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첩방은 남의 나라

 

12784보를 걸었다. 길 위로 새하얀 나비 한 마리 팔랑팔랑 낮게 날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래도 한 살이, 저래도 한 살이라고 생각했다. 답안지를 채우는 데 필요치 않은 책 300쪽을 읽었다. 이것들이 답이 되는 문제를 언젠가는 만날지도 모른다며 위로하고 독려했다. 1.7리터의 물을 끓이고, 740밀리리터의 커피와 350밀리리터의 홍차를 마셨다. 보이차와 레몬밤도 우렸다. 입 안이 자꾸만 텁텁해진다. 한 차례 수음을 했다. 조금 비참해졌다. 하루가 가도록 팔굽혀펴기 100개를 해내지 못했다. 더욱 비참해졌다. 두 끼만 먹고 나머지 한 끼를 상상했다. 상상은 칼로리가 없지만 칼로리가 없어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휴지가 동나고 치약이 다 떨어졌다. 책꽂이에는 사례집과 판례집과 문제집이 있고 고집과 맷집과 네가 사는 집은 없다. 아무도 찾지 않았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나만 만난다. 만 보를 걸으면 땀이 난다. 여름인가 봐, 내가 말했다. 봄 된지 얼마 됐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내가 손을 뻗어 내 이마를 만져주었다. 다정하게 땀을 훔쳐 주었다. 나는 내가 고마웠다.

 

어쨌거나 이래도 여름, 저래도 여름이 올 것이다. 저녁에도 에어컨이 가동된다. 3분만 지나도 으슬으슬 추워지는 좁은 방이다. 에어컨이 멈추면 3분 안에 다시 꿉꿉한 훈기가 도는, 역시 좁은 방이다. 고시원은 남의 나라 같다. 남의 나라에, 봄이 물러난 만큼 밤이 길어진다.

  

 

고독하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그건 배고픔 같은 기분이다주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기만 굶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창피하고경계심이 들고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기분이 밖으로도 드러나고독한 사람은 점점 더 고립되고 점점 더 소외된다그것은 감정적인 측면에서 상처를 입히며신체라는 폐쇄된 공간 내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발생하는 물리적 결과마저 낳는다그것은 앞으로 나아간다무슨 말이냐 하면고독은 얼음처럼 차갑고 유리처럼 맑으며 사람을 집어삼킨다는 뜻이다.

올리비아 랭외로운 도시

 

마음속에서 자기파괴가 시작될 때그것은 그 크기가 단지 모래알 정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두통이요가벼운 소화불량이요오염된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하지만 당신은 8시 20분 기차를 놓치고 신용기한 연장정책에 관한 회의에 늦게 도착한다점심을 함께하기로 한 옛 친구는 갑자기 당신의 인내심을 바닥내고 이에 당신은 유쾌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석 잔의 칵테일을 들이켠다하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하루는 그 형태를그 의미와 감각을 잃어버린다어떤 목적과 아름다움을 되살리고자 당신은 너무 많은 칵테일을 마시고 너무 많은 얘기를 하고 다른 누군가의 아내를 유혹하면서 결국은 바보스럽고 외설스러운 어떤 일로 치닫게 되며 아침이 되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와 같은 심연에 빠지게 된 경로를 되돌아보려 할 때 당신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모래알뿐이다.

존 치버존 치버의 일기 


이 이중의 움직임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그런데 이 움직임은 대단히 특이하다스스로를 거역하고자기 자신에 맞서서 끊임없이 자신을 파괴하는 움직임이다아니항상 스스로에 맞서 싸우는 동시에 자신을 연장하고 지탱하고 영속시키는 움직임이다우리는 줄곧 불균형을 향해 자신을 던지고 다시 균형을 잡는다불안정한 가운데 안정적이다우리는 불균형을 키우고 기획하고는 거기에 정착한다이런 식으로 우리는 이동한다이처럼 걷는 방식이 우리의 특징이다.

로제 폴 드루아걷기철학자의 생각법


삶이 까탈을 부릴 적마다 책이 도와준다때 묻은 자리를 지르잡아 주고곤두선 마음의 끝자락을 눅게 해 준다살아가는 일이 상처받는 일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생긴 생채기를 아물려 주기도 한다하지만 아무리 책을 섭렵하고 거기 담긴 지혜자의 지침을 따른다 해도 해결되지 않는 삶의 완강함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날이 있다하기야 책이 인생의 신열을 단방에 떨어뜨리는 딸기향 해열제로 쓰일 수 있다면 그만큼 삶을 모욕하기도 힘을 것이다책으로 삶이 바뀐다면 삶은 물론 책까지 욕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박총읽기의 말들





필립 로스의 부고를 접했다읽으며 보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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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8-05-23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례집과 문제집과 고집과 맷집...

syo 2018-05-23 20:25   좋아요 0 | URL
적고 나니 부끄럽군요. 이 라임 실화냐.....

