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자꾸 이런 책이 연이어 걸리는지 모르겠다.

 


 

2

 

이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니체의 인간학>이라는 책에서였다. 그 책은 정말, 이제껏 syo가 읽은 모든 니체 관련 책 가운데 단연 손에 꼽는 쓰레기였다. 그 책은 니체의 인간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니체가 한 말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인간학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옳은 인간이라 생각하는 인간상을 강요(진짜 거의 강요 수준이었다)하기 위해 니체의 권위를 빌려온 것이다. 그가 니체에게서 훔쳐온 것은 그 유명한 르상티망인데, 그 이야기를 니체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때 무릎을 탁 치며 개안의 느낌을 받았던 syo, 이 양반의 책을 읽고 있자니 이젠 니체조차 싫어질 지경이었다. , 이 사람, 살짝 관종 각인데, 하며 책을 덮었던 기억이다. 관종은 항상 독특한 견해를 세게 말함으로써, 참신함을 훌륭함으로 착각하는 소수의 지지를 받아 먹으며 자신의 에고를 배불린다.



 

3


이제 겨우 16페이지인데, 저자가 벌써 사고를 친다. 이렇게.

 

차별 문제는 언제나 역차별’ 이라는 새로운 차별을 대동한다일례를 들어보겠다. 2008년 11월 8일자 조간 아사히신문에 62세 남성 독자가 투고한 <휴대전화 주의 줬다가 치한 누명>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어린 아가씨가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어서나와 동년배로 보이는 남성이 아가씨의 왼쪽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고 끊어.” 하고 말했다뒤돌아 본 아가씨는 치한이야!” 하고 소리쳤다남성이 치한이라니전화 좀 끊으라고.” 하자 아가씨는 어깨 만졌잖아요.” 하고 대꾸했다. (후략)

 

그녀가 조금만 더 공격적이었다면 그를 정말 치한으로 몰았을지도 모른다그는 경찰에 연행되어 긴 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기소되고유죄 판결을 받았을 수도 있다여성에게 자행되는 명백한 치한 행위에 대한 반성으로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람은 모조리 벌하려는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이를 일종의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16)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지점에서 벌써 이 책을 계속 읽어 나가야 하나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우선 지엽적인 부분부터 쳐내자면, ‘아가씨가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통화를 한 것은 공중도덕에 비추어 비난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뜸 끊어.”라고 말하는 ‘62세 남성독자님의 태도 역시 무례하기로 보자면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나보다. 우리가 ‘62’, ‘남성이라는 딱 두 개의 정보만 가지고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특정 이미지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자못 가슴 아픈 지점이지만, 사실 이 두 사람의 태도는 여기서 논할 바는 아니다.

 

논점은 도대체 저 여자가 남성을 진짜 치한이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치한으로 몰았다'고 볼 근거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그건 그저 여성의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은 여성에게 자행되는 명백한치한 행위가 아니라는 ‘62세 남성으로서의 본인 판단일 뿐이다. 당사자는 전화 통화중에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만지는 감각을 느꼈고, 뒤를 돌아봤더니 무섭게 인상을 쓰고 있는 남자가 있어서 정말 치한으로 생각하고 크게 놀랐을 수도 있다. 당신이 엉덩이 쯤 만져 줘야 치한이지.’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세상 사람이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당신은 치한 행위의 피해자인 여성도 아니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람은 모조리 벌하려는 상황이라는 말은 얼토당토않다. 여성은 치한이 내 어깨를 만졌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저 글을 쓴 사람은 여성이 ‘이 사람이 내 어깨를 만졌어, 이걸로는 아직 치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깨를 만졌으면 곧 엉덩이도 만질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조금쯤은 의심스러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벌하자.’ 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

 

세상에 역차별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저런 상황을 역차별로 생각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사실 syo는 역차별이라는 말도 진짜 조심히 사용하려고 애쓴다. 차별받는다는 주장이 때로 역차별을 낳듯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주장이 역역차별을 낳을 수 있다. 그러면 한쪽이 역차별로 한 대 얻어맞는 동안, 반대쪽은 원래의 차별과 역역차별로 두 대 얻어터지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산술적으로 따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렇게 소심하게 괄호에 한번 넣어 봤습니다......)



4

  

어느 유명하고 깔끔한 이미지의 교수가 여고생 치마 속을 엿보려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일이 있었나 보다. 그 사건을 접하고 저자는 아사히신문에 이런 내용의 칼럼을 싣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은이렇게 성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의심할 여지없는 끔찍하고, ‘이상한’ 행동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이다.


목욕탕을 엿보거나 술에 취해 여성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지는 행동이하나의 생명체로만 사람을 보자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행동을 사회는 규제하면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난을 더한다. ‘제도가 당연하게 자리를 잡는 순간그 제도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저 옳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이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오랫동안 자행되어온 폭력이다.


그러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싫으면 남들과 입을 맞춰 변태!”라고 외치며 일단 성범죄자로 사회에서 매장시켜야 한다그러지 않으면 내가 위험해진다마치 마녀재판에서 마녀라고 외치며 침을 뱉지 않는 사람이 어느새 마녀로 몰리는 것처럼. (17 18)

 

도대체 어디부터 까야 되는지 답이 안 나오는 글이다.


하나. “목욕탕을 엿보거나 술에 취해 여성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지는 행동이, 하나의 생명체로만 보자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는 것은 순수한 당신의 의견이다. 나는 그걸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당신이 너무도 부자연스럽다, 지금.


둘. 설령 ‘자연스러운행동이라고 해서 곧바로 옳은 행동인 것은 아니다. 수십 년 철학 공부한 배운 분께서 자연주의의 오류모르시나? 이런 것조차 설명이 필요하단 말인가? 좋다. 그렇다면, syo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불쾌한 언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하고 명치를 세게 때리는 것이 하나의 생명체로만 사람을 보자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 이제 와서 명치 한 번 대 보시죠.


