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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카베 악바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평점 :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요." 리사가 말했다. "모든 걸 상징이나 의미로 납작하게 만들지 말아요."
누군가를 선동해야 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이 부여하는 의미란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다. 표면적으론 모두를 위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중동에 씐 프레임은 테러, 전쟁, 여성 혐오, 죽음, 두려움이다.
미국의 영화와 뉴스를 통해서 나는 그 모든 것을 그냥 무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최근 들어 중동 문제에 대해, 그들의 역사에 대해, 그들의 문화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순교자>는 사이러스라는 인물을 통해 그들을 말한다.
사이러스는 잠을 자지 않는 아기였다. 계속 울어대는 아이였다.
그의 엄마는 육아에 지쳐 오빠를 만나러 가다가 미국이 쏜 미사일에 비행기가 격추되어 그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아빠는 그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양계장에서 일생을 보냈다.
사이러스는 거의 혼자 자란 거와 다름없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도 전에 그는 혼란에 던져졌고, 약과 술이 그를 달래줬다.
어지러운 청춘의 시간은 약과 술과 연애에 절여졌다.

"내 말은, 당신이 진정한 결말을 찾는 걸 그만두면 그 결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에요." 오르키데가 말했다. "내 생각엔 진정한 결말이란 밖에서부터 자기 길을 찾아오는 경향이 있는 것 같거든요."
사이러스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외삼촌, 사이러스의 연인 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이러스의 꿈과 그가 지은 시들이 간간이 그를 이야기한다.
이 복잡할 거 같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겪는 수많은 사회문제들과 마주하게 된다.
정말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들이다.
이란인, 페르시안인, 중동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살면서 겪게 되는 문제들인데 그것이 왜 특별한 것으로 해석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이라서?
그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그들이기에?
그럼 우리의 프레임이란 뭐지?
죽음을 앞에 둔 예술가는 미술관에서 관객과 소통한다.
사이러스는 그녀를 찾아가 이야기를 한다.
낯선 이에게 털어놓는 '나' 자신의 이야기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죽음을 생각했던 사이러스 앞에 생생한 삶이 들어온다.
사이러스의 <순교자>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지만 역사를 이용해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어. 그건 국가들이 하는 일이라는 거, 알지? 미국이 말이야. 바로 이란이 하는 일이고."
종교, 신, 전쟁, 죽음, 사랑, 동성애, 모성, 트라우마, 외로움, 의견 차이, 자기만의 소신, 인종차별 등등
인간의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문제들이 사이러스와 그 주변인들에게 모두 일어난다.
그 어디에도 종교나, 소신, 신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이건 인간 본성의 문제니까.
그러나 그 문제들은 어느 인종이냐에 따라 이해의 폭이 달라지지..
이 이야기는 반전을 품고 시작됐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다가 거의 끝나갈 때쯤 소름 돋게 피어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모든 것에 깊이 스며들었던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라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다 말았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일어난 일이니까.
스스로의 인생을 찾아가는 것이 잘못일 리 없다.
아마도 사이러스의 DNA에도 그런 기질이 있지 않았을까?
죽음은 회생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순교자>를 읽으며 하게 되었다.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는 죽음이라면 두렵지 않을 거 같다...
자신을 구하려는 자를 신은 돕게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