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 - 아침과 저녁, 나를 위한 인문학 30day 고윤(페이서스코리아)의 첫 생각 시리즈 3부작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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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지친 마음을 챙기며 무너지기 전에 삶을 돌보길 바란다.



첫 생각 시리즈 3부작의 세 번째 이야기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는 제목부터 나를 한 대 치는 거 같았다.

제목을 자꾸 되뇌기만 해도 내가 어디가 잘 못 되어가는 중인지 인식이 되는 게 신기했다.

아마도 무의식의 나는 알고 있는 걸 현실의 나가 자꾸 회피했나 보다.

이 제목만으로 내 잘못을 내가 깨닫게 되는 이상한 경험 때문에 이 책이 굉장히 철학적으로 느껴졌다.





다양한 증후군으로 표현되는 증상들은 현대인이면 하나씩 혹은 서너 개쯤 지니고 있는 증상이다.

나 역시 지나왔던 길에서 겪어낸 증상들도 있었고, 앞으로 걸릴지도 모를 증상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난 게 반가웠다.

지나온 증후군은 그때의 나를 이해하는데 필요했고, 걸릴지도 모를 증후군들을 살피며 나를 다독이는 시간을 갖게 해줬다.

짧은 내용이지만 그래서 더 각인이 되는 거 같다.

좋은 얘기도 길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저 그런 얘기가 되니까.

한 꼭지의 이야기 끝에는 유명인들이 남긴 말이 담겼다.

그 챕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서너 줄로 요약한 명언들이 또다시 무릎을 치게 한다.

주목받고 싶지만 과도한 관심은 피곤했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내가 인정하는 건 인색했던 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지만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너덜 해진 마음이 싫어서 칩거를 택했던 나.

몇 백 개의 전화번호를 다 지워내고 자주 연락하고 안부를 묻는 전화번호만 남긴 나.

철없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나.

한때 내가 와이트 섬리딩 증후군에 걸렸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어른이 된다는 걸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들이 많다.

어른은 나이 먹으면 저절로 되는 게 아닌데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책이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일깨워 주는 거 같다.

그래서 전작들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여름 어느 날

아끼는 동생이 책 한 권을 샀다며 내게 보여줬다.

그 책이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였다.

읽어보지 못한 책이지만 존재감은 알았던 책이었다.

"왠지 이 책이 끌리더라고요. 서점에서 한 꼭지 읽어봤는데 사야겠다 싶어서 샀어요."

그 아이가 책을 샀을 때 그 마음을 이제야 제대로 알 거 같다.

매일 한 꼭지씩 읽으며 내 마음을 짚어보는 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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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의 갈림길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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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를 죽이지 않았어요. 변호사님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건 그거예요."



전작 <변론의 법칙>에서 누명을 쓰고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했던 미키 할러는 자신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회생의 갈림길>은 미키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변호해서 승리를 거머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승리는 수많은 죄수들에게 한 줄기 빛이었고, 그들의 억울한 사연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미키 할러와 해리 보슈의 콜라보로 엄청난 기대를 갖고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내 마음에 해리의 모습이 칼날처럼 박혀온다.

아니, 미키 할러 시리즈라서 그런 건가? 보슈가 왜 이렇게 나약하게 그려졌지? 병들고, 늙고, 경찰도 아닌 해리 보슈. 그리고 '형'이란 호칭을 쓰지만 뭔가 지시받는 기분이 들게 하는 멘트들... 내가 보슈를 할러 보다 몇 단계 위에 두었나 보다 ㅠ.ㅠ

어쨌든 할러는 보슈에게 억울하다는 사연들을 살펴보고 거기서 정말 억울할 거 같은 사연을 고르는 역할을 맡긴다.

오랫동안 살인사건 전담 경찰이었던 보슈의 촉을 믿는다는 뜻이었다.

수많은 편지들 중에 보슈는 하나의 편지에서 촉이 발동한다.

보안관 부관이었던 전 남편을 총으로 쏴 죽인 혐의로 수감생활을 하는 루신더 샌즈의 사연은 미키의 구미를 당겼고, 그녀를 만나 본 이후에 그들은 이 사건을 맡기로 한다.





나는 교도소 문밖에 서서 산 자들의 땅으로 돌아오는 내 의뢰인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었다. 루신더 샌즈가 그런 의뢰인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연료탱크를 가득 채웠고 부활의 도로를 다시 달려갈 준비가 돼 있었다.




인신청구 소송을 하고 루신더 샌즈 사건을 연방 법원으로 가져간 미키 할러는 깐깐한 판사와 사사건건 입에 거품 물고 달려드는 검사를 맞아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보슈와 할러의 촉이 맞았다.

이 루신더 샌즈 사건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것을 알아내어 새로운 증거를 제시해야만 이 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기술적 문제를 거론하며 법은 루신더 샌즈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사면초가에 빠진 미키 할러.

어째 미키의 특기이자 자랑거리인 트릭이 없어서 서운하다 했는데 이렇게 마지막에 화려하게 등장할 줄이야~





보슈는 흐르는 세월이 과거에는 옳았던 일을 현재에는 그렇지 않은 일로 바꾸어 놓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40년 넘게 살인사건 전담 경찰로 지냈던 보슈와 물불 안 가리고 의뢰를 맡아 자신의 의뢰인에게 최선을 다했던 할러.

