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수다를 위한 상식 퍼즐
기명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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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고도 상식스러운 책 한 권을 만났다.

저자는 대학내일에 3년 가까이 낱말퍼즐을 연재한 실력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희소성 있는 넓고 얕은 지식들을 골라 낱말퍼즐을 만들고 그것에 대한 설명도 담아 놓았다.

 

 

단어는 지금도 매일 쏟아지고 있다. 새롭게 만들어진 낱말이 아니더라도 다른 의미로 쓰이는 표현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콜라와 함께 탄산음료의 양대산맥을 이루던 '사이다'는 통쾌한 무언가를 봤을 때 터져 나오는 감탄사로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이 작업을 계속하면 그 키워드들의 묶음도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난이도에 따라 코스별로 되어있다.

낱말퍼즐 사용 설명서까지 남겨두었길래 '뭐 이렇게까지?' 생각했었다.

낱말퍼즐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라는 이 자만은 첫 번째 관문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그건 이 책이 예전처럼 그저 낱말의 뜻풀이로 되어 있기보다는 최신 용어들의 정의로 꾸며져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도전했으나 첫 관문에서 와르르 무너진 내 자존심.

내 무식을 확인한 느낌에 엄청 당황스러웠다.

 

 

 

 

 

 

예전엔 신문에 실려있던 낱말 퍼즐 푸는 재미가 있었다.

근래엔 신문을 보지 않으니 자연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 책을 받자마자 호기롭게 덤벼들었다.

예전 실력 발휘해 봐야지~ 하면서.

 

첫 번째 퍼즐을 푸는데. 거... 참.

 

아는데 낱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소싯적에 낱말퍼즐 꽤나 했는데 말이다.

설명을 읽으면 알겠는데 정확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는 이 현실~

 

위 사진은 첫 번째 퍼즐이다.

시작하는 단계라서 쉽고 비교적 많이 들어 본 단어들만 모아 놨다.

그런데.

설명을 읽으면 알 거 같은데 막상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손으로 글씨를 쓸일 없는 요즘 거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뉴스들을 읽고만 넘기기에 머릿속에 저장되기보다는 눈으로만 짚고 넘어가는 일이 많아진 데서 오는 현상이라 짐작해 본다.

손으로 써본 적 없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이 그저 흘려 읽고 넘기기에 급급했던 용어들이 이렇게 요약 설명되어 있는 걸 보니 내가 정말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파고들어가니까 몰랐던 그런 경우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의 구성은 낱말 퍼즐이 나오고 그 뒤에 퍼즐에서 중요하고 기억해야 할 거 같은 단어들에 대한 설명 등이 들어있다.

그래서 제목이 지적 수다를 위한 상식 퍼즐인 거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낱말의 의미만을 잘 외워도 당분간 잡학 상식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뒤지진 않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색다른 책 한 권에서 요즘 나의 상태를 점검해 본다는 게 새롭다.

자기계발을 위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낱말 풀이는 여러모로 많은 것을 내게 요구한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단어와 용어의 뜻을 정확하게 정의한 문구를 읽으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기계발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참고로 미국에서는 낱말퍼즐이 대표적인 지적 유희로 인정받는다.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같은 일간지는 섹션을 아예 따로 만들어, 십자말풀이를 100년째 지면에 싣고 있다.

.

.

국내에도 하루빨리 낱말퍼즐 붐이 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카페에서, 공원에서, 회사에서, 저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지식들로 지적 수다를 펼치는 것이 일상이 됐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처럼 친구들끼리 든 아니든 대화가 있는 곳에 공통된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훨씬 다양하고 즐거운 대화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즐거운 수다는 나를 더 발전시키고,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대면을 꺼리는 이유는 바로 대화에서 오는 피곤함 때문일 것이다.

일방적인 것, 관심 없는 것, 재미없는 것,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 주제가 될 때 그것에 노출된 시간만큼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럴 때 이렇게 누구에게나 필요한 상식적인 단어들이 주제가 되어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전반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의견으로 나눌 수 있다면 피곤한 수다보다는 건전한 수다에서 오는 진정한 힐링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영화를 보다 보면 복잡하거나 머리를 비워야 할 때 낱말 퍼즐을 푸는 장면들을 볼 때가 있다.

그리고 모르는 단어의 뜻을 얘기하며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들이 서서히 좁혀지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그렇게 유용하게 써먹으려면 완전하게 익숙해져야 한다.

지식을 전하는 책은 읽기 힘들고 인내가 필요하지만 이 낱말퍼즐 책은 똑같이 인내가 필요하긴 하지만 적어도 재미는 있을 거 같다.

