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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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뭔가 하나가 끝났으니 얼른 또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하는데, 나라는 인간은 참 뻔뻔스럽기도 하지, 뭐 거대한 업적 이뤘다고 이만하면 좀 놀아도 되잖아- 자기 자신에게 아주 성은이 하해와 같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마치 그까짓 공무원 시험 뭐 별 것도 아니잖아-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은 게, 아, 나라는 인간은 참 잘기조차 하지, 30분당 한 번꼴로 합격예측 시스템을 방문해 내 등수가 현재 몇 등인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소리 없이 웃고 앉았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봐야 뭐 달라질 일도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냥 내 등수가 너무 예뻐서...... 나라는 놈이 뭐라도 의미 있는 성과를 챙겨 본 것이 민증 나오고 거의 처음이라서...... 더흑(폭풍눙물)
누군가에게는 작고 시시한 일일 수도 있지만 또 어느 누군가에겐 세상 벅찬 기쁨이 될 수도 있는 뭔가를 얼떨결에 손에 쥐고,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생각중이다. 어쨌든 나한테 좋은 일인 건 사실이다.


양치기 개 관리자와 018번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018번이 개에게 덤벼들기 때문이다. 양치기 개 관리자는 018번을 도축하자고 말한다.
"이런 양의 유전자가 후대로 전해지면 양 떼에 문제가 발생할 거예요."
방목장 안에서 018번이 내게 다가온다. 나는 018번에게 속삭인다.
"이렇게 계속 시간을 끌자."
_ 악셀 린덴,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
아름답고 풍성하게 보이는 숲의 나무들은 모두 싸움의 승리자들이다. 사실 나무 그늘에는 싸움에 패해 사라지고, 햇볓이 들지 않아 시들어버린 식물이 수도 없이 많다. 조용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에도 싸우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_ 이나가키 히데히로, 『싸우는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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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이야기를 하는 꼴이긴 한데,
작년까지는 지방직과 서울시 시험날짜가 달랐고, 서울시는 응시자의 주거지 제한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방직에 응시하는 수험생들은 서울시에도 응시할 수 있었다. 그 말은, 같은 급수에서 서울 거주자는 두 번(국가직, 서울시), 다른 지역 거주자는 세 번(국가직, 서울시, 지방직) 시험을 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승리자는 서울근교 경기도 주민? 하여간, 지속적으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어 왔고, 그 결과 올해부터는 지방직과 서울시 시험 날짜가 겹쳐졌다. 이제 지방직 응시가 가능한 이들은 분신술까지 가능해야 작년과 같은 이점을 누릴 수가 있게 되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분신술 시간에 수업 좀 열심히 들어둘 걸. 결국 궈 먹지도 튀겨 먹지도 못할 그놈의 국영수 공부 한답시고, 의무교육만 마치면 남들 다 한다는 그 흔한 분신술 하나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어영부영 고등학교를 졸업한 syo는 결국 서울시와 대구시 양쪽을 접수해두고 간을 보아야 하는 입장에 처했던 것이다.
어쨌든 양쪽 다 실질 경쟁률이 떨어질 것은 자명했다. 그런데 접수 후 며칠이 지나자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syo는 대부분의 공시생들이 syo처럼 두 군데를 다 접수해두고 눈치작전을 전개할 테니, 접수경쟁률 자체는 크게 다운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사람들은 접수 시점부터 이미 어느 한쪽을 정해놓고 올인한 모양이다. 와, 이 사람들 순한 거야, 순진한 거야. 그것도 아니면 응시료가 아까웠던 거야, 뭐야. 작년 11만명이었던 서울시의 전체접수인원이 4만2천 명,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면서 syo를 놀라게 했다. 심지어 올해는 작년보다 800명 남짓 더 뽑겠다고 공고한 서울시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9급 일반행정만 놓고 보았을 때 작년 77대 1이었던 접수경쟁률은 올해 24대 1까지 떨어졌다. 고민 끝에 지방직만 접수한 착한 수험생들의 탄식소리가 반도를 뒤덮는 듯했다. 이건 하라는 거잖아? 닥치고 서울의 드넓은 품으로 와락 한 번 안겨 보라는 거 맞잖아? 매년 그렇듯 올해도 실제 응시자는 접수자의 절반가량이었고, 역시 9급 일반행정 기준, 작년 43대 1이었던 실경쟁률이 올해는 11대 1로 집계되면서 2019년 서울시 2회 임용시험은 역대급 물경쟁 시험으로 기록되었다.
