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 웅진 당신의 그림책 2
소윤경 지음 / 웅진주니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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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매와 아버지가 살던 집에

새엄마와 그녀의 아들이 함께 살게 되었다.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들은 각각의 개성이 만들어 내는 맛의 조합으로 완성되는 "김밥"처럼

다섯의 맛이 한데 잘 말아져서 하나의 맛을 이루었다.

마치 "김밥"을 잘 말고, 잘 썰어, 예쁘게 담아내어 "소풍"을 가는 것처럼...






세 아이는 잘 지냈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사내아이가 물에 빠지기 전까지는...

 

그날 물속에 보였던 건 뭐였을까?

그건 사고였을까?

 

 

아들을 잃은 그녀는 달라졌다.

텅 빈 "냉장고"처럼 그녀도 텅 비어갔다.

빨강 리본 소녀에게 느끼는 그녀의 원망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빨강 리본 소녀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원망이었을까?

아니면 죄책감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사고였을까?

 

노랑 리본 소녀는 이제 혼자였다...

수련 속에 갇힌 "수연"이 되었다.





이제 그들의 "김밥"엔 새로운 재료가 첨가되어 4가지 재료만이 담겼다.

그들은 다시 "소풍"을 가게 되었고

그들의 "냉장고"는 다시 풍성해졌다.

 

노랑 리본의 소녀는 보이지 않는 외톨이가 되었다.

모든 슬픔을 가슴에 묻고 즐거운 세 사람을 바라본다.

어쩌면 사고란 예기치 않게 오는 거 같지만

그것은 언제나 예고편을 찍게 마련이다.

노랑 리본 소녀는 그것을 바라는 걸까?

 

아니다.

적어도 저 아이에겐 그녀와 같은 피가 절반은 흐를 테니...

완전한 반쪽을 잃은 대신 절반의 반쪽을 얻었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겠지.

온전한 가족은 없어.

언제나 절반의 만족이 있을 뿐이지.

 

 

 

세 사람은 다시 즐거울 테고

한 사람은 그것을 지켜보며 슬픔을 다독거릴 것이다.

또 다른 유혹이 다가오지 않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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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없는 그림책은 온갖 상상력을 부추긴다.

수없이 그어진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없이 빠져들 거 같은 그림들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장르소설 좋아하는 내게 이 이야기는 스릴 있게 느껴졌다.

그림 한 장 한 장마다 긴장감이 느껴졌다.

원초적인 감정들이 들끓어 대는 그림들 앞에서 비극의 울음소리가 울려 나왔다. 은은하게.

 

가족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상처가 깃든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생명을 잃은 집안에 또 다른 생명이 주어진 것은 기쁨일까?

 

둘이었던 자매는 혼자가 되었다.

혼자서 그 아픔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기쁨에 취한 세 사람을 지켜보며.

또 다른 유혹을 견뎌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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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돌아오라 부를 때
찰리 돈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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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에 대한 욕망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그의 존재의 문제가 달려 있을 만큼.

 

첫 페이지에서 나는 살인자를 만난다.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그 스릴에 쾌감을 느끼며 위험한 고비까지 가는 것을 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보통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본다.

그냥 그 순간이 살인의 행각을 읽어내려가는 순간보다 더 끔찍하다.

보통의 삶으로 숨어 들어가는 연쇄살인범의 당연한 모습이...

 

로리의 휴가는 이제 막을 내렸다.

 

 

도자기 인형을 복원하는 일이 유일한 취미인 로리 무어.

부서진 인형들을 복원하는 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일일까?

번아웃과 우울증을 피하기 위한 로리의 휴지기의 끝을 알리는 사건이 의뢰되었다.

도자기 인형을 들고 나타난 그는 딸이 아끼던 인형이었다면서 그녀에게 인형의 복원을 부탁한다.

그리고 목이 졸려 죽은 딸의 사건을 재구성해달라고 요청한다.

범죄 재구성 전문가 로리 무어에게 휴가가 끝났다는 보스의 일침이었다.

 

1979년의 앤절라

2019년의 로리

 

 

1979년 앤절라는 여름내 시카고에서 벌어진 여성 납치 사건에 촉을 세운다.

자폐와 강박, 편집증이 있는 그녀는 자꾸 이 사건에 집중되는 것이 싫다.

자신의 병을 알고 자신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남편 토머스는 그녀의 건강을 염려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다는 걸 안다.

신문을 스크랩하고, 자료를 모으고 그녀는 스스로 범죄를 재구성하고 피해자들의 연관성을 찾는다.

그리고 그녀는 결정적인 단서를 손에 넣게 된다...

 

2019 로리는 의뢰받은 사건 현장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변호사이자 그녀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의 사무실을 정리하면서 그녀는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었던 가석방 후보자의 사건 파일 하나만 남겨둔다.

시일이 촉박하고 무려 40년간 아버지가 담당해온 이 사건은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을 거 같아서였다.

1979년 '도적'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연쇄살인마.

하지만 시체가 없었기에 그는 단 한 명의 살인죄, 아내를 죽였다는 정황증거로 60년형을 받았고, 이제 가석방 담당자들은 그가 충분히 속죄했다고 결론 내리고 있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의 가석방 절차에만 입회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단순한 일이었다.

