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도둑 신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4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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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렇게 살짝 속임수를 동원하게 되는 법이다.


토니, 로즈, 캐리스 이 세 사람에겐 지니아라는 공통의 분모가 있다.

친구라는 범주 안에 넣기도 빼기도 어정쩡한. 그러나 지울 수 없는 이름 하나. 지니아.

 

하지만 그 지니아는 죽었다.

테러의 희생양으로 장례까지 치러주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존재는 어디에나 있다.

그녀들의 삶 안에.

 

도둑 신부의 제목은 그림 형제의 동화 도둑 신랑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나도 그 도둑 신랑을 읽은 지 얼마 안 되어 기억이 생생하다.

결혼을 앞둔 신부가 신랑집에 초대되어 갔는데 알고 보니 그 신랑이 젊은 여자들을 꼬셔서 데려와 잡아먹는 식인들의 일원이라는 걸 알게 된다.

노파의 도움으로 도망친 신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그 일당을 소탕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 이야기의 제목에서 우리는 도둑 신부 또한 누군가를 등쳐먹는 사람을 말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지니아가 저승에서 돌아왔다.


토니는 웨스트와 결혼했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부부로 지내지만 죽었다던 지니아가 살아 돌아오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애당초 웨스트는 지니아와 먼저 살고 있었다.

이 관계에서 도둑 신부는 누구일까?

 

캐리스는 웨스트에게 버림받고 암에 걸렸다고 찾아온 지니아를 받아준다.

하지만 빌리는 지니아를 의심하며 꺼려 한다. 캐리스는 남을 돕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지니아를 돕는 것에 은근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결국 지니아는 빌리와 함께 떠난다.

 

로즈는 두 사람에 비해 비교적 거리낌 없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만 지니아는 로즈의 남편을 꿰어차버린다.

아들과 딸 두 아이에게 항상 미안해하는 로즈에겐 남편 말고도 끝나지 않은 지니아의 마수가 남아 있었다.

 

토니와 캐리스, 로즈 이 세 사람에게 지니아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이면서도 두려운 존재이며

어딘지 모르게 동경하는 마음이 생기는 존재이다.

말하자면 애증의 관계.

세 사람 모두 지니아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았겼다.

 

이 네 사람은 어떤 식으로 엮여 있는 걸까?

지금까지는 세 사람이 피해자 갔지만 글쎄.

모두의 남자를 뺏은 지니아는 그들을 매몰차게 버린다.

어쩌면 지니아는 세 여자를 해방시키는 존재일까?

아니면 생의 어느 시점에서 세 사람은 지니아에게서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를 빼앗았던 경험이 있었을까?

 

이 팜므 파탈적인 지니아의 정체가 2부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못내 궁금하다.

 

이 네 여자 중에 진짜 도둑 신부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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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전쟁
이종필 지음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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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얼굴을 최초로 공개합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7월 어느 날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동상에 의문의 시체가 내걸린다.

드론이 이송한 시체의 목은 잘리고 몸통만 남아있다.

그리고 그 몸통엔 수많은 타카핀이 박혀서 하나의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성환은 과학기자 하영란에 의해 의문의 사건에 합류하게 되고

이 사건의 배후에 인공지능이 관여하고 있다는 걸 알아낸다.

물리학자, 과학기자, 형사 세 사람은 대명대학교의 문혜진 교수를 찾아간다.

양자인공지능연구소 소장 문혜진은 물리학자 홍경수 교수를 남편으로 두고 있다.

그들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슈퍼컴퓨터 황진이를 국정원 감시하에 운영하고 있다.

그들의 도움으로 성환의 추리대로 광화문 살인 사건이 인공지능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낸다.

 

그러나

성환은 연구소에서 건네준 자료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물어 보기 위해 후배 이찬규와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이찬규는 성환과 만나기로 한 날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그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의심하던 차에 국정원을 감시하는 국가 안보국 소속의 직원이 성환에게 접근을 한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

 

얇은 분량의 책 한 권을 절반쯤 읽었을 뿐인데 양자역학, 인공지능, 국정원, 국가 안보국 등의 단어들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드론으로 옮겨져 광화문 사거리에 마치 처형당한 것처럼 걸려진 목 없는 시체라니.

