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 빛과 색으로 완성한 회화의 혁명 클래식 클라우드 14
허나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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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빛을 더 정확히 그리기 위해 모네는 빛의 색이 잘 물든 풍경을 찾아다녔다. 그렇기에 모네의 삶은 그가 그리고자 하는 빛이 머무는 풍경을 쫓는 여정이었다.

 

 

몇 달 전 전시회에서 모네의 수련을 홀로그램으로 보았다.

잔잔한 음악 사이로 공간을 이루는 벽면에 투영된 수련 연작은 각 벽마다 다른 수련의 느낌이 펼쳐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수련이 가운데 모여있는 사람들의 몸에도 투영되기 시작했다.

온 방안이 모두 수련 속에 빠져든 느낌이었다.

 

 

 

그때까지도 모네의 수련 연작은 내가 모르는 그림이었다.

모네의 그림은 양산을 쓴 귀부인들이 나오는 그림. 이 정도가 내가 아는 모네의 전부였다.

이름만 알았던 모네.

늘 마네랑 헷갈려서 모네인지 마네인지를 구분하지 못했던 나 같은 문외한에게 모네를 알게 될 시간이 주어질 줄은 몰랐다.

 

 

 

모네는 왜 그토록 빛을 그리고자 했을까? 그가 평생에 걸쳐 추가한 빛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모네를 알아가는 예술 기행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클래식 클라우드 14번째는 모네이다.

한 사람의 여정을 찾아 떠나는 여행.

그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의 행적을 찾아보는 여행.

그 여행길에 동참한 나는 그림을 잘 모르지만 모네가 생각보다 가까운 시절을 살다간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의 사진과 그가 살던 집과 모네의 정원.

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내게 모네는 아주 오래전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어서 그림 외에는 그에 대한 것들이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책을 통해 그가 살던 집과 그의 사진을 접하고 보니 모네가 꽤 가깝게 느껴지는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화구를 들고 밖으로 나가서 그림을 그렸던 모네는 연작을 많이 그렸다.

바깥의 변화무쌍한 자연을 화폭에 담고 싶어 했던 그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실내에서 모델을 세워놓고 그리던 그 당시에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안개가 끼면 안개 낀 그대로를 그림으로 남겼던 모네.

아마도 그의 스승 부댕의 영향력이 컸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모네에게 자연미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믿고 싶다.

눈에 보이는 자연을 그대로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바로 모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경직된 그림보다는 매일 보지만 매일 달라지는 날들을 그려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스모크라는 영화에서 매일 같은 장소를 같은 시간에 10년 동안 찍었던 오기 렌의 사진은 같은 거 같지만 다른 시간을 담아냈다.

모네도 같은 배경을 두고 시시각각 빛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들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캐리커처를 그리며 일찌감치 솜씨를 드러낸 모네는 많은 화가들이 빈곤한 상황에서 고달프게 그림을 그린 것과는 다르게 후원자가 있었다.

그의 고모와 친구 바지유는 오랜 시간 모네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나는 모네가 생각보다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팔 줄 알았던 사람이다.

자존심보다는 융통성이 더 많았던 모네. 그래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모네의 그림엔 모난 곳이 없다.

그의 그림에서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는 그가 생활고에 허덕이지 않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여행을 갈 때 허겁지겁 유명한 곳만 도장 찍듯이 다니는 그런 여행 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간 모네의 분홍색 벽과 초록색 창틀로 꾸며진 집을 둘러보고

모네의 정원을 거닐어 보는 상상을 한다.

 

 

 

인상주의 화가로서 기존의 화풍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화풍을 만들어 간 모네.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도 그림을 그렸던 모네의 열정이 그의 그림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

앞으로 모네의 그림을 보게 되면 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거 같다.

알기 전보다는 알고 난 후의 느낌은 다르니까.

 

 

 

그가 남긴 그 시대의 빛을 모네의 그림을 통해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거 같다.

모네를 읽는 시간은 빛을 받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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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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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이우일의 그림으로 하루키의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크리스마스에 쓸 음악을 의뢰받은 양사나이는 점점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도 불구하고 한 줄의 악보도 완성하지 못한다.

도넛 가게에서 일하는 양사나이는 퇴근 후 집에서 작곡을 하려 하지만 집주인의 방해로 작업을 이루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있었다.

그때 만난 양박사는 양사나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주에 걸렸어."

