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후 20여 년 동안 리궈화는 자신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여학생들이 세상에 널렸다는 걸 알았다.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에게는 최고의 방패였다. 여학생을 강간해도 세상은 그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그년ㄴ 그의 곁으로 되돌아왔다. 죄책감은 아주 오래된 순수 혈통의 양치기 개였다. 어린 학생들은 온전히 걷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일어나 뛸 것을 강요당하는 어린 양이었다. 그럼 그는 무엇일까?

 

 

 

고통을 담아내는 그릇은 제각기 다릅니다.

이 책에 분노는 없습니다.

대신 사랑이 넘칩니다.

아름다운 문장들에서 눈을 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픕니다...

 

 

팡쓰치는 13살 나이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학원 선생 리궈화에게 강간 당합니다.

아이는 그것이 강간인줄도 모르고 선생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게끔 리궈화는 팡쓰치를 세뇌시킵니다.

 

 

13살 어린 소녀는 끝없는 고통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선택을 합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고발하지 않습니다.

"사랑"

팡쓰치는 그 모든 걸 사랑으로 만듭니다.

그래야 자신이 덜 더럽혀지고, 덜 상처받는다고 생각하니까요.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그물을 쳐 어린 소녀를 가둬놓고 끝없이 유린하는 리선생에게 죄의식은 없습니다.

쓰다 버리면 그뿐. 이니까요...

 

 

 

이원은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그녀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소녀들 이팅과 쓰치와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자신의 어둠을 감추느라 쓰치에게 드리워진 어둠을 볼 수 없습니다.

 

 

이원은 또 다른 팡쓰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원과 쓰치는 서로 모습이 참 많이 닮았습니다.

쓰치는 어린 이원이고, 이원은 어른 쓰치였습니다.

어쩜 이원은 작가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걸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려 해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과거의 악몽이 남편의 폭력으로 표현된건지도 모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는 많은 신호가 담겨 있습니다.

잘 포장하고, 완벽하게 단도리 했어도 결국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징후들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징후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필독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단 하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악마가 어떤 덫을 놓고 어린 소녀를 유인해서 자신의 욕심을 끝없이 채우는지

왜 아이는 그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왜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지

우리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위대해졌을 작가를 잃었습니다.

그녀가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작가가 모든 폭력에 무지한 우리 모두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경고"의 책입니다.

가장 지독한 폭력의 희생자인 그녀는 가장 시적인 표현으로 그 아픔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치열하게 담담한 말로...

 

 

 

이 대한민국에서 살아오는 동안 자잘한 성폭력을 한 번도 안 당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더러워서 잊고 싶지만 살면서 문득 떠오를 때의 그 치욕과 수치심은 그 폭력의 수위에 의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그것에서 수치심을 받았다면 나도 희생자입니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이제야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를 위해서입니다.

피해자를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누군가의 도움의 눈길을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 줄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녀를 잃었습니다.

그녀와 같은 그녀들이 다시는 희생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 우연한 사랑, 필연적 죽음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박이서 등 16명 지음 / 푸른약국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낯선 이름들이 늘 보던 이름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처럼 이 소설들엔 얼굴은 모르지만 익히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는 걸 알고 읽는 느낌은 스릴있습니다. 누구일까? 를 추리해보는 시간이 즐거울 거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 소리 없이 누운 자리만 남았다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지안 등 13명 지음 / 푸른약국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궁금해하던 책입니다. 익명의 작가, 무명의 작가들이 쓴 이제 막 독립한 글들. 알처럼 품고 있던 이야기들이 세상에서 어떤 빛을 발할지 기대되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떠도는 땅
김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갓난아기와 황 노인. 금실은 문득 그 둘이 '한 인간'만 같다. 한 인간의 최초와 최후가 함께 열차에 실려가는 것만 같다. 열차가 마침내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그 한 인간의 최초는 사라지고 최후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화물열차에 실려 떠난 것은 사람이었다.

사람임에도 사람 취급받지 못했던 조선인.

낯설고, 말설은 러시아의 척박한 땅에서 악착같이 무언가를 일구어냈던 조선인.

 

 

내 나라 땅을 강제로 점령한 일본을 피해 춥고, 메마른 그곳으로 떠났던 그들.

그곳에서 그들은 조선인도, 러시아인도 아닌 채로 살아내야 했다.

겨우 일궈 놓은 그들의 삶은 어느 날 강제 이주 명령에 의해 또다시 정처 없는 길을 떠난다.

 

 

누구는 제가 지은 집을 부셔놓고.

누구는 쓸만한 물건들을 모두 땅속에 묻어 놓고.

누구는 돌아올 남편을 위해 감자를 삶아 놓고, 옷가지를 곱게 개어 놓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질질 끌며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떠났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떻게 또 살아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탄 화물열차가 그들의 땅이었고, 그들의 잠자리였고, 그들의 한 가닥 희망이었다.

새로운 곳은 더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지만

그런 꿈은 몇 날 며칠 끝도 없이 흔들리는 땅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다.

