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들린 아이 캐드펠 수사 시리즈 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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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뒤에 있는 문을 닫아버리는 아이들의 의도는 둘 중 하나야. 그 너머의 세계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아니면 이 안쪽 세계로 도피하려 하거나. 그 둘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 하지만 당장은 명확히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군."



이번 <귀신 들린 아이>는 끝까지 범인을 찾지 못해서 각인된 작품입니다.

제가 웬만하면 중간에 느낌이 딱! 오는데 이 이야기에서 범인 찾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고요.

의심한 사람은 많았지만 범인과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는~



중세 시대 수도원엔 자식들을 맡기는 부모들이 많았네요.

보통은 신심으로 자식들을 종교에 봉헌하는 느낌으로 맡겼고, 스스로 수도사의 길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러나 귀족들 중에서는 재산을 상속받기 어렵거나, 군인으로 참전해서 공을 세울만한 인물이 못 되는 이들이 주로 수도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습니다.

<귀신 들린 아이>에서도 다섯 살 난 아이를 수도사로 들여보내는 일로 수도원 내에서 찬반의 토론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슈롭셔주의 영주가 자신의 둘째 아들 메리엣을 수도원에 맡깁니다.

본인 의지가 충만한 소년이었지만 캐드펠은 왠지 이 아이가 수도사가 되는 것에 반대하는 마음이 듭니다.

척 봐도 사람을 꿰뚫어 보는 캐드펠 수사의 눈에 이 아이는 자신의 말처럼 수도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강제적으로 온 느낌이 들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는 얼마 안 있어 밤에 악몽을 꾸기 시작합니다.

온 수도원 사람들을 다 깨워버리는 지독한 악몽이지만 본인은 그걸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때, 비명이 울렸다. 마치 악마의 두 손이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혼곤한 잠을, 밤의 장막 그 자체를 찢듯, 그 소리는 깊은 어둠과 침묵을 날카롭게 가르며 길게 울려 퍼지다가 천장의 들보에 부딪치면서 박쥐들의 울음만큼이나 사납고 음산한 울림이 되어 사방으로 메아리쳤다.



속세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짐작한 캐드펠과 라둘푸스 수도원장은 귀신 들린 아이로 불리게 된 메리엣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러나 메리엣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물건을 압수한 제롬 수사를 그 자리에서 목졸라 버리는 만행(제롬 수사가 당하는 걸 보고 만행이라고 생각한 독자들은 없을 듯. 다들 고소해했을 듯~ 보고 있던 캐드펠도 그랬으니~ ㅋㅋㅋ)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캐드펠은 메리엣을 마크 수사가 있는 곳으로 보냅니다. 그곳에서 마크 수사의 보호 아래 메리엇을 보살피게 합니다.

지금 정국은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로 나뉘어 여기저기서 편을 갈라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교는 슈롭셔 인근 영주들의 의견을 파악하기 위해 피터 클레멘스를 파견합니다만 그가 돌아오지 않죠.

메리엣의 가문과 먼 친척뻘인 피터 클레멘스는 메리엣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떠난 뒤로 행방이 묘연하다 그만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됩니다.

누가, 왜? 피터 클레멘스를 죽였을까요?



그녀가 캐드펠 앞에서 보이는 태도, 가벼우나 치밀하게 계산된 그 모든 동작들은 캐드펠이 이를 제대로 주시하리라 의식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매력 없는 날벌레 한 마리까지 기어코 사로잡으려는 거미줄이랄까.



메리엣은 형의 약혼자 로즈위타를 연모하고 있었죠. 캐드펠 수사의 눈길마저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로즈위타.

메리엣의 수도원행은 과연 로즈위타뿐일까요?

도대체 범인이 누구인지 아주 궁금해하며 읽었던 <귀신 들린 아이>

어리석은 젊음의 치기

다 가졌으면서도 다 가진 줄 모르는 젊음의 어리석음.

모두의 기대를 독차지하는 사람의 그늘에서 시들어가는 젊음.

그 그늘을 알아보고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강단 있는 아름다움.

그러나 어릴 때부터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마음이 과연 내마음과 같을까요?

