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다녀왔다. 곰인간을 만났고 햄버거를 먹었다. 오는 길에 빵 두 개 사왔다. 지금 하나 뜯어먹으면서 쓴다. 빵부스러기가 책상에 떨어지고 키보드는 미끈거린다. 제길.

 

커피를 먹겠다고 작은 주전자에 든 물을 끓였는데 부어보니 제길, 숭늉이다. 우유 한 방울 없이 커피는 라떼 색, 맛은 그윽하다. 아메리카노에서 조상의 얼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 조상은 과연 어느 대륙 누구의 조상인가. 상관 있나, 어차피 we are the world인 것을. 코리아메리카노라고 부르면 될까.

 

책방에 대한 책을 읽다가 왠지 책방이 잘 어울리는 친구가 생각나 책방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막상 그 친구는 책방도 좋지만 밤마다 술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어쩐지 목이 칼칼해져 syo는 조상의 얼을 한 번 더 느껴보기로 한다.


갑작스럽지만 참새는 너무 귀엽게 생겼다. 참새. (귀엽게)(ㅇ긴동물). 머리도 둥글, 몸도 둥글. 배는 하얗다. 아침 담벼락에 떼로 앉아있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한 번 만져보고 싶었는데 파다닥 날아갔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열라 빨라. 쟤넨 비둘기 같지가 않다. 걔들은 만질 수 있어서 만지기 싫은데


그러고 보면 요즘은 비둘기들도 옛날처럼 쉽게 컨택트가 되는 것 같진 않다. 비둘기 나는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하곤 한다. syo가 도련님 댕기머리 하고 학당 다니던 옛날에 비둘기는 새라기보다는 돼지였다. 사람들도 욕지거리 없이 걷기 힘든 그 학교 캠퍼스를 걔네들은 숨소리 하나 안 내고 잘만 걸어 다녔다. syo가 모자 쓰려고 머리 달고 다니듯, 얘네는 노트북 가방 메려고 날개 달아놓은 듯. 공학관 뒤쪽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이놈의 비둘기가 영장류 고귀한 줄 모르고 자꾸 알짱거리길래, 저리 안 꺼져? 하며 발길질을 했는데, 세상에, 제대로 맞았다. ! 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잘 감아 찬 손흥민의 프리킥 궤도를 그리며 잠깐 날아가더니 이내 착지하여 이쪽을 매섭게 노려본다. 굉장히 놀란 눈치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너는 안 찰 줄 알고 맞았겠지만, 나는 안 맞을 줄 알고 찬 것이다. 서로 간에 오해가 깊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이해일 수도 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니까 안 찰 거야. 새는 나니까 안 맞을 거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에 기대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였다. 그 결과는 공학관 옆 허공을 가르는 비둘기빛 좋은 궤도였다. 그리고 너에겐 날개가 있고, 나에겐 발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서로 서로 알려주었지. 좋은 추억이다. 어쩐지 목이 칼칼해져 syo는 조상의 얼을 한 번 더 느껴보기로 한다. 다 식었네.

 

왜 이런 흐름의 글을 쓰게 되었는지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의식이 가고 싶은 대로 가도록 두었을 뿐인데. 아직도 내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누군가 나를 뻥 차준다면, 나도 예쁜 프리킥 궤도를 그리며 접힌 날개의 기동방식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될까? 모를 일이다. 코리아메리카노의 맛도 그렇다. 식어도 그윽하다. 하지만 모르겠다. 이 맛이 뭔지. 컵 바닥에 가라앉은 저 기이한 색깔의 물질이 콩인지 쌀인지.

 

, 코리아메리카노 이것은 커피계의 콩밥인가?

 

 

 

181101 181115 : 32

 

1. 페소아

: 페소아 전기의 도입이 시급하다. 한 줄에 별로 많은 활자가 들어가지 않는 판형의 300쪽 남짓한 책으로는 성에 안 찬다.

: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좋은 300쪽짜리 책이다. 아무리 주제 자체가 매력적이라 해도, 그것에 관해 더 알고 싶게 만드는 데는 저자의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페소아를 전파하는 활동으로 보자면 한국의 안토니오 타부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김한민 선생님은 실제로 안토니오 타부키가 입던 스웨터를 입어 본 적도 있다고. 허허, 그것 참.

 

2. 로봇수업

: 로봇의 약진을 둘러싸고, 인간이 생각해야 할 가장 큼지막한 질문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는 단단하고 의미 있는 책. 과연 MIT Press. 공학인의 성지.

: 표지에는 인공지능 시대의 필수 교양이라고 쓰여 있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인공지능을 로봇의 한 부분으로서만 서술하고 있을 뿐, ‘로봇자체에 대한 서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널리 퍼져 있는데, 저자에게 걸리면 큰일 날 수 있겠다. 로봇은 로봇,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걔네는 완전히 떼어낼 수 없는 관계긴 하지만 뭉뚱그릴 만큼 한 몸도 아니다.

 

3. 회색 노트

: 2500페이지짜리 장편 대하소설의 반쯤 열린 포문 되시겠다. 이 작은 책 속에 들어 있는 인간들의 앞뒤 정황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하여, <티보 가의 사람들>을 나는 읽기로 했다. 영업을 당한 것이다. 깨끗하게.

 

4.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스케치로 그려진 공간은 친숙하지 않아서, 좋았다. 내게 저런 금손이 있다면, 나도 볼펜 한 자루 들고 친숙한 공간의 친숙하지 않음을 찾아서 여기저기 다니지 않았을까,

: 하고 생각하고 나니, 다 핑계 같다. 그림이 아니라 글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부족할 뿐이지.

 


5. 다시 자본을 읽자

: 제목이 다시를 포함하는 것은, 진짜 자본을 한 번 읽은 적 있는 사람들만 덤비라는 뜻이 아니다. 권위와 권위자가 내 눈에 가져다 댄 렌즈를 벗어던져 버리고, 우리의 시간과 입장에 맞춰, 우리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는 의미겠다.

: 그런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미리 갖춘 것 없이 덤벙 덤벼들 만큼 만만한 책은 아니다. 독자가 몇 가지 기본적인(?) 철학적 개념들(변증법이랄지, 유물론이랄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서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병권 선생님 해석의 탁월함을 인지하려면 통상적이고 전통적인 마르크스 해석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수도꼭지가 달려 있는 집에 태어난 사람은 그 물건의 위대함을 모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물에 두레박을 한번 던져 봐야..... 정말 처음이 아니라 다시읽는 이들에게 좋은 책인 것 같다.

: 그래서 syo는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책이 11권이 더 나온다니! 12권 다 꽂아놓고 매년 1회독씩 해야지. 1월에는 1. 2월에는 2......

 

6. 데이비드 흄

: 압축적이다.

: 압축을 풀어야 되는데, syo의 뇌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다.

: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며 근력을 만들어서 흄을 읽으려는 syo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흄을 읽고 와서 이 책의 압축을 풀어볼까 한다.....

 

7. 인형

: 비겁한데, 분명 비겁한데 웃긴다. 문장은 굉장히 정교한데, 어느 정도냐 하면, 읽고 있자면 화자의 태도가 기분 나쁘고 후지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는데도 웃기긴 웃길 만큼 정교하다. 초반의 탐색전을 끝내고 나면, 어느 지점부터는 한 페이지에 한 두 번씩 피식 웃게 된다. 뭐 이런 희한한 작가가 다 있지?

: 싶었는데, 다 읽고 났더니 맨 뒤쪽 작가 소개에 이렇게 쓰여 있다. “유머러스한 비극과 기괴한 웃음"을 담은 작품세계로 독특한 문학적 영토를 일궈온 세계문학의 거장. 세상에, 정말 더없이 적확하다.

 

8.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 과연 포구의 제왕 곽재구 선생님. 이분이 쓰신 포구 기행문을 읽고 있으면 이것이 곽재구의 포구기행인지 곽포구의 재구기행인지 헷갈릴 정도니, 이미 포구 기행문에 관해서는 일가를 이루셨다 할만하다. 이름 장난 죄송합니다. 저질이네요......

 


9.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 따분할 틈이 없다. 이걸 에세이로 봐야 하나, 사회학 책으로 봐야 하나 헷갈릴 정도다. 통계나 세금제도와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여 아, 내 체력이 방전되고 있어, 싶을 때쯤 어떻게 알고 자기 인생 이야기가 똭! 수업듣기 싫어서 좀이 쑤실 때쯤 첫사랑 이야기가 똭!

