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의 일 - 매일 색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컬러 시리즈
로라 페리먼 지음, 서미나 옮김 / 윌북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색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는데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집에서 칩거만 하고 있었더니 모든 감각이 둔해졌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였다.

외출할 때 입는 옷부터 시작해서 화장법까지 다 까먹은지라 외출할 때가 되면 초 초해졌다.

색 매치도 어렵고, 내가 지니고 있던 감각도 사용하지 않으니 사장된 느낌이었다.

주변에 그림 그리는 친구와 동생들이 있어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내가 색에 대한 무지하다는 걸 느꼈다.

같은 것도 어떻게 매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내가 제일 잘 사용하는 기능이 '책 사진' 찍는 기능(?)인데 이것도 초반에 열정이 넘칠 때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매일 어떡하면 새로운 사진을 찍을까를 연구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시들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색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친구와 동생은 색을 잘 다룬다.

그들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비슷한 그림들과 비교했을 때 색감이 다르다.

같은 재료를 써도 그들이 표현해 내는 색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좀 더 고급스럽고, 안정적이면서 세련된 느낌.

그건 바로 색을 잘 다루는 그들의 솜씨에 있었다.






윌북에서 출간된 <컬러의 일>의 저자 로라 페리먼은 세계적인 컬러 브랜딩 전문가다.

그가 말해주는 100가지 색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색에 대한 감각을 키워본다.

초반부는 색에 대한 기초지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기초지식 뒤에 오는 이야기가 맘에 들었다.

100가지 색에 대한 이야기가 진짜 색에 대한 이야기였다.

말하고자 하는 색과 매치되는 그림이나 사진과 함께 과거에서의 쓰임과 현재의 쓰임을 비교해두었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관한 짧은 코멘트가 달려있다.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색상 코드다.

색에 대해 알게 되면 그 색을 써보고 싶은데 눈으로 보면 그 색이 그 색 같다.

조금 다른 차이는 있지만 그걸 정확하게 알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 책엔 100가지 색의 색상 코드가 담겨 있다.

즉 색상 코드를 알면 컴퓨터 화면으로 그 색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같은 색이라도 미묘하게 다른 색으로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색.

그 색을 다루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섞이는 색.

그 다름에서 개성이 돋보이게 되는 색.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도 실생활에서 얼마든지 색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

몸에 지닌 소품의 색 하나로 돋보임을 만들어 낼 줄 안다면 진정한 멋쟁이가 되는 것이다.

컬러를 공부하면서 잊고 있었던 감각을 깨우는 느낌이 들었다.

색마다에 담긴 고유의 이야기를 읽으며 비슷한 색들을 모두 한 가지 색으로 퉁쳤던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지금 글을 쓰며 내가 내다보고 있는 창밖엔 한 그루 나무가 있다.

그 나무에 달린 수많은 잎은 똑같은 색으로 보이지만 서로 다 다르다.

이젠 그걸 알 거 같다.

그림을 그릴 때도 나는 단순하게 나뭇잎은 초록색 한 가지만 썼었다.

내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는 것들 때문에 색을 섞는다는 생각을 못 했었다.

이젠 다양하게 섞어 볼 수 있을 거 같다.

색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색은 자유롭게 섞일 수 있다.

어떤 색으로 섞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색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도 색처럼 변화무쌍하게 변할 수 있다.

어떤 색이 어떤 감정이나 심리를 담고 있다고 고정하고 싶지 않다.

내게 안정을 주고, 내 심리를 다독이는 나만의 색을 만나면 그게 곧 나의 색이 될 거니까.

한때 나는 빨강을 나의 색이라고 생각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빨강 립스틱으로 화장한 티를 냈었다.

이젠 그 빨강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더 이상 빨강이 어울리지 않는 나에게 어떤 색이 어울릴지 찾아봐야겠다.

옷도, 립스틱도 어색한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색을 찾아봐야겠다.

시행착오를 거쳐야겠지만 그 시간은 분명 즐거운 시간이 될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의 셰에라자드 2 : 장미와 단검
르네 아디에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가 취한 여자 백 명의 목숨을 바쳐라. 새벽마다 한 명씩. 하루라도 바치지 않는 날에는 너의 꿈을 송두리째 빼앗을 것이다. 너의 도시를 빼앗을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서 이들의 목숨도 천 배로 빼앗을 것이다.





딸을 잃은 아비의 저주에 걸린 할리드.

그래서 첫날밤을 보내고 신부를 죽였던 호라산의 미친 젊은 왕, 괴물, 살인자 할리드.

