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이혼일지 - 지극히 사적인 이별 바이블
이휘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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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에게 무례하지 말아야지'라는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처럼 굴면서도, 그 문장 뒤에는 시퍼런 칼 같은 마음도 함께 품고 있었다. 언제 서로에게 베일지 모르는 위험한 관계였다.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괴로울 줄 알았다.

연애부터 육아까지 이제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책을 통해서 배우는 시대다.

이 책을 받고 나서 '이제는 이혼도 책으로 배워야 하는 시대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혼일지'라는 말처럼 이 책에는 이휘 작가의 <이혼>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모든 감정들이 담겨있다.

곳곳에서 만나는 눈물들은 그의 당찬 글과는 다른 모습이라 그 감정을 헤아려 보곤 했다.

더 이상 가정을 이루고 살았던 사람과 같이 살 수 없어서 '이혼 프로포즈'까지 했던 사람치고는 눈물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라도 그렇게 많이 울었을 거 같다는 느낌이든다.

나만의 '가정'

나만의 '가족'

'내 편'이었던 사람과의 이별은 잘잘못을 떠나서 상당히 괴로운 감정일 테고, 그런 결정을 내린 건 나지만 그래서 자꾸 죄책감도 들 테고,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서럽기도 했겠고, 상대방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고, 왜 처음에 알지 못했을까라는 후회감도 계속 밀물처럼 밀려왔을 거 같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기 마음을 정리하고 다독이며 나아간다.

그것이 그가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예능 작가다운 글 솜씨로 이혼 과정과 이혼 후의 감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건 그만의 자가치유법이었다.

이혼 후 첫 번째 맞이하는 결혼기념일에 브런치에 이혼일지를 쓴다.

자신을 덜어내는 법을 제대로 찾은 것이다.







관계란 일종의 인테리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어느 위치에 두는 게 가장 알맞은지를 잘 알아야 관계도 마음도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게 나의 관계학 이론이다.



'이혼'은 이제 '결혼'보다 흔한 일이 되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그 상처를 달래가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이혼'을 딛고 전보다 더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지금 현재와 이미 지나온 사람들과 앞으로 겪을지 모를 사람들에게 하나의 옵션 같은 책이다.

밥공기 같은 눈물을 흘리고, 길거리에서 울고 다녔던 사람이 단단하게 변해가는 과정들을 읽으며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옵션이다.

같이 산다는 게 쉬운 거 같지만 아주 많이 어려운 일이다.

'가정'을 이룬다는 자체가 마냥 사랑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에 거기엔 '희생'이 따른다.

그 '희생'을 한 사람만 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결혼은 이혼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상실이 또 다른 결실이 된다.



상실의 시대를 거쳐 단단해지면 결실의 시간을 살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걱정이 하나 있었다.

이혼이라는 단어 아래 자신의 분노와 배우자에 대한 험담을 글발 좋게 써서 독자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거 아닌가?

나는 그런 감정 쓰레기통이 될 준비가 됐나?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나보다 더 성숙한 30대의 그녀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혼' 경험 없이도 나는 '이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그 말속에 담긴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간접 체험했으니까.

마치 간병 한 번도 안 해보고 간병인의 수고로움을 안 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이혼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섣부른 위로와 알은체를 하는 것이 얼마나 실례가 되는 건지를 배웠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잘 헤어졌고, 잘 아물었다. 물러 터졌던 과거의 내가 정말로 그렇게 바라고 원했던 모습으로 차츰 변하고 있다.




이 문장들로 그녀에게 내 느낌을 전하고 싶다.

잘 헤어졌고, 잘 아물었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당신의 경험을 간접경험한 나 역시 조금 더 성숙해졌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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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WONDERLAND - 『앨리스』 출간 150주년 기념 디럭스 에디션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승영조 옮김, 마틴 가드너 주석 / 꽃피는책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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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이렇게 요상한 건 처음 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동화책으로만 읽고, 영화로만 봤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완역본을 읽기는 처음이다.

게다가 아주 세세한 주석이 달리고 여러 버전의 삽화가 함께하는 웬만한 벽돌책은 저리 가라 하는 두께의 책을 보면서 다양한 해석들을 마주하는 기분이 참 묘하다.

루이스 캐럴은 소녀들을 좋아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탄생은 세 자매를 태우고 노를 저어가면서 지어낸 이야기였다.

그렇게 들려준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나온 동화는 오랜 세월 동안 각종 미디어에서 재해석되었다.





한 페이지는 이야기를

한 페이지는 주석으로 가득한 책이다.

다양한 해석과 시대를 반영하는 주석들과 루이스 캐럴의 이야기도 담겨서 마치 루이스 캐럴의 전기를 읽는 기분도 난다.