셋. 가장 큰 문제는 이 멍청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데 있다. “제도가 당연하게 자리를 잡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이어지는 글들은, 앞의 가슴 엉덩이 운운하는 멍청한 글을 쓴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똑똑하고 일리가 있다. 혹시 멍청한 말을 해 놓고, 그 말을 비난하려 하면 그 뒤에 있는 똑똑하고 옳은 말을 부정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전략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syo가 보건대 그것보다 이 양반은 지금, 자신의 멍청한 생각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깨닫기에는 너무 똑똑한 것이다. 이렇게 똑똑한 내가 어떻게 멍청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런 사람은 반쯤은 구제불능이다. 꼭 젠더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글을 보면 정말 이런 사람은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겠다 싶을 정도다.

 

담당 편집자가 검토한 후 아슬아슬하지만 괜찮겠다는 승낙을 얻었음에도기사가 나올 예정이었던 전날 밤 늦게 펑크가 났다담당 편집자의 말에 따르면 범죄를 정당회하는 기사를 실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나는 몹시 화가 났는데항상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잃지 않겠다고 공언한 언론이 치한 박멸이라는 현대 사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권력에 무비판적이라는 점게다가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을 모조리 묵살하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기만과 모순을 느꼈기 때문이다. (18) 

 

철없는 사람 같으니라구. 남이 할 수 있는 것을 못하게 하는 권력은 약하다. 더 큰 권력은 남이 못하는 것을 나는 할 수 있게 한다. 당신이 쓴 저런 쓰레기 같은 글을(심지어 편집자의 말마따나 범죄를 정당화하고 있다!) 세상에 떳떳이 토해 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얼마 없다. 당신이 무명소졸이었으면 저따위 글은 아슬아슬하지만 괜찮겠다는 평조차 받지 못하고 바로 나가리였다. 즉, 저 글이 세상에 나오는 일이야말로 바로 당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권력이 통하지 않았거나 당신의 생각보다 거대하지 않아서 화를 내고 있을 뿐이다. 당신은 또한,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면 그것을 비판이라고 보지 않고 단지 권력으로 묵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집자가 충분히 정당한 근거를 내세워 당신의 견해를 거절했는데도. 당신은 당신의 의견이 비판받을 수 없는 아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견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중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너무도 옳은 의견을 거절했다면 그것은 힘과 위계의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있다. 다수가 주장하는 바가 있으면 그 주장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서 일단 나머지 소수의 입장도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면서 스스로를 균형자, 객관성의 지배자로 굳게 착각해버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무고죄를 저지른 사람은 자기가 당했다고 거짓말한 그 범죄와 동일한 형량을 매겨야 한다며 목소리를 드높이는 남자들의 대화 자리에 끼면,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진짜 피해를 당한 여성의 인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여성들이 대화하는 자리에 가서는 무고에 희생당하는 남성의 인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양비론적 태도가 도덕적으로 옳은지는 여러 가지를 고찰해봐야 하겠지만 확실히 도덕책적으로는 옳게 보인다. 그러나 인간이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전할만큼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없는 존재고, 그러다보니 저런 유형의 인물은 자신의 생각이 모든 자리에서 다 인정받으리라고/인정받아야 한다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일기에 쓴다. “세상 사람들은 너무 편파적이다. 내가 아무리 잘 설명을 해 줘도 알아듣지를 못한다. 논리도 없는 것들. 무슨 일이든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좋지 않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 말은 절반만 맞다. 세상 사람들은 너무 편파적이다. 그리고 당신도 누구 못지않게 편파적인 세상 사람이다. 설령 객관적/중립적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쳐도, syo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객관적이라고 봐 줄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 양반도 그렇다. 무조건 균형을 잡으려 한다. 균형을 잡는 것을 넘어서,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균형의 꼭지점으로 지정하려 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경사면에 서 있는 반편이로 만든다. 특히 다수 의견을 따르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군중 심리에 휩쓸려 그저 자기 생각 없이 몰려다니며 다수로서의 횡포나 저지르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경향이 심해지면 이내 다수 의견이라면 일단 무조건 브레이크를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 된다.

 

 

 

5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 이유는 이 사람이 또 굉장히 멀쩡하면서도 지혜로운 문장들도 함께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을 다루는 데 있어 최대의 적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차별들이 생각하지 않아서, 즉 사고의 나태함 때문에 발생한다.” - 명문이다. 저자한테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차별 문제에 있어서 이는 차별이 아닌 구별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당연하다는 말을 인습적/비반성적으로 사용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기 때문이다-

 

이 훌륭한 문장들을 자신의 이상한 견해를 뒷받침하는데 쓰지만 않았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적어도 제 생각은 그래요사회 전체를 한 번에 전면적으로 '올바른 사회'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하지만 사회가 공정하고 누구에게나 선을 베푸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이를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성숙한 어른'의 수를 조금씩 늘려가는 것은 가능합니다마르크스를 읽고마르크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은 (일단 근현대 일본 사회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어린애가 어른이 되는'방법으로서 가장 성공적이었습니다.

우치다 타츠루 외,청년이여마르크스를 읽자 


다른 누군가가 분명히 겪은 피해의 경험을 함부로 축소하는 것만으로 이미 그는 한 번의 실질적인 가해를 한 셈입니다. ....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의 토대를 키웠거나자신과는 상관없는 문제인 양 가해에 일조해 살아왔거나적극적으로 가해했거나셋 중 하나입니다.

이민경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선을 규정함과 동시에 악이 드러난다.


()이란 그런 것이다인간이 따먹은 과일이 선과 혹은 악과가 아니라 선악과였음은 지당하다선한 것을 규정할 때마다 그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는 악으로 치부된다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지원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좋은 글빼어난 글읽을 만한 글의 기준은 무엇일까나는 논문(학문?)과 '잡문'의 구별을 지양한다그리고 이를 구분하는 사람일수록 그 지성을 의심하는 습관이 있다글은 정치적 입장과 문장력으로 구별되는 것이지 학문잡문예술로 구별되지 않는다이것은 흔히 말하는 "트로트와 클래식에는 위계가 없다."는 이야기와는 다르다그것은 수준이 아니라 기호의 차이다이와 달리 글은 질적 차이수준의 차이가 크다좋은 글은 읽는 이의 정치적 입장이나 기호와 상관없이 합의된다.

