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청소부 마담 B
상드린 데통브 지음, 김희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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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라는 일에는 상당한 철저함이 필요했고 블랑슈 바르작은 일류에 속했다.



범죄현장 청소부 마담 B

사건 현장을 청소하는 게 아니라 범죄현장을 청소하는 것이다.

범인의 의뢰를 받고 범죄 현장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싹 치워버리는 것.

일류라는 수식어답게 그녀의 양아버지 아드리앙에게 철저하게 전수받은 직업이다.

정신병이 있던 엄마의 자살 이후 양부의 손에서 자란 블랑슈는 이 업계에서 가장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늘 불안정하다. 엄마의 정신병은 유전병이라 그녀에게도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그런 염려를 일깨우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최대 고객인 '사냥개'의 의뢰를 받아 현장을 청소하고 돌아와 정리 작업 중에 어머니의 스카프를 발견한 것이다.

사망자의 가방에서 발견된 피 묻은 스카프... 그것이 어떻게 그 현장에 있던 가방에 담겨있었을까?

게다가 그녀가 분명히 처리했던 시체가 다시 되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정말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그녀를 미치게 만드는 것일까?

프랑스를 뒤흔든 압도적 스릴러라 해서 기대를 했다.

게다가 소재도 독특해서 엄청 몰입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근데 번역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몰입하기 힘들었다.

겹치는 단어들과 상황이 통제되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 정신없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쫄깃하고, 은근하고, 비밀스러운 스릴러를 예상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한 느낌이다.

그저 정신없이 벌어지는 일들과 두서없어 보이는 블랑슈의 생각 때문에 이야기의 전체를 보기 힘들었다.

프랑스에서 많은 지지를 받은 이야기인데 왜 부족한 기분이 드는 걸까?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 집중을 방해한다.

좀 더 유연하게 풀어냈더라면 푹 빠져서 읽었을 거 같다.

누군가 그녀의 현장을 훼손하고, 그녀를 업계에서 퇴출시키려 한다.

그녀의 양아버지는 그녀를 돕다가 사라지고, 그녀가 한때 도와줬던 세드릭의 도움을 받지만 왠지 그에게 끌려가는 느낌이라 불안한 블랑슈.

사건은 점점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고, 믿었던 양아버지 아드리앙의 배신이 느껴지는데 믿을 사람 아무도 없는 블랑슈는 이 난국을 벗어나기 위해 위험한 거래를 한다.

그녀를 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누구의 짓일까?

소설로 읽기에는 정신 없었지만 영상으로 만나면 재밌을 거 같다.

블랑슈의 의심과 사건의 전모가 영상으로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로 잘 흡수될 거 같다.

블랑슈의 새로운 시작은 어떤 것이 될지

그녀가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블랑슈로 살아가게 될 날들을 응원한다.

어쩜 그녀의 인생 어느 시점에서 과거의 일들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이야기가 또다시 들려올 때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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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비들
데니스 루헤인 지음, 서효령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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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마. 피부색 문제가 아니야. 부당함에 대한 문제지.



1970년대 버싱으로 시끌시끌한 시대적 배경 사이로 정체를 숨기는 것들이 있다.

큰 사건에 묻어가려는 세력들이 사람들을 은근하게 선동하고 그것에서 어떤 이익을 챙기려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그런 세력이 존재함으로써 작게 든 크게 든 일어난다.

세상에 대한 신뢰와 사람에 대한 믿음과 선함을 역이용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세력.

그들에게 이용당하는지도 모르게 이용당하면서 자신들 것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메리 패트는 그런 세력들에게 격렬하게 '반격한다.'

정말 '반격'이라는 단어를 찰지게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 그 어떤 협상 거리도 남아 있지 않은 '어미'에게 돈 몇 푼 쥐여주고 찌그러져 살라고 하는 말은 범죄 보다 더한 범죄다.



흑인 아이 네 명이 백인 아이 한 명을 열차가 지나는 곳으로 몰았다면 사형을 받을 것이다. 탄원서를 제출한다 해도 잘 받아 봤자 최소 20년형이다. 하지만 어기 윌리엄슨을 열차로 몬 아이들은 5년형 이상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끽해야 그렇다.



버싱은 인종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공립학교에서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이 서로 학교를 바꾸어 통학하도록 하는 법이다.

당연히 흑백 양쪽의 엄청난 반대를 몰고 온 정책이었다.

그런 시국에 기차선로에서 흑인 남성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그 흑인 남자의 비극을 목격한 목격자들은 백인 아이들 4명이 그를 쫓는 걸 봤다고 말한다.