: 실제로 첫사랑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요.

 

10. 빨강 머리 여인

: 파묵은 파묵이다. 한결같이 파묵같다.

: 그럼에도 내 이름은 빨강같은 대작(얘는 정말이지 걸작이지요)을 바라고 읽으면 반드시 실망할 수밖에 없겠다. 사실 그 책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작가라도 평생 한 번 써낼 수 있는 인생작에 가까우니까...... 이 책은 노벨상급 작가의 범작쯤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 급의 작가가 컨디션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때, 그냥 기본 실력만 발휘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쓰면 나오는? 물론 실제로 그랬을 리야 있겠습니까마는......

 

11. 당신의 행복이 어떻게 세상을 구하냐고 물으신다면

: 자기계발서 같은데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우긴다. 문체는 파워풀하고 우격다짐의 기세로 몰아붙이는데, 그래서 더 자기계발서 같지만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선명하게 제시하는데, 그래서 더 자기계발서 같구만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강조한다. 어쨌든 개인의 노력으로 뭘 하라는 단계는 넘어서서 구조를 함께 바꿔나가자는 것이 주제긴 하니, 완전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라고 인정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래, 그렇다니까? 저자가 팔짱을 끼고 선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12. 대한민국 독서사

: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독서의 역사가 역사의 독서만큼이나 재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독서의 역사의 독서인가? .....뭐래.

: 정치색이 있다. 정치색 없는 책도 있나? 싫어할 사람 있을 수 있다. 싫어할 사람 없는 책도 있나?

 


13. 게임의 심리학

: 게임과 관련해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심리학적 사태들에 대한 지식의 나열. 내용이 알차고 말고는 syo같은 무지렁이가 판단하기 어렵겠으나, 저자는 딱히 글 잘 쓰는 사람도 그렇다고 글 못 쓰는 사람도 아닌 것 같다.

 

14. 종횡무진 서양사 2

: , 이제 몸을 풀만큼 풀었으니, 10권짜리 프랑스 혁명사나, 홉스봄의 2000쪽짜리 시대’ 3부작이나, 하다못해 1200쪽짜리 미국 민중사나, 그것도 아니면 1000쪽짜리 러시아 혁명사나...... 꿀꺽.

 

15. 잘돼가? 무엇이든

: 이런 진부하면서 무책임한 단어는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슬픔이라는 것이 있는데, 게 중에는 가끔, 그 슬픔을 잘 조리하여, 크게는 다른 슬픔을 위로하고 작게는 한 순간의 웃음이라도 전해주는 이들이 있다. 참 고마운 사람들. 그들의 인생에 저마다의 슬픔이 계속되기를 바라야 하는 건가 아닌 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쁜 건가 미친 건가, 뭐 이런 죄책감을 들게 하는 참 고마운 사람들.

 

16. 선망국의 시간

: 기본소득, 직접민주제, 호혜적 경제 공동체, 탄소배출을 줄이는 환경 공동체..... 거의 모든 영역의 최전선에서 담론의 장을 형성하고 계신 조한혜정 선생님. 어느 하나 전 지구적 의제가 아닌 것이 없다. 나는 열심히 읽어야겠다. 그리고 힘닿는 대로 뛰어다니기도 해야겠다.

 


17. 나쓰메 소세키 평전

: 나쓰메 소세키에 환장한 syo는 스스로 이럴 줄 예상을 못했다. 열라 재미없는 평전이었다......

 

18. 마구로 센세의 본격 일본어 스터디

: 귀엽다. 초밥 같이 생긴 주인공이 일본 식당을 다니면서 일본어를 배우는 내용이다. 귀엽다.

 

19. 루쉰 :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

: 저자의 견해가 그다지 많이 함유되어 있지 않아 깔끔하고 담백한 루쉰 전기.

: 실은 루쉰이란 인물의 인생은 원체 공개적인지라, 어느 전기를 읽으나 내용 자체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은 없다. 단지 전기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에 따라 루쉰의 어느 글을 인용하여 어디에 포진하는가가 다르게 결정되거나, 혹은 저자의 당성에 따라 루쉰의 업적에 대한 평이 조금씩 달라지는 정도라고 하겠다. 써 놓고 보니, 원래 전기 문학이 다 그렇지...... 죄송합니다.

 

20. 녹색평론 통권 163

: 반도체 집적도가 높아지는 속도로, 인공지능이 똑똑해지는 속도로 지구가 망하고 있다. 반도체랑 인공지능이 지구를 망친다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나 관계자의 눈으로 보면 되게 빠르게 망하고 있는데도 우린 잘 모르고 그저 산다는 뜻이다. 그러다 덜컥 일이 터지면, 언제나 그렇듯 그땐 늦었다. 그래서 녹색 책을 좀 읽어둬야 하는데,

: 그럴 때 녹색의 최신 동향을 살피기 위해 우선 손에 들어야 할 나침반 같은 잡지.

 


21.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고미숙 선생님의 책에는 좋은 말, 훌륭한 말이 잔뜩 들어있는데도, 그걸 분명히 알겠는데도, 그 말들이 피부를 뚫고 스며들어 오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를 모르겠다. 늘 따뜻하지만 겉도는 느낌이고, 아름답지만 허망한 느낌이고, 든든하지만 먹고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는 느낌이다. , 연암도 백수였구나, 백수였는데 훌륭했네, 와 부럽네, 멘탈 갑 오브 갑이네. 그러고 끝이다.

 

22. 피로 물든 방

: 오늘의 관점에서 전복적이라고까지는 하기 어렵겠으나, 아직 급진성의 불씨가 다 꺼지지는 않은, 거장의 동화 재해석.

: 못 쓰는 이들의 글은 어느 것을 읽어도 구분이 힘들어서 지치는데, 잘 쓰는 이들의 작품은 읽어도 읽어도 또 독창적인 문체를 지닌 애들이 숨어있다 튀어 나와서 지친다. 다 좋지만, 특히 숲, 세상에 다시없을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답고, 포근하면서도 위태로운 숲을 문장으로 만들어냈다!

 

23. 사무 인간의 모험

: 아무 것도 아니다. ‘사무인간이라는 표현에서 조금의 연관성이라도 찾을 수 있는 인문학적 영역들에 문어발을 뻗어 끌어 모은 책. 살짝 어거지면서 심히 얕다. 소재의 폭을 줄이고 더 깊이 팠다면 너무 좋은 책이 나올 수도 있었을 컨셉인데, 이렇게 소진되고 마는가......

 

24.

: 자꾸 페미니즘 소설만 쓴다는 희한한 비난(?)으로부터 최은영을 옹호하고 싶다. 물론 여성이 겪는 다양한 고통을 제제로 한 작품을 최은영이 근래 많이 써내고는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밀한 눈으로 읽어 보면 그 작품들이 겨냥하는 데가 (당연히) 제각각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공감 자체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있고, 공감을 위해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이야기를 하는 작품도 있고,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아닌지를 조심스레 두드려 보는 작품도 있는 식이다. 페미니즘은 거대한 영역이고 굉장히 많은 소재들이 그 안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서 작품을 썼다고 해서 그 작품의 주제 또한 그저 페미니즘이라고 후려쳐서 명명하고 말 것은 아니다. 여성 이야기가 등장하는 순간 아, 또 페미니즘이야, 하는 선입견에 따라 읽던 책을 집어던지는 일은 좀 공정치 못한 것 같다. ”얜 또 살인이야, 살인 말고는 쓸게 없나? 아니면 전작에서 살인으로 재미를 보더니만 이번에도? 아주 그냥 뽕을 뽑으려 하네?“ 라며 읽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집어던지는 경우가 상상이 되는지? <죄와 벌>에서 죽이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죽이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인 소설에 편향된 살인 소설가 대접을 받아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그저, 그 소재가 페미니즘이라서 문제인 건가?

 


25. 진실 사회

: 진실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 우리가 찾아낸 진실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진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진실을 만들어 낸 이들이 어디서 무얼 먹고 사는지를 주시해야 한다. 그들이 몸을 눕히는 장소, 그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들이 때로는 진실의 진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뭐 이런 다소 뻔한 지혜를 다시 얻었다.