정희진정희진처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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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말해줘야지 2018-05-1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쾌 상쾌 통쾌

syo 2018-05-10 08: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흥분해서 막 다다드다닥 썼더니만 보기 흉한 문장이 너무 많네요;;

유부만두 2018-05-10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철학이 별별 책을 내놓는군요... 대략난감. 인데 어쩐지 익숙해서 슬프군요.

syo 2018-05-10 08:04   좋아요 0 | URL
좋았다가 빻았다가를 반복하는 희한한 책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5-10 06: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정희진... 정희진 정도 되어야 이런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syo 2018-05-10 08:06   좋아요 0 | URL
그리고는 또 난독자들이 나타나 정희진은 맨날 정치정치 거린다며 비난하는거죠...
 
파리일기 - 은둔과 변신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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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정수복 선생님의 파리 일기를 읽으며 실망을 이어나갔다. 정수복 선생님의 글은, 정말 재미가 없고, 정말 정론이다. 정론인데 재미가 없는 글, 그것은 존경스럽지만 그렇다고 굳이 연락하고 지내고 싶지는 않은 꼬장꼬장한 인생선배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분명 좋은 책인데도, 읽는 내내 언제 끝나나, 계속 남은 페이지들을 뒤적거리다 다시 돌아와 끙끙대며 읽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흥미로운, 선생님도 저땐 별 수 없으셨군요, 싶은 부분을 발견했다. 선생님이 늦은 시간까지 연구에 몰두하다 그만 늦잠에 들고 말았는데, 사모님이 등장하여 이제 곧 아들 프랑스어 선생님이 올 시간인데 왜 아직 이러고 있느냐고, 오늘 뿐 아니라 당신의 그 밤낮 없는 연구 때문에 나도 요즘 계속 신경이 곤두서 있다며, 어디 나가지도 않는 이런 답답한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느냐며, 버럭 화를 내신 듯하다. 연고도 없는 파리에 이사와 반강제적 은둔 생활을 해야 했으니 선생님도 사모님도 쌓인 게 있었으리라. 어쨌든 선생님, 주무시다가 비몽사몽간에 물벼락 같은 말벼락으로 큰 봉변 당하시고 그날 일기에 이렇게 남기신다.


감정적 폭발은 심리적 미성숙의 표현이고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능력이 없음을 말한다두 사람 다 성숙한 인간으로서 모든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해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야 한다그런데 그러한 감정적 폭발은 미란의 개인적 특성인가여성적 특성인가흔히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감정적인 반응이 빠르고 사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해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반면에 미세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한다이런 특성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 동안 남성은 수렵이나 채취 등의 일을 하기 위해 널리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을 했던 반면에 여성은 안정된 장소에 머무르며 출산과 양육농작물 재배 등의 일을 담당했던 성별 분업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따지는 일일 아니라 폭발적 감정을 적절하게 다스리고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상황을 합리적으로 처리해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넘어서 타인을 성숙한 자세로 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생각해보아야겠다. (121 122) 

 

이 글은 마치 이성과 논리와 합리성으로 무장하여 객관적으로 쓰인 척 하지만, syo의 눈에는 세상 감정적인 글로 읽힌다. 감정적 폭발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감정적 낙진 정도는 되어 보인다. 선생님께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이기지 못하고 저지르신 실책 몇 가지를 언급해볼까 한다.

 

첫째, 아내의 감정적 폭발을 심리적 미성숙의 표현이라고 비난한다. 설령 정말 상대의 행동이 심리적 미성숙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니가 지금 이러는 건, 니가 아직 심리적으로 미성숙하다는 뜻이야, 알아?” 라고 대응하는 것은 정말 문제 해결에 도움이 1도 되지 않는 최악의 발언이다. 이런 발언은 일을 더 크게 만들 뿐이므로 실리적 관점에서 보면 결코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라 하겠다오십을 바라보시면서 이런 연애의 기초적 주의사항조차 무시하시는 이유가 '감정' 아니면 뭘까.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 수렵이나 채취 등의 일을 해온 남성유전자를 보유하신 선생님께서 사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해 대응하는 능력을 좀 더 발휘하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

 

둘째, 선생님이 할 수 있었던 괜찮은 대응이 어차피, “당신, 그렇게 화낼 것 까지는 없잖아. 지금은 일단 진정하고 선생님 맞을 준비를 하고, 이따 선생님 가시면 찬찬히 더 이야기해 보자.” 정도였다는 걸로 미루어보면, 감정적 폭발이 개인적 특성인지 여성의 종특인지를 따져보는 부분은 정말 사족에 불과하다. 저 초보적 진화심리학 고찰의 합리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사모님의 감정적 폭발을 개인적 특성으로 보든 여성적 특성이라고 우겨보든 어차피 선생님의 대응 방침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마당이다. 그런데 굳이 불필요하게 이건지 저건지 따져보는 척 하며 여성이 감정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그 태도/의도. 이거야말로 감정적인 대응이다.

 

셋째, ‘흔히 ~ 라고 한다.’는 말로 내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남들이 다 그래.’ 하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건 좀 비겁해 보인다.

 

넷째, 저 진화심리학적 명제가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그 명제를 서술하는 어휘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다. 여성의 특성으로 들고 있는 사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해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미세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라는 두 표현이 '반면에' 라는 단어로 연결되었음에도 syo의 눈에는 둘 다 부정적으로 보인다. ‘미세’? 뉘앙스가 더 중립적인 다른 단어 많다. ‘예민’? 이것도 마찬가지다. 진화심리학 서적을 보면, 이런 부분을 서술할 때 어휘나 대응 구조를 매우 세심하게 고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무슨 무슨 능력이 떨어지고라는 표현보다는 남성은 상대적으로 이런 능력이 뛰어나다는 식의 표현을 선호한다. 언어를 다루는 일을 오래 해 오신 선생님이므로, 충분히 조금 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을 고를 수 있었으리라 syo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아무래도 너무 화가 나서 그러기 싫으셨던 것 같다.

