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취업 이야기
三(친구입니다)이 마침내 일자리를 얻었다. 대구의 어느 영세한 세무사 사무소에서 최저시급만 받고 야근 주말 출근까지 해 가며 한 달을 벌벌 기던 저놈식기에게 때려치우고 다른 일자리를 구해보라고 권한 것이 1월 말이었다. 그 말 떨어지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三은 바로 그 사무소를 박차고 나왔으나 이 멍청한 놈은 그 이후 자기소개서 하나 작성하는 데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빈둥거리게 된다. 때려 친 지 두 달이 다 가도록 취업은커녕 어디 한 군데 면접 보러 오라는 소리가 없다기에 혹시나 해서 읽어 본 저놈식기의 자기소개서는, 이건 뭐 발가락하고 두 시간만 주면 뚝딱 만들어 낼 정도의 저퀄인데다가 주술호응은커녕 심지어 맞춤법조차 엉망진창이었다. 야, 이게 글이야? 아놔, 내가 지금 뭘 읽은 거야..... 의무교육이 니 글 보면 지가 대체 왜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쏘주 나발 불게 생겼다. ‘할수있었습니다’가 뭔데 도대체. 띄어쓰기 안 배웠어? 어디 가서 syo랑 초중고 같이 다녔네 하고 다니지 마라, 이색기야. syo가 폭풍 쏘아붙인 카톡 메시지의 1이 사라지고도 3분 뒤, 글로만 봐도 자동으로 음성지원이 되는 三의 대답. “아니그게, 붙여놓는게 보기좋잖아”
세상에 자소서 제출 전에 맞춤법 검사 돌리는 기본적 정성도 없는 새끼를 뽑아줄 회사가 있겠냐고. ‘한글’에다가 복사-붙여넣기 한 번만 해 봐도 빨간 줄 다 그어주는데...... 이건 멍청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멍청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정말 확실한 건, 아무래도 쟨 멍청하다는 것뿐이다.
야, 당장 짐 싸. 당장 필요한 이불이랑 옷가지 몇 벌 먼저 싸서 우체국 택배로 보내고, 남은 짐은 형한테 보내 달라 하고 내일 당장 서울로 올라온다. 내일 당장? 그래 인마. 천천히 짐 싸서 보내고 주말에 올라가면 안 돼? 응, 안 돼. 주말까지 뭐 할 건데? ....... 그치? 닥치는 게 좋겠지? 1시간 있으면 우체국 셔터 내리니까, 즉시 움직이도록. ......어.
이렇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고시원 맞은편 방에 저놈식기를 처박아 놓고 조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조련하고 누가 조련된 건지 아리까리한 게, 애초에 첨삭만 좀 해주겠다고 생각했던 자소서는 사실 syo가 거의 다 쓰다시피 했고, 면접 때 어떡하냐며 벌벌벌 떠는 저 삼식이에게 압박면접 체험 서비스를 제공하느라 피 같은 내 시간을 부질없이 태워야만 했다. 이쯤 되니까, 사실은 저 놈이 천재는 아닐까 싶다. syo의 분노 패턴과 급한 성질을 활용할 방법을 꿰고 있는 녀석은, 적당히 등신 같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제 입으로 도와 달라는 말 한 번 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얻어낸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이런 식으로 20년이었던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침내 덜컥, 두 달 전 일하던 곳보다 두 배는 더 받을 수 있는 회사에 붙었다. 서울 상경 보름 만에 이루어낸 쾌거다. 보름 동안 三이 잃은 것은? 없다. 그러나 24시간이 모자란 수험생 syo가 잃은 것은? 와, 소오오름.......
