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는 그랬지만

 



 

메리, 마리아, 마틸다 중, 메리를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syo는 이 작품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손에 쓰였다는 것,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쓰인 여성의 주체성에 관한 소설이라는 것, 그러니까 계보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어떤 의의를 찾지 못했다. 메리는 큰 매력이 없는 캐릭터고, 울스턴크래프트는 메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독자에게 떠먹이려 한다. 그건 울스턴크래프트가 이 작품을 쓴 의도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syo는 추측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 작품을 통해 메리들이 이렇게 억압을 당하고 있다보다는, “메리들도 너희 남자들처럼 이성이 있고, 자기 삶의 방향을 자기가 그려나갈 능력이 있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울스턴크래프트가 만든 여성은 당대에는 선취적이었겠으나 그 선취가 도착한 곳 역시 오늘의 우리 눈으로 보면 지나친 과거다. 메리가 택한 방식은 우리가 고려하기에 지나치게 소설적이다. 또한 울스턴크래프트가 사용한 기술 역시 우리가 오늘 참고할 만하지 않다. 오늘날의 여성 역시 이성이 없다’, ‘태생적으로 열등하다하는 식의 통째 공격을 받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인신공격에 불과하여, 닥치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런 것보다는 여성의 특성으로 여겨지는 어떤 특성을 지목하며 특정 분야나 특정 지위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위에 있다는 주장, 그러니까 영역 단위로 분할된 공격과 맞서야 한다. 그럴 때, 그 주장은 오류이며 그 근거가 실은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결과에 불과함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 우리가 택해야 할 수단은 과학이나 통계, 사회적 실험 같은 것들이다. 더는 소설이 아니다. 그러니까 syo의 생각에, 이 작품에 한정해서 보자면 메리에게서도 울스턴크래프트에게서도, 딱히 쓸만한 뭔가를 배울 수 없다.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명제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쩔었네뿐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울스턴크래프트와 동시대 조선에는 연암 박지원이 살았는데, 그는 허생전이나 양반전 같은 당시에는 상당히 선취적인 사상이 담긴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그 선취는 이제 선취가 아니고, 우리는 과거에 선취적이었던 그 작품들보다 지금 나오고 있는 그다지 선취적이지 않은 책들로부터 더 쓸모 있는 것들을 배운다. 그리고 박지원이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데 진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메리는 읽었고, 이제 마리아를 읽겠다.

 

 

 

--- 읽은 ---

 


158.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이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

 

일기를 에세이로 바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굳이 책을 읽어본 게 사실이다. syo에게 그건 뭐랄까, “H2O를 물로 바꾸는 법처럼 들렸다.

 

나는 아직도 뭐가 일기고 뭐가 에세이인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뭐가 일기여야 하고 뭐가 에세이여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것은 수준의 문제인가? 잘 쓰는 일기스트의 일기는 못 쓰는 에세이스트의 에세이보다 당연히 수준 높다. 글은 그냥 잘 쓰는 사람이 잘 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 글의 사적/공적 성격의 함량에 따라 결정되나? 순전히 내가 오늘 겪은 사건만 나열한 글이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분석해 놓은 논문보다 더 큰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기능하는 때도 많다. 그러면 일기란 세상에 내놓지 말고 혼자 쓰고 읽어야 하는 되다만 에세이의 멸칭인가?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역겨운 댓글은 참으로 많고 많지만, 가장 역겨운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일기는 일기장에. 이건 니 이야기는 들을 생각이 없으니 그냥 닥치라는 소리다. 게다가 들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지 없는 이야기인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오만이 깔려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일기가 왜 뭔가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들이 소비자로 존재하므로 이 책은 이런 제목을 달 수 있었을 것이다.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야 좋은 마음이다. 그런데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을 찾는 독자들은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이라는 책에도 같은 크기의 관심을 둘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게 중요하다. 지금 syo가 제목만 가지고 꼬투리 잡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아닌 건 아니다), 뭔가를 쓰는 사람에게 자기 글에 대한 정의는 곧 자기 영토를 포위하고 있는 국경선이다. 내가 승인하고 스스로 둘러친 한계다. 스스로 에세이를 쓴다고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에세이라는 장르의 규칙, 그 장르가 다루는 영역의 한계선, 트렌드(와 트렌드에 올라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판단) 같은 것 안에서 글을 쓴다. 이야기에는 저마다 자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 있어서 우리는 가끔 이야기를 살리기 위해 장르를 횡단할 필요도 있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뭐라고 정의되는 것을 열심히 회피하는데, 그건 실제로 글이 잡스러워서 겸연쩍어 그러는 거기도 하지만, 잡스러우려고 노력하는 바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잡스럽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글은 가만히 두면, 자꾸 정돈되려 한다. 맹렬한 기세로 열역학 제2법칙을 역행한다.

 

syo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다.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이 팔리는 이 세계는 에세이가 일기보다 높은 세계다. 이건 전복할 수 없는 기본적 사실이다. 그런 이 세계에서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이 출간된다면, 그 책은 일기가 에세이보다 높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일기를 써도 그게 그냥 에세이 급이 되어버리는 미친 기본필력을 선사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일 테니까.

 

, 그런데 솔직한 글을 위해 나의 단점을 모조리써야 할까요?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내 흠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써야 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글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상처를 받고 우울해질 것 같다면 절대 그렇게는 쓰지 마세요. 나의 흠을 독자와 공유하는 글쓰기 과정에서 본인이 조금 홀가분해질 수 있기 때문에 솔직하게 쓰라는 것이지 내 단점을 정말 남들한테 말하기 싫은데 사람들이 이거 읽으면 엄청 재미있어 하겠지라는 생각에서 쓰면 안 된다는 소리예요. 그게 과연 누굴 위한 글이 되겠어요? 에세이를 쓰면 가장 먼저나 자신이 첫 번째 독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 독자가 상처를 받으면 안 되잖아요. 에세이를 쓰면서 , 내가 이런 것까지 써야 돼?’ 하면서도 줄줄이 써지는 주제가 있는 반면 이건 아닌데, 이런 건 말하기 싫은데하는 게 있을 것 아니에요? 후자를 쓰지 말라는 겁니다. 아마 전자의 글은 자신의 흠을 드러내면서도 떳떳한 상태일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바꾸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경우일지 몰라요. 어쨌거나 내 글을 보고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면 안 돼요. 그게 나여서는 더더욱 안 되고요.

_ 이유미,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159.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허유선 지음 / 믹스커피 / 2020

 

철학을 지식의 덩어리가 아닌 하나의 방법론으로 본다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가 해야 할 것들을 이미 다 해치워버렸다고 여겨져도 되지 않을까. 그는 물었다. 답이 나올 때까지 물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다른 것을 물으러 갔다. 물었고, 물었고, 물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귀찮게 했다. 그러다 권력 있는 사람들의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자기가 말한 대로 살기 위해 죽었다. 철학자가, 이것들 말고 뭘 더 해야 하는가?

 

만일 철학이 확실한 답을 주어 그 물음이 종결되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철학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철학은 없어지지 않는 물음에 대해 도망가지 않고 생각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생각하고 그에 따라 시도하고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움직임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철학을 통해 우리는 계속 묻고 생각하며 나아갈 수 있다. 곧 철학은 피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는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생각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_ 허유선,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160.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 이재경 옮김 / 반니 / 2019

 

비소설 산문 읽는 양으로 치면 남부럽지 않은 syo, 독서 인생이 20년이 달하는 동안 조지 오웰의 산문을 읽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참 대단하다. 읽지 않아도 좋았을 쓰레기들을 수없이 읽으며 얻은 건 쓰레기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었는데, 사실 그런 건 그다지 필요 없다. 명백히 쓰레기가 아닌 것으로 널리 인정받는 책들만 골라 읽어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읽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인생사다. 쓰레기를 읽고 쓰레기 감별력이 생겼다면 그 시간에 명작을 읽고 명작 감별력이나 갖출걸. 이번 생은 대충 망했다. 헛되고 헛되고 헛…….

 

기왕 헛된 거 아주 제대로 헛되어 보기로 했다. 거장들과 그들의 명작들을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게 왜 헛된 일인가 하면 역시 인생이 짧아서다. 짧은 인생, 한 우물만 디립다 파도 그 우물로 몇 사람 목 축이기가 쉽지 않다. 기왕 syo가 쓰레기 판별의 길에 들어섰다면 이번 생은 열심히 쓰레기의 우물을 파는 데 소진하는 게 낫다. 여러분 이 책은 쓰레깁니다, 이 책은 쓰레기가 아닙니다, 이 책은 쓰레기인 듯 쓰레기 아닌 쓰레기 같습니다, 여러분. 이런 자세가 바로 이번 생에 몇 사람의 목이라도 축여줄 수 있는 syo의 작은 우물인 것이다. 그런데 그 분수에 맞는 한 우물을 포기하고 뒤늦게 거장들이 묻혀 있는 땅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으니, 남은 생은 짧고 아무리 파도 물 한 방울 구경하기 어려울 것만 같다., 아아,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내가 오웰의 책을 읽으며 했던 이것과 비슷한 고민을, 오웰도 어떤 책을 읽다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느낌 자체는 내 느낌과 정반대였는지, 아래와 같이 썼다.

