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육즙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나이가 들수록 syo가 더위를 못 참고 더 괴로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수록 더위가 syo를 못 참고 더 괴롭히는 것인지 헷갈린다. 오늘날, 피서避暑라는 말은 꺼지라 그래. 오직 피난만이 있을 뿐이다.

 

옛 성현들께옵서는 아무리 무더워도 마음을 여미고 책상 앞에 정좌하여 공자 왈 맹자 왈 하시면서 사랑도 잊고, 이별도 잊고, 눈물도 잊고, 덤으로 더위도 시원하게 잊으셨다고들 한다. 진짤까? 공풍기 맹어컨, 과연 그게 얼마나 시원한지, 다음 주에는 논어 맹자 한 번 읽어 볼까 싶다.

 

180808 - 180812 20권


 

1. 사랑하는 개

- 박솔뫼에 대한 syo의 기본적 입장은 이랬다. 문장에 주어가 없거나, 주술 호응의 의지가 없거나, 주제가 없거나, 있는데 무슨 생각인지 알려줄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내게 읽는 눈이 없거나, 뇌가 없거나, 그것도 아니면 새 시대에 발맞출 감각이라도 없거나. 박솔뫼와는 정말 끝내 인연이 없거나,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거나.

- 그래도 단편은 장편보다는 여러 모로 인자하다. 이런 망할, 나란 놈은 도대체! 하면서 책을 던져버리는 슬픈 사건은 생기지 않는다심지어 이제는 이게 다 은근히 귀여운 글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하고 타박하는 성난 syo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뭘 또 그래, 박솔뫼잖아, 하며 누그러뜨리는 새로운 syo가 생겨났다. , 인간이란 결국 이런 식으로 길들여지는 동물이지.


2. 아무튼, 외국어

- 세상에는 정말, 에세이를 잘 쓰는 사람이 많다- 아무튼 시리즈를 하나하나 읽어 나가면서 깨닫는 가장 통렬한 진실이다. 기쁜 진실이다. 어디서 저런 사람들을 자꾸 찾아내는 거지?

- 쓰고는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주 한다. 아주 가끔 진실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헛소리다. 쓰면 쓴다. 못 쓰니까 못 쓰는 거지. 소재가 아니라 실력 탓- 아무튼 시리즈를 하나하나 읽어 나가면서 깨닫는 두 번째로 통렬한 진실이다. 슬픈 전설이다.


3. 술어집

-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리 유용하지도 않다. 철학용어 사전으로서 그리 엄밀하지도, 풍부하지도 않아 보인다.

- 인용되는 최신의 문헌이 30년도 더 전의 책들이다. 지식이 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3000년이 지나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만 읽으면 충분하다고 우기는 일이 오만이듯이, 30년이 지나면 그만큼의 공백, 그만큼의 읽을 것들이 생기는 법이다.

 

4. 여하튼, 철학을 팝니다

- SNS 글장사가 철학을 가지고도 펼쳐지는구나. 깊이가 없는 게 단점이지만, 대신 피식이 있는 게 장점이다. 퉁 치면 남는 장사일까, 밑지는 장사일까.

- 깊이가 없다고 대놓고 말해도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 그것은, 이 책이 철학적 지식을 정말 눈곱만큼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다. 예를 들면, 작가는 <여성스러운 것과 여성 혐오 사이> 라는 꼭지의 글에서 너 그렇게 하면 남자들이 안 좋아해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혐오를 단호하게 지적하고 있지만,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는 꼭지에서 그림 작가는 분홍 원피스에 파란 백을 왼쪽 어깨에 맨 붉은 입술의 아가씨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뜨거운 거 주세요. 라떼에 우유 빼고 주시던지.” 라고 말하는 삽화를 그려 넣었다. ’형용 모순에 대해 설명하는 꼭지이기 때문에, 삽화 속 저 발언자가 여자, 그것도 겉치레만 요란하지 골빈 년이라는 혐오의 스테레오타입을 재생산하는 모양새의 여자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여자를 그려 넣은 것일 수도 있는데 비약이 심한 거 아니냐고?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오해를 막기 위해 그림 작가 스스로 여자 원피스 아래쪽에 써 놨다. “차도녀라고글 작가가 직접 그린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한 권의 책에서 글과 그림에 모순이 발생하면 우리는 의심하게 된다. 책을 파는 데는 진심이 별로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쯤에서 책을 탁, 덮었다.

 


5. 죽은 자로 하여금

- 처음 만난 이후로 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편혜영은 계속 편혜영이다. 편혜영은 시간이 지날수록 꾸준히 더 나은 편혜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편혜영이다. 난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 어떤 고통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부터 온다. 또 어떤 고통은 그저 작은 선택으로부터 오지만 결국 되돌아가 그 선택을 잘못으로 바꾸어놓기도 한다. 과오에 의해서건 조심성 없이 내린 결정에 의해서건, 일단 굴러가기 시작한 고통은 시간을 몸에 붙이며 그 몸피를 불린다. 이 국면과 전혀 무관한 과거의 다른 잘못이나 선택들까지 소환하여 어떻게든 우리가 괴로워해야만 하는 명분을 세운다. 따끔함을 느꼈을 때, 이미 늦었다. 아픈 데가 어딘지 여기 저기 만져보고 짚어보는 이의 손에 잡히는 것은 좌절뿐이다. 설령 운이 좋아, 우리에게 가해진 이 모든 타격이 타인이나 구조의 간악한 음모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더라도, 그냥 그뿐이다. 보상 같은 건 없다. 일단 우리를 덮치기로 마음먹은 고통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알몸이다. 이유 없이 죽은 자다.

 

6. 과학자의 철학노트

- 진짜 제목대로다. '과학자(스테레오타입 이과생)'가 만든 철학 '노트'. 철학 지식에 대한 필기 노트 이상의 무엇이 되기는 어려운 책인 듯. 물론 압축적 지식을 획득하여 어디 가서 뽐낼 목적으로 읽기에는 충분하다. 고수들에게 걸리지만 않는다면. 다행히도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전공자가 아닌 이상 철학 고수를 만나는 일이 되레 어렵다. 그 사람들은 나돌아 다닐 시간을 아껴 들뢰즈와 데리다를 읽는다. 그러니까, 지식을 뽐내기 위해 이 책을 고른 당신은 전공자들만 피하면 됩니다.

 

7. 뷰티 인 리딩

- 자기계발서가 즐겨 구사하는 전략을 도입한 것이 독특하긴 하나, 결국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별다른 독창성이 없고, 문체 역시 거기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평범한 책인 것인데, 그래도 굳이 장점 하나 꼽아 보자면, 좀 별론데, 싶을 때면 어떻게 알고 독서하는 사람이 찍힌 사진이 빵, 하고 등장한다. 그러면 그 사진을 좀 오래 보면서 어쩐지 마음이 낙낙해지는 것이다. 책 읽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 그것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고질병이다.

- 당신이 알고 싶을 때, 당신을 좀 더 서둘러 사랑하고 싶을 때, 나는 당신을 어떤 책 읽는 모습 앞에 데려다 놓겠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당신의 입가를 바라보겠다. 그곳에서 미소를 찾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여, 집중하여 책 읽는 모습을 만나면 당신은 밀물처럼 당신을 덮치는 미소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8. 사흘 그리고 한 인생

- 피에르 르메트르의 책을 처음 읽었다. 이제는 찾아서 읽게 생겼구나.

- 심리묘사가 좋다고 한다. 그렇다. 특히 죄를 지은 아이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고. 그도 그렇다. 그러나 syo가 보기에, 그가 제일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은 섹스를 둘러싼 여러 상황에서의, 그러니까 섹스 한참 전, 직전, , 직후, 한참 후 남자의 심리인 것 같다. 생동감 넘치는 찌질함이랄지, 찌질함 넘치는 생동감이랄지 뭐 그런 것이 느껴진다. 도스토예프스키가 21세기에 돌아와 글을 써도 이 영역만큼은 르메트르를 쉽게 꺾지 못할 것 같다ㅋㅋㅋㅋㅋ아닌가? 뭐야, 또 나만 쓰레긴가?

- 하여간, 마음의 요동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그 요동이 인간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촘촘하게 설명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 힘은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몰입하도록 독자에게 채찍을 친다.



9. 세상에서 가장 쉬운 양자역학 수업

- 첫 페이지를 딱 열면, 21세기 지식자본주의 성공의 화신인 저커버그가 딸에게 양자역학 책을 읽어주는 장면을 상기시키고, 그가 칭화대학교에서 강연하며 양자역학 공부가 자신의 사고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그렇다면 우선 고전 물리학의 세계로 한 번 빠져 보자면서 대뜸 뉴턴의 인생역경을 묘사한다. 이쯤 되면, 이미 syo의 눈은 가늘고 미간에는 주름이 잡힌다. 마음은 싸늘하게 식는다. 표지에는 마윈의 스승이라는 저자의 신분증명과 , “마윈과 마크 저커버그는 왜 양자역학을 공부했을까?” 하는 글귀가 대놓고 박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양자역학 수업이라는 제목 자체도 참 애쓴다는 느낌을 자아내지만, 그 가운데 세상쉬운위에 방점까지 탁탁 찍어 놓은 것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 날 것만 같다. 심지어 과학책에다가도 이런 짓을 한다는 데에 빡쳤다가, 반대로 이런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과학책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반증인가 싶어서 목이 멘다.

