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눈

 

 

1

 

낮에 잠깐 눈이 나렸는데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을 전했더니 그 사람이 말했다. 입술과 입술 사이의 거리가 이십 킬로미터라고. 말은 아름다움과 슬픔 사이 어디쯤 와서 꽂혔다. 잠시 가슴을 매만졌고, 밤이었고, 그사이 눈이 그쳤다.

 

 


2

 

마르크스라는 활자를 읽지 못한 기간이 이렇게까지 오래였던 경우는 처음인 듯하다. 더덕단 미션 도서는 1월 것도 읽지 못했는데 2월 지나 벌써 3월이다. 알라딘은 일주일에 한 번쯤 들어오는 것 같은데, 쓰지도 못하는 마당에 괜히 읽느라 기웃거리다보면 이런 스스로의 처지가 더 불쌍하게 여겨질까봐 일부러 발걸음을 안하는 중. 그래도 가끔 와서 읽보면 syo 하나 없어도 세상은 쌩쌩 잘만 돌아가고. , 역시 사람은 겸손해야지, 겸손 겸손.

 

 

 

3

 

읽지 않으니 쓰지 않는다. 쓰지 않으면 쓸 줄 모르게 되는데, 이런 퇴보의 과정을 지켜볼 때면 과연 글쓰기도 예술의 일종이긴 하구나 싶다. 손이 굳고 문장이 입안에서 손끝에서 텁석거릴 때, 수사가 경직되고 리듬이 불규칙할 때, 그럴 때 연마하고 담금질하기 위해 교범으로 마련해 둔 책들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잠시 멈췄다 가도, 뭐 괜찮을 것 같다.

 

 뇌를 후려치는 문장



심장을 간지럽히는 문장



 

서늘한 가운데 뜨거운 문장

 


뜨거운 가운데 서늘한 문장



 

찔린 자리조차 아름다워질 것 같은 문장



 

따라 에두르다 보면 어느새 가운데 와 있는 문장



 

그리고, 문장

 

 

 

4

 

읽고 싶은 것은 있고 읽고 싶지 않은 것이 없다.

잃고 싶은 것은 없고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재밌게도, 같은 이야기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5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03-05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닥칠 못 읽고 못 쓰는 날을 syo님 일상글 보며 간접 체험하는데...왜 이리 슬프죠. 난 아직 저 썸네일 속 예쁜 문장 한 줄도 못 읽었는데. 예쁜 문장 비슷한 거 가질 날 한참 멀었는데. 잠시 잠깐 줄어든 없어진 거리라도 위안이 되길 빕니다.

syo 2020-03-07 23:08   좋아요 1 | URL
늘 응원해주시는 반님ㅠㅠ 덕분에 힘 많이 난답니다.
게다가 저 ‘호기‘라는 애는 볼수록 귀여워서 몇 배 더 힘이 납니다.

- 2020-03-05 0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님 글 보고 싶당 ㅠㅡㅠ 코로나 아웃

반유행열반인 2020-03-05 09:17   좋아요 2 | URL
2222아웃아웃ㅠㅠ

syo 2020-03-07 23:08   좋아요 1 | URL
코로나가 끝나면 그간 미뤄놨던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일순간 더 바빠질 듯.... 으으아아아

2020-03-05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7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20-03-0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멈췄다 가도, 뭐 괜찮을 것 같다...
그래도 빨리 돌아오시면 좋겠네요~

syo 2020-03-07 23:10   좋아요 0 | URL
저도 빨리 돌아오고 싶어요.....
더덕단 활동도 열심히 하고 싶다.....
아무것도 못해서 요즘은 좀 민망해요 ㅋㅋㅋㅋ
댓글저장
 

 

쌀국수 먹다가 들은 장면에다가 MSG치기

 

빛은 직진한다고 배웠는데 그녀의 볼 위를 달려 나가는 빛이 예쁘고 보드라운 곡선을 그리는 것을 그는 분명히 보았고, 그래서 바로 지금 어떤 말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녀의 눈꺼풀이 깜빡거리는 횟수에 주파수를 맞춘 말로 그녀를 세게 흔들어야 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을 그는 하였지만, 말은 마음속에서나 깜빡 빛나는 말이었지 겨우 입밖으로 꺼내어 놓은 것은 무슨 암흑물질 같은 소리 덩어리였을 뿐이고, 그도 그녀도 봄도 모두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노곤한 오후의 노천강당에서 누군가의 베이스 기타는 둥둥두둥둥 튜닝되는 중이었는데, 반면 그는 전혀 튜닝되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의 표정이나 더듬대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덥썩 손이나 잡았으나, 그 순간이 온갖 오묘한 감정으로 물들며 직진할 어떤 긴 역사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땐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고, 그는 하나의 곡률처럼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그저 잡은 손에 힘이나 주고 있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던 봄도 답답하여 고개를 돌리고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간 것이려나, 어쩐지 금방 여름이 찾아와 도시를 걷던 두 사람의 잡은 손에는 늘 땀이 가득했던 기억.