 

로리 무어.

자폐증에 공황장애와 강박증과 편집증이 있는 그녀는 아버지의 마지막 사건을 살펴보며 아버지와 도적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걸 알아낸다.

아버지는 그의 의뢰를 받아 한 여성을 찾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앤절라였다.

도적이 죽였다고 생각했던 그의 아내였고, 로리와 같은 병증이 있었다.

도적은 아내를 죽인 죄로 40년을 감방에서 보냈지만 아버지는 그녀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오랫동안...

 

찰리 돈니를 <수어사이드 하우스>로 만났다.

기발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기억해야 하는 작가라고 찜해두었다.

수어사이드 하우스가 달뜬 느낌으로 뭔가 어수선하게 그려졌다면 이번 신간 <어둠이 돌아오라 부를 때>는 엄청난 이야기를 숨겨 놓고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있다.

인상적인 캐릭터였던 로리 무어의 모든 것이 샅샅이 밝혀지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숨도 안 쉬고 읽었지만 리뷰를 쓰는 게 부담스럽다.

로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이 기묘한 여성에 대해 알게 된 지금, 점점 커져가는 호기심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건 재구성을 시작할 때면 맞닥뜨리는 바로 그 감정. 이제 로리의 정신은 앤절라 미첼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쉼 없이 달릴 것이다.

 

 

로리의 비밀을 마주하는 순간에 몰려오는 공포와 경악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제 로리는 어두운 심연으로 발을 들였다.

 

너를 구하려고 했어. 그런데 피가 너무 많이 났어.

 

 

치매 환자가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다.

기억을 잃어가는 이들은 가장 중요한 비밀만은 절대 잊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그 순간에 머물기 때문이다.

 

"살인자들은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

"살인자가 존재하는 한 어떤 시점이 되면 선택이 내려진다. 누군가는 어둠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어둠에 선택당한다."

 

어둠을 선택한 것일까?

어둠에게 선택당한 것일까?

옷들과 매든걸 엘로이즈 컴뱃 부츠를 태워버린 것은 하나의 의식이었을까?

증거인멸이라고만 보기에는 너무 가벼운 추측이기에...

이제 로리는 해리 홀레와 루터의 대열에 합류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홀레와 루터의 어쩔 수 없음과는 급이 다르다.

그들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로리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로리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이제 그녀에게는 레인 필립스만 남았다.

그리고 다크 로드 맥주도.

이것들이 그녀를 버티게 해줄 수 있을까?

 

40년의 간극을 가진 과거와 현재를 오가다 보면 우리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다채로운 비밀 속에서 유영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 지도 알 수 있다.

그저 그런 범죄소설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뭔가 아까운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서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많이 알아 버린 후에야 이 이야기에 대한 수다를 제대로 떨 수 있을 거 같다.

 

 

* 출판사 협찬 도서. 그러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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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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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외로웠다.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문장은 저 문장일 거 같다.

외로움...

 

비교적 또래들에 비해 평탄한 삶을 살고 있는 '나'는 학자금 대출 걱정도, 집세 걱정도, 생활비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라는 은행이 있었으니까.

그것이 이혼이라는 결별에게서 부수적으로 생기는 이익이었다고 해도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글이나 끄적이며 살 수 있었다.

'빌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 에겐 이름이 없다.

<<빌리>> 에겐 이름이 있어도.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빌리조차도.

<나>는 작가 자신일까?

 

 

내가 원했던 동거였지만,

내가 우위에(경제적) 있는 관계였지만,

그래서 빌리가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는 그리 생각했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이 내 맘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쓰는 소설들은 형편없었고

빌리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문제는 나에게 있는 그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어떤 속성, 혹은 어떤 상처, 혹은 어떤 성향이 명확하게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데 있다.

그래서 모텔에서의 "그 일" 이 단지 실수였는지, 아니면 그의 바람이었는지는 <나>가 가진 모호함처럼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게 <나>가 가진 외로움이이고, <<나>>가 선택한 삶이다.

 

 




"너 해본 적은 있냐. 근데?"

"뭘 해봐?"

"진짜로 일이라는 걸 해본 적이 있느냐고." 음절을 하나하나 강조해 발음하면서 그가 말했다.

 

 

여자 손 보다 부드러운 손을 가진 나.

그것은 땀 때문이라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기 때문에 자연 보습되는 거라고 나는 믿고 있지만

그것이 노동이라는 걸 해본 적 없고, 절실하게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일을 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내가 가진 핸디캡이라는 걸 나는 모른다.

빌리 눈에 보이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아등바등 남의 집에 얹혀 살더라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있는 빌리와 모든 것이 풍족해도 이루어야 할 것이 없는 나의 차이는 같이 살아가면서 차곡차곡 서로의 가슴에 쌓여만 갔다.

 

네가 존나 불쌍해서야.

 

 

연애할 때는 몰랐던 사실이 결혼해서 같이 살게 되면 보이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이혼 사유가 성격차이가 되는 것이겠지.