꽤 두꺼운 벽돌책이지만 다양한 작가들의 삽화로 인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마치 그림책을 보는 기분이다.

앨리스의 다양한 버전과 모자장수와 체셔 고양이의 여러 버전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작가들마다 다른 그림체로 그려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래서 색다르게 읽힌다.



이야기를 읽으며 주석이 나올 때마다 주석을 읽는 것도 좋고

이야기를 먼저 읽고 주석을 따로 읽어도 좋다.

그러나 서문들만은 꼭 먼저 읽기를 바란다. 서문들을 읽으며 이 이야기의 배경과 작가에 대해 세세한 것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앨리스는 실존 인물일 수도 있다.

캐럴의 첫사랑은 리들 세 자매 중 한 명인 앨리스였다고 한다.

캐럴은 세 자매와 종종 놀아줬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베이비시터 노릇을 한 거 같다.

그 자매들 덕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했다.

이 이야기는 제목처럼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건들로 이루어졌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많은 작가들의 삽화를 보니 이 이야기가 서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지 알 거 같다.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변주된 이야기들도 많고, 아이들용으로 축약된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이 이야기를 각양각색으로 해석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어쩜 루이스 캐럴은 가장 단순하게 즉석에서 지어내야 했기에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게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던졌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사람들(어른들)이 살을 붙이고, 시대상을 들먹이고,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오늘날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완성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꿈보다 해몽이 좋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집대성한 책이다.

이 한 권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 앨리스>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멋지게 만들어진 책이 반품되어 폐기될 뻔했다니 안타깝다.

그래도 이렇게 나에게 와줘서 고마울 뿐이다.

그림들만 봐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거 같다.

게다가 주석들을 읽게 되면 이 말에 이런 뜻이? 하는 의아함도 생긴다.

우리와 다른 세기에 살았던 잉글랜드 독자들 중 옥스퍼드 주민들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들, 그리고 리들 자매와 캐럴만의 농담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더 난해하다.

어쩜 그렇기에 수많은 '이상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 끔찍해. 어쩜 다들 그딴 식으로 말하지? 진짜 돌아버리겠어"



동화 속 앨리스의 이 말이 지금 현세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거 같았다.

서로 대화를 하지만 아무도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나, 너, 우리.

어릴 때는 정말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니 이제 익숙해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모두 내 주변인 같다.

나는 그중 누구에 해당될까?

이 아름다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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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들의 이름짓기
김시래.김태성.최희용 지음 / 파람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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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이 문장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왠지 이름 함부로 지으면 안 될 거 같죠?

마치 누군가에게 존언을 해줄 거 같은 저 문장은 바로 작명소의 이름입니다.

'살미달라'

이 글을 보면 어떤 브랜드가 떠오르세요?

'삶이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지은 패션 브랜드의 이름입니다.

'네이밍'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각자 이름에 담긴 고유성 보다 또 다른 나를 표현하는 닉네임으로 살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시대죠.

이 책 <모든 것들의 이름짓기>에는 이 시대의 트렌드를 담은 이름짓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기발한 이름들과 마주할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근데 이 이름짓기에도 시대상이 반영된다는 거 아세요?

예전엔 직관적이고 명확한 이름이 유행했다면 지금은 이게 뭐지? 하는 느낌이 드는 이름이 유행합니다.

한때 말장난이라고 폄훼 받던 이름들이 이제는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브랜드 이름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시대에 따라 소비자들의 가치관, 취향, 문화적 배경 등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에 띄는 강렬한 인상을 던져야 하고,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명료해야 하며, 본질을 드러내는 '의미'까지 담아내야 한다.



이름의 공식 (형식적 관점과 의미론적 접근)이 있다.

형식적 관점의 예)

  1. 단어 그대로. - 유명 브랜드 네이밍의 50퍼센트 이상은 단어 그대로 사용. '애플', '크라운'

  2. 더하기 - 단어 2개를 조합. 어떻게 결합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 "또오리" 또 와 오리가 합해져서 또 오리고기를 먹는다는 뜻과 다시 오다라는 재방문의 의미로도 해석됨.

  3. 빼기 - 본래 키워드에서 꼬리 자르기. '카톡', '디카'

  4. 결합하기 - 단어를 조합하거나 결합하는 방법. "Korea Can Do = 코란도"

  5. 생략하기 - 2개 이상의 단어를 조합한 뒤 같은 발음을 생략 - 'Bright'와 'Light'를 더한 뒤 중간 음을 생략한 브랜드는 '브라이트Brite'

  6. 의인화 - 상품을 의인화한 네이밍. 캐릭터화할 수 있다. '알라딘', '파파존스'

  7. 이중 의미 - 표기에 따라 여러 의미를 지닐 수 있게 하는 네이밍. 'SSG.com'은 신세계 영문 철자 앞 글자를 '쓱'으로 읽게 해 빠르다는 느낌을 주는 광고 아이디어로 활용했다.