2018-05-23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3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3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3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5-23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례집 문제집 열심히 보고 계실 것 같아서 부러운데요. 가서 공부 해야겠어요.^^

syo 2018-05-23 21:2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정말 이제 코앞이시겠네요. 화이팅입니다^^

몰리 2018-05-24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읽은 책이지만
크나우스가드의 <나의 투쟁>을 읽는 거 같습니다.
그가 왜 그 제목으로 그런 (안 읽은 책이지만요) 책을 썼을지
syo님 포스트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ㅎㅎㅎㅎㅎ

syo 2018-05-24 08:10   좋아요 0 | URL
읽은 책이지만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는 것 같습니다.
그가 왜 그런 제목으로 책을 썼을지 몰리님 댓글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읽은 책인데도 불구하구요....) ㅠㅠㅠㅠ 어흑

단발머리 2018-05-24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례집, 판례집, 문제집...
syo님이 맘껏 책 읽는 시간이 어서 왔으면..

필립 로스님 책을.. 난 울컥해서 읽을 수 있을까요. 너무 슬퍼요...
근데... <울분>이 빠졌어요.
안 읽어서 빼신거예요?

syo 2018-05-24 08:12   좋아요 0 | URL
사실 읽어서 뺀 건데..... 근데 또 전락은 넣어놨네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저 많은 걸 아직 안 읽었다니, 씁쓸한 와중에 또 좀 즐겁고 그러네요.ㅎㅎ

stella.K 2018-05-2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가 별세했습니까?
작년까지만 해도 건재했던 것 같은데...

참, 윤동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시중
한 문장을 떼어다가 이렇게 읽고 보니 참 쓸쓸합니다.ㅠ

올해는 5월인데도 더웠다, 썰렁했다를 반복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홧팅하시길!

그런데 판례집, 사례집 좀 재밌나요?
저도 기회되면 읽어보게.ㅋ

syo 2018-05-24 16:29   좋아요 0 | URL
응원 감사합니다^-^
판례집 사례집은 직접 한 번 읽어보시죠. 의외의 재미와 적성을 발견하실지도?? ㅎㅎㅎㅎㅎㅎ

stella.K 2018-05-24 17:51   좋아요 0 | URL
추천 좀 해 줘요!!

syo 2018-05-24 19:5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판례집이랑 사례집을 추천하게 되다니. 뭐니뭐니해도 이런 건 안 읽는 게 가장 추천할 만한 일입니다. 그 시간에 다른 좋은 책들 많이 읽으세요 ㅎ 그게 요즘 제 소원입니다.
댓글저장
 


우리 아이 똘똘했던 거 모르는 사람 없게 해 주세요

 

대뜸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뭣한 감은 있지만, 애기 syo는 참, 똘똘하고 귀여운데 심지어 착하기까지 한 무진장 사랑스러운 녀석이었다. 그랬던 녀석을 도대체 어떻게 오늘날 이토록 멍청하고 지저분한데 맙소사, 성격까지 드러운 빨강이놈으로 바꾸어 놓았는지, 이것 참, 신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리 승냥이 같은 미제 자본주의 앞잡이들의 음산한 손길이 이랬어! 이 사회가 날 망쳐 놨다고! 으앙, 이생망......

 

실컷 울었으니 다시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면, 애기 syo는 똘똘이도 그런 똘똘이가 없다싶을 만큼의 트루똘똘이였다. ‘사과 세 개를 먹고 두 개를 다시 사 왔더니 네 개가 남았다면 원래 사과는 몇 개였는지 물으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사과의 개수를 x로 놓는 미취학 아동이 송파구 인근에 득시글거리는 이 무시무시한 세상에 사는 어린이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겠지만, 그때는 국민 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떼지 못한 아이가 절반은 되는 시절이었다!!