 

나는 빌리를 아파트에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랬다면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랬다면 그건 내가 그대로 삶의 어떤 면은 결코 보지 못한 채로 늙어버릴 운명이라는 소리겠지.

나는 아직도 혼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나 자신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위치까지는 왔다.

그 아파트에 계속 살았더라도 그랬을까?

 

"있잖아, 이 아파트에서 나가는 건 좋은 일일지도 몰라." 그가 말했다.

"우리 둘 다한테."

 

빌리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가 그에게서 빼앗은 만큼 내 것을 빼앗아 갔고

내가 그에게 베푼 만큼 내가 인생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만들어 놨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쌤쌤이라고?

과연 그럴까.

 

처음으로 누군가의 집에서 자고 나면 두 사람 모두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을 더 편하게, 동시에 더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함께 친밀감의 울타리를 뛰어넘지만 뒤이어 적나라한 아침 빛 속에서 서로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아침에 그들은 알았을 것이다.

이 우정이 어떻게 끝날지를.

그러나 필요에 의해서 그들은 서로의 곁을 지키는 결정을 했겠지.

그때는 그것이 옳았고, 그 방법이 최선이었을 테니까.

언제나 옳았고, 최선이었던 것들은 지나고 나면 <<그때 왜 그랬을까?>>로 변하게 마련이지만.

 

 

가끔씩,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려면 살던 집을 태워버리는 방법밖에 없을 때가 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태워버렸던 거다.

누가 시작했냐는 중요하지 않다.

끝이라는 걸 서로 깨달은 게 중요하지.

관계라는 건 그런 거 같다.

헤어질 때라는 걸 알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낼 수 없기에 헤어질만한 구실을 만들어 내는 것.

 

아파트는 그들을 뭉치게 했고

아파트는 그들을 헤어지게 했다.

 

빌리는 자신의 꿈대로 걸어갔고

나는 교열 작업 중이다.

두 사람의 운명은 그런 것이었다.

내가 빌리의 작품을 교열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끝없이 고치고, 다듬고, 완벽하게 만들어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이 완전해질 때까지..

그때는 어쩜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는 끝까지 나를 드러내지 않을 테니까...

 

고독은 일단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나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복잡한 감정으로 단순하게 읽었다.

이 또한 이 이야기가 가진 알 수 없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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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
수잔나 클라크 지음, 김해온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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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마다 피라네시가 안내해 주는 미궁을 돌아다니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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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
수잔나 클라크 지음, 김해온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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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신께서 애초에 거인들이 살 곳으로 이 집을 만들었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생각을 바꾸신 것 같다.

 

 

'홀'이라 불리는 집. 미궁.

1층은 조수가 들이치는 곳.

나와 나머지 사람만이 존재하는 곳.

나는 조수간만의 차와 여러 홀들을 탐험하며 조각상들을 구경하고 일주일에 한 번 나머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일지에 기록한다.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내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은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그것을 찾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는 세계.

홀들로 나누어진 그 세계는 홀마다 조각상들이 있다.

거인 같은 조각상,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조각상, 어떤 건 인간보다 작은 것도 있다.

그리고 그곳엔 앨버트로스도 있다.

이 모호하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세상은 왠지 모를 불안과 슬픔을 느끼게 만들었다. 처음엔.

열다섯 명의 인간 중에 살아남은 인간은 나와 나머지 사람뿐.

물고기와 새들만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줄 뿐인 세상.

그 세상을 홀로 끝없이 탐험하는 나는 숫자 대신 이렇게 하루하루를 적어간다.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온 해 여섯째 달의 열다섯째 날 기록>

 

그때,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끝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이곳에 예언자가 등장하고, 16번째 사람이 나타난다.

그가 남긴 메시지를 지워버리고 뜨문뜨문 남은 글자들을 읽는다.

그 메시지를 다 읽으면 나는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고대인들이 세상을 인식한 방식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범한 영향력과 힘을 얻었다.

 

 

고요하고 신비로운 세상.

현 세상에서 빠져나간 신비가 모인 곳.

그 홀들에 있는 조각상은 현생의 역사를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가다듬고, 가장 순수하던 때를 생각하며, 평온함을 느끼는 순간을 찾아간다면

나에게도 그 문이 열릴까?

 

피라네시가 살았던 미궁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나는 아직 그곳의 느낌을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피라네시가 그곳에 머물고 싶어 하고, 그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알 거 같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수재나 클라크의 이야기는 아름답다.

이야기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그 안에 파묻히는 이야기들이 끔찍해야 한다.

끔찍한 이야기들은 아름다운 세상에 묻혀버렸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안식을 찾을 수 있을 테니..

 

파라네시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곳에서 모든 걸 잊고 단순하게 살아가고픈 마음이 든다.

지금 세상은 쓸데없이 복잡하니까...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물이 들이치는 홀들과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조각상들이 어루만져 주고

홀이, 미궁이, 집이

그들을 거둘 것이다. 안전하게...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마다 피라네시가 안내해 주는 미궁을 돌아다니게 될 거 같다...

 

 

 


* 출판사에서 협찬을 받았지만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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