그러나 셰에라자드만은 죽이지 못했던 할리드.

잠들지 못하고 점점 죄어오는 고통과 홀로 맞서는 할리드에게 셰에라자드는 손을 내민다.

혼자 감당하지 말라고.

함께 헤쳐나가자고...






"이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 할리드. 결정은 내가 해요. 나 혼자서."



이 주체적이다 못해 고집스러워 보이는 셰에라자드와 왕비를 모시는 하녀지만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왕비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이는 시녀이자 첩자 데스피나.

지켜줘야 하는 어린 동생으로 보이지만 약초를 다룰 줄 알고, 사랑을 향해 다가갈 줄 아는 용기 있는 이르사.

술탄인 아버지에게 맞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야스민.

<새벽의 셰에라자드>에는 남자들 못지않게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넘쳐난다.

순종적이고, 다소곳하며, 남자가 구해주기를 기다리기만 했던 디즈니 공주들이 보면 놀라 자빠질 캐릭터들 앞에서 뿌듯함이 샘솟는다.

그래.

내가 셰에라자드였다면,

내가 데스피나였더라도,

내가 야스민이라도,

내가 이르사였어도,

나는 그들처럼 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길 마냥 기다리면서 시간을 죽이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뭐라도 했을 테지.

그냥 예쁘게 앉아서 나를 구해줄 왕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할리드의 저주를 풀기 위해 셰에라자드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불의 신전으로 향한다.

그곳의 마법사에게 저주를 풀어달라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도움엔 대가가 필요하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사막엔 용병과 사막의 기마병들이 운집하고, 괴물 왕을 죽이기 위한 모의가 시작된다.

딸을 잃은 시바의 아버지는 복수를 꿈꾸고, 셰에라자드를 구하려는 아버지는 마법의 힘을 빌려 도시를 파괴한다.

그리고 그 힘에 취해 셰에라자드를 배신하게 된다.

남자들이란...

권력이, 힘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이 어리석은 생각들 때문에 평화와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지고, 많은 사랑들이 갈가리 찢긴다.

자신들의 것을 지키기 위해 아무런 연결점이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하는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명령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사랑을 위해

자신의 백성을 위해

위험함을 무릅쓰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굴의 의지

다혈질에 독설가이지만 의리 빼면 시체인 셰에라자드.

라힘의 운명 앞에서 절로 눈물이 떨어지고

이 안타까운 상황이 자제심 없는 친구로 인한 것이라 더 슬프다.. (타리크 좀만 참지 그랬니!)

사막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마법과 저주의 대향연~

<새벽의 셰에라자드>



사막이라는 색다른 배경에 남자들에게 기죽지 않는 여성 파워와 심지가 굳은 남자의 무게감이 더해진 로맨틱판타지.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셰에라자드와 할리드의 철벽같은 사랑이 주를 이루지만 이르사와 라힘의 수줍은 사랑도 마음을 울려준다.

잠시 아름다운 꿈을 꾼 기분이다.

잃었던 옛 감성에 젖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도 이런 로맨틱한 판타지 참 좋아했었는데...

어느새 피 터지는 장르만 섭렵하게 되었네...

가끔

이 왈가닥스러운 셰에라자드와 살벌해 보이지만 따스한 할리드가 보고 싶을 거 같다.

그럴 때마다 꺼내봐야지~

간만에 사막같이 버석버석한 마음에 달달한 사랑 한 스푼과 진한 마법 한 스푼을 첨가했다.

마음이 달그락달그락 사부작사부작 모래밭을 거니는 느낌이다.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밤하늘을 맘껏 누려봤으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의 셰에라자드 1 : 분노와 새벽
르네 아디에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바는 왜 죽어야 했을까?

셰에라자드는 레이의 거리에 퍼지는 소문을 더는 믿지 않았다.

할리드 이븐 알 -라시드는 미친 자가 아니었다. 무모하고 분별없이 잔인한 짓을 일삼는 자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매일 새벽 첫날밤을 보낸 신부를 죽이는 괴물 왕.

그 왕에게 절친 시바를 잃은 셰에라자드는 왕의 신부가 되기를 자처한다.

그렇게 왕의 72번째 왕비가 되어 궁에 입성한 셰에라자드는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의 결정적인 순간에 새벽이 오고 셰에라자드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요? 궁금하면 내일 밤에 계속~" 이렇게 이어질 거 같지만 그건 또 아닌 것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다른 여자처럼 하룻밤 만에 죽지 않고 목숨을 연명한 셰에라자드는 왕의 약점을 캐려 한다.