욕심 앞에선 우정도 사랑도 없는 법입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 마음도 같은 건지 모르죠...

그러나 진실은 어떡하던 드러나기 마련!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면 비로소 보이는 진실이 <귀신 들린 아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요.

우리 모두 콩깍지를 씌운 눈과 색안경을 낀 눈을 가지고 있죠.

같은 듯 다른 그 콩깍지와 색안경을 벗고 본인의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법이라는 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배우는 중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든 사정을 알아내서 그에 걸맞은 죗값을 치르게 하는 중세 시대의 관용의 법이 왜 이리 뭉클할까요...

법은 있어도 법이 없는 이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놓여나게 되는 시간이 한없이 달갑기만 합니다.

잔인한 폭력과 치졸한 법 다툼 없이도 공정하게 벌과 보상을 내릴 줄 아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그래서 자꾸 이 시리즈를 읽게 되는 거 같습니다.

현실에 없는 따뜻한 공정의 시선이 고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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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 쓰는 법 - 이야기에 강력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스토리 창작법 예비 작가를 전업 작가로 만드는 작법서 시리즈 1
조단 E. 로젠펠드 지음, 정미화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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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작법서 하나쯤은 읽어봤을 것이다.

각종 글쓰기 책들이 다양하게 나와있기에 골라 읽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 쓰는 법>은 같이 읽는 분들과 온라인 독서모임으로 함께 했다.

온라인 독서모임은 처음 참여했었기에 나에겐 재밌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함께 읽는 분들 모두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어서 그분들의 글을 읽으며 나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매일 방장이 정해주는 분량을 읽고 정리하고, 방장이 내주는 제시문으로 한 편의 글을 썼다.

같은 제시문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루의 시간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다들 열심히 기발한 글들을 올려주어서 짜릿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 쓰는 법>은 각 챕터의 설명마다 예시문을 들어서 그 설명에서 말하는 게 무엇인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고, 글쓰기에 있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야 하는지, 멋지게 글을 다듬으려면 어떤 것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긴 설명보다는 예시문을 통해 저자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찰떡같이 알려주기에 글을 쓸 때 많은 참고가 되었다.

무엇보다 한 챕터가 끝나고 나면 체크 포인트를 뽑아 놓은 요약 부분이 아주 유용하다.

글쓰기 책을 읽었다고 모두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글쓰기 책을 같이 읽는 사람들이 같은 책을 어떻게 요약하는지, 같은 발제문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를 매일 대하다 보니 혼자서 책을 읽을 때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서 즐거웠다.

혼자서 쓰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했을 때 좀 더 책임감이 생기고, 더 잘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거 같다.

매일 글쓰기 습관을 들이기 위해 참여한 독서모임이었는데 이 느낌을 죽 이어가야겠다.

이건 온전히 나의 몫이기에 나만 열심히 하면 될 일이다.

무엇이든 쓰면 뭐라도 될 거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쓰는 것이 나의 일이라는 생각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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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참새 캐드펠 수사 시리즈 7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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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약간의 생각과 끈기, 인내, 그리고 교묘한 꾀로 인해 그 모든 남자와 여자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뒤바뀔 수도 있는 법이다.



1140년의 평온한 봄날 자정.

새벽 기도를 하고 있는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갑자기 폭도들이 들이닥친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수도원으로 피신한 사람은 떠돌이 광대 릴리윈.

살인자를 쫓아 수도원으로 쳐들어 온 마을 사람들은 소리 높여 살인자를 내놓으라 하고, 라둘푸스 수도원장은 수도원으로 피신해 왔으니 하나님의 품에 들어온 자를 내줄 수 없다고 대치하는데...





특정한 누군가 악당으로 낙인찍히면, 그다음부터는 희생양이 필요할 때마다 다들 자신들의 판단이 옳다는 확신을 갖고서 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기 마련이다. 특히 자기네 무리에 속하지 않는 이방인, 뿌리도 친척도 없는 사람은 더없이 좋은 표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성의 목소리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리라.



스크루지만큼 돈에 인색한 아우리파버가 사람들.