 

 

 

레닌이 지주들 땅을 몰수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기로 했다는 소문을 듣고 내가 콧방귀를 뀌었지...아, 레닌이 땅을 모르는구나... 땅을 공평하게 나누는 건 불가능해....

 

 

 

늙은 부모들이 그저 땅을 일구며 살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들의 자식들은 러시아 혁명 속에서 공산당이 되어 러시아인이 되고자 하였지만

그들은 일본의 스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그 자리마저도 보전하지 못했다.

 

 

저마다의 슬픔과 사연들이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뿌연 먼지와 함께 흔들린다.

두서 없이 여기저기서 자신들과 마주하는 앞사람이거나 옆 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

한 토막씩 건네지는 이야기에 구구절절하지 않은 사연은 없다.

 

그들에겐 이념도, 전쟁도, 나라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내 핏줄들과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공산당에 가입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 조선인들도 소비에트 인민이 돼야 한대요."

"그 전에 러시아인이 돼야 해."

 

 

 

 

그들 중 그 누구도 러시아인이 되지 못했다.

그들의 생김새는 러시아인이 될 수 없었다.

차별 없다던 공산주의마저도 그들을 차별했다.

부르주아도 아닌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인간이 땅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더군. 인간은 살아 있을 때는 땅의 종으로 살다, 죽어서는 썩어 땅의 거름으로 쓰이니 말이야.

 

 

철저하게 한국인이자 농민이었던 그들에게 러시아의 화물기차는 어떤 의미였을까?

 

하룻밤 사이에 자신들이 일군 땅에서 강제로 쫓겨나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향해 가는 기차 안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려인.

까레이스키.

 

 

 

슬픔이 옅어진 사람들 얼굴에 절망, 분노, 원망 같은 악의적이고 파괴적인 감정이 뒤섞여 빚은 표정이 어린다.

 

 

 

김 숨식 대화법에 조금 길들여질만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들은 버려진 땅에 버려졌다.

버려진 그들은 땅을 파고 그곳에 터전을 마련한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아이들이 자랄 수 있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

 

 

설국열차가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반란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앞 칸으로 나아가지도 못했지만

자신들이 버려진 땅에서 잡초처럼 다시 살아내었다.

 

 

그것이 바로 조선인이었다.

그들이 고려인이었고.

그들은 까레이스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니!" 이 말은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어떤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1977년 10월 25일.

롤랑 바르트의 마망이 돌아가셨다.

22살에 첫아이를 낳고 23살에 전쟁미망인이 되었다.

그리고 여든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글들은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날부터 적은 짧은 단상들을 모은 책이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메모지에 짤막한 생각들을 적어 두었다.

2년간 계속된 메모들은 그의 책상 위에 둔 케이스에 담겼다.

 

롤랑은 어머니 사후 2년 뒤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자살로 보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짧은 글들엔 상실과 슬픔들이 존재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동안 옆에서 간호했던 롤랑의 슬픔들이 곳곳에서 송곳처럼 날카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녀를 돌본 지난 6개월 동안에는 정말 그녀가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내가 글을 써왔다는 사실을 나는 완전히 잊어버렸었다. 나는 오직 그녀를 위해서만 존재했었다.

 

 

어머니 곁에서 보낸 6개월 동안 점점 쇠락해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던 아들의 마음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글을 써왔다는 사실까지 잊을 정도로 그는 어머니에게 헌신했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신 세상에서 그가 느끼는 상실감은 누구라서 헤아릴 수 있을까.

 

이제 나는 그녀없이 흘러가게 될 긴 날들의 행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롤랑은 어머니에게 심적으로 많이 기대었던 거 같다.

그의 마망은 모든 어머니가 아들에게 그렇듯이 정신적인 지주였을 거라고 생각된다.

단지 임종을 지키는 것과 몇 달에 걸쳐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을 지켜본 사람의 마음은 다를 것이다.

더 복잡하고 외로운 마음이 깃들어 있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역할의 혼란] 수개월 동안 나는 그녀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내가 잃어버린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 나의 딸이었던 것처럼.(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너무도 사랑했었고 너무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내가 죽고 또 그들보다 오래 살았던 이들마저 죽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거라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죽어서도 계속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내가 살았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슬프기만한 수 많은 아침들...

 

 

 

긴 글들이었다면 마음을 쏟아내었겠지만 짧게 남긴 단상들은 못다 한 이야기 같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상실의 고통을 느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쩜 그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그리워하는 마음

빈자리에 남겨진 외로움

다시 볼 수 없는 상실감

누구도 다 이해할 수 없는 그만의 감정들.

 

어느 날 불쑥 찾아올 죽음 앞에서

이제 대할 수 없는 마망의 고결함 앞에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마망의 그 빈자리에서

자라는 슬픔을 본다.

 

하나의 세계가 닫힌 그 너머에서 홀로 견뎌야 했던 외로운 영혼의 글들 앞에서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