준으로 한 편의 글을 쓰는 형식이 아니라, 읽기, 공부 , 사랑, 민주주의 같은 하나의 개념을 중심으로 책들을 소개하여 그 개념을 다채롭게 조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렇게 일러주는 책들은 개념 위주의 단단한 독서를 위한 통일성 갖춘 목록이 된다.

 

32. 잘 지내나요?

: 빨리 다음 책 내줘요. 현기증 난단 말예요...... 근데 요즘 좀 뜨문뜨문하시더라?

 

33.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 하여튼 아는 거 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좋으면서 짜증나는 알록달록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세계의 8대 문학상"이라는 제목을 달아놓고 뻔뻔하게 아쿠타카와와 나오키를 밀어넣는 저 호연지기 좀 보소. 소개하는 책들은 대부분 아직 못 읽어본 책들에, 한국어로 번역이 안 된 책들도 많다. 술술 넘겨가며 읽었지만, 확실히 기억에 박힌 것은, 상 중의 상은 부커요, 하늘 위의 하늘은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것.

 

34. 여자의 독서

: 그냥 그렇다. 목록은 평범하고, 문장도 저자의 명성에 비해 그닥 눈에 띄지 않는 수준이다. 더 좋은 책, 많고 많다.

 

 

 

정치 / 사회 6권

 

  

 

 

35. 홍세화의 공부

: 읽어야 할 책들이 늘어만 간다. 읽어야 할 때 읽지 않았던 책들이 사라지지 않고 돌아와 멱살을 쥔다. 읽어, 읽어 임마, 나를 읽으라고. 나는 뭔가가 될 생각은 없지만,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읽고, 읽고, 또 읽다가 가끔은 쓰기도 할 밖에.

 

36.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근현대편

: 원문을 몇 문단 단위로 발췌하고 약간의 해설을 곁들인다.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어렵더라도 원문 한 번 보자는 욕심이 생긴다.

 

37. 모두를 위한 사회과학

: 요즘 이런저런 입문서들을 뒤적이다 보니 단연 눈에 들어오는 출판사가 '휴머니스트'다. 정치 사회 분야에 처음 발을 내딛는 사람이라면, 고민없이 이 출판사의 책들을 손에 쥐길 권해본다.

 

38.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 강연을 옮긴 책. 딱 그만큼의 장점과 그만큼의 한계가 공존하는 얇은 책.

 

39.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 김규항과 목수정의 문장들은 그대로 나를 빚기 때문에, 다 빚이다. 갚아야 한다. 그들이 받지 않더라도 언젠가 어딘가에는 돌려 주어야 한다. 문장을 빚졌는데 삶을 빚진다.

 

40.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내가 주기적으로 반복해 읽는 책은 많다. 그렇지만 그것들 중에 이 책과 같은 방식으로 기능하는, 그러니까 마치 연료를 채우는 느낌으로 읽는 책을 꼽을라 치면, 이 책 이전에는 『공산당 선언』한 권 뿐이었다.

 

 

잡지류 3권

 

 

41. 시사IN 520

42. 시사IN 521

43. 한겨레21 1179

 

 

 

- 마르크스 일당 : 이제 입문서 두세 권만 더 떼고, 자본 들어가야지

 

- 정신분석 패거리 : 융 입문서 시작하면서, 프로이트 원전 좀 읽어야지

 

- 경제학 공부 좀 해야지

 

- 시 좀 더 읽어야지

 

- 살 좀 빼야지

 

- 살 좀 빼야지, 진짜

 

 

 

 

- 안 뺄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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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9-16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당연하다듯 원가에 이윤 붙여서 팔아먹고 왔습니다. ㅠㅠ
좋은 많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14년 355일은 ‘상징적‘ 의미세요?
그냥 궁금해서요. ^^

syo 2017-09-16 19:31   좋아요 2 | URL
15년 독서하고 하산할 뜻을 품었는데, 이제 10일 지나서요..... 벌써 하산하고 싶은데 아직 14년 355일 남았습니다ㅠ

다락방 2017-09-16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나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라니! 그런데 나랑 북플 친구라니! 꺅 >.<

syo 2017-09-16 23:00   좋아요 1 | URL
하하하, 제가 좀 읽나보지요? ㅋㅋㅋ

singri 2017-09-16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syo 2017-09-16 23:0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뭐예요, 무슨 일이에요?