 

이 책이 거듭 업그레이드되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지적 유희를 즐기고 난 기분이 상쾌하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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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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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북로드의 신작 열세 번째 배심원이 출간되었다.

좋은 기회에 가제본으로 먼저 읽게 되었다.

 

스티브 캐버나는 인권 변호사 겸 작가이다.

나는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변호사 출신이라 그런지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묘사가 현실감 있다.

 

법정 스릴러는 언제나 좋은 이야기 거리이다.

늘 스릴 있고, 반전이 있으며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범인과 변호사

범인과 검사

때론 검사와 변호사와의 접전은 법정 스릴러의 묘미이다.

 

바비 솔로몬과 아리엘라 블룸은 지금 가장 핫한 영화배우 커플이다.

어느 날 바비가 늦게 귀가하고 보니 아내와 경호원 칼이 같은 침대에서 숨져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바비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마치 치정이 얽힌 살인사건처럼 보이는 이 사건을 맡은 잘 나가는 로펌의 변호사 루디 카프가 플린을 찾아와 변호인단에 합류하라고 제의한다.

 

에디 플린.

변호사 이전에 사기꾼이었던 전력이 있다.

절대 유죄인 사람은 변호하지 않는다.

아내와 별거 중이다.

경찰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그다지 특별할 거 없는 변호사인데 그에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과거가 있다.

그것이 그를 변호사가 되게 만들었고, 그가 죄가 없는 사람들의 편에서 변호하기로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합니까? 다른 사람이 할 거라고 기대하면서 아무도 어떤 사람을 옹호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누군가는 선의 반대편에 서 있어야죠. 제가 넘어진다면, 누군가 나타나서 제 자리를 가져가야겠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급적 오래 서 있으면 됩니다.

 

 

케인.

살인의 쾌감을 가진 연쇄 살인범으로 분장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는 특기가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면서 범죄에서 빠져나온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그는 배심원이 되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누명을 쓴 범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게 배심원들을 조정해왔다.

누명 쓴 이들은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꽤 치밀하고 인내심 많은 범인을 만났다.

게다가 영리하기까지 하다.

 

이야기는 플린과 케인 두 사람의 시선이 왔다 갔다 하면 전개된다.

그래서 더 애간장이 탄다.

 

케인은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연대감과 공감도 없었다. 케인의 마음속에는 그러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그의 밑에 있었다. 그는 특별했다.

 

 

 

첫 장부터 등장하는 케인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누굴 응원하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

케인이 덱스터 같은 범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재판이 진행되고 바비에게 불리한 증거품과 증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바비의 숨겨진 비밀이 폭로되고

영화사의 지지를 받던 로펌은 더 이상 바비를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루디는 떠나고 플린은 남았다.

케인은 자신의 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무죄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는 배심원들을 하나 둘 처치하기 시작한다.

 

플린의 활략으로 절대 불리하던 바비의 재판은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증거들과 증인들이 플린 앞에서 연거푸 무너지면서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플린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행되어 왔던 연쇄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바비에게 누명이 씌었다는 걸 파헤치게 된다.

배심원 석에서 그것을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하는 케인.

FBI가 개입하고 금방 유죄 판결을 받을 거 같았던 바비의 재판은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갈까?

 

설정이 참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자신의 죄를 뒤집어 씌운 사람의 배심원이 되어 유죄 판결을 유도하다니.

영리해도 보통 영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그는 조력자도 있고, 무엇보다 무통각증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몸도 마음도 고통이 없는 사람이 남의 고통을 알리 없음이다.

 

 

"자기가 아메리칸 드림을 죽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군요."

 

 

케인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증오는 그것의 한 부분이었다. 아마도 복수. 주로 그는 동정을 느꼈다. 돈이나 가족, 기회, 힘지어 사랑이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난한 영혼에 대한 동정.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케인에게는 위대한 미국의 거짓말이었다.

 

 

 

불운한 영혼이 만들어낸 사건들.

아무리 노력해도 무언가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 한순간의 행운으로 모든 걸 다 갖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메리칸 드림을 뜻하는 거라면...

 

케인의 고통은 그것이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잠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어쩜 축복일 수도 있다고.

고통을 모르는 마음은 고통을 이해할 수 없고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스티브 캐버나.

이 작가의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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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스 브라더스
패트릭 드윗 지음, 김시현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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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마땅한 놈이었지만, 이성을 잃고 폭발한 것이 후회된다. 통제력의 상실은 두렵다기보다 무척 당혹스럽다.

 

 

1851년 골드러시가 한창인 때 찰리와 일라이 시스터스 형제는 제독의 임무를 받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허먼 커밋 웜이라는 금 채굴꾼을 찾아내 죽이는 것이 그들의 이번 임무다.