 

그런 옛날 옛날 한 옛날에, 경상도 어느 시골 마을에 syo라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살았어요. 하루는, 엄마가 syo에게 한글을 가르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엄마는 syo의 손을 잡고 장날 읍내로 나가, 한글 가나다라마바사가 칸칸이 들어있는 커다란 포스터를 샀어요. 이걸 이용해서 syo에게 한글을 가르쳐야지. 엄마는 의욕에 가득 차, 다시 syo와 함께 집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이를 어째, 정말 근래 보기 드문 의지박약에 저질 체력까지 갖췄던 엄마는 먼 길을 걸어 걸어 집에 도착했을 때 세상 귀찮았어요. 어떤 엄마는 불 꺼놓고 애는 글쓰기 시키고 자기는 떡을 썰었다는데, 아놔, 난 나야. 석봉맘이야 어쨌건 내가 알게 뭐람. 엄마는 그 포스터를 방문에 띡 붙여놓고는 주방으로 가서 사과 주스나 벌컥벌컥 마셨어요. 그때, syo가 엄마를 불렀어요. 엄마, 이거 사자지? syo는 포스터에 있는 사자 그림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맞아, 사자야. 엄마, 이건 사과지? 그래, 그건 사과야. syo야 말 나온 김에 사과 주스 마실래?

 

그렇게 엄마는 언젠가 좋은 날 오면 한글도 가르치고 그러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며칠을 보냈어요. 그리고 다음 장날이 왔지요. 엄마는 syo의 손을 잡고 장터로 향했어요. 그런데, 장터로 가는 길목에서 syo가 갑자기 외쳤어요. 청도사과! 우리 syo 사과 먹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봐봐, 청도사과! 엄마가 고개를 들자, 전봇대 사이에 걸린 현수막에 커다랗게 청도사과라고 쓰인 게 아니었겠어요? 아니, 지금 저걸 읽은 거야? 어떻게?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어요. syo는 어머님, 지금 되게 아마추어 같은 거 아십니까. , 이것 참 이러시면 제가 곤란하죠.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지요. 청도사과, 맞아, 아냐?

 

어떻게 혼자 한글을 뗐는지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지만, 이 차는 소나타인데 ‘SONATA’ 라고 돼 있는 걸 보니, S O N A T A가 차례대로 ㅅ ㅗ ㄴ ㅏ ㅌ ㅏ 인가 보군, 하는 식으로 동네 마실 다니면서 혼자 알파벳 발음을 익혔던 열 살 때 경험으로 미루어 추측건대, 아마 한글도 그런 식으로 익혔던 것 같다. 그리하여, 우연히 발견한 다 낡아 비틀어진 노트의 맨 앞장에는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syo가 낑낑대며 그렸을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들만 놓고 봤을 때, 아마도 syo가 세상에 내 놓은 것 중에 가장 오래 된 문장일 바로 그 한 줄을 여기 옮긴다.

 

 

나무를 많이 심어야지


 

난 저 문장이 왜 이렇게 착하고 귀엽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식목일이었던 거야? 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예전에 걸음마를 어떻게 배웠는지를 몽상할 수는 있다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나는 이제 걸을 수 있을 뿐더 이상 걷기를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베를린 연대기


아무튼 산다는 건 액정보호필름을 붙이는 일과 비슷한 것인다떼어내어 다시 붙이려다가는 못 쓰게 된다먼지가 들어갔으면 들어간 대로기포가 남았으면 남은 대로 결과물을 인내하고 상기할 수밖에 없다.

허지웅버티는 삶에 관하여


우리가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착하게 살았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인생을 망친 장본인을 찾아 종종걸음을 칠 때도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은 그저 담담히 흘러가고 있다우리가 발견해 주기만을 바라면서우리가 그 순간에 머물러 주기를 기대하면서.

한수희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시간은 늘 우리를 쪽팔리게 한다우리는 자라지만기록은 남기 때문이다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만기록은 정지하기 때문이다자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쪽팔림도 없을 것이다반대로쪽팔림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김중혁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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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5-1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과거에 그런 전적이 있었군요.
그런데 오늘 날 스요님이 그렇게 되셨다 그 말씀이죠?
그래도 단언하건대, 훗날 뭐라도 되있을 겁니다.ㅋㅋㅋㅋㅋ

syo 2018-05-15 16:00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전 이미 틀렸어요.... 절 두고 얼른 가세요. 부디 스텔라님이라도 살아남으시길.... 으윽. (숨을 거둔다)

stella.K 2018-05-15 16:13   좋아요 1 | URL
(안타까운 목소리로) 아, 이대로 죽으시면 안 됩니다.
곧 통일이 눈앞에 있는데 북한 땅을 밟아보고
죽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신 차리시라요!!
(스텔라, 스요의 뺨을 마구 때려본다.)
(혼잣말로) 이거 클났네. 뭐야? 이거 인공호흡이라도 해야되는 건가?

syo 2018-05-15 16:1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졌다.
인공호흡드립을 이길 말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다락방 2018-05-1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쇼님은 최고 똘똘이였구나... 그리고 ‘나무를 많이 심어야지‘ 이 문장 착하고 귀여워요. 그래서...나무를 많이 심는 사람이 되었나요?

