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기담집 - 기이하고 아름다운 열세 가지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지음, 히가시 마사오 엮음, 김소운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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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이 어쩜 그렇게 선명하게 보이는지! 사람의 바다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투명하고 맑으며 드넓은 바닷속 바닥에 늘어놓은 하양, 검정, 노랑, 파랑, 보라, 빨강 등 화사한 오색의 비늘이 파문이 일 때마다 작고 예쁘게 꿈틀거리는 듯했다.




나쓰메 소세키를 수필로 먼저 접하고 소설은 <마음> 한 권을 읽은 나에게 이 기담집은 기대치가 높았던 작품이었다.

소세키가 쓴 기담집이라면 뭔가 다를 거라는 생각을 책을 받기 전부터 했었다.

그 어떤 기담이나 괴담과 현저한 차이가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은 맞았다!?

기담집이란 기이하고 괴상한 이야기를 모은 책을 말한다.

이 기이하고 괴상한 이야기에 대한 선입견이 없다면 이 작품이 맘에 들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기담집과 비교해서 예상을 했다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소세키의 기담집엔 공포스러운 광경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직접적이지 않은 이야기라서 글을 읽으며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소세키가 심어 놓은 기이하고, 괴상하고, 오싹한 부분들을...







첫 시작은 시로 시작한다.

기이하고 괴이한 이야기를 시로 표현하다니 소세키 답다고 생각했다.

시에서 물밑으로 가라앉은 후 그는 꿈을 꾼다.

열흘 밤의 꿈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꿈이라고 하니 꿈이랄밖에...

일요일마다 고물상을 기웃거리는 이부카는 어느 날 그림 한 점을 발견한다.

싸구려 서양화를 80센을 주고 산다.

여자의 상반신이 그려진 그림을 아내는 못마땅해하지만 이부카는 액자를 걸어둔다.

하지만 그림 속 여자의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다음 날 퇴근해서 집에 오니 액자가 떨어져 깨져 있었다.

스스로 떨어졌다고 하는 아내의 말을 이부카는 믿었지만 난 믿을 수 없다!

이부카는 <모나리자>를 넝마주이에게 5센에 팔았다...

기이하거나 괴이하진 않지만 뭔가 확실하게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이런 이야기들이 담긴 <나쓰메 소세키 기담집>은 설레는 마음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글 속에 담긴 느낌과 뉘앙스 사이에서 소세키가 담아 놓은 기이한 점과 괴이한 점을 찾아내어 느껴야 한다.

런던의 안개 자욱한 거리를 걸으며 느꼈을 소세키의 그 낯섦을 읽는 동안 내가 가봤던 런던의 한때를 소환해 본다.

소세키에겐 그 길이 안갯속에서 헤매던 길이었지만 내겐 화창해서 더할 나위 없이 눈부셨던 거리였다.

안갯속에서 그는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거리며 걸었지만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의 익숙한 모습에서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뼛속까지 느꼈을 것이다.

"인간을 도륙하여 굶주린 개를 구하라." 라는 시상을 머릿속에 품고 있는 사람 역시 소세키 자신일 것이다.

"에세이처럼 쓰인 글 안에 교묘하게 스며든 기이함"

<나쓰메 소세키 기담집>의 느낌이다.

그 교묘함을 느끼면 즐독이 될 테고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기담은 어디에 있는 거냐며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아니라

구불구불 고르지 못한 국도를 달리는 기분이다.

뒤돌아서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톺아 보듯이

글을 읽고 되새김질을 해야 은근한 두려움과 속 떨림을 맛볼 수 있다.

소세키의 은유가 담긴 기담집은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고속도로 같은 글들에 맛 들인 나에게

잠시 돌아가지만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국도의 맛을 느끼게 해줬다.

뭐든

은근해야 그 뒷맛이 오래가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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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로봇 와일드 로봇 1
피터 브라운 지음, 엄혜숙 옮김 / 거북이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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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허리케인을 만난 배가 난파된다.

