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아드 - 황제의 딸이 남긴 위대하고 매혹적인 중세의 일대기
안나 콤니니 지음, 장인식 외 옮김 / 히스토리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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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로마 제국의 제위에 열망을 가진 국외의 많은 이를 계속해서 자극한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운명은 이 불나방들에게 낫지 않는 고통과 치유될 수 없는 불치병 같은 제국을 떠맡겼다. 횡포한 성격으로 유명한 허풍쟁이 로베르가 바로 후자에 속했다. 노르망디가 그를 탄생시켰지만, 그를 진정 양육하고 길러낸 것은 순수한 사악함이었다. 로마 제국은 이 이질적이고 야만적인 인종과 국혼을 제안하면서 그들이 우리에게 쳐들어올 침략전쟁의 구실을 제공하고 말았다.



동로마 제국.

세계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남성 중심의 역사서만 읽다가 황제의 딸이자 역사에 조예가 깊은 여성의 손으로 기록한 역사를 읽자니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에 대한 일대기를 다룬 소설을 읽는 거 같았다.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다가도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안나 콤니니.

황제의 첫 딸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왕권을 남동생에게 빼앗기고 수두원에 갇혀서 사랑했던 아버지의 일대기를 적어 내려간 그 시간들.

이 역사서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버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린 소년으로 동로마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로베르라는 인물로 인해 한시도 전쟁터를 떠날 수 없었던 알렉시오스 황제.

1081년부터 1118년까지 동로마 제국을 다스렸다.

알렉시오스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렸던 로베르 덕에 알렉시오스는 위험한 고비도 여러 번 넘긴다.

이미 텅 빈 국고 때문에 용병을 구하지도 못하는 현실에서 갖은 지혜를 짜내는 어린 황제의 용기와 처세술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콤니노스 가문은 제위 계승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 그가 다져놓은 왕권에 대한 입지를 볼 때 간과할 수 없는 왕임은 틀림없다.





한편 황제의 후계자는 이미 몰래 따로 마련한 자신의 집으로 떠나 있었으니



위태로웠던 제국의 기틀을 다 잡느라 한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황제에겐 그를 뒤에서 지지하고 받쳐주는 여인들이 있었다.

어머니, 아내, 딸들.

그의 죽음 앞에서 그의 곁을 지켜낸 이들은 아내와 딸들이다.

알렉시오스 황제는 다친 발에서부터 시작된 류머티즘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서 그 병이 온몸으로 퍼져 결국 죽음으로 이르렀다고 이 이야기에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그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딸의 심정이 절절하다.

현명한 어머니 역시 남편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그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애쓰는 걸 보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실제 했음을 알 수 있다.

황제와 황후의 사랑이 돈독했음을 보건대 그들의 아이들도 사랑을 받으며 자랐을 거 같다.

안나의 기록을 읽기 전에는 자신의 억울함을 위해 이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했었다.

자신이 일으키려 했던 쿠데타가 실패하고 수도원에 갇혀서 어쩌면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글을 빙자해 자신이 알렉시오스의 딸이며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음을 알림으로써 자식들에게 불이익을 당하게 하지 않으려 하는 거 아닐까 하는 나의 의구심이 마지막 몇 장에서 떨궈진다.

동로마 황제라는 지위가 참으로 많은 권력을 쥔 중세 시대의 권력자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고달픔의 역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 나이부터 전쟁터에서 단련된 황제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았다.

그가 받은 스트레스가 그의 병에 한몫을 하지 않았다 싶다.

장황한 이야기 때문에 역사서의 느낌 보다 소설의 느낌이 드는 건 역사서로 볼 때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 장황함으로 인해 황실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과 상황을 판단하는 눈으로 본 사실을 우리가 21세기에도 접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 당시의 정세와, 황실 사람들의 판단력과 그들의 행실, 그리고 직접 본 그 시대의 중요 인물에 대한 평들이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후세들에게는 즐거움으로 그려진다.

역사서의 짧은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점에서.

생각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는 점에서.

주관적이지만 실존 인물을 직접 보고 묘사했다는 점에서.

<알렉시아드>는 그 가치를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가끔 어느 대목에서는 안나 콤니니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 이거 실화야? 하는 느낌도 있었지만 전쟁통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뭐든 과장되기 마련이고, 그것이 자신의 핏줄이라면 더 그런 경향이 있다는 생각으로 넘어가졌다.

