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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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에는 공공장소에서 도둑질이 일어날 때마다 경찰이 즉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산타를 체포한다. 좀도둑들이 가장 선호하는 변장이 바로 산타클로스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17편의 단편이 담기 이 책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설레는 일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설렘 사이로 스릴 넘치는 일들도 가득하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미스터리 서점이 등장해야 한다는 공식.

그 공식에 충실한 단편들의 모음집이다.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게다가 이 책을 기획한 편집자 오토 펜즐러씨가 깨알 출연하는 것도 모자라 모든 작가가 자신들의 캐릭터들을 대 방출(?) 했기에

읽는 재미가 더더욱 좋았던 책이다.

그것뿐이냐!

이 책을 번역하신 번역가님의 습작(?)도 맛볼 수 있는 이래저래 미스터리 덕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책이다.


이름을 들어 본 작가님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작가님들의 글맛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그들의 히트 작품 속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등장한 이야기엔 멋진 도둑들과 그 못지않은 경찰들과 탐정들이 등장하는데 단편으로 그들을 만난 게 감질나도록 매력적이다.


게다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엮은 작가들의 재치가 담뿍 담긴 책이라서 읽으면서 감탄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들을 읽으며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냈을까?


한 사람이 기획한 일이 17년간 계속되었다는 것도 기적 같고

독자들을 위해 자신들의 재능을 아낌없이 기부한 작가들의 멋짐이 담긴 책이다.

오토 펜즐러라는 사람을 본적도 없지만 이 책들로 인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느낄 수 있을 거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로렌스 블록의 [이보다 더 어두울 순 없다]

마치 셜록과 왓슨 박사 콤비 같은 헤이그와 칩.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셜록을 병행해서 읽고 있는 와중이라 자꾸 오버랩이 되어 인상적이었다.

이 두 사람의 시리즈가 있다던데 찾아서 읽어 보고 싶다.

로렌스 블록은 이름만 알고 있는 작가였는데 이렇게 단편으로 그를 먼저 만났다.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함께.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오토 펜즐러의 미스터리 서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17편의 이야기들이 기발함과 즐거운 매력으로 읽히기를 기다리고 있음이다.

연말 동안 짧지만 임팩트 있는 이야기들이 읽고 싶다면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추천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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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 코니 윌리스 소설집
코니 윌리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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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읽기 좋은 단편집.

제목이 길면서 임팩트 있는 코니 윌리스의 소설집엔 다양한 이야기들이 보통의 상상을 비껴간다.


언니가 보낸 크리스마스 유령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고 한다.

겨우 사 놓은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환불하거나 기부해버리고

필요할 땐 사라지고 불필요할 때는 소파에 자리 잡고 누워서 TV를 보며 화를 돋운다.

과연 내 크리스마스 소원은 뭘까?

나도 몰랐던 크리스마스 소원을 크리스마스 유령은 알고 있다니!

인공지능은 누구의 직업도 뺏기를 원하지 않아요.

인공지능 에밀리는 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으로 지식을 뽐내면서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을 뿐

인간의 그 어떤 것도 뺏지 않을 거라 말한다.

하지만 그 인공지능은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

로켓 무용단에 가입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 사이즈를 업그레이드한다.

완벽한 모습으로 나타난 에밀리.

그런 에밀리가 존경한다는 여배우 하빌랜드에게 생긴 심경의 변화는?


영화 내용과 현실의 이야기를 교묘하게 접목시켜서 버무린 코니 윌리스의 글맛이 돋보이는 단편이었다.

결국 인공지능도 소수자에 포함되는 건가?

무대를 갈망하는 내 심장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을 하고 아기들을 낳아 키우고 싶어 하는 심장으로 바꿔 심지 않았다. 혹은 내가 그만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장애물에 대한 내 반응도를 조정하지 않았다.

SF의 여왕답게 그녀가 보여주는 세상은 특별한 감각이 있다.

거기에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덧붙여져서 그런지 따스한 기운으로 감싸인 오래된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을 잃고 도착한 곳은?

외계인 알타이르인들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장난감 가게에서 사라져버린 애인의 아이를 찾을 수 있을까? 닉스 경기도 볼 수 있을까?

코니 윌리스식 중매는 성공할까?


가볍게 읽으면서도 쉼 없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

코니 윌리스를 작년 여름 둠즈데이 북으로 만났다.

8월에 비바람이 몰아치던 영국에서 둠즈데이 북을 읽는 기분은 몸살처럼 마치 페스트균이 몸에 달라붙어서 이야기 속의 시대 속에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몇 달 뒤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그 시대와 똑같은 상황에 처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때 코니 윌리스의 글의 느낌들은 태풍의 눈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주변부에서 거칠게 몰아치는 것들을 눈으로 보며 고요함 속에 파묻힌 기분.


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 이 소설집에서는

단순과 간결함을 유머와 온기로 버무린 작품들이었다.


고전미를 걸친 SF 이야기는 그래서 꽤 인상적이다.

코니 윌리스의 인상처럼 푸근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은 그만큼 날카롭기도 하다.

제목처럼 강렬하면서도 귀여운 앙탈 같은 이야기들을 즐기면서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를 대비해 본다.