독서괭 2017-09-1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째 제 책장에 꽂혀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를 수작으로 평가하신 걸 보니 왠지 안심이 되네요ㅋㅋ 요즘 책 읽을 시간이 통 안 나는데 대리만족 합니다~

syo 2017-09-17 14:19   좋아요 1 | URL
얼른 책 읽을 여유가 나셔서 이책 저책 읽으시기를. 대리운전은 몰라도 대리독서는 곤란하니까요 ㅎㅎㅎ

짜라투스트라 2017-09-1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syo 2017-09-17 16:32   좋아요 1 | URL
ㅎㅎㅎ 감사합니다. and 부끄럽습니다.

yamoo 2017-09-19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많이도 읽으셨네욤^^ 전 위책들 중 오직 1권만 오래전에 읽었더랬습니다.ㅎ
기술과 문명, 물질과 기억, 인정 투쟁으로 7-8-9월이 걍 깨지네요. 중간중간 걸출한 세계문학 읽은 거 빼고는 다른 책들 읽을 염두가 안난다는..

그나저나 공대출신이신데, 글은 왤케 재밌게 쓰시는 거야요!!

syo 2017-09-19 19:22   좋아요 0 | URL
야무님 읽으신 책들은 저 같은 경우 열어보지도 못할겁니다.

글솜씨에 대해서는 과찬이세요. 쥐어 짜서 쓰는 겁니다. 유머에 엄청 집착하면서요 ㅋㅋㅋㅋ
 
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고, 우리 자매님 바쁘신 중인가 보다, 으음, 다른 게 아니라, 오늘 이렇게 우리 자매님께 좋은 말씀, 귀한 말씀 하나 전하려 하는데, 어떻게 우리 자매님, 주일마다 나가시는 서점이...... 아, 없으시구나, 그렇죠, 요즘 사는 거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일주일에 딱 하루, 주일날 서점 가서 책느님 좋은 말씀 듣고 올 만한 여유도 다들 없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저희가, 귀한 말씀 전하려 자매님 댁으로 직접 이렇게 발걸음을 한 거랍니다. 네, 네, 자매님, 그럼요, 저희 뭐 팔려고 이러는 거 절대 아니구요, 아유, 그럼 벌 받죠, 책느님이 다 지켜보고 계신데, 저희가 어떻게, 네, 네, 그럼 말씀 좀 전해 볼까요?


우리 자매님, 한 달에 책느님 몇 권 영접하시는지 혹시 여쭤봐도? 두 권! 오, 우리 자매님 신앙이 아주 깊으시네요! 한 달에 두 권이면 일 년에 스물 네 권! 와, 우리 자매님, 할렐루야, 천국의 문이 이미 자매님 눈 앞에 열려 있어요, 이제 자매님, 그 문 안으로 들어가시기만 하면 되는데, 그쵸,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가실지 잘 모르시겠죠,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오늘 이렇게 그 방법 알려 드리려 자매님께 온 겁니다, 우리 자매님, 좋은 말씀, 귀한 축복의 말씀 들으시기 전에, 같이 잠시 기도하실까요, 눈 감으시구요......