 

"우르드 프로젝트는 양자역학의 기본원리를 이용, 빛 알갱이로부터 과거의 정보를 수집해 이미지로 만드는 프로젝트 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과거투시경입니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저는 120여 년 전 을미년 시월의 그 끔찍한 만행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신박한 소재였다.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해 빛 알갱이로부터 과거의 정보를 수집한다는 이론을 인공지능 컴퓨터와 연결해서 과거를 투시한다는 발상이나

그 기술로 명성황후 살해를 도운 역적들을 처단하기 위해 그 후손들을 이용한다는 발상도

고종의 밀지를 받은 선조의 사명을 이어 받은 후손들이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다는 발상까지.

양자역학에서 과거투시와 사람의 뇌를 인공지능의 양분으로 삼는다는 색다른 소재들이 이 짧은 분량의 소설에 모두 들어있다.

 

물리학자의 글은 담백하다.

복잡한 이론들을 최대한 쉽게 표현하려는 수고가 보인다.

사실은 좀 짜릿한 뭔가를 더 원했었는데 너무 짧게 끝나 버려서 아쉬웠다.

 

한국이 미래의 과학을 주도한다는 설정에

미처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유령들까지 한꺼번에 처리 한 이 이야기 앞에서 나도 한동안 설레었다.

만약, 정말 이 이론뿐인 기술이 이 이야기에서처럼 실현된다면?

그래서 과거를 투시해서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 끝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다니는 중이다.

잠시지만 책 속에서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대의명분을 위한 인권의 침해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도.

 

읽고나면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이야기다.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같이 읽으면 풍성한 수다가 이루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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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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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내가 맨 처음 터득한 교훈이었다. 매끄럽고 익숙한 표면을 헤치면, 세상을 두 동강 낼 다른 무언가가 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

 

키르케.

섬에 갇힌 마녀.

길 잃은 선원들을 사로잡아 더 이상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아무런 느낌도 없고, 별다른 특징도 없었던 그저 그런 마녀들 중에 하나였던 키르케.

신화에서 단 몇 줄로 요약해 버리는 인물.

 

매들린 밀러의 전작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읽고 리뷰를 쓰지 못했다.

밀러는 독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망설이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내가 알던 아킬레우스가 달랐듯

내가 알던 키르케에 대안 상식을 다 뒤집어엎어 버린 이 이야기 앞에서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

 

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나이아스 사이에서 태어난 키르케.

하지만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겐 신묘한 힘이 있었다.

키르케와 그의 동생들에겐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그걸 제일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이 키르케였지만.

 

영악한 형제들과는 다르게 순수했던 키르케는 그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 혼자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신들과 신들의 관계.

신들과 인간의 관계.

외로웠던 키르케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인간 글라우코스를 불멸로 만들었다.

그렇게 불멸로 다시 태어난 글라우코스는 키르케를 멀리하고 발정 난 암캐처럼 님프들만 좇아 다닌다.

키르케의 운명은 모두에게 버림받는 운명인 걸까?

 

아무도 용기가 없나? 어느 누구도 감히 나를 상대하지 못하겠단 것인가?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닥칠 일들을 나름대로 열심히 기다렸던 셈이다.

 

헬리오스와 제우스의 협약으로 키르케는 섬으로 유배된다.

마법으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사실은 제우스 팀과 티탄족 팀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희생양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키르케는 마녀 수업을 한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너무나 외롭고 쓸쓸해서 내 마음이 다 쓸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운명의 남자가 그곳에 닻을 내린다.

키르케는 이미 아이아이에의 마녀라는 칭호를 얻고 있었다.

그곳을 가끔 찾는 뱃사람과는 다른 그에게 키르케는 마음을 연다.

오디세우스. 키르케의 운명의 남자.

 

나는 엎질러진 물을 두고 우는 여자일까 아니면 매정한 여자일까? 바보 같은 갈매기일까 아니면 사악한 괴물일까?

꼭 둘 중 하나일 필요는 없었다.

 

수 천년을 지나서야 우리는 키르케의 면모를 알게 됐다.

그녀에 대한 거짓과 부풀려진 사악함은 그 배경이 그들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은 쏙 빼놓은 채로

그렇게 키르케의 이름은 더럽혀졌다.

 

어쩌면 저 위대하다고 말해지는 신들 사이에서 가장 위대한 신이 바로 키르케가 아닐까?

 

천 년 동안 고립되었던 외로움과 절망감을 이겨내고

자신을 짓밟은 인간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 하기를 택했던 그녀 키르케.

 

키르케를 읽으면서 나는 저 위대하다고 여겨졌던 신들의 잔인함과 폭력성, 그리고 끝없는 질투와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을 보았다.

신을 누가 관대하다고 했던가!

키르케는 그런 신들의 오만함에 희생당한 하급 신이었다.