: 짧은 책이면서도 뒤쪽에 진실사회를 위한 10계명을 요약 첨부해놓으셨다. 친절하셔.

 

26. 헤겔

: 낡았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는 게 아니라, 서술, 관점, 지향이 낡았다. 좋은 책은 많다.

: 문장도 후지다. ”체계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들의 생과 사를 건 진리와는 관계가 없는 사이비 진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163)“ 이 문장 속에는 구조상 없어야 할 게 있고 있어야 할 게 없다. 이런 구린 문장이 가뜩이나 사변적으로 느껴지는 헤겔의 철학을 더욱 알 수 없는 쪽으로 몰고 가는 주범이다. (사실 저건 키에르케고르의 헤겔 비판에 관한 문장이긴 하지만......)

 

27. 빅팻캣의 영어수업 : 영어는 안 외우는 것이다

: 순전히 귀여워서 읽었다. 저 빅하고 팻한 캣 좀 보라지...... 시종일관 화가 나 있어..... 나도 그래. 영어만 생각하면 너처럼 시종일관 화가 나지.....

 

28.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 굉장히 공격적인 제목이지만 펼쳐보면 시종일관 다정한 책. 맞아.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게 인간이니까, 가만 냅두면 그렇게 굴러가는 게 인간이니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서로를 지탱해야 한다.

: 그러고보면, 오늘날 인간 교양의 측정 방법 가운데 하나는 뇌과학이나 진화심리학적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있는 것 같다. 뇌과학적(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런 이런 성향이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냥 그렇게 해야 해, 이지랄 하는 놈들이 21세기 찐따의 왕좌를 차지할 것이다.

 


29.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왜 그냥 그렇지..... 난 왜 이기호가 그냥 그렇지......

: 그렇지만, 역시 등장인물의 대사는 가장 실감나는 구어체로 구사하는 이기호 답게, 녹취록 형식의 이 책은 그야말로 이기호의 기량이 빛을 발하는 책이라 하겠다.

: 근데도 왜 그냥 그렇지..... 난 왜 그냥 그렇지......

 

30.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심리학 사전

: 신랄하다. 군더더기는 모른다! 예비 동작 없이 바로 쑤신다! 쑤신 구멍에서 유익함이 콸콸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었느냐 하면,

: , 잘 잤다.

 

31.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 단어의 위치가 맞춤하여 탄력은 있고 부담은 없는 문장들. 크게 튀지 않지만 식상하지 않은 어휘 구사. 그런 문장에 잘 녹아나는 일러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한다는 개념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내 삶도 더 느긋하고 다정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 그리고 산책. 산책 가고 싶다.

 

32.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심리학 수업

: 박홍순 선생님은 도둑님이셔. 이분 책 읽고 나면 장바구니가 자꾸 두둑해지고, 그에 반비례하여 지갑이 얇아진다..... 책 뽐뿌, 샘플 제공의 달인.....

 

 

+ 내 이야기!! 1~13

: 여주도 그렇지만, 남주는 여주가 뭘 해도 좋아한다. 여주가 눈앞에 나타나면 일단 좋아해!’라는 내적 환호를 크게 올리고 시작한다. 나도 따라해 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떤 마음은, 자꾸 확인하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종종 변명되는 어떤 마음은, 자꾸 확인하지 않으면 모서리부터 차츰차츰 닳아 정말로 없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 있는 줄 알았는데 어디 갔지? 이러면서 깨닫는 일이 생기면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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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11-15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이야기 감상이 제일 좋네요. 내 이야기 남주도 무척 마음에 들고요.

syo 2018-11-15 18:13   좋아요 0 | URL
되게 좋은 책이었어요. 만화를 읽다가 생활양식에 변화를 겪은 것이지요.

카알벨루치 2018-11-1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이야기>읽고싶네요 ㅎㅎ

syo 2018-11-16 00:42   좋아요 1 | URL
기회 되면 기분전환 삼아서 한 번 읽어보세요. 가끔 만화 보면서 말랑말랑해지는 것도 좋더라구요^-^

비로그인 2018-11-17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따라 하나 하나 실감 나는 리뷰라는 생각에 재밌게 읽었어요! 평소에도 그랬을 텐데 왜 그렇지... 평소보다 꼼꼼히 읽었나봐요, 제가. 오늘도 책뽐뿌 잔뜩~~
근데 쇼님은 이걸 다 사서 읽으시나요? 신간을 매번 어쩜 이리도 잔뜩~~@.@

syo 2018-11-17 08:59   좋아요 0 | URL
실감은 idahofish님의 마음 속에서 나는 거지요!! 실감력이 대단하세요 ㅎㅎ

이걸 다 사서 읽으면 참 좋겠는데, 여의치 않아서 대부분 도서관의 힘을 빌린답니다. 정말 대애애애애애부분이요. ㅎ
댓글저장
 


천권야화

 


1

 

모든 몸들이 누워 있는 밤, 함석지붕 위로 도둑처럼 눈은 쌓이고, 오늘도 힘껏 팔다리를 흔들고 돌아온 아저씨의 이 나간 소주잔은 찾아 온 사람도 없이 혼자 비었습니다. 저 비린 바람꼬리를 쥐고 따라가면 풍경처럼 제 몸 흔드는 명태들 얼었다 녹았다 분주한 겨울 덕장이나 한 번 휘감고 돌아오겠지요. 그것들 시퍼런 눈동자는 밤처럼 꾸덕꾸덕 깊어지겠지요.

 

소주 한 잔 털어 넣는 일은 곧 마음 속 빈 의자 하나 들었다 놓는 일.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듯 빈 의자 여기저기로 옮겨나 보는 일. 발목까지 눈에 잠긴 장화가 파르르 파란 몸 떠는 새벽, 어둠이 눈을 지우듯 눈이 어둠을 지우고, 마당을 향해 뻗은 손을 지우는 게 눈일까 어둠일까 아저씨는 자꾸만 자꾸만 지워지는데, 입김처럼 생각나는 이름이 있어 또 부르고 말았습니다. 욕심 많은 겨울밤이 모든 귀를 감추었으니, 그 이름도 성에처럼 아스라이 바스라졌을까요. 그저 황태 몇 마리 듣고서 푸드득 몸서리치고는 말았으려나요.

 

아저씨는 대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는데요.

 

 

 


사방에 지극히 공평하게 내리고 있어 가까운 비와 먼 비의 소리를 구별할 수 없었다소리의 멀고 가까움을 구별하지 못하니 빗소리는 도처에 존재했다내 안에도또 내 밖에도. 3월 1일의 비는 겨울비도그렇다고 봄비도 아니어서 부를 이름이 없었다이름을 부를 수 없는데도 그 비는 모든 곳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부르는 이가 없어도 소리를 내는 것심지어 듣는 이가 없어도 소리를 내는 것마치 파도처럼 혼자서 끊임없이 ""라고 하는 것그것이 바로 주인이고 부처라는 걸 이제는 나도 알겠다.

김연수아마도언젠가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초봄 뱀눈 같은 싸락눈 내리는 밤 볍씨 한 자루를 꿔 돌아오던 家長이 있었다 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일어나면 나는 난생처음 마치 내가 작은댁의 자궁에서 자라난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입이 뾰족한 들쥐처럼 서러워서 아버지아버지 내 몸이 무러워요 내 몸이 무러워요 벌써 서른 해 전의 일이오나 자루는 나를 이 새벽까지 깨워 나는 이 세상에 내가 꿔온 영원을 생각하오니

 

오늘 봄이 다시 와 동백과 동백 진다고 우는 동박새가 한 자루요 동박새 우는 사이 흐르는 銀河와 멀리 와 흔들리는 바람이 한 자룽 바람의 지붕과 石榴꽃 같은 꿈을 꾸는 내 아이가 한 자루요 이 끊을 수 없는 것과 내가 한 자루이오니

 

보리질금 같은 세월의 자루를 메고 이 새벽 내가 꿔온 영원을 다시 생각하오니

문태준자루」 전문 

 

사랑을 할 줄도사랑을 받을 줄도사랑이 뭔지도 모르겠다고 언니에게 말했었지요하지만 스톡홀름의 불빛들이 점점 작아지는 걸 내려다보며 이제는 언니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여전히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누군가의 쓸쓸함에 마음이 쓰인다면그 사람이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든다면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 아닐까요?

