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체온증 에를렌뒤르 형사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김이선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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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를렌뒤르는 왜 이 여자가, 그녀의 아버지 또한 차가운 최후를 맞이한 호숫가에서 잔인하고 외로운 운명을 맞이해야 했는지 까닭을 알고 싶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한 사람의 운명을, 그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두 문장이 <저체온증>을 관통하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마리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마리아와 엄마의 돈독한 관계를 표현하며 모녀가 빠져있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과 두 사람의 결속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묶어놓고 있는 과거의 사건.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사람의 죽음이 두 모녀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고, 어머니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마리아는 아버지의 죽음이 깃든 별장에서 목을 맨다.

자살로 마무리될 사건이지만 마리아의 친구의 제보로 에를렌뒤르는 이 자살 사건에 묘한 의문을 품게 되고,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은 채 혼자서 사건을 수사한다.

<저체온증>엔 사고사, 자살, 실종자가 나온다. 그들은 모두 얼음과 관계가 있다.

마리아의 이야기와 에를렌뒤르의 과거가 맞물리면서 얼음 아래에 숨어있던 이야기들이 삐져나온다.

삼십 년 가까이 실종 상태였던 두 사람.

사고사로 묻힌 타살.

눈 폭풍이 몰아치던 날 어린 동생의 손을 놓쳐버렸던 형의 오래 묵은 자책감들이 모여 촘촘한 이야기를 엮어간다.



"자살 역시 실종 사건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에를렌뒤르가 멋있다.

누가 뭐래도 의심이 풀리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의 끈기와 인내가 존경스럽다.

그의 묵묵함이

그의 치밀함이

그의 인내가 돋보이는 작품 <저체온증>

이 이야기에서는 해묵은 과거들이 발목 잡고 있는 현재를 보여준다.

마리아도 에를렌뒤르도 실종된 자식을 품고 사는 부모들도 모두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다.

에를렌뒤르처럼 그의 딸 역시 아버지가 없었던 과거를 되돌려 보려 애쓰고 있다.

차가운 얼음 아래 묻혔던 과거들이 스멀스멀 녹아내리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렇게 스멀스멀 과거의 상처들도 녹아내리는 이야기였다.

범죄소설이자 스릴러인 에를렌뒤르 시리즈는 그냥 범죄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시리즈다.

아이슬란드의 독특함이 양념처럼 뿌려진 이 시리즈는 다른 형사물에서 느껴보지 못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에를렌뒤르는 마르틴 베크와 발란데르를 합쳐놓은 캐릭터 같다.

베크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사건을 수사하다 한순간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아내고

발란데르처럼 가정사가 어렵지만 묵묵하게 자기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중독자이기도 하다.



우연은 의심 없는 개개인의 삶 속에 교묘하게 심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명칭이야 여러 가지 붙을 수 있겠지만, 에를렌뒤르가 몸담은 곳에서 그런 우연을 칭하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범죄.




하나의 사건을 파고파고 또 파내어 몇 십년전의 목격자를 만나게 되고 그로인해 두 가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는 <저체온증>

화려한 액션이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릴과 반전이 없어도 이 이야기는 자체로 아주 훌륭한 문학작품 같다.

형사물과 범죄물에 철학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에를렌뒤르 그 자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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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침묵 에를렌뒤르 형사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고정아 옮김 / 엘릭시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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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사람들이 멋대로 행동하며 살 수 있는 거죠? 어쩌다가 그런 사람이 태어나는 건가요? 뭐가 그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거죠? 왜 그 사람은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짐승처럼 행동하나요? 아이들을 때리고 욕하고, 죽고 싶을 만큼 나를 두드려 패고...."



생일파티에 동생을 데리러 간 의대생은 그 집 아기가 입에 물고 있는 것이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의 뼈라는 걸 알아본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근처 공사장에서 돌인 줄 알고 주워온 건 사람의 뼈였다.

에를렌뒤르가 현장에 출동하고, 휴가를 간 법의학자 대신 고고학자가 혹시 유물일지도 모를 뼈를 발굴한다.

점점 윤곽을 드러내는 뼈는 한 쪽 손을 위로 치켜든 모습었다.

70~80년 되어 보이는 유골이 왜 거기 묻혀있는지, 사인이 뭔지, 유골은 과연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과거를 추적하는 형사들.

에를렌뒤르 형사는 백골로 발견된 유골이 생매장 당한 거라는 걸 직감으로 느낀다.