그 배에 실렸던 상자들이 야생의 섬으로 떠밀려 오지만 상자에 담긴 로봇들은 모두 파괴된 채로 하나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상자에 있던 로봇만은 멀쩡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로줌 유닛 7134입니다. 로즈라고 물러도 좋아요. 제 시스템이 활성화되는 동안 여러분한테 제 소개를 할게요."

해달이 로봇 로즈의 머리 뒤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로봇 로즈는 활성화된다.

그렇게 깨어난 로즈는 섬을 돌아다니며 섬의 동물들에게 자신을 알리지만 생전 처음 보는 로즈를 동물들은 '괴물'이라 부르며 로즈에게서 도망친다.






괴물 로봇 로즈는 섬을 탐험한다.

만나는 동물들에게 인사를 건네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


마치 이방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 사회를 보는 거 같다.


로즈는 섬을 탐험하면서 대벌레를 보고 위장술을 배운다.

풍경에 묻히기 위해 진흙을 바르고 풀을 뜯어서 진흙 외투에 꽂고 숨어서 동물들을 관찰한다.

그렇게 동물들의 언어를 익히고, 그들의 습성을 배운다.


마치 다른 문화권에 이주한 사람들이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처럼 로즈도 야생의 섬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행동과 언어를 배우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동물들의 언어를 이해한 로즈는 비로소 동물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았던 그들은 로즈가 자신들의 언어로 말을 걸어오자 로즈와 친구가 된다.

로즈는 동물들을 도와주고, 동물들은 로즈를 도와주며 서로를 알아가던 어느 날 로즈는 숲 절벽을 오르다 사고를 낸다.

퍼붓는 비에 절벽에 매달려있다 나무 위로 떨어진 로즈 때문에 기러기 둥지가 산산 조각이 났다.

기러기 두 마리가 죽고 알들이 깨졌다.

단 하나의 알만 빼고.


로즈는 새끼 기러기를 돌봐준다.

새끼 기러기는 로즈에게 '엄마'라고 부르게 된다.

로즈는 그렇게 기러기 브라이트빌과 가족이 된다.



섬에 사는 동물들과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고,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모두 친구가 된다.

섬에서 서로가 가진 재능들로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래에 우리에게 낯설지만 익숙할 인공지능 로봇과의 삶도 이렇게 흐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로즈와 기러기 브라이트빌이 가족이 되는 것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종이 가족이 되어 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곁에서 가족이 되는 반려동물과 식물들이 근 미래에 인공지능 로봇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며 친구가 되어가던 그 섬에 또 다른 이방인들이 찾아온다.

잃어버린 로봇들을 회수하기 위해 로봇 회사에서 보낸 레코들이 섬에 착륙해서 로봇 잔해들과 로즈를 찾아다닌다.


레코들과 섬의 동물들이 로즈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싸움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로즈는 자신이 만들어진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망가진 몸을 수리하기 위해...



동화라고 생각하고 쉽게 덤볐다가 아주 다양한 생각들이 곁가지로 뻗는 바람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이야기에 담긴 수많은 해석들은 모두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와일드 로봇>은 공존의 방법과 서로 다른 종들이 서로를 도와 살아남는 법을 보여준다.

말이 통해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소통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로즈가 동물들을 관찰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사용해 동물들과 싸움을 벌였다면 어땠을까?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전쟁이 바로 로즈처럼 행동하는 이의 부재로 인한 것이 아닐까?


로즈는 섬에 사는 동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들을 이해하는 법을 먼저 강구했다.

먹지 않아도 되고, 자지 않아도 되는 로봇이기에 힘으로 하자면 어느 동물도 로즈보다 우월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즈는 힘의 길을 택하는 대신 그들의 말을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이 로즈를 그 섬의 친구로 만들어 줬다.


이 와일드 로봇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로즈는 브라이트빌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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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
바버라 킹솔버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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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알에서 태어났다.

첫 문장은 판타지였다.

그 이후의 문장들은 올리버 트위스트 21세기 버전이었다.