여담이지만 도대체 저 얼빠진 놈한테 비싼 돈 꼬박꼬박 주겠다는 그 회사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채용공고에 회계학이나 경영학 지식 있는 사람 우대한다고 쓰여 있는 거 뻔히 읽어 놓고도, 면접 자리에서 CPA 준비할 때 무슨 과목에서 제일 성적이 안 나왔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세법 상법 경제학 다 놔두고 굳이 회계학을 제일 못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물색없는 인간이다. 야, 차라리 경제학을 부르지 인마. syo가 한심하다는 듯이 따져 묻자 그놈 왈, 그래도 내가 경제학관데, 경제학을 못했다 그러면 멍청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남들 1, 2학년 때 듣는 미시경제를 3학년씩이나 돼서 들어놓고 꼴랑 B0 받은 놈이 하는 말이었습니다. 면접관이 니 성적표도 손에 다 들고 면접 본다......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열라 순박하게, 심지어 갑자기 볼륨을 높여서, 최대한 빨리 하고 싶습니다! 이런다. 그 박력에 흠칫 놀란 면접관이, 우리가 충청도에 새로 공장을 하나 올리는 데 뽑히면 그쪽으로 보낼 수도 있는데 괜찮겠느냐며 난색을 표한다. 그제야 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녀석은 대답한다. 괜찮습니다, 아직 여자 친구가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괜찮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여자친구가 없는데, 그래서 괜찮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혼은 최대한 빨리 하고 싶습니다만 아직 여자 친구가 없습니다! 아직 여자 친구는 없습니다만 결혼은 최대한 빨리 하고 싶습니다! 어느 쪽이든 진지하지만 웃기다. 이러니 짜증나지만 사랑스러운 친구다. 그리고 비밀이지만, “아직 여자 친구가 없습니다.” 의 ‘아직’은 놀랍게도.......(닭똥같은 눈물을 흘린다)
하여튼 이 녀석까지 취업이 되고 나니, 이제 syo가 아는 인간들 가운데 가장 비루한 인간은 다름 아닌 syo가 되고 말았다. 빼박이다. 아, 너만이 나의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내 인생 비록 밑바닥이었지만 너와 함께라서 외롭지 않았거늘...... 네가 이렇게 나만 버려 놓고 저 혼자 사람 도리 하는 사람 대열로 들어서는 거냐, 그러고도 니가 인간이냐, 이 개시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싸콩그레츄레이션빰바밤빠밤빰 빰!
그동안 몸 고생 맘 고생 많았다 인마, 이제 너도 꽃길 좀 걷자. 어깨 펴고 새끼야, 당당하게, 쫄지 말고. 남들처럼, 할 거 다 하면서, 누릴 거 다 누리면서. 일은 살살, 너무 최선 다 하지 말고, 8할만, 열일 할수록 자본가만 배 터진다. 알겠냐?
그리고 요즘 날 더워지니까, 오늘 집에 올 때 아이스크림 케이크 사 와라 개시끼야ㅋㅋㅋㅋㅋㅋㅋ 알겠냐?
자, 이제 나만 잘 하면 된다.



같이 아무 말 않고 오래 앉아 있으면 불편해지는 사람을 친구라 부르기는 거북하다. 친구란 아내 비슷하게 서로 곁에 있는 것을 확인만 해도 편해지는 사람이다. 같이 있을 만하다는 것은 어려운 삶 속에서 같이 살아갈 만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_ 김현,『행복한 책읽기』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하기 바란다.
누군가를 인정하지 않고,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수록, 세상엔 좋은 것들이 좀 더 생겨날 것이다.
_ 최민석, 『꽈배기의 맛』
삶이 노동을 통해 가능해지는 것이기는 해도 노동은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해야 하죠. 삶이란 되도록 자유롭고 즐거운 것이 되어야만 하니까요. 사람들의 삶을 자유롭고 즐거운 것으로 바꾸는 노동은 신성하지만, 반대로 부자유와 고통을 자아내는 노동은 불경스럽습니다. 한마디로,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노동만이 아름다울 수 있어요. 반대로 삶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노동은 추하기만 할 뿐이죠.
_ 한상연,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