한순간에 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왕의 약점을 알아내려 할수록 왕의 실력만 찾아 내게 되고, 비밀에 싸인 할리드에게 서서히 빠져들어가는 셰에라자드는 과연 속절없이 죽어간 수많은 여자들의 복수를 감행할 수 있을까?








아아, 진실이란 자신이 바랐던 것만큼 명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황량하고 추악했다. 상상 이상으로 잔인한 현실에 둘러싸여 있었다.

한 남자의 괴로움 때문에 모든 것이 끝없는 검은 구렁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아라비안나이트?>의 변주곡인 <새벽의 셰에라자드>

로맨틱 판타지답게 화려한 배경과 마법과 저주가 깃들어 있다.

조금 생소한 아랍권의 문화와 마법의 기운이 가미된 이야기는 익숙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생소하다.

어디로 튈지 모를 셰에라자드의 당돌한 매력과 어둠의 비밀을 잔뜩 머금고 있는 할리드의 범접하기 어려운 매력 가운데 잘랄의 경쾌하고 밝은 느낌과 하녀 데스피나의 거리낌 없는 행동과 말투가 신선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셰에라자드를 구하겠다고 애를 쓰는 타리크의 무모함이 더해지는 가운데 왕궁에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가 닥쳐오고

딸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마법서에 손을 대는 아버지의 분노가 1권 마지막을 장식하며 이 이야기가 어디로 이어질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오랜만에 로맨스와 판타지를 뒤섞은 이야기를 읽다 보니 어릴 때 할리퀸을 탐독하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옛날 같았으면 할리드에게 충성하겠지만(?) 지금 마음 같아서는 셰에라자드가 모든 남자를 다 차지해버렸으면 좋겠네~ ㅎㅎ

1권은 맛보기~

2권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어 즐겁다~

2권 나올 때까지 기다렸던 분들 다시 1권부터 정주행하셔야 할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도윤 지음 / 한끼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요일마다 돌아오는 행진을 집 안에서 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쳤다. 비닐봉지를 하나씩 손에 들고 가는 것은 익숙해졌다. 그러나 교회에 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절대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사이비 종교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책은 읽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한사람 마을 초등학교에 부임한 이준은 어릴 때 화재로 부모님과 동생을 잃었다.

혼자만 살아남은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지닌 채 그는 교사가 되어 첫 부임지로 시골을 선택했다.

도시를 떠나 조용한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던 이준의 눈에 정감 있고, 공동체처럼 보이는 마을은 이장이자 목사를 중심으로 화목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다만 일요일마다 교회에 비닐봉지를 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익숙치 않았다.

게다가 교회는 이장의 초대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

마을 입구에도 철문이 있어 문지기의 허락 없이는 들고 날 수 없는 한사람 마을.

이름처럼 한사람을 위한 마을일까?






"제물을 바친다면서요."

"그래야 좋아하시니까요."

"좋아하시다니. 누가요?"

나는 이장을 떠올렸으나 그녀는 단호하게 위를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올려봤지만 천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신께서죠."



'영광의 방'에 있는 건 무엇일까?

매주 교회에서 벌어지는 추첨.

그 추첨에 당첨된 사람들은 영광의 방에 들어갈 수 있고,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병이 낫거나 굽어진 허리가 펴서 나온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이준은 믿고 싶지 않지만 믿어지고, 믿는 게 어리석어 보이지만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을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런 그도 영광의 방에 들어가게 되었고, 불에 타서 화상을 입은 손이 말끔히 나아버리는데....



자신들은 사이비가 아니라는 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내게는 점점 교회가 꺼림직한 곳으로 느껴졌다.



사이비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 이준은 그때부터 추첨일이 기다려진다.

자신을 두고 떠난 가족을 되살려 내기 위해 매주 제물을 바치지만 당첨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애타가 당첨의 기회를 기다리가 이준은 한 가지 꾀를 낸다.

아무도 모르게 영광의 방에 들어가 직접 신을 대면하기로 한다.

신예 작가님의 작품은 식상한 듯 신선했다.

'신'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제물로 바쳐야 할지 알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소원이란 무릇 신중하게 빌어야 한다.

그것이 마녀에게 비는 소원이든, 신에게 비는 소원이든

마법이든 신의 가호든

모든 소원엔 대가가 따른다.

사람들의 본성이 이렇다는 걸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통해서 또 한 번 확인했다.

이장이 그토록 신중하게 지키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을 잠재우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만 하면 그 어떤 못할 짓이 없는 인간의 본성.