 


갑자기 Q가 자신의 주머니에 내 손을 집어넣었다주머니 속에는 오래된 해피밀 장난감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Q는 그중 이빨이 많은 파란색 괴물의 피규어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나는 Q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다. Q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주 소중한 물건이었어너무 소중하게 여겨서 아무도 가져갈 수 없게 깊이 묻어버렸어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어디 묻었는지그게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아.

박상영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우리의 일상적 삶에는 우연이 빗발치듯 쏟아지는데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소위 우연의 일치라고 부르는사람과 사건 간의 우연한 만남들이 일어난다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는 순간 토마시가 술집에 등장하는 것처럼이러한 엄청나게 많은 우연의 일치를 우리는 대개 완전히 무심결에 지나쳐 버린다토마시 대신 동네 푸줏간 주인이 테이블에 앉았다면 테레자는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는 것에 주목하지 못했을 것이다.(베토벤과 푸줏간 주인의 만남 역시 기묘한 우연이 일치지만.) 그러나 막 싹트는 사랑은 그녀의 미적 감각의 날을 날카롭게 세웠다그녀는 그 음악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매번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감격할 것이다그 순간 그녀 주변에서 일어날 모든 일들은 그 음악의 찬란한 빛에 물들어 아름다울 것이다.

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공원에 떨어져 있던 사랑의 시체를

 나뭇가지로 밀었는데 너무 가벼웠다

황인찬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 부분

 

 

--- 읽은 ---


30.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 245 ~ 391

: 연수원 마지막 날, 무려 2급이라는 어마어마한 고위 공무원 한 분이 등장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다가 몇 권의 책을 추천하였는데 그 중 한 권이 이 책이었다. 강의를 듣던 아이들은 핸드폰을 꺼내 이 프로젝터에 박힌 이 책의 사진을 찍어댔다. 나중에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었겠다. 그중 몇이나 이 책을 읽었을까. 읽은 사람들은, 좋아했을까?

: 도시나 건축에 관한 책들은 은근히 괜찮다. 뜻밖에 이 장르는 초심자에게도 어필하는 기묘한 매력이 있다. 아무래도 책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은 있어도 도시나 건축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려나. 이 장르의 많고 많은 좋은 책들 가운데, 이 책은 군계일학까지는 아니다.

 


31. 노년 예술 수업 / 고영직, 안태호 : ~ 272

: 쓰려고 앉아보니, 읽은 지 일주일쯤 된 책이라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syo의 각박한 인생? 비관심자에게 어필할 만한 한 방이 없는 책이라는 뜻? 아니면, 그 두 가지 다일까?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03-01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쌀국수 저도 좋아하는데. 인용 위에 두 책은 나도 읽었는데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요?
평안한 밤 보내세요.

syo 2020-03-04 23:21   좋아요 1 | URL
열반인님, 프로필 이미지는 볼수록 귀엽네요.
공부 잘하고 책도 많이 읽게 생겼어요.
딱이네요 딱.

2020-03-01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4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0-03-03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인찬 처음인데 와 읽어볼까 싶은 마음 들었어요.

syo 2020-03-04 23:22   좋아요 0 | URL
황인찬 좋아요. 전 너무 좋았어요 ㅎㅎ

Comandante 2020-03-0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시에서 2급이면 어떤 보직을 받는지 궁금하군요. 고공단 나급 정도란 이야긴데.. 지자체는 위인설관이 심해서 사무관 이상들도 너무 많은것 같기도 하고..

syo 2020-03-04 23:25   좋아요 0 | URL
어차피 오를 나무도 아니어서 신경을 안 썼더니 기억이 안나네요 ㅎㅎ
저한테는 그 분이나 Comandante님이나 어차피 다 남의 일, 다른 세상 이야기 같은 느낌입니다..
댓글저장
 

 

존보고

 

 

1

 

코로나19와 임용 동기 비슷한 관계가 되면서, 공무원 생활의 첫 단추를 기이한 모양새로 채우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경로당 휴관한다는 내용을 평생의 첫 공문으로 기안한 것이 벌써 3주 전, 어느덧 syo는 쩜오에서 쩜칠이나 쩜팔이는 된 느낌이다. 과장님이 물어 보실 때마다 찾아보겠습니다- 라는 대답을 눈물과 함께 남기며 돌아나가는 경우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천성이 을이다 보니 전화받기는 여전히 어렵고 수화기 너머 보이지 않는 민원인을 향해 연방 굽신거리는 굽syo. 그는 전화를 받고 나면 허리가 아프다.

