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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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무게는 살아 내야 하는 하루치의 무게인 걸까.

 

7명의 작가들이 하나의 주제로 7가지 글을 쓴다.

독자들은 그들의 글을 매주 받아 읽는다.

구독자에게 보내는 7인 작가의 에세이.

그렇게 시작된 글들은 이렇게 모여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7인 7색의 글들에 담긴 저마다의 개성이 읽는 '맛'을 가중 시킨다.

 

남는 건 모진 상처와 자괴뿐일 걸 알면서도 감정에 휩쓸려 파탄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럼에도 절대 그 경계선을 넘지 않고 그 바깥에서 단단하게 서서 호흡을 고르며 다른 걸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D는 그런 '어른'이었다.

 

 

회전교차로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맴돌기만 한 김민섭 작가의 멀어진 친구가 김혼비 작가의 친구 D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그때의 그 순간을 조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감상적인 생각을 해본다.

절묘하게 앞뒤로 이어지는 이 고양이 이야기에는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보는 친구들이 나온다.

내가 그들이라면 나는 어떨까?

파릇한 20대라면 나는 회전교차로의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마도 친구 D를 닮으려 노력 중이다.

 

 

 

 

남궁인 작가의 글은 연신 재미지고 즐겁다.

아마도 7명 중에서 독자의 웃음을 책임지는 포지션을 맡았나 보다.

 

사실 나는 이 7명의 작가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분들의 글을 읽은 적은 있지만 어떤 글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은 아는 분들이 있는 거 보면 분명 글을 읽은 적은 있는데 말이다.

다만 내가 요즘 작가들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아서 아는 게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작가분들의 이름을 나에게 각인시켰다.

그분들의 스타일을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되다니 그래서 더 기쁘다.

 

그의 어색한 다가옴을 우리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해야 한다.

축하한다, 어디에서 그걸 살 수 있니, 어디로 가면 그걸 볼 수 있니, 라는 말에 더해, 나는 너를 읽었어, 너를 보았어, 나는 이 부분이 좋았어, 다음에도 꼭 너를 나에게 보여 줘,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친구를 많이 두고 싶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누구라도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보일 수 있고 나는 그것을 그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언젠가는 정말로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진 친구가 되고 싶다.

 

 

김민섭 작가의 친구에 대한 글을 무척 공감하면서 읽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소설보다 에세이가 쓰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에세이를 통해 본 작가들이 훨씬 다정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일상과 그들의 속내를 엿 본 느낌이 즐겁다.

 

이 언젠가 프로젝트가 계속되길 바란다.

멤버는 바뀌더라도.

글을 향한 열망을 가진 새로운 멤버들이 독자와 바로 연결되어 따뜻한 응원을 받으며 자신들의 글을 더 깊이 있게 써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즐거운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무엇을 읽을까? 고민스러울 때 집어 들기 좋은 책이다.

책을 선물하고 싶은데 네가 어떤 글을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하며 건네기 좋은 책이다.

책을 안 읽는 사람에게도 책을 읽게 만드는 책이 될 것이다.

 

누군가 무엇을 먹겠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 싫을 때가 있다.

나도 뭘 먹고 싶은지 몰라서 그냥 '아무거나' 라고 말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들은 친구가 내 입맛에 꼭! 맞는 것을 찾아다 주었을 때 느끼는 그 행복감.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기분이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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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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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역시 그 시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주류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의 표상이 아닐까.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이 말처럼 미술학자 아내가 천문학자 남편의 도움으로 그림 속 우주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리스 신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은 로마식 이름이다.

그러고 보면 별자리의 이름은 거의 로마식이다.

 

첫 번째 파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행성과 그에 관한 신화 속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 파트는 그림 속에 숨어있는 천문학으로 별, 우주, 밤하늘을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파트별로 다루어지는 그림들과 이야기들은 우리가 한 번씩은 어디선가 들어 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뭔가 더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즐거웠다.

얼핏 알았던 이야기들을 정확하게 알게 되는 느낌이 들어서.

 

금성은 비너스의 별이다.

관능적이고, 섹스어필한 비너스는 미의 여신이자 사랑의 여신이다.

 

비너스는 거의 누드화로 많이 그려지는 데 그것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중세의 플레이 보이 정도쯤이라고만 해두자.

 

원래 아름다운 여성의 몸은 풍만한 몸매였다.

트위기 이후부터 비쩍 마른 몸매를 미의 기준으로 삼았다니 트위기가 원망스럽다.

뱃살을 드러내기 위해 옷 속에 말총이나 주석으로 만들어진 미니 패드를 차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든 뱃살을 안 보이게 하기 위해 거들 안에 몸을 욱여넣고 사는 시대인데 말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깎여버리고 모양새를 너무 많이 다듬어 버렸다.

 

 

 

 

명화 속 UFO는 사실일까?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어떤 고대의 유물을 볼 때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관점과 사고로 분석해야 한다고 한다. UFO 그림들에 대한 오해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과거의 것을 보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림 속에서 발견되는 UFO의 증거들을 많은 사람들이 고대에서부터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그런 그림들은 종교적 의미로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설명 없이 그림만 보면 정말 우주선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다.

