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3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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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이버 독서 카페 리딩투데이에서 함께 읽는 책으로 선정된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03.

 

그러니까 당신은 일종의 사신인 거네요, 해미시 맥베스.

어디를 가든 살인이 당신을 쫓아다니니까요.

 

 

로흐두의 작은 마을 순경인 해미시에게 이웃 마을인 시노선의 맥그리거 경사가 휴가를 다녀올 동안 그곳을 지키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온다.

 

 

로흐두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나름 알차게(?) 생활해 오던 해미시에게는 정말 귀찮은 일이다.

그에겐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기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번 돈을 모두 가족에게 보내고 있는 해미시로서는 당췌 듣고 싶지 않은 상부의 지시였다.

 

 

시노선은 외지인을 경계하고, 무뚝뚝한 마을 사람들이 모인 보이는 게 전부인 마을이었다.

 

마을은 어찌나 황량하고 휑한지, 해미시가 언젠가 보았던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낯선 이를 경계하는 마을에서 그 마을의 경찰을 대리하는 임무라는 상당히 불만스러운 상황에

해미시에게 인수인계도 제대로 하지 않고 훌쩍~ 떠나버리는 맥그리거를 보며 해미시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평탄치 않으리라는 걸 예견했다.

 

 

어느 마을에나 밉상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시노선에도 외지인이자 사사건건 간섭하기 좋아하는 밉상이 있었다.

메인워링.

어딜 가나 그 인간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해미시 역시 그 무례함에서 빠지지 못했다.

자신의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마녀들에게 습격을 받았다며 사건을 해결하라는 미션을 남겨주고 잔뜩 거들먹거리며 사라진다.

 

 

이런 시건방진 녀석 같으니. 내일까지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면, 내 당신을 시노선에서 번개처럼 몰아내고 말 거야. 여기 땅에 발도 못 붙이게 할 거라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외부인에게 곁을 주지 않으면서도

자기들끼리조차도 서로를 믿지 않고 날선 경계를 하는 시노선 사람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하물며 해미시에게도 밉상으로 군림한 메인워링.

그렇게 암울할 거 같은 마을에서 화사한 모습의 인형 같은 여인이 해미시의 눈에 들어온다.

 

 

캐나다 사람인 제인은 화가이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해미시의 마음에 불을 댕기고

제인 역시 해미시를 유혹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닿지 않는 프리실라에 대한 마음을 한구석에 밀어 놓고, 눈앞에 있는 제인에게 손을 뻗게 되는 해미시.

그들의 러브 스토리는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시노선은 그곳에 사는 모든 영혼을 뒤틀리게 하고 뒤바꿔 놓는

공상과학 소설 속 검은 안개 같았다.

 

 

해미시가 장난전화를 받고 출동한 날 시노선에서도 일이 벌어진다.

메인워링과 시노선의 알코올중독자 샌디 카마이클이 사라진다.

그리고 며칠 후 사람의 뼈가 공터에서 발견된다.

이 뼈는 사라진 두 사람 중 누구의 뼈일까?

어쩌다 저렇게 뼈만 남은 모습으로 발견됐을까?

 

 

해미시를 못 잡아 먹어 안달 난 블레어가 파견되고 역시나 해미시는 사건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해미시가 누구인가?

블레어가 사라지라고 해서 사라질 위인이 아니다.

그럴수록 더더욱 마을 사람들 사이를 느적느적 다니며 정보를 캐고, 단서를 찾아낸다.

 

 

작은 공동체 같은 마을.

그곳에서 왕 노릇 하고 싶어 하는 외지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저마다의 비밀은 서로의 가림막이 되거나 은폐가 되어 준다.

그러나 외지인은 그 무엇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 시리즈의 재미는 해미시의 새로운 모습이 매 시리즈마다 등장한다는 것이다.

시노선에서의 해미시는 좀 더 능청스러우면서도 자기 실리를 챙기는 쪽으로 더 발전했다.

하물며 남녀 간의 관계에서도.

 

 

그리고 살인은 조금씩 더 잔인하게 발전한다.

바닷가재가 그렇게 끔찍하게 느껴지다니 정말 눈으로 읽고도 못 믿겠다.

그래서 맛있는 건가?

 

 

한 걸음 더 다가온 프리실라.

한 걸은 더 느긋해진 해미시.

