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바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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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부탁이 있어. 알아봐 줬으면 하는 게 있거든. '마리아 님은 집에 언제 돌아왔지?'라는 거야. 성모 마리아의 마리아야. 성경이나 다른 어딘가에 실려 있을 것 같은데, 조사해 줘. 다시 말하는데 나한테 아주 중요해. 잘 부탁해.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을게.

 

 

 

1년 전 오빠가 죽었다.

오빠의 비보를 들은 후에 뒤늦게 도착한 오빠의 엽서엔 '마리아 님은 집에 언제 돌아왔지?'라는 뜻을 알아봐 달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나오코는 친구 마코토와 함께 오빠가 묶었던 산장으로 향한다.

자살로 판명된 오빠의 죽음이 석연치 않았던 나오코는 오빠가 죽은 산장의 오빠가 쓰던 방을 예약한다.

산장에 도착해서 나오코는 그곳에 해마다 같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은 건 오빠만이 아니었다.

 

 

 

원래 영국 사람의 별장이었던 그곳은 펜션으로 운영 중이었다.

영국 냄새 물씬 풍기는 산장의 방엔 방마다 각각의 이름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벽걸이가 걸려 있었고, 그 벽걸이엔 머더구스가 적혀 있었다.

영국의 동요가 방방마다 적혀있는 산장.

오빠는 정말 자살한 게 맞는 걸까?

 

 

 

여기에 모두 모이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나오코와 마코토는 머더구스를 토대로 죽음을 추리한다.

방마다 걸려 있는 벽걸이에 적혀있는 머더구스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누군가 무엇을 감추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밀실 살인 사건을 어떻게 풀어내는 냐에 초점을 맞추게끔 짜여 있다.

그래서 한 우물만 파듯이 어떻게 자살이 아닌 타살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느라 머리에 쥐날 거 같았다.

게다가 해마다 일정 기간을 같은 곳에서 묶는 단골들 중에 범인이 있을 거라 믿었기에 그들의 캐릭터를 점검하느라 줄곧 빈틈을 찾아 헤맸다.

어째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의 달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나오코와 마코토가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고 조용히 오빠의 죽음을 캐던 중 나오코에게 관심을 보이던 오오키가 죽는다.

술에 취한 오오키가 실족사했다는 사고사로 결정될 즈음 마코토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낸다.

산장의 모두가 모여서 파티를 했던 그 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던 그 시간.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던 오오키의 죽음은 사고일까? 타살일까?

 

이야기의 끝에 마주치는 반전. 그리고 반전.

이 사연 많은 산장의 나머지 이야기는 끝까지 읽어야만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야 게이고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이건 그저 나의 생각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이 펜션은 비밀 투성이었고, 그 비밀은 암호가 되어 방방마다 걸려 있었다.

그것을 알아낸 사람들은 차례로 죽음과 마주했다.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영혼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영원한 파수꾼으로 남아야 하는 사람들.

그것을 알아내더라도 그들은 절대 이전과 같은 삶을 살지는 못할 것이다.

 

이중삼중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훔친 히가시노 게이고.

단순한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덤볐다가 뒤통수 맞은 느낌이다.

 

남의 비밀을 알게 되면 가슴에 묻어라.

그 비밀로 이득을 보려 하지 마라.

결국 그 비밀은 파 헤져치는 순간 내게 칼날이 되어 박힐 것이니.

 

남의 것을 탐하지 마라.

그것은 결국 누구의 것도 되지 못하리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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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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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가 배경인 난장이 연작 소설을 모은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제목이 의미하는 느낌이 책을 읽고 나면 진하게 느껴진다.

미비하지만 그 파장은 거대함으로...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자네의 마음야.

 

 

무엇이 이 마음을 먹게 했을까?

난장이는 그날 밤 휘발유와 함께 허공에서 불기둥을 솟게 한 그곳에 무엇을 두었을까?

꼽추는 왜 난장이와 함께 가지 않았을까?