이 이야기가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한다.

나는 그 작품은 읽어보지 못해서 비교불가지만 올리버 트위스트는 읽었기에 올리버 트위스트의 그 불행함은 데몬 코퍼헤드와 쌍벽을 이룬다고 말하고 싶다.

불행에도 DNA가 있는 거 같다.

데몬은 18살 약쟁이 엄마에게서 태어났다.

페곳 가족의 트레일러를 빌려 엄마와 사는 동안 엄마보다 더 엄마 같았던 페곳 아줌마와 그녀의 손자 매곳과는 형제처럼 자랐다.

그나마 짧았던 행복이었다.

약쟁이 엄마는 정신을 차리고 잘 살아보려 했다.

그래서 스토너라는 남자와 결혼했다. 내가 아는 스토너는 참 점잖은 교수였는데 이 작품의 스토너는 개자식이었다.

데몬의 불행 스토리는 이 지점부터 시작된다.

이야기엔 나와있지 않지만 데몬을 떼어놓으려고 수작을 부린 스토너에게 모두가 당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엄마가 내 엄마로서 출근했다가 같은 날짜에 다시 퇴근했다는 게 아무렇게나 벌어진 일 같지 않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엄마의 죽음은 데몬을 벼랑 끝에 서게 했다.

거지 같은 위탁가정

데몬을 위한 결정을 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자기들을 위한 결정을 한 사회복지사들

믿었던 페곳 부부마저 데몬을 맡을 수 없었다.




데몬 코퍼헤드(구릿빛 머리 악마).

이 아이의 삶을 읽어가며 그 무엇에도 지지 않았던 아이가 엄마와 똑같은 모습으로 무너지는 상황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데몬 코퍼헤드의 이야기를 읽는데 미국의 현재가 고스란히 담긴 기분이다.

사회복지사들 손에서 위탁가정으로 넘겨지는 아이들

손쉽게 마약으로 빠지는 길이 아무 곳에 나 널려 있고, 제약회사와 의사 간의 커넥션으로 인한 약물중독으로 가는 길도 너무 쉬웠다.

대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곳이었다.

대기업이 단물만 빨아먹고 버린 탄광촌 사람들

탄광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이란 게 필요하지 않으니 뒤로 밀쳐지는 교육의 현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대기업들은 더 부유해지는 거지 같은 현실.

데몬에게도 날개가 돋았다.

미식축구팀에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신은 데몬에게 절대 행복함을 선사하지 않았다.

고아 소년이 어찌어찌 친 할머니를 찾아내고 그녀의 지원을 받아 미식축구 선수와 영재로서 빛날 수 있었던 그 짧은 시간조차도 '신'은 시샘을 했다.

무릎 부상으로 인해 점점 약물에 의존해가는 데몬의 모습에 숨이 막혀간다.

너는 절대 그러면 안 돼!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잖아!


내 마음의 부르짖음을 들은 걸까?

아니...

데몬은 스스로를 끌어올리는 생명줄을 가진 아이였다.

멜런전 태생의 아버지의 모습과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데몬은 추락에 대한 자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던 내 마음은 단비를 맞은 느낌이었다.

이 동네의 아주 오래된 상심이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날아가 버리고, 실패작들은 남는다.

바버라 킹솔버는 미국 어디에나 있을 외곽지역의 버려진 소도시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데몬의 불행으로부터 엮어낸다.

배움도 없고, 꿈도 없고, 약에 절어가는 사람들.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속에 묻혀있던 보물을 알아보지 못했다.

대기업의 손아귀에 터전을 뺏기고, 건강을 뺏기고, 자식들의 인생까지 뺏겨버린다.

그래도 그들은 의식하지 못한다.

페곳 부부

준 이모

앵거스

백인과 흑인 커플인 암스트롱과 애니 선생님

그들이 데몬에게 삶의 기준이 되어준 사람들이다.

이 모든 일을 겪은 데몬의 나이가 이제야 18세가 된다는 그 사실이 끔찍했고, 그만큼 희망적이었다.