 

 

 

2

 

알라딘에서 비벼대며 익혔던 것이 글솜씨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안하는 족족 빨간펜이다. 깨어있는 18시간 가운데 14~15시간 정도를 회사와 회사를 오가는 길 위에서 보내는 요즘이다 보니, 좋은 글에 대한 감각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2월 한달 정도는 독서와 글쓰기를 포기하고 일 배우는 데만 집중하고 살아야겠다 다짐했었는데, 아무래도 3월도 그런 식으로 소비해야 할 듯. 공무원이 되기 위해 외워야 할 것들이 많았던 것처럼, 훌륭한 공무원이 되기 위해 외워야 할 것도 잔뜩이다. 우선 관내 121개 경로당의 이름과 주소지부터 싹 외워버릴까…….

 



루피누스는 쓰디쓴 어조로 이렇게 고백했다. “이 판국에 글을 쓸 정신이 있겠는가주위는 온통 무장한 적들이고보이는 건 그저 황폐해진 도시와 들판뿐인데.”

카를로 M. 치폴라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법칙

 

 

 

3

 

같이 사는 남자는 위생 감각이 떡이다. 이 사태가 나도록 마스크 쓰고 출퇴근하는 꼴을 본 적이 한 번 없고, 퇴근하고 돌아와도 손을 씻지 않는다. 씻으라고 하면 어어- 맞다- 이러고 있다……. 정말 재미있는 게, 이놈은 내가 아는바 세상에서 제일 착한 인간으로서, 25년을 친구로 지내면서 입에서 욕 한번 나오는 걸 본 일이 없을 정도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자기가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 같은 건 품을 줄도 모르는 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얘가 무해한 인간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놈이 아무 생각이 없는 바람에 옆에 있는 친구들이 피해를 입은 경험이 결코 적지 않다. 일이 터지고 친구들이 불만을 토로하면, 미안- 몰랐지- 어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따위의 반응을 보이는데 그것도 그때뿐, 우리는 여전히 무심함과 무식함이 반반 섞인 듯한 이놈의 행태에 이래저래 데미지를 받고 있다. 기가막힌 건, 본인은 전혀 다치지 않는다는 것.



언니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최은영손길


 

 

4

 

바지를 다리다가 손목을 다렸다. 바지도 펴지지 않았고 손목도 펴지지 않았다. 괜히 손목만 따끔할 뿐이다. 혹시 바지도 따끔할까? 아린 손목을 쥐고 바지의 심정을 상상하게 된다. 일찍 퇴근하면 별 일이 다 벌어진다.

 

 

 

5


책은 하나도 읽지 못하는 중이다. 이 아래쪽에 읽었다고 표시한 책들도 실은 읽은 지 일주일은 지난 것들이라, 한줄평을 쓰려는데 한줄도 평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큰일이다. 그래도 일단 찌끄려야 한다. 이것은 자기와의 싸움이고, 그 싸움에서 syo는 늘 졌지만, 그렇다고 대패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진득하게 책 읽고, 글 쓰고 싶다.



인간은 자기 환상의 노예이다그는 항상 자기 안에 그리고 자기 뒤에 유령을 데리고 산다때때로 그는 그의 앞에서도 유령을 본다술에 취해 있거나눈이 눈의 역할을 하기를 포기했을 때에 말이다.

김현사라짐맺힘


 

--- 읽은 ---


27. 시민과 함께 만드는 서울 / 서울연구원 : 174 ~ 289

: 서울 시민으로 잠깐 살아 본 바, 개인적인 경험을 반추해보면 시민이 서울을 만든다기보다는 서울이 시민을 만드는 쪽에 가까웠다. 큰 도시는 그런 맛이 있고, 큰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관계를 넉넉히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이 책 속에 만들어진 서울을, 나하고 같이 만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서울이 나를 또 만들긴 할 것이다.



 

28. 최고의 인재는 무엇이 다른가 / 박봉수 : 175 ~ 294

: 뭣이 다른데.

 



29. 보고서의 신 / 박경수 : 132 ~ 271

: 뭣이 신인데.

 

 

--- 읽는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 96 ~ 245

엑셀 2016 바이블 / 최준선 : ~ 176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6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2-24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1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2-24 2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응원합니다. 으랏차~~^^

syo 2020-03-01 21:57   좋아요 1 | URL
또 한 주가 갔네요. 북다님, 건강 조심하세요!

다락방 2020-02-24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님.. 저는 직장생활 20년 했지만 아직도 품의서 쓰는 게 넘 어려워서 기존에 썼던 거 찾아 베껴와요.....책읽고 글쓰는 거랑 달라요, 그건.....

syo 2020-03-01 21:5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저도 그럽니다..... 새로 뭘 쓰겠어요. 이미 결재까지 다 받은 모범 답안이 떡하니 있는데...