- 읽어보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과학에 있어서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훨씬 못하다(실제로 어른들은 돈 버는 일과 무관한 대부분의 지식에서는 아이들보다 약하다. 18세는 대체로 미분을 할 줄 알지만, 38세의 팔 할은 미적분을 인간의 무식함을 질타하기 위해 지옥에서 만들어 낸 단어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이 책은 어른들에게도 꽤 괜찮은 책이다! 간결하고 친절하다. 앉은 자리에서 빠바박 읽고 휘리릭 던질 수 있는 책이다. 최소한 쉽다는 부분에서만큼은 제 이름에 스스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는 책 같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두껍고 어려운 양자역학 수업이라는 책을 읽어도 양자역학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란 어려운 마당에, 큰 기대는 가지지 마시길. 실제로 양자역학 자체보다, 양자역학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자잘한 에피소드를 읽는 재미로 보는 책이다.

- 그러니까, 1. 기대하지 마시고, 2. 웬만하면 빌려 보시라는 말씀.

 

10. 아무튼, 쇼핑

- 다양한 주제, 그리고 그 주제에 맞춤하여 더욱 빛나는 문체, 그리고 그 문체의 주인들. 정말 이 시리즈가 품고 있는 다양성의 미덕이란 잠깐 칭찬하고 말 수가 없다그러다보니 정말 취향과 어긋나는 경우 공감이 1도 안 되는 책마저 나온다. 요게 그랬다. 대단하지만, 관심 없달까.

- 아무튼 시리즈를 읽고 있으면 syo는 아무튼 무엇을 쓸 수 있으려나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튼, 빨갱이? 아무튼, 입문서? 아니면, 아무튼, 알라딘?

 

11.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안부를 물었다

- 편지를 쓰는 일이 힘들다. 편지지를 앞에 놓고 앉으면 공황장애에 가까운 증상이 일어나는 때도 있었다. 두 줄을 쓰고 나면 비어있는 다음 줄이 엄습하여 마음이 다쳤다. 그러면 하루를 묵히고 돌아와 다음 두 줄을 만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걸려 한 장의 편지를 쓰면, 그 글은 참 보기 싫은 꼴일 때가 많았다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여과 없이 꺼내는 일이 발가벗는 일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퇴고의 과정 없이 한달음에 써내려간 글이 나의 바닥을 드러내 보일까 두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 없이 편지는 편지가 되지 않았다.

- 그 형식 때문인지, 다른 어떤 글보다도 편지야말로 내가 아닌 당신을 위한 글이라 우리는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편지를 쓰고, 또 읽다보면 금세 느낀다. 편지는 누구보다 나를 위한 글이고, 내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글이고, 필연적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의 안부를 묻는 글이다. 곧 나의 이름을 부르며 당신의 안부를 묻는 답장과 마주하면,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안부를 묻는 한 쌍의 닮은꼴이 된다. 겹친 그림자처럼 나를 교환하여 우리를 만든다.

 

12. 아무튼, 스웨터

- 스웨터라는 제목만 받아들었을 때, 이 책이 내가 찾던 그 책임을 바로 직감할 수는 없었다.

- 3부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긴 시가{시라고 부르기엔 긴 그 글을 나로서는 시라고 할 수 밖에 없는데, 나로 하여금 평생 마음 한 곳에 김현이라는 이름을 책갈피처럼 끼워 놓은 채 살도록 만든 그의 첫 시집 글로리홀에서 내게 발견된 아름답고 알 수 없는 글들[, 얼마나 그 시들을 사랑(알 수 없는 것들 중에는 알 수 없으므로 사랑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으므로)했었는지]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좋았다.



13.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 이 책은 어둠에 대한 우리의 낡은 생각을 걷어갈 것이다.

- 뭐 팔을 벌려 크게 원을 그리고 거기서 뭘 빼라는 둥, 모든 순간이 다 누구누구였다는 둥의 글귀들이 모여 있는 책을 오랫동안 혐오해왔다. 그런 아름다워 보이는 글 몇 조각을 지어내는 것은 너무도 쉽기 때문이다. 몇 개의 패턴, 몇 개의 리듬, 남들이 잘 쓰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몇 개의 단어만 손에 움켜쥐면 무한히 증식시킬 수 있는 그런 글귀는 syo도 하루에 수십 개는 만든다. 그리고 그 중에 덜 못난 놈 한두 개 골라 일기장에 띡 박아놓는 것이다. 걔들은 거기가 딱 어울린다

- 겉멋 든 문장 한두 개를 중심으로 몇 줄의 글을 앞뒤에 붙여 놓고는, 독자들로 하여금 처한 현실이건 가진 추억이건 각자 뒤적거린 다음 알아서 공감하라고, 마치 토막 낸 갈치 던지듯 글을 툭 던지는 그런 글들을 돈 받고 파는 건 감정/시간/종이낭비방조죄는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그러나 그렇게 싫어하는 유형의 책처럼 보임에도, 글의 경지가 여기까지 이르면 그냥 눈 멀뚱히 뜨고도 양 싸대기 다 내주는 수밖에 달리 도리 없는 듯. 이 듬성듬성한 책, 띄엄띄엄한 문장들에 왜 이렇게 자꾸 걸려 넘어지는지. , 인정. , 아름답고 처연하다. , 시인, 진짜 내가 숭배하는 인간들.

- 그리고 이제 알았다. 누군가에겐 더없이 유치해 보이는 글에 다른 누군가는 소스라쳐 감동하는 이유가, 글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읽는 이의 눈높이에 있다는 사실을. 모든 독자에게 세상 하나뿐인 우주는 바로 자신이다. 하여, 나보다 너무 높아 보이지도 않는 글은 지나친 글이 되고, 내가 해도 하겠다 싶을 만큼 손쉬운 글은 모자란 글이 된다. 내가 고개를 들면 볼 수는 있지만, 손을 뻗어도 닿을 것 같지는 않은 높이에 있는 글, 우리는 그런 글을 숭배한다.

- 우리가 신용목을 모르는가. 그는 황현산 선생님이 말씀하신, 4대 메이저 시집 출판사에 시 한 무더기 들고 찾아가면 군소리 없이 시집 내줄 300명 안짝의 시인 중 한 명임이 자명하다. 그런 그에게, 물 많이 넣고 끓여 묽힌 시 같은 이 글들은, 모아서 책으로 만들기 쉬웠을까, 오히려 어려웠을까.

 

14. 처음 시작하는 미학 공부

- 정말, 입문서를 많이 읽다보면 저자들의 노력에 목이 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중요한 놈들은 어떻게든 집어넣고 싶은데 대체로 중요한 놈들이 또 어렵거든.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쓰고 싶은데 대체로 쉽고 재미있는 놈들이 또 유치하거든. 그 기묘한 외줄타기의 재능은 정말 드물다. 입문서는 정말, 학문의 깊이가 깊다고 팍팍 쓸 수 있는 그런 만만한 책이 아니라구요.

- 애썼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함량이야 syo가 평할 부분은 아니지만, 사조영웅전이나 소오강호부터 시작해서, 도라에몽에, 미스터 초밥왕에, 요리왕 비룡까지 들먹였으면 정말 당신은 하는 데까지 한 것이다.

- 그래서 괜찮은 책이냐고요? 그건 독자들이 지니고 있는 저마다의 미학에 달려 있습지요....

 

15. 열다섯 번의 낮

- 일찍 눕고 싶은 기분에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가 누웠다. 책이 추락의 방향으로 끈덕지게 마음을 잡아끌어 결국 누울 수밖에 없었다고 적으면 겉멋일까. 희망찬 말을 건네도 어쩐지 내가 자꾸 무거워지는 이 은은하게 눅눅한 책은 어떤 날에 읽으면 좋을까. 웃음이 너무 많았으니 이제 마음을 좀 가지런히 빗겨야 되겠다 싶은 날? 아니면, 제발 누구라도 와서 딱 한 대만 더 때려주면 좋겠다, 그럼 그냥 죽은 척 오늘은 그걸로 다 끝낼 텐데, 싶은 날?