역사서지만 소설처럼 읽히는 <알렉시아드>

표지는 로맨스 소설처럼 멋진데 너무 촘촘한 편집 때문에 책의 매력이 반감됨이 아쉬워다.

그래서 전자책과 병행해서 읽었다.

호기심에 읽어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전자책을 추천드리고,

눈이 젊은 분들은 종이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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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끝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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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명은 2173년 6월 16일에 종말을 맞는다.



소행성 나이팅게일의 충돌을 막기 위해 인류는 핵미사일을 쏘아 소행성을 맞췄으나 그 잔해가 지구로 떨어지면서 지구는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만다.

인류가 이뤄왔던 문명이 파괴되고, 살아남은 사람들 중 일부는 살기 위해 인육을 먹기 시작한다.

백성서파에 몸담고 있던 네이선은 화이트라이더로서 백성서파가 지목하는 이들을 처단하는 임무를 맡지만 아내가 목사에 의해 산 채로 불타 살해당한 충격으로 얼이 나간 상태로 10년을 보내다 친구에게 의뢰를 받고 옛날 방식의 '책'을 쓰기로 한다.

이 이야기는 네이선이 식인을 긍정하는 새로운 구세주 블랙라이더를 추적하면서 쓴 그의 일대기이자 멸망한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캔디선 안의 사람들은 식량을 배급받고 비교적 보호받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캔디선 밖의 사람들은 식인을 하며 옛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캔디선 안의 사람들 보다 그들이 좀 더 자유로와 보인다.



블랙라이더란 캔디선 밖에 사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해 ㅡ 이를테면 식인하더라도 사람을 사랑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가족을 지키고 편안하게 숨을 거두기 위해 ㅡ 그들이 새로 쓴 복음의 한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블랙라이더 네새니얼 헤일런.

폭력과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

이 소년은 구세계 희대의 식인 살인마 대니 레번워스와 함께 다니며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준다.

네이선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가 식인을 하는 인간들에게 어떻게 신격화되었는지를 적어간다.

작품속 세상은 끔찍하지만 왠지 있을법한 미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류>에서 이미 아키라의 필력을 맛보았기 때문에 이 거부감 드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빠져들어 읽었다.

그의 묘사와 표현들이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너새니얼 헤일런이라는 인물을 멸망한 지구의 예수처럼 만들어 내는 솜씨는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오렌지주스를 꺼내면서 생각했다.

텅 빈 세계는 텅 빈 냉장고에서 슬금슬금 시작되고 있다고.



이 표현처럼 앞으로 다가올 지구의 운명을 잘 표현한 게 또 있을까.




"내가 당신에게 저주를 걸지. 당신은 앞으로도 사람을 먹을거야.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게 될 거야."



너새니얼의 이 말은 식인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말과 같다.



어머니를 살해한 한낱 범죄자에 불과한 사람이 어떻게 신격화되었는가. 나는 무엇보다 그것을 해명하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캔디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비장한 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현재처럼, 불안정한 상태의 선택이 논란의 여지가 안 되는 시대가 언제까지나 이어지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엔 많은 성경 문구와 인용문들이 나온다.

이야기 속의 상황과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의 실험 결과를 비교한 장면은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해석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캔디선 밖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은 먹지 않으면 먹힐지 모르는 상황이다.

배고픔 앞에서 식인은 이미 인류의 DNA에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펄 벅의 <대지>에서도 식인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 소년의 이야기와 멸망한 지구의 풍경과 그를 쫓던 사람이 나중에 그 소년의 일대기를 적어가는 과정은 그 모든 걸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였다.

네이선의 마지막 글들은 결국 '이해'를 말하고 있다.

다름을 선택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멸망한 세상에서조차 분열된 가치관으로 서로를 적대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이해함으로써 포용해가는 것.

그것이 작가가 현실의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이야기를 읽을수록 인류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 보는 기분이 들었다.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은 인류는 다시 문명을 회복해나갈 것이다.