 

모든 책이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당연시되는 한, 해결책은 없다. 책을 대량으로 검토하면서 그중 대부분을 극찬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직업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책들이 얼마나 허접한지 알지 못한다. 객관적이고 정직하게 비평하자면 열에 아홉은 "이 책은 무가치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서평가의 솔직한 속내는 아마 이럴 것이다.

  "나는 이 책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며, 돈만 아니면 평을 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책은 사지 않는다. 대중은 어떤 책을 읽으라는 권유와 안내를 원하고, 가치 평가를 바란다. 문제는 가치가 거론되는 순간 평가의 기준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리어왕은 훌륭한 희곡이고, 4인의 의인은 훌륭한 스릴러라고 한다면(거의 모든 서평가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이런 말을 한다.) '훌륭하다'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_ 조지 오웰, 어느 서평가의 고백

 

그러니까 오웰, 왜 허접한 걸 읽었어요. 그런 건 syo나 읽는 거죠. 당신 글솜씨가 아깝네요. 쓰레기는 syo에게 맡겨요. 당신 같은 사람은 좋은 글을 읽고 더 좋은 서평을 남겨야죠. 그러니까, , 예를 들면 조지 오웰 같은 걸 읽으시라구요, 미스터 오웰.

 

 

 


161. Chaeg 2021. 5

()(월간지) 편집부 지음 / ()(잡지) / 2021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읽는 데는 하늘의 뜻이 약간은 필요하다. 읽으려면 어떻게든 맞닥뜨려야 하고, 맞닥뜨리려면 누가 도와도 도와야 하는 것이다. 주로 철학이나 문학 위주의 독서를 하다 보니, 도서관을 그렇게 뺑뺑 돌아봤자 특정 서가에서 syo는 눈뜬 대바늘이나 마찬가지다. 눈이 없고 귀만 있는 셈. 그 좁은 귓구멍에다가 세상에는 다양한 책들이 있다는 사실을 길고 튼튼한 실처럼 꿰어주는 책이 책Chaeg이다. 매달 한 번씩 막힌 귀를 뚫어주고, 새로운 서가에 눈뜨게 해주는 사랑스런 나의 Chaeg.

 

진짜 책 같은 거 신물 나서 거들떠보기도 싫을 때, , 이 Chaeg 한번 잡솨 봐.

 

 

 



162. 우리가 함께 걷는 시간

이규영 지음 / 넥서스BOOKS / 2018

 

당 떨어질 때 한 줌 집어서 사르르 녹여 먹으면 연애의 달달함을 이어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는 귀여운 책들이 있다. 달달한 월드는 일단 곁사람에게 달달할 줄 아는 이들이 모여 만드는 것.

 

syo는 남자 평균 키보다 한참 작은데 지난 연인들은 작아야 여자 평균 키 이상이었고 간혹 높은 신을 신으면 syo보다 커지기도 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손잡고 돌아다니는 것도 그거대로 귀여운 맛은 있었지만, 안 되는 그림도 많았다. 정수리에 턱을 올려놓을 수가 없었고,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한 칸 아래에서 안을 때도 내 코는 그 사람의 엄한 곳, 이를테면 간지러워도 잘 긁을 수 없는 날개뼈와 날개뼈 사이의 안닿아메다 삼각지대 같은 곳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그건 예쁜 그림이 아니고 그냥 냄새 맡는 그림일 수밖에 없었고, 재미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내게 이런 유전자를 물려주신 뿌리 깊은 우리 노비집안 조상님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우유를 처먹지 않던 몰상식한 청소년 syo가 합심하여 그린 그림이었으니, 누구 탓을 하겠는가마는.

 

지금 만나는 사람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작다. 처음 같이 이를 닦았을 때 나는 그녀의 뒤에서 몸을 딱 붙이고 서 있었는데, 그렇게 욕실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각자 서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보기 좋았던 자신들의 모습에 감탄한 우리는 너무 예뻐, 우와, 너무 예뻐를 반복하느라 양치질을 길게 했고, 칫솔을 꺼낸 입이 허전하다며 다른 것을 찾아서 서로의 입술로 즉시 달려들…… 뭐 그랬다고 합니다. 하고픈 말은 그게 아니고(그거면서), 이제는 나도 요런 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쟤네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목이 조금 꺾이긴 하지만. 우리 아빠가 원래 남자는 언제나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고 그랬어.😤



 

 

 


163. 가벼운 영어

가벼운학습지 지음 / 패스트캠퍼트랭귀지 / 2020

 

 

 

--- 읽는 ---


영원한 이방인 / 이창래

경제학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 박병철

어떤 물질의 사랑 / 천선란

빈 옷장 / 아니 에르노

메리, 마리아, 마틸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 박가분

시민의 물리학 / 유상균

미술사 아는 척하기 / 리처드 오스본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 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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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1-05-1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일기장에 ㅋㅋㅋ

syo 2021-05-10 15:02   좋아요 0 | URL
우웩 🤮 ㅋㅋㅋ

난티나무 2021-05-10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는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권력이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 사람을 정의하는 것, 그 사람의 이야기도 정의내리는 것. 중간쯤 읽다 댓글 우선 달고 (까먹을까봐) 나머지 읽으러 갑니다.

다시 왔어요.^^
[오늘날의 여성 역시 ‘이성이 없다’, ‘태생적으로 열등하다’ 하는 식의 통째 공격을 받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인신공격에 불과하여, 닥치게 만들면 그만이다.] - 저는 한번도 면전에서 제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지만 눈빛과 행동과 평소의 말투 등등에서 이런 생각을 읽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이라는 게 있다면)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지금이 겉으로 보기에는 나아보일지라도 속은 그닥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드러나지 않으니 더 무서운 것... 그런 거 느낍니다. 열등하다거나 이성이 없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시집에서 제가 저를 투명인간으로 느끼는 것이 또 이것과 그렇게 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음 그러니까 저는 아직 [메리]를 다 읽지 않았는데, 다 읽으면 정말 ˝쩔었네˝밖에 안 남는 건가요? ㅠㅠ

syo 2021-05-11 11:59   좋아요 1 | URL
저도 난티나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기보다 그런 생각을 쉽게 내뱉을 수 없는 딱 그 정도만큼 환경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현실에서 200년이 지나도록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그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것보다는, ‘여성은 관리직에 젹합하지 않다‘,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진화적 특성 때문에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처럼 연구나 통계, 실험을 통해 반증될 수 있는 것들에 역량을 투입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이런 ‘기계적인‘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아마 제가 남성이라서, 난티나무님께서 겪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소위 말하는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1도 모르는, 공감 부족의 결과 태어난 주장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저렇게 생각했지만 저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권할 자격도 의지도 없습니다. 난티나무 님이 댓글처럼 생각하셨다면, 그게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메리를 읽고 ˝쩔었네˝밖에 남지 않았던 것은 제 독서의 결과입니다. 그건 제 한계지요. 다른 분들의 독서는 다를 거고, 저보다 많은 것들을 느끼고 남긴 다른 분들의 독서를 보고 저는 배우겠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주욱 읽으소서^-^

반유행열반인 2021-05-10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웰 다른 산문집에서 저 서평가의 고백을 읽었는데 역시 돈 때문이죠 억지로 똥글 읽고 글 쓰는 건…돈도 안 주는데 이제 남은 생은 고전 명작만 골라 읽지 하니 안일하고…동시대의 좋은 글이란 무얼까 좋은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하다보면 결국 똥을 조금씩 주워 먹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오늘의 글이 명문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다 죽고 나야 판정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오늘의 우리에게 좋은 글이 미래에는 먼지만도 못할 수도 있고 예전에 눈여겨보는 이 없던 글들이 뒤늦게 미래인인 우리가 찾아 읽기도 하니까요. 쓰고 보니 하나마나 한 소리나 재잘대는 오후네요. ㅎㅎㅎ 하나마나 한 소리라도 더 예쁘게 하고 싶다…일기는 일기장에 써야지…죄송합니다 ㅋㅋㅋ

syo 2021-05-11 12:05   좋아요 2 | URL
저는 오늘의 글이 명문인지 아닌지 읽는 사람이 읽는 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래에 먼지만도 못한 글이 더 먼 미래에는 찾아 읽는 글이 될 수도 있고 그러다 다시 더 미래에는 또 먼지가 될 수도 있어서, 미래의 어느 한 시점이 글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된다기보다, 각각의 미래를 현재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읽는 그 순간 각자의 방식으로 명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넘어가면 되지 않나, 합니다.