syo의 행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로에 선 많은 수험생들을 끝내 서울시에 등 돌리게 만든 다양한 범인 가운데, 서울시의 놀랄 만큼 독자적인 출제 경향이 아마 주범은 몰라도 종범쯤은 될 것이다. Q. 다음 보기 중 1960년대 발표된 소설로만 묶인 것은? 물론 과장이지만, 저렇게 생긴 깡패들이 무리지어 두세 놈쯤 튀어나올 확률이 0이 아니라는 사실은 공시생 입장에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더라. 저 좁고 위험한 골목길을 지나가야만 하는가? 모퉁이 너머로 담배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껌 씹는 소리와 가래침 뱉는 소리가 앙상한 앙상블을 이루는 게 뻔히 느껴지는데? 이제껏 살면서 두려운 것이라면 고민 없이 회피해왔던 syo는 이번에도 대책 없이 그냥 저 장르로부터 도망쳤다. 대신 기도를 했다. 부디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그래도 나오면? 기도한다. 오직 기도뿐이다. 제발 잘 찍게 해주세요. 신앙이란 무엇인가. 절박함이란 또 무엇인가. 기도는 또 무엇인가. 신앙 없는 사람의 절박한 기도는 대체 무엇이기에, 아, 그걸 또 들어주시는가...... 단언컨대, 안 본(못 본)데서 안 나온다는 것은, 수험생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들은 실패를 설명할 때는 운이 나빴다는 사실을 기꺼이 그리고 재빨리 받아들이지만, 성공을 설명할 때는 행운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근거와 믿음 사이에 또 다른 단절이 발생한다. 통계학자 나심 탈레브는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경향이 흔히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동기가 부여된 인식motivated cognition의 결과로 여기는 학자들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좋게 느끼기를 원하고, 그래서 자신이 매우 유능하다고 여기는 동시에 실패를 자신의 통제 밖에 있다고 생각하면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가 더욱 빛날 것으로 본다는 주장이다.
_ 로버트 H. 프랭크,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우리는 대체로 부모운이 별로고, 국가운은 완전 꽝인 인생이다. 그래서 행운을 빌고 또 빈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불공 드리고 새벽기도 하는 나라, 국가에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교회에 갖다 바치는 게 평균 기대수익률이 더 높아 보이는 나라에 살고 있다. 그걸로도 모자라 무속인에게 갖다 바치고, 타로카드 점쟁이에게 갖다 바친다. 국가를 믿느니, 차라리 점쟁이를 믿겠다는, 그런 나라에 산다. 그러니 행여라도 사람들에게 "저는 운이 좋았어요"라는 말은 안 하는 게 좋다. 사람들 마음속에 불꽃이 튄다.
_ 우석훈,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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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하이데거가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에 의거하여 사람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구체적인 상황 안에 있는 현-존재로 이야기하며, 존재하는 것은 구체적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자로, 존재는 존재자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하이데거의 주장에 크게 매료된다. (22)
그러나 그는 윤리를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처럼 당위나 규범으로써가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윤리 철학을 전개시켜 나간다는 데 특징이 있다. (25)
레비나스는 왜 하이데거가 서양의 형이상학 전통을 폐기하고 새롭게 존재 철학으로 나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존재가 아닌 존재자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33)
그리하여 자율이 아닌 타율에 의해 부려지는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인 자유를 방기하고 무책임한 삶으로 일관해 왔다며 레비나스는 자기로 존재하는 존재자의 존재성과 더불어 책임 있는 사람,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존재자가 아닌 존재자 중심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9)
공무원 시험 국어과목 기출문제를 보는 느낌이다. 마치, 다음 중 어법에 맞는 문장을 고르시오- 라는 문제에서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는 보기들을 만나는 것 같은 심정으로 읽고 있다. 저자의 퇴고와 편집자의 검토 가운데 하나만 이루어졌어도 이런 문장들 수십 개가 박힌 책이 시장에 나오기는 힘들다. 이러면 곤란하다. 앞에서 이러고 말아도 곤란한데 책 전체를 통해 계속 이러면 크게 곤란하다.
예를 들면, 불면증과 같은 것을 말한다. 불면증에 걸려서 하는 일들은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내가 나의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의 행동이 아닌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그저 있음’이라는 측면과 흡사하다고 하겠다. (45)
뜻밖에 오래 생각한 대목이다. 레비나스 책에서 레비나스보다 나를 더 사로잡는 것이 불면증이라니. syo는 불면증이 없어서 단언하기는 어려운데, 혹시 저 대목은 ‘몽유병(수면보행증)’을 써야 될 자리에 ‘불면증’이라고 써 놓은 것은 아닐까요? 혹시 불면증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해도, 저 자리에 불면증 대신 몽유병을 쓰는 게 더 와 닿는 비유는 아닐까요? 진짜 몰라서 여쭤보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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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게 목표다. 확실함으로 자기 안에 갇히고 타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40대 후반이면 그걸 두려워해야 할 나이다. '글쓰기는 이런 거야' '사는 건 원래 그래'라고 의심하기보다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서글프다.