데몬에겐 이제야 제대로 된 인생이 시작된 거니까.

수다스럽게 느껴지는 문장들 때문에 책의 두께를 느끼지 못했다.

데몬의 짧은 인생이 모두 담긴 책 속에 그 짧은 인생을 스쳐간 '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데몬의 '의지'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가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준 선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이야기 한 편에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모든 문제들이 곳곳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곁에 두고 계속 읽어야 하는 책을 만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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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의 무인도 표류기 - 3차원 디오라마 일러스트 아트북
gozz 지음, 현승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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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라마란 풍경이나 그림을 배경으로 두고 축소 모형을 설치해 역사적 사건이나 자연 풍경, 도시 경관 등 특정한 장면을 만들거나 배치하는 것을 뜻한다.

gozz 작가는 이 디오라마 방식을 가져와 섬에 표류한 모험담을 100일이라는 시간을 잡고 일기 형식과 상자 모양의 그림으로 그날그날을 표현했다.

독특한 그림과 표류기라는 설정만으로도 호기심이 가는 책이었다.

난파된 배에서 한 섬으로 흘러온 주인공.

기억을 잃은 채로 섬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섬을 둘러보고, 섬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며 탈출의 꿈을 꾼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그 섬에서 왠지 모르게 감시받는 느낌을 받는다.






동굴인 줄 알았는데 무언가의 둥지인 모양이다.

둥지 안에 초승달 모양의 아름다운 돌이 떨어져 있었다.

이건 주워 가야지.

터줏대감 혼자인 줄만 알았는데 새끼도 셋 있는 모양이다.

암컷인가?

다른 벽화도 찾았다.

커다란 뱀이 수많은 사람을 잡아먹는 모습이... 빨간 눈인가?



주인공은 섬을 탈출하려 하지만 절대 섬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섬에는 주인공이 모르는 괴물이 있었다.

주인공이 터줏대감이라 이름 붙인 커다란 새는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둥지에 산다.

그리고 빨간 눈이라 이름 붙인 머리 두 개 달린 괴물이 호시탐탐 주인공을 노린다.

주인공은 사슴도 잡고 멧돼지도 잡으며 섬 생활에 익숙해지지만 누군가 주인공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탈출 시도를 하다 다시 섬으로 떠밀려온 주인공은 오래된 동굴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벽화를 발견하는데 이 섬에 살던 사람들이 공격받는 모습을 그린 벽화였다.

아무것도 없는 섬인 줄 알았지만 이곳은 일찍이 문명이 발전했던 흔적이 있는 곳이다.

어쩌다 그 문명이 다 파괴되었을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주인공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여동생을 그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빨간 눈이 습격해오고 터줏대감의 도움을 받은 주인공은 목숨을 구한다.

이대로 가다간 탈출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전에 발견한 동굴 속에 있던 기름을 생각하고 빨간 눈을 그쪽으로 유인해서 태워 죽이는 계획을 짠다.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단순한 섬 탈출기로 생각했던 이야기는 100일이 지나고 난 뒤에 담긴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 때문에 한층 더 다이내믹해진다.

100일의 일기 어디쯤에 요상하게 등장했던 생명체가 있었는데 그 생명체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표류기에서 갑자기 SF적 모드를 장착한다.

우주선의 고장으로 섬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고향에 돌아갈 날들을 고대하며 이 섬에 있는 특별한 돌에 표식을 새겨 자신들의 힘을 돌에 옮겨 우주로 신호를 보내려 한다.

그러나 이 섬의 깊은 동굴엔 괴물이 존재하고 있다.

섬에 살고 있는 원숭이 닮은 꼴 부족들은 그 괴물과 소통하면서 점점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외계인들은 이 섬을 탈출할 수 있을까?

팬데믹 기간 동안 트위터에 올린 그림과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100일간의 무인도 표류기>

트위터에 올려진 그림은 확대해가면서 숨겨진 그림들을 찾아내는 맛이 있었을 거 같다.