비연 2020-02-24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목...;;; 바지는 모를거에요, 손목의 따끔함을..ㅠㅠ 조심하삼~

syo 2020-03-01 21:58   좋아요 0 | URL
흉터가 생겼어요. 다리미로 지져진 흉터는 뜻밖에 평생가던데.
비연님, 건강 조심하세요!

페넬로페 2020-02-25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에 대한 감각자체가 아직 살아있어요~~
그러니 걱정마세요, syo님!
이 시국에 힘드신 공무원을 응원합니다^^

syo 2020-03-01 21:59   좋아요 1 | URL
모두들 힘든 시간이네요.
페넬로페님도 건강에 유의하시고, 이 힘든 국면을 무사하게 헤쳐나가자구요!

반유행열반인 2020-02-25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고가 많으셔요. 일 바쁘고 사람도 많이 대할 텐데 아프지 말고 건강히 잘 지내시길 빕니다.

syo 2020-03-01 21:59   좋아요 1 | URL
저는 튼튼까지는 아니지만 건강합니다 ㅎㅎㅎ
반님도 건강, 반님의 가정에도 건강, 아무쪼록 건강입니다!

단발머리 2020-02-2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쓰십니다, 쇼님~~~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바쁘시네요.
얼른 시간이 지나가, 과장님이 물어보시면 찾아보겠습니다~ 할 때가 있었지, 그런 시절 왔으면 좋겠네요. 화이팅!! 두고 갑니다^^

syo 2020-03-01 22:00   좋아요 2 | URL
어, 여기 화이팅이 있네?
두고 가신 거 늦게나마 잘 주웠습니다! ㅎㅎ

stella.K 2020-02-25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생존보고로군요.ㅠ
근데 양복 입고 다니시나요?
쫌 딴 얘기긴한데, 요즘엔 다리는 옷 잘 없는 것 같던데. 있더라도 귀찮아서 안 사 입구요.
저는 뭐 옷을 잘 사지도 않지만 다리는 옷은 아무리 맘에 들어도 눈물을 머금고 안 삽니다.
진짜 다리미질 못하겠더군요.ㅠ
스요님 친구 얘기하니까 저 최영은 소설 읽어보고 싶네요.ㅎㅎ

syo 2020-03-01 22:01   좋아요 1 | URL
풀정장은 당연히 아닌데요.
그래도 세탁하고나면 어쩐지 꾸글꾸글해서 다리고 싶어지잖아요?
근데 다렸더니 옷감만 ㅂ버리고 손목이나 데고......

스텔라님, 건강 조심하세요 ㅎ

- 2020-03-01 2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고서의 신... 엑셀바이블... ... 🥺🥺🥺

고양이라디오 2020-03-02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엑셀 바이블 저 책 좋나요? 전 엑셀 문외한이라ㅎ

새로운 생활 적응 잘하시길^^

syo 2020-03-07 23:07   좋아요 1 | URL
좋은지 아닌지도 모르겠네요 ㅎㅎㅎ 저도 엑셀 거의 문외한급이라.
고라님도 건강 조심하시구요!

가넷 2020-03-05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금 여유 있을때면 남들 공문 생산한거 보고 괜찮은 것들은 참고하기는 한답니다. 공부한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심심풀이로 찾아본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영 못쓰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도움이 되네요.

syo 2020-03-07 23:07   좋아요 0 | URL
공문쪽 글쓰기도 잘하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어쩐지 하나가 늘면 하나가 후져지는 느낌이라 어렵네요.
저도 열심히 들여다보고는 있는데....
댓글저장
 

 

당신의 현재속도

 

 

1

 

은 카레를 만들고 있었다. 등 뒤에서 syo는 컴퓨터를 뒤적거리며 아무말을 찌끄리고 있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다큐가 있거든? 그거 우동으로 만나는 일본이던가 하는 편을 받아놨는데, 볼 시간이 없어. 듣는지 마는지 그저 카레에 전념하는 이었지만, 어차피 들으라고 하는 말도 아니었으므로 syo는 생각나는 말을 생각나는 대로 꾸준히 이어나갔다. 카레가 대충 다 될 즈음, 전자레인지로 밥을 데우고 반찬을 접시에 담아 내놓았다. 잠시 기다리자 이 카레가 든 웍을 테이블 가운데 냄비받침 위에 내려놓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 그럼 이제 보자. ? syo가 되묻자, 묻긴 뭘 묻느냐는 표정으로 그는 말했다. 걸어서 우동 속으로.

 

은 젓가락으로 멸치를 집어 입에 넣었다.