그래서 그 사건을 해결하고 싶고, 부하들은 오래된 사건이니 유골을 발굴하는 걸로 사건을 종결하고 싶어 한다.

그 와중에 임신 중이었던 딸에게 '살려달라'는 전화가 오고 딸을 찾아 나선 에를렌뒤르는 조산원 근처에서 피에 젖은 딸을 찾지만 아기는 죽고 딸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 복잡한 현재의 이야기와 함께 과거 1940년대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과거의 이야기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처음엔 그 한 번의 폭력이 실수였을 거라 생각하는 여자가 있다.

남편이 홧김에 그런 거라고.. 분명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거라고.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폭력의 수위는 점점 심화되어 가고, 커가는 아들은 엄마를 지키고 싶어 하고, 몸이 불편한 딸은 말 한마디 못하고 오직 의붓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버지가 없을 때는 단란한 가정이지만 아버지만 등장하면 모두가 불행했던 한 가족의 폭력의 역사가 읽는 내내 나를 괴롭힌다.

"가정 폭력이란 영혼 살해에 붙는 편리한 이름이죠. 그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순화시킨 용어예요. 평생토록 끝없는 공포 속에 사는 느낌을 아시나요?"



<무덤의 침묵>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의 이야기와 현재 에를렌뒤르에게 닥친 시련과 과거 에를렌뒤르가 잊지 못하는 동생의 죽음까지 그동안 에를렌뒤르의 감춰졌던 고통들이 유골 발굴처럼 천천히 고통스럽게 밝혀진다.

폭력과 욕설이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그려지고, 과거를 파헤치는 형사들의 끈질김과 에를렌뒤르의 과거사와 현재까지가 촘촘하게 맞물려 이어진다.

인드리다손의 작품을 3번째 읽는 중인데 이 작가의 이야기를 꾸려가는 솜씨가 너무 단단하고 촘촘해서 정말 푹 빠져서 읽게 된다.

책으로 읽었지만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다.

아이슬란드와 우리도 가정사에 관해서는 대하는 시선이 비슷하구나.

가정 폭력은 영혼 살해라는 미켈리나의 말이 마음에 깊이 박힌다.

'구타는 결국 사디즘으로 변한다'는 말도 마음에 박힌다.

그 모든 고통의 끝이 예상치를 넘는 결말이기에 어떤 작가가 이야기를 이렇게 잔혹하면서도 모든 인물들이 다 안쓰럽게 느껴지게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 수사물이지만 가볍지 않고, 액션이 하나도 없지만 긴장되고,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인드리다손의 작품들이 모두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무덤의 침묵>은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엔 영림카디널에서 출간되었다 절판되고 엘릭시르에서 재출간되었다.

이 두 출판사가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뒤르 형사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데 인물들과 작가의 이름이 약씩이 다르게 표기되어서 아쉽니다.

출판사가 다르고 번역자가 다르더라도 인물들과 작가의 이름은 통일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영림카디널에서 개정판으로 나온 <저주받은 피>와 <목소리>를 읽었는데 <무덤의 침묵>은 두 작품 사이에 낀 작품이다.

현재 출간된 책 중에 <저체온증> 한 권이 남아있다.

북유럽 스릴러를 좋아하는데 그 북유럽 작품들 보다 한층 깊은 어둠을 담고 있는 아이슬란드의 인드리다손 작가의 작품들은 아주 인상적이다.

뒤늦게 만났지만 인생의 가장 깊고, 고통스럽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앞에서 인간의 깊은 민낯을 만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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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활자중독자 김미옥의 읽기, 쓰기의 감각
김미옥 지음 / 파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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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었지만, 문체나 가독성에 치중해서 정작 작가를 읽지 못했다. 작가가 작품에 몰입했던 것처럼 독자에게도 인내심이 필요했다. 작가가 간절하게 말하려 하는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나는 독자도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긴 지 6년째다.

요즘 들어 예전의 감각을 자꾸 잃어 가는 거 같아서 스스로 반성하는 중에 이 책을 만났다.

책을 읽고 그 책에서 느낀 것들을 잡아내어 나만의 감각으로 그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내가 쓴 서평들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고, 이쯤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했다.

이만큼 썼으면 나만의 '무엇'이 있어야 했는데 그게 사라지고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그만해야 하나를 고심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가끔 첫 문장은 첫사랑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첫사랑이 각인되듯 첫 문장은 소설을 지배한다.