저 문장엔 힘이 있는 것 같아.
쇼님, 아마 먼 훗날 언젠가엔 나무를 많이 심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아요. 내 눈엔 그게 보여요. 넓은 마당가득 꽃이며 나무를 심어놓고 잘 가꾸는 쇼님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syo 2018-05-15 16:13   좋아요 0 | URL
나무를 많이 심진 못하더라도 나무를 괴롭히거나 쓸데 없이 종이를 낭비하는 인간이 되지 않으려구요.

누구님처럼 <읽기의 말들> 에 인용되는 뭐 그런 멋진 책 정도 써 줘야 나무가 너 참 잘했구나 하는 거죠ㅎㅎㅎㅎㅎ

몰리 2018-05-1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정말 재밌네요. 완전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05-15 17:4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나무를 많이 심어야지의 syo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8-05-1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머.... 어머.... 아이구.... 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혼자 한글을 익히고 혼자 알파벳을 떼고 첫 문장으로 ˝나무를 많이 심어야지˝ 했던 syo 어린이는
훗날, 알라딘 마을의 귀염둥이, 불타는 빨갱이 syo님이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05-15 21:07   좋아요 0 | URL
나무를 많이 불태우는 빨갱이 syo가 된 건 아닐까요...... ㅎㄷㄷ

AgalmA 2018-05-22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사자주스 한 잔요/ ㅋㅋㅋㅋ
스피노자급 어린 syo셨군요 ㅎㅎㅎ

syo 2018-05-23 09:59   좋아요 0 | URL
입장바꿔 생각하면 저런 자식놈 날까봐 좀 걱정이네요.....ㅎㅎㅎㅎ
댓글저장
 


공부의 자리를 되돌려주자

 

북플이 건네주는 서재친구님들의 글을 언제나처럼 멍한 눈빛으로 훑던 중, 덜컥 눈동자를 잡아채는 한 줄을 만나 오래 멈추었다. 그 문장을 작은 소리로 몇 번 읽어 보았다. 완벽한 말처럼 들렸다. 뜻도, 리듬도, 겸허한 글투도, 그리고 지금이 바로 이 문장과 만나기에 가장 맞춤한 때라는 점에서도, 그것은 너무나 완벽한 말이고 그 결이 고와 자꾸만 다시 읽어보게 되는 말이었다.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상 열심히/많이 읽겠다고, 쓰겠다고 말해왔다. 공부라는 낱말을 선택한 적이 없다. 물론 읽고 쓰면서 우리는 경향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겠으나, 그것은 읽고 쓰는 일이 향하는 목적지라기보다는 거기까지 가는 길에 맞닥뜨리는 부수적 효과에 가깝다. 하지만 공부는 보다 본격적이다. 지금보다 지적/윤리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마음으로 우리는 공부한다. 즐거움은 공부에 따라 오는(그러나 공부하는 모두가 다 얻을 수는 없는) 선물이지 공부가 노리는 과녁이 아니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읽는다’, ‘쓴다는 경쾌한 말을 고르고 그 뒤로 공부한다는 묵직한 말을 숨긴 것이. 공부했어야 할 자리에서 그저 읽고 쓴다는 스탠스를 취한 것은 어쩌면 한 발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작동한 탓임을 알았다. 그렇게까지 의욕적으로, 최선을 다한 건 아니었어. 그냥 재미삼아 한 거야. 더 나은 사람? 물론 되지 못했지. 근데, , 그게 뭐가 중요해. 그저 지금의 행복을 찾자구. OK? why so serious?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다짐과 진지함과 몰입의 문제다. 이제껏 읽고 써 왔던 것들을 이제는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을 따라 걸으며 부수적으로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데서 만족해 물러서지 않고, 어떤 면에서든 지금보다 한결 좋은 인간이 되는 길 위에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을 더는 미루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 뻔한 이야기를 또 뻔뻔하게 하였다. syo보다 더 나은 사람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더 나은 모양으로 말할 줄 안다.