 

다섯째, 결국은 최종적으로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니가 감정적 폭발을 억제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하니까 그걸 좀 키워라, 그래야 여자가 아니라 사람된다, 정도로 보인다. 진화심리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진화심리학이 주장하는 여성의 특성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개인이 어쩔 수 없는 특성임을 고려하여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있다. “여성은 원래 특성 자체가 이렇게 열등하니까 여성 니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 특성을 극복하여 남성처럼 합리적인 존재가 되도록 해라고 주장하기 위해 진화심리학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결론은 그냥 니가 똑바로 해. 그러기 위해,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라는 말까지 첨언하신다. 아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다 따져놓고? 깔 때는 다 까고서는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위해서 안면을 싹 바꾸셨다. 그러니까 제 말이요. 이러실 걸, 그 이야기를 왜 하셨냐구요. 결국은 감정적 폭발을 자행한 사모님에 대한 감정적 툴툴거림을 주욱 늘어놓으셨으면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넘어서 타인을 성숙한 자세로 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생각해보아야겠다.” 며 더 깊은 자기 성찰이라도 하실 것처럼, ‘성찰은 역시 나의 것처럼 서술하시는 데는 정말 혀를 내두를 밖에.

 

한 문단 가지고 너무 성대하게 깐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있다. 진짜로 있다. syo는 남자인데, 분명 수렵과 채취의 본능이 뼛속까지 새겨져 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미세한일에 예민하게구는 걸까?

 

몇 페이지 더 뒤에 발견한 또 다른 재미있는 대목.


나는 재스민 차를 마시면서 다시 툴루즈 여성학대회 자료를 읽었다자료를 읽다가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정의롭지 못함으로 억압받은 자들에는 여성만이 아니라 노인외국인노동자장애인아이들동물유대인흑인아시아인 등 상황에 따라 수없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130) 

 

이미 이런 저런 사회 운동에 발을 담근 경험이 있는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syo는 언감생심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정체성이 빨갱이에 가깝다 보니 노동운동이나 사회개혁 쪽에 더 관심이 많지만, 저런 발언을 볼 때면 좀 웃긴다. 노동 운동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노동자의 억압만 발견한다. 그들의 눈에는 여성/장애인/외국인/생태계가 받고 있는 억압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환경운동가들은 생태계의 파괴가 너무 가슴 아프다 보니 노동자/여성/장애인/외국인이 받고 있는 차별은 물론 없어지면 좋겠지만 급한 일은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 다양한 운동가들에게 이내 페미니즘에 대한 감수성도 좀 가지라는 이런저런 압력이 들어온다. 그리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읽든 마지못해 읽든 페미니즘에 대해 한두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들은 세상 전반에 대해 갑자기 눈을 뜬다. “그래, 여성 뿐 아니라 노인/외국인/노동자/장애인/아이들/동물/유대인/흑인/아시아인 모두가 다 억압받고 있어. 이런 상황에 여성 문제만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지 않아!” 맞다. 정론이다.

 

그런데 세상에, 원래 자기들이 하던 운동에 열중하던 시절에는 좀 봐 달라고, 봐 달라고 그렇게 외쳐도 전혀 보이지 않던 젠더 억압을 비롯한 세상의 갖가지 억압들이, 희한하게도 여성 문제에 대해 공부만 했다 하면 단기간에 모조리 다 발견되어 여성 문제에는 집중을 못할 정도라니. 이쯤 되면 페미니즘 이거, 정말 위대한 학문 아닌가

 

 

이런 이유로 이 책이 나쁜 책이냐고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15년도 더 전에 이런 글을 썼다는 이유로 정수복 선생님을 폄하하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절대,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착용할 수 있는 안경은 여러 가지다. syo는 이 책을 정수복 선생님의 주된 관심사였던 망명자의 안경을 쓰고도 읽을 수 있었다. syo의 지금 생활이 정수복 선생님의 파리 생활의 하위호환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빨갱이의 안경을 통해 읽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syo가 책을 읽을 때 가장 자주 착용하는 안경이다. 다른 안경을 쓰고 읽은 이 책은 나쁘지 않았다. syo에게 좋았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굳이 syo가 익숙하지도 정교하지도 않은 페미니즘의 안경으로 이 책의 한두 구절을 물고 늘어진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그다지 온당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할 짓도 아니었다. 페미니즘의 안경은 언젠가 syo가 꼭 제대로 갖추고 싶은 시선이고,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으므로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쓴다


결국 syo에게 이 책은 책으로서 버젓이 역할을 했다. 문학책을 읽은 사람이 문학적 지식이나 감동만 얻고 마는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를 다룬 책을 읽었는데 어쩐지 미적분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면, 그 책과의 만남은 그걸로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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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5-08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입니다, 쇼님.
이 리뷰를 읽다가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고요.

<syo는 남자인데, 분명 수렵과 채취의 본능이 뼛속까지 새겨져 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미세한’ 일에 ‘예민하게’ 구는 걸까?>

그리고 일어나서 박수를 칩니다. 네, 기립박수!! 훌륭한 리뷰네요. 보통 제가 피씨로 ‘좋아요‘를 눌러서, 제 좋아요는 보이지 않을 때가 많겠지만, 이 글은 제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것을 반드시, 기필코 알리기 위해, 이렇게 피씨에서 댓글 쓴 뒤에 북플 가서 좋아요를 누르겠습니다. 꾹, 하고 말이지요.

syo 2018-05-08 10:02   좋아요 0 | URL
뭘 이렇게까지나요 ㅎㅎㅎ
이 글은 그저 syo가 ‘미세한 예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글일 뿐인 것을요.....ㅎ

유부만두 2018-05-08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인이신 장미란님의 ‘빠리의 여자들’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syo 2018-05-08 10:04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드님의 건축 관련 책도 흥미가 생겼구요. 어마어마한 가족이네요. 일원이라면 누구나 책 한 권쯤은 쓰는....

단발머리 2018-05-08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세상에, 원래 자기들이 하던 운동에 열중하던 시절에는 좀 봐 달라고, 봐 달라고 그렇게 외쳐도 전혀 보이지 않던 젠더 억압을 비롯한 세상의 갖가지 억압들이, 희한하게도 여성 문제에 대해 공부만 했다 하면 단기간에 모조리 다 발견되어 여성 문제에는 집중을 못할 정도라니. 이쯤 되면 페미니즘 이거, 정말 위대한 학문 아닌가?˝

페미니즘 정말 위대한 학문 맞아요. 그렇다니까요. 페미니즘이 이렇게 넓은 강이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희진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여성주의 학자들의 주장을 syo님이 이렇게 정리해 주시니, 아주 명쾌하면서도 깔끔하네요.
역시나 syo님! 참말로 멋지십니다!!