 

 

첫 이야기부터 질문이 머릿속에서 난무한다.

아직 내가 글의 행간을 다 헤아리지 못한 탓이다.

답도 없고, 비전도 없어 보이는 철거민들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마치 2020년의 어느 한 모습을 축소해서 벼려 놓은 거 같은 배경이다.

 

 

어디에나 난장이의 흔적이 있고

누구에게서나 난장이의 모습이 보인다.

 

 

공무원 월급표를 보면 뒷집 남자의 월급은 남편의 월급보다 사뭇 적다. 단출한 식구에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자기네는 조용한데, 많은 식구에 적은 월급을 받는 뒷집은 흥청댄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귀가 아프게 들어온 잘살 수 있는 세상이 뒷집에만 온 것 같다. 뒷집에 가난은 없다. 그래서 신애는 생각한다. 저 집은 도대체 어느 편인가? 우리는 또 어느 편인가? 그리고 어느 편이 좋은 편이고, 어느 편이 나쁜 편인가? 도대체 이 세상에 좋은 편이 있기는 한가?

 

 

 

은강이란 곳의 가장 소외계층 난장이 가족.

난장이와 그의 아이들의 모습은 최하층민을 상징한다.

영수, 영호는 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취직한다. 영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며 세상을 알아간다.

부당함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 말은 묵살되고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다.

부당한 세상에서 부당함을 말하면 부당함은 말한 사람에게 당연하게 되돌아오는 법이지.

 

 

197X년, 한국은 죄인들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2020년에도 죄인 아닌 사람이 없는 한국.

그래서 이 이야기는 시대를 거슬러서도 여전히 우리를 말해주는 작품인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높은 곳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이야기의 얼개가 연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난장이의 아픔으로 이끈다.

난장이는 바로 우리 모두이기에.

 

 

 

아버지의 시대가 아버지를 고문했다.

 

 

희망으로 차 있는 겉모습에 가려져 피눈물이 보이지 않았던 70년대.

희망찬 구호 아래 힘없이 쓰러져갔던 무수한 사람들의 희망과 꿈이 이 작품 안에 오롯이 담겨있다.

그래서 읽으면서 내내 암울했다.

그 어두운 터널은 현재에도 계속 남아있고, 난장이들은 아직도 그 터널 안쪽에서 빛을 향해 끝없이 걷고 있을 테니.

 

 

같은 세상에 살면서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생각의 차이.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가진것과 못 가진 것의 차이.

무수한 차이들이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게 만들었다.

같은 얘기를 하지만 서로가 모르는 말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더 슬프다.

 

 

모두가 좋은 세상, 더 나은 세상, 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결이 다를 뿐

세상은 언제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소통하지 못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뿐이다.

 

 

현대 문학으로 탄생해서 고전이 되어가고 있는 작품을 만났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 공들은 허공을 날아 저마다의 가슴에 안착할 것이다.

 

 

그것이 모두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깃발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10년 뒤에 다시 한번 읽었으면 좋겠다.

그때의 나는 이 작품을 어떻게 또 해석하게 될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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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브라더스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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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많은 사람이 다 지면서 살고 있다. 지면서도 산다. 어쩌면 그게 삶의 숭고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갑자기 만화가 그리고 싶어졌다. 지면서도 살아가는 사람들. 매일 검붉은 노을로 지지만 다음 날 빠알간 햇살로 빛나는, 태양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졌다.

 

 

 

고단하고 찌질한 이야기를 구질구질하지 않게 쓰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작가가 바로 김호연이다.

인생의 실패자들과 삶의 패배자들의 조합이 유쾌할리 없다.

근데 실로 유쾌하다.

이유가 뭘까?

 

 

기러기도 못돼는 펭귄 아빠 김 부장.

황혼 이혼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는 싸부.

사시를 포기하고 공시에 도전해보는 고시원생 삼척동자.