다음번 이야기에선 해미시의 어떤 모습이 공개될지 궁금하다.

읽을수록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해미시 맥베스.

 

 

이 촌 동네 순경에겐 은근한 매력이 있다.

자꾸 궁금하게 만들고 자꾸 의외의 모습을 알아가게 만든다.

그래서 해미시 맥베스는 은근하게 독자를 중독시킨다.

그것이 해미시를 읽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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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꿀벌과 나
메러디스 메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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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미국 중서부 3만 피트 상공 어디엔가 부모의 역할을 버리고 온 것 같았다.

 

회고록이자 에세이를 읽었는데 소설 한 권을 끝낸 느낌이다.

읽으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이거 실화 맞지?'

메러디스는 남동생과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네 집으로 온다.

잠시 엄마와 아빠가 화해할 동안만 머물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엄마와 아빠는 헤어지는 쪽을 택한다.

방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괴롭히지 말라는 할머니.

어린 메레디스를 마음 붙이게 한 건 할아버지와 그의 꿀벌이었다.

 

곤충의 생에서도 좌절은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꿀벌은 어떤 삶을 살 것이지 결정하는 선택권이 남이 아닌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을 내게 확인시켜주었다.

나는 부모를 잃었다는 슬픔에 깔려 무너지는 앞날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앞날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어린 메레디스에게 소일거리를 주고, 벌들의 세상을 통해 삶의 지혜를 전수해 준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는 엄마의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할머니와의 재혼으로 메러디스의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그는 묵묵히 아이의 아픔과 슬픔을 지켜보며 그 아이가 삶을 지탱해 나아갈 수 있도록 옆을 지켜주었다.

 

자꾸 눈시울을 적시게 되어서 책을 읽는데 속도가 나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들을 내버려둔채로 자신의 슬픔에 빠져 살았고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달래가며 아이들을 돌보기는 했지만 거리를 두었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했던 아이들은 무관심속에 남겨졌고

아빠는 새로운 삶을 찾아 내어 나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저 정도로 무기력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들을 저렇게 방치 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답답했지만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한 슬픔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의 가정, 삶도 망쳤다.

어쩜 메레디스도 엄마와 같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와 꿀벌이 없었다면.

 

 

 

 

 

아빠의 자리를 대신 채워준 할아버지는 메러디스에게 또 하나의 세상이었다.

그에게도 메러디스는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는 선물같은 존재였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아이를 키울 일이 없을 줄 알았어. 그랬는데 무슨 행운인지 너희 둘이 나타났단다."

그 순간 기쁨이 폭발하며 온몸이 짜릿해졌다. 내게도 벌집이 있었던 것이다. 내 벌집은 바로 이곳, 할아버지의 꿀 버스 안이었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었던 할아버지와 나.

메러디스와 매슈의 곁에 할아버지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진정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 이야기였다.

 

그리고 꿀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책이다.

꿀벌이 그렇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집단이라는 걸 알아가면서 정말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뽐낼만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터전을 바르지 못한 것들로 채우고 살아가는 인간계는 꿀벌에게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꿀벌들이 급격히 사라져가는 건지도 모르지...

 

꿀벌이 살아가는 모습에 녹아 있는 숭고하고 경탄스러운 삶의 방식은 곧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인간이 마땅히 지키며 살아가야 할 기준과도 같았다.

할아버지는 인간이 한평생을 사는 동안 뭐든 적당히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꿀벌과 인간 사이든 중학교 친구 사이든 엄마와 딸 사이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만했다.

 

 

메러디스의 엄마에게도 자신의 의붓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많았다면

어쩌면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어른들의 문제로 인해 방치된 아이들에게 길잡이를 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면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메러디스 처럼 자신의 길을 잘 밟아 가지 않을까?

그런 어른이 내 주위에도 있었을까?

나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나서도 많은 생각이 넘나든다.

 

 

참 좋은 책이다.

 

 

올해 참 많은 책을 읽었고, 두고두고 읽을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도 있었지만

이 책만큼 계속해서 깨닫게 하고,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책은 처음이다.

 

구구절절한 내 마음을 글로 쓰는 건 이 책에 실례를 범하는 거 같다.

그만큼 간결하고도 담담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작가의 글에 사족이 붙는 거 같아서.

 

저널리스트로서의 삶을 살아온 저자는 할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양봉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것이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주위의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어 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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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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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는 마음을 다친 이들을 몸을 다친 사람처럼 대해야 한다.