자매님, 우리 인간이 이 땅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 주신 책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아시나요? 우리 인간들이 책느님의 은총 모르고 살았던 어두껌껌한 시대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지식은 이어나가기도 겨우겨우 할 뿐, 농사꾼의 아들은 농사를 짓고, 어부의 아들은 고기를 잡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배울 수도, 익힐 수도 없었던 그 경직된 시대를요.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들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 신비한 이야기들이 채 스무 개가 되지 못하는 그 무미건조한 시대를요. 늦게나마 인간이 책느님을 영접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자매님,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기도하실게요, 책느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 마음에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혹시 우리 자매님, 요즘 힘든 일, 잊고 싶은 일, 위로 받고 싶은 일이 있으시죠, 네, 저흰 다 알죠, 책느님이 다 보고 계시고, 저희한테 알려주시니까요, 그래서 자매님, 저희가 오늘 거룩하신 책느님의 기적을 빌려, 자매님의 슬픔을 덜어드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마음의 준비는 되셨나요? 네? 아휴, 자매님, 그거 다 이단이에요, 자매님, 따라가시면 큰일 나요, 훠이, 책느님과는 그렇게 교통하는 법이 아니죠, 자매님 상황이나 기분에 맞게 책 권해주는 그 사람들, 신앙인 아니예요, 기술자지, 물러가라 세리야, 바리새인아, 자매님, 그런 대증요법은 근본적인 구원이 될 수 없어요, 다만 아주 잠깐 상처에 약한 마취 주사를 놓는 것 뿐이지요, 여기, 톨스토이복음 안나카레니나편 1장 1절 말씀 좀 보시라구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그 이유가 다르니라, 하시었다." 보세요, 자매님이 어떻게 슬프신지, 그 슬픔이 어떤 책과 얼마나 비슷해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결코 똑같은 슬픔이 될 수 없다고, 책느님이 말씀하십니다, 슬픔은, 자매님, 그렇게 이겨내는 것이 아니랍니다, 아니오, 슬플 땐 책느님 영접하지 마시라는 말씀이 아니라요, 그러니까, 자, 자, 그러니까 자매님, 그 주먹 펴시고, 인상도 펴시고, 아유, 이러다 잘하면 욕 나오시겠다, 제 말씀 좀 들어보시라니까요, 그러니까 책느님께서 자매님의 슬픔에 관심이 없으신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너어어무 관심이 많으셔서, 더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시려는 거예요, 네,  


그러니까 자매님, 답은, 같이 읽는 거예요, 같이 읽어요. 네, 저희랑 같이 읽으세요. 저희 아니어도 매사에 책느님께 영광 돌리고 하루 하루 책느님의 사랑 아래 충만한 신도분들이라면 누구라도 괜찮으니 몇몇 모이셔서, 같이 읽으세요. 그게 진짜 구원입니다. 그게 유일한 구원이에요. 같이 읽는 책은요, 혼자 읽는 책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에요. 인간은 불완전하고, 슬픔에 젖은 인간은 더욱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책을 펼치면, 그 안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책 읽는 눈과, 책 읽는 마음이 무한히 필요합니다. 네 개의 눈이 두 개의 마음을, 여덟 개의 눈이라면 네 개의 마음을 삽처럼 들고 와 책을 헤집고 당신의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우물을 함께 파 줄겁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만약 오늘의 당신이 슬프다면, 책을 들고 밖으로 나오세요. 당신의 좁은 방 침대 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 교차하는 시선들과 따뜻한 손길 사이사이에 씨앗처럼 책을 뿌리세요. 이야기의 물을 주세요. 책은 뭐라도 좋습니다. 당신의 슬픔과 닮았건, 닮지 않았건. 당신이 나눈 책이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었을 때, 당신은 알게 될 겁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불행을 지니고 있지만, 손을 뻗어 위로하고 공감할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만질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안에서 저마다 슬퍼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나의 슬픔과 닮은 슬픔이 들어 있는 책보다, 나의 슬픔과 닮은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그게 더 큰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어머, 자매님, 죄송해요, 제가 그만 성령이 충만하여 저도 모르게 또 방언이 터졌나 봐요, 놀라셨어요? 이런 일 종종 있어요, 네, 네, 그러니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네, 맞아요, 나오셔서 같이 책느님 영접하는 시간을 가져 보면 좋겠어요, 실제로 그렇게 어마어마한 슬픔을 극복하게 된 분들 많아요, 네, 아, 그러고보니 여기, 그 중 한 분이 간증하신 게 있네요, 제목도 참 좋지, 『내 인생 최고의 책』, 한 번 보시겠어요? 그 분 이야기는 글쎄, 어린 시절 동생이 나무에서 실족사한 이후에 어머니도 뒤이어 자살하셨다는데요, 게다가 남편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며 바람 나서 집을 나가 버리고, 심지어 딸 아이는 마약에 중독되어 유럽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행방불명 되고...... 지금 그 분, 책느님의 자애로운 인도 아래, 기적같은 일들을 겪으며 굉장히 행복하게 잘 살고 계세요. 아마, 간증록을 다 읽고 나시면 우리 자매님도 그 충격적인 전개에 깜짝 놀라실 걸요? 꼭 읽어 보시고, 다음에 한 번 나오셔서 저희랑 같이 책느님 영접하세요, 네, 여기요, 14800원입니다. 아뇨, 14800원. 네고 없음, 도서정가제. 나 지금 진지함. 이건 방언 아님. 14800원. 알라딘에서 사면 10% 깎아서 13320원.