- 글이 글 쓰는 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이 세 가지 질문을 오래 궁굴린다. 하나라도 명확히 답할 수 있어야 글이 겨우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잘 알지 못하면서 기어이 쓰는 일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그 답 역시 쓰는 중에 찾아낼 밖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지금껏 몇 개의 답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침내 모든 답을 찾아낼 때까지 계속 그의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16.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 잘 쓰는 글을 만나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이 졸렬한 마음이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인고 허니, 언젠가는 syo도 책 한 권 만들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과분한 욕심(욕심을 넘어 욕망이나 탐욕, 그리고 때로는 정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한 욕심)을 아직 다 버리지 못해서인 것 같다. 하여, 누가 봐도 나보다 잘 쓴 글을 내가 보면 자꾸 작아지는 것이다. , 난 역시 안 되겠는걸. 안 되겠는걸. 안 되겠는걸. 자꾸자꾸 작아져도 작아지기만 하지 사라지진 않는 욕심. 남산 위의 바윗돌보다 우리 동네 초미세먼지가 더 유독하듯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자꾸만 나를 더 괴롭히는 그 욕심. 이 책이 또 내 욕심을 잘고 곱게 갈아주었다. 이 지역 미세욕심 농도 현재 매우 나쁨입니다. 질투를 삼가세요. 실내에 처박혀 혼자 잉잉 우세요.



17.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 나는 백년 동안의 고독이 정말 그런 책인 줄 몰랐다. 그건 정말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는 환상적이고 멋진 책이었다. 이 책도 정말 이런 책인 줄 몰랐다. 말랑말랑 달콤달콤 베이스에 씁쓰름이 조금 추가된 소녀풍 연애소설을 상상했는데, 세상에, 읽다 보면 오빠가 의자가 된다! 의자왕이 아니라, 진짜 의자가...... 뭐야, 이거, 무서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생각이 나기도 했는데, 희미한 기억속의 걔는 그래도 끝내는 뭔가 해피했던 것 같은데, 얘는 다르다. 행복이라고 할 수도 없고 불행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저 특별한 슬픔 같은 것이라고 밖에는.

 

18. 곰탕 1

19. 곰탕 2

- 영화의 시놉 같았다가, 대본 같았다가, 갑자기 소설 같았다가, 아니 이게 대체 뭐야 하는 사이에 1권 뚝딱, , 재미진데, 했더니 2권도 뚝딱.

- 목숨을 걸고(말 그대로 목숨을 건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감행하는 이유가 한낱 곰탕 레시피여서 좋았다. 그리고 그 한낱곰탕 레시피가 알고 보니 한낱이 아니어서 좋았다. ’한낱이어도 좋았을 것이었지만, ’한낱이 아니어도 좋았다.

- 세상 누군가에게 가족이란 한낱가족일 뿐이다. 그렇지만 실은 누구에게나 가족은, 그 존재를 통해서건 부재를 통해서건, 끝내 어떤 식으로든 가족이다. 내 역사에 난 흉터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쨌든 그 한낱은 한낱 한낱이 아닌 것이다.

 

20. 추적자

- 1권을 읽었는데, 이거 어떡한다...... 분량(투여시간) 대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 소문을 통해 접하기로, syo는 잭 리처가 무슨 무신(武神)이라도 되는 줄 알고 있었으나 막상 그는 이 책에서 실컷 얻어터지고 많이도 쫄았다. 또한 역시 소문에 힘입어 어마어마한 섹스의 화신으로 정해져 있었던 그는, 막상 이 책에서 딱 한 명하고만 서너 번쯤 잤다. 그리고 그 부분의 표현이 너무도, 정말 무책임할 정도로 빈약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550페이지를 읽었는데, 고작 이런 푸대접이라니..... 이런 식이면 아무래도 다음 거래는 좀 곤란하겠다. 저자(혹은 역자?)의 분발을 원한다. 원해봤자 이미 다음 편에, 다다음 편에,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음 편조차 출간이 되어 있는 상태긴 하지만.

 

  

여름에 날씨 덥다는 이야기 말고 다른 말을 할 줄 아는 재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참 좋았겠으나, 그러지 못하여 이것 참 송구합니다. 별일 없이 무탈무난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네요.

 

아, 복숭아가 맛있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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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1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덕에 도서관에서 곰탕1,2빌렸더랬어요 잘 읽을께요 잼나면 리뷰 올릴수도~

syo 2018-08-12 19:2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카알님의 리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단발머리 2018-08-1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오래 건강하게 오래오래 씩씩하게 오래오래 명랑하게 알라딘에 살아 주어요.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사지 말아야할 책을 골라주고 (저자들이 싫어하겠다요. 메롱!)
신용목 같은 사람을 발견해주고,
잭 리처를 사랑해줘요.

아, 복숭아도 권해주고요. 계속~~~

syo 2018-08-12 19:31   좋아요 0 | URL
신용목 선생님을 제가 발견이라니요 ㅎㅎㅎ
복숭아는 지금부터 미친 듯이 먹어야합니다. 조만간 빠이빠이에요...

수이 2018-08-12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외국어_ 읽으면서 이야~ 여기 나 같은 인간이 또 있네 하면서 즐겁게 읽었어요, 물론 에세이는 그리 쓸 수 없지만 읽으면서 여기 나와 동류의 인간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고~ 복숭아 냠냠 먹으면서 댓글 써요 :)

syo 2018-08-12 19:33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책 읽으면서 수연님 생각이 났었드랬습니다.
에세이도 조지영 작가한테 꿀리지 않게 쓰시는데요. 왜 이러세요 ㅎㅎ

다락방 2018-08-1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복숭아가 먹고싶네? 어쩐담? 🤔

syo 2018-08-12 19:35   좋아요 0 | URL
🍑🍑🍑🍑🍑🍑🍑🍑🍑🍑🍑🍑

다락방 2018-08-12 19:36   좋아요 0 | URL
나왔다
내가
사러
복숭아를..

syo 2018-08-12 19:36   좋아요 1 | URL
영업 성공!

단발머리 2018-08-12 19:47   좋아요 0 | URL
말랑이예요? 딱딱이예요?

다락방 2018-08-12 20:14   좋아요 0 | URL
저는 말랑이 사와서 사오자마자 세 개를 추르릅 흡입했다고 합니다. 아, 살 것 같아요. 하하하하

단발머리 2018-08-12 20:15   좋아요 0 | URL
털썩!!
우리집엔 딱딱이밖에 없는데...
나도 나가야하나...

syo 2018-08-12 20:40   좋아요 0 | URL
털썩이라니요. 딱딱이는 지지 않습니다!! 한입 베어물었을 때 알알이 박혀 있는 그 빨강 과육의 아름다움이란....

단발머리 2018-08-12 20:42   좋아요 0 | URL
그래도 못 이겨요.
말랑이 3개 흡입이래요~~
말랑이 - 3개 - 흡입

syo 2018-08-12 20:43   좋아요 0 | URL
눈감고 - 앉은 자리 - 다섯 개
후후후.

stella.K 2018-08-12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더위는 어떨까요?ㅋㅋ
대구가 예로부터 더위의 성지라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대프리카라고...
성지를 수호한다 생각하시면....ㅋㅋㅋㅋ
뭐라는 건지 원.ㅠ

책에 대한 묘사를 참 잘하시는데 그래서 읽어보고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게 위험하죠.
막상 읽어보면 스요님만큼 디테일하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스요님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푸하하하하~!

카알벨루치 2018-08-12 20:2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Syo님은 그래요~대프리카 좋네요 맘에 듭니다!ㅎㅎㅎ

syo 2018-08-12 20:35   좋아요 1 | URL
저도 그게 고민입니다. 의외로 제 뽐뿌에 읽기를 도전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으신데, 늘상 별로 타율이 좋지가 않았어요..... 사람이 살며 읽을 수 있는 책의 총 수에는 한계가 있는 법인데, 제가 또 시간 낭비를 거드는 것이 아닌가 하여.....

카알벨루치 2018-08-12 21:15   좋아요 2 | URL
축적된 내공은 어디가지 않습니다 syo님의 내공에서 뿜어져나오는 포스는 무시할 수 없는것이고 독서는 다 자기나름대로의 스탈이 있으니 읽고 또 읽은것이지요^^

이명은 2018-08-18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syo 2018-08-18 19:37   좋아요 0 | URL
갑자기요?? ㅎㅎ 저도 고맙습니다^-^

독서괭 2018-08-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빨갱이 / 아무튼, 입문서 / 아무튼, 알라딘 - 세권다 읽고 싶어요!!

syo 2018-08-22 09:52   좋아요 0 | URL
오백만년만 기다려주세요.....
 

도서관 재야고수열전

 

자는 사이 빗님이 잠깐 들르셨다. 잠깐이지만 유난스럽게 들르셨다. 머리맡의 창문을 열어 놓고 잔 죄로, syo는 새벽 두 시에 갑작스런 세면형에 처해졌다. 자기 전에 씻었다니까요. 그러나 아랑곳 않는 기습공격. 급히 창문을 닫고 간절히 협박했다. 내 베갯잇까지 적셔 놓고 정작 더위를 못 적셔 내일도(새벽이었으니 공식적으로는 오늘도) 폭염이라면, 죽여 버릴 거라고. 누굴? 비를? 여름을? 더위를? 아니면 절제란 걸 모르는 나의 땀샘을? 고민하다 잠들었는데, 다행히 누굴 죽일 필요가 없을 만큼은 시원한 오늘이다. 다행인 줄 아시길. 누가? 비가? 여름이? 더위가? 아니면 겨드랑이 가랑이 팔꿈치 안쪽 무릎 뒤쪽 등등 살과 살이 뜨겁게 만나는 내 육신의 온갖 화개장터가?