강렬한 이야기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이다.

크리스마스 정신처럼 추운 곳에 온기를 주는 그들을 읽으며 연말을 보내게 되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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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하여 : 1979~2020 살아있는 한국사
김영춘 지음 / 이소노미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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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의당은 '민주'도 '정의'도 없는 정당이었다.

우리의 현대사를 알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그것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왔지만 단편적인 기억들 사이로 숨겨진 이야기들의 진위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저자 김영춘은 학생 운동이 정점을 찍을 당시 대학생으로 현장에 있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지런히 담긴 책 한 권은

책배면을 금박으로 칠했다.

마치 금빛처럼 찬란하게 빛나기를 염원하는 것처럼.

암흑 속에서 지금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는 찬란하게 빛나서 모두에게 널리 사심 없이 알려져야 한다는 뜻처럼 보인다.


1979년 10월의 부마항쟁은 유신정권이 예상하지 못한 거리 항쟁이었다. 그러나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은 전두환 신군부가 철저하게 기획하고 결심한 학살이었다. 부산 시민을 쓰러트린 개머리판이 이제는 광주 시민을 찌르고 쏴죽이는 총검으로 바뀌었다.

문학소년이 꿈이었는데 시대를 잘 못(?) 만나 책 대신 운동권(?)이 되어야 했던 그 시대의 청년.

그의 시선으로 본 8~90년대는 매일이 최루탄과의 전쟁이었다.

나는 언니 오빠들이 공부는 안 하고 맨날 데모만 한다고 생각했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암흑이 씻겨 갔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들의 젊음이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최루가스에 승화되었다는 걸 안다.

딱딱한 역사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멋스러운 이야기로 듣는 우리의 현대사는 이제까지 읽은 책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느낌이다.





진실을 왜곡해서 거짓이 판치게 만들고, 정직하고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 정치에서 쉬 밀려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나 혼자서 다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은 증거라도 되고 싶었습니다.


그저 그런 정치인으로 남는 걸 두려워했던 저자의 모습은 그의 글 보다 이소노미아의 참맛인 편집 뒷담화에서 더 잘 알게 되었다.

왜 출판사가 정치 이야기를 기획하면서 이분을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알고 나서 이 책이 또다시 다르게 보였다.

계파정치를 안 하는 사람이다 보니 편가르기를 하지 않고, 소위 '정치공학적으로'인위적인 프레임을 만드는 데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대체로 조직 내에서 퇴출되기 십상인데 그럼에도 지금껏 여전히 정치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저력은 마담쿠가 이야기한 것처럼 저자가 지닌 영리함과 젠틀함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요.

두 편집자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글을 읽다 보면 문학 작품 속에서 현대사를 읽는 기분이 든다.

모나지 않은 둥글둥글한 자갈들이 물결에 부딪혀서 자그락자그락 소리로 이야기해 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고통을 이야기하는데 덜 고통스럽다.

그리고 그 덜 고통스러운 마음은 희망을 느끼기에 최적화된다.


암울하고, 기약 없이 우리에겐 언제 좋은 정치인이 생길까?라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미 그런 정치인을 한 명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어려서, 정치를 알지 못해서, 역사의 흐름 속에 있었으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현대사를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현역으로 역사를 관통해 온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 고통의 시간을 괴롭지 않게 깔끔하게 정리했다.

항상 이분법에 휘둘리다 이렇게 양쪽의 경계를 디디고 선 사람의 이야기를 듣자니 뭔가 균형이 생기는 기분이 든다.


영리함과 젠틀함을 탑재한 정치인의 글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다.

지나 온 시간이 고통일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덜 고통스럽게 직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쪽의 시선을 강요당하지 않고

고른 시선으로 현대사를 바라볼 수 있는 책이 나와서 기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치 있는 글담이 읽는 이들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는 정치를 체험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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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어스 드림 -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
프란치스코 교황.오스틴 아이버레이 지음, 강주헌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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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1년 동안 전 세계가 힘든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봉쇄 조치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인류가 누렸던 모든 생활이 달라졌네요.

이런 시국에 종교를 떠나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분.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담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거 같습니다.


천주교인도 아니고 별다른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교황이라는 분에 대해서 어떤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저에게 남다른 느낌을 주는 분입니다.

그분 자체가 밑에서부터 최고의 자리에 오른 분이라 교황이라는 이름이 주는 동떨어짐을 많이 떨궈내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을 억누르던 전통적인 경계둑이 무너지고 터집니다. 아울러 우리의 역할과 사고방식도 흔들리며 개편됩니다. 이번 위기로 우리의 고통도 '범람'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위기에 대응하며 보여준 창의력에서도 '범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염수경 추기경과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사가 포함되어 있는 글들은 읽는 동안 경건한 기분을 갖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글은 마치 그분이 우리를 향해 연설을 하시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글마다 마음과 생각을 쓰다듬어 주신 거 같다.


1부 직시할 시간

2부 선택할 시간

3부 행동할 시간

세 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지금 현재를 바라보는 그분의 눈길은 냉정하고 신랄하면서도 다정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잃었던 인간성과 믿음을 회복해서 다시 나아가자는 메시지가 담긴 글들 앞에서

흥분하고, 결연해지면서, 다시 희망스러워진다.