  8. 연음법칙 - 발음 편하고 시각적 효과를 위한 네이밍 기법. '우리 안의 천사'라는 의미를 Angelinus로 표기한 '엔제리너스 커피'




    이름은 사주팔자가 아니다. 시대적 감수성과 마케팅, 창의적 관점이 녹아든 문화 콘텐츠다. 트렌드를 읽고 트렌드를 만드는 트렌드 라이터의 기질에는 호기심과 통찰력, 목표의식이 요구된다.



이름짓기 공식의 예를 보니 느낌이 오시나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다양한 이름들을 만나면서 세상의 변화를 느끼는 경험을 했어요.

이름이 특이하다, 독특하다, 이름 짓느라 고생했다 등등의 느낌들을 받으면서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네이밍에도 시대가 담겼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옛날 유행했던 이름들부터 지금 핫한 이름들까지 쓱~ 읽어 보면서 이름 따라 시대도 변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름.

참 쉽게 생각했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이름처럼 산다는 말도 있던데 잘 지은 이름 하나가 삼대를 먹여살리기도 하고 망하게도 합니다.

예전처럼 머리가 새롭지 않아서 최근 들어 새로운 이름 하나를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참 안 돌아가는 머리 굴리며 애쓰느라 머리가 더 빠졌었는데~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법칙을 안다고 좋은 이름, 쉬운 이름, 대대손손 기억에 남는 이름을 짓기가 쉽진 않겠죠.

하지만 '이름'이 왜 중요하고, '이름' 잘 짓는 게 왜 필요한지를 잘 짚어주는 책이었습니다.

아마도 작가님 세 분이 모두 광고 회사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살아남으신 분들이라 그런지 글도 쉽고 재밌게 쓰셨네요.

확실히 전문가인 분들은 대중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때 어렵지 않게 전달하죠.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신 분들이 읽어 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상호나 브랜드 네이밍이 아니어도 SNS에서 나 자신을 표현하는 이름 짓기에도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저는 이 책에 담긴 빤짝이는 아이디어가 녹아든 이름들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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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꽃 - 강병인 글씨로 보는 나태주 대표 시선집 강병인 쓰다 3
나태주.강병인 지음 / 파람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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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왠지 시가 그립게 느껴진다.

평소에 시어를 접하지 않다가 시를 마주하고 앉게 되면 나도 모르게 진지해진다.

아마도 시가 전하는 느낌을 오롯이 느끼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가 꽃 - 강병인 글씨로 보는 나태주 대표 시선집>

나태주 시인의 대표적인 시들을 모아 둔 것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인데

거기에 한국의 대표적인 캘리그래퍼 강병인의 멋스러운 글씨를 수묵화로 만나 볼 수 있는 책이다.


시마다 다른 글씨체로 적혀 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먹물이 뚝뚝 떨어질 거 같이 생동감이 있다.

마치 시어가 살아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강병인의 글씨로 쓰인 시와 활자로 찍힌 시.

글씨체에 따라 이렇게 선명하게 다른 느낌이 나다니...

비교해 보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느낌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들이 훨씬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묘비명의 시구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삶.

언제가 모두가 죽음 앞에서 만나게 될 인생들..

그러니 모두 조금만 참으면 영원히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중을 받을 텐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심을 덜어내지 못하는 삶들이 훅~ 뇌리를 스친다.

하룻밤 새에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여서 그런지 이 <묘비명>의 시구 앞에서 자꾸 멈칫거리게 된다.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러고도 남은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예전의 나를 떠올리는 시구 앞에서 한참을 마음이 서성거린다.

그림도

음악도

너를 생각하는 마음도

모두 잊고 살고 있는 지금이니까...

부드럽고

온기를 가진 나태주 시인의 시들이

강병인의 힘찬 글씨와 만나 다른 감각을 깨운다.

글씨체의 힘이 느껴지는 시집이었다.

글씨체로도 시를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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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특별판)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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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사람들이에요. 그 동네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것도 11년 전 그 사건 이후로 계속이요. 장담하죠."



1996년 9월 6일 토비아스 자토리우스는 친구 로라와 스테파니를 죽인 혐의로 감옥에 갔다.

그리고 그 10년 뒤 토비아스는 출소했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이 잘 감춰두었던 과거의 열쇠를 움켜쥐고...



이 범죄의 특성은 잔인성과 범행 은폐였다.