 

어제의 일인데,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오랜만에 폭풍 읽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도서관에는 정말 고수 영감님들이 많다. 옆에 앉은 영감님은 우리나라의 이런 저런 지역 지도가 군데군데 박힌 책을 샅샅이 훑으시며, A4 이면지에 뭔가를 피나게 적고 계셨다. 슬쩍 봤는데, “이 책은 중국이 자행하는 동북공정의 국내판이라 할 수 있으며, 동서 지역 간 역사 전쟁의 치열한......” 운운하는 어마어마한 글이었다. , 진짜 고수는 이면지에다 논문을 쓴다. 역사 지킴이 영감님의 맞은편에 앉은 또 다른 영감님의 손에는 처음에 장자에 관한 책이 들려 있었다. 작고 낮은 목소리로 낭독하고 계셨는데, 스스- 하는 숨소리가 주문과도 같은 낭독에 섞여들면서 듣고 있는 syo의 머릿속에 전라도 담양의 어느 대나무 숲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스스- 어쩌고저쩌고 스스- 아브라카다브라 스스- 마하반야바라밀다..... 신비로운 주문 공격에 어느덧 syo는 내가 syo인지 아니면 한 마리 나비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풀썩 엎어져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깨어나 입가를 깨끗이 닦아내고 흐린 눈으로 마법사 영감님을 바라봤는데, 아니, 장자는 어디가고 데리다를 읽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혹시 내가 평행우주에 빠져든 것은 아닐까. 안절부절못하는 syo를 마법사 영감님이 날벌레 보는 표정으로 흘끗 보시더니,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스스- 고수의 주문은 책을 가리지 않는군. syo는 자아가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해체되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을 물들인 책과 그 다음 녀석들180809


  

곰탕 1 -> 곰탕 2

, 재밌어. 1권을 읽기 시작할 때는 분명 2권이 서가에 없었는데, 다 읽고 가져다놓으니까 그 자리에 2권이 생겨났다! 바로 대출.



   

추적자 -> 탈주자

    

 "그럴 수가." 핀레이는 경악한 것 같았다. "다섯 명을 죽였단 거로군. 대단하오, 리처. 기분이 어떻소?"

 나는 어깨를 들어 올렸다. 우리 형 조에 대해 생각했다. 육군사관학교로 막 갈 무렵의 키 크고 볼품없는 열여덟 살짜리의 모습으로. 몰리 베스 고든에 대해 생각했다. 무거운 암홍색 가죽 서류가방을 들고 내게 미소를 짓던 그 모습을. 핀레이를 힐끗 보고서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내가 질문을 던졌다.

 "바퀴벌레 살충제를 뿌리면 기분이 어떻소?"

 그는 찬물로 목욕한 강아지처럼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저었다. (453)


, 이런 사이다패스같은 놈. 2권을 읽어야하나.....



  

역사, 권력, 인간 -> 도련님의 시대


 서구의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본의 정체성을 발굴하고 지켜내는 작업 또한 활기를 띠는, 즉 생기가 넘칠 수밖에 업습니다.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의 국민 소설가로 추앙을 받는 것은 바로 그곳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가 메이지 시대에 던진 메시지를 요약하면, 아무리 서양의 발달한 문물이 들어와도 인간은 고립과 고독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일본인의 상처를 멋지게 치유한 셈이지요. (111)


사실, 소세키를 다시 읽을 때가 되긴 됐다. 그렇게 열심히 빌려 읽더니, 막상 전집을 갖춰놓으니까 소세키에 손이 안 가는 syo세끼.

 


그리고 어제 발견한 놈들. 이건 대체 어떤 상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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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8-1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러다 잭 리처 시리즈 저보다 먼저 다 읽어버리는 거 아닙니까!! (어쩐지 초조하다..)

syo 2018-08-10 19:13   좋아요 0 | URL
아직 다 읽은 것이 아니셨단 말씀입니까?!

다락방 2018-08-10 19:20   좋아요 0 | URL
쳇!! —^

syo 2018-08-10 22:4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그러나 2권이 그다지 땡기지 않습니다...

단발머리 2018-08-10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러다 잭 리처 시리즈 저보다 먼저 다 읽어버리는거 아닙니까!2 (어쩐지 걱정된다)

syo 2018-08-10 19:13   좋아요 0 | URL
...말씀입니까?!

베텔게우스 2018-08-1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리내어 웃으며 읽었어요... ㅋㅋㅋ
syo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syo 2018-08-10 22: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고수들의 일대기란 늘 재미진 법인가봐요 ㅎㅎ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10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둔 고수의 현장 도서관, 너무 재미있어요! 안타깝게도 저희 동네 도서관엔 낮부터 한술 하시고 큰 소리로 민폐 끼치는 분들이 많지요 ㅠㅠ 그래도 모르니 다음에 갔을 땐 눈을 부릅뜨고 저도 고수를 알아 뵙고 싶어요

syo 2018-08-10 22:49   좋아요 0 | URL
고수는 자세히 봐야 보이더군요. 저 또한 앞으로도 계속 고수들 발굴에 열정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ㅎㅎㅎ

인간의과도기 2018-08-11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밑의 표지 중복(?)에 관해서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https://twitter.com/ABOUTiBLANK/status/524034202174382080?s=19
요약하자면 이미지 뱅크에서 서로 다른 둘 이상의 출판사가 동일 이미지를 우연히(?) 사서 벌어지는 일이라 합니다.

다락방 2018-08-11 08:11   좋아요 1 | URL
인간의 과도기님, 반가워요!!!!!>.<

syo 2018-08-11 09:05   좋아요 1 | URL
아니 그런 사연이..... 그러나 사연보다 사연 읽어주는 분이 더 반갑습니다!!

인간의과도기 2018-08-11 09:1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syo님 두 분 모두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 (제 서재도 아닌데 이리 환대를 받으니 면구스럽습니다 ^^;)

syo 2018-08-11 09:19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과도기님의 서재에서 우리가 환대할 수 있게 조만간 거기에 자리 한 번 만들어주세요 ㅎㅎㅎㅎ

라로 2018-08-1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저는 토비님이 고수 영감님들 사이에 계시다가 득도하셔서 제 이름을 알게 되사 자꾸 부르시나 했어요. ㅎㅎㅎㅎ 그런데 다시보니 ‘사이’. ㅠㅠ 저는 남의 글도 이렇게 읽으니 고수 할머니가 되길 글렀;;; ㅎㅎㅎㅎ

syo 2018-08-11 11:4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웬말씀을요. 전 졸기 바빴어요. 정진하여 뭐라고 되어야겠네요.

라로님 벌써 할머니 운운하시다니 성급하시네요. 천천히 한발한발 가는 거죠.

독서괭 2018-08-2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제란 걸 모르는 나의 땀샘 ㅋㅋㅋ 육신의 화개장터 ㅋㅋㅋㅋㅋ 아니 대체 이런 표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건지요.
예전 글 중에도 도서관에 온 사람들 관찰한 게 진짜 재밌었는데 이번 것도 역시!!^^

syo 2018-08-22 09:53   좋아요 0 | URL
분노요. 분노에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ㅋㅋㅋㅋㅋ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어요. 다들 재밌어주신 덕이지요. ㅎ
 

 

무참한 손을 뻗어 또 한 명의 아까운 사람을 세상으로부터 오려낸 그것을, 차마 섭리나 시간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그 곁에 한 번 서본 적 없는 사람 떠나는 일에도 넉넉한 슬픔이 따라온다는 것을 배우고 또 배우고 있다. 70년을 더 세상에 머물러 주십사고 내가 쓰고 있던 그 시간, 선생님은 생명과 죽음의 싸움터에 서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말씀이 남았다. 겨우 몇 권의 책으로만 남았다. 그러나 무려 몇 권의 책으로나 남았다. 선생님은 더 이상 세상에 말씀을 더하지는 못하시겠으나, 이미 남아있는 말씀을 넓게 펴서 우리는 세상에 발라야겠다. 그것만으로 많은 시간을 저어 가겠다. 그리고 그 세월의 끝자락에서 다음 말씀을 길어 올릴 누군가 다시 오겠다. 그때까지 선생님은 가셔도 가신 것이 아니겠다.

 

읽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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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8-08-09 0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잔인한 여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슬프고 가슴 아픈 이별이 자꾸 생기네요.
이 더위을 견디는 것에 더해 이 슬픔을 견디는 일이 참 힘들어요.