그나저나, 제 좋아요! 도 잘 보이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05-08 10:50   좋아요 0 | URL
보여요! 잘 보여요! 심지어 다섯 개로 보이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18-05-0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으면서 밑줄치고 박수친 부분을 댓글에 다 달아주셨네요 ㅎㅎ syo님은 안경도 멋져요😎

syo 2018-05-08 13:4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센스있는 이모티콘🤓

2018-06-12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생각해 보면, 항상 이건 일기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일기를 쓰는 경우가 드물다. 개놈(개그병 걸린 놈)이나 중놈(2병 걸린 놈)이나 보면 항상 추억/감성 팔이를 하고 있을 뿐이지, 그날 벌어진 일들은 기록하지 않는다. 그래놓고 뻔뻔하게 일기라고 우기는 이유, 그러니까 일기장에 그날을 기록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이 재미도 감흥도 없는 그저 그런 하루였는데, 실은 어제도 그랬고 극히 높은 확률로 내일도 그럴 예정이기 때문이다. 밍밍한 기록이라도 남기는 이유를 이해는 하는데 공감은 못하는 것이다.

 

일기는 혼자 쓰고 혼자 보는 장르라는 게 통설인데, 생각건대 이건 이유도 근거도 없는 개소리에 가깝다. 왜 그래야 되는지 납득 불가다. 실제로 우리는 누구도 어느 날 문득, ‘, 오늘 양촌이랑 작두랑 메뚜기 잡고 개구리 잡아 구워 먹었더니 너무 행복했어, 이걸 기록에 남겨야지. 그리고 이 기록을 앞으로 일기라고 부르는 게 좋겠군.’ 하는 깨우침을 얻어 자발적으로 일기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일기란 왜 쓰는 것이며, 어떻게 쓰는 것인지를 우리는 남에게 배운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걸 가르쳐준 남(대체로 부모나 선생)은 우리가 쓴 일기를 합법적인 강제력을 동원해 검사한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물론 잘하는 짓이라고도 하지 않겠다). syo에게 일기란 다른 모든 장르의 글처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다. syosyo라고 하지 않고(가끔 한다) 자꾸 syo라고 지칭하는 것은 3인칭 귀요미체(syo 와떠염 뿌잉 뿌잉)를 구사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굳이 이런 짓 안 해도 syo는 대충 좀 귀여운 편이다. 맞잖아요. 뭐왜뭐), 애초부터 남들 보시라고 쓴 글에 자꾸 ’, ‘내가라고 지칭하는 것이 어쩐지 좀 머쓱해서다. 그러니까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남들 보여줄 건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일상의 찌꺼기를 달여서 만든 싸구려 보리차 같은 글을 써서 되겠는가.

 

그랬는데, 오늘 정수복 선생님의 2002년도 일기들을 읽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나로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조용히 숨어 지내기 위해 파리에 왔지만 결국은 할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중요한 문제는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고 그 일을 위해 많은 정성을 쏟고 정진하여 열매를 맺어야 한다.

정수복파리 일기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이렇게 추측하기 쉽다. ‘타인의 시선이나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정성을 쏟자는 이야기니까, 이제 syo란 놈이 남들 신경 안 쓰고 일기를 쓰겠다는 다짐을 했겠구먼하고


!

 

그게 아니라, (아직 반도 못 읽었지만 최소한 지금까지)정수복 선생님의 일기는 너무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뭐 굉장히 아름다운 문장이 꽝꽝 박혀 있는 것도 아니고, 기가 막힌 삶의 지혜가 듬뿍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저 정도 이야기는 잘 보면, 사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것 같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도덕책 수준의 지혜라고 해도 되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정수복 선생님은 저 일기를 쓰던 젊은 날(오십에 가까우셨지만) 이걸 누구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 없이, 그야말로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예견된 고난의 삶을 뚫고 나가기 위해, 코뿔을 갈고 다듬는 코뿔소 같은 마음으로 썼던 것이다. 그러기엔 충분하고 충만한 글이다. 그랬는데 15년도 더 지난 시점에 갑자기 떡하니 그걸 책으로 내셨다? 남들 읽어보라고? 그러니까 syo가 얻은 깨달음이란 ? 그래, 이랬겠다. 이래도 된다는 거지?’ 하는 것에 가깝다......

 

쓰고 보니 시원하게 돌려 깐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느낀 바가 크다. 앞으로는 syo도 어딜 걸었다, 뭘 읽었다, 뭘 먹었다, 참 맛있었다, 뭐 이런 식으로 소소한 하루를 기록하는 글들을 써 봐야겠구나 하고 있으니, 이건 사실상 독서가 행동을 바꾼 게 아닌가? , 그야말로 카프카의 도끼 같은 책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하시죠.

 


 

2

 

(같은 고시원에 사는 친구입니다)이 카톡으로 제보하길 맑스 200주년 기념으로 고향에 거대동상 세워졌다는 기사에 베댓이 막시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가 되고, 막시즘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자가 된다라는데, 자본주의자가 되나? 어이없네.” 했다.

 

사실 그다지 어이없을 일은 아니다. 비슷한 버전으로, 젊은 시절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 사람은 못된 놈이고 나이 먹고도 공산주의자인 놈은 등신이라는 식의 이야기도 돈다. 이것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 첫 번째로 이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이상론에 가까운 비현실적 사상이라는 비난이다. 두 번째로, 젊은 날 운동에 뛰어들어 혁명을 제 손으로 이루겠노라며 극단 투쟁하던 인간이, 세월이 지나자 일순간 변절하여 자기 보신과 자본의 배를 불리는 데 급급한 꼴을 너무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니까 그 새끼 개인도 나쁘지만, 마르크스주의 자체도 별 볼일 없다는 일타쌍피형 비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syo는 이렇게 읽는다. 마르크스는 역시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분석가라고. 자본론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온갖 다채로운 수단과, 그 수단의 작동 원리를 속속들이 기록해 놓은 그야말로 자본가에겐 '노동착취 무작정 따라하기' 같은 책이다. 장래 희망이 부르주아인 어린이라면, 그 아이가 공부해야 할 것은 한글과 자본론이다. 심지어 한글은 필수도 아니다.자본론이 영어, 독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등 기타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막시즘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syo의 독창적인 생각도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것은 '자본주의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마르크스를 읽고 그가 던진 문제를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어쨌든 그 대표적인 책 제목이 자본론입니다이 책에는 노동자를 '정당하게착취하기 위한 이론이 쓰여 있습니다.