이들이 명색이 이름만 남은 만화가 오영준의 망원동 옥탑방에 한 명씩 고개를 들이밀고 들러붙는다.

 

 

사회적인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그들은 낙오자들이고 패배자들이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기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자기 자리가 어딘지 알지 못하고,

자기 자리에서 안주하지 못하는.

 

 

그 8평 남짓의 옥탑방 집주인 슈퍼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찾지 않은 지 오래된 망원동 오지라퍼다.

집 나간 아들 대신 손자 석이를 키우며 복덕방을 하는 집주인 할아버지의 잔소리는 옥탑방 브라더스들을 더 쓸모없게 보이게 할 뿐이다.

빈대, 기생충, 바퀴벌레 같은 그들을 내치지 못하고 집안에 들인 만화가는 살기 위해 거들떠도 안 보던 학습지 만화를 그리고 있다.

 

 

그들 모두 한때 잘나가던 자들이었다. 한때는.

 

우리는 모두 왕년에는, 나 때는, 이라고 시작할 말들이 있다.

저마다의 가슴에 깃발처럼 꽂혀 있는 자신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왕년은 과거일 뿐이고, 나 때는 라떼가 된지 오래다.

현실은 그들의 발목을 잡고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낙오자가 되었다.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으면 되지, 뭐."

"씨발, 인생 한 번 사는데 마누라랑 애새끼 가질 자격도 없으면 그게 인생이냐? 난 마누라도 둘은 가지고 싶고 애도 셋 이상은 낳아야 되거든. 그러니까 졸부가 돼야 한다고. 너랑은 삶의 태도가 달라요."

 

 

 

 

생각의 차이는 삶의 차이를 가져오고, 삶의 차이는 결국 욕심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이 대책 없어 보이고, 가슴에 가득 무언가를 담고 있지만 현실에선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남자들이 참 안쓰러우면서도 그들 어깨에 놓인 짐들 때문이 가슴이 시려왔다.

그래서 망원동이라는 이름이 망한 사람들의 원망이 스며든 곳이라는 느낌으로 자꾸 읽혔다.

마치 그곳을 벗어나면 그 모든 현실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을 거 같은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아갔다.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오뚝이처럼 오똑오똑 일어났다.

강펀치를 때리면 그럴수록 더 발딱 빠르게 일어섰다.

 

 

 

텐트 아래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 한 손엔 전화기를 한 손엔 메모지를 들고 자기 인생을 적어나가는 사내. 그 모습에 어느 정도 고무된 나도 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가정이 있든 없든

이 사회가 남자들에게 지게 하는 삶의 무게가 찌질하지만 구질하지 않게,

한심하지만 유쾌하게,

답답하지만 부지런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멈춰서 답이 보이지 않는 인생에서 잠시도 쉰 적이 없다.

그리고 포기할 수도 없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인연으로 기생하며 공생하게 된 그들은 어느새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으니까.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그래서 더 짠한 마음이 드는 망원동 브라더스.

가족을 잃은 사람은 사랑을 찾고,

가족을 멀리 보낸 사람은 보금자리를 찾고,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한 사람은 드디어 닻은 내렸고,

자신감이 부족했던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찾아냈다.

 

서로가 서로에게 쓴소리를 할망정 서로를 보살피는 마음들이 읽는 내내 망원동과 겹쳐진다.

아직 예전의 모습들이 남아 있는 정겨운 동네는 사람들 마저도 그렇게 필연으로 엮어 내는구나.

한 건물에 살면서도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삶이 도처에서 서로를 외롭게 만드는 이 사회에서 망원동 브라더스는 가족 아닌 가족이 되어 서로를 보살피고 있었다.

 

망원동.

먼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망원정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그래서 그런지 망원동 옥탑방 브라더스는 그곳의 기운을 담뿍 받아 자신들의 미래를 잘 헤쳐나갔던 게 아닐까.

 

현실에 존재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고

그들의 속마음을 살짝 엿본 기분이다.