 




나는 책을 읽는 데 필요한 태도는 왜 이 책을 읽는가에 대한 사회적 필요와 자기 탐구라는 정의감과 그 정의감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창의력이라고 생각한다창의력은 독서의 결과가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정희진정희진처럼 읽기 

 

더 선명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선명해진다는 것은 투명해지는 방향선명해지는 것은 흐린 것들 사이에서 뼈를 세우는 것아니 뼈만 세우는 것선명해지니까 숨을 때가 점점 없어지겠지만얼룩은 점점 나타나겠지만얼룩도 선명함의 안이라면 뼈를 다시 간추리는 소리도 손도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원최소의 발견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부족한 지식과 모자란 경험을 채우고 자신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요량이 있기에 책을 읽고 배우는 것이지요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많은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버릇처럼 책을 읽습니다근사한 제목에 끌려서 읽기도 하고 남들이 읽는다니까 읽기도 하고 심심풀이로 읽기도 합니다저처럼 독서가 일이 되어 의무감으로 읽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이런저런 지식과 정보로 머리를 가득 채우는 사이정작 내 인생에서 풀어야 할 문제는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내가 누구인지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생각도 못하고 온갖 정보들에 취해 마치 모든 걸 아는 듯이 착각하기 십상이지요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알아야 할 것은 알지 못한 채 섣부른 지식으로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모욕하는 경우야말로 식자우환이라 할 수 있지요.

김이경책 먹는 법

 

애석하게도 이 세계는 온갖 추상적 개념으로 가득해서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살면서 맞닥뜨리는 갖은 의문을 풀어 줄 답은 책에 있지 않다자신에게 무심히 묻고서툴게 대답하다 보면 연결된 매듭이 풀리듯 해답이 하나둘 떠오른다일하면서 느끼는 보람이루고자 하는 목표지키고 싶은 자존심내 편과 경쟁자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느끼는 순간순간...... 이처럼 실제로 존재하진 않지만각자 알아서 규정해야 할 가치가 모두에게 숙제처럼 주어진다사색의 시간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런 추상적 가치를 당돌히 규정할 수 있을 때우리는 이 세상을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지원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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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8-05-1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정희진님 말씀에 저도 무릎꿇고 반성을ㅠ

syo 2018-05-13 20:13   좋아요 0 | URL
전 저 책을 보다보면 너무 엎드려 절하다가 마침내 바닥을 뚫고 사라질 것 같습니다....
댓글저장
 


그림자 가서 눕는


거기로 가 허물어짐으로써 편안해지는 곳이 있다. ''이라고 말했지만 장소가 아니다. 곁이고 품이다. 안이다. 나 하나 드러누우면 가득 차는 좁은 곳이라 한다. 나 하나 들여놓지 않으면 세상 모든 것을 다 들여도 텅 비는 넓은 곳이라 한다. 이제 은유를 버리고, 아예 모든 말을 다 버리고, 몸짓으로, 손짓으로, 이내 눈짓만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밝고 맑은 곳. 내가 자는 곳. 옆에 있으나 없으나 항상 내 잠이 가서 밤을 머무르는 곳.

 

이달 말에 만나자 하였다. 약속만으로도 즉시 하루가 더디다.

 


 

나는 내가 있던 곳에 있지 않기를 간절하게 원했다사실 내 문제 가운데 일부는 내가 있는 곳이 전혀 특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내 삶은 공허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으며그 얄팍함을 나는 부끄러워했다마치 얼룩진 옷이나 실오라기가 삐져나온 옷을 입고 있을 때처럼 부끄러웠다사라져버릴 위험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동시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 생생하게 날것이고 압도적이어서그런 강렬한 느낌이 줄어들 때까지 두어 달쯤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많았다내가 느끼던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아기 울음소리였을 것이다나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아누가 나를 원하면 좋겠어난 외로워난 겁이 나사랑받고어루만져지고안길 필요가 있어마치 채울 수 없는 심연의 뚜껑을 들어올린 것처럼 나를 제일 무섭게 만든 것은 필요의 감각이었다.

올리비아 랭외로운 도시 

 

연애 9결혼 후 1우리 부부는 많은 부분을 양보했고타협했고조정했다. '바깥세상'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결혼을 정말 잘했구나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건 저녁을 먹고 가볍게 동네를 한 바퀴 돌 때이다두 손을 마주 잡고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같이 바람을 맞고나눠 마시는 한 잔의 물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여서 다행이다새벽 3시에 나는 다른 이유로 깨어 있다피가 도는 사람이 옆에서 잠들고나는 책을 읽다 잠든다.