하지만 종이에 그려진 그림에선 두 눈을 부릅뜨고 돋보기를 비춰가며 숨겨진 그림들을 찾아내야 할 거 같다.

이 독특한 책을 보면서 단순한 생각을 했던 나는 허를 찔린 기분이다.

100일째 섬을 탈출하는 걸로 끝날 거라 지레짐작했었는데 그 외에 부록처럼 감춰진 이야기 때문에 무인도 표류기의 정체까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마법에 걸려버렸다.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은 독자가 할 일이다.

그렇게 보면 이 책에서 무수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주인공이 배를 타게 된 이야기가 뒷부분에 나오면서 이야기가 또 다른 각도에서 읽히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단순한 그림책 정도로만 생각했다가 다양한 즐거움을 맛보게 되는 책이다.

아이들과 친구들과 가족들끼리 그림 속에 숨겨진 캐릭터들을 찾아내고

그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더 즐겁게 책을 읽는 방법일 거 같다.

다양한 맛으로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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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 손웅정의 말
손웅정 지음 / 난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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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 건 난데 어느 순간 책이 나를 소유하고 있더라고요. 내 소중한 공간을 다 차지하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더라고요.



책쟁이들이라면 위에 말에 고개를 하염없이 끄덕일 것이다.

이 문장에 인덱스를 붙여놓고 한참을 되풀이 읽는다.

사실 나는 이 책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의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버린다' 이 부분이 정말 맘에 안 들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자동 재생되는 손웅정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 목소리에 담긴 어떤 힘이 그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아까 와서 책에 밑줄도 못 긋고

접지도 못하고

메모도 못한다.

그래서 내 책은 읽은 티도 안 나는 새 책들뿐이다.

방안 가득 책무덤 속에서 책 제목을 또 되뇌어 본다.

'버린다'는 아직 내게 닿지 않는다.

나는 아직 그 단계에 닿지 못했다..

책은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손웅정 선생님 특유의 목소리가 자동 재생되는 신기한 현상을 느꼈다.

그의 힘찬 목소리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거는 거 같다.

그래서 글로 읽으면서 소리로 듣는다.

덕분에 뇌에 쏙쏙 새겨지는 거 같다.

중간에 그의 독서 노트가 담겼다.

정말 문장 하나하나가 단순, 명료, 담백하다.

쥐스킨트가 울고 가겠다.

내 몸이 반듯한데

내 그림자가 휠 수 있을까.

이 문장이 곧 손웅정 그 자체다.

모습부터 목소리까지 그분의 모든 것이 강성이다.

하지만 그 강성 뒤에 천진하게 웃는 모습은 담백한 부드러움이다.

이 책엔 그의 모든 신념과 철학이 담겼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뭔가 답답함이 마음을 짓누를 때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 때

이 책을 읽게 될 거 같다.

내가 원하는 스승이 이 책에서 호통을 칠 테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매일매일

기회를 주자.

우리가 우리에게 매일매일

용기를 주자.

삶이 단순하다는 걸

복잡함을 단순화시켜야 한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직접 실천하며 살아가는 분의 말이기에 뇌가 빨리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허세가 없는 이야기와

허세가 없는 그의 노트에 적힌 글이

내게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거 같다.

뭔가 자꾸 나아가게 만드는 책 앞에서 그 어떤 철학자의 책 보다 더 많은 울림을 받았다.

곁에 두고 계속 읽으며 담백하고 단순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는 모든 것이 책에 있다고 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 말에 의미를 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직접 실천하며 사는 분의 말처럼 진심이 닿는 게 또 있을까.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열변을 토하는 인간과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몸소 실천하는 사람.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의 주인은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어떤 철학서 보다 더 철학적이다.

생각이 굼떠질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읽을 것이다.

진심인 강성의 목소리로 단순한 진리를 토해내는 목소리가 나를 다그칠 테니까...

그나저나..

나는 언제쯤이면 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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