꼭 일기장에 써야만 한다고 본인이 판단하는 일기만 일기장에 쓰시고, 이런 의미있는 소리는 계속 알라딘에 써주세요 ㅎㅎㅎ

수이 2021-05-10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알라딘에~ 신승훈 오빠 노래 들으면서 말할 때마다 속눈썹 나풀나풀거리던 레지던트 오빠를 떠올리는 찰나 신승훈 오빠가 그럽니다 슬프기는 하지만 창 밖을 보면 편지를 써야지....... 여기에서 저 왜 이러나요 조증이다 조증 속눈썹 나풀나풀에 순간 조증이 오는 이 갱년기여 영원하라!

syo 2021-05-11 12: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따라잡을 수 없는 텐션의 댓글이다....

수이 2021-05-11 12:08   좋아요 0 | URL
나 글 썼어 1등 축하 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5-1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되고 헛되도다... 안타까운데 웃긴 이 마음 ㅎㅎ 일기든 뭐든 간에 읽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서랍에서 꺼내어 공개할 가치가 있는 거 아닐까요? 오늘도 즐겁게 읽고 갑니다^^

syo 2021-05-11 12:06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이 계셔서 늘 든든하다니까요 ㅎㅎㅎㅎ

AgalmA 2021-05-1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일기장에나 써라. 저도 이 소리를 들은 적 있는데, 공개되는 글을 쓴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듣는 소리 아닌가요ㅎㅎ 요즘은 더욱 그렇고^^;; 원글의 내용보다 도를 넘는 악플이 더 문제가 되고...

존 치버 등등 많은 작가들은 공개될 걸 염두에 두고 아예 일기를 썼잖습니까.
누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구는 저렇게 쓸 수도 있죠. 정치판처럼 말 꼬투리잡기식이 아니라 좋은 대화 나눌 수 있으면 그 글은 어느 정도 의미는 있는 거죠. 님의 이 글과 아래 많은 댓글들처럼.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글의 운명들ㅎㅎ

syo 2021-05-16 14:4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무슨 일기장 감별사처럼 넌 일기, 넌 안 일기, 잘도 정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놓고 그래 이건 일기고 여긴 일기장이다 임마들아- 하고 살지만요.

유부만두 2021-05-1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정말 재미 드럽게 없어요 ㅜ ㅜ

syo 2021-05-16 14:4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없어요 맞아요.
마리아랑 마틸다는 어떨까.....

감은빛 2022-05-0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는 내가 어쩔수 없죠.
저는 유당분해효소가 없어서 어려서부터 우유만 먹으면 탈이 났지만,
만약 우유를 많이 마셨어도 키가 더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아는 어느 작가가 소설로 한 번 등단하고 다음에 수필로 등단했다고 하더라구요.

소설로 등단은 실패했는데, 어쩌면 수필은 가능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했어요. 물론 이젠 포기한 지 오래예요.

일기, 수필, 에세이 그리고 잡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끄적이는 것만으로 재미도 있고 뭔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을 맹렬한 기세로 역행하는 syo님 멋져요!
 

 

초겨울사거리 4

 

 

 

딱 한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달렸어. 밤의 거리에는 혼자인 사람은 없더라. 다들 둘이서, 넷이서, 혹은 그보다 더 많이 모여서 떠들며 웃었어. 웃으려면 다른 하나가, 셋이,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서 모여든 사람들처럼. 혼자서도 웃는 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바람은 시원하고 아카시아 향은 환하고 음악은 달고 네 생각은 푹신해서 달리기에 좋았어. 같은 노래가 열여덟 번 흐르는 동안 뛰고 걷고 숨은 차고 다리는 무겁다가 가볍다가 했더니 딱 집에 도착하더라. 가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는데, 달리는 동안 신기하게도 조금씩 조금씩 들리더니, 열여덟 번 들으니까 대충 다 들리더라. 대충 알아듣기까지도 열여덟 번을 들어야 하는 거더라. 그렇게 오래 듣고 오래 생각해야 비로소 들리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가면서, 우리가 여기에 왔더라.

 

네가 한 말들을 열여덟 번 생각해봤거든. Oh, oh, oh, don’t, don’t you worry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도 열여덟 번 생각했거든. I’ll be there whenever you want me 내가 왜 네 옆에 있어야 하는지를 열여덟 번 생각했거든. Stick by my side even when the world is caving in 내가 네게, 그리고 네가 내게 어떤 사람인지를 열여덟 번 생각했거든.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답은 늘 뻔하고 정확해서 딱 한 번만 생각해도 됐거든.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그랬더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알게 되더라. If you stay forever, let me hold your hand 그러니까 우리는 손을 잡아야 해. 낮에도 밤에도 따뜻한 봄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 보자. 우리에게 모자란 건 서로의 손, 잡을 수 있는 손이야. 입술도 좋고 낱말도 좋고 10cm 간격으로 마주 보는 두 눈도 너무 좋지만, If you stay forever, let me hold your hand 손을 잡자. 손을 잡고 걷자. 세상 길이 다 무너져 사방이 사막처럼 늪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결국 모든 건 마주 잡은 두 손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시작하는 마음이 간절히 필요한 사람들처럼, 손을 꽉 잡고, 걸으러 가자. 같이 가자.

 



* syo는 새벽에 써서 올린 글을 아침에 읽을 것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 근자에 아주 보기 드문 두꺼운 얼굴과 염치없는 심장의 소유자입니다. 으하하하하하😆😆😆😆😆

 



Pink Sweat$ - At My Worst


아래 가사는 언제나 그렇듯 syo식 의(발번)



Can I call you baby?  부르는 말로 널 간지럽히고 싶은데,

Can you be my friend?  친구라는 말도 좋겠고

Can you be my lover up until the very end?  끝까지 끝나지 않는 사랑이라 하면 어떨까?

Let me show you love, oh, no pretend  그런 걸 보여줄 거거든, 진짜로

Stick by my side even when the world is caving in, yeah  세상이 무너져내려도 꼭 붙어만 있자

Oh, oh, oh, don’t, don’t you worry  걱정할 틈이 있다면,

I’ll be there whenever you want me  그냥 날 원하기만 해, 언제라도 옆에 있을 거니까

I need somebody who can love me at my worst  내가 가장 엉망일 때도 나를 사랑해 주고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얼룩 묻은 나를 닦아 네게만 보이는 빛을 찾아내 줄래?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왜냐면 너뿐이니까, 누구보다도, 나보다도 더 너니까

And for you girl, I swear I’d do the worst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게 만드는 너니까

 

If you stay forever, let me hold your hand  영원히 곁에 있을 거라면, 영원히 손을 잡아줄게

I can fill those places in your heart no one else can  들여다 봐, 네 맘에 내가 들어가면 꼭 맞을 그 빈자리

Let me show you love, oh, no pretend, yeah  봐봐, 이게 그 자릴 채워줄 내 사랑이거든

I’ll be right here, baby, you know it’s sink or swim  여기 내가 있을 거고, 좋을 때도 망할 때도 세상엔 우리 둘뿐일 거고

Oh, oh, oh, don’t, don’t you worry  외롭고 무서울 때 있겠지만

I’ll be there whenever you want me  그때도 우리는 함께일 거야, 우리가 우리를 원하니까

I need somebody who can love me at my worst  내 밑바닥을 보고서도 끝내 사랑을 놓치지 않을 사람,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yeah  멍청한 나를 일으켜 세워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그게 너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내게 가장 소중한

And for you girl, I swear I’d do the worst  그게 너라니까, 내가 못할 게 대체 뭐가 있겠어

 

I need somebody who can love me at my worst  내가 이런 꼴이어도 나를 사랑해 줄 거지?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yeah  네가 날 봐주면, 완벽하진 못해도 더 좋은 사람이 될게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그건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나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

And for you girl, I swear I’d do the worst  그런 널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게

 

 

  

--- 읽은 ---

 


156. 읽는 직업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

 

이 책에 한 줌의 망설임도 없이 별 다섯 개를 매길 수 있는 건, 이은혜 선생님이 읽는 사람이면서 쓰는 사람이어서겠다. 선생님은 편집자라는 직업의 본령을 읽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는바, 쓰는 당신을 조금쯤 겸연쩍게 여기시는 모양이지만, syo는 이 책을 읽으며 읽는 syo와 쓰는 syo 두 놈 모두가 겸연쩍어졌다(심지어 읽기에 있어서는 겸연쩍음을 넘어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읽고 쓰는 두 놈 모두가 시원하게 격추당하면서도 양손으로 최후의 엄지척을 남겼으니 엄지손가락 네 개 확보. 그 꼴을 본 제3syo가 또 양손으로 엄지척을 날렸으니 엄지손가락은 총 여섯 개. 그렇게 별 여섯 개를 매겼지만 알라딘이 그런 짓은 안 된다고 그래서 별 한 개는 마음 속에 보관하는 걸로. 결론 별 다섯 개.