 

삶의 무게는 저마다에게 있지만 가장의 무게는 그보다 한층 더 무겁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랑님에게 좀 더 잘해주어야겠다는 친절한(?) 마음이 덤으로 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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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스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0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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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하인드가 엄청난 매력의 소유자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영향권을 벗어나자, 해미시는 이상하게도 그에게 혐오스럽다 할 만한 기분이 들었고, 왜 그런지 궁금했다.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의 10번째 이야기는 아도니스의 죽음이다.

 

아도니스는 그리스 신화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연인이다.

사냥을 좋아했던 아도니스는 결국 멧돼지에게 죽임을 당하고 아프로디테에 의해 꽃으로 다시 태어난다.

아도니스가 죽어서 피어난 꽃이 바로 아네모네이다.

 

해미시는 프리실라와 약혼 상태로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이다.

하지만 프리실라는 해미시를 성공시키기 위한 자신의 야망을 버리지 못하고, 해미시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프리실라에게 짜증이 난다.

 

몇 달간 조용한 로흐두 마을에서 조여오는 프리실라의 보살핌에 갑갑하던 해미시는 인근 관할 지역인 드림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관할 지역을 둘러볼 겸, 프리실라에게서 벗어날 겸 드림을 찾은 해미시의 눈에 피터 하인드는 눈부신 미모로 호감을 주었지만 그를 만나고 난 뒤에 해미시는 묘한 불길한 마음을 느낀다.

 

평소에는 게으르고 마을 사람들에게 빌붙는 짓도 서슴없이 하는 뻔뻔함의 대명사인 해미시지만 범죄에 관한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촉'을 가졌기에 피터가 드림 마을에 몰고 올 광풍을 미리 짐작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게다가 피터가 로흐두를 찾아와 프리실라와 함께 저녁을 먹는 모습을 보고는 꼭지가 돌아서 프리실라의 호텔에 새로 온 소피와 저녁 약속을 한다.

소피는 노골적으로 해미시가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고 헤어질 때마다 키스를 하는데 그 모습을 꼭 마을 사람들에게 들키게 된다.

그로 인해 해미시와 프리실라 사이에는 묘한 갈등이 시작되고, 해미시는 프리실라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왜 사람들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아주 귀한 선물임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물론 지금 이 순간, 이 일개 경찰관의 삶은 프리실라와 소피 덕분에 전혀 행복하지 않기는 했다.

 

 

시체 없는 살인사건.

 

프리실라와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드림에서 한 소녀가 찾아와 살인사건을 신고한다.

해미시가 우려했던 피터가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림 마을 사람들은 그가 한밤중에 마을을 떠났다고 말한다.

그가 떠나는 걸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그는 자신의 집을 팔고 마을을 떠났다.

마을 여자들에게 무수한 상처만 남기고.

 

 

해미시는 혼자 피터의 행방을 쫓는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싫어하는 블레어는 물론이고, 그를 승진시켜주고 지지해 주던 총경마저 해미시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

휴가를 내고 진실을 쫓는 해미시.

 

드림 마을을 송두리째 들었다 놨다 했던 피터.

드림 마을 여자들의 아도니스는 과연 어디로 사라진 걸까?

살인 사건을 신고했던 헤더의 말처럼 살해당한 걸까?

그 와중에 헤더의 엄마가 해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녀의 죽음을 사고사로 결정 내버리는 블레어.

사고를 의심하는 해미시.

이번에도 해미시의 '촉'이 맞을까?

 

이 사건을 좀 더 파고들지 않는다면, 죽는 날까지 후회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해미시는 게을렀다. 하지만 인간의 목숨을 앗아 가는 일은 최악의 범죄였고, 그는 베티의 죽음이 사고사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감정을 조정해서 서로 반목하고 질투하게 만드는 능력도 능력이라면 피터는 능력자였다.

피터의 등장으로 로흐두보다 조용했던 드림 마을은 활기를 띠는 거 같았다.