새신랑 대니얼은 동네 유부녀와 바람피우는 사이고, 새 신부 마저리는 결혼 첫날부터 시아버지가 다치고, 시댁의 금고가 털리고, 그 소식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진 시할머니와 집안의 곳간 열쇠를 가진 나이 많은 시누이가 있다.

엄마가 죽고 실질적인 안주인이 된 수재나는 할머니에게 받은 곳간 열쇠를 차고 다니며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감당했으나 시집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올케에게 곳간 열쇠를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아우리파버가의 하녀 래닐트는 결혼식 피로연에 공연을 하러 온 릴리윈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살인 누명을 쓰고 수도원으로 피신해 있는 바람에 애가 탄다.

그런 찰나에 아우리파버가에 세 들어 살고 있던 볼드윈 페치가 시체가 되어 발견된다.

이 집안에 어떤 액운이 있는 걸까?



"내가 어쩔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져야 한다면, 혼자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야."

"죄 없는 다른 인간들까지 몽땅 끌어안고 갈 거라고."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한 게 되어버린 일상.

사람 보다 돈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

여러 가지 불안한 여건 속에서도 자신이 있어야 하는 자리를 지키거나 찾아내는 사람.

그로 인해 탄탄할 거 같았던 자신의 자리가 무너진 사람.

아무런 보상도 없이 쫓겨나야 하는 사람의 울분과 분노.

남의 비밀을 캐러 다니는 사람.

입을 잘 못 놀려 자신에게 해를 입히게 되는 사람.

이 모든 것들을 이겨 버리는 '사랑'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욕심'

그냥 도망치지 그랬니..

그랬으면 끝까지 쫓아가진 않았을 텐데..

거기서 머뭇 거리는 바람에 도망갈 시간을 놓쳤잖아...

나는 응원했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캐드펠 수사가 기지를 발휘해서 무사히 그들의 사랑을 지켜줄 거라 믿었다.

이번엔.

아니었다...

인생은 타이밍이야.

고집만 부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현재까지 캐드펠 수사 7편을 읽었는데 그중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

.

.

라고 생각했다가 되짚어 보니 '진정' 죄를 짓고 무사히 풀려난 사람은 없었다.

어쩌다 우발적이거나 정당방위였던 사람들이 캐드펠의 '특혜'를 받았을 뿐이지.

그러니 죄의 대가는 반드시 주어지는 법이다.

중요한 건 착하게 사는 것. 그러나 만만하게 보이지 말 것.

쉽지 않은 일이나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생활 방식이다.

그리고.

내 삶을 그리 만든 건 바로 나라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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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왕국 유산 시리즈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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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궁의 벽 안은 비어 있고 복도는 미로였다. 그건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비밀이 숨은 장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것들을 파헤칠 것이다. 아주 낱낱이.



<십만왕국> 제목에서 아주 방대한 이야기의 서사가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데뷔작이기에 뭔가 아쉬운 점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나는 이 경탄스러운 이야기가 그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처음부터 이렇게 완벽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이 이야기의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다...

* 신들의 전쟁

대혼돈에서 태어난 나하도스, 어둠의 군주는 억겁의 세월을 홀로 존재했다. 그러다 그에게 동생 이템파스 광명의 신이 생겼다. 둘은 서로의 반대 영역으로 견제하고, 싸웠다. 그러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됐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형제이자 연인인 둘 사이에 대지의 여신 에네파가 끼어들었다. 에네파가 성장하면서 그녀는 이템파스의 영역을 조금씩 보이지 않게 건드리며 변화를 추구했다. 나하도스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이었지만 이템파스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둘이었던 사랑은 셋으로 변했고, 나하도스와 에네파는 뜻을 함께 했다. 질투에 눈이 멀어버린 이템파스는 에네파를 죽인다.

그로 인해 신들의 전쟁이 발발하고 승리를 거머쥔 이템파스는 나하도스와 그의 자식들을 자신의 피조물인 아라메리에게 복종 시켰다.

인간의 노예가 된 신이라니!!!