 

비밀은 글을 쓰게 한다. 그러므로 진짜 비밀은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비밀과 달리 글로 쓰인 비밀은 음울과 비탄을 마침내 정돈해서 담아내는 까닭에 희망을 향해 달린다.

_ 이은혜, 읽는 직업

 

, 이런 멋진 문장을 마주하면 나란 놈이 한없이 하찮아지면서, 울음과 비탄이 도무지 정돈되지 않는 까닭에 절망을 향해 달리게 된다.

 

 

 


157.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

 

- 일독(1811xx)

- 재독(210504)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재독하는 책들이 있다. 그 가운데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 이걸 왜 다시 읽었을까, 처음 읽을 때의 나는 이 책을 좋아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책들도 있다. 그런 경우 과거에 쓴 평을 다시 보면 그때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나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경우가 십중팔구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실패다. 처음 읽었을 때는 실패의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짚어내지는 못했고 그저 두루뭉수리하게 어, 왜 별로지? 고미숙 선생님 좋은데 왜? 이랬던 듯. 그런데 지금은 알겠다. 이 책은 백수가 아닌 사람에게 백수의 매력을 설득하는데 실패할 것이다. , 백수가 이런 것이었다니, 당장 내일 사장님 면전에 사표를 집어던져야겠는걸?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있어도 이 책의 힘은 그저 가득 차 있던 항아리에 우연히 던져진 돌멩이 수준에 그칠 것이다. 그렇다면 백수 독자들에게 그들이 모르고 있던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책인가? 글쎄, 그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백수 경력 장장 10년의 syo는 그렇게 본다. 그러니까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한 줄로 말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모든 백수가 연암처럼 살 수 없기 때문에 연암이 연암이다.

 

그러니 부탁한다. 제발 꿈꾸지 마라! 꿈은 망상이다. 망상은 부서져야 한다. 망상 타파! 청춘은 청춘 그 자체로 충분하다. 아니, 삶이 통째로 그러하다.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살지 않는다. 어떤 가치, 어떤 목적도 삶보다 더 고귀할 수 없다. 살다 보니 사랑도 하고 돈도 벌고 애국도 하는 것이지, 사랑을 위해, 노동을 위해, 국가를 위해 산다는 건 모두 망상이다. 하물며 화폐를 위해서랴? 성공한 다음엔 공황장애, 성공하지 못하면 우울증. 이 얼빠진 궤도 자체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러니 제발, 망상을 타파하자.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청춘의 생동하는 얼굴과 마주하게 될 터이니.

_ 고미숙,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읽는 ---

경제학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코끼리를 쏘다 / 조지 오웰

가벼운 영어 / 가벼운학습지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 탕누어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 피에르 아도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여성작가 편 / 이현우

빈 옷장 / 아니 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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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7 0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1-05-07 1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syo님, 여자친구분께 보낼 연애편지를 잘못 올리신 거 아닌가요?ㅇㅁㅇ 아침부터 이런 달달달달한 글이라니 연애세포 죽어가는 유부녀의 마음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는 아니고. 좋다구요. syo님 글은 언제나 좋당. 항상 모바일북플로 보다가 컴퓨터 큰화면으로 제대로 서재에 들어와보니 분노의 포도알갱이도 엄청 크고 ㅋㅋ 글도 더 잘 읽히고 좋습니다!

syo 2021-05-10 15:0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연애세포는 사실 죽는 것 같아도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NASA에서 연애세포의 끈질긴 생명력을 일반 세포에 적용하여 인류에게 영생을 가져다 줄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데요.

pc로 보면 좀 많이 낫죠? ㅎㅎㅎ 좌우정렬이랄지, 행간격이랄지, 그런 것들 의외로 신경쓰고 있습니다. 북플로 보면 아무 티도 안나지만요.....

- 2021-05-1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안쪽 팔릴거 같은데요? ㅋㅋㅋ 번역 참 좋으다.. ㅋㅋ 저렇게 하는 거구나... ...

syo 2021-05-10 15:06   좋아요 1 | URL
번역을 빙자한 연애편지인가, 연애편지를 빙자한 번역인가.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언젠가는 바닷가에 닿는

 

 

 

한 문장이 필요해서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경우.

 

읽은 책을 자꾸 다시 읽게 만드는 문장은 읽는 사람의 마음속 조용한 바닷가를 적시는 파도처럼 너무 가까이 오지도 너무 멀리 가지도 않고 초연히 늘 거기에 있다. 어떤 시절 어떤 곳에서 궁리하던 나와 만나 나에게 안긴 문장이다. 그저 내게 아름다우므로 점점 내게 더 아름다워지는 바닷가처럼, 모두에게 특별하지 않아서 내가 더 특별하게 여길 수 있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이성의 영역도 감정의 영역도 아니어서, 우연과 기억과 시간, 그 질량 없는 것들이 막막한 질량으로 잡아당기면 밀물과 썰물은 여지없이 인다. 오래 찾아가지 않은 바닷가의 파도 소리는 그렇게 조금조금 커지다, 어느 날, 찾아가 다시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깊은 소리가 되어 안으로 울린다. 그럴 때 돌아가 앉아 고요히 바라보면, 오래 만난 문장은 처음 만난 문장 같기도 하고, 오래 짊어지고 살아온 내가 처음 만난 나 같기도 해서, 파도 소리 잠잠히 잦아들 때쯤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며 일어서는 나는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힘 있는 내가 되는 것.

 

자꾸 다시 읽는 한 문장은 한 권보다 크고 깊다.

 

 

 

--- 읽은 ---

 


152.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

 

- 일독(170821)

- 재독(210503)

 

아무리 기본값이 잡글이어도 알라딘에서 놀려면 어떻게든 책 이야기를 하긴 해야 하지 않는가. 읽는 건 즐기지만 읽은 걸 이야기하는 데는 아무래도 소질이 없는 syo가 알라딘에 발을 붙이던 시절에 많이 하던 고민이다. 그때 많이 참고했던 게 금정연 선생님. 기회 될 때마다 말하지만 syo의 최초 목표는 보급형 금정연, 금정연 이미테이션 금정역같은 게 되는 거였다.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당연히 금정연 선생님의 글에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애매한 독후감의 세계에는 안 읽고서 읽은 것처럼 쓰기도 있고, ‘읽고서 안 읽은 것처럼 쓰기도 있다. 하지만 이 영역의 최고봉은 바로, ‘안 읽고서 읽은 것처럼 쓴 건지 읽고서 안 읽은 것처럼 쓴 건지 헷갈리게 쓰기. syo는 늘 그런 경지를 추구했다. 빗대어 말하자면, 잘생긴 애와 안 잘생긴 애보다 더 신경 쓰이는 애가 바로 잘생겼는지 안 잘생겼는지 희한하게 모르겠는 애인 것이다.

 

물론 거어어어업나 잘생긴 애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건 우주의 섭리다.

 

이 책 독후감을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뿌듯하다. 쓴 내가 봐도 안 읽고서 읽은 것처럼 쓴 건지 읽고서 안 읽은 것처럼 쓴 건지 헷갈린다. 내가 이걸 읽었던가?

 

요약하면 멋쩍어지는 일들이 있다. 이 문장은 두 가지 뜻으로 읽힌다. 제법 그럴싸해 보이지만 요약하고 보면 멋쩍은 일이라는 의미로. 도는 요약이라는 행위 자체를 멋쩍게 만드는 일이라는 의미로.

  전자가 삶이라면 후자는 소설이어야 한다. 소설이다, 라고 쓰지 않고 소설이어야 한다, 라고 쓰는 건 여전히 많은 소설들이 삶을 요약하기 때문이다. 메인플롯과 몇 개의 서브플롯으로. 극적인 사건들의 연쇄로. 발단과 전개와 위기와 절정과 결말을 갖춘 이야기로. 그 끝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에피파니로. 이때 요약은 불가피하게 보인다. 모든 삶은 한권의 책에 담기에는 너무 길고, 긴 삶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_ 금정연,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153. 사진가의 기억법

김규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

 

에세이 장르를 줄기차게 읽는다. 사진이나 그림이 종이의 절반을 먹어들어가는 책, 한 줄로 이어 써도 채 한 줄을 다 못 채울 문장을 서너 줄로 나눠서 지면을 채우는 책도 꽤 읽는다. 그렇게 생긴 책들 가운데에도 좋은 녀석들은 종종 있다. 그렇지만 차마 좋은 책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녀석들이 대부분. 앞으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한 줄로 끝낼 것이다. "내가 더 잘 쓴다." 그리고 그 한 줄을 쓸 때도 나는 결코

 

  내가

  더

  잘 쓴다.

 

이렇게는 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더 잘 쓴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

 

손에 사진기가 들려 있다면

당신은 이미 그 방법 하나를

알고 있는 셈이다.