김민아윤지영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안부를 물었다

 

 

 

2


당첨! 1000번째 고객님!

 

북플에 읽었다고 등록한 1000번째 책이라 기념 삼아 기록을 남긴다. 201751, 그간의 독서기록을 대강 삭제하고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시 한 권 두 권 세 나갔는데, 한 해 반을 넘겨 다시 천 권을 찍게 되었다. 그저껜가, 마음먹고 독서에 들어선지 3년째인데 오천 권을 읽었으니 이제 반환점을 돌았네요- 라는 깐도리님의 어마무시한 선언을 보고 와서 그런가, 천 권이 어쩐지 초라하다. 게다가 저 천 권 안에는 적지 않은 수의 만화책도 있고......

 

아무래도 깜냥에 넘치는 양을 읽다보니 인생이 사회적·경제적으로 자꾸만 비루해지는 것 같다. 다음 천 권은 마흔 전에는 결코 채우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면서도 어제 오늘도 다섯 권을 읽었으니, 이게 미친놈이 아닙니까?

 

마음이 불편하고 세상이 들쑤실 때 자꾸자꾸 읽어서 책 속으로 숨어드는 syo의 천성을 고려해보면, 얘가 요즘 많이 힘든가 보다..... 되게 읽네......

 


 

3

 

뉴스1 기사 :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어제, 여친 학교 아이들이 수요 집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피켓 문구를 만들어주었다. 길어서 걱정이었는데, 길어서 눈에 띈다. 다행이랄지.

 

여친은 소녀상 뒤에 숨어 있다고 하는군요

 

  

 

 

-- 읽은 --



나카노 노부코,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스벤야 아이젠브라운,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심리학 사전

로만 무라도프,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줄리언 바지니, 진실 사회

 



-- 읽는 --



요한 록스트룀, 마티아스 클룸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손미,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

한스 프리드리히 풀다, 헤겔

토린 얼터, 로버트 J. 하월, 심야의 철학도서관

정흥섭, 혼자를 위한 미술사

데이브 레비턴, 과학 같은 소리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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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11-1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에 참석해 볼 생각 없으세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정말 마음이 맞고, 친절한 사람들이 모이는 독서모임에 참석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러면 책 속에 숨을 필요가 없어요. 레드스타킹을 추천합니다! ^^

syo 2018-11-14 18:0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독서모임은 반갑기는 한데,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아직 전, 그 영역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을 구별하는 기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아서요.

cyrus 2018-11-14 18:13   좋아요 0 | URL
저도 잘 몰라요. 그곳에 가서 사람들의 말에 경청하면서 배우려고 해요. ^^

syo 2018-11-14 18: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생각을 해 볼게요. 워낙 보수적인 인간이라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는 데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서요 ㅎ

그나저나 시루스 박사님의 학구열은 정말이지 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18-11-1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천 권 읽는 날 하루 빨리 오길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ㅎㅎ

syo 2018-11-14 20:56   좋아요 0 | URL
북다님은 천 권 같은 백 권 읽으셨지만, 저는 백 권 같은 천 권을 읽은 것입지요.....

카알벨루치 2018-11-1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는 기차의 바퀴는 이끼 낄 날이 없네요~

syo 2018-11-15 08:38   좋아요 0 | URL
아니, 그런 멋진 말을?? 달리는 기차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1-15 08:40   좋아요 0 | URL
👍👍👍
댓글저장
 

 

, 쓰는,

 

 

1


 

10년도 더 전에 A4 3장 분량의 성춘향 탈옥 사건에 관한 증언들이라는 짧은 소설을 쓴 적이 있다. 한 페이지짜리 단편 소설을 표방하는 어느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로서, 지금은 소실되어 세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사흘 밤낮을 정말 애절하게 매달려서 썼던 기억이다. 제목을 달 때도 탈옥파옥사이에서 한 시간을 고민했었으니 말 다한 거지. 그 글은 변학도의 요구를 세차게 거부한 춘향이 옥에 갇힌 지 사흘 만에 홀연히 칼을 벗고 사라지자,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한양에서 파견된 감찰관이 여러 인물들을 조사하고 그 증언을 옮긴 글의 형식이었는데, 변학도, 옥지기, 방자, 월매, 향단, 그리고 춘향을 마지막으로 목격했다는 동네 미친 소녀의 증언을 각각 한 꼭지로 하여 엮었다. 그때쯤 노벨상을 수상했던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과 비슷한 형식이었다. 당시 그 책을 읽을 만한 역량이 아니어서 펴보지도 못했지만. 하여간 캐릭터 저마다의 말투를 살리고자 무진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들의 증언을 되짚어 보면, 변학도는 관기에게 수청을 요구한 게 무슨 죄냐고 따지며 신분질서를 울부짖었고, 옥지기는 옥에 갇힌 춘향이한테 껄떡거린 건 사실이지만 이 동네 남자 치고 안 그런 놈 있으면 나와 보라는 식이었고, 방자는 이몽룡을 만나러 간 감찰관의 길을 막고서, 자기 주인은 그저 하루 옴팡지게 놀았을 뿐 그런 천한 여인과 정을 통한 일이 추호도 없으니, 장원급제한 동량의 앞길 막을 생각 하지 말라고 위협한다. 월매는 사또의 수청을 들라고 했던 자신의 말을 들었으면 팔자가 폈을 텐데 고집을 부리다가 실종까지 된 딸을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고, 향단은 저나 춘향이나 천한 신분임은 마찬가진데 왜 자기가 춘향이를 아씨로 모셔야 하냐고 따지면서도 이몽룡의 그 안개 같고 부질없는 사랑의 맹세를 춘향은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며, 춘향이 수청 들기를 거부한 이유가 이몽룡을 기다리기 때문이라는 세간의 말을 부인한다. 그리고 마지막 증언자인 미친 소녀는 춘향이가 탈옥 이후 광한루에서 혼자서 그네를 뛰더니 새가 되어 해 뜨는 방향으로 날아갔다고 증언한다. 그 글을 읽은 어떤 분이 댓글로 춘향이는 진짜 어디로 간 거냐고 물어보셨는데,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천인이나 여성으로 태어나 겪어야 했던 모든 억압이 없는 곳으로 갔기를 바란다는 댓글을 달았던 것 같다.

 

2007년이었고, 그때의 syo는 마르크스는 알아도 레닌은 모를 만큼 지금의 syo와는 달랐고, 무엇보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를 몰랐다. 타인의 불행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투표권이라는 것을 얻은 후 최초의 1표를 국밥 광고 찍은 아저씨에게 던졌으니 개념도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저런 글을 썼다. 알지도 못하면서. 겪은 적도 없으면서. 그러니까 저 글의 실체는, 옹호나 공감이 아니라, 그저 사용혹은 이용이었던 셈이다.

 

여친이 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23일로 서울에 현장학습을 가는데, 수요 집회에 참가하기로 했단다. 아이들이 손에 들고 참가할 피켓 문구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 이런저런 말들을 지어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멈추라 하지 마세요. 우리는 아직도 그날에 멈춰 있으니.” 같은 문구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직 그날에 멈춰 있는 우리는 할머니들인데, 아무리 집회에 참가해 할머니들의 옆자리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자 한대도, 피해자가 아닌 아이들이 피해자의 경험과 감정을 짐작하고 추론하여 언급하는 글귀를 쓰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2007년의 syo는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일까? 그 글이 정치적 올바름을 준수하고 있다고 쳐도, 그 글을 쓴 행위 역시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같은 글, 같은 말이라도, 쓰는 사람, 말하는 사람이 지닌 역사와 입장이 다르다면, 그 말과 글들이 같은 평가를 받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쓴 것쓰는 일이 서로의 정의와 맥락을 침범하는 사태를 마주하면, 쓰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

 

아니, , 그냥 이 책을 읽으니까 그때 생각이 아련하게 났네요. 이 증언록 형식, 참 반갑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순수한 보고가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태도입장을 드러내는 행위다모든 발화는 객관적일 수 없다지식은 인식자의 렌즈를 통해 우리 앞에 재현('')된 것이다공부는 지식을 습득하는 자체가 아니라 인식자가 자기에 대해 아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사회와 공유하는 것이다.