* 예이네

아라메리의 후계자였던 엄마는 한때는 전사의 나라였으나 신들의 전쟁 이후 가장 한미한 종족이 되어버린 다르의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한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예이네는 엄마의 죽음 이후 할아버지 테카르타에게 부름을 받고 하늘왕궁에 도착한다.

후계자로 인정받고 승계식을 치러야 하지만 예이네는 자신이 절대 후계자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쓰임은 따로 있으니까...

그러나 예이네가 하늘궁전에 온 목적은 따로 있다. 바로 엄마를 살해한 살인자를 찾기 위함이다.

예이네는 하늘궁정에 도착하자마자 괴물의 습격을 받지만 어린아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그렇게 예이네는 노예가 된 신들과 만나게 된다.





때때로 나는 내 육신에 담긴 영혼보다 내 핏줄에 흐르는 피가 더 무섭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소녀 예이네.

그녀의 몸에 깃든 영혼의 무게와 엄마의 살인범을 찾겠다는 의지와 그녀를 노리는 다른 후계자들과 그녀를 이용해 자신들의 자유를 찾으려는 신들의 이야기는 읽는 이의 혼을 빼놓는다.

거기에 더해서 어둠의 군주 나하도스와 사랑에 빠지는 예이네의 욕망은 이 이야기를 로맨스로 만들어 버린다.

어쩜 이리도 어색한 곳 없는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것도 신과 인간의 사랑과 복수와 질투와 파괴의 이야기를.

3부작의 1편을 읽었을 뿐인데 이미 하나의 시대를 마감한 느낌이다.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난 예이네.

전세가 역전된 이템파스가 겪을 앞으로의 고난.

자유를 얻은 나하도스와 그의 자식들의 앞날에 무엇이 있을까?

십만왕국에서 무너진 왕국으로 그리고 신들의 왕국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실타래는 전혀 예측 불허다.

신들의 능력과 그 신들을 노예로 삼은 높은 피의 인간들이 잔인한 방법으로 신들을 착취하는 모습도, 신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그들을 고문하는 데 사용하는 필경사의 마법도, 같은 혈족이지만 높은 피의 상위 1%들이 누리는 천상의 권위 밑에서 낮은 피의 혈족들이 하인으로 부려지는 이 십만왕국의 모습은 지금 이 현실과 다를 것이 없다.

모든 부와 기술을 거머쥔 거대 기업들이 만들어 가는 이 세계에서 점점 '신'이 되어가는 인공지능의 발달은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그 순간 무너진 왕국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필멸자들의 운명이 어떠할지 상상만으로도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렇게 신들의 왕국이 되어가는 미래가 인간에게는 어떻게 작용할까?

"변화가 있을 것이다." 갑자기 내 옆에 나타난 나하도스가 말했다. 데카르타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물렸지만 나하도스의 눈빛에 적개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변화해야 할 것이다. 아라메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아무런 변화도 동요도 없는 세상을 유지했다.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었지. 앞으로는 피를 흘려서라도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준엄한 나하도스의 말이 앞으로 가졌던 모든 것을 잃을 지경에 놓인 아라메리족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오랫동안 누렸던 권력을 내려놓고 다른 민족과 함께 상생하는 삶을 마련할까? 아니면 전쟁이라는 무기를 들고 끝없는 반목과 대립을 이어나갈까?

앞의 몇 페이지를 읽으며 복잡한 이야기라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몇 페이지의 복잡함은 이야기의 복잡함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부족함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아주 새로운 세상을 정말 판타스틱하게 펼쳐낸 N. K. 제미신의 필력에 계속 감탄하며 읽었다.

판타지를 좋아하지만 이렇다 할 판타지 소설이 없어서 아쉬웠던 중에 <십만왕국>을 만났다.

내겐 가뭄에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신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하여 새로이 생명을 부여한 <십만왕국>

드라마화 계약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이 이야기를 상상이 아니라 이미지로 만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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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 어쩌다 킬러 시리즈
엘 코시마노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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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추측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싹쓸이는 경찰이 분명해요. 저는 그것밖에 몰라요."



어쩌다 킬러가 된 스릴러 작가 핀레이 도너번. 그녀에겐 비밀을 감추고 베이비시터로 자리 잡은 베로라는 파트너가 있습니다.