_ 김규형, 사진가의 기억법

 

 

 


154. 200년 동안의 거짓말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지음 / 강세영 외 옮김 / 푸른길 / 2017

 

이번(그러니까 저번)달 책은 읽기 쉽고, 그래서 금방 읽어낼 거라고 예측했지만, 삶이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일이 엎치고 저런 일이 덮치는데 심지어 그런 일들 밑바닥에 깔린 나의 게으름이 광대하여 결국 기간 내에 읽기는 실패. 이런 것이 인생이라고 늘 배우지만, 배워도 배워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라는 인간의 한결같음은 뭐랄까, 거짓말 같다. 200년이 지나도 낫지 않을 것 같다.

 

과학은 태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진리를 향해 다가가는 사람들의 태도. 그 태도가 너무나 고결하여 과학이 밝혀낸 진리와 달성한 업적에 대한 존경은 곧 과학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진다. 축적된 존경은 신앙이 되고, 과학이라는 말이 신봉의 대상이 되는 순간, 과학적 태도는 자취를 감추기 쉽다. 그건 과학의 잘못일까, 아니면 과학이라는 말을 이용하려는 일부 비과학적 과학자들이 추구한 사리사욕의 결과일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비과학적이지만 당시에는 과학의 이름을 내세웠고 그것이 과학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논리체계가 있었다고 할 때, ‘그건 사실 과학이 아니었다는 선언은 오늘의 우리에게 손쉽고 깔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지켜지는 것은 과학의 태도가 아니라 과학사의 순수성일 뿐이다. 과학적 태도 역시 과학이라는 거대체제에 속하는 인물들이 지켜야 할 윤리학이지, 과학자들이 당연히 지니고 있는 존재론적 특성이 아니다. 과학은 과학 자체로 비과학적태도를 내포할 수 있고, 그런 사례는 널렸다. 자본이 과학에 가하는 영향력을 인정할 수 있다면, 과학적 전문가들이 인간으로서 지닌 편견이 그들의 과학에 미치는 편향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과학 꺼지라는 게 아니라, 마침내 권위를 획득한 것들은 그 권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었던 자신의 가장 훌륭한 특성들과 정반대되는 행위를 하기 쉽다는 것이다. 신앙이 된 모든 것들이 대체로 그러했듯이.

 

한때 과학은 견고했던 권위를 공격했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적 전문가는 권위 그 자체가 되었다. 그의 업무는 무엇이 진실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적절한가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_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200년 동안의 거짓말

 

그러나 젠더 관점에서 분석된 책을 읽어 놓고서는 젠더의 논점을 삭제하고 원론적이면서 추상적인 리뷰를 쓰는 것, 이 자체가 일종의 권력적 · 정치적 읽기다. 나는 내가 쓴 이 짧은 글이, 다른 맥락에서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평으로 여기 붙으면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글이든 자체로 좋고 나쁘지 않다. 정치는 맥락 속에서만 작동하고, 맥락 속에서 정치는 반드시 작동한다. 알면서 왜 이 짓을 하고 있는가. 차라리 아무 말을 하지 말걸.

 

이게 남성으로서 겪는 여성주의 책읽기의 딜레마다. 당사자성이 없는 나는 늘 이딴 글을 써댄다. 이것이 한 책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그 책이 노고를 통해 타자의 수렁에서 건져낸 피해자들을 재타자화하는 쓰기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점점 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지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곤란하다. 계속 길을 찾고는 있지만, 점점 더 멍청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만 같아서 겁이 난다. 멍청하게 똑똑한 인간은 최악이다.

 


 


155.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김재인 지음 / 느티나무 책방 / 2016

 

- 일독(17071x) / 재독(19223x)

- 삼독(210504)

 

실패란 처음에 의도한 목표와 내가 노력해 생겨난 결과가 어긋날 때,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때를 가리킵니다. 그 어긋남 때문에 사람들은 좌절하고 후회합니다. 후회는 결과에 비추어서 노력을 평가하려 할 때 생깁니다.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거지요. 하지만 결과란 나의 노력과 우주의 조건이 어우러져서 생겨나는 법입니다. 내 노력이 바라던 결과를 낳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목표를 향한 노력이 원하는 결과를 낳지 않는 것이 존재론적 조건 아래에서는 오히려 정상입니다. 차라리 실패가 정상 상태라고 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노력하는 순간에 집중해야 합니다.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결과가 나쁠지라도 최대한 노력하는 겁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때, 그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가 남지 않습니다. 후회란 노력에 대한 후회인데, 노력의 순간에 더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노력과 결과를 분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야 합니다. 노력은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무조건 수용하기. 그러고 나서 최선을 다한 또 다른 실험을 진행하기. 이런 것의 연속이어야, 이것이 삶이어여 하는 게 '운명애'의 진짜 의미입니다.

_ 김재인,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나도 나를 잘 알 수 없는 부분이 그렇다. 어떤 책을 읽을 때는 이건 너무 뻔한 문장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이유로 혹평한다. 하지만 또 어떤 책을 읽으면서는 너무 뻔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글자들에 오래 머무른다. 그러면 안 되는 걸까?

 

그러면 안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깨닫는다. 나는 이렇게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는 독서를 하는 나를 들여다보면서, 인간이, 최소한 나라는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동물임을 인정하게 된다. (나라는) 인간은 일관적으로 일관성이 없다. 일관성을 추구하고 노력할 뿐이다. 일관성은 존재론이 아니라 윤리학에 가깝다.

 

저 흔하고 뻔한 말이 오늘은 그냥 필요했다.

 

 

 

--- 읽는 ---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 허유선

경제학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 이유미

나의 칼이 되어 줘 / 다비드 그로스만

읽는 직업 / 이은혜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 레너드 서스킨드, 조지 라보프스키

물리가 쉬워지는 미적분 / 나가노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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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5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님이 그렇게 이야기 하시니 금정연님 책도 다시 한번 봐야게써요 (전 제목에 홀려서 돈 아까워했지만) 사서 읽지 않으니 흡족했더라는.
에런라이크 책은 그렇게 읽어도 되고 또 다르게 읽어도 될 것 같아요. 그러니 쓰신 문장 처럼 어떤 책을 읽으면서는 너무 뻔해서 눈길 안주는 글자들에 오래 머무르는 게 ㅡ 목적없는 책읽기가 주는 가장 목적없는 즐거움이고 그걸 알아버리고 나면 목적있는 읽기가 수월하지 않아지잖아요? 다시 돌아가서 한문장을 읽기위한 한권 읽기가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것이 제 요즘 고민입니다. 서글프다.

syo 2021-05-06 01:08   좋아요 1 | URL
쟝님은 지금 일단 덮어놓고 많이 많이 집어삼킬 땐가 보네요.
그럴 땐 또 탐식하고, 목적이 생기면 그때가서 목적 독서 하면 되지요 ㅎㅎㅎ
시간 지나고 나서 보면 내 인생을 흔들었던 책들은 우연히 만났지만 목적을 가지고 읽은 애들이더라구요.

뒷북소녀 2021-05-06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라니! 저 읽고 싶어지잖아요.ㅋㅋㅋ
세상에... 철학, 경제학도 부족해서...물리학에 미적분이라뇨.
정말 대단하세요.

syo 2021-05-07 02:48   좋아요 0 | URL
대단할 게 하나도 없는 게,
휘적휘적 보는 거라서 완독 즉시 망각의 수렁에 돌입합니다.
보름쯤 지나면 완벽하게 까먹을 수 있습디다..... 😭


 

 

수비

 

 

 

내 몸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몸에 맞춰서 생각을 계속 깎아내면서 살게 되기도 한다. 깎아낸 내 생각과 마음의 톱밥이 쌓이다가 바람에 날려 차마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리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어제가 오늘과 같으니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으리라 그저 짐작하면서. 그러나 어제의 나를 더듬는 것도 오늘의 내 손이어서, 오늘 내 손에 분포된 통점, 압점, 온점에 따라 어제의 내가 얼마나 아팠고, 얼마나 참았으며, 그 와중에도 얼마나 따뜻했는지가 측정된다. 아니, 결정된다. 그러니 어제의 내 마음을 정하는 것은 사실 오늘의 내 몸이다. 그래서 나는 어제의 내 마음을 사랑할 수 있는 오늘의 내 몸을 만들고 지켜야 한다.

 

마음이 마음의 마음이라면 쓰기는 마음의 몸이어서, 몸과 마음이 함께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듯 쓰기와 마음이 같이 단단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넘치게 따뜻한 마음이라도 냉정한 몸짓에 부어 뚜껑을 닫으면 단열되기 쉬우니까. 다정한 생각에는 다정한 행동으로, 다정한 마음에는 다정한 표현으로 짝을 맞출 것. 따뜻하게,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게, 안기고 싶게.