마음의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아 가볍게 보기 쉽지만, 마음의 아픔을 토로하는 사람은 꾀병이나 의지가 약한 사람의 유난한 반응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보고, 스스로를 돌보는 가까운 사람도 잘 돌봐야 한다.

 

 

  

그림과 함께 하는 에세이는 이제 거의 공식화되어 버린 트렌드 같다.

그래서 이 책도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 조금과 그림에 대한 감상을 곁들인 에세이라 생각했다.
다만 다들 잠들거나 자려고 준비하는 시간인 새벽 1시 45분에 그림을 본다는 게 조금 신선했을 뿐.

 

 

역시나.

책은 읽어봐야 안다.
어떤 책인지.
제목을 쓱~ 훑어보는 것만으로는 책을 알 수 없다.
이 책 역시 나에게 그런 책이다.
내 예상을 빗나가는.

 

 

 

 

알면 마음이 간다. 모르면 무관심해진다. 마음은 나와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나를 알수록 내게 마음이 가는 이유도 이와 같다.

 

 

잠들지 못하는 새벽.

저자는 하루를 정리하며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그 혼자만의 시간 동안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나를 들여다보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 한다.

수필이라기엔 짧아서 나는 새벽 감성으로 보는 나에 대한 단상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싶다.

  

소소한 일상에서의 깨달음.

인간관계에서의 깨달음.
사물을 들여다보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
생각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깨달음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림에 대한 감상이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림은 글을 받쳐주기 위한 삽화 같은 느낌으로 담겨 있다.

강요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 작가의 감상 정도가 이 책에 실린 그림에 대한 전부다.

근데 그것이 읽는 이에게는 더 다가온다.

 

 

등산은 몸으로 했는데 정신이 맑아졌다. 등산을 하면 노폐물이 땀으로 배출되어 몸이 가벼워지듯이 책을 읽으면 편견과 무지가 조금은 씻겨 나가니, 독서는 마음의 등산이 아닐까?

 

 

책 사이사이 끼워져 있는 그림들은 처음 본 것도 있고, 익히 아는 그림도 있고, 몇 번 본 그림도 있다.

다른 에세이에서 그 그림에 대한 느낌을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느낌도 좋다.

 

 

편안하게 자리 잡고 차 한 잔 마시며 슬슬 읽어 내려가는 기분이 참 좋은 책이다.

그만 먹어야지 하지만 자꾸 손이 가는 새우깡 같은 책.

 

우리는 피할 만큼 싫은 일조차도 즐길 수 있는 용자가 아니다.

즐길 수 없다면 재빨리 피하자.

 

늘 들어왔던 소리들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단상들에 허를 찔리며 웃게 된다.

그래. 맞아!

즐길 수 없을 거 같으면 피해야지. 계속 헤딩하다가는 머리만 깨지지.

 

나는 '착한 = 좋은'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준으로 착함과 행복이 충돌하면 단호하게 행복을 선택했다.

 

이런 단호함을 갖춰야 현대인이겠구나 싶었다.

착하기만 해서는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기 힘들다.

세상은 못된 사람이 더 행복해 보이니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문장이다.

나는 작가와 비슷한 사람인 거 같다.

남에 눈에 착한 사람이기보다는 나 자신이 행복하고 싶은 사람이라 이 문장에 공감한다.

 

 

뭔가 내가 가진 생각의 틀을 툭~툭~ 건드려 주는 글들이다.

내가 옳다고 믿고 있거나,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기 좋은 단상들을 읽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내가 행복해야 행복함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행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만드는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행복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기왕이면 좋은 기운을 나누며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나를 돌아보며 살아야겠다.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로움으로 채우지 않고, 작가처럼 나를 성찰하는 시간으로 채운다면

나는 나이 들어 갈수록 점점 더 괜찮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의 단상들이 가볍게 내 오래된 생각들을 건드려 준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살려면 가끔 내가 가진 오래된 생각들에 물을 주고, 통풍을 시켜줘야 한다.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 책이 말해주고 있다.

 

 

새벽 1시 45분에 깨어 있다면

그 시간을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가져야겠다.

온전히 나에게로 향한 시선을 가져야겠다.

앞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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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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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이제야는 이제서야라는 뜻도 있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목은 이제서야 언니에게처럼 느껴지지만 책을 읽게 되면 이제야 언니에게로 느껴진다.