 

 

 

2

 

일은 쉽지 않다. 전임자가 있는 일도 있고 없는 일도 있어서, 어떤 일은 정말 바닥에 배를 깔고 헤엄치는 심정으로 해나가고 있다. 앞으로 나가질 않어. 115일까지 처리가 되었어야 하는 어떤 일의 독촉전화를 syo가 받고 있다. 나는 23일에야 첫 출근을 했는데! 이 일은 아무래도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모양이고, 입사 이후 최초의 큰 털림이 발생한다면 그건 아마 이 지점에서 시작될 것 같다. 빅털림 비긴즈.



자신 있게 즐겁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라도 꼬박꼬박 해나가는 것이 완성된 사람이 되어가는 길 아닐까게다가 나같이 소심하고 게으른 사람은 조금 불합리하고조금 지겹고조금 답답하더라도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회사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응준그놈의 소속감

 

 

 

3

 

여전히 정신이 없고, 종일 일해도 돌아와 헤아려 보면 정말 한 일이 없다 싶은 느낌도 변함없지만, 그럼에도 일솜씨가 조금씩 느는 중이라는 자각이 있다. 기분 좋은 일이다.

 

 


4

 

지난주는 대충 먹었더니 체중이 꽤 줄었다. 신나서 많이 먹었더니 이번 주는 체중이 꽤 늘었다. 업무에 지친 공무원이 50분을 걷고 타고 돌아올 곳이 있듯이, 체중새끼도 언제나 돌아올 곳이 정해져 있는 듯하다.

 

배를 집어넣어야 한다.

 

 

 

5

 

집에 턱걸이 기구가 도착했다. 거금 20만 원을 쏟아부었고, 조립하는 데도 60분을 투자했다. 작은 방에 넣어놓고 우리는 매달리기 시작했다. 은 이내 포기했지만 syo는 끈질겼다. 끈질기게 매달렸다. 질척거리는 남자가 되었다. 광배가 좀 뻑적지근하더니만 한 주 만에 턱걸이 한 개가 늘었다. 세 개까지는 거뜬하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6



세상이 커다란 속도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이미 패배에 친숙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열심히 달려나갔는데 그 속도가 얼추 비슷해서 스물다섯에는 이걸 하고 스물여덟에는 저걸 하고 늦어도 서른셋까지는 그걸 하고 뭐 그런 식이었다. 너무 비슷해서 그 속도를 사회의 속도라고 불러도 나쁘지 않을 정도였다. 자기 보폭이 세상의 보폭과 비슷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고, 머무름 없이 내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그들이 볼 때는 내가 뒤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천천히 가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가라는 표지판이 생겼다. 속도를 제한하는 법을 모르거나 그럴 의지가 없기 때문에 제한 속도가 생겨났다. 앞으로 나아간다고 나아가도 늘 뒤로만 배달되는 사람들에게 제한 속도란 건 영문을 알 수 없는 물건이다. 나는 이제 안다. 나에겐 나만의 속도가 없다는 걸. 느리지만 나에겐 나만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에는, 그런 생각이 속도의 크기에 대한 미련은 버렸지만 속도의 존재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모른 척했다. 나는 이제 안다. 나에겐 도달해야 할 곳 같은 게 없다는 것을. 자기만의 속도로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은 멋지지만, 사실 우리에겐 대부분 정해진 도착지 같은 건 없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된 장소가 빡센 고행터가 아니라 적막한 보리수 아래였듯이, 우리도 달리기를 멈춘 어느 날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저 알게 된다. 여기구나. 달리지 않는 사람은 늘 안다. 여기라는 걸.

 

마음속에, 너는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말이 들릴 때마다 꺾어서 쌓아 놓은 공터가 있었다. 그런 말들은 힘이 세서 꺾어도 꺾어도 완전히 꺾이지 않고 바람이 불 때면 내 안을 흔들며 쇳소리를 내질렀다. 그럴 때면 한동안 어지러웠다. 자석이 닿으면 한 방향으로 늘어서는 쇳가루처럼, 마음이 고집스레 한 방향으로 정렬되었다. 자력의 손아귀로부터 다시 놓여나기까지 적지 않은 무게의 질투와 방황과 좌절을 굴려대야 했다. 그래서 그 공터에 꺾어 놓은 말들을 불태워버리기로 했다. 그게 연말이었다. 젖은 말들은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오래 버텼지만, 결국은 숯이 되었다. 재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서 또 어떤 바람을 만나고 또 어떤 열을 만나면 발갛게 달아올라 내 오랜 낮 오랜 밤을 태워 먹을지도 모르겠다. 늘 조심해야지.

 

그래도 오늘 밤은 조용하고, 창밖엔 얇은 비가 내린다.