 

말은 늘 쉽구나. 그럼에도,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어떤 힘일까? 나는 삶이 고통스럽거나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무기력한 마음이 들 때 이 소설 속 빵집 주인이 건넨 한 덩이의 빵을 떠올리곤 하나. 어떤 의미에서 내게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 아들을 잃은 부부에게 빵을 건네는 마음으로 허공에 작은 빵집을 짓는다. 젊은 부부에게 온기를 전하는 빵집 주인의 마음으로. 어딘가 있을 당신에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책들을 건네기 위해서.

_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각자 즐거움을 연주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 부조리한 삶의 희생자일 뿐이다. 유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두려움이라는 병의 백신은 자신만의 즐거움을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_ 이화열, 지지 않는 하루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울음을 참아온 그는 정작 자신이 그래왔다는 사실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이 슬픔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슬픔이다. 보라. 참는 사람은 늘 참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대신 메뉴판에서 한 끼의 식사를 고르듯 적당한 미소와 웃음을 골라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그것들을 코르크 삼아, 울음이 치솟는 성대를 틀어막는다.

_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읽은 ---

 


148. 아무튼, 장국영

오유정 지음 / 코난북스 / 2021

 

그가 스스로 생을 마무리했던 때, 그때까지도 나는 그가 우리나라 사람인 줄 알았다. 워낙 영화에 관심 없던 어린 시절이기도 했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슬픔으로 떠들썩하니 당연히 그 죽음이 외국에서 벌어진 외국인의 죽음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장국영이나 주윤발을 흉내 내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친구들은 대체로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외계생물 성대모사에 몰두했다. 사람을 흉내 내는 애들은 WWE를 보며 레슬링 기술을 연마했다. 대학에 와서야, 그러니까 김경욱 선생님의 단편집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읽고 나서야 장국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알게는 되었지만 장국영보다 김경욱 선생님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때는 아직 syo가 소설가의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

 

세상에 나와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에 장국영이 죽던 날까지 그가 우리나라 사람인 줄 알았던 인간은 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 엄마도 장국영을 잘 알았다. syo가 여섯 살 적에 우리 집이 비디오 대여점을 했었다. 엄마는 장국영보다 주윤발을 더 좋아한다는데, 나는 그 두 사람이 그렇게 나란히 놓이는 게 온당한 상황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장국영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궁금한 것도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그렇다.

 

그건 오유정 선생님의 필력이 부족한 탓도 아니고, 장국영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이 모자란 탓도 아니다. 나는 그냥, 내가 만지고 이야기 나눌 수 없는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깊고 오래도록 사랑하는 마음이 궁금하다. 누군가를 향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선명한 증거일 것만 같아서 그렇다. 모든 계절이 열일곱 번씩 다시 돌아오는 긴긴 시간 내내 잊지 않고 호명하는 이름을 품은 마음, 그 마음의 온도 같은 것.

 

춘하추동. , 여름, 가을, 겨울이 열일곱 번 지났다. 지금도 여전히 생각한다.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세월을 함께 살아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세상의 이런저런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때가 좋았지, 세상 참 많이 바뀌었어라며 SNS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랬다면 지금쯤 나도 SNS 계정 하나 정도는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

  春夏秋冬该很好, 你若尚在场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얼마나 좋을까, 그대가 여전히 함께 한다면

_ 오유정, 아무튼, 장국영

 

 

 


149. 죽기 전까지 걷고 싶다면 스쿼트를 하라

고바야시 히로유키 지음 / 홍성민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

 

여러분 스쿼트를 하면, 전신의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 체지방을 연소한다, 힘이 넘치고 활기차다, 허리 통증을 막아준다, 혈액순환이 개선되어 쉽게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혈액순환을 향상해 냉증을 개선한다, 어깨 결림 목 결림이 사라진다, 치매를 예방한다, 자율신경의 균형을 조절한다, 면역력을 높인다, 상승효과로 더욱 건강해진다, 장을 움직여 변비에 효과적이다, 변실금을 예방한다, 요실금을 예방한다, 운동으로 몸에 작은 스트레스를 주면 건강해진다, 고 합니다! 대단하지요? 저자가 조금만 더 풍이 쎈 사람이었다면 저 리스트 뒤에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세계 평화가 찾아온다- 같은 것들도 붙는 게 아닌가 싶었다. 깨달음은 오히려 이상한 대목에서 찾아왔는데, 저렇게 어마어마한 효과들을 다 나열해서 결국 얻고자 하는 최종 지점이 바로 죽기 전까지 걷는 것이라는 뜻이잖아. 생각해보면 걸을 수 있을 만큼 신체 건강한 상태에서 자연사한다는 것은 큰 복인 것 같다. 아무래도 syo가 스쿼트를 하긴 할 모양이다.

 

 

 


150. 읽자마자 수학 과학에 써먹는 단위 기호 사전

이토 유키오, 산가와 하루미 지음 / 김소영 옮김 / 보누스 / 2021

 

그야말로 사전이라, 이걸 다 외울 수는 없겠다. 읽는 책이라기보다는 두는 책이라는 뜻이다. 두고 쓰면 좋겠지만, 사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정보라서 이 책은 두고 쓰라고 냈다기보다 단위 자체를 더 쉽고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책에 가깝다. , 두는 책이라기보다는 읽는 책이라는 뜻이다. 이게 이 책의 딜레마다…….

 

하지만 요런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그림들이 잔뜩 있다. 헤헤.



 

  


151.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

이윤영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

 

나도 싫은 글과 좋은 글이 있다. 싫은 마음은 글의 형식이나 문장의 허접함에서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쓰는 이의 편협함에서 온다. 자기가 편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편협한 글을 쓴다. 자기가 자기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못지않게 편협한 글을 쓴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방법, 시작한 글쓰기에 추진력을 붙여나가는 방법을 설명하는 책에다 아무 상관없는 평을 붙이는 게 썩 온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써나가다 보면 알게 된다. 글쓰기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태도라는 것을. 타인을 대하는 태도만큼이나 자기를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종종 그렇다. 빻은 날엔 빻은 줄 모르고, 혐오할 땐 혐오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 책 이야기는 안 하고 지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구만……. 죄송합니다. 제목이 곧 내용입니다. 상세한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읽어보시기를. 꼼꼼한 30일짜리 커리큘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완벽한, 그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세상에 100% 완벽한 것은 없다. 단지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마음만 있다. 완벽한 것을 찾기보다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자세, 그것이 즣은 글을 쓰게 하는 태도다.

_ 이윤영,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

 

 

 

--- 읽는 ---

200년 동안의 거짓말 /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금정연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법학 입문 : 민사법 1 / 김해마루

논리적 생각의 핵심 개념들 / 나이절 워버턴

베르그손 / 황수영

아무튼, 연필 / 김지승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 레너드 서스킨드, 조지 라보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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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03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어제의 내 마음을 정하는 것은 오늘의 내 몸이다. 캬~♡🍶
2.빻은 날엔 빻은 줄 모른다 하..😇

syo 2021-05-03 20:1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운동해야 합니다, 운동.....

반유행열반인 2021-05-03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선의 수비는 공격! 이라던데…(왜 이게 생각난 것인가…그래서 난 늘 어디서나 선빵?을 날리는 걸까요…ㅋㅋㅋ)

syo 2021-05-03 20:12   좋아요 2 | URL
반님은 역시 공격수 스타일이죠.
하지만 수비도 하실 땐 잘 하실 것 같은데?

모운 2021-05-03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빻음도 혐오도 소중했구나가 되잖아

syo 2021-05-03 20:13   좋아요 1 | URL
아닌데?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빻고 서로 혐오를 했구나~ 가 되는데?
 

 

좋(지 않)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쓰기

 

 

1

 



피에 젖은 땅의 리뷰 기한을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참 힘든 시간이었다. 길게 고민했고, 길게 썼고, 길게 힘들었다. 다 쓰고 나니 진이 빠져서, 즉시 그날 하루를 덮어버렸다.

 

 

 

2

 

1등을 노린다고 반 장난으로 떠들어댔고, 다정한 친구들도 너야말로 내 마음속의 1등이라며 아낌없는 오구오구를 주었지만, 솔직히 syo는 한 번도 1등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건 리뷰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뷰라는 단어가 어떤 글쓰기를 가리키는지에 대해 독서가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람마다 미세하게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합의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syo가 쓴 글은 syo의 개인적인 분류법 속 리뷰라는 장르의 형식에 맞아들어가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봐도 그럴 것이고. 그래서 저런 글은 늘 형식에 대한 어떤 도전이 된다. 그런 시도 자체를 높이 살 수도 있겠지. 그런 뜻을 품었다면. 하지만 나는 특별히 뭔가에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 틀을 깨려는 과분하다 못해 과도한 의도는 없었다. 나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가 쓰고 싶은 모양으로 썼고, 그건 늘 내가 하던 일이다. 개인적인 일이다.