 

다혈질이고 과격한 형 찰리, 커다란 체구에 감수성을 겸비한 동생 일라이

두 사람이 웜을 찾으로 캘리포니아로 가는 여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이 이야기는 시종일관 자잘한 사건들과 갑자기 총질을 함으로써 상황을 종료 시키는 찰리 때문에 조마조마하다.

그리고 한없이 감성적이고, 자상하다가도 갑자기 폭발하고 마는 일라이 때문에 신나게 달리다 급제동이 걸리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카우보이 누아르라 해서 맥없이 총질이 난무하는 상황을 그렸던 내게 이 신선한 피는 정말이지 새로운 장르를 만난 기분이다.

캐나다 출신 작가의 미국 서부시대 카우보이 누아르. 는 서부시대와 카우보이의 정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 작가들을 떠나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총잡이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섬세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일을 즐기나요?"

"건건이 달라요. 어떤 일은 별난 장난 같고, 또 어떤 일은 지옥같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어떤 행위에 보수가 주어지면 그 자체로 존중할 만한 일이 되죠. 한 사람의 목숨이 내게 달려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답니다."

 

 

 

어딘지 모르게 철학적인 일라이는 가는 곳마다 정스러움을 담뿍 내려놓고 떠난다.

어째서 그가 그토록 잔인한 킬러로 이름이 나 있는지 모를 정도다.

무자비 한 총잡이인데 더할 나위 없이 여린 감수성에 따뜻한 정이 흐르는 남자다.

형 찰리랑 끝없이 투닥투닥 하며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두 사람을 보며 웃기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건 내가 여태 보아왔던 총잡이들은 잔인하거나 정의롭거나로 나뉠 수 있었는데 일라이를 지칭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일라이의 속내를 알면 알수록 그의 무심한 말투를 읽으면 읽을 수록 일라이에게 빠져들고 만다.

이러다 웜을 만나도 총은 꺼내지도 못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어이없게 살인을 저지르는 그들을 본다.

이게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

 

 

 

 

"당신 몸에는 낭만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데, 그렇죠?"

"우리 형제에게는 같은 피가 흘러. 그저 다르게 사용할 뿐이지."

 

 

 

 

 

캘리포니아에 다가갈수록 금광에 미쳐서 삶을 망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도시는 아름답지도, 낭만스럽지도 않다.

겨우 자신들 보다 먼저 파견되어 정보를 주었던 모리스를 찾아왔으나 모리스는 사라지고 없다.

그들이 찾던 웜도 사라지고 없었다.

웜과 모리스를 뒤쫓은 찰리와 일라이.

금을 좇아 제독을 배신한 모리스와 제독의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찰리와 제독의 밑에서 그만 빠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라이 그들의 만남은 어떻게 끝이 날까?

 

 

 

 

 

"이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고향을 떠났을 때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모두가 낯설게 느껴질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고요."

 

 

 

 

 

 

 

금광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온 사람들은 금을 캐고 자신을 잃었다.

일라이에게 그들의 모습은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저 신나게 쏘고, 신나게 달리고, 신나게 죽이고, 아무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총잡이를 그렸다가 된통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일라이라는 캐릭터 때문에 여태까지 쌓여있던 총잡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이야기가 마치 단편처럼 넘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건과 감정선을 넘기는 과정이 몇 페이지로 나눠서 끊어간다.

그리고 두 편의 막간극이 첨가된다. 꿈속의 장면만을 따로 편집해 놓은 것처럼.

 

소설인데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도 보고 싶어졌다.

어쩜 아마도 일라이가 보고 싶은 거겠지만.

 

 

 

 

"그럼 이것이 내 생애 마지막 살인의 시절이 되리라."

 

 

찰리와 일라이 시스터스의 두 번째 시절의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독특한 캐릭터는 늘 그 뒷얘기가 궁금하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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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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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일러스트이자 일본의 파워 불로거이다.

주변에서 마주치는 조금 특이한 사람들에 대한 만화를 그린다.

 

설마 이런 사람이 존재할까? 싶은 사람도 있고

우리도 동네에 한 분쯤 존재하는 사람도 있고

이 정도가 뭐가 이상하다는 걸까? 하는 사람도 있다.

 

 

 

 

 

옷 가게 에피소드에서 생판 모르지만 무채색 원피스를 들고 딸이 좋아할지 물어보는 아주머니.

작가는 나름 요즘 유행과 날씨 연령대를 고려해 성실히 대답해주지만 결국 아주머니는 자기 사고 싶은 걸로 산다.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걸까?