 


어릴 때 "해봐해봐실수해도 좋아넌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하는 <영심이만화 주제가를 듣고 무서워했다어른 돼서 실수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어른 되기가 진짜 싫었다어리다고 이해해주고 들어준다 해도 결국 모든 것은 본인 삶의 이력으로 남는다몇 살이든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다같은 나이대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주목해봤자 의미 없는 비교다이런 비교는 힘들고 자존감 떨어진 날에 두 시간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매일 새로운 것을 느끼고 깨닫고 자신의 정체성 취향 생각 들을 더 섬세하게 다듬을 수도 있다이러기에도 삶이 아깝다.

서한겸여자와 소인배가 논어를 읽는다고

 

그는 눈에 보이지도손에 잡히지도 않고 다만 자신을 관통해가는 시간을 주시하듯 숨죽인 겨울밤의 풍경을 오래 내다보았다.

김혜진9번의 일

 

 도시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다들 어디론가 멀리 가버렸어

 

 풀이 허리까지 올라온 공원

 아이들이 있었던 세상

 

 세상은 이제 영원히 조용하고 텅 빈 것이다

 앞으로는 이 고독을 견뎌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긴 터널을 지나 낡은 유원지를 빠져나오면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황인찬부곡」 부분 


 

--- 읽은 ---



26.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법칙 / 카를로 M. 치폴라 : ~ 127

: 정교한 사실을 바탕으로 직조된 하나의 거대한 농담이 담고 있는 진리값이 가볍지 않다. 완벽한 농담이란 때로 너무 농담 같지 않아서 도리어 웃음이 나지 않기도 한다.

 

 

--- 읽는 ---

최고의 인재는 무엇이 다른가 / 박봉수 : ~ 175

시민과 함께 만드는 서울 / 서울연구원 : ~ 174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 ~ 96

보고서의 신 / 박경수 : ~ 132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리즘메이커 2020-02-16 06: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회인이 되신 syo님의 찰진 글맛...입대 3주 남긴 예비군인은 논산에서 실컷 그 맛깔스러움을 그리워하겠습니다..

syo 2020-02-18 21:00   좋아요 1 | URL
프메님 군대가시는군요.
1개월 코스일까요? 어찌됐든 논산은 애증의 땅이지요.
화이팅 하시구요.
전투화 꽉 묶어야 발 뒤꿈치 안 까집니다. 최악이에요. 그거.

2020-02-16 0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8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2-16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는 도서 목록 보니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요. 읽고 싶은 책이 목록에 포함되는 날도 곧 오길 진심 빕니다. 오래타는 숯 곁불 쬐는 누군가를 한참 따뜻하게 만들 수 있잖아요. 힘내세요.

syo 2020-02-18 21:01   좋아요 1 | URL
딴 이야기지만 저 안경 쓴 녹색머리 소녀 볼수록 귀엽습니다.
한 마리 키우고 싶네요 ㅎㅎ

blanca 2020-02-16 0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입사원 때 매일 내가 충격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시간들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ㅋㅋ syo님은 바로 적응하실 것 같다는. 여전히 바쁜 와중에도 읽고 쓰고 일하는 모습에 화이팅을 보냅니다.

syo 2020-02-18 21:02   좋아요 0 | URL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이지만 막상 끝나고 나면 해놓은 거 하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ㅠㅠ
저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라는 말씀은 힘이되네요.
blanca님 감사합니다^-^

stella.K 2020-02-16 14: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요님 이제 보니 사진도 잘 찍는구만요.
영국이나 프랑스의 어느 길인 줄 알았는데 표지판 보고 그만...ㅋ
이날 따라 꾸리꾸리한 날씨가 받혀 줬네요.

그래도 아직 겨울이라고 오늘은 눈구경도 다 하네요.
어제만 해도 분명 봄이었는데...^^

syo 2020-02-18 21:0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그냥 출근길에 띡 찍은거예요.
˝당신의 현재속도˝ 이건 어쩐지 꼭 찍고 싶더라구요.

눈도 내리고 코로나도 진동하고 하여간 세상이 흉흉합니다.
건강조심하세요 스텔라님!

다락방 2020-02-17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채는 버터에 볶았습니까?

syo 2020-02-18 21:04   좋아요 0 | URL
아니요.....
그렇지 않아도 먹고 나서 레시피 뒤지더니
아 야채를 버터에 볶았어야 했는데- 라고 하더라구요.

허허.

그나저나 카레황제 다락방님답다. 한 번에 본질을 꿰뚫어보시네..