핀레이가 뜻하지 않게 시체를 데리고(?) 집에 온 날 베로는 핀과 함께 시체를 처리하면서 그녀에게 킬러가 되기를 종용합니다.

그 대가로 받는 돈에 대한 지분도 받겠다고 합니다. 그러는 거 보면 베로도 분명 범상치 않은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는 어쩌다 킬러 시리즈 세 번째 이야깁니다.

아주 빠르게 출간되는 시리즈 환영입니다~

어둠의 경로에서 살인 의뢰를 받아 감쪽같이 해치우는 일명 "싹쓸이"

전편에서 핀레이의 남편을 죽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가 핀레이와 맞짱 떴던 암살자죠.

감옥에 있는 마피아 보스 펠릭스는 핀레이에게 씩쓸이를 싹.쓸.이. 하라고 명령합니다.

마피아 보스에게 약점 잡힌 핀레이와 알 수 없는 자들에게 쫓기는 베로는 싹쓸이가 경찰이라는 제보를 믿고 그를 찾아 시민을 위한 경찰 아카데미에 참가합니다.





꽤 그럴듯했다. 싹쓸이가 경찰이라면 그를 찾는 최선의 방법은 함께 일하는 형사들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내 언니 조지아는 강력볌죄팀 소속이지만 마약조직범죄 수사팀 형사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싹쓸이의 일에 걸림돌이 될' 사건을 맡을 형사라면 분명 마약조직범죄팀일 것이다.

문제는 닉이 그 팀 소속이라는 사실이었다.





언니는 강력계 형사이고 핀레이와 썸 타는 닉은 마약조직범죄 형사.

시민 경찰 아카데미에 참가한 핀레이와 베로는 싹쓸이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까요?

전편들에 비해 액션신(?) 많은 이번 편.

과연 누가 싹쓸일 것이냐를 두고 내심 의심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랬다면 완벽한 반전이라고 혼자 킥킥거리고 있었는데 보기 좋게 작가님에게 뒤통수 맞았음!

게다가 밉상인 전남편 스티븐!!!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해준 핀레이에게 고마워서 착해진 줄 알았더니!

스티븐 너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당한 보수를 청구했을 뿐이야. 일감도 신중하게 골랐고. 죄질로 말할 것 같으면 나보다 나쁜 사람들이었지. 죽어도 싼 인간들."



싹쓸이의 이 말인즉슨 그가 죽이려 했던 핀레이의 전남편 스티븐은 '죽어 마땅한 인간?'

도대체 뭐로 죽어 마땅한 인간이 된 거니 스티븐?

아, 이 양파 같은 이야기 어떻게 마무리될까요?

베로도 스티븐도 핀레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도대체 정직한 사람이 없는데 설마 나중에 닉도 정직하지 않으면 어쩌지?

온갖 생각에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안타까웠는데 그 와중에 마약왕 펠릭스가 감옥 탈출을~~~

겨우 잡은 싹쓸이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아카데미 옥상에서 통구이가 될 뻔했던 핀레이와 경찰들~

이제 핀레이는 아이들의 아빠가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네요.

근데 지금 아이들은 아빠랑 있어~ 어떡해!!

그러나.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출판사에서 돈을 안 준대요.

핀레이가 쓴 소설이 너무 밋밋하다고.

킬러와 경찰의 찐한 로맨스가 필요하답니다.

핀레이는 베로와 조지아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디저트(?) 먹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쉽나요?

과연 핀레이는 디저트를 먹게 될까요?

빨리 먹고 뜨거운 장면을 쏟아부어야 책도 출간되고 돈도 받을 텐데 말이죠~

이중 삼중 사중으로 밀려드는 사건들이 한순간도 쉬지 못하게 하는 어쩌다 킬러 시리즈~

핀레이와 베로. 도대체 이분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쭉~~~ 지켜보고 싶습니다~

재밌는 스릴러가 읽고 싶은 분들

남들한테 말 못 할 비밀을 가지고 계신 분들

대리 모험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추천~

다음 편 이야기는 왠지 동네를 떠나서 더 넓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될 거 같아서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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