그림만 보고 나도 깜빡 속았는데 그건 그런 현상을 좇는 사람들의 잘못된 해석이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명화와 관련된 책들을 몇 권 보았지만 이처럼 뭔가 잘 정돈되면서 풍부한 느낌을 가지게 해주는 책은 처음인 거 같다.

표지부터 읽고 싶게 만드는 이 책은 많은 것들을 독자들에게 남겨 준다.

천문학에 대해서 아는 거 하나도 없던 나도 이제 10개의 행성에 대해서는 누군가에게 약간의 설명을 해줄 수 있을 정도는 알게 됐다.

행성의 이름과 관련된 신들의 이야기도,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담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읽기 편했고, 읽는 동안 눈도 생각도 행복해졌다.

 

같은 걸 봐도 우리는 서로 다른 걸 본다.

이 책이 그렇다.

같은 그림에서 뽑아낸 이야기들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느껴본다.

 

그동안 미술사나 명화에 관한 에세이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 책은 집에 두고 간간이 꺼내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미술학자와 천문학자를 통해 본 그림과 밤 하늘과 우주.

정말 신선하고 풍부했다.

내게 다른 시선을 부여해 준 이 책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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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가난의 시대 - 2020 문학나눔 선정도서
김지선 지음 / 언유주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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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우아한 삶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제목을 참 시적으로 잘 뽑아낸 책이다.

그래서 절로 궁금해지는 책이기도 하다.

 

가난과 우아는 공존할 수 없다고 많이들 생각하고 살고 있다.

가난한데 어떻게 우아할 수 있어?

다들 이렇게 생각할 거 같다.

 

그럼 다르게 물어보자.

우아하면 가난하지 않은 걸까?

 

삶은 각자의 멋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 그 안에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며 살아내는 것.

나는 그것을 우아라고 말하고 싶다.

 

남들 눈에 비친 나로 수 없는 헛발질로 기진맥진해서 사는 거보다는

내 안의 나를 보며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을 위해 사는 것. 그게 우아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우아라는 말과 가난이라는 말을 사전적 의미대로만 본다면 이 책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의 사치는 앞이 조망되지 않는 내리막 세상에서 터득한 날카로운 생존 감각인지도 모른다.

 

 

여력이 돼도 택시 타는 걸 사치라고 여기고 못 타는 사람이 있고,

택시는 그저 조금 편하고, 빠르게 가는 이동 수단으로 생각해서 타는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 눈에는 지지리 궁상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 눈에는 아끼는 것이 되고,

어떤 사람 눈에는 돈 지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 눈에는 합리적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학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이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도 이해한 사람이다.

나는 이 책에 담긴 글들이 좋았다.

명쾌하고, 잘 쓰인 글에 읽을 책 목록이 더해지기는 했지만.

 

우리 세대가 집단적으로 망각하고 있는 것은, 가난이다. 사실 우리는 돈이 없다.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이 '팩트'는 일 년 내내 심해에 잠겨 있다가 연말 정산을 할 때쯤에나 슬그머니 수면 위에 떠오른다. 이미 망했거나, 서서히 망해 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어느 시대나 가난했다.

내가 어릴 때나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다들 가난하다.

 

이 가난은 어디서 오는 걸까?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만을 의식한 탓에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길어 올려지는 허기쯤 될 거라 생각된다.

그래서 다들 마음이 가난하다.

그 가난의 깊이를 알지 못하니 물질로서 가난의 잣대를 키운다.

그러니 우아하게 살기는 글렀다.

 

우아와 가난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품위를 지키는 삶.

개성을 가진 삶.

스스로의 기준으로 사는 삶.

그것이 우아한 삶이다.

 

그 우아함을 잃은 우리는 모두 가난하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

우아를 찾는 삶을 살자는 뜻일 게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사전적 의미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겐 닿지 않을 말.

우아한 가난의 시대.

 

나를 찾아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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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 룸
레이철 쿠시너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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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보지 못할 그 길에 사랑을 느꼈다. 참으로 좋고 유익한 길이었다.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좋고 유익하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얼마나 부서지기 쉽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모든 것들이.

 

 

스트립 클럽 마스 룸에서 일하던 로미 홀.

그녀는 몇 달 동안 스토킹 해온 커트 케네디의 머리를 내려쳤다.

타이어 공구로.

그리고 그 장소에 로미의 아들 잭슨이 있었다.

두 번의 종신형을 언도받은 로미는 스탠빌 교도소로 보내진다.

 

 

 

당신은 나를 기다리던 커트 케네디를 발견한 그 밤에 내 운명이 결정됐다고 판단할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내 운명을 결정지은 건 재판과 판사와 검사와 국선변호인이다.

 

처음 만나는 작가 레이철 쿠시너는 범죄와 처벌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자 범죄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교도소와 법원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교도소의 상황은 굉장히 디테일하다.

마치 작가가 직접 수감생활을 하고 쓴 느낌이다.

등장인물들의 범죄행위도 사실처럼 느껴진다.

 

갇혀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자유로웠던 시간에 대한 향수.