마일리지 74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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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09-15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성령이 충만하셨네요.. 훌륭한 단편소설? 장편소설이네요. 손바닥 장. 믿습니다,아멘!

syo 2017-09-15 20:51   좋아요 0 | URL
아멘! 할렐루얍니다.

닷슈 2017-09-15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ㅋ 너무 재밌군요

syo 2017-09-15 21: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쓴다고 썼지만..

짜라투스트라 2017-09-15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겨울호랑이 2017-09-15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재밌는 글을 읽으니 금요일 밤이 더 즐거워지네요^^:

syo 2017-09-15 21:45   좋아요 1 | URL
허허^^ 별 거 안해놓고도 뿌듯하네요.

에그머니 2017-09-15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일리지 740점 ㅋㅋㅋㅋㅋㅋㅋㅋ
종교적 내공이 장난이 아니신듯.

cyrus 2017-09-15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기준으로) 알라딘 서재에 글을 재미있게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태우스님, 곰발님, 붉은돼지님, 그리고 syo님입니다. ^^

syo 2017-09-15 23:04   좋아요 1 | URL
우와, 저분들이랑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크- 보람있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9-16 00:11   좋아요 2 | URL
느닷없이 쇼 님이 출몰하는 바람에 이제 제 글은 인기가 없어졌습니다..

syo 2017-09-16 06:4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곰발님, 이렇게 재미있는 농담을 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곰발님한테 비비겠어요.

yamoo 2017-09-16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완전 재밌네요..ㅎㅎ 쇼님, 제가 봤을 때....아무래도 문학전공 아니면 문창 전공이신듯...ㅎㅎ

syo 2017-09-16 14: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야무님, 근데 땡!
syo는 전자통신컴퓨터공학부 졸업자입니다ㅎㅎㅎ

다락방 2017-09-2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쇼님 글 진짜 재미있게 잘 쓴다. 이 글 최고!!

syo 2017-09-28 09:36   좋아요 0 | URL
뭘 또 이렇게까지나 ㅎㅎㅎ
 


1



이념과 체제를 떠나서, 절망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국적과 신분과 계급을 떠나서, 절망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_백민석,『아바나의 시민들』




2


절망의 때를 헤아려 보다가, 난 헤아릴 수 있을만큼만 절망했구나, 하고 행복해졌다. 헤아린 절망들을 꼼꼼히 뒤적거리다가, 이런 것까지 절망이라고 부를 수 있나, 하고 또 행복해졌다. 하나씩 접은 손가락이 펴지면서 점점 행복해졌는데, 모든 손가락이 다 펴진 순간 모든 행복이 다 사라졌다. 너는 똑바른 삶을 살지 못했거나 너를 속이고 있구나.



아이들이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당신과 나는, 휴우, 우린 이미 과거야. 한순간의 분노,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들, 그게 바로 우리라고. 이 땅, 이 붉은 땅이 우리야. 지금까지 있었던 홍수, 흙먼지, 바람, 가뭄이 다 우리야.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없어. ...... 우린 죽을 때까지 그런 신세일 거야. 캘리포니아로 가든 어디로 가든 우린 모두 쓰라린 심정을 안고 행진하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맨 앞에 서 있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 도 다른 사람들이 쓰라린 심정을 안고 똑같은 길을 지나겠지. 

_ 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 1』


문장과 행간이 절망으로 흠뻑 젖은 책을 야금야금 쪼개 읽으며, 매일 조금씩 절망을 배우고 있다. 절망을 어떻게 책으로 배우나 싶었지만, 책으로 된다, 의외로. 세상은 사람이 책을 통해 배운 희망을 두드려 깎아 먹지만, 책을 통해 배운 절망에는 크게 이자를 붙여주므로, 좋은 절망이라는 건 없겠지만 좋은 책을 만나면 배울 수 있는 절망이라는 건 있겠다. 


그렇게 배운다고 해서 내가 이 순간 절망에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내가 겪은 절망을 되새김질해도 똑같다. 남이 겪고 있는 절망은 추측될 뿐이고, 내가 겪은 절망은 추억될 뿐이다. 사람은 오직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절망에만 절망한다. 절망은 현재진행 시제만 갖는 가난한 동사니까, 그래서 더욱 무서운 감정이다.