그녀가 그 허울 좋은 신의 껍질을 벗어 버린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반성도 없이

스스로 잘난 맛에 살아가는 신들이라면 이제 신물이 난다.

그들이 할 줄 아는 것이란 벌을 주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질투를 하거나, 전쟁을 일으킬 궁리만 하는 것이니까.

 

 

 

 

키르케는 인간을 사랑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주었다는 이유로 그 모진 고문을 감내하듯이

키르케는 천 년의 세월을 섬에 고립되었다.

그걸 견뎌낸 그녀의 인내심은 신들에겐 없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모든 이야기가 매들린 밀러의 손을 거치면 다르게 태어난다.

그래서 이 탐험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잘 못 인식된 캐릭터 안에서 질식사했던 그들이 밀러의 손에서 다시 숨쉬기를 바란다.

키르케는

수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21세기에 진정한 의미로 다시 탄생했다.

마녀는 그 안에 신들까지도 아우르는 힘을 가지고 있다.

키르케가 유배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제우스도 두려워했던 그 힘을 키르케는 쓰지 않았다.

힘을 가지고도 그것을 쓰려 하지 않았던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근본적인 힘을 이해하고, 그것이 불러올 참사를 이해했던 유일한 신. 키르케.

진정 인간을 사랑했던 신 키르케.

신들이 그녀를 마녀로 만들었다.

하지만 키르케는 신도 마녀도 아니었다.

그녀가 가장 원한 건 바로 인간다움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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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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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하길 인간을 망가뜨리는 건 증오와 가슴에 맺힌 응어리라고 한다. 아니다. 인간을 망가뜨리는 건 희망이다. 기생충처럼 안에서부터 갉아먹는다. 상어 위에 매달린 미끼처럼 만든다. 하지만 희망이 인간을 죽이지는 않는다. 희망이 그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다.

 

고속도로 휴게실, 캠핑카, 달리는 차, 고속도로, 납치, 희망.

어딘가에 있다는,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그 부질없는 희망.

고속도로를 달리듯이 속도감 있는 이야기를 만났다.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 펼쳐지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도처에 숨어 있는 이야기 한 편.

다 읽고 나면 한 편의 이야기를 읽은 것인지 여러 편의 이야기를 종합한 것인지 모르게 된다.

디 아더 피플은 더더욱이.

 

다크 웹.

그 안에 그들이 있다. 디 아더 피플.

내 복수를 대신해주고 그에 대한 빚으로 그들이 원할 때 나도 누군가의 복수를 해줘야 한다.

모든 정상적인 것들의 눈을 피해 음지에서 완벽하게 움직이는 알 수 없는 조직.

 

게이브는 그날 이상한 광고 전단지를 덕지덕지 붙인 자동차 뒷좌석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딸 이지를 본다.

설마설마하면서 따라가지만 놓쳐버리고 집으로 전화했을 때는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아내와 딸은 무참히 살해되었고, 경찰은 그를 용의 자로 몰았다.

아무도 그를 믿어 주지 않았고, 그의 과거지사도 털렸다.

 

딸이 살아있다고 말해도 그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고속도로를 전전하는 운전자가 되었다.

딸이 사라진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전전하며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 3년 동안.

 

쵸크맨으로 신성같이 나타나 그 해 여름을 흔들어 놓았던 튜더.

애니가 돌아왔다로 작년에 무수한 의혹(?)을 남겼던 그녀가 그보다 더한 이야기로 찾아왔다.

이쯤 하면 여름의 전령쯤 되려나?

 

죄를 짓고도 합당한 벌을 받지 않는 범죄자가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참히 죽이고도 사소한 벌만 받고 풀려나는 범인을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 디 아더 피플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하지만 당신은 그들을 모른체하는 편이 낫습니다.

당신도 온전하지 못할 테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게 그들의 모토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한데 모이는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튜더만의 방식이 서서히 성립되는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다.

뭔가 독자들이 다 읽고도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를 하나 심어 놓으므로써 내내 자신을 기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능력.

그것이 바로 튜더스러움이다.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이 어쩌다 사고를 내고

어쩌다 일상을 벗어나게 되는 과정이 모질게 그려졌다.

 

인생은 공평하지가 않지. 평범한 사람들이 항상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맞는 말이라서 더 아프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틈새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디 아더 피플은 과연 정의일까?

아니면 정의를 빙자한 자들의 살인 게임일까?

알 수 없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냥 커다란 떡밥이 하나 던져진 거 같다.

몇 년 후에 살이 붙어서 돌아올지 모르는.