거의 왕래 없던 엄마가 법정에 있는 걸 봤을 때 느끼는 안도감.

그녀에게 소중한 아들 잭슨 곁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는데..

그 엄마마저 어느 날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홀로 남은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로미.

그런 로미에게 일말의 동정도 보이지 않는 교도관들.

아무도 로미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그날도, 그날 이후도...

 

 

 

사람들 대부분이 자백을 하는 이유가 교도소에서 평생을 썩고 싶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두 번의 종신형.

로미는 가석방조차도 허락받지 못한다.

남은 생은 전부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로미는 사람을 죽였다.

그건 사실이다.

그것에 대한 죗값은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그 남자는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그녀를 한계점을 몰아붙인 커크 케네디는 과연 무죄인가? 

 

 

 

 

 

책을 읽는 내내 갇혀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들은 사실적이고, 직접적이고, 이해할 수 없었다.

가난과 범죄는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죄를 물어야 하는 법은 진정한 죄를 보지 못한다.

 

로미가 제대로 된 변호를 받았다면 정상 참작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미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국가 교정 시스템은 과연 올바르게 운영되고 있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였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위트는 번역임에도 그 느낌들이 와닿는다.

아마도 영어를 잘해서 원서로 읽는다면 그 묘미를 더 잘 알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작가들로부터 눈여김을 받고 있는 레이철 쿠시너.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었다.

소설 속에서 버무려진 사실들이 읽고 나면 점점히 더 박혀오는 이야기다.

 

억울한 죽음도, 억울한 죄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로미가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그 사실이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법은 공정하게 펼쳐져야 하지만 그리 공정하게 흘러가진 않는 법.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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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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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음에 들지 않았느냐고 다시 물어봤는데, 딱히 이유는 없다는 거예요.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그 말만 자꾸 하더군요.



가가 형사 시리즈 3번째 이야기는 악의다.

두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번갈아 이어지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이야기가 뒤집어지는 묘미를 이 한 권에서 만끽했다.

게이고의 솜씨를 이제야 제대로 '맛' 본 기분이다.

노노구치의 수기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단순해 보인다.

히다카라는 유명 작가의 친구 노노구치는 히다카 덕분에 동화책을 낸 작가이다.

히다카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 잠시 만나러 온 노노구치는 히다카의 냉혈한 모습을 본다.

자신의 마당을 어지럽히는 옆집 고양이에게 농약 경단을 먹여서 죽였다는 히다카의 말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각인시킨다.

그리고 그날 저녁 히다카는 시체로 발견된다.

노노구치와 가가는 예전 중학교에서 같이 교편을 잡았었다.

히다카의 살인 사건을 담당한 가가는 그곳에서 노노구치를 만난다.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가가답게 이 이야기에서도 남다른 트릭으로 모두를 속아 넘긴 범인의 수법에 유일하게 속지 않는다.

유명한 작가의 뒤에 고스트라이터가 있다.

친구의 아내와 불륜의 상대가 되어 친구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다 도리어 친구에게 발목 잡혀서 그의 영원한 그림자가 된다.

노노구치가 그랬다.

히가타의 악랄함이 그를 그의 그림자로 만들었다.

순간적인 살의에 의해 히가타를 죽이게 된 노노구치는 시한부 인생이다.

위암이 재발해서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노노구치를 히가타는 놓아주지 않았다.

게다가 노노구치는 사랑하는 여자가 그 일로 자살을 했다고 생각했다.

노노구치는 자기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인은 벌어졌다.

근데.

정말 그게 다일까?


당신이 최대한의 집념을 기울여 만들어낸 프로그램은 히다카씨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살인 또한 그 프로그램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노노구치 씨~ 그 솜씨로 스릴러를 한 편 써보지 그러셨어요? 그랬다면 대박 장르 작가가 되었을 텐데.

기록이란 살아남은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노노구치의 기록은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한다.

게이GO에게 농락당하는 느낌이 썩 괜찮다.

이것은 반전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의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슴덩슴덩하게 써 내려가는 게이고의 필력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어디에나 있다는 학교폭력.

그것은 그 시절에 끝나는 과거가 아니다.

언제나 현재에서 불쑥불쑥 내가 가장 정점을 찍을 때 나타나서 나를 나락으로 끌고 간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 했다.

그토록 겪어 본 사람이.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사람이.

결국 자신의 과거 때문에 가장 소중했을 사람에게 더 없는 해를 입혔다.

"악의" 라는 단어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르게 느껴진다.

악의란 결국 스스로의 이기심이 자아낸 자기방어가 아닐까?

나쁜 마음은 스멀스멀 자라난다.

스스로 마음먹기도 전에 마음에 뿌리를 박아 버린다.

이 이야기의 끝 가가의 말에서 나는 악의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됐다.

악의란

삐뚤어진 가치관이 심어 놓는 자기방어다.

스스로는 절대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없다.

누구도 그 잘못을 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

자기방어란 그런 것이니까..

가가도 결국 그 악의를 헤아리지 못했다.

그것은 평생 그의 가슴에서 녹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가가 인간적인 형사로 남을 수 있는 지렛대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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