<죄의 끝>은 멸망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현실이다. 그 현실 속에서 살다간 한 소년의 모습이 내내 마음에 남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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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의 순례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1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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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그는 다시는 무기를 들지 않겠다고 맹세한 바 있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무기라곤 갖고 있지 않지만, 그리고 관절염 증세가 있긴 하지만 캐드펠에게는 아직 쓸 만한 두 주먹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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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그 잔인한 행위에 대해 마음 깊이 속죄해야 하겠으나, 십자군의 사나운 피가 끓어넘치는 지금으로서는 그저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편에 비해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였다.

물론 슈루즈베리와 아주 멀리 떨어진 윈체스터에서 스티븐 왕을 지지하던 성직자가 모드 황후 편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을 때 그를 도와주던 모드 황후의 측근 중 한 사람이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을 뿐이었다.

스티븐 왕이 모드 황후에게 인질로 잡힌 상태에서 헨리 주교는 모드 황후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모드 황후는 과거에 연연해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마저 적으로 돌리기 급급했다.

그런 불안한 정세 속에서 슈루즈베리에서는 성 위니프리드 축제가 벌어지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슈루즈베리로 몰려온다.

그 일행 중 맨발로 십자가를 목에 지고 고행을 자처한 순례자가 있으니 그 곁에는 그를 지키며 같이 걸어온 친구가 있었다.

그들의 감동적인 사연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성 위니프리드 성녀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그 와중에 호시탐탐 남의 물건을 노리는 양아치들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많은 곳엔 꼭 그런 인간들이 있기 마련.

휴 베링어는 그런 자들을 잡으려다 놓치고, 남쪽에서는 반가운 손님이 캐드펠을 찾아온다.

바로 <얼음 속의 여인>편에 나왔던 올리비에가 주군의 사람을 찾으러 다니다 슈루즈베리까지 온 것이다.

캐드펠과 올리비에의 만남이 어디선가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여위고 기름한 윤곽에 잘 빠진 언월도처럼 솟은 코, 짙은 눈썹, 부드러운 윤곽을 지닌 입술, 두려움을 모르는 매의 것처럼 빛나는 황금빛 눈, 접힌 날개인 듯 그의 뺨과 관자놀이를 감싼 검푸른 곱슬머리. 아주 젊은 나이에도 분명하게 틀이 잡힌, 동서양의 특징이 절묘하게 조화된 얼굴.






도저히 상상이 안 가서 책에 나온 묘사대로 AI에게 그려달라 요청했더니 이런 모습을 그려줬다.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

시리아 출신으로 아버지가 십자군이던 잉글랜드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잉글랜드 사람을 주군으로 모시고 있다. 휴 베링어와는 다르게 모드 황후 편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왜 중요하냐면 그가 바로 캐드펠 수사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캐드펠 수사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이제 휴 베링어도 알게 되었다.

정작 당사자인 올리비에는 그 사실을 모르지만 캐드펠에게 끌리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언제쯤이면 부자상봉의 절절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성 위드프리드 성녀의 기적이 이루어져서 놀라고(그 관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 있는데 그럼 그자도 성인일까?)

궁금했던 이브와 에르미나의 소식도 알게 되어 즐거웠고, 모드 황후가 득세해서 스티븐 왕을 지지하는 슈롭서가 어찌 될까 걱정됐는데 그만 하룻밤 사이에 판이 뒤집혀 버리고~ 역시나 모든 것을 초월하는 또 다른 사랑의 열매가 맺어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추위 속에 온기를 주었다.

언제나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어쩜 이렇게 중복되는 이야기 하나 없이 매번 새로운 이야기와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지 작가님의 필력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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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몸값 캐드펠 수사 시리즈 9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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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을 위해 두 생명을 바친다..... 그건 결코 공정한 거래가 아니죠."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를 둘러싼 내전으로 인해 휴는 전투에 참가했다 돌아오지만 그의 상관인 길버트 프레스코트가 그만 적진에 포로로 잡혀버립니다.

상관 대신 슈루즈베리를 지켜야 하는 휴에게 고드릭 포드 수녀원을 약탈하려던 웨일스인들 중 한 명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웨일스인 포로는 젊은 청년으로 지위가 높아 보였죠.

휴는 그 포로와 웨일스에 잡혀있는 프레스코트를 맞교환하려 합니다.

그러나 웨일스의 청년 엘리스는 프레스코트의 딸 멜리센트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미 아버지가 정해준 약혼녀가 있는 엘리스, 그런 줄도 모르고 사랑에 빠진 멜리센트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게 되죠.