말씀처럼 남겨진 우리는 읽고 또 읽어야겠지요.

syo 2018-08-09 08:54   좋아요 0 | URL
더워하고 슬퍼하고 읽는 것만으로도 한껏 지치는 나쁜 여름이에요.....ㅠ
 


대구나 서울이나 덥기로는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24시간 가운데 20시간은 에어컨을 가동하사 7월에 옆방 사람과 기침소리로 교통하는 거룩한 기적 충만한 축복받은 고시원과는 달리, 지옥문 지키는 개나 물어갔으면 좋겠다 싶은 누진세 걱정에 뜨문뜨문 냉방할 밖에 도리 없는 가난한 우리 집은 은총이라고는 씨가 마른 열대야의 시커먼 뱃속이다. 생각해보면 그 고시원은 정말 좋았다. 1월에 올라가 겨울 내내 반팔티를 입어야 했고, 6월부터는 실내에서 카디건을 착용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꽤 많은 고시원을 전전해 온 syo지만, 세상에 살다 살다 이런 대접은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남들 다 덥다 덥다 미쳤다 할 때, 방 안에 처박힌 나는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모르고 잘 살았는데, 이제 모든 것을 알았다, 이 저주 받을 온난화 새끼야......

 

어쨌든 대구에 내려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대외활동(?)은 도서관 방문 및 도서 대출이었다. 나도 참 어지간한 놈이지. 쨍한 볕이 정수리를 폭격하는 그 고난의 길을 걷고 걸어서 근 8개월 만에 중앙도서관에 들어섰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놈의 세상이 하나 변한 게 없고, 이놈의 syo도 하나 변한 게 없다는. 이놈의 책들을 읽는다고 이놈의 syo가 변하겠냐는. 겨울은 자꾸 추워지고 여름은 자꾸 더워지고 syo는 자꾸 늙고 자꾸만 무지몽매해지는 기분이다. 남들은 도서관에 자주 드나드는 이들은 자꾸 똑똑해질 거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도서관에 자주 드나드는 이들은 스스로 자꾸 멍청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읽어야 할 것들의 거대한 산 앞에서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간다. 강녕하시옵니까, 도서관님, 미미한 소생은 syo라고 하온데, 소생에게 부디 책 10권만 빌려갈 수 있는 은덕을 베풀어 주실 수 있으시겠사옵니까굽신굽신. 예끼, 이놈. 네놈 같은 무지렁이가 책은 읽어 무엇 하려 하느냐. 사람이 되고 싶사옵니다. 허허, 참으로 거대한 욕망이로세. 오냐, 어디 한 번 가져가 읽어 보거라 이놈. 사람이 될 수나 있는지.

 

그런 마음으로 다시 10권을 읽어 사람에 한 치 더 바투 다가앉으려 한다. 여름은 독서의 계절. 읽는 것 자체가 수양이 되는 불구덩이라 심지어 만화를 읽어도 효능이 뿜뿜인 계절, , 여름이다.

 

180801-180807 : 20권


 

1.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 제목에 묘가 있다. 실제로 황현산 선생님이 쓴 글들을, 그 글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를 각기 하나의 부탁으로 본다면, 그래서 이 한 권의 책 안에 깃든 선생님의 부탁을 우리가 들어 드린다면,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다른 세상을 꿈꿀 필요가 없을 것이다.

- 그리고 그런 거대하고도 위대한 부탁을 놓고 사소하다며 눙치시는 모습에서, 그저 작은 사람의 작은 의견일 뿐입니다, 하는 겸손함은 물론, 이런 사소한 것들도 안 들어주고 그럴 거야? 하는 은근한 채근도 느껴지는 것 같다. 앞으로도 한 70년 정도 더 계시며 계속 이 세상을 글로 깨우고 적셔 주셨으면 하는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 이 부탁은 또 사소한 부탁인가, 거대한 부탁인가.

- 황현산 선생님의 문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시간과 활자를 낭비하는 일이겠으나, 비판하는(때로는 비난하는) 글조차 이렇게 낙낙하시다니, 매사 분노와 비꼼으로 글을 만드는 syo 같은 인간은 도대체 인간입니까.....

 

2. 철학자의 공부법

- 조선에서 초중고를 나온 사람이라면 ’~공부법이라는 제목의 낚시질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운명인 것인가.

- 저자가 자신이 읽은 책들을 성장 과정에 맞춰 주우우우우우욱 나열하며 평하는 꼭지는 그가 1897년생이고, 일본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의미도 재미도 없는 부분이다. 철학 공부법, 책 읽는 법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어디 가서 해 줄 수 있는 정론의 범위에서 크게 일탈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책은 뭐랄까, 뭐라고 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3.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실컷 이야기한 다음, 나 다음 이야기해 줄 사람을 지목하는 식으로 줄줄이 이어지는 독서판 아이스버킷 챌린지 인터뷰.

- 전 도무지 책을 읽지 않사오니 저는 스킵해 주세요, 하며 뿌리치는 이 없이 인터뷰 릴레이의 사슬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내 주변의 인물 군상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요즘 무슨 책 읽느냐 물었더니 오랑캐 같은 친구 자식의 대답. '요즘'이라는 게 몇 년 전까지를 말하는 건데? 이 책은 결국 크건 작건 자기 분야에서 깃발을 흔드는 이들은 모두 꾸준히 읽고 있음을 재확인한다.

4. 과학이라는 헛소리

- 과학을 빙자한 각종 의도적/비의도적 개소리들을 유쾌하고도 신랄하게 척살하는 가볍고도 중요한 책.

- 선풍기를 틀고 자는 계절이 돌아왔으므로,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만 했다. 과학적으로 아니라고는 하지만 사실, 아직도 선풍기 켜 놓고 자면 죽을까 봐 조금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편견은 자신이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하다고 철석같이 믿는 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편견이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개소리는 과학의 세례를 받았거나, 최소 과학의 외피라도 입은 척 하는 개소리다. 바야흐로 때는 21세기고, 인공지능이 우릴 보며 저 멍청한 것들을 지배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기 전에 얼른, 우리는 이 사악한/무지한 멍멍이들이 과학적멍멍 소리를 내지 못하게 그 입에 진짜 과학의 재갈을 물려야 한다.


5.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 3개월 베를린을 살아낸 후, 한 달 이내에 원고를 넘겨주기로 약속한 소설가가 어찌된 일인지 1년이 다 지나서야 겨우 쓰기 시작했던, 그럴 수밖에 없었던 베를린 체류기.

- 소설가의 일기/여행기가 그의 소설과는 완연히 다른 색조를 드러내 독자를 깜짝 놀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시에 역시 이 소설가의 글이다 싶은, 그러니까 글쓴이의 지문 같은 것이 은근히 묻어있을 수밖에 없는 이치다. 그러다보니 독자는 소설가의 소설을 읽으며 그가 비소설은 어떻게 쓸까 궁금해 하거나, 반대로 비소설을 읽으며 그의 주 종목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한은형이라는 사람의 숨길 수 없는 독특함, 독자적인 색채가 군데군데 압정처럼 박혀 독자의 손끝을 찔러온다. 이 소설가의 소설을 읽어야겠다.

 

6. 만화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 베르그송의 주저 창조적 진화먼나라 이웃나라스타일로 친절하게 풀어 어린이가 읽을 수 있게 펴낸 야심찬 기획

- 베르그송이 말했던 진화는 오늘날 진화생물학에 두드려 맞은 것 같고, 지속으로서의 시간 개념은 베르그송 생전에 아인슈타인에게 실컷 털려서 그런가, 오늘날 우리는 베르그송 이전의 철학자와 이후의 철학자들을 호출하는 빈도에 비해 그의 사유를 즐겨 찾지는 않는 듯하다.

- 원저는 웬만큼 책과 가까운 어른이 읽기에도 쉽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은 아이들에게 읽혀야 한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겠는가? 이 책은 생명은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위대한 것이라는 허랑방탕한 한 마디를 길게 늘여 200쪽을 채운 것 같은 인상을 준다.

-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거나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아이들은, 이런 책을 읽을 의사도, 읽은 뒤 어떤 인식을 획득하고 오래 기억할 의사도 없을 것이다. 무용한 짓이고 무리한 짓이다. 도대체 아이들이 왜 베르그송까지 알아야 하는데.


7. 베르그송 읽기

- 그러나 syo는 아이들이 아니므로 베르그송을 한 번 알아보자 하여 집어 든, 성인을 대상으로 하여나온 베르그송 책 가운데 가장 나를 덜 괴롭힐 것 같아 보인 책.

- 입문서 빠돌이로서 syo는 원전을 읽어야 한다는 말씀은 귓등으로 듣고 흘리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문서를 읽다 보면 정말 원전을 봐야겠구나 하는 때가 있긴 하다. 이런 책을 만났을 때.

- 거두와 절미를 어떻게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베르그송의 사유가 진짜 딱 이 책에서 묘사하는 정도라면, 그 사유의 정합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도대체 베르그송이 왜 필요한지조차 알 수가 없겠다. ’안녕, 난 베르그송이야. 있지, 나는 세상이란 게 이랬으면 좋겠어.‘사실 세상은 이렇다로 바꿔나가는 과정에 설득력이 너무 부족하다.