 

근데 이런 경우는 나도 있다.

같은 디자인의 색깔이 다른 셔츠를 대보면서 어떤 게 어울리는지 자연스레 물어보시길래 조금 밝은 색이 어울린다 했더니 바로 내려놓고 어두운색을 골라 가셨다.

순간 어찌나 무안하던지.. 어르신들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마치 몇 십 년 지기처럼 하실 때.

생판 모르는 분이 자기보다 어리다고 막 반말할 때.

증말 민증 까자고 대들뻔했음.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

꼭 일기를 썼다는 작가의 의도가 좋다.

나는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일이 있을 때보다

안 좋은 상황이나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일기를 썼는데 나중에 들쳐볼 때 엄청 내 인생이 우울하고 불행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부터라도 좋은 일과 좋은 사람들 이야기도 적어두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를 썼다는 건 평소에 주변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뜻으로도 보아져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너무 무심하게 살아가는 거 같다.

분명 내 주위에도 이 책 속에 그려진 사람들과 비슷한 이들이 있을 텐데 내가 전혀 모른다는 것.

 

좀 특이한 사람들과의 인연이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사람들이다.

역과 지하철 동네에서 스치는 사람들에게 조금 관심을 준다면 나는 더 즐거운 일기를 남길 테고 내 인생이 꽤 재밌었다고 생각할 훗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 엉뚱하고, 재밌고, 이상한 책을 읽다 보면

세상이 넓고도 좁듯이

사람 사는 게 정말 거기서 거기처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화적 차이나 웃음의 코드가 다르다 해도

살아가는 방법이나 모습들은 참 같다.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인가 보다.

 

 

 

 

 

 

 

아이스티 한 잔 주세요.

 

따뜻한 아이스티 맞으십니까?

 

혹시라도 주문받는 분이 이렇게 대답해도 무안주지 말아요.

이 대답 때문에 가다가다 혼자 웃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이 에피소드로 웃음을 선사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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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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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없이도 임신이 가능하다.

 

앤젤라 채드윅의 XX - 남자 없는 출생은 제목부터 상당히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뭔가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마주할 거 같은 예감이랄까?

 

 

 

난자 대 난자의 인공수정으로 임신이 가능한 연구가 성공한다.

난난수정법이 법을 통과하고 합법적으로 난자 대 난자 인공수정이 가능해졌다.

기자인 줄스는 자신의 동성 연인 로지와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하고 이 프로젝트의 임상실험에 참가한다.

사실 줄스는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지만 로지가 아이를 갈망한다는 걸 알고는 로지와 자신만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생기자 기뻐한다.

 

그래, 갑자기 왜 애를 갖고 싶어 하는지는 둘째 치고, 왜 그런 식으로 가지려는 거냐?

.

.

아직 안전한지 모른다며! 실험동물이 되려고? 무슨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로지의 부모님은 기뻐했지만 줄스의 아버지는 반대 의견을 보인다. 아내 없이 홀로 딸을 키워온 아버지는 딸이 자신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가난한 동네에서 되풀이되는 여자들의 삶을 딸이 탈피하기만을 바랐던 아버지는 아이가 생김으로 인해서 달라질 딸의 처지를 걱정한다.

 

무사히 서류와 면접을 통과한 줄스와 로지.

그러나 이 난난수정법을 반대하는 자들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우리 딸이 태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세상에서 딸아이를 지켜내는 건 내 몫이다.

 

성을 가르는 염색체는 남자에게 존재한다.

XY로.

XX 염색체끼리는 XX만 만들 수 있다.

결국 이 난난수정법으로 인해 여성들만의 임신이 가능해지면 딸만 태어날 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남자의 멸종을 가져올 거라 생각하는 반대자들이 계속 집회를 연다.

 

 

나한테는 남자아이 셋이 있어요.

이번 시술이 성공하면 그 애들이 어떤 세상에서 자라게 될까요? 소수자가 되고 말겠죠.

 

 

정자를 기증받아야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레즈비언 커플들은 자신들만의 유전자로 자신들만의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정자를 기증받아 그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키운다는 게 줄스는 싫었다.

이젠 자신과 로지를 반반 닮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이제 남자들이 피 묻은 사슴을 동굴로 끌고 들어오기만 기다리는 여자는 없으니까. 하지만 남자들은 여자 없이는 아이를 만들 수 없잖아. 우리가 필요하니까, 그걸 우리가 상기시키니까 분노하는 거야."

 

"하지만 여자들이 다 이런 식으로 아기를 가질 것도 아니고, 인구 비율이 어쩌고 남자가 멸종하고 어쩌고, 이런 쓰레기들에 대응하는 사람이 왜 없어? 난 사람들이 이런 거짓이랑 선동을 너무 쉽게 믿는다는 게 걱정돼."