사랑은 그렇게 모든 것에서 눈을 멀게 만드나 봅니다...

잉글랜드의 왕위 쟁탈전에 웨일스가 끼어든 상황에서 웨일스의 젊은 청년과 잉글랜드 처녀의 사랑이 어떻게 될지 조마조마하던 차에

프레스코트가 슈루즈베리로 돌아옵니다. 부상이 심해서 거의 죽음 가까이에 다가간 프레스코트는 수도사들의 극진한 간호를 받는 와중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맙니다.

다른 수도사였다면 자연사라고 생각했겠지만 그의 죽음을 확인한 캐드펠 수사는 그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프레스코트의 딸은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듣자마다 범인으로 자신과 눈 맞았던 엘리스를 지목합니다.

사랑에 눈이 먼 엘리스가 멜리센트와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프레스코트를 죽였을까요?

아니면 그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때는 이때다 싶게 약해진 그를 공격했을까요?






두 사람은 마치 서로의 거울상 같았다. 동일한 존재의 좌우가 뒤바뀌고 밝은 면과 어두운 면도 함께 뒤바뀌어버린, 그런 거울상 말이다.



엘리스에겐 엘리드라는 젓형제가 있습니다.

사촌 엘리드와 엘리스 그의 약혼녀 크리스티나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엘리드를 사랑하게 되죠. 엘리드 역시 크리스티나를 사랑하지만 엘리스도 그에 못지않게 사랑합니다.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는 엘리스가 잉글랜드에서 자신의 짝을 찾으면서 새로운 반전이 맞이합니다.

이 세 사람의 사랑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까요?

<죽은 자의 몸값>은 모처럼 쉬어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고 재미없거나, 상황이 평탄한 건 아니죠.

웨일스가 잉글랜드가 왕권 다툼으로 혼란한 틈을 노리고 국경과 가까운 슈롭셔 인근을 약탈하고, 스티븐 왕은 그 와중에 모드 황후편에 포로로 잡히고 맙니다.

웨일스의 오아인 귀네드는 잉글랜드와 척을 지려하지 않지만 그의 동생은 국경 근처에서 잉글랜드 백성들을 약탈합니다.

그런 와중에 벌어진 포로 교환과 자신들을 기지로 물리친 수녀원에 대한 복수가 맞물리면서 네 청년들의 사랑이 몰고 오는 사랑의 파국이 <죽은 자의 몸값>을 이루는 이야기의 뼈대가 됩니다.

사랑에 관대한 캐드펠 수사와 한때 자신의 젊음을 팔아 고상한(?) 세월을 보내다 수녀가 된 매그덜린 수녀가 은근히 활약하는 모습은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줍니다.

굉장히 많이 쓰인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새롭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작가의 필력이 필요한 부분이죠.

그래서 이 시리즈의 이야기들을 무심히 읽기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인물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툭 튀어나와 새로운 감동을 주거든요.

매그덜린 수녀는 자신의 기지로 수녀원을 지키고 젊은이들의 사랑도 지켜내죠.

캐드펠 수사의 영역을 아무렇지 않게 침범(?) 하면서도 그를 꼼짝 못 하게 하는 매그덜린 수녀님의 탁월한 솜씨가 돋보였던 작품입니다.

다음 번 이야기에서는 휴가 새로운 상관을 맞이하게 될까요?

아니면 그가 슈루즈베리를 맡게 될까요?

만약 그렇게 되면 캐드펠과 휴의 관계도 미묘하게 달라질까요? 아니면 더 돈독해질까요?

궁금한 게 많아서 빨리 다음 권을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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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아이 캐드펠 수사 시리즈 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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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뒤에 있는 문을 닫아버리는 아이들의 의도는 둘 중 하나야. 그 너머의 세계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아니면 이 안쪽 세계로 도피하려 하거나. 그 둘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 하지만 당장은 명확히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군."



이번 <귀신 들린 아이>는 끝까지 범인을 찾지 못해서 각인된 작품입니다.

제가 웬만하면 중간에 느낌이 딱! 오는데 이 이야기에서 범인 찾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고요.

의심한 사람은 많았지만 범인과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는~



중세 시대 수도원엔 자식들을 맡기는 부모들이 많았네요.