영광의 방에 있던 그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진짜 신이었을까?

천벌받을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신은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었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가져갔다.

그 대가를 부지런히 바친 한사람 마을.

소원은 가능한 것만 빌어야 한다.

불가능한 소원엔 또 다른 상처만 남을 테니..

신에게 엿 먹은 이준은 그대로 돌려주었다.

나는 그렇게 밖에 해석이 안되더라.

받은 대로 돌려준 이준.

어쩌면 신 보다 잔인한 게 인간이지 않을까 싶다.

신도 이준이 그렇게 나올지 모르지 않았을까?

오랜 세월 아들을 그리워한 어미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것이야말로 '신' 그녀에게 안배한 소원인 거 같다.

그것을 위해 그녀는 이준에게 한사람 마을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나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방자들
고은지 지음, 장한라 옮김 / 엘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호 씨만 그런 건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우리나라를 가르고 있다는 사실. 그것 때문에 세상이 흑백이 되는 거죠. 그래서 성호 씨가 집에서조차 반으로 갈라져 있는 거고요."



80년대부터 2014년까지 한 가족의 이야기에 한국사를 곁들인 <해방자들>

책을 읽고 있으니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떠오른다.

대한민국 안에서 사는 우리들을 밖에서 보는 시선들에서 낯섬과 묘한 반항심이 생긴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가 모르고 있던 우리에 대해 알게 된 느낌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조차도 우리와 같았다.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분단국가에서의 삶.

타국에서 조국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 역시나 우물 안 개구리였다.

인숙과 후란

며느리와 시어머니

신혼 한 달도 안 돼서 남편이 미국으로 떠나고 시어머니와 남겨진 인숙에겐 아버지를 잃은 상처가 있다.

길에서 끌려가 총에 맞아 죽은 아버지.

80년대 한국은 그런 시절이었다.

아들을 두고 시어머니의 묘한 경쟁의식은 두 사람을 갈라놓고, 그런 인숙의 곁에 로버트가 자리한다.

후란을 보면서 남편의 빈자리를 아들로 채우려 했던 할머니들의 시대가 떠올랐다.

남편보다 아들, 그 아들 중에서도 큰 아들에 대한 의지가 대단했던 시어머니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후란의 모습이 그닥 생소하지 않다.

하지만 뭔가 다른 표현 방식이 묘하게도 거리감을 준다.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을 때는 아무도 믿으면 안 돼. 다른 사람 말은 절대 듣지 마."



후란과 인숙

인숙과 제니

같은 관계지만 다른 관계로 자리하고

성호와 헨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서먹함을 안고 산다.

이민자들의 삶을 다뤘다기보다는 한국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겪어서 알아낸 것이 아닌 들어서 알아낸 것이라 묘한 괴리감이 있다.

게다가 원래 문장이 그런 것인지, 번역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라는 말이 와닿지가 않았다.

후란의 죽음으로 성호와 인숙은 그제야 해방이 되었다.

새로운 신혼을 시작한 인숙에게 로버트는 의미 없는 사람이 되었다.

헨리와 제니는 로버트가 그렇게 염원하던 통일을 이루었다.

남남북녀의 만남은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런 염려에도 불구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

마치 통일에 대한 우리의 염려도 기우일지 모른다는 것처럼.

해외 동포들이 듣는 조국의 소식들은 그 긴 세월 동안 기쁨보다는 슬픔과 아픔이 많았다.

지금 우리의 이 현실도 해외 동포들에게는 다르게 전달될 것이다.

5.18도, 햇빛정책도, 삼품 백화점 사고와 세월호의 죽음도 그들에게 어떤 파장을 주었는지 그저 감히 짐작해 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민낯은 그들에게 또 어떤 짐이 될까?

88년생 재외 한국인 작가의 눈에 비친 한국의 현대사는 불안과 고통과 답답함과 무거움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들을 관통해 살면서도 늘 희망차게 살았다.

불안과 고통과 답답함과 무거움 속에서도 한국인인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늘 희망에 차 있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희망을 지니고 살아냈다.

인숙과 성호와 헨리와 제니가 꾸려가는 가정처럼

우리는 불안을 잠재우고 고통을 이겨내고, 답답함을 걷어내며 무겁지만 가볍게 나아갈 것이다.

이런 낯선 느낌들 속에서 현대사를 대하는 기분이 묘했다.

그 갭들을 어떤 것들로 해방시킬지 이제는 생각해 봐야 할 시간대에 살고 있는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