그 4명 중에 메리 패트의 딸 줄스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메리 패트는 줄스를 다시는 보지 못한다...





보비는 어쩌면 증오의 반대말은 사랑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그건 희망이라고, 증오는 쌓이는데 수년이 걸리지만, 희망은 보지 않는 순간에도 바로 미끄러져 올 수 있으니까.



줄스의 죽음을 직감한 메리 패트는 그날 함께 있었던 아이들을 족치며 그날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 17살의 줄스가 어떤 아이였는지를 알게 된다.

아이들의 사생활을 다 아는 부모가 과연, 정말 있을까?


"내 인생은 딸이었어요. 그 인간들이 아이를 앗아 갈 때 내 인생도 같이 뺏어 간 거죠. 더 이상 난 사람이 아니에요, 보비. 증거죠."


메리 패트는 자신의 동네 사우디를 휘어잡고 있는 패거리들이 이 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안다.

그렇게 그녀의 복수가 시작된다.

요양원의 보조 간호사인 메리 패트가 어떻게 마약범이자 성매매범에 아동성범죄자들과 싸울 수 있을까?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그 어떤 상상 이상으로 통쾌하게 터줏대감이 된 세력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울분으로 가득 찼던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뿌려준다.

메리 패트의 분노가, 그녀가 행하는 모든 폭력이 아프지만 정당해 보인다.

아마도 현재의 내 마음속 분노가 한몫한 거 같다...



가장 몹쓸 악인들과 가장 선한 사람들이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참 이상한 일 같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빠처럼.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인간.


<작은 자비들> 이 제목이 담긴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정당한 요구를 하는 이들이 부당하게 사라지는 걸 보게 됐을 때.

부당한 짓을 하고도 자신들의 과오를 당연시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죽음 앞에서는 어리둥절하는 것을 보며 마치 지금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의 예언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최후는 단 한 사람의 좌절과 고통과 분노와 복수와 용기에 있었다.

물론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어떤 공권력이 가한 것보다 더 극심한 피해를 받았다.

메리 패트라는 한 여성에 의해서.

그건 그들이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킬 것이 없는 사람은 그 어떤 두려움도 없으니까...

데니스 루헤인의 복수는 처절하고 속 시원했으며

데니스 루헤인의 미래는 서로가 나누는 술잔 속에 담긴 위로였다..

언제나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은

용기를 가진 단 한 사람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한 사람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음이다.

사우디가의 사람들은 메리 패트에게 빚을 졌다는 걸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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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식 관장의 판타지 도서관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전홍식 지음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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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의 말대로 판타지는 '도피의 문학'이지만, 저는 동시에 '치유의 문학'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의 힘을 채워 넣어서 현실의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하는 문학이라고 말이죠. 적어도 저 자신은 판타지에서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판타지를 좋아하지만 판타지가 뭐냐고 묻는다면 판타지란 이런 것이라는 대답을 정확하게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마음이 고단하거나 현실이 답답할 때 주로 읽는 책이나 영화는 판타지다.

판타지 중 나는 마법 세계를 좋아한다.

마법의 세계를 여행하다 현실로 돌아오면 현실적 감각이 살짝 무뎌지면서 마음 어딘가에 흘러넘치는 알 수 없는 희망이 나를 편안케 한다.

죽을 거 같았던 고통이나 고민에서 잠시 멀어질 수 있는 시간이 판타지의 세계다.





판타지 도서관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에는 판타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보가 담겼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로서도 판타지를 써야 하는 작가로서도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최초이자 최고의 교과서라고 말하고 싶다.

판타지 상상의 원천을 배우고,

다양한 판타지 작품을 소개하고,

판타지 세상의 다양한 과물들과 종족들에 대해 공부하고,

판타지 세상의 다양한 직업과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판타지의 가치관과 과학과의 관계를 둘러보고,

판타지 세계를 완성하기 위한 디테일의 깨알 정보들을 가르쳐주는 <전홍식 관장의 판타지 도서관>

이 한 권이면 판타지에 대한 허기증을 채울 수 있다.





판타지는 소설이나 영화뿐 아니라 이제는 일상이 된 게임 속에서도 존재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미 현실화되어 있는 가상세계도 우리의 판타지다.

이 가상현실이 점점 더 업그레이드되어 현실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면 이 세상은 어쩜 가상현실의 판타지 세상이 진짜 세상이 되어 흘러갈지도 모른다.

