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대 살인귀 스토리콜렉터 88
하야사카 야부사카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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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른 입소자들은 어떠한가? 확실히 이 시설에는 이상한 녀석이 많다. 하지만 역시나 '이 녀석이라면 시체의 눈을 도려낼 것 같네' 싶은 녀석은 없다.


[착한 아이의 섬]

역설적인 이름을 붙인 섬엔 버려진 아이들이 살고 있다.

40명의 아이들과 직원 몇 명.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직원들은 뭍에서 섬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아이들만 있는 섬에서는 살인자가 기회를 잡았다.


첫 페이지부터 잔인한 모습이 연출되고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친다.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길지 않은 소설을 읽어 간다.


요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낳는 것이야. 어떠한 마음이냐면, 겁이나 슬픔, 원한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지. 요컨대 요괴에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이 농축되어 있어. 그래서 같은 인간이 섣불리 건드리면 위험하지.


개연성 없는 살인을 저 말로 덮으려 했던가!


소설을 읽었는데 마치 게임 스토리를 읽은 느낌이다.

추리도, 미스터리도, 공포도, 잔혹 스릴러도 아닌 살인을 위한 이야기였다.


줄거리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읽는 내내 불편함을 떨치지 못했다.

아무리 소외되고, 격리된 아이들이라 해도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 일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걸까?

게다가 살인의 방법도 어른들 보다 더 진화되 기술(?)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인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작가가 일본에서 얼마나 많은 인기를 끄는 작가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내용이 일본의 많은 미스터리 동호회에서 꼭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니

이 작품에 열광하는 이들의 한 단면을 보는 거 같아서 그 자체로 씁쓸하다.


죽음에 대한 예의도 없고.

사람을 죽이는 걸 게임 정도로 생각하는 이 아이들의 모습에서 연상되는 건 인간성에 대한 무지함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처럼 충격을 받을 사람들도 있을 테고

이 이야기에서 단지 재미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에는 더 충격을 받을 거 같다.


살아가기 위해 계속 죽여야만 한다 얼마나 무거운 운명인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이 그렇지 않은가. 살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먹고 있다.


위 논리를 적용하고 싶었다면 작가는 좀 더 공부를 하고 심사숙고해서 글을 써야 했다.

자신의 무모한 글을 살짝 포장하기 위한 저 떡밥에 호응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북로드의 스릴러들은 독자들에게 심각한 사건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불어 넣어주는 이야기들을 많이 출간해왔다.

이 책이 북로드의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다 읽고 난 지금에도.


잔인함과 잔혹함에도 '마지노선'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이용할 때에는 그 '정당함'도 들어 있어야 한다.

마지노선도, 정당함도 없는 이야기였다. 내겐.


나는 비교적 어떤 책에서라도 장점을 찾아서 좋은 점을 부각시키고 싶은 리뷰어다.

이 책에서는 그 어떤 걸 부각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소외된 아이들의 방어기재?

정신적 트라우마?

섬에 갖혔다는 상황?

아마도 아이들이 주인공이라서.

그 아이들의 냉랭한 인간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은 불편함을 내게 주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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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 현실 편 : 철학 / 과학 / 예술 / 종교 / 신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2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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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첫 번째 이야기가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현실 너머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진리,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총 6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극단적인 미국식 실용주의가 완벽하게 장악한 사회라는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한국적인 것을 다 버리지 못해서 생기는 괴리감이 세대 간의 분열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포스트모던은 중세와 근대가 공유해왔던 이분법적 세계관의 폭력성을 지적하고, 그동안 억압되었던 다원적 가치를 복원하는 실천 운동으로 발전했다.


포스트모던은 억압받고 잊혔던 것들의 귀환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제야 포스트모던의 시작이 일어나고 있는 거 같다.

이제야 다양성에 대해 이해하려 하고, 다원적 가치를 복원하려는 조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과 유신독재와 쿠데타를 한꺼번에 겪으며 성장한 탓에 획일화된 교육만 받았던 세대들의 자녀들은 과도기의 시대를 지나서

이제는 다양한 정보를 언제 어디서든 습득할 수 있는 세대로 넘어왔다.