  뒤집어보면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바이블'이며 '좀 더 유능한 자본가가 되기 위한 지침서'입니다실제로 구소련의 지도자들은 이 책의 내용을 참고해가며 노동자들을 착취했습니다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 방법으로 일본 경제의 번영을 이뤄냈습니다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마토바 아키히로위험한 자본주의 

 



3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라 출판계가 들썩들썩한다(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일 년에 2, 3종은 꾸준히 나오던 마르크스주의 책들이지만, 올해는 좀 더 주목할 만한 책들이 퐁퐁 쏟아지고 있다.




그 가운데, 새로 나온 이 마르크스 평전이, 내가 작년 여름 2권만 구해 읽고 진한 감동에 몸부림쳤던 칼 마르크스 전기’와 같은 책을 번역한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번역자도 출판사도 다르긴 하지만, 그 책도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가 만든 책을 저본으로 했었는데. 잘은 몰라도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는 국책기관 급은 될 텐데 전기를 두 권이나 내진 않았겠지 싶기도 하고. 만일 그렇다면, 이 평전은 그야말로 마르크스의 업적을 가장 풍부하게 드러내는 평전인 동시에, 거의 마르크스라고 쓰고 하느님이라고 읽어도 될 정도로 빨아주는 평전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교리로 생각하는 곳에서 만든 책인데 어련할까. 일단 바로 사 놓긴 했는데 찬찬히 읽어 볼 생각이다.

 

 

 

4

 

알라딘에서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행사 대상 도서로 마르크스주의 서적 70권을 선정했다. 리스트를 훑으며 세어보니, 이 가운데 35권을 이미 읽었다. 역시 알라딘 빨갱이 syo. 호는 알빨. 그보다 실은 입문서 빠돌이라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그렇다면 두 번째 호는 입빠.

 

알빨이든 입빠든, 마르크스 200주년을 맞이해 가만히 있을 syo가 아니다. 실은, 마르크스 관련해서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모든 입문서와 개론서를 다 읽은 다음, 그야말로 쌩초보를 위한 입문서/개론서 읽는 순서 안내’ 같은 페이퍼를 써 볼까 소소하게 기획 중이다.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입문서/개론서는 너무 많다. 니체를 제외하면 나머지 철학자들에 대한 책은 그 수가 대체로 마르크스의 반, 혹은 반의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그 안에는 가려야 할 옥석도 있고, 읽기 좋은 순서도 있다. syo 역시 맑알못 시절에는 표지만 보고 이게 이유식인지 홍어삼합인지 구분할 줄 몰라서 부득이 코도 뻥뻥 뚫리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다.

 

사실 기존에 나와 있는 입문서/개론서는 거의 다 일독씩은 했지만, 희미한 기억만으로 테크트리를 짜면 사회에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으므로, 한 번씩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이래저래 다독할 처지가 되지 못하여 쉬엄쉬엄 읽는 중이다. 7월에 시험이 끝나면 예년처럼 미친 듯이 읽을 수 있을 테니, 아마 10월 언저리에는 뭐라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얼른 기억나는 괜찮았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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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5-07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전 추천도서 70권 중 달랑 3권 읽었네요.
아직 빨갱이 되기 먼 것 같습니다. ㅎㅎ

syo 2018-05-07 08:32   좋아요 1 | URL
아니야 ㅋㅋㅋㅋ 북다님은 저런 것들 읽으실 필요가 없으신 거죠. 이미 너무 빨가셔서.

stella.K 2018-05-0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대단합니다. 맑스에 관한 책 70권!
스요님 그 정도면 알라딘에서 객원으로라도 채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 이미 리스트를 만들 때 어느 직원분이
하셨겠지만 지금쯤 스요님 때문에 약간은 쫄고 계시지 않을까요?ㅎㅎ

저야말로 맑알못이라 우리가 왜 맑스를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거에 대해 한 말씀하신다면...?

솔직히 전 첨에 님이 자신을 객관화 해서 쓰는 페이퍼가 익숙치 않았어요.
왜 가끔 드라마 보면 아이들 자기가 자기 이름 부르면서 어른한테 예쁘게 보일려고 하잖아요.
그게 생각이 나서. 그게 알고 보면 그 아이의 독특한 캐릭터라기 보단
그 극을 쓴 작가가 아이들에 대한 연구를 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아이들이라면
이럴거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아 거북스럽더라구요.
아, 물론 작가와 스요님이 같다는 건 아니구요.
뭐 님은 일종의 시그니처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ㅎㅎ

syo 2018-05-07 15:24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알라딘이 리스트업 한 70권 안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들어 있고, 심지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까지 들어있습니다. 올해 안에 저 70권을 다 독파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야 겨우 입문서/개론서 리스트나 만들려고 하는 수준인 것을요. ㅎㅎㅎㅎㅎㅎ

제 생각입니다만, 우리가 맑스를 알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을 맑스가 기가 막히게 잘 가르쳐 주고 있을 뿐이지요. 그러나 사실 딱히 맑스로부터가 아니더라도 배울 수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배우기 싫어도 자동으로 배우게 되는, 대체로 아프고 뼈저린 방식으로 배우게 되는 그런 것들이지요.