정희진정희진처럼 읽기


중요한 것은 축제 같은 저항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사람들은 집으로그리고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그곳에 남아 있다그러니 길 위에서 삶을 돌려달라고 외치는 이들과 연대하고 싶다면 나의 정의감보다 그들의 삶을 우선해야 한다이렇게까지 하면서 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그들이 앉아 있던 자리가 깨끗하게 치워지고 그 흔적이 무언가로 덮여 매끄러워지는 그 순간이 우리 모두의 패배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태섭억울한 사람들의 나라


 음독(音讀)이 전부였던 시간이 있었다

 인간의 목소리가 잠든 활자를 깨워준다고 믿었던 때

 믿음은 깨지는 순간 비로소 믿음이다

 묵독의 기원은 경전을 동공에 새기려 했던

 어느 불온한 수도사에게 있다

 기록되는 순간잠들어버릴 문장보다

 행간 사이를 헤매는 것으로 길을 찾고 싶었을

 그는 동공에 고인 그늘이 무거웠을까무겁지 않았을까

 이단의 독법이라며 수군거렸을 입들

 얼마 후 그를 봤다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부재하는 목소리의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내내묵독의 절기를 건너야 할 동공

 기록되지 않을 새의 날갯짓이 사라지고

 허공의 밑줄 아래로 흩어졌다 모이는한 점 구름

이은규묵독」 부분 

 

 

 

2


 

헤겔은 이 논문 속에서 대체적으로 피타고라스나 플라톤이 생각했던 것처럼 수()의 신비주의와 유사한 방법으로 자연수의 간단한 비례에 혹성 간의 거리를 대응시켰다따라서 비례에 따라 파악할 때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어떤 혹성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그가 이 논문을 저술한 때는 1801년 봄부터 여름에 걸친 기간이었다그러나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까같은 해 1워 1일에 이탈리아인 피아치에 의해서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소혹성 세레즈(Ceres)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미 발견된 뒤였다통신수단이 발달한 현대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실수였다.

나까야 쪼우헤겔』, 79-80

 

저건 운명의 장난도, 실수도 아니라 그냥 무지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을 구분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인류 지성사에 그 이름을 거대하게 새긴 헤겔쯤 되는 인물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철학하는 인간이 가장 오래된 철학의 격언인 너 자신을 알라도 지키지 못하는 꼴을 비웃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비난 속에는 나는 그러지 않을 걸. 나는 날 잘 아니까.’ 하는 기본전제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헤겔이 자기 마음속에 깔아 놓았던 그것과 똑같은.

 

오늘도 또 한번 묵직해지는 syo의 좌우명 No. 2, “깝치지 말자

 

 

 

 

3


 

일상을 매끄럽게 운용하고신체가 유연해지는 것이것이 슬기로운 백수 생활의 핵심이다고수는 서두르지 않는다내공이 깊으니까백수도 서두르지 않는다시간이 많으니까경제활동의 폭도 넓어진다명랑하고 당당한 사람들은 인복이 많다자연스럽게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법이다사람이 모이면 밥이 생긴다알바 자리도 생긴다같이 재미난 활동을 기획할 수도 있다밥은 밥을 부르고친구는 친구로 이어진다.

고미숙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74쪽


멋있고 좋은 말씀이긴 한데, 백수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다. “나도 백수다라고 말씀하시는 고미숙 선생님이 뭔가 잘못 알고 계시거나, 아니면 syo놈이 뭔가 잘못 살고 계시거나.....

 


 

 

-- 읽은 --



조관희, 루쉰 :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

고미숙,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나까야 쪼우, 헤겔 G.W.F. Hegel

무카야마 다카히코, 다카시마 데츠오, 빅팻캣의 영어수업 : 영어는 안 외우는 것이다

최은영, 손은경,



 

-- 읽는 --



줄리언 바지니, 진실 사회

강대석,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꿈꾼 유토피아

나카노 노부코,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정유민, 아무튼, 트위터

요한 록스트룀, 마티아스 클룸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박홍순,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심리학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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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1-1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해요~~~~
“성춘향 탈옥 사건에 관한 증언들” 파일을 찾아 내던지, 아니면 다시 쓰던지.
그렇게 합시다!!!

syo 2018-11-13 18:32   좋아요 0 | URL
앗, 답정넠ㅋㅋㅋㅋㅋㅋㅋ
저기 서술해 놓은 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제가 쓸 자격도 권리도 없는 주제였어요 ㅎ
다시 살려내는 건 온당치 않다고 봄 ㅎ

오후즈음 2018-11-13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꼭 다시 쓰셔요. 방자전을 보며 저런 해석도 있구나 했는데 더 잼있습니다!

syo 2018-11-13 19:0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고랫적 아이디어지요.... 뭐 ‘해석‘이라는 단어까지 붙일 만한 게 못됩니다^-^
댓글저장
 

 

어차피 결혼이라는 것이 불구덩이니까, 그래서 니들이 나한테?

 

 

1

 

눈부시게 망하고 은퇴를 선언했음에도, 또 들어오는 축가 요청. 형식은 사회를 보든가 축가를 하든가, 니가 뭐 하나는 해줘였으나, ‘사회라는 단어는 거의 ㅅ흐로 들린 반면 축가!가아아아아쯤 되는 어감이었으므로 이거 실질은 축가 요청인 걸로 봐야지. 생각이 복잡해졌다.

 

한 번뿐인(거라고 추측되는) 결혼식에 자꾸자꾸 민폐를 끼치는 것이 미안하여 은퇴를 선언하긴 했으나, 고별무대를 생각해보면 와, 정말 그딴 망작으로 내 축가 역사를 매조지하는 것이 과연 바른 일인지, 늘상 입맛이 쓰긴 했어. 그리고 같이 다니는 다른 애들 결혼할 때는 해주고 얘한테만 안 해주면 그것도 좀 이상하잖아. 심지어는 내가 망하는 한 장면 한 장면을 얘도 싹 다 봤잖아, 같이 갔으니까. 그렇다는 건, 이 친구 역시 굉장한 각오를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게 아닐까?

 

뭐 이런 이유로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마지막으로 굿바이 스페셜 무대를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도대체 이놈들은 왜 굳이 나한테 축가를 요청해 제 앞길에 스스로 가시밭을 까는 건지 모르겠지만, syo는 불 보듯 뻔한 실패에 몸 날리는 불나방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가슴 뜨거운 사나이니까, 꺾었던 마이크를 다시 잡기로 하지. 으하하......

 

그리고 뭐, 안가고 남은 친구도 더는 없다. 이 그룹에서 미혼자는 딱 두 명 남았다. 근데 그 두 명이 나하고 내 여친이야...... , 나하고 여친하고 사귄다는 폭탄발언을 처음 이 그룹에 투하했을 때, 그때 쟤네는 죄다 솔로부대 소속이거나(혹은 그때 만나던 사람은 지금의 배우자가 아니거나, 쉿쉿.), 뭐 그랬는데, 저 애기들이 싸그리 다 장가를 갔네 그려...... 야들아 왜 이렇게 성급들 하냐. 10년은 사겨보고 결혼해야 되는 거 아니냐. 10년 그거 금방 가는데. 1년만 더 있으면 10년인데..... (이 대목에서 닭똥눈물을 흘린다)

 

 

  우주는 먼 과거나 먼 미래를 알 필요 없이 자신의 바로 앞에 놓인 관계만을 생각하면 한 걸음한 걸음 나아간다우주는 심지어 앞과 뒤도 구분하지 않는다단지 자신과 시간적으로 인접한 두 지점의 관계만을 생각한다인접한 두 지점은 나와 다르지만 무한히 가까운 장소이다우주는 그냥 성실히아니어찌 보면 바보같이    이웃과의 관계만을 생각할 뿐이지만그 결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간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나와 맞닿은 사람들의 관계를 하나씩 확인하고 공고히 해나갈 때먼 미래나 과거가 아니라 바로 앞의 일을 향해 법칙을 따르듯 가야 할 곳으로 정확히 한 걸음 내디딜 때 우리는 우주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김상욱김상욱의 과학공부

 

기자 종로 사거리에 30분 동안만 서서 가고 오는 청년 남녀들을 보면 얼굴 빛깔이 거칠고 기분이 우울하여 다니는 이가 대부분입니다또 몸가짐이 느릿느릿하여 물 찬 제비 같은 스마트한 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가 대부분입니다이렇게 우울하고 퇴색된 빛깔에 잠긴 청년들을 알아보면 대개가 결혼 아니 한 남녀들입니다결혼하여야 할 연령에 처하여 있으면서도 독신으로 지내는 이 불행한 남녀이분들을 다소라도 건져 줄 도리가 없을까요먼저 어째서 현대의 청년들이 결혼을 아니 하는가요또는 못 하고 있는가요?