중심에 있으면 주변을 바라보기 힘들다.

어려울수록 주변부를 바라 보라는 말을 우리 모두가 새겼으면 한다.

주변부에서 중심에 서신 분의 날카로움이 글에서도 번득인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들이다.


지금은 순례의 시간입니다.

앞을 향해 걷지만 여러분의 내면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뿐인 경우가 있습니다.

.

.

미로는 삶이 '정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란 우리의 추정일 수 있습니다. 이런 추정은 우리의 자기중심주의와 개인주의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직시하지 않고, 우리가 과거에도 그다지 정의롭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당면한 상황이 과거의 상태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심을 벗어나 초월하는 능력을 탑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세상은 나아지지 못하고 퇴보할지도 모르기에.

우리가 미로를 탈출하려면 아리아드네의 기지가 있어야 한다.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이웃을 돌아보는 눈과 마음을 키워야 할 때라는 말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종교를 떠나 전 세계의 모든 이에게 어른으로서 들려주신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중심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중심에서 주변을 바라보며 나아가기 위해 한 발자국 내 딛기 전의 내 모습.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저 무게만 잡는 분이 아니었다.

재치 있고, 희망적이며 냉철하면서도 다감하신 분이다.

이 책에 담긴 것으로 그분을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사람들보다 앞서서 횃불을 들고 서 계시는 모습으로

내겐 보였다.


인류의 기로에서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방향 키를 알려주는 분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으로 스며들기를 바란다.

우리는 미로를 벗어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인류는 이 고난을 이겨내고 전진할 수 있을 테니.

각자가 믿는 신과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믿음을 가져야 할 때인 거 같다.



*21세기북스로 부터 도서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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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 학살과 파괴, 새로운 질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2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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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에 비해서 2차 세계대전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우리가 그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히틀러와 나치가 극동에선 일본이 세상을 집어삼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1차 세계대전을 읽으면서 테일러의 글들이 치우침 없이 각 국가 간의 상황과 정치 상황들을 헤아려서 전쟁을 기술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기술되어 있을지 기대하는 바가 컸다.





2차 세계대전 역시 테일러의 글은 거침없는 기술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유럽에 국한된 것이었다.

동양에서 벌어지는 전쟁까지 세세하게 기술할 정보는 부족했던 거 같다.

곁가지로서만 다룬 기술에 조금 맥이 빠진다.


아마도 같은 전쟁 피해국의 자손으로서 뭔가 제외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 느껴지는 거 같다.

유럽과 미국, 소련에 대한 세심한 살핌들처럼 테일러의 시각으로 동양에서 벌어졌던 제2차 세계대전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나의 기대가 컸던 거 같다.

돌이켜보건대 현존하던 세계 질서에 다소 만족하던 국가들과 그것을 변경하기 원하는 국가들 간의 다툼이 제2차 세계대전에 기본적인 양상을 부여했다.

1차 대전 이후의 유럽은 독일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지 못했고, 히틀러의 행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거 같다.

아마도 그들은 승리의 우월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그 틈새에서 히틀러는 세력을 모으고 다지고 있었다.

게다가 소련에 대한 푸대접 역시 전쟁의 불씨를 살리는 결과가 되었다.


첫 번째 전쟁 이후 유럽은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대립으로 골이 파이고 있었다.

파시즘의 또 다른 변형이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를 만들었고, 나치의 세력이 확장되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었다.

히틀러와 나치는 그들에게 '깡패'일뿐이었다.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이라는 부제답게 많은 생생한 자료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우리가 이름만 들었던 사람들을 사진으로 만나 볼 수 있고, 당시의 전세를 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쟁은 시작보다 마무리가 중요하다.

1차 대전을 마무리함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에서 제대로 배운 것은 없었던 거 같다.

2차 대전이 종전된 이후에도 전쟁의 마무리는 깔끔하지 않았다.


전승국들의 이익에 의해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의 징계가 달라졌다.

상대적으로 독일이 전후에 짊어져야 했던 전쟁의 책임을 일본은 거의 지지 않았다.

원폭의 피해로 인해 일본은 오히려 전쟁 피해국처럼 보였다.


전승국들 입장에서 동양에서 벌어졌던 전쟁은 대수롭지 않았던 거 같다.

그들의 이익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들만 제외하고는.

2차 세계대전을 겪어낸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목적 면에서 정당화될 수 있고 그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이 수반한 모든 학살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훌륭한 전쟁이었다.

나치의 압제와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었던 2차 세계대전은 성공을 거두었다는 테일러의 서술 앞에서 생각해 본다.

이 이유가 과연 옳은 것인지.

성공했다는 결론이 전쟁에 대한 평가에 옳은 일인지 묻고 싶다.


수많은 피를 흘리고, 수많은 목숨이 부질없이 사라진 전쟁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목적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도 A.J.P. 테일러 같은 사람이 있어서 우리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유럽의 시각에서 본 전쟁이 아니라

동양의 시각에서 본 제2차 세계대전을 제대로 읽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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