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올해 최고의 화제가 될 영화, 아바타를 봤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준 놀라운 3D 그래픽은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최초의 활동사진, 칼라 영화에 이은 영화 혁명의 한 꼭지를 차지할 것이고, 사람들이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으니... 넘어가겠습니다.
모노노케히메 + 천공의 섬 라퓨타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다...
늑대와 함께 춤을 + 매트릭스 + 에이리언 이다...
뭐 이런 식의 "권선징악 + 자연보호"라는 구호로 한 큐에 정리될 수 있는
진부한(?) 스토리는 사람들이 아예 이야기도 안 할 정도니... 넘어가겠습니다.
근데 이 영화, 관점이라는 면에서는 마음에 들더군요.
판도라 행성에 매장된 언옵티콘이라는 광물질을 채굴하려는 어느 기업체, 거기에 고용된 용병집단,
천상 군인이다, 는 생각이 드는 전직 해병대 장교가 지휘하는 이 집단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판도라의 원주민인 나비 족은 어찌 되던,
그들의 삶의 터전이 어찌 되던 아무 상관 없다는 주의입니다.
아예 대놓고 나비 족을 그냥 "파리떼"라고 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너희에게 있으니, 너는 꺼져주셔야 겠다. 아니면 내가 널 죽일 테니까.
은연 중에 현실 세계에서 지구방위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미국,
그리고 미국 군대와 겹쳐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벌이는 작태와도...
우리가 뉴스에서 이라크 전쟁,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보는 시각은 대부분 미국의 시각,
"악의 축"을 몰아내는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침략자의 입장이었습니다.
그 놈들이 힘센 놈들이었거든요.
근데 이 영화는 처음에 침략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내부 정보를 빼내기도 하던 주인공이
점점 침략을 당해 세계와 동화되어 살아가던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될 처지에 놓인
피침략자의 입장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구도는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동화되어가는 백인의 모습을 그린 "늑대와 함께 춤을"에
이미 잘 묘사된 바 있습니다. 위에서도 이미 말했지만 ^^)
당연히, 관객들도 환상적인 자연 풍광과, 그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말 그대로!) 살아가는
나비 족을 보면서 점점 그들의 입장에 서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갈등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부분, 나비 족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는
엄청나게 큰 (초고층 빌딩 정도의 크기) 나무가 용병집단의 압도적인 화력 공세 앞에서
속절없이 쓰러지고 마는 장면...
저는 왜 이 장면에서 911 테러로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가루가 되어 버렸던...
세계무역센터가 떠올랐을까요?
뭐 이런 것들도 다 계산에 넣고, 미국민들에게 가장 극적인 감정의 합일을 이끌어내기 위해
교묘히 엮어넣은 설정이겠지요.
제대로 된 본토 공격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미국이라는 나라,
그 국민들이 911 테러로 인해 겪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고, 지금도 그 트라우마는 남아 있겠지요.
그걸 교묘히 자극한다... 치밀합니다.
근데 이런 감정적 동질화가 최고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장면을,
침략자 미국에게 당하는 피침략자 원주민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미국의 관객들은 이런 미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영화를 봤을까요?
(니 죄를 니가 알렸다! 같은?)
압니다. 대부분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좋은 구경거리 하나 봤네 하고 극장문을 나섰을 것이고,
매우 작은 소수만이 약간 뭐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정도로나 생각하면서 극장문을 나섰을 것이고...
또 그네들이 그 정도의 생각을 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뭐가 어찌 된다거나...
영화에서처럼 활과 화살 따위로 지구방위군 미국 군대에게 이기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거.
아무 죄 없이 자신이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야 되는,
지금도 이스라엘 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시달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기를.
단지 석유가 좀 많았기에 얼토당토 않은 구실로 침략을 당해야 했던,
아직도 정치적 혼란과 불안 속에 살아가야 되는 이라크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기를.
외국 세력의 사주를 받은 독재자들의 가혹한 수탈에 맞서 떨쳐 일어난
사파티스타 등등의 남미 농민 봉기 세력에게 희망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