이광수 여자들 생각은 잘 모르겠으나 남자들로 말하면 첫째 저 혼자 살기도 어려운 세상에 아내까지 얻어가지고는 생활을 도무지 하여나갈 도리가 생기지 않으니 대개 '금년이나 내년이나'하고 해마다 늦추다가 그만 혼기를 잃고 마는 이들일걸요.


나혜석 그러한 점도 있겠지만 묘령의 여성들로 말하면 선배들이 시집가서 사는 것이 대개 행복스럽지 못한 꼴을 많이 구경하고 났으니까 그만 진저리가 쳐서 애당초부터 결혼 생활에 들 생각을 하지 않는 까닭이 많지요실상 교양이 높은 신학문 받은 남녀로서 결혼에 들어 행복한 살림을 하는 이가 몇 명이나 되어야지요통계로 따져 본다면 행복한 이보다 불행하게 된 이가 더 많지 않은가요.


김억 교양의 유무보다 오히려 부부의 성격 차이에 죄가 많겠지요대개 신식 결혼 그 물건을 보건대결혼 조건으로 드는 것이 '아름다우냐'와 '학식이 있고 없고'와 '돈이 있고 없고'를 생각하여 보지마는 누가 하나 서로 성격의 조화를 염두에 두는 이가 없는 듯싶습니다이러니까 맞지 않는 부부가 되어 그 결혼은 몇 날 아니 가서 파탄이 생길 수밖에요.


김기진 그렇지요. '선배의 결혼이 나빴으니까 나도 아니하겠노라!' 하는 이유는 당치 않을 줄 알아요그야 실패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 반면에 행복스럽게 사는 사람도 어떻게나 많다구요그보다도 현재의 적령기에 있는 청년 남녀들이 결혼을 하지 아니하고 있는 까닭은 주위의 사정이 결혼할 생각을 당사자에게서 빼앗는 까닭이지요그것은 순전히 경제적 이유지요생활할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늘어 가는 때에 의식주의 보장을 주지 않고 어떻게 만혼의 폐해를 제거하려 들겠습니까문제는 늘 근본에 귀착이 되어요.

나혜석나혜석글 쓰는 여자의 탄생


타인의 작은 기쁨에 공감하기는 쉬우나 오히려 큰 기쁨에 공감하기는 어렵다때로 그것은 타인의 큰 슬픔에 공감하기보다 어렵다.

류동민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2



조용한 산책은 이리저리 얽힌 마음의 패턴 속으로 길을 잃고 빠져들 기회다이렇게 길을 잃음으로써 우리는 굳이 우주선을 만들지 않고도 우리에게 알려진혹은 알려지지 않은 우주 구석구석을 탐험할 수 있다.

로만 무라도프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26


서울에서는 꽤 걸었는데, 요즘은 뜸하다. 날씨나 코스의 문제도 있겠지만, 사실 걸으러 나가는 문턱을 넘으려면 일정량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 의지는 걷는 데서 나온다. 그래서 걷는 사람이 걷고, 안 걷는 사람이 안 걷는다. 자꾸 안 걷는 사람 쪽으로 가고 있다. 그럼, 내 우주선은 어떡해. 내 우주 구석구석은 어떡해.

 

다시 좀 걸어야겠다.

 

 

 

3



독자에겐 각자의 독법이 있으므로, 모든 책은 단수가 아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갈라져 읽히는 양태가 다 비슷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불편한 책은,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책은 과연 몇 갈래짜리 책일까? 크게 두 갈래? 아니면 천 갈래 만 갈래? 아니면 그건 서로 상관이 없는 요소들일까?

 

대중들이 불편하게 읽더라-고 알려져 있는 책이 별로 불편하지 않은 건, 무심하기 때문일까, 세심하기 때문일까?

 

 

 

-- 읽은 --



최유리, 나인완, 마구로센세의 본격! 일본어 스터디 초급 1

앤절라 카터, 피로 물든 방

녹색평론 편집부, 녹색평론 통권 163

이종서, 사무 인간의 모험


 

 

-- 읽는 --



고병권,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조관희, 루쉰 :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

박이문, 하나만의 선택

무코야마 다카히코, 다카시마 데츠오, 빅팻캣의 영어 수업 : 영어는 안 외우는 것이다

페르난두 페소아, 페소아와 페소아들

고미숙,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로만 무라도프,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마크 스틸, 혁명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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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11-12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가슴 뜨거운 사나이?

[피로 물든 방]은 표제작 <피로 물든 방>이 참 좋았는데, 뒤로 갈수록 좀 ‘????‘ 이렇게 되었어요. 뒤의 작품해설을 읽어보니 좀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그 해석 자체가 또 다 맞다고 볼 순 없을 것 같고요.

그런데 축가는.. 어떤 곡으로 할거예요?

syo 2018-11-12 09:59   좋아요 0 | URL
표제작은 작품 자체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뒤쪽 작품들은 ‘작가가 왜 이렇게 썼을까?‘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하더라구요. 그렇게 되기 시작하면 저는 보통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데, 글을 잘 써서 퉁.....

노래는 아직 미선정이에요. 이번에는 좀 쉽고 널리 불리는 걸로 골라서 성공 확률을 높이고 싶어요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8-11-1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들의 우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꺾었던 마이크를 다시 잡게 하네요. 곡 정해지면 꼭 알려줘요.

이 김상욱은 알쓸신잡 3의 그 김상욱 박사죠? 책 딱 한 권 읽었는데 우아~ 반갑네요^^

syo 2018-11-12 13:03   좋아요 0 | URL
이게 정인지 모험심인지, 제 친구놈들이지만 독특합니다. 그럴만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해지면 공지할게요 ㅋㅋㅋㅋㅋㅋ

김상욱 박사는 그 김상욱 박사가 맞아요. 저는 알쓸신잡 전에 저 책을 읽었는데 그때 생각했던 이미지랑 좀 달랐어요 ㅎㅎ 좀 칼같은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푸근했다

오후즈음 2018-11-12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다음 축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은근 있으신것 아닌가요? 어떤 노래 부르셨을지 궁금합니다~

syo 2018-11-12 13:04   좋아요 0 | URL
이제껏 불러서 망한 노래들은 세월의 쓰레기통에서 썩어문드러지도록 두기로 했고, 굿바이스페셜이 될 무대는 한번 기가 차게 연습해볼랴구요 ㅎㅎㅎ

목나무 2018-11-12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가로 어떤 노래 선곡하실지 무지무지 궁금한 일인입니다 ㅋㅋㅋ
10년 연애라니요. 쇼님도 여친님도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

syo 2018-11-12 13:06   좋아요 0 | URL
평범하고 쉬운 노래로 안전하게 갈 생각이에요 ㅎㅎ 말씀 듣고 보니 제 결혼식에서도 노래해야되니까 이번이 굿바이스페셜은 아니겠네요ㅎㅎㅎㅎ
아, 9년쯤 하니까 연애도 그냥 인생이 되네요...

북프리쿠키 2018-11-1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의 사랑과 결혼!!
응원합니다 ㅎㅎ

syo 2018-11-12 13:0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 언젠간 할 수 있겠지요 결혼인가 뭔가 하는 그거.....