 

전에도 이런 식의 리뷰를 써서 크게 망한 적이 있다. 그때 쓴 글도 거의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이었다. 며칠을 그 글에만 매달렸다(그리고 그 글은 지금 봐도 잘 된 글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 혹은 그 이상이었다). 솔직히 그땐 지금보다 욕심을 좀 더 냈고 막 1, 2등짜리 김칫국을 마시기까지 했지만, 입선도 하지 못했다. 입선하면 책갈피를 줬다. 그건 받을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로 김초엽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는 눈을 매섭게 뜬다. , 나한테 책갈피조차 안 줬단 말이지? 이러면서.

 

같은 이유다. 리뷰 대회에 리뷰의 형식에 걸맞지 않은 글을 내기로 작정했을 때부터, 내가 출판사라도 이런 글에 1등을 줘서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해놓으면 마치 내가 못 써서가 아니라 형식 때문에 못 타는 거라며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게 그 말이다. 못 쓰는 것이다. 리뷰처럼 못 쓰기 때문에 리뷰 같지 않은 리뷰를 쓰는 것. 그건 비단 리뷰 대회에서만이 아니라 syo의 알라딘 서재 활동 전체를 관통하는 제일 큰 질문이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공간에서, 개인사, 잡소리, 개똥철학으로만 점철된 리뷰와 페이퍼를 써대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며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3

 

피땅 리뷰를 쓰려고 아등바등하던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2021년 들어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은 구간이었다. 이런 증언록 형태의 글을 쓰려 한다고 여자친구에게 말했을 때, 그녀의 입에서 제일 처음 나온 말은, “, 가능하면 피해자 목소리는 흉내 내지 않는 게 좋겠다.”였다. 바로 그게 처음 컨셉을 이렇게 잡은 직후부터 계속해서 나를 몰아치고 괴롭히던 문제였다. 두드려맞은 것처럼 놀랐지만 동시에 이런 말을 하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겪지 않았으며 그들이 그들 자신과 세상에 대해 어떤 마음인지 그들의 말을 듣지도 못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쓸 자격이 있을까? 있다고 해도, 그들의 목소리를 흉내낼 자격까지 있을까? 그런 자격이라는 게 세상에 있나? 있다고 해도, 그걸 적립금을 주는 리뷰 대회에 참가하는 데 함부로 쓴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 위해 내가 가장 잘하는 방식을 택하는 사람은 용감하고 현명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잘하는 걸 하겠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려 드는 짓은 종종 무심한 폭력이 된다.

 

실제로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제동이 걸렸다. 한 줄을 쓰고 벌떡 일어나 집안을 빙빙 돌아다녔다. 다시 주저앉아 두 줄을 쓰고 또 벌떡 일어났다. 한 단락을 다 쓰면 집 밖으로 나가 산책했다. 빙빙 돌아다닐 때도, 산책 중에도, 계속 생각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를.

 

좋은 글일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글쓰기는 아니었다.

 

 

 

4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이거다. 내가 보통의 리뷰를 썼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블러드랜드 피해자들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미친 헛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장 사이사이에서 생각했고 문단 사이사이에서는 더 오래 생각했으므로, 나는 이제껏 내가 해왔던 그 어떤 독서에서보다 더 오래, 깊이, 아프게, 등장인물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래서 내 눈에는 내가 써서 올려놓은 활자의 무게가 이전과는 달리 보인다. 글을 쓴 내 눈에만 발견되는 문장의 하중.

 

좋은 글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글쓰기였다.

 

 

 

5

 

실은 자체적으로 단점이 많은 글이다.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사실 책의 가운데 부분을 증언하는 증언자가 하나 더 있었지만 분량 문제로 삭제했다. 최종적으로 A4 여덟 장짜리 글이 나왔고, 그게 세 장 뺀 것이다. 어조가 성글다. 구어체다 보니 어미를 계속 순환하면서 써줘야 했는데, 했지, 했어, 했더군, 했더구먼, 뭐 이렇게 몇 개 돌리다 보니 쓸 수 있는 게 없어서 곤란했다. 비밀경찰 역할을 맡은 배우는 연기력이 부족했다. 인터뷰 중에 계속 술을 마시다가 결국 취해 가지고 어떤 울분을 드러내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갑자기 급발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력이 딸려서 그랬다. 멀었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어디로 가려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거기가 참 멀다.

 

 

 

6

 

다른 분들이 쓰신 것을 훑어보았는데, 1등 후보로 세 분 정도를 점치고 있다.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내가 찍은 그 세 분이 1등과 2등에 다 포진되어 있다면 뭔가를 인정받은 기분이겠다.

 

 

 

 

--- 읽은 ---



143. 심신 단련

이슬아 지음 / 헤엄 출판사 / 2019

 

이슬아 선생님도 고민이 많은 것이다. 한낱 잡글 쓰는 syo조차도 틈만 나면 글쓰기란 무엇인가, 쓰기란 무엇인지? 쓴다는 건 산다는 것인가 싼다는 것인가, 이러면서 데굴데굴 구르는데, 글쓰기와 그를 둘러싼 활동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선생님의 고민은 오죽할까. 어쩐지 이슬아 수필집보다 더 묵직한 느낌이 드는 건 아무래도 그런 고민의 질량이겠지. syo는 전작이 조금 더 귀엽고 그래서 조금 더 좋지만 그건 내 취향의 문제고, 선생님의 글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겠다. 나는 늘 이슬아 선생님을 응원하는데, 실은 나나 좀 제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알아서 잘만 살고 계신다. 여전히 잘 쓰고 계신다.

 

폐에 관을 꽂은 하마가 높은 침대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프지 않은 쪽의 팔을 뻗어 내 이마를 만졌다. 익숙한 손에 쓰다듬어지자 나는 속수무책으로 잠들었다. 아픈 애보다 먼저 잠다는 것에 대해 해명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 잘 먹고 잘 자야 된다고. 그래야 내일도 지치지 않고 즐겁게 병원에 머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졸려서 입이 안 열렸다. 집에서처럼 하마가 나를 재워서 병원인 걸 까먹은 채로 잤다. 우리는 적당히 서로의 언덕에 기대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_ 이슬아, 심신 단련

 




144. 열과 엔트로피는 처음이지?

곽영직 지음 / 북멘토 / 2021

 

이 책에 대해서 이 책의 제목보다 더 잘 설명하긴 어렵겠다.

 

과학 장르에 뛰어들기 위해 시동을 거는 중이다. 일단 물리부터. ~는 처음이지? 시리즈, 그리고 그와 유사한 제목들을 단 여러 귀요미 책들을 읽으면서 몸에 물을 묻혔다. 이제 슬슬 연습장과 연필을 손에 들어야 할 시점이 오는 것 같다. 과학 공부, 수학 공부는 결국 그렇게 귀결이 되는 게 아닐까?

 

 

 


145. Chaeg 2021. 4

()(월간지) 편집부 지음 / ()(잡지) / 2021

 

이 잡지에 대해 평을 남길 때마다 나는 전지윤 선생님 이야기를 한다. 대단하다. 매달 세 편 정도의 아동도서 리뷰를 싣고 계시는데, , 대단하다.

 

평범한 일상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것을 실감하며 돈을 바라보는 관점도, 또 돈을 버는 방식도 점점 변하고 있음을 직시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많은 돈을 갖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왜 그토록 많은 돈을 갖고 싶은 것입니까?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싶은 것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행복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_ Chaeg 2021. 4

 

 

 


146. 횡설수설하지 않고 핵심만 말하는 법

야마구치 다쿠로 지음 / 김슬기 옮김 / 유노북스 / 2021

 

원체 다변인 편에, 했던 말에 약간의 변주를 줘서 하고 또 하는 스타일이다. 친구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혓바닥의 진동수를 감쇄시키고 싶은 다른 입장도 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우리 과장님이 그랬으니까. 과장님은 늘 똑같은 말하기를 구사했는데도 회사 안에서는 그게 엄청 별로인 반면, 껍데기 집에서는 또 괜찮았다. 그러니까 이런 기술은 필요하다. 똑같은 사람이 모든 자리 모든 입장에서 한 가지 말하기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

 

물론 최악은 회사에서 껍데기집처럼 말하고, 껍데기집에서 회사처럼 말하는 사람이겠지만.

 

현재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지금까지 받아들인 모든 정보를 요약한 결과입니다. 어느 학교에 갈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디에 살지, 누구와 결혼할지, 무엇에 돈을 쓰고 투자할지, 어떤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길지 등 하나하나가 모두 요약이고 그것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당신의 인생입니다. 이 책을 손에 든 일도 빼놓을 수 없겠죠.