_ 은유, 『다가오는 말들』
일본에서 건너온 인문학 장르의 책은 어쩐지 단언하는 뉘앙스가 강한 편이다. 일본인들은 좀처럼 단언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관념(혹은 편견)과 맞부딪히면 저런 태도가 더 선명해 보인다. syo가 사랑하는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도 단언하고, syo가 무시(혹은 멸시)하는 사이토 다카시 선생님도 단언한다. 개인적 편향에 의해, 전자는 ‘단언하는 맛’으로, 후자는 ‘단언하는 짓’으로 느껴진다는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단언하고 호언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단언하지 말고, 호언하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우치다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는 ‘나는 아직 단언할 때가 아냐’라고, 사이토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는 ‘단언은 정말 보기가 그렇군. 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는 차이는 있겠다. 그것 역시 개인적 편향의 결과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yo는 자꾸 단언한다. 그저께 쓴 글을 읽는데, 내가 쓴 글을 보며 역겹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쓰는 건 사실 어쩔 수 없는 데가 있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 자체를 아는지 모르는지를 또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아는 만큼만 써야한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 모두 실제로는 안다고 믿는 만큼만 쓰는 것이 아닌지. 완전히 알고 쓸 수 없기 때문에, 그러자고 들면 아는 데만 이번 생을 쏟아 부어도 과연 다음 생에는 쓸 수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알아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모르고 쓰는 스스로를 어느 정도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가 넌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면 대들지 말아야지, 고쳐야지, 쓰면서 알아가야지, 하면서 뭐라도 쓴다. 그래서 그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역겨운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태도를 경멸하면서도 틈만 나면 저 역시 그런 태도를 드러내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에는 피할 수 없는 환멸이 있다. 단언하는 일은 멋이 있고 힘이 있다. 최소한 그렇게 보인다. 폐부를 찌르는 말을 만들고 싶은 욕심, 문장으로 타인을 건드리고 싶은 욕심이 승한 사람에게 단언하는 말은 손쉽고 만족스럽다. 그리고 점점 더 센 말, 자극적인 문장을 찾아 헤맬 것이다. 그러다 이번 생은 망할 것이다. 아아아, 난 안 될 거야, 그냥 쓰지 마 이 새끼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이이이이이런 마음일 때, 은유 선생님의 글을 찾는다. 선생님의 글 속에는 ‘삶을 초과하는 글’을 누르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가득하다. 눈으로 쓰고, 귀로 쓰고, 몸으로 쓰는 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다정하게 알려주는 글들.
자, 욕심을 내려놓고, 다시......


거듭 당부하는 것은 말조심하는 일이다. 전체적으로 완전해도 구멍 하나만 새면 깨진 항아리와 같듯이, 모든 말을 미덥게 하다가도 한마디만 거짓말을 하면 도깨비처럼 되는 것이니 너희는 정말로 조심하여라. 말을 실속없이 과장되게 하는 사람은 남이 믿어주질 않으며, 더구나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더욱 마땅히 말을 적게 해야 한다.
_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_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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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일본 책. 심지어 경영관리 전문가의 책. 이 책 역시 단언하는 데가 있다. 그렇지만 철학 사상을 쪼개어 내놓는 방식, 사상의 흐름 가운데서 알맹이로 보이는 개념(르상티망, 페르소나, 앙가주망, 악의 평범성.....)을 쏙 뽑아내 거두절미하는 기술, 다소의 투박함을 무릅쓰고 개념들을 인생, 인간관계, 심지어 경영 같은 영역에 응용해보려는 시도, syo는 이런 것들을 너무 사랑한다. 이해할 수 있는 파편이 이해할 수 없는 전체보다 날카롭다(그러니까 이런 겉멋 든 말을 하려고 용쓰지 말자는 뜻인데...... 하아, 개가 똥을 끊지......)
--- 읽은 ---





+ 반성 / 김영승 : 77 ~ 184
+ 어제는 봄 / 최은미 : 81 ~ 175
+ 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 228 ~ 395
+ 고전 속에 누가 숨었는고 하니 / 조현설 : 6 ~ 176
+ 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씨에지에양 : 130 ~ 307
--- 읽는 ---







- 다가오는 말들 / 은유 : 5 ~ 158
- 레비나스, 그는 누구인가 / 박남희 : 5 ~ 101
-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 / 이정모 : 4 ~ 116
- 여성, 전적으로 권력에 관한 / 메리 비어드 : 7 ~ 58
- 단숨에 읽는 그림 보는 법 / 수전 우드포드 : 6 ~ 97
-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 우치다 타츠루 : 9 ~ 123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 4 ~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