붕붕툐툐 2018-11-1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syo님 노래까지 잘하시면 반칙 아니십니까??

syo 2018-11-12 13:0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노래까지 잘한다면 반칙이죠. 그래서 전 반칙을 하지 않았습니다. 으하하하......ㅠ

서니데이 2018-11-1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친구분도 많고, 그리고 인기도 많은 분이시군요. 살짝 부럽습니다.^^
주말 잘 보내셨나요.
날씨가 차갑습니다.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syo 2018-11-12 13:11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친구 적은 편이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친구도 별로 만들지도 못했어요..... 낯도 가리고.... ㅎㅎㅎ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기가 알아서 서니데이님을 조심할 거예요.ㅎㅎ

카알벨루치 2018-11-12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가 이야기하니 할 이야기가 있는데 길어질듯해 패스해야겠네요 축가할수 있을때 많이 하세요 나이들면 하고싶어도 못합니다 ㅎㅎ

syo 2018-11-12 18:05   좋아요 1 | URL
길어진 이야기가 못내 궁금한데요? ㅎㅎㅎㅎ
전 나이 들어도 별로 하고싶지 않을 것 같아요. 제 깜냥에 할 만큼은 한 것 같아요
댓글저장
 

 

씨앗은 열매의 안쪽에, 안쪽에, 더 깊은 안쪽에

 

 

1

 

알라딘 마을에서 가장 유력한(?) 페미니스트로 지목될 유력자(?) ‘님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가 그야말로 모태페미니스트라고 여길 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니었다!! 2011년에 쓴 어느 페이퍼에서 그는 무려 이 책은 나보다는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더 재미있게 읽힐 소설인 것 같았다.’라고 증언한 역사가 있다. 본인은 흑역사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저건 가능성의 역사로 읽힐 수도 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내부에 어떤 씨앗(거대한 떡갈나무가 되었다)을 품고 있을 수 있으니 아니라고 쉽게 단정하고 포기하지 않아야지- 하는 가능성.

 

범주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오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 분류하고 범주를 나누는 일은 자체로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세상 온갖 것들을 분류하고 서술해 놓은 백과전서라는 물건이, 인간의 이성이 팽창할 대로 팽창하고, 모든 진리를 다 파악하고 만물을 지배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팽배한 계몽주의 시대에 등장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어떤 작품을 읽고, 이 작품은 ㅇㅇ이로군, 쉽게 한 마디로 단정하고 싶은(그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고픈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기분이 들 때,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더 깊이 살펴봐야 한다. 이 작품은 페미니즘 소설이구만. 이 작가는 요즘 페미니즘 소설만 쓰는구만.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현미경을 내 안으로 돌려 더 깊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 분류 체계에서 페미니즘 소설이 아닌 소설은 어떤 게 있지? 그 대답이 비페미니즘 소설이라든지 혹은 그냥 소설이라는 식의 거대한 여집합이라면, 그것이 정당하고 무해한 분류일까?

 

요컨대, 페미니즘 소설이면서 연애소설일 수 있고, 퀴어 소설이면서 SF소설일 수 있고, 페미니스트인 퀴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노동문학일 수도 있다. 한 작품은 다양한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게 마련이고, 그 중 어느 특별한 입장이 읽는 이의 눈에 크게 들어온다면, 그것은 작가의 펜이 혼자 만든 산물이 아니라 독자의 돋보기와 협력한 결과다. 너무 대놓고 페미니즘이라서, 대놓고 성소수자 소설이라서 거부감이나 위화감이 들 수 있다. 들어도 된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작가의 주장이 홀로 기르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내면 역시 그 감정을 밥먹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거기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사람이 자의식에 사로잡혀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행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그럼에도 나는 사람은 그가 보여주는 모든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요말하기도 행위의 한 형태예요그게 하나의 모험이죠다른 모험으로는우리가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는 게 있어요우리는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에 우리 자신이라는 가닥을 엮어 넣어요어떤 결과가 나올지 우리는 결코 몰라요우리 모두는 이런 말을 하라고 배웠어요. "주여저들을 용서하소서저들은 스스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이건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에 들어맞는 말에요무척이나 간단하고 명확한 말이죠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요.

한나 아렌트한나 아렌트의 말


어떤 인간의 문제도 선입관 없이 다루기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문제제기 방법이나 그 관점은 이미 논자의 관심에 어떤 순위가 존재함을 보여준다성질에 대해 말할 때는 반드시 가치관이 작용한다이른바 어떤 윤리적 토대 위에 서지 않는 객관적 기술이란 없다어딘가에 드러날 원리라면 숨기려 애쓰지 말고 처음부터 제시하는 편이 좋다.

시몬 드 보부아르제 2의 성


세상에는 베이비시터 일을 할 만큼 아이를 좋아하는남자처럼 생긴 레즈비언도 있는 법이었다어떤 이성애자들은 그런 베이비시터는 없다고 주장할지 몰랐다그리고 어떤 레즈비언들은 그런 레즈비언은 없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몰랐다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 양쪽에 발을 한쪽씩 걸치고 살아보려 애쓰는 것이 남들 보기에는 그저 우스꽝스럽거나 안쓰러울지도 몰랐지만승혜 자신에게는 몹시 혼란스럽고매 순간 이질감이 찾아들고결론적으로 제법 버거운 일이었다그리고 승혜는자신이 남들의 시선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직은 되지 못했음을 알 고 있었다그 점이 미오와 승혜의 다른 점이었다하지만 그렇다 해도승혜는 그런 사람이었고있을 수 있다거나 있어야 한다거나가 아니라 이미 그냥 그렇게 세상에 '있었다'. 그래서 승혜는자신이 이상하다거나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수록 더 꿋꿋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남들이 무어라고 하든 두 땅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서 있어야 했다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했고그래서 세상에 자신만의 작은 쓸모를 만들어야 했다설령 그 '쓸모'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윤이형승혜와 미오

 


 

2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넓게 퍼지는 여명을 향해 달렸다남편이 꽃집에 나를 위한 하늘을 주문하기라도 한 듯 하늘의 절반은 겨울 꽃다발같이 장미의 핑크색과 참나리의 오렌지색으로 줄무늬졌다멋진 꿈처럼 내 주위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바다모래바다로 녹아드는 하늘-안개 낀 파스텔색의 풍경은 계속 녹는점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드뷔시의 음악그를 위해 내가 연주한 연습곡찻잔과 작은 케이크가 놓인 가운데 그를 처음 만난 공주의 살롱에서 그날 오후 내가 연주했던 환상곡이 모든 것이 녹아드는 하모니를 지닌 풍경고아였던 난 적선받듯이 고용되어 그들의 소화를 돕는 음악을 연주했다.

앤절라 카터피로 물든 방, 20 


언제나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문장이다. 그래서 우선 문장에 대해 말해야 한다.

 

문장이 지나가고(혹은 채 지나가기 전에) 문장의 테두리 밖에서 다음 느낌이 밀려들어오지만, 언제나 내게 처음은 문장이다. 이 문장을 만들었을 순간과, 이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되기까지 두텁게 축적했을 작가의 수많은 밤들을 생각하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문장을 뒤적거린다. 접속사와 콤마를 눈여겨보고, 조사를 이리저리 바꿔 끼워보고,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의 출현에 탄식하다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소리 내어 몇 번 읽어보기도 하고. 번역된 작품 속 문장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 따질 수도 있지만, 따지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중요한 것은 앤절라 카터 문장의 정체성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지면 위에 새겨진 문장을 챙겨먹는 것이니까.

 

꽃집에 나를 위한 하늘을 주문했다는 표현을 만들어내는 건 얼마만큼 품이 드는 일이었을까. 꽃과 꽃의 색을 잘 알고 아끼는 사람이라면, 하늘을 보며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꽃집에서 사왔나? 반면 꽃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저 표현에 닿기까지 반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겨울꽃다발이 어떤 꽃다발인지 알지 못하는 나는, 그 죄로 저 문장을 완벽하게 느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녹는다는 이미지로 물결치는 그 다음 문단은 어떨까. ‘바다, 모래, 바다로 녹아드는 하늘까지 쓰는 순간 이어지는 문장들은 이미 결정된 거라고 상상해본다. 화자의 생각은 자연스레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녹아드는데, 그 키워드 역시 녹음이다. 드뷔시의 환상곡, 찻잔과 케이크, 공주의 살롱, 오후, 하모니와 같은 단어들의 배치를 눈여겨봐야지. ‘드뷔시의 음악이라는 단어에서 열리고 사실 똑같은 말인 내가 연주했던 환상곡으로 닫히는 구조 가운데 찻잔, 작은 케이크, 공주, 살롱, 오후가 포획되어 있는 문장이 어떻게 전체적으로 녹아드는 하모니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봐야지. 그리고 이 멋진 꿈처럼아름다운 풍경의 끝자락에 갑자기 곤두박질치는 문장, 고아, 적선, 고용, 소화를 돕는 음악 같은 단어를 품은 현실적이고 차가운 문장을 배치함으로써 읽는 이의 감정을 조작하는 작가의 능란한 손놀림에 주목해야지.