무슨 차이지? 라고 묻는다면 "책을 읽어 보세요." 라고 말할밖에.

 

 

 

 

나도 그렇게 되었다. 소문 속 그 여자애가 되었다.

 

 

 

작년 초에 대만 작가 린이한의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었을 때의 감정이 다시 복받쳤다.

제야와 제니. 그리고 승호.

친인척들이 모여 사는 작은 동네에서 사촌끼리 다정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이 세 아이에게

당숙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터를 잡은 남자는 처음엔 꼬마들을 보면 용돈도 쥐여주고, 먹을 것도 사주고, 예쁘다고 쓰다듬어주는 항상 친절한 아저씨였다.

젊은 사람이 사업에 능해서 고향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되어 자리를 잡더니 너도나도 이 젊은 사업가의 손을 잡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소도시의 정재계 인사들을 모두 아우르는 힘을 가진 그 젊은이를 먹고사는 일이 우선인 어른들은 모두 칭찬하기 바빴다.

그가 어둠의 손길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뻗어내고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재야조차도.

 

 

잘 엮은 그물을 치고, 팔딱이는 싱싱한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기만을 기다리던 순간들. 이었겠지. 그놈에겐.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재야 탓을 했다.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내려오는 공식처럼 피해자는 나쁜 년이 되고

가해자는 그럴 수도 있지. 가 되는 그런 더러운 일. 이 재야에게 생겼다.

 

 

재야는 혼자 울었다. 남들 앞에서는 울지 않고,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잘못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했어요.

 

 

경찰도, 마을 어른들도, 친척들도, 부모마저도 재야를 그런 아이로 취급하고.

그놈에겐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젊은 혈기에. 라는 면죄부를 주었다.

더러운 세상.

비겁한 어른들.

그놈에게 그나마 대들었던 건 연약한 승호뿐이었다.

어쩜 그곳으로 재야를 불러낸 승호의 죄책감이 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때 교통사고만 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아지트는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고 해서 마수의 손길이 조금 늦어졌을망정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지는 않았을 테지.

 

 

프레드릭 배크만의 [베어 타운] 에서도 재야 같은 마야가 나온다.

마야에게도 재야와 같은 손가락질과 온갖 비난이 장착된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날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날 그 일이 없었어도 그는 분명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재야의 삶은 사라졌다.

미래가 사라진 재야의 삶은 공허와 공포가 오가는 삶이다.

막 사는 것.

매일 잊고자 하는 기억을 되풀이 사는 것.

강간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계속되었다.

꿈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에서.

학연이나 지연이나 인맥들에서 계속 되풀이되어 재야가 그 어디에서도 숨 쉴 수 없도록 만들어갔다.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는 그 어디에도 재야가 숨을 곳이 없었다.

특히나 인간관계에서는. 더더욱이 남녀관계에서는.

 

 

 

 

 

 

최진영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는데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이 있다.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상세한 장면도

적나라한 묘사도 없지만

재야의 상황이 자꾸만 머릿속에 각인되어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나는

이 고통스러움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야의 세상과 재야의 세상은 다르다.

재야의 세상은 더 답답하고, 더 우울하고, 더 외롭다.

 

그래서 더 슬프다.

 

점점이 슬픔이 쌓여가고

풀지 못한 울분이 꺽꺽 거리고

위로해 주지 못하는 마음이 파도를 친다.

 

 

미안하다.

이 세상 모든 제야에게...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기 바란다.

피해자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아예 모르는 것과 이렇게 간접적으로라도 알게 되는 것의 차이는 분명 있으므로.

청소년들의 필독서가 되길 바라고

점잖지 못한 어른들과 양심 없는 어른들의 교양 필독서가 되길 바란다.

경찰서에 비치해서 모든 경찰들이 읽기 바란다.

강간 신고가 들어왔을 때 그들이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서 배우기 바란다.

 

 

이토록 무기력한 기분과 극도의 울분을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가

이토록 가만가만 이야기하는 느낌이 그래서 더 울림이 된다.

 

 

이제야 언니에게는 그래서 두 가지 의미로 느껴진다.

이제서야 이제야 언니에게...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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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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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제목처럼 미래가 멋진 신세계이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렇지 않을 거 같은 길목에서 책으로나마 미래의 ‘맛‘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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