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소아와 스피노자가 나한테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죠?
1
레드불 오리지널에 에스프레소 투샷 섞어 마셨던 새벽이 기억난다. 거짓말이다. 그 지옥에서 온 탕국을 마셨던 기억은 나는데 제정신이 아니었으므로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거의 기억이 없다. 그래봐야 카페에서 몇 시간 떠들고, 노래방에서 몇 시간 부르고, 햄버거 주워먹으면서 또 몇 시간 떠들고 그랬겠지. 그 새벽만 버티려는 욕심이었는데 그 다음 새벽까지 무슨 수를 써도 도대체 로그아웃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떻게 잠이 들었다 깨보니 다시 또 그 다음 새벽이었던...... 그때 내성이 생겼는지, 이제 카페인 욕조에서 접영을 하다가도 잘 수 있는 체질이 되었지만.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라, 여러분
페소아와 스피노자를 동시에 읽는 일은 위험합니다.
2
생각한다는 건 / 바람이 세지고, 비가 더 내릴 것 같을 때 /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 (11쪽)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한 번도 본적 없으므로. / 내가 그를 믿기를 원한다면 / 당연히 그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네겠지 / 그리고 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하겠지 / 나한테 이렇게 말하면서, 나 여기 있소! // 하지만 만약 신이 꽃이고 나무이고 / 언덕이고 태양이고 달이라면, / 그렇다면 나는 그를 믿는다. / 그렇다면 나는 매 순간 그를 믿고. / 내 삶 전부가 하나의 기도요 미사이고, / 눈과 귀로 하는 성찬식이다. // 하지만 만약 신이 나무이고 꽃이고 / 언덕이고 달이고 태양이라면. / 뭣하러 그걸 신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 나는 그것들을 꽃과 나무와 언덕과 태양과 달이라 부르겠다, / 왜냐하면, 만약 신이 태양과 달과 꽃과 나무와 언덕을, / 나 보라고 창조한 거라면, / 만약 그가 나무와 언덕과 달과 태양과 꽃들로 / 내 앞에 나타나는 거라면. / 그건 내가 신을 나무와 언덕과 꽃과 달과 태양처럼 / 알기를 바라는 것일 테니까. (25–27쪽)
나는 마치 금잔화를 믿듯 세상을 믿는다, / 왜냐하면 그걸 보니까.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지만 / 왜냐하면 생각하는 것은 이해하지 않는 것이니...... / 세상은 생각하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 (생각한다는 건 눈이 병든 것) / 우리가 보라고 있고, 동의하라고 있는 것. // 내겐 철학이 없다, 감각만 있을 뿐...... / 내가 자연에 대해 얘기한다면 그건, 그게 뭔지 알아서가 아니라, / 그걸 사랑해서, 그래서 사랑하는 것, / 왜냐하면 사랑을 하는 이는 절대 자기가 뭘 사랑하는지 모르고 / 왜 사랑하는지,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 사랑한다는 것은 순진함이요, / 모든 순진함은 생각하지 않는 것...... (15–17쪽)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 95쪽까지의 페소아는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형이상학 꺼지라 그래. 감각도 모르는 것들이. 개념나부랭이나 조작하며 고상한 척 뇌 속 자위하지 말고, 봐. 들어. 만져. 그게 아는 거야. 그게 진짜로 아는 거라고. 진짜로 알아야 사랑할 수 있지. 정말로 아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넌 네 머릿속만에 있는 그 허깨비들을 사랑하니? 만질 수도 없는 그것들을? 그게 사랑이 돼? 안 되지? 그런데도 너 그거, 안다고 할래?
너무 대책 없이 막 좋은 거 아닌가. 내가 아는 것만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것만 알다가 가기에도, 인생은 너무나 짧다. 진짜로 알고, 진짜로 사랑하려면. 페소아가 한 말이 꼭 이 말은 아닐 수는 있겠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내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생각이 이 순간부터 내가 수없이 만나야 할 갈림길에서 어제와는 다른 선택을 하도록 나를 흔들고 바꾸어 버렸는데.
어쩐지 요즘은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책을 많이 만난다. 마치 저 위에서 누가 보고 정해준 것처럼. 넌 이제 아는 걸 알 때가 되었어. 네가 아는 아는 게 아는 게 아닌 걸 아니?
3
스피노자와의 상성은 항상 좋았다. 대충 들으면 개소리처럼 들릴 말도 개소리처럼 듣지 않도록 오래 앉아서 읽게 만드는 매력이 스피노자에겐 있었고(최소한 syo에겐 그 매력이 작동했고,) 그리하여 젊은 날 자신을 건축하는 데 스피노자의 손을 꽤 많이 빌렸다.
철학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철학을 잘 알지는 못한다. 내가 무엇인가를 잘 안다는 사실은(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페소아의 시에서도 그랬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낼 수 있겠지만, 그 무엇인가가 철학이라면, 정말로 철학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철학으로 철학을 설명하지 않고 철학으로 일상을 설명할 것이라고 syo는 생각한다. 재미있게도, 그렇게 철학으로 잘 설명된 일상이 다시 철학을 잘 설명한다. 이 책이 선사한 그 기막힌 되먹임을 통해 스피노자를 조금 더 잘 알게 되면, syo도 스피노자를 통해 syo의 어떤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돌(특히 남자 아이돌)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르던 꼰대 syo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방탄소년단만큼은 찰떡같이 구분할 수 있게 되었는가, 같은.
4
이를테면, 전자계산기 등장 이전의 다양한 계산 도구들이 지닌 장단점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주판의 단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특히 고양이에 대한’ 취약성. 읽는 순간 께느른한 표정의 러시안 블루 한 마리가 두 시간째 세금 계산에 몰두하고 있는 집사의 책상 위를 지나가면서 그 푸른 꼬리로 주판을 툭, 건드려 모든 걸 망쳐놓는 장면이 떠올랐다. 집사가 그야말로 뭉크의 그림 속에 나오는 표정이 되어 괴성을 지르는데, 그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난리를 치는가 인간, 이 하등한 동물이여, 하는 얼굴로 슬쩍 한 번 돌아봐주면서도 여전히 우아한 발걸음을 옮기는 고양이.
그러고 났더니 갑자기 읽기가 따뜻해졌다. 쉽고 따뜻한 책이다.
5