syo가 syo를 syo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지셨다면, 스텔라님도 이제 저와 꽤 친해졌다는 말이 아닐까요 ㅎㅎㅎ 원래 좀 꼴보기 싫은 것도 호감이 있는 사람이 하면 그냥 저냥 넘어가지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니까요. 시그니처로 이해하신다니, syo를 향한 스텔라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래 ㅋㅋㅋㅋㅋㅋㅋ

stella.K 2018-05-07 16:4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아뇨.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섭하죠.
스요님은 그때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관련된
페이퍼에서 댓글 이후 제 글에 댓글 다시는 거 못 봤슴다.
저는 스요님 페이퍼를 꼬박꼬박 읽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읽을 때마다 댓글을 다는 편인데 말입니다.
친근은 서로 가까워졌을 때를 의미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오히려 스요님을 혼자만 짝친근 하는 지도 모르죠.
그러다 스요님 팽 당하실지도...ㅋㅋ

syo 2018-05-07 18:16   좋아요 1 | URL
어이쿠 ㅎㅎㅎㅎ 죄송합니다. 서운하실 거라고는 예측도 못했어요. 너무 제 입장에서 생각했나보네요.
저도 여기저기 댓글과 좋아요를 뿌리고 다니지만, 그 분들이 제 서재에 찾아오시지 않는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보니 다들 저 같을 거라고만 생각했나봐요. 허허;

댓글을 제대로 못 다는 것은 거의 성격 문젭니다. 이웃분들의 길고 다정한 댓글을 볼때마다 혀를 내두릅니다. 원체 경상도 남자로 자라놔서......

스텔라님께서 제 글을 꼬박꼬박 읽는 건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댓글을 다시는 편인 것처럼, 저도 스텔라님의 글에 꼬박꼬박 댓글을 다는 건 아니지만 읽긴 열심히 읽고 있답니다(응?) ㅎㅎㅎㅎ 너무 서운해하지 마셔요. 스텔라님을 댓글을 달만큼 친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댓글을 안 단게 아니랍니다.

짝친근 이론은 사실이 아니니 넣어두시고, 팽도 넣어두시고, 다정하게 지내보시자구요^0^

chaeg 2018-05-07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syo님의 얼굴이 빨간 것이지요..

syo 2018-05-07 20:38   좋아요 0 | URL
바로 그렇습니다!! 토큰님 제대로 알아 주셨네요^-^

독서괭 2018-05-0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머릿속은 빠알개 빨가면 맑스 맑스는 어려워 어려우면 입문서 입문서는 많아 많으면?? syo님의 페이퍼를 기다려야죠.
... 이 댓글 쓸까말까 하다가 씁니다 ㅋㅋ

syo 2018-05-08 13:43   좋아요 0 | URL
근래 본 것 중 가장 재치있는 댓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시 독서괭님은 예삿 분이 아니셔 ㅎㅎㅎㅎㅎ
 


나는 바람이 많은 어느 물가에서 왔다

 

밤이 조각낸 달빛이 물돌에 부딪혀 쟁그랑댔다. 우리는 개울이 뱉어놓는 물소리를 밟고 서서 조용히 귀를 적셨다.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고, 큰아버지가 기억이 난다고 대답했다. 달그림자에 기대 선 나무들이 틈틈이 몸을 열어 바람을 풀어 놓고 있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옷과 신발을 벗어던지고 물을 헤집어 물로 들어갔다. 개울의 가운데로 걸어가는 아버지의 슬와가 아슴아슴 밤으로 버무려지다 이내 어둠의 뒤편으로 완전히 숨었다. 구름이 달을 지나가고 있었다. 바람이 물풀을 만지는 소리. 개구리 제 이름 외치는 소리. 두 어른이 두 아이로 돌아가 개울물 으깨는 소리. 물 깨져 흩날리는 소리. 물에 물 젖는 소리. 개울가의 밤은 소리로 환했다. 나와 사촌 형은 넓고 평평한 돌 위에 옹송그리고 앉아 오롯이 소리를 모으는 귀가 되었다. 오래 듣고 있었다.

 

그날 개울의 중심으로부터 흘러나와 형과 내 귀를 울렸던 것은 아마 시간이었을 것이다. 밤이 열어준 시간의 한복판에서 물과 놀고 있던 그 소리들은 이미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밤, 그 개울가에 두 어른과 두 아이가 있었다고 사람들은 말할 테지만, 그 소리들에 젖어 본 나는 안다. 잠깐이었지만, 어른은 없었다는 것을. 물과 바람과 밤은 부드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저 무서운 어른들을 얼른 세상 밖으로 치워 버릴 만큼 강하다는 것을.

 

이렇게 내가 물과 바람과 밤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도.

 


 

과거는 미래를 상상하는 터전이다회고의 끝에는 노스텔지어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상상이 있어야 한다노스탤지어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과거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지고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을 정도로 수다스러워진다노스탤지어는 사람을 우울함 속으로 데려간다과거를 추억하고 안타까워할수록 현실은 맘에 들지 않기 마련이다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영혼이 사로잡힌 사람은 미래라는 단어를 낯설어 한다부모가 살아왔던 생애를 기록해 나가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미래가 떠올랐다과거는 미래를 보기 위한 연습이다과거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고아가 되어도 서럽지 않다과거에 대한 기억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종결되어야 한다기억의 정확한 시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노명우인생극장


기억이 현재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명제는 구체적으로 있었던 일즉 사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생각했던 바즉 의식에 대해서도 성립한다과거의 의식을 재현하는 데는 이미 현재의 의식이 개입한다지난 일에 대한 추억은 과거의 재현인 동시에 지금 시점의 기억이라는 점에서 이미 현재적 의미를 갖고 있다.

류동민기억의 몽타주

 

나는 새삼 깨달았다소리는 아름답다세상에는 아름다운 소리와 아름답지 않은 소리가 있는 게 아니다모든 소리는 아름답다문제는 소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언제 그 소리를 내는가언제 그 소리를 듣는가어떤 마음으로 듣는가어떤 크기로 듣는가그게 문제였다결국 인간이 문제였다.

김중혁,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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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18-05-04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아버지가 기억하신 건?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왜 개울로 들어가신?

다음 포스팅에서 알 수 있게 되는 걸까요?

syo 2018-05-04 07:54   좋아요 0 | URL
사실은 이 사건(?)이 제가 6살때쯤 벌어진 일이라서 기억은 희미하고 이미지만 선명합니다.