누군가에게 평생 잊히지 않는 사람도 괜찮은 생을 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김미옥은 평생 책을 읽은 분이다.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누군가의 작품을 읽고 그것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신선했다.

책에 대한 언급 없이 책을 얘기하는 방식이.

책을 언급하면서 책이 아닌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그녀가 책에서 찾아내는 낯선 감각이 내게 닿는 느낌이 좋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라는 책의 서평을 읽으며 이 책을 읽어 보지 못한 나는 그래도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녀의 설명엔 군더더기가 없고, 젠체하지 않으며 간결한 맛이 있다.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면서 독자의 시점에서 하나의 관문을 더 넓힌 기분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이미 나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다. 이다.

책을 읽고, 음미하고, 정리가 된 다음 글을 써야 하는데 그 중간 과정을 삭제하고 바로 리뷰를 썼으니 책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것은 남들이 알아낸 거 외에 나만이 느낀 것을 다듬어 내놔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잊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미옥 선생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김미옥 선생만의 그 무엇이 담긴 서평은 책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책에 담긴 김미옥 선생의 이야기는 또 다른 책들을 내 앞에 가져다 놨지만 그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숙제가 아님을 안다.

다양한 읽기를 통해서 써 내려간 글은 그래서 잡학 상식 같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저자의 글이 늙어가는 뇌에 자꾸 주름을 만들어 주는 거 같아서 무더위에도 기운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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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김이삭 지음 / 래빗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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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던 여자가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외딴곳으로 거처를 옮긴다.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추스르려던 여자에게 고택에 머물 기회가 주어진다.

99칸의 고택, 곳곳에 CCTV가 다른 사람의 침입을 실시간으로 체크해 주는 곳.

그러나 CCTV에도 잡히지 않는 뭔가가 자꾸 여자의 신경을 거스른다.

귀신이 등장하지만 귀신스럽지 않고

불쌍하게 죽은 거 같지만 다 네 탓이지.라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 <성주 단지>

본관은 야자 금지.

닫힌 문을 절대 함부로 열지 말 것.

광명고에 전해지는 본관 괴담.

광명고는 1, 2학년은 야자를 해도 본관에 자리 잡은 고3은 야자를 못하는 학교다.

본관에는 열면 안 되는 문이 있다.

그러나 호기심을 참지 못해 하지 말라는 짓을 꼭 하고야 마는 아이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예원, 정원, 아영이다.

열지 말라는 문을 열어 버린 아이들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데...

하지말라면 하지 마라. 제발!

교칙에도 적혀 있는데 왜 굳이 그런 짓을 하는 거니?

근데..

예전에 돌아온 애는 정말 그 문을 들어갔던 애가 맞니?

어째 수상하다! <야자 중 xx 금지>

서방만 얻으면 바로 청상과부가 되어 버리는 옹녀.

우연히 늑대 인간으로 변하는 변강쇠를 만나 백 년 해로를 꿈꾸지만 강쇠를 잡으러 끈질기게 달라붙는 자가 있었으니...

옹녀와 변강쇠의 트와일라잇을 보는 느낌~ <낭인전>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할머니의 고향에 내려온 서율.

어릴 때부터 검술을 배워 웬만한 강심장도 울고 갈 여장부 서율,

가옥을 사고파는 집주릅이 가업이었기에 서율은 웬만한 풍수는 볼 수 있다.

할머니의 옛집은 모든 기가 사랑채에 모여 있고, 모든 안 좋은 기는 별당에 모여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할머니는 별당에 머물길 고집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풀각시를 만들면서 서율에게 말한다.




"언니, 이건 내가 언니를 위해서 쓸게. 언니도 그렇게 해줬잖아. 나 그거 안 잊었어."




할머니의 과거에 있던 언니는 누구일까?

어느 날 하인들이 집 청소를 하다 느릅나무 밑에 묻힌 상자를 발견한다.

그 안에는 서책과 함께 풀각시가 담겨 있었다.

그 서책은 할머니가 언니라 부른 사람의 일기 같은 거였다.

가문의 액운을 막아주는 별당 여아.

늙은이의 기력 회복을 위해서 동첩으로 보내지는 여아들...

이런 지긋지긋한 일들은 누구 머리에서 나왔을까? 궁금했던 <풀각시>

천주교인 박해로 깊은 산속에 숨어 살아야 했던 사람들.