- 이를테면, “하지만 베르그송에 의하면 페히너가 주장하듯 감각 S1S2 사이에 (.....) 그런데도 페히너는 감각 S1S2 사이에 중간 부분이 있다는 것을 믿는 잘못을 범했다.” (134) 부분은, 결국 페히너는 틀렸다. Because Bergson said so. 이런 식으로 읽힌다.

- 저자는 베르그송의 생명주의 철학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 10개를 나열하는데, 그 중 첫째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평등하며 현재 진화의 끝자락에 서 있는 우리 인간은 더욱 그렇다.” 라고 한다. 모든 생물은 현재각자 진화 과정의 끝자락에 서 있다. 인간만 거기 서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문장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를 떠올리게 한다.

 

8. 니체

- 니체가 머물렀던 자리를 따라 이곳저곳 여행하며 니체 사상의 궤적을 추적해 보는 본격니체탐사 프로젝트 그놈이 알고 싶다.

, 기획은 된 듯하나, 실제로는 니체의 철학이 아니라, 니체를 씹어 삼킨 이진우 선생님의 철학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진우 선생님의 말씀과 그것을 뒤에서 든든히 받치고 있는 니체의 글들이 이루는 견고한 콜라보.

- 그러나 여행기로는 그다지 매력을 잘 모르겠다 싶은 책. 그렇다면, 굳이 안 다녀오셨어도 이 정도 책은 쓰지 않으셨을까요?



9.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X 민주주의

- 꼭 가서 듣고 싶었으나 경성은 너무 멀었고, 경상도 유생은 그저 목멱산 방향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었던 슬픈 사연의 페미니즘 강의 8회를 옮겨 담아 놓은 강의록.

- 정희진 선생님이야 말해 입 아프지만, 손아람이라는 인물의 말힘이 보통 아님을 새로이 알았다.

- 아무래도 대중강의다 보니 복잡한 개념을 둘러친 어려운 책이 되지 않았다. 그 점은 누군가에겐 이 책이 가치가 있다는 증거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가치가 없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오래 두고 읽을 만한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읽고 지나가는 일에 손해 날 이유는 없겠다.

 

10. 아무튼, 방콕

- 속지 마시라. 이것은 방콕 여행기를 빙자한 연애담이다전형적인 방콕 여행기처럼 시작하기에 안심하고 가드를 내렸더니만, 은근슬쩍 본색을 드러내더니 어어어 하는 사이에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염장 공격을 날린다.

- 아무튼 시리즈의 여러 권을 읽고 있지만, 재미있으리라 가장 기대가 컸던 택시는 그 거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덤덤했고, 기대는커녕 김병운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읽은 이 책 방콕은 퍽 웃기고 재미있었다. 방콕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1도 생기지 않았지만, 김병운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이나 한 번 읽어 볼까나, 살짝 마음이 움직였다.

- 그리고, 그렇다면 나도, 8년 넘게 한 사람을 사랑하며 만든 이야기가 적지 않은 나도 어쩌면, 비록 방콕은 가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런 글들을 지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11.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 신촌 인근에서 이후북스라는 작은 책방을 운영하며 쓴 소소한 책방 일기.

- 간결한 문장, 징징대는 척하나 씩씩하고 유쾌한 글투, 모자란 척하나 덧붙일 것이 없는 그림.

- 요즘 부쩍 많이 보이는 책방 책. 책방은 늘어나다가 이제 슬슬 소강상태인 듯하고, 대신 책방 책이 늘어나고 있다. 책방을 열었어요-부터 젠장, 책방을 닫고 말았다-까지.

- 여러분, 굿즈에 눈이 멀어 알라딘에서만 책을 사는 놈(저 아닙니다)이 있다고 합니다. 틈만 나면 굿즈에 투입하는 정성의 1/10만 북플에 좀 투자해 봐라 이 알라딘 시장만능주의자 놈들아!” 하고 외치고 다니면서도(저 같으시겠지만 저 아니에요) 매번 책을 구매할 때마다 어떻게든 5만원을 맞추기 위해 이 책 저 책 주문서에 넣었다 뺐다 하느라 시간을 탕진한다는데요(.....). 그놈이 이 책을 읽고 좀 반성했다고 하는군요.....(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저네요.)

 

12. 철학자 사용법

- 알랭 드 보통이란 영국 놈이 철학을 눈곱만큼 함유한 책으로도 쏠쏠히 해 먹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는 좀 더 진한 철학의 맛이 어떤 건지 보여주지, 하는 마음을 먹었다면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프랑스 철학자풍의 짧은 글들이 모여 있는 철학책.

- 끝내 이런 문장을 잘 읽어내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불안이라면, 읽기를 넘어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이 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은 공포다. 예를 들면 니체, 프루스트, 바슐라르, 베르그송의 문장을 군데군데 인용하는데, 세상에 걔네들 것보다 뒤따르는 작가 자신의 문장이 더 어렵고 현란하다. 무슨 의도가 있는 것 같지. 에잇, 불란서 놈들, 그야말로 애증의 존재입니다.



13.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 그다지 어렵지도 독특하지도 않지만, 제목에서 발생하는 충격파가 사회를 꽤나 뒤흔들어 놓을(놓았으면 좋을) .

- 책 자체는 술술 넘어간다. 공저자들의 글빨이 다채로워 읽는 재미가 역시 쏠쏠하다. 특히 김현 시인의 글은 읽고 좀 놀랐다. 그의 다른 산문집을 읽고 엄청 실망한 기억이 났기 때문인데. 아니, 이렇게 잘 쓰는데? 조만간 다시 읽어 보리. 역시 글잘잘(글은 잘 쓰는 사람이 잘 쓴다)은 진리.

- 일단은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방금 두 문장은 얼핏 읽으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이지만, 동시에 또 잘 읽어 보면 엄청 말 되는 말입니다. 제가 그렇게 허술한 놈 일리가요...... 죄송합니다

- 퍽 실효적이고 올바른 접근법이 아닌지? syo의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남중 남고에도 정말 절실하다구요.

- 이 책이 문제제기만 하고 있다는 짧은 서평을 읽었는데, 의아하다. 이 책만큼 대놓고 해결방법을 떠먹여 주는 경우를 별로 못 봤는데. 제목을 한 번 읽어 보세요.....

 

14. 죽음을 이기는 독서

- 나중에 크면 비평가가 될 거예요, 야무진 꿈을 품고 SNS나 블로그에 이런 저런 글들을 올리며 자신을 단련하는 꼬꼬마에게 권하고 싶으면서 권하고 싶지 않은 책. 재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 저자는 그렇게 무결하지만 책 자체의 단점은 있는데, 저자가 비평한 책들이 대부분 국역으로 만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책의 단점도 아닌 것 같다. 잘못은 다른 데 있어.

- 그런 이유로 읽을 만한 책이 아닌 것 같다는 편견을 가지실까 봐 덧붙이고자 한다. 비평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비평 자체가 훌륭해야 한다. 그리고 비평의 대상이 되는 작품이나 현상을 독자가 이미 접한 바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끔씩 우리는 글 자체가 너무 잘 만들어지다 보니 우리가 읽지 않은 책, 보지도 않은 영화를 말하는데도 덜컥 걸려들어 감탄사 제조기라도 된 마냥, 우와, , 대애박, 같은 말들을 대량생산하는 경험을 갖기도 한다. 정말 가끔씩. 아직 그런 적이 없으시다면, 어쩌면 이 책이 해줄지도 모릅니다, 와 같은 말까지 덧붙이는 섣부른 짓이야 하지 않겠으나, 어쨌건 저 솜씨가 참 탐나는 것만은 사실이다.


15. 모든 것이 되는 법

- 하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은 다능인들을 위해 용기를 북돋아 주고, 그들이 각자 자신의 성향에 맞는 방식으로 커리어를 짜 나가는 데 유용한 4가지의 템플릿을 제공하며, 하고 싶은 일들을 마침내 다 시도할 수 있는 유용한 잔기술과, 인간을 한 분야에서만 최고 효율로 기능하는 분업사회의 부품으로 전락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사회적 압박을 시원하게 쌩깔 수 있는 방법도 제안한다.

- 급하게 읽었지만, 희한하게도 은근히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허허허.

 

16.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 이민경. 세상에서 제일 귀한 사람. 언어, 계보, 그리고 이번엔 임금이다. 3가지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을까? 있다면 조금만 기다리자. 그것도 곧 이민경이 가져올 것이다.

- 이 책이 통째로 마음에 안 드는 분들 세상에 많을 것이다. 크건 작건 힘을 가진 분들일 것이다. 반면 구구절절 동의하는 syo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은 서글프다.

 


17. 파스칼 키냐르의 말

- 키냐르, 아 키냐르.

- 처음 읽은 키냐르가 아마도 심연들이었던 것 같다. 옛날에 대하여였을 수도. 몇 년 된 일이다. 몇 주를 투자해 꾸역꾸역 다 읽고 느낀 것은, 왠지 이 책은 반드시 정말 좋았다-고 해야만 하겠다는 부담감과, 그래야만 어디 가서 책 좀 읽는 놈 대접을 받으리라는 예감이었다. 그래서 그랬다. 좋다고 했다. 키냐르 크- 최고지. 솔직히 고백하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다. 하나쯤은 알았을 수 있겠다. 그러나 몰라도 좋았다. 하지만 역시 좋아도 몰랐다. 여전히 syo는 모른다. , 키냐르. , 아감벤.