조안나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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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8-05-1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건 어떻게 쓰는건가요

ㅡ항상 내 잠이 가서 밤을 머무르는 곳
쇼님은 당췌시인이신가요 흙흙

syo 2018-05-13 11:08   좋아요 0 | URL
요런 것을 우리는 잔(망스러운) 재주라고 하지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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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안에서 태어난 새벽 등 푸른 생선


늦게까지일찍부터로 변할 때까지 깨어 있었다. 창틀에 앉았던 새벽이 툭툭 털고 일어나 아직 채 달궈지지 않은 햇살을 올라타고 내일로 돌아갔다. 하루는 서서히, 그러니 세심히 밝아진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거대한 손이 매일 어둠을 만져 빛으로 윤색하는 이 신기한 이치를 넘겨다보면서, 여기부터 밝았다, 고 말할 수 있을 가상의 한 꼭짓점을 짚어내겠다고 눈에 잔뜩 힘을 주는 중이었다. 찾을 수 없는 것을 찾겠다고 오래 바라보는 동안 새벽은 조금씩 촉촉해졌고, 작은 방 안의 나는 결국 눈을 비비며 눈 안의 새벽을 비볐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훔치겠노라 온 몸에 잔뜩 힘을 주고 기회만 엿보는 이의 눈에 언제나 젖은 새벽은 다녀간다. 갈망을 내려놓고 그저 하루하루를 건지자고, 마음의 곳간에 이미 수천 개는 축적해 놓은 비슷한 말들의 더미 위로 갓 잡아 올린 시퍼런 생선 같은 다짐 한 마리를 다시 한 번 던져 넣는다. 그러나 이제 돌아서면 만나야 할 잠이 있다. 잠이 기다린다. 언제나 그랬듯, 이 잠을 거치고 나면 모든 선명한 것들이 흐려질 것이다. 마음의 윤곽이 허물어질 것이다. 생선의 눈알이 투명함을 잃고, 그 푸른 등에서 내 욕망인 척하는 타인의 욕망이 곰팡이처럼 피어날 것이다. 다시 갈망할 테고, 그것은 거대할 것이다. 내일 돌아올 새벽처럼 끝내 피할 수 없는 적수로 다시 만날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이 경쟁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사람들은 정작 경쟁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는다한국처럼 기형적일 정도로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는 사회에서조차 경쟁을 고정적인 상수로 전제한다그 다음에 남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로 따라가며 대중적 유대감을 형성하면잠시 경쟁에서 벗어난 듯한 착각을 느낀다.

박홍순일인분 인문학

 

나는 오늘날 누구도 더 이상 행복을 찬양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낭만주의자들이 행복을 구석에 처박는 대신 불평을 고양했기에 페르난데스 모레노 같은 낭만주의 시인들이나 단조로운 시를 흥얼거리는 시인들즉 운율에 맞춰 우울하게 노래하거나 자유분방한 재기(才氣)만 뽐내는 시인들이 각 행에 여백을 주기 위해 지나치게 유희를 즐기면서 오늘날 행복을 무시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하지만 나는 여전히 행복이 불행보다 시적이며재기보다 더 존중받을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_ J. L. 보르헤스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대학 때문에군대 때문에직장 때문에삶의 여러 이유로 나는 고향에서 멀어져 있었다스무 살 무렵에는 주말마다 꾸역꾸역 서울을 오갔지만 그것이 곧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었고나중에는 명절과 부모님 생신에나 들러보게 됐다대학원 시절에는 논문을 쓴다고시간강사 하던 때는 강의 준비를 한다고아예 1년에 두어 번만 정해놓고 집을 찾았다그러면서 '잠시'라고 생각했다곧 고향에 돌아갈 것이고그때도 여전히 나는 젊을 것이라고나를 기다리는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그런데 어느덧 나는 서른 중반이 되었고부모님은 환갑을 맞았다시간은 멈추지도 기다려주지도 않고내가 넘어져 있을 때도 쉼 없이 흘렀다.

김민섭아무튼,망원동


모름지기 행복은 나 아닌 다른 곳에서 찾을 때 더 멀리멀리 달아난다고행복을 찾아 방황하지 말라고과연 인생은 오색찬란한 베일로 둘러싸여 있음이 분명하다그렇기에 이토록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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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1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1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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