홍슈가 나를 보고 씩 웃는다.

"언론 탓이지."

 

비밀리에 진행되던 임상 실험은 누군가의 폭로로 줄스와 로지의 신원이 공개되고 만다.

줄스는 기자로서 언론의 행태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일절 대응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이가 아주 드물다. 직장 상사인 매튜는 한시도 줄스를 가만두지 않고 들들 볶는다. 기삿거리를 내놓으라고. 그리고 일부러 그녀를 난난수정 반대파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으로 취재를 보낸다.

언론은 그녀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집까지 공개되어 줄스와 로지는 24시간 카메라에 노출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각종 SNS에서 그녀들을 비방하는 댓글이 쏟아지고 파파라치들이 따라다니며 플래시를 터뜨리기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아이를 잘 지킬 수 있을까?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참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작가가 기자 출신이라서 언론이 돌아가는 방식과 사람들이 비범하지 않은 주제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근소한 차이로 법은 통과되었지만 앞으로 남자들이 멸종할 거라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한자리 꿰차려는 정치인

자신의 아들들이 나중에 소수자가 될 거라 미리부터 걱정하는 어머니들

종교적인 이유로 절대 불가를 외치는 종교인들

아이가 생김으로 인해 달라질 딸의 삶을 걱정하는 줄스의 아버지

임신한 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마냥 행복해하는 로지

아이가 생기고 언론과 사람들의 공격을 받으며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는 줄스

핏줄에 연연해하는 로지의 엄마

자신의 정자를 기증하려고 했던 로지의 친구 앤서니

같이 임상실험에 참여 임신에 성공했으나 중간에 아이를 잃은 커플들의 태도 변화

묵묵히 줄스를 응원하며 그녀 편이 되어준 동료 톰과 애비

 

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녹아들며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매 챕터마다 새로운 긴장에 가슴 조이며 마지막으로 갈수록 마치 범죄 영화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느낌을 받는다.

 

당신들 아이는 평범하게 살 수 없을 거예요.

.

미안해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이 아이는 기적의 아이가 될 거고, 사람들은 궁금해할 거예요.

 

 

지독한 말이지만 사실이다.

세상에서 처음과,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결코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줄스와 로지의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다면 그들의 아이는 난자와 난자로 이루어진 최초의 인간이 될 테니까.

 

재밌는 건 책 곳곳에도 나오지만 여성들만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면 남자가 멸종 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 세상이 평화롭고, 전쟁이 사라지며 공평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정말 여자들만 태어나고 남자가 사라질까?

여태 우리는 남아 선호 사상 속에서 숱하게 희생되는 여자아이들을 보아왔다.

어릴 때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딸만 줄줄이 낳다 보니 딸이라고 판명되면 아이를 지우는 엄마들을 목격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여자가 멸종될 거란 생각을 한 여자들은 없었다.

근데 왜 남자가 멸종될 거라 지레짐작하게 될까?

 

이야기라 그렇다 생각하며 현실의 랑에게 물었다.

"만약 난자와 난자만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 거 같아?"

"남자 수가 줄겠지. 여자들이 많아지면 전쟁은 사라지겠지."

"왜 그렇게 생각해? 여자들이 많아지면 정말 전쟁이 사라질 거 같아? 여자들도 전쟁할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못 들었다.

모른다는 회피성 발언만 들었다.

같이 살고 있는 남자에게서 들은 이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남자들 자신들도 알고 있는 것일까? 자신들이 호전적이라는 것을?

아니면 여자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지 않고 피난만 다니니까 여자가 많아지면 자연 전쟁도 없어질 거라 생각하는 걸까?

책에서 앞으로 경찰과 소방대원과 군인이 사라질 거라 발언하던 정치인 프라이어의 말이 생각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자들이 많아지면 이런 직업들이 사라질 거라 생각할까?

 

이 이야기 한 편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올바른 정보를 듣고 있는 걸까?

언론이 모든 것을 공평하게 다루고 있는 게 맞을까?

아니면 자신들 입맛대로 자신들 이익대로 짜 맞추어 가는 걸까?

 

만약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난난 수정법이 성공해서 여자들끼리만 아이를 갖게 된다면

나는 과연 이 법안에 찬성하게 될까?

이 이야기는 정말 여자들에게만 최적화된 이야기일까?

수많은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있지만 그 어떤 결정도 내리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 이야기가 상상에만 그칠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근 미래에 어쩜 난난수정이 성공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생각은 어떨 거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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