 

인간은 궁지에 몰리기 전까지는 자신의 진정한 한계를 알지 못하는 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가장 잔인한 행위는 가장 위해단 사랑의 소산이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나요?

답은 당신의 그 한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영원히 모르는 게 낫다.

이런 일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만 알고 싶으니까.

 

C. J. 튜더는 이번 여름에도 무더위를 시간순삭 하게 해주는 이야기를 들고 왔다.

이미 다음 작품을 집필 중에 있다고 하니 그녀의 왕성한 작품욕이 쉬이 가시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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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지음, 백두리 그림 / 봄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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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여전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다수와 어딘가 다른 모습을 발견하더라도 그를 그 모습 하나로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슬기.

2007년 10월 14일.

자고 일어나니 얼굴 한쪽에 마비가 왔다.

안면 마비.

중학교 1학년이었다.

 

수많은 병원을 다니며 희망을 걸어봤지만 그녀의 희망은 매번 실망으로 끝났다.

원인도 알 수 없는 안면마비는 그녀를 떠나지 않았으니까.

 

중학교 1학년.

14살에 찾아온 그 일을 아이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녀에겐 할머니가 있었고, 엄마가 있었다.

물론 다른 가족도 있었지만 그녀의 글에서 제일 많이 언급된 가족의 이름은 할머니와 엄마였다.

그만큼 슬기 작가가 의지하고, 그녀 곁에 제일 많이 있어 주었던 분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녀의 아픔보다도 사람들의 무신경함에 더 신경이 쓰였다.

그 무신경한 사람들 대열에 나도 들어 있는 거 같아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공감 불능력자들이 많은 거 같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은 아니었나를 되씹어 보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나는 침묵했거나, 외면했거나, 모른척했었던 거 같다.

이유는 치졸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나의 무지였다.

 

아는 척하는 게 왠지 미안하고, 물어보기 겁나고,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슬기 작가의 주변에도 나 같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녀의 고통과 외로움을 같이 느껴봤다.

그녀가 무심코 받았을 많은 상처들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제대로 알기란 참 어려운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그림들은 슬기 작가의 그림이다.

그녀의 아픔을 놀림감으로 생각한 사람들도,

그녀의 아픔을 돈벌이로 생각한 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며 자신들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지 마'는 내가 옳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가르치는 말인데, 아프지 말라고 나한테 가르치는 건가 싶다. 저게 걱정할 때 쓸 만한 말이 맞나? 그리고 아프지 않는 게 내 맘대로 되나? 누구보다 아프면 나부터가 싫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제일 아프지 않고 싶다고. 나도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닌데...

 

 

 

보통 아픈 사람에게 늘 하는 말은 '아프지 마'라는 말이다.

이 말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걸 슬기 작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에게 아프지 말라고 말하는 건 어떤 도움의 소리인 걸까?

앞으로 다른 위로의 말을 생각해 둬야겠다.

 

어떤 원인으로 발병한 건지

왜 치료가 안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아마도 본인 자신이 제일 답답했겠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글이 참 귀엽다.

귀엽다라는 표현을 쓴 건 이 글에서 원망이나 분노가 느껴지지 않아서다.

20대의 그녀지만 아직도 풋풋한 14살 소녀의 모습이 글에 담겨있다.

그래서 글들이 귀엽다.

원망과 분노가 아닌 귀여운 투정의 글이 그래서 더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더 와닿기도 했다.

 

사진 속 내 아픈 표정은 웃음이 될 수도 없지만, 추억이 될 수도 없을 테니까.

 

사진 찍지 말아 달라는 그녀의 요청을 무시하고 대놓고 이상한 사진만 찍어 올린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들이 꼭 이 글을 읽어 보았으면 한다.

자신들이 어떤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주었는지 알고 반성하기를 바란다.

 

나는 슬기 작가가 이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을 단련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을 이미 노출시켰다.

그건 그만큼의 자신감이 만들어 낸 일이다.

성형수술을 고려했던 그녀에게 의사 선생님이 해주신 말은 정말 의사로서 그녀에게 해준 말이니 그녀가 그 말을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

지금의 모습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더 큰 상처를 숨기고 다니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답다는 것은 결국 슬기롭다는 것. 그 자체니까.

 

이름처럼 잘 살 거라 믿는다.

그녀의 글에 담긴 온기처럼.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는 가족들의 사랑 안에서 낯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고통들이 씻길 거라 믿는다.

이 글이 많이 읽혀서 슬기 작가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군가 무심코 그녀의 왼편에 서게 되었을 때 그녀가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슬기 작가님.

이름처럼 슬기롭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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