그들의 다양성의 시각을 획일화된 시각만 가진 노년층은 이해하기 어렵고, 그분들을 젊은 사람들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닫혀 있던 세계에서 열려있는 세계로 향한 과도기적 시대를 살아온 나같이 낀 세대는 고달프다.

양쪽을 이해하지만 그들에게 이해받고 싶기도 하니까 말이다.


철학은 언제나 알 거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분야였다.

이 책을 읽고 요약을 하였지만 역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좀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과학에서 서로 다른 두 이론이 존재할 때, 논리적으로 더 간결한 이론을 선택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진실에 가깝다는 오컴의 면도날이 인상적이었다.

원래부터 과학은 별 관심도 없고, 잘 하지도 못한 분야였지만 이렇게 한 번 정리해 주고 가니 그닥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무슨 이유일까?


예술은 진화를 거듭해서 현재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거의 모든 제약 없이 넓은 의미로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예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현재 이 세상에서 3대 종교를 거의 기독교의 바탕이 차지하고 있어서 놀랐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이렇게 세 가지 종교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슬람에 대한 상식이 전무했는데 이 책을 통해 가닥을 잡았다.


신비에선 죽음 이후에 대한 세계를 이야기한다.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를 읽으며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결이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사후 세계는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곳이다.

죽음 역시 인간이 알아낼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미래를 그리는 SF 소설을 읽다 보면 미래의 죽음은 인간의 기계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공지능에 흡수된 인간의 뇌는 그렇게 영원히 기계 안에서 살아가며 스스로 영생을 느낀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간은 죽음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터미네이터라는 영화는 결코 영화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니체의 영원회귀는 윤회보다 끔찍하다.

만약 그렇다면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수박 겉만 핥았지만 뭔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한 가닥을 잡아간다는 데서 이 책에 의미를 부여해본다.

다음 편 0(제로)에서 다루어질 이야기들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식이라고 하니 기다려진다.

이 시리즈를 다 읽고 나면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지.

눈에 띄는 변화는 없겠지만 생각하는 면에서 달라진 어떤 부분이 내 나머지 삶에도 영향을 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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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말하지 않을 것
캐서린 맥켄지 지음, 공민희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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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가족 전부를.

무려 20년 동안이나.


사고로 부모님을 여읜 맥알리스터 형제들은 추모식을 위해 그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캠프 마코를 찾는다.

라이언, 마고, 메리, 케이트, 리디.

각자의 몫으로 받게 될 유산에 대해 각자의 생각이 있는 그들은 아버지의 유언장이 공개되고 나서 잊고 살았던 과거의 사건 속으로 함께 빠져들어간다.

마치 호수 한가운데에서 낡은 배가 침몰하듯.


션 부스는 캠프지기다.

라이언과 비슷한 연배인 그에겐 매춘부 엄마가 있었고, 어느 날 엄마가 죽음으로써 그는 맥알리스터씨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캠프에서 평생을 살았다. 캠프는 그의 전부였고, 그곳을 떠나서 무얼 할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형제들은 캠프를 팔아 치울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에게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20년 전 캠프에선 사고가 있었다.

마고의 친구였던 아만다가 머리를 가격 당한 채로 보트에서 발견되었다.

라이언이 용의자로 조사를 받았으나 명확한 사유 없이 사건은 범인의 흔적도 모른채로 종결되었다.


캠프는 무사히 살아남았지만 그들의 아버지는 라이언을 오랫동안 의심해 왔다.

아니 자식들 모두를 의심해 왔다. 그리고 유언장에서 그는 네 딸들에게 라이언의 처분을 맡긴다.

투표를 해서 라이언이 무죄가 되면 5명이 똑같이 캠프의 소유권을 나눠 갔지만 한 명이라도 유죄를 인정하면 라이언의 몫은 션에게로 간다.

유언장이 낭독되고 나서 그들은 각자의 기억을 끄집어 내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되새김질한다.





아만다의 시점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나머지 사람들의 시점으로 번갈아 진행되면서 20년 전의 그날과 현재를 이야기한다.


솔직하지 못했던 가족들 사이에서 각자 감추고 있었던 그날의 비밀은 무엇일까?


아만다의 이야기 끄트머리에 매번 새로운 사항이 추가되는 각 인물들의 연대표는 새로운 사항이 추가될 때마다 범인을 추적할 수 없게 된다.