페터 비에리의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은 얇지만 많은 말을 던지는 책이어서 다 읽고 난 뒤에도 생각의 꼬리가 길게 이어졌다. 특히 문학적 언어의 특징을 ‘정확함’이라고 짚은 데서는 묵직하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syo는 그간 문학에 ‘아름다움을 위해 다소의 정확함을 희생시키는 일이 허락된 글쓰기’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동시에 아름다운 문장이면 더할 나위가 없을 글쓰기’ 정도의 자리를 매겨 온 것 같다. 정확해서 아름다운, 정확하므로 아름다운 글이 문학적 문장의 본령이 아니냐는 지적은 과격하지만 날카로웠고, syo에게는 ‘아름다움’과 ‘정확함’이라는 두 줄의 잣대를 다시 세워보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로 다가왔다. 침대에 누워도, 책상 앞에 앉아도,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리고 윤성희를 읽었다. 정확해서 아름답다는 것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그 윤곽을 더듬어 나가는 읽기가 되었다.
-- 읽은 --




발타자르 토마스,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윤성희, 『첫 문장』
폴 록하트, 『숫자 갖고 놀고 있네』
미하엘 보르트, 『철학자 플라톤』
-- 읽는 --






존 몰리뉴,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야마모토 토시로, 『문과생도 이해하는 확률과 통계』
케네스 미노그, 『정치』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요코가와 준. 『내가 사랑한 물리학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