 

 

 

 

 

 

 

무려 2500년 전에 구덩이에 빠진 성 양 어르신의 저주를 받은 양사나이는 저주를 풀기 위해 집 뒤뜰에 구덩을 파야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멍 뚫린 도넛을 먹은 게 저주에 걸린 이유라니.

어이가 없는 이야기였지만 크리스마스 음악을 만들기 위한 양사나이의 집념이 성 양 어르신이 구멍에 빠진 일을 재현해야 저주에서 풀릴 수 있다는 양박의 말에 구덩이를 파게 한다.

그리고 2미터 3센티미터의 구덩이를 열심히 판다.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1시 16분에 정확하게 구덩이에 빠져야 하는 양사나이.

그 구덩이에서는 어떤 일이 양사나이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야기가 없어도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책이다.

팝업북 같은 느낌의 책이라 펼쳐보고, 접어보고, 왔다갔다 하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어 크리스마스 선물로 좋은 거 같다.

하루키의 팬들에게도 이우일의 팬들에게도

아무 팬도 아닌 이들에게도

재밌는 책이 될 거 같다.

한 장씩 펼칠 때마다 만나게 되는 그림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양 모양의 집

양 피아노

꼬불탱이 인간

번호로 불리는 쌍둥이 소녀들

까마귀 여사

그리고 성 양 어르신.

이 한바탕 꿈같은 이야기와 그것을 그려낸 그림 속을 걸어보는 기분이 양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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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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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네년이 얼마나 해괴한 짐승인가 그것은 오래전에 눈치를 챘건만...."

 

 

 

작가정신의 소설, 향은 중편소설을 다룬 시리즈다.

그 첫 번째 소설이 김사과의 0 영 ZERO 零 이다.

 

 

영국 형사 드라마 루터엔 알리스라는 범죄자가 나온다.

천재적 두뇌를 가진 알리스는 부모를 살해하고 강도가 든 것처럼 꾸며놓았지만 예리한 루터에게 발각되고 만다.

감쪽같은 연기와 알리바이로 무장했지만 범인에 대한 감각이 예리한 루터에게 꼼짝없이 발각된 알리스는 그로부터 루터의 주변을 돌며 루터에게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고 다닌다.

 

 

 

이 책 속의 알리스를 보며 루터의 알리스가 떠올랐다.

물론 이 책 속의 알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알리스가 될 수도 있다.

 

 

 

독특하다고 생각하며 읽었지만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깊이 묻어 두었던 악마적 기질을 끄집어 낸 이야기랄밖에.

 

 

 

(너같이 무가치한 인간을 본일이 없어.) 네가 가진 지적인 능력을 오로지 타인들이 불행하도록, 그 불행을 기원하고 실행하는 데 바치고 있어. 그러는 가운데, 너는 너의 그 악행의 얼룩을, 네 끔찍한 감정과 상상의 찌꺼기를, 증거 없는 범죄의 흔적들을 죄다 나라는 인간 쓰레기통에 처박았어.

 

 

 

 

주변인들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을 불행으로 이끄는 알리스.

그녀는 언제나 웃음과, 넉넉함과, 상냥함과, 자제함으로써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매력적인 사람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녀의 실체는 교묘함이다.

교묘하게 흘리는 말과, 표정, 행동으로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흠집 내고,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을 피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부린다.

 

 

 

완벽하게 보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여자.

남의 상처에 눈물을 흘리지만 속으로 웃는 여자.

상냥하지만 악마 같은 여자.

모든 관계를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여자.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교묘함을 흘리는 여자.

 

 

 

꾹꾹 눌러 담았던 악마적 기질을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나에게도 알리스 같은 친구가 있었다.

모두의 중심에 서야 직성이 풀리고, 모두의 관심을 받아야만 살아있음을 느끼고.

자기보다 관심을 더 받는 친구를 쳐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그런 친구.

 

 

 

알리스를 대하면서 그 친구가 떠오른 건 내가 세영이나 성연우의 기분을 알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은 무리에 한 명 꼭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감정을 초토화 시키고 자기는 아무 잘 못 없다는 표정으로 무심한 듯 모두에게 잘못의 화살을 던져버리는.

 

 

 

알리스를 통해 느꼈던 카타르시스는 아마도 내 속에 내재되어있던 나도 당하고만 살지 않을 거야!라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독특한 주인공을 만난 기쁨이 있는 소설이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애는 의외로 주위에 한 명 꼭 있다.

당하기 전까지는 그 진의를 알지 못하는.

당하고 나서도 그 진의를 믿지 못하는.