북극곰 2020-02-18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글은 읽었는데,
간만에 서재에 와서 이제서야 직장인이 되신 줄을 알았습니다. ㅎ
게다가 저는 강동구민이고요. 올림픽 공원 맞은 편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왠지 모를 반가움에 안 달던 댓글을 다 달고 갑니다. 지연이란 이리도 끌리는 것이었군요.하하.
응원합니다. 흐.

syo 2020-02-18 21:0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언제나 구민 여러분의 곁에서 힘이 되는 공무원 s..... ㅎㅎㅎㅎㅎ

가까운데 북극곰님이 계셨군요.
응원 말씀 받고, 구민여러분의 복지와 안전을 위해 힘쓰는..... ㅋㅋㅋㅋ

han22598 2020-02-21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삶의 속도에 대한 성찰.................감동적이네요. ㅠㅠ
다들 사냥개 마냥 미췬듯이 삶의 일구어 가는 마당에 느려터져.....질척이는 저의 삶에...위안이 되는 글이었어요 :)

syo 2020-02-24 22:32   좋아요 0 | URL
han22598님 반갑습니다.
점점 더 정신없어지는 요즘이지요? 자기 삶 챙겨가면서 살고 싶어요. han님도 그러실 수 있으시기를.
댓글저장
 

 

 

살아는 드릴게

 

 

1

 

1930. 2120. 1830. 2230. 2345. 2250.

 

첫날부터 오늘까지 여섯 번의 퇴근 기록이다.

 

오후 630분은 지난 수요일인데, 우리 구는 수요일은 패밀리데이라고 하여 야근을 해도 초과근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가라는 말이다. 그래서 갔던 것이다.

 

공무원의 삶이란 뜻밖에 만만치가 않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구청 근처에 집을 얻을 걸 후회하고 있다. 2250분에 구청에서 나와도 전철 타이밍만 맞으면 성남에 2320분에 도착할 수가 있다. 내리면 집까지 오르막 등반 20분이 기다린다. 벗고 씻으면 딱 0시다. 바로 자도 여섯 시간이 땡이다. 이런 마당이라 책을 읽을 여유가 없고 글을 쓸 여유는 더더욱 없다. 한 달만 읽고 쓰기를 포기하자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오늘 저녁에 고기를 사주시며 과장님이 그러셨다. 너처럼 똑똑한 애는 한 세 달만 고생하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일 거라고. 과연 syo가 똑똑한 인간이었나 하는 부분은 차치하고, 똑똑한 인간조차 세 달은 울어야 사람이 된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공무원 나라…….

 

 

 

2

 

오늘 2250분에 컴퓨터를 끄면서 맞은편에서 야근하시는 주임님께 말했다. 주임님, 저 이제 집에가자마자 눈 감고 눈 뜨고 출근하려고요. 그러자 주임님이 말씀하셨다. syo, 그럴 땐 저 잠깐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하는 거야.

 

 

 

3

 

밤이 어둑해도 오르막은 아름답다. 보름달은 바로 머리 위에서 둥글고 크다. 천천히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체온도 오르고, 숨소리가 거세지면 나도 거센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이 오르막은 언제나 오르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퇴근이 누군가의 퇴근과 맞물려 가파르고 긴 언덕을 오르는 적막. 달빛에 버무려지면 무엇이나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다. 골목은 좁아 그윽하고, 향기 없는 밤 향기가 상쾌하다. 늦은 퇴근길의 작은 기쁨이다.

 

 

 

4

 

 

네 안에서 내가 발견한 것이 불이 아니라고 말해볼래? 우리가 그것을 다룰 줄 알게 되면서 짐승과 다른 방향으로 비로소 한 발 내디딜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해볼래? 내가 만지지 않은 것들이 아직 많이 있다면 끝내 그것을 감추어 갈무리해 둘 수 있다고 억지로 믿을래? 충분히 어리석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어리석게도 충분하다 착각하며 오해하며 서로를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며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향해 몸통 박치기를 날리는 그림은 남의 이야기라고 외면해볼래?

 

 

 

--- 읽은 ---

 

23.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 / 마즈다 아들리 : 242 ~ 399

: 나는 언제나 도시가 좋았다. 작은 도시보다 큰 도시가 좋았다. 큰 도시는 비싸고 번잡했는데 비싼것도 번잡한 것도 싫어하던 내가 큰 도시는 그래도 좋았다. 어디서나 어느 정도는 외로웠기에 기왕이면 도시의 시끌벅적한 외로움을 골랐다. 도시에 살고자 했던 나는 그렇게 도시에 살았다. 나는 도시를 바꿀 만큼 큰 사람이 아니었지만 도시는 나를 바꾸지 못할 만큼 작은 구조물이 아니었다. 나는 도시에 살며 도시처럼 먹고 도시답게 걷고 도시스럽게 생각하며 도시롭게 사랑했다. 그런 삶은 충만과 결락을 동시에 지닌다. 번잡한 외로움이나 외로운 번잡함. 소란스러운 정적이나 정적 속의 소란. 그런 것들이 도시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어떤 모양으로 빚어내는가.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

 

 

 

24. 세계사 아는 척하기 / 후쿠다 토모히로: 123 ~ 251

: 척하지 말자, 이제. 그냥 알지.