 

살펴볼 만큼 특별한 문단이어서 저 인용문을 뽑은 것이 아니다. 그저 앤절라 카터의 문장을 칭찬하는 이 글을 쓰겠다고 아무렇게나 책을 펼쳤는데 저 문단이 걸린 것일 뿐. syo가 소설을 쓸 건 아니지만, 뭐가 됐든 글은 찌끄리니까, 배울 문장은 좀 배워야 하니까.

 

 

 

 3



이런 가해와 피해의 무한 반복은 마치 프랙털 구조 같다패권국이 속국을 지배하고 속국의 주류 친패권 세력은 비주류를 억압하며일본의 경우 다시 일본 본섬과 부속된 오키나와나 오가사와라 같은 작은 섬들 사이에 위계가 수립되며 본섬의 이익을 위해 부속 섬들은 분해되고 추방당한다한반도도 전리품처럼 대국들 패권경쟁의 희생물로 분단당하고 전쟁의 비극을 겪었으며 70년이 넘도록 여전히 그 상태를 재생산하고 있다미일동맹의 하부체제로 편입된 반쪽 한국에선 주류 친미·친일 세력이 비주류나 반대자들을 수십 년간 억압했고그 체제 확립에 이의를 제기했던 섬 제주도의 다수 주민들이 4·3 항쟁에서 보듯 무참하게 유린당했다.

한승동역사의 안개를 뚫고 가는 평화 프로세스


권력적 가해의 낙수효과는 경제적 낙수효과와 완전히 다른 것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강해진다. ‘아래라는 것은 늘상 좋지 않은 꼴만 당하는 법이다. 꿀은 위에서 다 빨아먹고, 똥은 아래로 싸는 것이 낙수라는 기제의 본성이다.

 

저런 메커니즘의 가장 일상적이고 하찮은 구현방식이 이른바 내리갈굼이겠다. 내리갈굼은 군대에서는 거의 문화수준에 가깝게 정착되어 있고, 그 밖에도 대학이나 직장처럼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집단에 속해 있노라면 심심찮게 당하거나 가하는 폭력이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식민지 남성성에 대한 담론에서 이 메커니즘을 동력으로 파악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저런 지적이 너무 당연하고, 누구나 다 아는 바라서 식상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있다. 사실, 식상하다고, 식상하므로 저건 이미 죽은 담론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자격이 필요하다. 아픈 자의 자격. 그런 자격이 없는 자의 비판은 비판의 탈을 쓴 불평일 뿐이다. 그렇다면 자격은 누구에게 있을까? 없다! 관료제, 신자유주의, 가부장제, 심지어는 대의제 민주주의까지, 우리 주변에서 동작하는 모든 시스템은 크건 작건, 둔중하건 세밀하건, 모두 저마다의 위계구조를 저변에 깔고 동작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어느 구조에서는 갈굼을 당하는 자인 동시에 또 다른 구조에서는 갈구는 자로 기능한다. 말 그대로 기능한다. 구조는 인간을 기능하게 만드니까 구조고, 그 안에 포획된 인간은 개인적 도덕심으로 강하게 무장해도 구조를 이기지 못한다. 인간은 24시간 내내 온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도덕적 품성을 유지할만한 신적 역량을 갖추지 못했고, 잠깐 방심하면 구조는 그 방심을 기가 차게 알아채고 틈새로 파고든다. 누구나 깨어 있는 인간이고 싶어도, 사람은 72시간 연속으로 깨어 있을 수 없는 을 가진 한낱 동물인 것이다. 따라서, 구조가 침몰하고 그 자리를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수평적 체제가 대체할 때까지, 우리는 저 식상한주장을 끝없이 끝없이 되풀이해야 한다. 식상함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날, 그날은 곧 저 주장이 겨냥하는 패권을 지닌 이들이 모두 소멸된 날일 것이므로, 저 주장은 우리의 손을 빌릴 것도 없이 수명을 다해 자동 폐기될 것이다.

 

 

 

 

4



교코는 그의 병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를 알게 되자학대를 당하더라도 결코 헤어지지 않을 각오로 소세키의 곁으로 돌아왔다소세키는 한동안은 진정됐지만 가을이 깊어질 무렵부터 다시 고함을 지르고 물건들을 내던지기 시작했다교코에게는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들볶았다그러더니 종당에 가서는 장인에게 연을 끊자는 편지까지 보냈다그의 내면은 환각과 환청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는데그 모든 원인이 교코에게 있다고 생각된 모양이다이런 미친 상태에 관해서는 교코의 회상에 자세히 나와 있다그런 증상이 막 시작될 즈음인 11월 초순교코는 셋째 딸인 에이코를 출산했고소세키는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도가와 신스케나쓰메 소세키 평전, 170


그의 내면에서는 항상 비정상적인 것과 정상적인 것이 아슬아슬한 상태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지만그것을 막상 문자화할 때는 비정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도록 표현될 수 있었다스가 도라오나 가노 고키치 등 절친한 친구들이라면 간혹 그의 병든 마음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그가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였던 것은 교코나 후데코 등 처자식을 대할 때로 국한됐다.

_ 같은 책, 176


 

, 이 아저씨, 안 풀릴 땐 개차반이었구나...... 매사에 조심해야겠다. 이쪽도 지금 되게 안 풀리는 중이니까.

 

 

 

 

-- 읽은 --



남경태, 종횡무진 서양사 2

이경미, 잘돼가? 무엇이든

도가와 신스케, 나쓰메 소세키 평전

조한혜정, 선망국의 시간

 

 


-- 읽는 --



녹색평론 편집부, 녹색평론 통권 163

앤절라 카터, 피로 물든 방

고병권,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최유리, 나인완, 마구로센세의 본격! 일본어 스터디 초급

페터 알텐베르크, 꾸밈없는 인생의 그림

스벤야 아이젠브라운,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심리학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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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11-0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북플을 보니 ‘읽고싶어요‘ 표시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내가 읽은 게 앙니라는건데... 내가 뭔가 여성철학자의 글을 읽고 음, 한 번 더 읽어야 이해가 되겠다 .. 했던 게 있었는데 뭐였지? 하고 지금 제 서재에 가서 엄청 페이지를 넘기다가, 그것이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모든 사람은 혼자다]라는 책임을 알아냈어요. 보부아르 읽고 한나 아렌트라고 생각... 하아- 무지의 담은 얼마나 높은가요.

아무튼, 한나 아렌트의 책 담아갑니다. 제가 무지하여 한나 아렌트에 대해 잘 모르는데, 요즘 알고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은 페이퍼입니다, 쇼님.

syo 2018-11-09 12:57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의 말>, 다락방님이 어떤 반응이실까 궁금하네요. 보부아르와는 좀 결이 다른 게, 저 책에는 이런 대목도 있어요.

사실 나는 상당히 고루한 사람이에요. 세상에는,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여성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들이 있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어요. 여자가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모습은 그냥 보기가 좋지 않아요. 여성스러운 존재로 남아 있고 싶은 여자는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마땅해요.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여부는 나도 몰라요. 나 자신은 거의 무의식적으로-아니, 거의 의식적으로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네요-늘 이런 사고방식에 부합하게 살아왔어요.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그 자체로는 내 인생에서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어요. 단순하게 말해, 나는 늘 내 마음에 드는 일들을 해왔어요.


페크pek0501 2018-11-10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이 니체가 이렇게 썼지요.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 사람의 일부이다.˝
각자 자기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는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세상을 본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이 개입되지 않고 온전히 보는 세계란 있을 수 없음입니다.

<녹색평론> 163호를 드디어 사셨군요. 한승동 님의 인용문 다음에 (중국의 역할과 ‘기억의 정치‘)라는 글이 이어지지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저도 이 책을 샀으니까요. 히죽...

syo 2018-11-10 17:46   좋아요 1 | URL
페크님 덕에 언제 한 번 읽어야지 읽어야지만 반복하며 그간 미뤄왔던 <녹색평론>을 읽었네요 ㅎㅎㅎ
녹색 책들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봐야겠어요.

제가 사는 곳은 모처럼 날씨가 좋았는데, 페크님 좋은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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