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차라리 악마의 자식이라도 되고 싶었나 봐
200X년 4월 12일 목요일, 대구의 한 작은 컴퓨터학원에서였다. 영업이 잘 돼서 그랬는지 잘 안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3.5인치 디스켓 한 통을 선물해주는 것이 그 학원의 오랜 전통이었다. 이미 CD-ROM이 최첨단 저장매체로 자리를 잡았고 디스켓이라는 물건은 노병이 되어, 죽지 않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사라지고는 있는 서글픈 시절이었다. 처음 CD-ROM이 등장했던 때가 아슴아슴 떠오른다. 아니, 세상이 이렇게 막 급하게 변해도 되는 거야? 이 얇은 플라스틱 한 장이 플로피 디스크 500장과 쌤쌤이라니! 과연 인류가 기술문명의 이 엄청난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있긴 한 것이야?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3.5인치 디스켓이 미풍양속으로나마 가늘게 명맥을 이어가는 훈훈한 시절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에 와서 보면 어차피 디스켓이나 CD-ROM이나 고조선 유적지에서 비파형 동검과 나란히 발굴될 것 같은 느낌이므로 부연하자면, CD-ROM이라는 놈은 한 장에 자그마치 700메가바이트를 구겨 넣을 수 있는 반면, 3.5인치 디스켓은 장당 1.44메가라는 협소하다 못해 냉소하고 싶은 저장 공간을 뽐냈다. 웬만한 코딱지 하나도 10메가가 넘어가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이게 다 뭐하자는 짓인가 싶겠으나, 실제로 syo는 그 디스켓 한 통(10장)이 매우 갖고 싶었는데, 10장의 컬러가 각각 빨주노초파남보핑흰검 총천연색이라 모아놓고 보면 너무도 예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syo는 학원 문을 박차고 들어서면서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상태로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선생님 저 내일 생일이에요, 디스켓 내놔요, 아, 참, 그리고 안녕하세요? 그러자 선생님께서 매우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정말? 내일 생일이야? 4월 13일, 금요일? 아니, 기껏해야 한 달 5만원 소액 결제로 실처럼 가느다란 관계가 겨우겨우 이어지는 자본주의 제자-고갱님에 불과한 내 생일에, 저렇게까지 기뻐하신단 말인가. 살짝 감동 받은 syo가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헤헤 웃자, 선생님은 그야말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신다. 아! 정말 잘됐다! 그럼 네가 지금부터 책임지고 여기 컴퓨터들 날짜 다 4월 14일로 바꿔 놔. 알지? 13일의 금요일에 컴퓨터 켜면 바이러스 걸리는 거. 한 대라도 바이러스 먹으면 13일에 금요일 태어난 니 책임이야. 아, 참, 그리고 생일 축하한다?
그날 보니 학원의 컴퓨터는 모두 해서 스물여덟 대더라.
그러고 보면, 이런 일도 있었다.
13일의 금요일은 종종 찾아오지만, 4월 13일의 금요일은 많아야 10년에 두 번 온다. 13일의 금요일 개념이 숫자 13에 대한 공포증(심지어 용어도 있다. ‘트리스카이데카포비아’라고 부른단다)이 만연한 서양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만약 13월이 있었다면 13일의 금요일 중에서도 13월 13일의 금요일이 짱 먹었겠으나, 애석하게도 일 년은 열두 달이고, 그렇다면야 으뜸은 누가 뭐래도 死월 13일의 금요일 아니겠냐는 것이 syo의 지론이다. 이미 조숙하여 잡다한 책을 읽고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 그러니까 구구단을 다 욀 즈음이었는데, 그때 벌써 13일의 금요일이 무시무시한 날이라는 사실을 syo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 syo가 어느 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선언한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나는 악마의 자식이었노라고. 죽을 사짜 4월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나 태생적으로 공포스런 저주에 묶여 있다고. 한 학년에 반이 3개 밖에 없는 시골의 작은 학교였고 아이들은 더없이 순박했다. 우와아아아아, 맞나? 응, 너그들만 알아라. 우와아아아, 맞나? 너그들 혹시 ‘13일의 금요일’카는 영화 아나? 우와아아아, 모르는데? 아, 그거 공포영환데, 내 얘기도 쪼매 있지.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사람은 내캉 다 비슷하거든. 우와우와아아, 맞나? 하모, 그라고 내는 또 4월 아이가, 느그들 4 알제? 4, 디질 4. 우와와우와아아, 맞나? 디지나?
그러니까 syo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두 가지 뻥을 친 것이다. 우선, 몇 해 지나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처음 보게 된 영화 13일의 금요일 주인공은 다들 아시다시피 전기톱으로 사람 도륙내는 게 사는 낙인 인간 백정 놈이라 syo와 도저히 인생 스토리를 공유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게 참 치명적인 사실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작 syo는 13일의 토요일에 태어났었다는 점이다...... 아, 망했어. 어쩐지 악마의 자식이라고 하고 다니기에는 엄마 아빠가 사람이 너무 좋더라니만. 심지어는,
악마의 자식은커녕 사주팔자가 그야말로 황홀하게 좋다고 한다. 덕이 아주 충만하단다. 이런, 세상에.



그는 큰소리로 외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목이 아팠다. 드높이 하늘을 날고 있는 매나 독수리처럼 외침으로써, 자기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음을 통렬히 알리고 싶었다. 그것은 삶이 그의 영혼을 상대로 외치는 소리였으며, 결코 의무나 절망의 세계가 내는 그 둔하고 조잡한 목소리가 아니었고, 제대에서 창백한 성직을 수행하라고 그를 불렀던 그 비인간적인 목소리도 아니었다. 한 순간의 야성적 비상이 그를 해방했고 그의 입술이 억제하고 있던 승리의 외침이 그의 두뇌를 갈랐다.
_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나는 예전에 걸음마를 어떻게 배웠는지를 몽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이제 걸을 수 있을 뿐, 더 이상 걷기를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_ 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
나는 차츰 경외심을 감추려 애쓰는 것 같은 주위 사람들의 눈빛을 은근히 즐기게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마리화나를 담뱃갑 속에 감추고 다니기라도 하는 듯한 내밀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쾌락에 익숙해졌다. 그 쾌락은 바로 '국민학생'이던 시절, 등하굣길 학교 뒷골목에서 늘 술에 절어 코가 빨갛던 아저씨가 연탄불에 구워 팔던 '쫀드기' 그 불량식품의 오묘한 맛과도 같았다. 연탄구멍 위에 오그라들던 붕장어 껍질처럼 생긴 그것, 맛있으니까 불량함에도 사 먹는 건지, 아니면 거꾸로 불량함 때문에 맛있게 느껴진 건지 알 수 없던 그것.
_ 류동민, 『기억의 몽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