그들은 기존의 일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에서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낀다.

살인자를 잡아넣는데 초점을 맞췄던 전직 형사와 어떤 의뢰인이 되었던 요리조리 법망을 빠져나갈 길을 찾았던 변호사는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의 역량을 쏟아붓는다.

그래서 앞으로 이 두 사람이 만들어 갈 이야기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최고의 베테랑들이 모여 가장 어려운 숙제를 풀어내는 이야기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도 계속 긴장모드를 이어가게 한다.

그리고 아무리 솜씨 좋게 사건을 은폐하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어도 누군가는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을 위해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도 치가 떨리지만, 직업윤리를 져버리고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버젓이 해버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치가 떨린다.

얼마나 많은 이런 비리들이 약한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웠을까?

악명 높은 변호사 미키 할러는 이제 누명을 쓴 죄수들의 수호자가 되었다.

해리 보슈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지만 연륜으로 버티는 중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서로를 모르고 살았던 형제가 이제라도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모습은 오랜 팬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보고 싶다는 내 마음은 욕심일까?

욕심이라 해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억울한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미키 할러.

미키 할러가 그동안 쌓아 올린 악명은 아마도 이런 수호자가 되기 위한 가시밭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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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주인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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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다! 엄마를 죽여야 해.



어떤 게 가장 큰 공포일까?

TV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피 튀는 공포가 만연하다.

영화 속에도, 드라마 속에도, 그리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전하는 뉴스도, 하다못해 범죄의 잔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까지 모두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군다.

그러나 소설 속 공포처럼 잔인한 것이 또 있을까?

보이는 건 덜 잔인하다.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이미지가 극심한 공포를 일으키지...

6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보이는 공포보다 보이지 않는 공포에 전율했다.

인형의 주인이 설마설마했지만 그 설마가 맞았을 때의 소름...

한껏 불쌍하고 연민을 느끼게 했던 아이가 병들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러나 아무도 그걸 모른다는 사실처럼 끔찍한 게 있을까.






트래비스는 나한테 나쁜 짓을 하지 않아! 트래비스는 내 친구야.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

그러나 그 평범만큼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을 가졌다.

중요한 건 그 예상이 맞았을 때 오는 심리적 충격이다.

예상하면서도 그 예상을 빗나가는 반전이 있을 거라 자신을 달래가며 읽는데 그 예상이 들어맞았을 때 오는 절망감과 그 뒤로 흐르는 감정은 내가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내가 해나였다면 나는?

12살 소녀의 그 공포가 나를 점점 죄어와 해나의 그 끔찍한 기억 속에 갇힌 기분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짧은 이야기에 압축된 공포를 담아냈다.

머릿속에 필름을 심어줌으로써 계속 재생되게 만드는 필력이었다.

매 이야기에 마다 드러나는 반전 때문에 더 이상 받을 충격이 없을 거 같은 내 독서력에 대미지가 생길 정도다.

평범함에 내재되어 있는 공포는 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모양이다.

남에게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품고 사는 이의 고통이 글을 통해 내게 스며든다.

작가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

진정한 공포가 무언지 아는 작가의 글은 독자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대 놓고 범죄가 일어나는 이야기보다 더 스릴 있고, 좇고 쫓기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마음이 조급해진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는 기억들을 끄집어 내어 이야기로 재구성한 거 같다.

사 놓고 못 읽은 책 <흉가>도 이런 식일까?

조이스 캐럴 오츠의 작품들을 섭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고 임팩트 있는 공포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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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루코와 루이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윤은혜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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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루코는 때때로 열쇠가 된다.




자신을 섹스 기능이 추가된 가정부 취급하는 남편을 떠나기로 결정한 데루코.

실버타운에서 왕따 당하는 게 지겨워서 탈출한 루이.

70세 두 왕 언니가 BMW를 타고 떠난다.

먼저 일을 저지른 건 루이지만 마치 이런 일을 예상하고 준비한 거처럼 모든 걸 계획한 건 데루코다.

너무 다른 성향의 40년 지기 친구 데루코와 루이.

결혼해서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데루코와 두 번의 결혼 생활을 했던 샹송 가수 루이의 이 멋진 또 다른 인생은 별일 없게 진행될까?





도시로가 나를 가둬 놓았다고 그때는 생각했지만, 나를 가둬 놓고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한때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었다.

나도 걸핏하면 친구들하고 '우리 델마와 루이스 찍자!'라며 너스레를 떨었었다.

한 번도 지켜본 적 없는 약속이었지만 그때 그 델마와 루이스들은 지금 어디에서 뭐 하고 있을까?

70세에 지금 생을 뒤로하고 새로운 생을 찾아 떠날 수 있을까?

만약 있다면 같이 가줄 친구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나는 데루코일까, 루이일까?

온갖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읽는 내가 웃겼다.

나는 아직도 어딘가로 떠날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면서 왠지 쓸쓸하다.