그곳에서 자란 나는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한다.

나, 이런 고해성사 처음이다.

고해성사 듣던 신부님의 끝은?

와! 이 이야기 어떻게 끝날까? 궁금했었는데 그렇게 끝나네...

이 이야기 영화로 만들어졌음 좋겠다. 싶었던 <교우촌>

서늘한 5편의 이야기 안에는 '여성'이 있다.

어느 이야기에나 여성이 있지만 이 괴담 속 여성들은 살짝 다르다.

그래서 그녀들의 다양한 버전을 응원하게 된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는 그녀들의 간담 서늘한 이야기.

제목처럼 천지신명 지긋지긋하게 여자들 말 안 듣지!

여자들을 가둬두기만 했던 시대는 과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여자들을 가두는 무언의 압력들이 널려있다.

그 틀을 깨는 인물들이 많아질수록 현실의 여자들도 용기를 얻을 거 같다.

깨버린 틀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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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콰트로스 - 내전편
우석훈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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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피어나고, 화려하게 지는 삶. 그렇게 인류는 더 짧고 더 강렬한 모습으로 진화했다.





사포엔치 바이러스가 호모 사피엔스를 죽음으로 몰아가던 때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생명체들이 태어난다.

호모 콰트로스라 불리는 신 인류는 강한 체력과 빠른 성장을 하지만 수명이 4년밖에 되지 않는다.

울산을 근거지로 삼은 호모 콰트로스는 호모 사피엔스들이 모두 사라지고 4년의 수명으로 살아간다.

짧은 삶은 많은 것들을 간소화 시켰다.

4년을 알차게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간결한 삶이 이루어지는 2151년.

울산 공화국은 호모 콰트로스들이 살아갈 터전이 되었고, 서울에 사는 호코 콰트로스들은 상업에 전염하게 된다.

생산은 울산에서 장사는 서울에서.

서울에서 장사로 터전을 닦은 한성기업의 오너는 죽기 전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너희는 이제부터 우리 호코 콰트로스의 수명을 늘리는 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도록 해라. 길게도 아니다. 일단은 2년만이라도 더 살 수 있게 하자."







4년에서 6년으로 생명을 더 연장하는 호모 섹스투스법을 통과시키려는 서울의 한성유통.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진 울산 공화국 사람들.

이 두 집단이 선거전으로 맞붙기 시작해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자신들의 욕심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그 모든 순간순간들을 보면서

그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아 조금의 풍요를 되찾았다고 또다시 욕심을 부리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돈 가진 자들의 욕심이 또 다른 욕심을 불러오고 한순간에 체제를 전복시키는 이야기 앞에서 우리의 역사가 언뜻언뜻 느껴지는 게 더 소름 돋는다.

경제 학자가 쓴 SF 소설의 소재는 특이하게 현 인류가 말살되고 새로운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4년의 인생에서 급격한 성장과 급격한 노화를 겪는 인류에겐 '욕심'을 가질 시간이 없다.

그날그날을 행복하게 살자는 신념을 가진 김다익의 모습이 이 이야기의 핵심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그러나 '부'를 축적한 이들은 생명 연장을 원한다.

2년을 더 살면 뭐가 더 나아질까?

자연적으로 생긴 호모 콰트로스에게 부여된 생명이 4년인 까닭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인간.

모든 것이 인간 중심이었던 세상이 리셋되고 살아남은 인류라는 걸 잊은 인간의 수명 연장의 욕망 앞에서 역사를 자꾸 망각하는 인간의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신선하고 독특한 소재의 SF 소설 <호모 콰트로스>

AI가 어떤 사람의 지식을 전수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AI 현아, AI 천수, AI 다익

이 세 가지 버전의 인공지능의 활약을 보면서 미래 세상을 준비하지 못하고 바로 그 세상으로 뛰어드는 지금의 현실이 참 불안하게 느껴졌다.

어떤 생각을 학습하냐에 따라 인간에게 주는 도움이 다르게 작동되니 말이다.

아주 짧게 짧게 끊어서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에 더 긴박감이 느껴졌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소재의 이야기라서 굉장히 신선했다.

반려동물보다 짧게 사는 인간.

내가 호모 콰트로스 라면 나는 울산 공화국의 편에 설까, 아니면 호모 섹스투스 법안을 지지하는 서울 편에 설까?

여러분들의 생각은?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또는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고 의견을 나누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질 거 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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