그런 사람.

 

 

 

첫 시작부터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시작 한 소설, 향.

앞으로 만나게 될 이야기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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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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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빅 엔젤의 미소를 믿었다. 그래야 했으니까. 그들은 언제나 빅 엔젤을 믿어왔으니까. 그는 그들의 법이었으니까.

 

 

70세 빅 엔젤.

암 선고를 받은 그는 마지막 생일을 위해 파티를 연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일가친척을 모두 불러 보아 성대한 파티를 계획했다.

하지만 그의 생일을 얼마 앞두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장례식은 빅 엔젤의 생일 하루 전이었다.

 

 

파티를 위해 모였던 사람들은 장례식에 간다.

늘 시간을 지켰던 빅 엔젤은 멕시칸 타임을 누리는 식구들로 인해 장례식에 지각을 하고 만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자기 한 몸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빅 엔젤은 그저 식구들이 빨리 움직여 주기만을 바라지만 우왕좌왕 식구들은 모두 느긋하기만 하다.

 

 

가부장 중심과 가족주의의 멕시칸.

많은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사연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

마치 백 년 동안의 고독 21세기 판처럼 느껴진다.

 

 

빅 엔젤에겐 아버지를 뺏어간 동생 리틀 엔젤이 있다.

미국 시민권을 위해 만난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리틀 엔젤.

굶주림에 시달렸던 빅 엔젤의 형제들이 아버지 없이 살고 있을 때 리틀 엔젤은 온갖 것을 누리며 살았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풀고 싶은 회한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저마다의 방법이 있다.

이 책에선 갖가지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모여서 시끄럽고 복잡 복잡하고

정신없고, 아찔하고, 멋지게 맞불을 놓는다.

이야기들은 저마다 자유 의지를 가지고 몇 년을 건너뛰고 수십 년을 무시한 채로 다가오는 듯했다. 빅 엔젤은 어느새 시간의 폭풍 속에 서 있었다. 그에게 과거란 마치 라스 풀가스 극장에서 본 영화처럼 보였다.

 

아픈 몸으로 빅 엔젤은 현실감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을 본다.

아름다웠던 기억보다는 괴로운 기억이 선명하다.

죽음 앞에서 나도 그럴까?

 

"네가 아기였을 적에, 내가 널 씻겨주었는데."

미니는 눈이 따갑지 않은 베이비 샴푸를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네 아버지였어. 그런데 지금은 네 아기가 되었구나."

 

 

아버지를 돌보는 미니.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딸 앞에서 빅 엔젤은 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

 

 

사랑스러운 가족이다.

다툼과 욕설이 난무하는 사이지만.

그 안에 끈끈한 정들 이 뭉쳐져 있다.

 

 

우리가 하는 건 말이다. 얘야. 바로 사랑이란다. 사랑이 답이야. 아무것도 사랑을 막을 수가 없어. 사랑에는 경계도 없고 죽음도 없지.

 

 

거칠고, 상스럽고, 도무지 경계가 없는 가족들의 이야기.

그런데도 그들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을 확인할 때마다 온기가 생긴다.

우리네 정서와는 조금 다른 멕시코인들의 가족애는 마치 코미디 한 편을 보는 거 같았다.

 

 

파티는 극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모두는 서로의 앙금을 거두었다.

아버지의 아들

아들의 아들

그들은 그래서 가족이었다.

 

 

매번 더 나아지고 있는.

그러나 옛 감성을 그리워하는.

 

 

대 가족을 어깨에 지고 스스로 법이 되어 살아야 했던 빅 엔젤.

그가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조용히 죽음의 시간으로 여행을 떠났음에 안도하게 되었다.

그가 없는 빈자리를 채울 누군가가 있음으로.

 

 

가족은 늘 그렇게 채워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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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콜렉터
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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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줍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달프다. 프놈펜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곳 사람들은 남들이 내다 버린 것들에서 삶을 일구고자 오늘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늘의 배고픔을 덜기 위해 내일의 희망과 거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다.

 

캄보디아 프놈펜.

그 안에서도 스퉁 민체이. 이곳은 쓰레기 매립장이다.

그곳에 움막을 짓고 쓰레기를 주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상 리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녀에겐 기 림이라는 남편과 니사이라는 아들이 있다.

부부가 하루 종일 일해도 하루 살이 삶일 뿐. 나아지는 형편은 아니다.