판타지를 하위 장르라고 폄훼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상 속에서 산다고 현실성이 없다고 타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실도피의 문학이지만 그 도피된 세상에서 현실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 세상에서의 모험이 현실에서 낼 수 없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하고, 현실에서 깨닫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할 수 있다.

또한 판타지 세상에서는 다양한 다름을 경험할 수 있다.

현실의 정형성에서 탈피하여 나와 다른 수많은 것들에 대한 경계심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

인간의 상상력이 과학과 접목하여 탄생하는 것들이 판타지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중세 시대의 마법도 어쩜 발달한 과학의 눈속임이었을지도 모르고, 그 시대 사람들의 눈에 처음 보는 기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해리 포터의 마법 세상은 어쩜 가상세계의 세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 미래에 우리는 마법을 쓸 수 있는 가상현실에서 살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나 소설의 이야기들이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판타지 도서관> 읽는 시간은.

내 삶에서 판타지 한 부분들을 좀 더 잘 잡아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실이야말로 새로움에 충만해지는 현실일 테니..

지난주 토요일은 나의 믿음이 배신당한 날이었다.

그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깨달은 시간이었다면

이번 주 토요일은 나의 판타지가 실현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판타스틱 한 현실이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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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코스트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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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은퇴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제 일터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릴러 중에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라는 작품이 있다.

은퇴한 FBI가 과거에 매듭짓지 못한 사건으로 인해 평화로운 은퇴 이후의 생활을 방해받는 이야기다.

<파과>의 조각을 떠올리게 만드는 주인공 브리짓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던 작품이었다.

돌아온 테스 게리첸의 이야기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첫 페이지부터 긴장감을 느껴야 하는 독자는 끝까지 그 긴장을 놓지 못한다.

한적한 메인주의 퓨리티 마을에 정착한 매기는 그곳에 친구들이 있다.

모두 CIA에서 은퇴한 사람들이다.

각자의 비밀을 깊게 감춘 채로 은퇴자의 생활을 조용히 보내고 있는 그들 앞에, 아니 매기 앞에 사건이 찾아온다.

누군가 그녀의 집 앞에 그녀를 찾아왔던 요원의 시체를 놓고 갔다.

고문당한 흔적이 있는 시체.

마을 경찰서장 대리 조는 젊은 날의 매기를 빼다 박은 모습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즉석에서 결성된 마티니 클럽 친구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제일 잘하는 일을 해서 매기를 도우려 하지만 조의 의심만 살 뿐이다.

하지만 매기에겐 친구들도 모르는 과거의 비밀이 있었고, 이제 누군가 그 기밀을 빼돌려서 그 작전에 참여했던 요원들을 죽이려 들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과거의 악령이 매기를 찾아왔다.

16년 전 그 사건의 전말을 누가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세 명의 늙은 스파이가 아직 자신의 능력이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모습만큼이나 슬픈 일도 없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졌던 은퇴자들은 젊었을 때 누리지 못한 평화와 안락함을 가졌지만 끝없이 자신들을 감추고 살아야 한다.

60세 이상의 이 은퇴자들은 무언가를 하고자 하지만 그들의 명석한 두뇌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미행도 힘들고, 도망치는 건 더 힘들다.

싸움도 그들에게는 힘겨울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베테랑이고 그들에겐 경험치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일상에서 쓰이지 못하고 감춰야만 하는 기술이다.

스파이라는 직업군 사람들의 노년은 어떤 걸까?

수많은 스릴러 소설 속에서 만난 젊은 그들은 무적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들의 노년을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테스 게리첸이 창조해낸 마티니 클럽의 은퇴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무궁무진한 인생 경험에서 길어올릴 이야기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게리첸은 자신의 새로운 작품의 주인공을 은퇴자들로 정한 게 아닐까?

탄탄한 필력이 뒷받침해 주는 스릴러는 읽는 맛이 남다르다.

과거와 현재가 오고 가는 이야기지만 헷갈림도 지루함도 없다.

오히려 매기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와 스파이로 살게 되면서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갈망이 더 깊게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사실 읽어가면서 범인을 예상했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예상됐지만 그 예상이 맞았어도 전혀 싱겁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반가웠고, 앞으로의 일로 이어질 떡밥을 남겨둔 거 같아서 즐거웠다.

마티니 클럽의 은퇴자들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정말 기대된다.

내가 상상해 본 적 없는 은퇴한 노년의 스파이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궁금해서 못 참겠다!

