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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우리 사람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워몰드는 범죄자들에겐 자명한 사실, 즉 권력을 쥔 자에게는 그 어떤 설명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레이엄 그린은 2차 대전 때 영국 스파이였다.
MI6 정보원. 그 시대적 상황에서는 '애국'이 가장 중요했다.
전쟁 속에서는 나라를 구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우선되었으니까.
평상시 스파이는 어떤 일을 할까?
워몰드는 쿠바에서 진공청소기를 파는 영국인이다.
그런 그에게 접근한 호손은 이 지역에 스파이를 심어둬야 하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적당한 사람을 골라 스파이로 심어 놓고 각국의 정보를 채집하는 일이 호손의 일이다.
그럼 어떤 사람이 스파이로 적당할까?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고, 의심스럽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약점이 있는 사람.
워몰드는 그런대로 쿠바에 잘 정착한 영국인이었고, 그에게는 물 쓰듯 돈을 쓰는 17살짜리 딸 밀리가 있다.
아마도 그 밀리가 호손이 생각하기에 워몰드가 스파이 노릇하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워몰드의 스파이 노릇은 시작됐다.
모든 농담에는 언제나 상대가, 희생자가 있었다.
평온한 세월을 살아가는 시대의 스파이는 지킬게 무엇이 있을까?
전쟁통에서 스파이는 조국을 위해 애국을 하지만
평상시의 스파이는 무엇을 위해 애국을 할까?
그들에게 조국은 없었다. 조직이 있었을 뿐.
비아트리스의 일갈은 그래서 속이 시원했다.
조국을 지켜야 하는 그들은 그들의 조직을 지켰고, 그래서 거짓을 꾸민 사람에게 훈장까지 부여했다.
시대가 그랬다.
지금도 역시 어딘가에서는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급급한 그들에 의해서 은폐되고 있을 것이다.
자리 보존을 위해 눈 감고, 귀 막고, 입까지 닫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거짓을 위해 쓰인 막대한 자금은 한 달 살이를 하는 시민들의 세금에서 빠져나가고 있겠지...
온라인 단톡방에서 이 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내가 낸 발제문은
[여러분이 호손이라면 스파이를 뽑을 때 어떤 기준을 갖고 뽑으시겠어요?]였다.
나는 호손이 워몰드를 뽑은 기준이 의심 가지 않으면서 평범한, 그러면서 약점이 있는, 그런데 의외로 강단도 있으면서 은근슬쩍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감각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발탁했지만 호손이 예측 못한 건 워몰드의 배짱이라고 생각했다.
호손이 그저 실적에 급급해서 뽑다 보니 왜인지 자연스럽게 본인과 비슷한(본인처럼 두루뭉술한...) 사람을 뽑게 된 것 같다고 하신 다북님의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 같아서 참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간의 단면을 보는 것 같은 씁쓸함도 느껴지고요.> 책하루님의 걱정이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할 거 같다.

같은 책을 읽으며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혼자 읽었을 때는 갇혔던 생각이 여럿이 함께 토론하며 읽으니 생각이 폭이 넓어져셔 더 재밌게 읽혔다.
<아바나의 우리 사람>에 <우리 사람>은 없었다..
어쩜 그 어디에도 <우리 사람>은 없을지 모른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어떤 것일 뿐.
그리고 그 '지켜야 할'것은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자기 이익을 이야기한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보다 나라를 걱정하는 이 모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레이엄 그린은 실전에서 이런 비리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야기로서 신랄하게 돌려까기를 한다.
영국 스파이 하면 제임스 본드가 떠올랐는데 이제는 워몰드가 떠오를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