일단은 아버지가 큰아버지한테 ˝여기 기억하시냐˝고 여쭙고 큰아버지가 ˝기억하지 그럼˝ 하는 대화를 주고 받으신 걸로 저는 기억하는데 그것도 사후에 재구성된 것일 수도 있구요. 실은 두 분 중 누가 묻고 누가 대답했는지도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저 장소가 아버지와 큰아버지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두 분이 어릴 적에 여기서 고기 잡고 놀았던 거 기억하냐는 말을 주고 받았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풍경 고즈넉하고 추억에 젖어서 개울에서 한 판 노신 걸로.
 


사랑의 시詩, 사랑의 시時


사랑이 시를 낳는다. 당연하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시를 말한다. 사랑을 나누는 이들은 시로 서로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사랑의 말에도 은유가 중요하고, 의미가 중요하고, 리듬이 중요하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사랑의 모든 발신은 도착한 모습 그대로 수용되지 않는다. 이해와 오해를 통해 지연되고 해석된다. 시인이 고개 저은 시가 때로 읽는 이의 마른 마음을 축이듯. 혹은 종종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나듯. 내 사랑은 내가 사랑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내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사랑한다.

 

내가 쓴 시처럼 내 사랑은 대체로 나만 읽을 수 있었다. 늘 나만 아는 메타포. 그저 내 눈에만 보이는 상징. 겨우 내 귀에만 들리는 운율. 결국 참지 못하고 제풀에 그 모든 남루한 시어들의 배를 가르고 의미를 끄집어내 낱낱 풀어헤치자, 설명된 모든 시가 그렇듯이, 그 순간 내 사랑은 문학이 아니라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저,

 

망실과 왜곡이 정해진 바라면, 나는 시를 더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더 정확하게, 더 경제적으로, 더 아름답게 의미를 송신하는 더 커다란 안테나를 세우려 했다. 사랑이 시를 낳는다. 그러나 시는 사랑을 낳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더 좋은 시를 만듦으로써 더 좋은 사랑을 낳아보려 오래 골몰했던 것 같다. 대부분 부질없는 시도였다. 시는 현란하고, 충만하고, 저 홀로 꽃처럼 밝게 피었으나, 사랑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그저 있었다. 시를 신고 사랑은 그다지 오래 걷지 못했다. 애썼으나 멀리 오지 못했다. 시를 더 잘 쓰는 기술은 늘 부족하거나 불순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제 와, 이제라도,

 

더 다정한 사람이 되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

 



 

 思慕

 - 물의 안쪽

 

 바퀴가 굴러간다고 할 수밖에

 어디로든 갈 것 같은 물렁물렁한 바퀴

 무릎은 있으나 물의 몸에는 뼈가 없네 뼈가 없으니

 물소리를 맛있게 먹을 때 이()는 감추시게

 물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네

 미끌미끌한 물의 속살 속으로

 물을 열고 들어가 물을 닫고

 하나의 돌같이 내 몸이 젖네

 귀도 눈도 만지는 손도 혀도 사라지네

 물속까지 들어오는 여린 별처럼 살다 갔으면

 물비늘처럼 그대 눈빛에 잠시 어리다 갔으면

 내가 예전엔 한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낮고 부드럽고 움직이는 고요

문태준思慕가재미

 

작은 기쁨이 우리 삶을 지탱해준다. '사소한', '소소한', '간소한'이란 수식어가 너무 많이 쓰여 팬시용품처럼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존중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더 허무해질까.

조안나,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

 

일상성이 소중한 이유는 결국 사람 때문이다일상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이유도 혼자만의 외딴섬이 되고 싶다거나 경주마처럼 눈을 가리고 내 앞길만 보고 살자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매일매일 하루하루를 늘 똑같이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늘 그자리에 있길 바라는내 나름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김교석아무튼계속

 

사랑어느 봄날 밤의 사랑그녀의 나이트가운에 달린 면 소재의 레이스잠들기 전 그녀가 사용하는 로션 혹은 향수의 신선한 향기그녀의 검은 머리와 잘 보이지 않는 창백한 얼굴흐트러진 레이스창틀 및 겹쳐진 커튼을 통해 새어들어와 우리의 몸 사이를 가로지르듯 비추는 가로등 불빛애정과 실망에 관한 완벽할 만큼의 솔직한 토로한 육체의 다른 육체에 대한한 대답의 다른 대답에 대한 완벽한 반응그리고 우리의 지적 능력을 사로잡아버리는 그 어떤 매혹을 향한이질적이고 압도적인 폭력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을 향한 느릿느릿한 여행그리고 달콤한 잠.

존 치버존 치버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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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는 이별도 말해요.
    from 마지막 키스 2018-05-03 08:55 
    이별이 오면 문태준이별이 오면 누구든 나에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후련하게 들려주었으면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바지락과 바지락을 맞비벼 치대듯이 우악스럽게바지락 씻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면그러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틀어막고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가장 아픈 데가 깔깔하고 깔깔한 그 바지락 씻는 소리를 마지막까지 듣겠지오늘은 누가 나에게 이별이
 
 
2018-05-03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3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8-05-0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시 궁금합니다. 축가만큼이나...!!

syo 2018-05-03 15:03   좋아요 1 | URL
그 축가는 근래 보기 드물게 폭망하여 그들은 아마 더욱 행복하게 살 것 같습니다........ㅠ

독서괭 2018-05-03 22:1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결혼생활에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재생되겠군요!

syo 2018-05-03 23:50   좋아요 0 | URL
이렇게 온누리에 평화와 안정을 뿌리고 다니다니......위대하다.ㅋㅋㅋㅋㅋㅋ

AgalmA 2018-05-04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잘 몰랐는데 syo님은 생각의 결이 참 고운(?) 사람입니다. 제 표현력이 부족해 이렇게밖에는 말하지 못해 속상!

syo 2018-05-04 19:09   좋아요 1 | URL
아갈마님의 표현력이 부족하시다구요? ㅋㅋㅋㅋ 그건 아니죠. 그냥 syo가 애매한 거지요 ㅎ

뭔진 잘 모르겠지만 고운 건 좋은 거죠! 좋은 냄새가 나는데. 감사합니다 ㅎ

AgalmA 2018-05-04 19:18   좋아요 0 | URL
그래요. syo님이 참 설명하기 애매한 사람이다로 합의 봅시당!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