- syo에게 무섭고도 신비로운 일은 키냐르의 알쏭달쏭한 글이 아니라, 그걸 읽어내는 눈 밝은 독자들이 부지기수라는 사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작가로 키냐르를 꼽는다. 그렇다면 나는 그분들의 인생을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았다.

- 이 책도 그렇다. 인터뷰라서 그나마 조금은 읽히는구나, 하는 고마움과 아니 뭔 놈의 인터뷰조차 이따위로 하나, 하는 원망이 겹친다. 여전히 키냐르는 저 높은 곳에 있다. 높고 아름다운 곳에 있다. 나는 이 아래에서 좀 지친다.

 

18. 역사의 천사

- 발터 벤야민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명하여 재구성한 소설

- 기대했던 것에 비해 훨씬 재미가 없었는데, syo가 생각건대 그 이유는 이 책이 절반만 소설이며 나머지 절반인 발터 벤야민 자체가 재미없는 사람이라서다. 시국이 유대인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인지라, 소설로만 구성했다면 독자에게 훨씬 더 어필하는 작품이 되었겠으나, 우리의 벤야민, 이 모든 위기 속에서도 아, 어떡하지, 어떡한담,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하며 이곳저곳을 방황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재미가 없을 밖에. 벤야민 하나만으로 책을 꾸려나가는 것이 무리수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작가는, 가공의 인물을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만들어나간다. 욕봤다.

- 작가의 문장에 대해 꼭 이야기하고 싶다. 대단하다. 재미없는 플롯과 스토리를 가지고도 이렇게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소설을 만드는 힘, 그것은 오롯이 작가의 문장에서 나왔다. 문장은 정말 짧고 간결하다. 한 줄에 마침표가 하나는 반드시 찍히며, 두세 개가 나오는 일도 빈번하다. 그럼에도 전혀 단조롭지가 않다. 묘사는 현란함 없이 신선하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디에서도 보기 어렵다. 조사와 어미를 다채롭게 사용하여 그 짧은 문장들의 신선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독자의 식탁에 올린 번역가의 노고도 새겨볼 만하다.

 

19. 내가? 정치를? ?

- 나는 내가 정치를 개똥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개똥은 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개똥보다 더 많이 아는지 확인하는 일이나, 혹은 개똥보다 더 많이 알게 되는 일 같은 것은 이 책 가지고는 어렵겠다. 괜히 빌렸어.

 

20. 패스워드

- 참신하다. 패스워드를 가지고 이런 책이 될 줄이야. 인문학이란 문어발 기업 같은 존재로군.

- 그러나 이게 12000원이라고. 세상에. 인문학이란 정말 봉이 김선달 같은 존재로군.

 


갑시다, 다음 10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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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8-0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글을 일고 저는 <아무튼, 방콕>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습니다. ㅎㅎ
키냐르는...... 어떤 작품은 알 것 같다가도 또 어떤 작품을 만나면 키냐르는 평생 이해 못할 작가 같고...
저 인터뷰집 꾸역꾸역 읽으며 역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나마 조금 키냐르란 사람을 알 수 있었던 책이네요. ^^;;

syo 2018-08-07 23:49   좋아요 0 | URL
아무튼 방콕 달달합니다. 짜증날만큼요 ㅎㅎㅎ

키냐르는 저한테는 아직 멀고 먼 나라입니다. 10년 뒤쯤 다시 읽어볼까 해요.

북다이제스터 2018-08-07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는 깨달음이 아닌 그냥 레크리에이션이란 생각이 드는 저도 요즘이라... 공감하며 좋아요 슬며시 누르고 갑니다. ^^
세상에 대체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훌쩍 ㅠ

syo 2018-08-07 23:49   좋아요 0 | URL
있어도 저같은 무지렁이한테는 잡힐 것 같지 않습니다..... 저한테 포획되는 진리라면 믿지 않겠어요ㅎㅎㅎ

2018-08-08 0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8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깨비 2018-08-08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앜ㅋㅋㅋㅋㅋ 아무튼 방콕, 방콕 여행기인 줄 알고 샀는데 진정 연애담이란 말입니까! 망했어요 ㅋㅋㅋㅋ 🤣

syo 2018-08-08 08:08   좋아요 1 | URL
방콕여행기가 맞습니다. 맞습니다만.....
방콕연애기 정도로 보면 적당할듯 합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18-08-08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을 읽고 [아무튼, 방콕]을 담을까 어쩔까...하고 있다고 합니다. ㅋㅋ

아, 그리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쇼님이 손아람보다 글도 더 잘쓰고 손아람보다 더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입니다. 이상.

syo 2018-08-08 11:38   좋아요 0 | URL
그건 아닙니다......
다락방님 누굴 보내시려고 이러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앜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8-08 11:39   좋아요 0 | URL
응 왜요? 나는 나의 발언에 당당하다!! 나 심지어 저 강의도 듣고 온 사람이란 말입니다. 내 말 믿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08-08 11:4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정말 다 좋은데, 절 너무 과하게 좋아하시는 게 탈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8-08 11:44   좋아요 0 | URL
아 몰라. 과하게 좋아할거야. 흥!!

syo 2018-08-08 11:46   좋아요 0 | URL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네요. 후후후.

stella.K 2018-08-08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책을 읽는 건 적어도 치매에 걸리지 않기위한
작고도 위대한 몸부림이라고 정의해 봅니다.ㅋ

대구에 내려오셨구만요. 이달까지 고시원에 계시지...
어느 고시원인지 소개 받고 싶군요.
올여름은 이럭저럭 다 보내고 내년에도 이렇게 튀김질 해 댈 것 같으면
거기서 지내고 싶군요.ㅎㅎ

syo 2018-08-08 11:37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그야말로 위대한 몸부림이군요 ㅎㅎㅎㅎㅎ
내려 ‘오셨‘다고 쓰셔서 대구 사시는가 했습니다.

stella.K 2018-08-08 12:47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렇게도 이해 될 수 있군요.
저는 어쨌든 대구가 서울 보다는 아랫쪽에
위치한지라...ㅋㅋ

카알벨루치 2018-08-08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방콕이 집에 쿡 쳐 박혀 있는 방콕인줄 첨에는 알았다는 ㅡㅡ암튼 띄엄띄엄 보는게 문제입니다 “아무튼 방콕” 도서관 주문했습니다

syo 2018-08-08 11:35   좋아요 0 | URL
으하하 그런 방콕이라면 저도 꽤 권위가 있는데ㅎㅎㅎㅎㅎ
카알님 즐거운 독서가 되시길 바랍니다 ㅎ

카알벨루치 2018-08-08 11:49   좋아요 0 | URL
고향이 대구세요? 제2의 고향 대구입니다! 지금은 대구 근처 언저리에 ㅎ

syo 2018-08-08 11:51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이놈의 대구ㅎㅎㅎㅎ
가까운 곳에 카알님이 계시는구만요 ㅎ

카알벨루치 2018-08-08 11:57   좋아요 0 | URL
Syo님 독서불패! 오늘도 즐독하세요~아자자!

cyrus 2018-08-0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기세 아끼려고 퇴근 후에는 도서관에 갑니다. 밤 10시까지 운영하는 도서관에 가는데, 집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서 아쉬워요. 도서관 문 닫기 전에 집으로 향하면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집에 오자마자 씻는 일이 귀찮아요. ㅎㅎㅎㅎ

오늘 아침에 부고를 확인했을 때 허무한 느낌이 들었어요. 황현산 님이 아폴리네르의 소설을 번역해주길 바랐었거든요. 훌륭한 불문학자를 떠나보내게 됐네요.

syo 2018-08-08 16:11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꾸만 스러지는 날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더워서 쓰러지겠구요. ㅎ

단발머리 2018-08-0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열심히 읽고 쓰는 syo님! 엄지 척!!!
전 더워서 자체 휴업 상태인데, 진짜 걱정은 이 더위가 다 지나가도 책읽기에 게을러질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syo님 글을 읽으면서, syo님이 걸러준 책에서, 걸러가며 읽어가렵니다.

괜히 빌렸어....
인문학이란 정말 봉이 김선달 같은 존재로군...
이런 표현도 눈부시지만....

글잘잘.... 이런 표현은 진짜.... 어디서 배운 거예요?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요? 완전 궁금하다.
나도 그 분 가르쳐줘요~~~~~~~~ 영업 비밀 좀 나눕시다! 에애~~~???

syo 2018-08-08 17:23   좋아요 0 | URL
야구요..... 야구판에서 배워온 거지요. 야잘잘....

단발머리님, 그 동네는요, 정말 센스의 미치광이들이 득시글거린답니다.