3


분노가 먼저냐, 절망이 먼저냐. 분노로 들고 일어섰다 엎어지면 절망하지만,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역시 분노다. 나는 이놈의 사회가 미친 덕에 분노도 쉽고 절망도 참 쉽다고 생각했었다.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고 있다. 진짜 분노는 행동을 낳기에 내가 분노라 믿었던 것들은 사실 짜증이었던 것 같다. 절망할 일이 너무 많기에 체념과 냉소로 방파제를 쌓는 습관이 생기고, 결국 절망적인 기분은 들어도, 밑바닥을 차고 올라오기 위해서 제대로 침잠하는 절망은 하기 어렵다. 그래서 행동은 더욱 희박해지기만 한다.




분노는 나를 이웃의 지평으로 끌어올리는 사회적 행위지만 사회적 짜증은 나를 거슬리게 하는 것에 대한 사적 반응이다.

_김규항,『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_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객관적이어야 하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파악한 사실들과 주장들이 여러분에게 확고한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하는데도 그러기를 회피하거나, 그 사실과 주장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현실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행동을 거부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행동을 촉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_버텔 올먼,『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무언가가 변화하는 전이의 순간들이 우리의 척추를 만든다. 우리가 기억하고자 한 순간순간들은 살아남거나 사라진다. 변화가 우리의 존재에 뼈대를 만든다. 나머지는 대개 망각된다.

_줌파 라히리,『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권력은 우리의 몸이 의자에 파묻혀 나약해지기를, 우리의 감정이 스크린 속에서 허비되기를 원한다. 밖으로 나가라. 당신의 몸을 낯선 장소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게 하라.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함께 전진하라

_티모시 스나이더,『폭정』




4


입진보로 사는 일이 참 피곤하다. 분명히 입 밖으로 분노를 내뱉었는데, 내가 싸 놓은 분노의 빅똥이 내 눈에도 보이는데, 어찌된 일인지 여전히 내 안에 분노가 있다. 분노는 분노를 낳는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그러나 만약, 내가 입진보가 아니라 진짜 행동형 몸진보였다면, 이 분노들이 표출되는 순간 내 안에서 즉시 방을 빼 줄까? 그건 별로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어차피 그 빈자리에 입주할 분노의 불쏘시개들은 매일 폭발적으로 재생산되고, 세상은 어째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기미를 보여주지 않으니까. 앞으로도 얼마간 내 입이 분노청정지역이 되는 일은 없겠다. 글도 여전히 똥이겠다. 입진보는 지치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가끔 말이 헛나온다

 혀가 이를 피해갈수록

 말이 자꾸 교묘해진다

 말이 교묘해질수록

 발은 자주 덫에 걸린다


 잇몸 위에 솟아 있는 어금니 반쪽

 혀가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밥알을 좌편향으로 굴릴 수밖에 없다

 왼쪽 어금니를 착취하지 않을 수 없다

 혀가 더 교묘해지지 않을 수 없다

 

 _ 김태정 <혀와 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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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09-15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곤과 지치는 것. 이 두가지가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저쪽사람들은 난린데,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그간 싸우느라 많이 지치고, 빨리 변하지 않는 세상이 (이유는 알지만) 힘든 건 아닌가 싶네요. 분노와 절망이라는 연속성이 절묘하네요..

syo 2017-09-15 06:48   좋아요 0 | URL
저쪽 사람들도 참 대단합니다. 지치지 않는 거(혹은 지쳐도 하는 거) 하나만큼은 인정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독서괭 2017-09-15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 글 정말 좋습니다. 요즘 인용하시는 글들 보니, 분노의 포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절망할 일이 너무 많기에 체념과 냉소로 방파제를 쌓는다는 말도 공감이 갑니다...

syo 2017-09-15 08:36   좋아요 0 | URL
분노의 포도는 정말 자신있게 권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대목을 옮겨놓을거면 차라리 사서 밑줄을 그을 것을- 하는 중입니다.

sprenown 2017-09-15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읽지 않은 세계문학작품중에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와 감동을 느낀 소설입니다. 문체도 훌륭하고요.

막시무스 2017-09-1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 어딘가에서 잠자고있는 분노의 포도를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책소개 감사합니다!

syo 2017-09-15 10:42   좋아요 0 | URL
제가 감사받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스타인벡이 다 한 건데 말이지요. 즐거운 독서 되세요, 막시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