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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시간 -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제43회 공식 선정작
델핀 파니크 지음, 이나무 옮김 / 초록서재 / 2025년 3월
평점 :

그런데 왜 남자들만이야, 응? 왜 여자들은 안 가?
전쟁이 일어나고 모든 남자들은 출정 통지서를 받는다.
남자들이 모두 전쟁터로 떠난 마을에서 여자들은 군수 공장에 취직합니다.
남자들은 전쟁터로 여자들은 일터로 갑니다.
전쟁에 참전한 남자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거나, 동료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거나, 다치거나, 병들거나 전쟁의 광기에 휩쓸려 버립니다.
남자들이 다 떠난 여자들만 남은 마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떤 여자는 남자를 전쟁에 보내지 않고 지하실에 숨겨놓죠.
어떤 여자는 방석을 넣어 임신한 것처럼 거들먹거립니다.
아버지의 공장을 차지한 딸은 그 공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계획을 짭니다.

전쟁이 길어지고 여자들도 변합니다.
전쟁이니까!라는 이름하에 평소에 벌일 수 없는 일들을 벌입니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내는 여자들의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변해가는 그들의 모습이 전쟁이란 어떤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네요.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제43회 공식 선정작입니다.
그림체를 보시면 느끼시겠지만 범상치 않은 내용들을 담고 있는 그래픽노블입니다.
남자들이 전쟁에 차출된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구태의연한 상상들을 깨버립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허를 찔린 느낌을 받았죠.
그러면서도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이고,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여자들만의 세상에서는 새로운 질서와 자유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또 다른 억압과 착취와 불평등이 존재하게 되죠.
이런 일들에 익숙해질 무렵에 전쟁이 끝나고 남자들이 돌아옵니다.
남자들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여자들의 규칙들은 어떻게 될까요?
가볍게 읽으면서 가볍지 않은 내용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그래픽노블이네요.
독특한 그림체라 마치 블록 쌓기로 만든 모양 같아서 감정이 실리기보다는 한 발짝 뒤에서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지붕을 얹은 듯한 머리 모양을 여자들 자체를 집으로 형상화한 거 같아요.
남자들이 돌아올 집.
남자들이 떠나도 집을 지켜야 하는 여자들의 운명 같은 걸까요?
그래픽노블은 볼 때마다 많은 감정을 가지게 합니다.
아주 단순한 그림에서조차 묻어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소설과는 다른 감정을 가지게 합니다.
전쟁의 또 다른 이면을 그린 <전쟁의 시간>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남자들이 전쟁터로 다 차출된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