영상화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하니 드라마로 만날 마티니 클럽 회원들이 기다려진다~

젊지 않아서 더 쫄깃한 스파이 이야기~

<스파이 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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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기름
단요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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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은 본질적으로 집안싸움이죠. 인간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요."




이야기를 읽으며 멍해진다.

이 작가는 도대체 누구인가!

단요라는 특이한 이름의 작가.

내가 처음 읽는 작가의 글은 초반의 흡입력으로 인해 멋진 사이비 스릴러의 느낌이었다.

도박에 빠져 허우적대는 30대 남자. 최우혁

그를 도박의 세계로 인도한 김 형의 속죄로 우혁은 김 형의 학원에서 잡일을 하며 갱생(?)의 시간을 누리던 찰나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은 우혁을 되살렸던 소년과 마주치게 된다.

세월을 비껴간 소년은 나이 들지 않은 모습으로 우혁의 눈앞에 나타나 자신을 도망시켜달라고 한다.

이상한 집단에 쫓기던 소년이 우혁이 몸담은 지 며칠 안된 학원으로 도망친 건 우연일까?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신학 타임~


소년은 분명 기적을 행할 줄 알았다. 그러나 권능에 비하면 놀라울 만큼 백치 같은 면모를 보이곤 했다. 초등학생만큼이나 단순한 사고방식과 기묘할 정도의 지혜가 공존한다는 평가가 알맞았다.



이 미지의 소년 이도유는 예수가 맞을까?

나는 종교적인 인간이 아닌지라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의 초반까지는 신나게 읽었지만 그 이후로는 이해하며 읽느라 시간이 걸렸다.

한 번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깊거나 얕게도 해본 적이 없어서 낯설었다.

그러면서 호기심도 강해졌다. 도대체 어떤 작가이기에 이렇게 심오할 수가 있을까?

사회 부적응자이자 도박 중독자인 우혁을 통해서 사이비 종교와 세상의 종말을 논하고, 그를 도박의 세계로 이끈 김 형을 통해 의리와 속죄와 책임감과 돌봄(?)을 추구하다니 도대체 이 작가의 정체는 뭘까?





나는 인간에게 풍요와 자유를 안겨다 줬다 ㅡ 심지어 나를 욕보일 자유마저도.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왜 이들은 가지지 못한 것으로 끊임없이 불행해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모를까?



두 번의 기적을 겪은 우혁.

두 번 부활한 우혁은 세상의 멸망을 환각을 통해 본다.

1999년 12월 31일은 멸망의 날이었다.

0과 1로 이루어진 컴퓨터가 2000을 인식하지 못해서 세상이 멈출 거라 했다.

다양한 방식의 종말론이 판치던 세기말.

그 당시 벌어졌던 집단 자살 사건이 이 이야기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치 작가가 그 이야기의 목격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님 잠입 취재를 했나?

빈틈을 찾으려야 찾기 힘들었다.

어쩜 내가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못 찾았는지도 모르겠지만.

우혁과 조강현의 대화에서, 우혁과 김 형의 대화에서 다뤄지는 신학에 대한 이야기들은 독서모임 같은 곳에서 같이 읽고 토론하면 수많은 의견들이 오고 갈 거 같다.

우혁에게 기적을 일으킨 소년 이도유.

그를 쫓는 조강현과 새천년파.

그 사이에 낀 우혁은 소년 이도유의 탈출을 돕는다.

우혁은 이 세상의 종말을 멈출 수 있을까?


나는 대신 세상에 기대할 여지가 없다고 믿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 이 세상이 정말로 고통뿐이라 해도, 그 고통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우혁은 김 형의 학원에서 전임강사를 맡는다.

예수님과 종종 대화를 하게 된 우혁은 이 세상의 새로운 감독이 된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집안싸움에서 비롯된다면 아이들의 유년기를 조금이라도 돕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야말로 작가가 독자에게 진정하고 싶은 말일 거라고 짐작해 본다.

정신의 세계 어딘가에 있는 심오한 터널을 지나온 기분이다.

이것이 소설임에도 어딘가 감독이 존재할 거 같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 섞여서 작은 기적을 일으키며 사람들이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지 않을까?

하늘의 눈이 된 우혁은 잠시 멈춰둔 종말의 시계를 다시 감아버릴 수도 있다.

나는 종말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걸 막고 싶은 사람일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문제라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답답한 세상이 계속된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팽배해지겠지.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몰아가는 거 같아서 걱정스럽지만, <피와 기름>처럼 분명 세상의 멸망을 지켜내는 이가 있을 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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