 

 

 

25. 정한 기억 / 유성호 : 159 ~ 291

: ’비평가가 이렇게 재미있게 울림 깊게 쓰면 안 되는 거잖아!‘ 라는 김종광 소설가의 평이 앞표지에 박혀 있다. 으음, 그렇단 말입니까…….

 

 

 

--- 갖춘 ---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 정희진

들뢰즈 개념어 사전 / 아르노 빌라니 외

들뢰즈 사상의 분화 / 소운서원 엮음

회사에서 바로 통하는 실무 엑셀 + 파워포인트 + 워드&한글 / 전미진 외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7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2-11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1 0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1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2-11 06: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쇼님! 세달씩이나 고생해야 한다니 너무 안타깝지만,
쇼님 직장인 되어 쓴 글 왜 더 재밌어요?
피곤한 육체를 이끌고 글 쓰는 사람에게 더 재미있는 글 쓴다고 해서 미안..

syo 2020-02-11 07:1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일 배우느라 그래요. 정신없지만 하루하루 성장중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2-11 0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주52시간에서 초과 6시간 일하셔서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셨습니다. ㅠㅠ
우리나라 공무원이 법을 준수하셔야죠. ㅎㅎ

syo 2020-02-11 07:14   좋아요 1 | URL
아... 북다님의 댓글을 보고 나니 앞으로 이런 글은 쓰면 안되겠규나, 잘못히면 큰일 치르겠구나 싶네요....

han22598 2020-02-11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책을 손에서 놓치 않은 모습 부럽습니다. 삶이 모양이 변해도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저도 진작 깨달았어야 했는디 ㅎㅎ

syo 2020-02-16 00:56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손에서 놓았어요....
2월은 그냥 손에서 책을 놓자, 으하하허허허으어어으으앙-_ㅜ 뭐 이런 결심을 했더랬지요....

반유행열반인 2020-02-11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무플방지위원회상근직 실직 위기에 있다 기쁘게 글 맞이합니다ㅎㅎㅎ. 직장에서 똑똑이 취급 받고 계시군요. 그럴 줄 알았다! ㅋㅋㅋ 찾아낸 불 안 꺼뜨리고 삶에 지지 않고 행복한 미래 향해 꿋꿋 나아가시길 빕니다. 원껏 못 읽고 못 쓰는 날도 얼른 벗어날 수 있길 빌구요ㅠㅠ 남일 같지가 않아서...요즘 미친놈처럼 읽고는 있습니다만...syo님 전성기의 발가락 만큼도 안 되네요.

syo 2020-02-16 00:55   좋아요 1 | URL
든든한 반님이 계셔서 syo는 일주일에 한 번 겨우 알라딘에 방문하면서도 마음이 놓입니다.
제가 예언했지요? 반님은 곧 알라딘 핵인싸가 되실 거라고.
요즘 보니까, 머지 않은 것 같아 보여요!
사람들은 이제 곧 syo 같은 건 잊고 반유행열반인의 이름을 연호하겠지요.....

반유행열반인 2020-02-16 07:46   좋아요 0 | URL
저 실업자 만들지 말아주세요 ㅎㅎㅎ syo님이 있어야 훨씬훨씬 더 재미있는 알라딘이지요. 얼른 적응하셔서 주1회라도...(굽신굽신)

2020-02-11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6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2-1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근 시간 너무 늦네요ㅠㅠ 우리나라 공무원들, 다시 봤어요. 애쓰네요, 진짜!
얼른 3개월 지나 syo님의 긴 리뷰 읽었으면 좋겠네요. 근데, 이 리뷰는 이 리뷰대로 재미나요.
소리가 거세지면 나도 거센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이런 부분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20-02-16 00:53   좋아요 0 | URL
저 하나 바쁘다고 없어져도 알라딘 마을은 잘 돌아가겠지요?-_ㅜ
안심되면서도 섭섭하다....

2020-02-11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6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20-02-1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 직장인 되기 분투기.. 사실 넘 재밌습니다.. 본인은 고생인데 말이죠.
곧, 일이 능숙해져서 일찍 집에 와 글을 쓰는 쇼님을 볼 수 있길~

syo 2020-02-16 00:52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들어오는 일 자체가 닷새에 한 번 꼴로 이루어지네요.....
비연님의 말씀하시는 syo는 아직 요원한 먼 미래의 인류 같습니다....

2020-02-11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6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2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6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