게다가 니사이는 늘 설사를 달고 살고, 매달 집세를 받으러 오는 괴팍한 노인네는 성질이 고약하다.

 

소피프 신.

집세를 걷으러 다니는 이 노파는 늘 술에 절어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에게 매달 집세를 주면서 시달리는 상 리에게 어느 날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동화책 한 권이 두 사람의 인연을 바꿔 놓은 운명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매캐한 공기와 희뿌연 연기가 책을 읽는 내내 주위를 맴돌았다.

기 림과 상 리는 그 와중에도 어찌나 착실하고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지 눈물을 흘리는 것도 미안할 지경이다.

상 리는 그런 남편을 자신의 영웅으로 생각한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책 한 권.

집세를 걷으러 왔다 그 책을 보며 오열하는 소피프.

그런 소피프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상 리.

 

이 기적 같은 일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아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이야기를 쓴 아버지.

어째서 나는 이 이야기를 캄보디아인이 썼다고 생각했을까?

왠지 유려한 글을 읽으면서 상 리가 글을 배워 쓴 자전적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역시 책을 다 읽고 작가에 대해 읽기까지 이 책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은 쓰레기 매립장과 아들을 위해 글을 배우려고 한 어머니라는 키워드만 가지고 어리석게 덤벼댄 나의 조급함이 일으킨 착각이었다.

작가의 이름을 보고서도 한치의 의심도 들지 않았던 이유는 그만큼 이 이야기가 몰입도가 좋았기 때문이다.

 

소피프 신만 빼고는 모두 다큐멘터리에 얼굴을 비친 사람들이다.

책의 뒷면에 그들의 사진이 있다.

그곳에서도 그들의 미소는 해맑다.

 

나도 글을 읽는 게 약을 대신한다거나 몸을 낫게 해준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뭔가를 기대하게 하고 무언가와 맞서게 하는 힘을 길러 준다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아이가 용기를 얻을 거라 믿고 싶어요.

 

아들은 계속 아프고, 상 리는 소피프를 통해 글을 배운다.

그러면서 점차 소피프에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집세나 받으러 다니는 괴팍한 여자는 과거에 대학교수였다. 문학을 가르치는.

소피프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상 리와 소피프의 수업 시간에 언급되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참 흥미롭다.

이제 책을 알아가는 맛을 알게 된 내게 문학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그들의 절절한 삶 속에서 글을 배운다는 건 어쩜 누군가에겐 웃기는 일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대리만족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도전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상 리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하지 않고 지지해준다.

 

가난은 서로를 갉아먹기도 하지만 서로의 품을 나누어주기도 한다.

어떤 삶을 선택할지는 스스로의 결정에 달렸다.

 

글을 깨우치면서 느끼는 희열.

글을 알게 됨으로써 알게 되는 깨달음.

글을 통해 깊어지는 생각의 사슬.

상 리를 통해 나도 점점 생각의 깊이가 깊어진다.

 

어쩌면... 스퉁 민체이에서 사라진 건 당신 자신일 수도 있어요.

 

 

소피프에게 던진 상 리의 일갈은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말일지 모른다.

자신을 잊고 현실에 수긍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

 

소피프의 과거에서 캄보디아의 과거를 본다.

내전으로 인한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크메르루주 군대가 프놈펜을 장악하고 일어난 학살에서 모든 것을 잃고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린 소피프의 이야기에서 한국전쟁을 떠올린다.

비슷한 아픔을 공유한 캄보디아에 대해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이 책에 대한 고마움이다.

 

모든 것을 잃은 여인은 자신의 이름도 잃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야 했다.

자신을 살려준 이들을 위해 살아냈던 영혼은 철저하게 자신을 망가뜨렸지만

결국 희망이라는 그물에 걸려 자신의 마지막 제자를 키워낼 수 있었다.

 

그 후로 내내 대가를 치르며 살아왔지.

선택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해. 반드시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까.

좋든 나쁘든.

 

현실에서 길어올린 감동이었다.

스치듯 지나칠 그들의 일상에서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가의 솜씨가 아름답다.

책을 읽고 난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어떻게 주어진 삶에 감사해야 하는지

어떻게 앞으로의 삶을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서로를 믿고 살아야 하는지

 

어디에 있든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풍요롭다.

상 리에겐 희망이 있었고, 그 희망은 이루어 줄 인연을 연결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오래되고 깊은 상처의 틈을 아무려주었다.

세상은, 사람은, 문학은 그렇게 서로를 이어가는 인연의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움은

그래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죽을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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