마을 여자들은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 돈을 썼고, 피터의 눈에 들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그녀들의 남편들은 그런 피터에게 분노를 느꼈고, 그가 마을을 떠나기를 바랐다.

 

스코틀랜드 고지 마을의 외지인에 대한 배척은 끝을 모르고, 웬만한 사람들은 정착하기 힘들다.

그런 곳에서 화려한 미모를 자랑하며 마을 여자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아도니스의 끝이 좋을 리는 없다.

 

전편에 이어 드디어 이루어진 프리실라와 함께 아름다운 사랑을 일구어 갈 거라 믿었던 해미시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사랑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춰가야 한다는 걸 프리실라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프리실라라는 상류로 가는 연줄이 끊긴 해미시는 살인 사건을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 때문에 강등되고 만다.

 

이 이야기에서 해미시에게는 시련이 겹친다.

사랑도 지위도(원래 원한적 없긴 하지만) 잃은 해미시는 예전의 그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해미시라는 캐릭터가 점점 좋아진다.

해미시가 가진 삶의 철학이 좋고, 그걸 지켜내는 그의 강단이 좋다.

출세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지켜내는 이는 드물기에 그런가 보다.

 

이 시리즈의 매력은 끝이 없는 거 같다.

매번 사람의 본능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담겨있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작가의 혜안이 가볍지만 진중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리즈다.

 

그래서 가볍게 읽고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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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 - 넘어져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법
캐런 리날디 지음, 박여진 옮김 / 갤리온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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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이 세계로 초대하려 한다.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이 주는 즐거움의 세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무슨 일이건 새로 시도할 수 있는 세계로 말이다. 혹시 아는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가 넘어졌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재능을 찾게 될지? 그러나 이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최종 목표 따윈 없다.

 

 

 

하퍼콜린스의 편집장이자 영화 <매기스 플랜>의 원작자인 캐런 리날디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던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마흔 넘어 서핑을 시도하면서 그녀가 겪은 일들에서 깨달은 삶의 의미를 담은 이야기다.

 

 

 

서핑을 시작하고 5년 만에 겨우 파도를 잡았다는 그녀.

서퍼가 되려고 무수히 많은 상처를 얻고, 응급실까지 갈 상황에서도 그녀가 서핑을 놓지 못한 이유가 뭘까?

 

 

 

서핑을 아주 능숙하게 해내는 서퍼가 되었다면 이런 글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무엇이든 척척해내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서핑은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일이지만 잘 못하는 일이기도 했다.

즐기지만 잘 못하는 그 일. 서핑을 통해 파도와 무수히 싸우며 얻어낸 그녀만의 생각들이 지금 나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잘하는 무언가를 찾아서 늘 고민하고, 도전하고, 잘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삶들을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것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노력하는데서 오는 쾌감.

잘 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하는 동안은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

잘 못하지만 꾸준히 함으로써 남들에게 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

 

그녀가 끝없이 다르게 달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것에 부딪혀 허물어지면서 깨달은 건 무엇일까?

그녀는 왜 우리에게 잘하지 못해도 시도해 보라고 말할까?

 

                            

못하는 일을 하면 삶의 어려운 순간을 재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이를 지나게 되면 안주하게 된다.

그 안주함이 새로움을 자꾸 배척하고, 새로운 시도를 묵살한다.

해보려는 시도 대신 하면 안 되는 핑계를 계속 찾아서 스스로를 이해시키려 한다.

 

이 책엔 그런 것들이 없어서 좋다.

포기하는 것도, 나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된다는 말들이 없어서 좋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잘하는 걸 더 잘해라 하지 않아서 좋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파도와 맞서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끈기가 주는 용기가 실로 대단하다.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하니까.

 

잘 못하는 것이라도 그 시간이 즐겁다면

나 자신을 위해 그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자.

최소한 나는 그 "못함"을 즐겼으니까.

 

새로운 도전 앞에서 늘상 핑곗거리만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 책을 읽으면 그 핑계가 사라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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