단발머리 2018-08-08 17:25   좋아요 0 | URL
야잘잘.... 야잘잘.... 야잘잘.....

아, 시작이 거기군요. 야잘잘.... 넘 근사하다, 야잘잘....
 


syo는 더 잘 써야 한다

 

작은 개울이 있었다. 마을의 논밭을 다 축일 만큼 넓지도, 깊은 물을 등에 지고 산다는 물고기가 자리 잡을 만하지도 않은, 그저 낙낙한 개울이었다. 개울에서 낮이면 아이들은 멱을 감거나 두꺼비를 괴롭히고, 아낙들은 빨래를 두들겼다. 해걸음에 논밭에서 나온 사내들이 농기구에 묻은 흙을 씻으며 밥 짓는 냄새를 맡다 돌아가는, 작은 마을의 작은 개울이 있었다.

 

개울녘에 꽃을 심는 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조용히 마을로 흘러든 남자가 개울녘에 꽃을 심기 시작했다. 그게 몇 년 전인지, 혹은 몇 십 년 전인지, 사람들은 이미 잊었다. 남자는 어느 해는 밭의 흙을 골랐고, 또 어느 해는 논의 피를 뽑았으며, 더러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때조차도 남자는 개울녘에 꽃을 심었다. 산이나 들에서 꽃을 옮겨오기도 했고, 마당에 씨를 뿌려 키운 꽃을 아까운 기색도 없이 옮겨심기도 했다. 개울녘은 한 뼘쯤 아름다워지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따뜻한 날 나비가 와서 앉았다 가기도 했으나, 궂은 날 개울의 물이 불면 꽃들은 뿌리째 큰물에 실려 가고 흙탕만 남기도 했다.

 

개울가를 적신 꽃들을 기꺼워하는 이들이 있었고, 고까워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 자체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말리는 이들이 있었다. 의미 없이 피고 지는 꽃은 마당에 심어 놓고 개울녘엔 작물을 가꾸라고. 권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 작은 개울을 떠나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는 큰 강에서 꽃을 심으면 어떻겠냐고. 북돋우는 이들이 있었다. 아예 개울로 가까이 와 살라고, 꽃을 심는 일로 살림을 꾸리라고. 그러나 이 모든 이들이 실은 묻는 이들이었다. 모든 말들이 결국은 가면 쓴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당신은 왜 꽃을 심습니까?

 

남자에게 그 질문을 가장 많이 한 것은 사실 남자의 마음이었다. 싹이 잘 트지 않는 날, 꽃대가 영 힘을 쓰지 못하는 날 밤이면 여지없이 마음이 찾아와 남자의 머리를 두드렸다. 나는 왜 꽃을 심습니까. 잊을 만하면 돌아와 집요하게 물어댔고, 대답을 듣지 못하고 휘 돌아갔다. 이유 없이 꽃을 심는 낮과 없는 이유를 자신에게 독촉당하는 밤이 해와 달처럼 남자의 일상을 운행했다. 그것은 운명이라기보다는 한판 게임 같았다. 중력의 법칙이라기보다는 그저 중력 같았다.


남자는 그저 꽃 심는 일을 잘 하였기에, 즐거웠기에 하였을 따름이었다. 그 이외의 일에 서털구털 소질이 없었을 따름이었다. 땅을 거느리는 일은 남자에게 어려웠고, 풍년이 와도 남자의 곳간만 옹색했다. 결국 꽃을 심는 일은 줄어드는 몸피만큼 마음의 덩치를 키우는 방편이었고, 배를 불리는 대신 마음을 불리려는 도착倒錯된 증세였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어느덧 사람들이 하나둘 남자를 꽃 심는 남자라 알고 부르기 시작하자, 남자는 아직 답을 구하지 못한 질문이, 답을 구한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그 무용한 질문이, 우주만큼 크고 무거워져 있음을 발견했다.

 

끝내 남자는 꽃으로 배불릴 수 없을 것이다. 허기를 채우는 꽃은 피는 꽃이 아니라 파는 꽃이고, 남자가 피우는 꽃은 팔아 배불릴 만한 품종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세상의 많은 개울녘엔, 강변엔, 바닷가엔 남자가 피우는 꽃보다 아름답고 튼튼하며 향기가 천 리를 가는 꽃들이 무수히 피어있으며, 그 꽃들로 살림을 꾸리거나, 심지어 그 꽃들을 키우고도 배를 굶주리는 사람들이 세상의 많은 마을에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하여, 남자는 없는 솜씨로 밭을 일구고, 느린 손으로 모를 심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심어야 하는가, 이 무용한 꽃을. 이것은 좀 더 작고 풀기 쉬운 질문이었다. 남자는 자기 손끝에서 피고 졌던 꽃들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그 모나고 못난 모양들을 보았고, 그럼에도 그것들을 예쁘다, 냄새가 좋다 해준 마을 사람들을 떠올렸으며, 무엇보다 그 모자란 것들의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들어 올리면서 아무렇게나 아낌없이 흘려보냈을 자신의 미소를, 그 살뜰한 시간들을 기억했다. 기억하면서 이 시간이 다시 풍성해짐을 느꼈다.

 

그리하여 남자는 꽃을 심는 이유를 찾지 못한 그대로, 혹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저 무용한 꽃들을 심어나가야만 함을 알았다. 그러나 앞으로의 꽃들은 무용하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피어야 했다. 아름다움이 무용을 유용으로 바꾸는 기적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무용하므로 더 아름답게. 아니, 무용할수록 더 아름답게. 꽃을 심는 이유를 꽃들이 대답해줄 때까지, 끊임없이 무용하고 아름답게.

 



인간은 자기가 공들여 일구고 가꾼 것들과만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이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확장할 수 있다어떤 사람이 일만 사람을 사귀고일만 가지 물건을 소유하고 있어도그중 어느 하나도 자신이 마음과 노력을 부어 길들인 것이 아니라면그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그는 일만 사람을 바쁘게 만나고 만 가지 물건을 숨차게 끌어모았지만누구에게도어느 물건에도자기가 살아온 삶의 시간을 새겨두지 못했기 때문이다일만 사람은 그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생애 내내 눈앞에 보자기보다 더 적은 시간밖에는 가지지 못할 것이다그가 눈을 감으면 그 시간은 꺼져버릴 것이다.

황현산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우리 문학에 끝은 없습니다우리의 예술은 끝나지 않습니다아무리 울며 외쳐도 끝나지 않습니다결코우리의 읽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고 말하는이 무한한 행동은 끝날 수 없습니다그 자체가 우리의 의미고 인류가 살아남는 것 자체니까요.

사사키 아타루잘라라기도하는 그 손을


나는 내 내면의 모습을 그려보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나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적대와 모순에 맞서 싸울 만큼 내 문장이 단련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꿈을 이야기함으로써 꿈을 존재케 하고 싶은 것도 아니며순결한 꿈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다다만 나를지금 여기를나의 헛된 상상과 치욕의 물이 뚝뚝 흐르는 기억과 아무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사랑을 견디지 못해서그 견딜 수 없음을 조금은 견뎌보려고......

신용목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쨍한 볕과 한밤의 열기를 보내고 맞는 신선한 가을 저녁에는 누구나 걷는 자이고 싶고그렇게 걸을 때 혼자서도 혼자가 되고 둘이서도 혼자가 된다그때 혼자는 상태가 아니라 성질이다혼자라는 성질가을에는 누구나 한번쯤 그 성질에 가까운 채로 시간을 허비한다우리는 줄곧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받았지만시간은 흘러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음 그 자체로 이미 헛된 것이다그러니까 헛되이 쓰는 시간이 본질적으로 가장 시간에 가깝다.

가을에 헛됨이 없다면 겨울은 아름다울 수 없으리.

김현아무튼스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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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8-03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거죠. 그게 쓸모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글 잘 쓰시는데 더 잘 쓰시면 전 읽다가 쓰러질테에요^^

syo 2018-08-03 22:00   좋아요 1 | URL
다른 분들의 글은 무용하면 무용한 대로 기꺼이 응원하면서도 자기 글은 유용했으면 좋겠다 싶은 이중적인 욕망이 있었나봐요. 시원하게 포기하였어요 ㅎㅎ

cyrus 2018-08-04 0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의 책을 읽은 이후로 제 글쓰기가 ‘무용한 열정’이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

syo 2018-08-04 07:14   좋아요 2 | URL
사르트르가 그랬다니 더 거짓말같네요.... 사이러스님도 그렇구요 ㅎ

stella.K 2018-08-04 19:24   좋아요 1 | URL
ㅎㅎ cyrus 귀엽네.ㅋㅋㅋㅋ
네가 그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은 글을 쓰지 말라는 것과 똑같아.
사르트르 같은 사람의 글은 읽지 말도록 하여라!

독서괭 2018-08-0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소하게 아름다운 개울녘에 와서 꽃향기 잘 맡고 갑니다^^

syo 2018-08-07 22:09   좋아요 0 | URL
날이 엄청 덥습니다 독서괭님. 건강을 최우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