로라와 스테파니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살인죄를 쓰고 죗값을 치르고 돌아온 토비아스 앞에는 다 허물어져가는 집과 이혼한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의 냉대만 남았다. 아무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고, 그가 나타난 시점부터 마을은 뒤숭숭해지고 그의 집 담벼락은 상스러운 낙서로 뒤덮이고, 복면 쓴 사람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폭행을 당한다. 그러나 토비는 이 마을을 떠날 수 없었다. 자기로 인해 상처받고, 인생이 무너진 아버지를 홀로 두고 떠날 수 없었기에...

그 와중에 누군가 어머니를 다리위에서 밀어서 어머니는 중태에 빠진다. 이 일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그는 절대 떠날 수 없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배우 나탈리가 다 잊고 자신과 함께 떠나자도 해도 그가 알텐하인을 떠날 수 없는 이유였다.





이야기는 토비아스가 출소하고, 옛날 군 비행장의 기름탱크 안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이 사건을 맡은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타우누스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해결하는 강력반 소속이다.

사건의 복잡함도 있지만 이 두 형사가 처해있는 상황도 복잡하다.

피아는 이혼 후 새로 산 농장에 개축 신청서를 냈다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무허가라는 걸 알게 된다.

속아서 산 집이었다.

보덴슈타인은 25년의 결혼생활이 위기에 빠졌다. 아내가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 온통 자기혐오에 빠져서 수사 상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게다가 벤케 형사는 부업을 하다 걸려서 정직당할 위기고, 자신이 수사했던 11년 전 사건을 들쑤신다며 못마땅해하던 하세는 중요한 참고인의 기록을 몰래 빼낸다.

아주 안팎으로 다들 복잡한 상황에서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고, 이 마을의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인 아멜리는 토비아스에게 관심을 보이며 과거의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티스 테를린덴으로 부터 그림 몇 장을 받는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는 그림엔 그날의 광경이 사진처럼 그려져 있었다...

그날의 사건에 가까워진 아멜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토비는 또다시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잠적해버린다.



마을 전체가 각자의 이기적인 이유를 핑계로 진실을 은폐하고 그를 기만했다. 그의 가게가 망하고 가정이 께지고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냉정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니!



<타우누스 시리즈>는 독일의 작은 마을로 이루어진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이끄는 강력반이 해결해 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시리즈가 매력적인 이유는 대도시가 아닌 한적하고 평화로운 소도시의 한가로운 풍경에서 벌어지는 끔찍하고 잔인한 살인사건을 다루는 데 있다. 작은 사회가 가진 부조리와 그에 맞서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가혹함이 잘 그려져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역시 이 작은 마을을 몇 대째 쥐락펴락하는 테를린덴 가문과 이기적인 부모들이 오로지 자기 자식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단란했던 한 가정을 풍비박산 시키고도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을 더 핍박하고, 쫓아내려 한다. 그들만 사라지면 자신들의 문제도 사라진다는 '개념'. 을 탑재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그 어떤 잔인한 살인사건 보다 더 무서웠다.



평화롭게만 보이던 알텐하인에, 그렇게 지루하고 심심하게만 느껴지던 촌구석에 이렇듯 잔인하고 무자비한 인간들이 선량한 시민의 가면을 쓰고 살고 있었다니!



우리나라에서 현재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원작과 다르게 각색되어 있지만 본판은 같다.

자신들의 이기심과 욕망과 질투와 허물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려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모르는 사람도 무섭지만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진리를 또 깨닫는 거 같아서 씁쓸해진다.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저 집단 이기주의 안에서 희생되었을까?

이 이야기를 재독하면서 슬펐다.

첫 번째 읽었을 때는 그저 분노만 남았는데 재독하니 분노가 슬픔으로 변한다.

어째서 선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지독하게 변해야 했을까?

자신들의 허물을 덮기 위해 희생양을 찾아내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잔인하고 무섭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쉽게 동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겁으로만 표현하기 아쉽다.

집착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자신의 소유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 사람을 인생을 망가뜨린 자의 착각도 무섭다.

어설프게 짜인 판이었음에도 쉽게 희생양을 몰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10년 동안 무사한 시간을 보냈던 자들에게 이제 심판의 시간이 도래했다.

옛말에 죄짓고 못 산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현재에는 죄짓고 더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희망을 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진실은 아무리 잘 감춰도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줄 안다는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덮쳐오는 걸 보았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묘미는 바로 그것에 있다.

사건이 벌어진 현장도, 그것과 관계된 사람들도,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형사들도 모두 삶이 있다.

그 삶의 현장에서 그들이 느끼고, 겪는 일들을 간접 경험하면서 세상을 좀 더 알아가는 기분이다.

세상엔

아주 사소한 감정으로도 몹쓸 짓을 저지르게 하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나 자신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고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어디에서건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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