보통은 신심으로 자식들을 종교에 봉헌하는 느낌으로 맡겼고, 스스로 수도사의 길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러나 귀족들 중에서는 재산을 상속받기 어렵거나, 군인으로 참전해서 공을 세울만한 인물이 못 되는 이들이 주로 수도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습니다.

<귀신 들린 아이>에서도 다섯 살 난 아이를 수도사로 들여보내는 일로 수도원 내에서 찬반의 토론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슈롭셔주의 영주가 자신의 둘째 아들 메리엣을 수도원에 맡깁니다.

본인 의지가 충만한 소년이었지만 캐드펠은 왠지 이 아이가 수도사가 되는 것에 반대하는 마음이 듭니다.

척 봐도 사람을 꿰뚫어 보는 캐드펠 수사의 눈에 이 아이는 자신의 말처럼 수도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강제적으로 온 느낌이 들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는 얼마 안 있어 밤에 악몽을 꾸기 시작합니다.

온 수도원 사람들을 다 깨워버리는 지독한 악몽이지만 본인은 그걸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때, 비명이 울렸다. 마치 악마의 두 손이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혼곤한 잠을, 밤의 장막 그 자체를 찢듯, 그 소리는 깊은 어둠과 침묵을 날카롭게 가르며 길게 울려 퍼지다가 천장의 들보에 부딪치면서 박쥐들의 울음만큼이나 사납고 음산한 울림이 되어 사방으로 메아리쳤다.



속세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짐작한 캐드펠과 라둘푸스 수도원장은 귀신 들린 아이로 불리게 된 메리엣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러나 메리엣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물건을 압수한 제롬 수사를 그 자리에서 목졸라 버리는 만행(제롬 수사가 당하는 걸 보고 만행이라고 생각한 독자들은 없을 듯. 다들 고소해했을 듯~ 보고 있던 캐드펠도 그랬으니~ ㅋㅋㅋ)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캐드펠은 메리엣을 마크 수사가 있는 곳으로 보냅니다. 그곳에서 마크 수사의 보호 아래 메리엇을 보살피게 합니다.

지금 정국은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로 나뉘어 여기저기서 편을 갈라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교는 슈롭셔 인근 영주들의 의견을 파악하기 위해 피터 클레멘스를 파견합니다만 그가 돌아오지 않죠.

메리엣의 가문과 먼 친척뻘인 피터 클레멘스는 메리엣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떠난 뒤로 행방이 묘연하다 그만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됩니다.

누가, 왜? 피터 클레멘스를 죽였을까요?



그녀가 캐드펠 앞에서 보이는 태도, 가벼우나 치밀하게 계산된 그 모든 동작들은 캐드펠이 이를 제대로 주시하리라 의식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매력 없는 날벌레 한 마리까지 기어코 사로잡으려는 거미줄이랄까.



메리엣은 형의 약혼자 로즈위타를 연모하고 있었죠. 캐드펠 수사의 눈길마저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로즈위타.

메리엣의 수도원행은 과연 로즈위타뿐일까요?

도대체 범인이 누구인지 아주 궁금해하며 읽었던 <귀신 들린 아이>

어리석은 젊음의 치기

다 가졌으면서도 다 가진 줄 모르는 젊음의 어리석음.

모두의 기대를 독차지하는 사람의 그늘에서 시들어가는 젊음.

그 그늘을 알아보고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강단 있는 아름다움.

그러나 어릴 때부터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마음이 과연 내마음과 같을까요?

욕심 앞에선 우정도 사랑도 없는 법입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 마음도 같은 건지 모르죠...

그러나 진실은 어떡하던 드러나기 마련!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면 비로소 보이는 진실이 <귀신 들린 아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요.

우리 모두 콩깍지를 씌운 눈과 색안경을 낀 눈을 가지고 있죠.

같은 듯 다른 그 콩깍지와 색안경을 벗고 본인의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법이라는 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배우는 중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든 사정을 알아내서 그에 걸맞은 죗값을 치르게 하는 중세 시대의 관용의 법이 왜 이리 뭉클할까요...

법은 있어도 법이 없는 이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놓여나게 되는 시간이 한없이 달갑기만 합니다.

잔인한 폭력과 치졸한 법 다툼 없이도 공정하게 벌과 보상을 내릴 줄 아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그래서 자꾸 이 시리즈를 읽게 되는 거 같습니다.

현실에 없는 따뜻한 공정의 시선이 고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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