모두가 의심스럽고, 모두가 믿을만한 이 모순된 감정이 책을 읽는 내내 이어진다.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을 범인으로 지정하고 나서 이제 알았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세 딸을 훌륭하게 키우면 앗아간 한 생명을 대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잘못된 생각일 수 있지만 라이언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그가 돌이킬 수는 없다. 인생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니까.


이야기를 읽고 나서 잠시 음미하다 보면 곳곳에 복선과 단서들이 흩뿌려져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각각의 인물들이 가족이 아닌 가까운 지인들처럼 느껴지는 건 아마도 가족으로서 가져야 하는 구심점이 없기 때문인 거 같다.

다들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부정과, 불신으로 이루어진 맥알리스터 가족.

그들이 그렇게 된 건 부모들의 탓이었을까?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가 주는 몰입감이 좋은 작품이다.

금, 토, 일 3일의 시간 동안 각각의 인물들의 생각과 느낌과 기억들이 아주 오랜 시간을 넘나들게 만든다.


캠프엔 매번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딱히 그곳을 운영할 생각이 없었던 아버지는 그곳을 떠나지 못한 채로 평생을 살았다.

엄마는 언제나 무심한 모습으로 유령처럼 존재했고, 아빠는 항상 사람들을 놀래키는 걸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어째서 자신이 해결하지 않고 그들에게 그날의 사건을 해결하도록 했을까?

그리고 션은 그들과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마무리되지 않은 이야기의 존재는 영원히 묻혔다.

절대 말하지 않아. 라는 소원을 싣고 저 푸른 하늘로 사라진 풍등처럼..

결국.

가족은 가족이었다.

절대 말하지 않음으로...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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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할인] 스토리콜렉터 85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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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을 기억한다는 건 행운일까 불행일까? 에이머스 데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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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암살자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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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념비를 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알렉스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1부의 떡밥들이 2부에서 많은 파장을 몰고 온다.

아이리스는 모든 걸 기록했다.

사실을, 추억을, 기억을.

2번의 전쟁을 겪고, 아버지에게서 리처드에게로 팔려간 아이리스는 그 자체로 눈먼 암살자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에도 나서지 않았던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기록을 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남자의 핏줄에게 들려주기 위해.

그 핏줄을 되찾기 위해.

어쩜 그것 역시 그녀의 희망사항일지 모른다.


내게 네게서 무엇을 원하게 될까?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건 너무 과분하다. 용서도 아닐 것이다, 그건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저 내게 귀기울여 주는 사람을 원할 것이다, 그냥 나를 바라봐 줄 누군가. 그렇지만 무엇을 하든 나를 미화하지는 마라, 나는 장식된 해골이 되고 싶지는 않다.


두 여자와 두 남자.

엉켜버린 관계들.

현실과 소설과 소설 속의 소설.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아이리스는 기록자였다.

현실에 눈 감고 생각 속에 살았다.

그녀의 현실은 소설 속에 있었다.

그리고 진짜 현실은 소설 보다 더 비참했다.


로라는 자신의 희생이 헛된 것임을 알고 언니의 자동차를 몰고 벼랑으로 달렸다.

아이리스는 로라를 지키지 못했다. 자신의 딸도 지키지 못했고, 손녀도 지키지 못했다.

자기 안에 자아가 너무 많은 사람은 누구를 위해 희생을 할 수 없다.

아이리스가 그렇다.

그녀가 한 번이라도 희생을 고려했다면 적어도 한 사람은 그녀와 함께 살아갔을 것이다.


리처드의 죽음은 설명되지 않는다.

어쩜 아이리스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어쩜 그녀 스스로 리처드를 죽음으로 몰았을지도 모르겠다.

로라를 잡지 않았던 것처럼.

또는 알렉스를 위해.


개인의 기록은 과연 온전할까?

같은 기억도 각자의 편의에 따라 다르게 저장되는 것이 기억인데.

우리는 아이리스의 이야기만을 알뿐이다.

로라도 알렉스도 리처드도 오로지 아이리스의 기억 속에 존재했던 모습으로 기록될 뿐이다.

눈먼 암살자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결국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것들만 재생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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