이렇게 뜻 맞고 서로를 배려하는 친구가 과연 있을까?

나는 그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몇몇 후보자를 떠올려 보지만 쉽게 가진 걸 털어내고 떠날 친구는 없을 거 같다..

이 매력적인 할머니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만나 보고 싶다.

자유로운 영혼이 된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고 싶다.

다른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삶인지, 아니면 다른 선택지를 얘기해 줄 수 있는지 여쭤보고 싶다.

아마도 데루코와 루이스러운 각자 다른 대답이 들려올 거 같다.

<델마와 루이스>가 좌충우돌식 벼랑 끝 인생을 얘기했다면

<데루코와 루이>는 현실적이면서 홀가분한 인생을 얘기한다.

그녀들을 막아서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발길 닿는 대로 그렇게 살다 갈 데루코와 루이.

데루코가 숨긴 비밀이 무엇인지 밝혀졌을 때도 연륜이 묻어나는 이해가 따사롭다.

그러니 이렇게 또 다른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겠지...

늙어서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너나 그런 친구가 될 생각을 해라!" 라고 나를 꾸짖는다.

이곳저곳 좋은 발자취를 남기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따스하게 감겨들어 좋았다.

인생 막다른 길로 들어섰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이야기다.

두 왕 언니들의 생각과 삶을 따라가려면 나는 아직 멀었다.

나 스스로 자신을 가둬놓고 있는 사람들에게 '열려라 참깨'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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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이혼일지 - 지극히 사적인 이별 바이블
이휘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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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에게 무례하지 말아야지'라는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처럼 굴면서도, 그 문장 뒤에는 시퍼런 칼 같은 마음도 함께 품고 있었다. 언제 서로에게 베일지 모르는 위험한 관계였다.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괴로울 줄 알았다.

연애부터 육아까지 이제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책을 통해서 배우는 시대다.

이 책을 받고 나서 '이제는 이혼도 책으로 배워야 하는 시대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혼일지'라는 말처럼 이 책에는 이휘 작가의 <이혼>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모든 감정들이 담겨있다.

곳곳에서 만나는 눈물들은 그의 당찬 글과는 다른 모습이라 그 감정을 헤아려 보곤 했다.

더 이상 가정을 이루고 살았던 사람과 같이 살 수 없어서 '이혼 프로포즈'까지 했던 사람치고는 눈물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라도 그렇게 많이 울었을 거 같다는 느낌이든다.

나만의 '가정'

나만의 '가족'

'내 편'이었던 사람과의 이별은 잘잘못을 떠나서 상당히 괴로운 감정일 테고, 그런 결정을 내린 건 나지만 그래서 자꾸 죄책감도 들 테고,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서럽기도 했겠고, 상대방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고, 왜 처음에 알지 못했을까라는 후회감도 계속 밀물처럼 밀려왔을 거 같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기 마음을 정리하고 다독이며 나아간다.

그것이 그가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예능 작가다운 글 솜씨로 이혼 과정과 이혼 후의 감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건 그만의 자가치유법이었다.

이혼 후 첫 번째 맞이하는 결혼기념일에 브런치에 이혼일지를 쓴다.

자신을 덜어내는 법을 제대로 찾은 것이다.







관계란 일종의 인테리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어느 위치에 두는 게 가장 알맞은지를 잘 알아야 관계도 마음도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게 나의 관계학 이론이다.



'이혼'은 이제 '결혼'보다 흔한 일이 되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그 상처를 달래가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이혼'을 딛고 전보다 더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지금 현재와 이미 지나온 사람들과 앞으로 겪을지 모를 사람들에게 하나의 옵션 같은 책이다.

밥공기 같은 눈물을 흘리고, 길거리에서 울고 다녔던 사람이 단단하게 변해가는 과정들을 읽으며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옵션이다.

같이 산다는 게 쉬운 거 같지만 아주 많이 어려운 일이다.

'가정'을 이룬다는 자체가 마냥 사랑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에 거기엔 '희생'이 따른다.

그 '희생'을 한 사람만 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결혼은 이혼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상실이 또 다른 결실이 된다.



상실의 시대를 거쳐 단단해지면 결실의 시간을 살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걱정이 하나 있었다.

이혼이라는 단어 아래 자신의 분노와 배우자에 대한 험담을 글발 좋게 써서 독자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거 아닌가?

나는 그런 감정 쓰레기통이 될 준비가 됐나?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나보다 더 성숙한 30대의 그녀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혼' 경험 없이도 나는 '이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그 말속에 담긴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간접 체험했으니까.

마치 간병 한 번도 안 해보고 간병인의 수고로움을 안 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이혼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섣부른 위로와 알은체를 하는 것이 얼마나 실례가 되는 건지를 배웠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잘 헤어졌고, 잘 아물었다. 물러 터졌던 과거의 내가 정말로 그렇게 바라고 원했던 모습으로 차츰 변하고 있다.




이 문장들로 그녀에게 내 느낌을 전하고 싶다.

잘 헤어졌고, 잘 아물었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당신의 경험을 간접경험한 나 역시 조금 더 성숙해졌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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