지금은 초정보화 사회입니다. 멍하니 있으면 맹렬하게 덤벼드는 정보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한순간에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래서 요약력은 시대가 갈수록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_ 야마구치 다쿠로, 횡설수설하지 않고 핵심만 말하는 법

 

 

 


147. 피에 젖은 땅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

 

리뷰도 썼겠다, 리뷰 후기까지 쓴 마당이다. 더 무슨 말을. 리뷰 대회의 여파(?)로 이 책에 대한 양질의 정보는 이제 널리고 널렸으니 더욱 편한 마음으로 입을 다물겠다. 하지만, 이 한 마디는 기필코 덧붙여야겠다.

 

글항아리 사랑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규 공무원 교육 때 기억이 나는군. 그때 syo가 이렇게 외쳤었다. “구청장님 사랑합니다.” 사랑이 때론 이렇게나 간편하고 간단하다.

 

 

 

--- 읽는 ---

아무튼, 장국영 / 오유정

노멀 피플 / 샐리 루니

200년 동안의 거짓말 /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안나 카레니나 2 / 레프 톨스토이

다른 방식으로 보기 / 존 버거

니체 / 정동호

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 박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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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01 13: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쓴다는 건 산다는 것인가 싼다는 것인가 ㅡsyo 오늘의 명언 담아갑니다. 제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글쓰기를 하고 계셔서 늘 쳐다보다가 고개가 아퐈요.
의미있는 리뷰였다고 syo님 다웠다고 생각해요 👍

syo 2021-05-01 17:25   좋아요 3 | URL
미미님이 하고 싶은 글쓰기가 어떤 건지 제가 짐작할 수는 없지만, 제가 하는 이런 거라면 말리고 싶습니다ㅎㅎㅎ
돈 안 되고 폼도 안 나요.
그리고 나만 할 거예요 ㅋㅋㅋ 😝

오구오구말씀 감사합니다^-^
미미님처럼 책 바깥에서도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독서를 할 줄 몰라서 저는 저같은 글을 썼습니다.

얄라알라 2021-05-01 14: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능하면 피해자 목소리는 흉내내지 않았으면..˝ 친구분의 예리함, 역시 syo님의 soulmate다우신데요^^

syo 2021-05-01 17:25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단박에 짚어내더라구요. ㅎ

새파랑 2021-05-01 14: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이 피땅 리뷰 1등에 유력하시겠지만, syo님이 꼽으신 3분이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syo 2021-05-01 17:27   좋아요 3 | URL
유력하지 않습니다. 무력합니다 ㅎㅎㅎㅎ
제가 꼽은 세 분은 곧 제가 꼽지 않은 서른 분이 되는 거라서 밝히기가 어렵지만....

레삭매냐 2021-05-01 14: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전하려다가 못 읽을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전 이 책을 통해 바실리 그로스만을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하는 것으로.

syo 2021-05-01 17:28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책 읽고 나니까 레삭매냐님이 쓰시던 바실리 그로스만 이야기들이 다시 보이더라구요.
도전하셨더라면 제 자리는 없었을 테니, 저는 매냐님의 그 포기를 탐욕 그득한 마음으로 지지합니다 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5-01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두 syo다운 리뷰였고. syo만이 쓸 수 있는 리뷰였다 생각함. syo는 재주 재능 이런거 생각 말고 그냥 써요. 그 어디에 닿을 거니까. 충분히 닿을 만하 니까^^

syo 2021-05-01 17:29   좋아요 2 | URL
읽기님이 오구오구 대장이세요. 오구오구 장인.

페넬로페 2021-05-01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리뷰를 읽을 때, 그 글을 보며 저도 syo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근데 syo님다운 글이었고.정말 좋았어요^^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쌓이면서 누가 상 받을지 갈피를 못잡겠어요~~
다들 너무 잘 쓰시더라고요^^

syo 2021-05-01 17:30   좋아요 4 | URL
그렇죠?
과연 누가 1위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뭔가 익명투표 같은 거 붙여놓으면 재밌겠더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1-05-01 16: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김초엽이 syo님 리뷰 안 뽑아줘서 손절했는데 글항아리가 일등 안 주면 (작년에 삼십만원어치 책 받아먹었지만) 손절할 거에요 ㅋㅋㅋ 뽑아주면…그 책들 얼른 읽고 리뷰 써드려야지…(아직 한 권도 안 읽은 거 실화임미다 ㅋㅋㅋ)

syo 2021-05-01 17:31   좋아요 4 | URL
안 돼요.... 글항아리는 손절하기에 너무 훌륭한 출판삽니다.
저는 저한테 안 줘도 너무 기쁜 마음으로 글항아리의 건승과 사세 확장을 기원할 거예요.

.....보고계신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5-01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과가 어떻든 당신은 제 마음 속 일등입니다..😘

syo 2021-05-01 17:31   좋아요 3 | URL
그럴 것 같았어. 독서괭님이라면! ㅋㅋㅋㅋㅋㅋㅋ 😁

북다이제스터 2021-05-01 16: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 대회가 있었군요. ㅎㅎ
요즘 이 책 리뷰가 왜 이렇게 많이 올라오는지 궁금했습니다.
NamGiKim 님의 오늘 리뷰를 읽어보면 이 책 리뷰가 출판사 의견과 달라 킬 당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말씀처럼 출판사 의도에 따라 작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

syo 2021-05-01 17:35   좋아요 4 | URL
무슨 일이 있었나보군요.

사실 저는 출판사 의도에 따라 작성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런 생각이 있었다 해도 출판사의 의도 같은 건 알 수가 없으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냥 제가 잘하는 짓을 한 거죠.
적립금 받겠다고 뛰어들어놓고 못받을 것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희한한 자기모순에 몸부림을, 아오 ㅋㅋㅋㅋ

stella.K 2021-05-01 16: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 대회에서 등위안에 들던 못 들던 상관없이 진실하게 썼다면
못해도 이달의 리뷰는 하지 않을까요? 스요님은 진실 아니면 안 쓰잖아요.ㅋ

<심신 단련>이 먼저 책 보다 더 좋은가요?
김구라가 이슬아 작가가 아무튼 출근에 나왔을 때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역시 요즘 작가는 옛날 작가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잘할 거라고 봐요. 사업이든 작가든.^^

syo 2021-05-01 17:36   좋아요 3 | URL
아니에요 스텔라님 ㅋㅋㅋㅋ 저 구라도 잘 쳐요.
그리고 굉장히 잘 친 + 무해한 구라는 평범한 진실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ㅎㅎ

<심신 단련>하고 <일간 이슬아 수필집>중 어느 게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건 그거대로 이건 이거대로 좋은 것 같아요.
한번 읽어보심도?

stella.K 2021-05-01 19:44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그럴 리가...
저는 진실이 아니면 쓰지 않으니 가끔 좋아요 부탁해요.ㅋㅋㅋㅋ


blanca 2021-05-01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왠지 1등 할 것 같은데....예감이..오, 그리고 그 세 사람도 궁금하네요. 뭐든 열심히 열정르 바쳐 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syo 2021-05-01 17:39   좋아요 3 | URL
1등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 사실 이 모든 게 다 ˝그래 1등까지는 차마 바라지 않겠어. 하지만 2등 정도 줄 수 없겠니....˝ 하는 개수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열심히 읽고 쓰셨겠고, 저도 그랬어요. 쓰는 동안 힘들고 이런저런 고민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 2021-05-01 1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사, 잡소리, 개똥철학 환영입니다. 어디까지 가긴요. 이만큼 오셨잖아요.
3번의 질문은 두고두고 곱씹어볼 주제네요. 아무리 텍스트가 말처럼 기능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생활에서 말에 지는 책임감처럼 생활처럼 된 가상의 공간에서 글에 들여야하는 책임감도 분명 필요하니까요.
공들여서 쓰신 만큼 저는 재밌게 읽었고 이 페이퍼도 기다렸습니다! 주말 즐거이 보내소서~

syo 2021-05-03 10:42   좋아요 1 | URL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고민하고, 고민하는 나를 고민하고, 고민하는 나를 고민하는 나를 고민하고,
막 그렇게 거듭하다 보면 내 글이 어딘가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바쁘지 마시기를.



바람돌이 2021-05-02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제 마음의 일등이십니다. 농담이 아니고요. 그냥하는 말도 아니구요. syo님 리뷰 읽고 제가 남편한테 ‘아 정말 세상에는 차원이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 있어.‘라고 했어요.
“음, 가능하면 피해자 목소리는 흉내 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해줬다는 친구분도 너무 멋지네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거의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끼리 끼리 만나더라구요.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 더 심해짐요.

syo 2021-05-03 10:46   좋아요 0 | URL
1등 시켜주는 속마음들이 많아서 syo는 신이 납니다 ㅎㅎㅎ
좋은 친구들 만나서 닮아가며 사는 것도 삶의 한 낙이잖아요. 좋은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네요. 뭐 저런 놈이랑 친구야- 하는 소리 안 듣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