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는 곰
뱅상 부르고 지음, 박정연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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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리고 나는 또 다른 것들을 알고 있었다.

근사했다!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곰.

나는 곰과 사랑에 빠졌다.

서로가 알고 있던 모든 걸 나누며 행복했던 시간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사.라.졌.다.

 

 

 

 

 

 

 

그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많은 남자들이 곰을 대신해 나를 찾았지만 그 어떤 남자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잊으려 노력했다.

일상을 살고

사람을 만나고

파티에 갔다.

 

그리고.

어느 파티에서 곰을 만났다.

그는 나를 기억 못 했지만.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작.

또 그가 떠나면 어쩌지?

나는 그를 감시했다.

 

한 번 떠난 사람은 언제든 또 떠날 테니까.

 

그리고 곰은 또 나를 떠났다.

 

나는 그의 뒤를 밟았다.

잠옷 바람으로 길을 걷고, 기차를 타고, 곰이 들어간 숲에서 길을 잃었다.

 

그녀는 곰이 사라진 일상을 살아내야 했다.

숲에서 그녀를 구해준 남자와 함께 일상을 살고.

아이를 키우고.

여러 해를 보냈다.

 

잊혀질때쯤

파티에서 곰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춤을 추었다...

 

 

 

 

 

 

 

 

 

 

 

감각적인 그림이 이야기를 대신한다.

막바지에 이른 그들의 페이지는 춤으로 사라진다. 점점이.

 

곰은

모든 것을 주고받았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라져서 더는 찾을 수 없는.

 

일상으로의 회귀.

삶을 살아내지만 비어진 한 귀퉁이에선 끝없이 손짓하는 무언가가 있겠지.

 

결국은

나머지 삶은 추억 속에서 사는 것이다.

다시 만나면 어떨까?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함께 있다면 우리는?

 

추억을 소환한 상상 속에서 나는 다른 삶을 살고

현실에선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지.

 

빨강에서 분홍으로 그녀의 삶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녀는 곰과 함께 춤을 추며 페이지 너머로 사라진다.

 

그 너머에서 그들은 춤을 추며 살 것이다.

다시 사라지지 않고,

다시 헤매이지 않고,

다시 떨어지지 않고,

다시 그리지 않고.

 

이 책은

읽는 이의 경험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도

이야기의 맺음도

다르다.

 

모두가 곰과 그녀를 자기 경험으로 해석할 테니.

그래서 늘 새로울 이야기다.

 

사랑은.

그때그때 달라요.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

언제 하느냐에 따라

내 마음가짐에 따라

상대 마음에 따라

 


 

참 세련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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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내
A.S.A. 해리슨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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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그녀도 알며, 그녀가 안다는 사실을 그도 안다. 요는 가식. 중요하기 그지없는 가식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공공연히 선언되지 않는 한.

 

 

 

길버트 부인.

그녀의 공식 이름이다.

그녀와 토드는 이십여 년간 부부관계를 유지한다.

토드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지만 언제나 돌아왔다.

그녀는 그런 그를 두고 본다. 그를 위해 집을 가꾸고, 요리를 한다.

언제나 토드의 자리는 자신의 옆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나타샤는 스물한 살의 여대생이자 토드의 절친 딘의 딸이다.

바람을 피우고 피다가 결국은 친구 딸과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

게다가 그 아이는 임신까지 했고,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모든 건 그냥 지나갈 거야.

그전과 동일하게.

 

심리 상담을 하며 자신의 영역을 일궈 나가는 조디.

건축일에 종사하는 토드.

남부럽지 않은 이들의 겉모습은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는 울타리 구실을 할 뿐이다.

아이 없이 사는 두 사람만의 관계는 토드가 아이를 갈망하면서 틈이 생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었던 토드의 바람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올 거라 믿었던 조디에게 토드는 자신의 집에서 나가달라는 강제 퇴거 집행을 한다.

 

이런 적은 여러 번 있고, 지금도 그중 하나다. 토드와 결혼하지 않은 게 어쩌면 실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때. 때로는 어째서 결혼에 그처럼 극렬히 반대했는지 기억해내기도 힘들다.

 

 

 

조디와 토드는 사실혼 관계였다.

법적으로 조디는 토드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20여 년간 같이 일군 이 모든 것들에 그녀의 몫은 없다.

그녀는 토드가 선심 쓰듯이 다 가지라고 말한 가구들 외엔 소유할 게 없었다.

 

그녀의 친구 엘리슨이 그녀에게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의 유언장엔 아직 조디의 이름이 있을 테니 토드가 결혼하기 전에 그를 없애버리자고.

그러면 그녀는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

그의 모든 것이 그녀의 것이 되니까.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 조용한 아내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토드는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와 그 곁에서 온갖 것을 견뎌낸 어머니의 틈에서 자랐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그는 자수성가해서 지금의 부를 일궜지만 안정적인 가정 앞에서도 좀체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조디는 그런 토드를 이해하고 분석하면서 그저 이 상황을 유지해가기만을 바랐다.

평범한 가정에서 좋은 부모 아래서 좋은 교육을 받았던 조디에게도 어두운 과거가 존재했다.

그녀 스스로 지워버렸던 과거의 기억.

어쩜 그것들로 인해 토드와 조디는 완벽한 가정을 꾸미고도 불완전하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사실혼 관계는 토드에게 불안정한 닻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자꾸 흔들렸는지도 모르지.

 

아들러 심리학에 근거한 심리 상담사 조디는 결국 토드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알리바이도 만든다.

조디의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할까?

 

그 남자.

그 여자.

토드와 조디의 시각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이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심리와 감정과 변화를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

토드가 빤하게 보인다면 조디는 결코 다 보이지 않는다.

그게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잘 알 수 없는 주인공과 빤히 보이는 주인공 두 사람의 이야기를 번갈아 읽어가며 내 삶도 돌아보게 된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감정적 변화들.

유지하려는 자와 벗어나려는 자의 끝없는 줄다리기.

토드는 집을 나와서야 자신이 무엇을 버렸는지 깨닫는다.

조디는 토드가 집을 나가고 나서도 다시 돌아올 거라 믿는다.

그래서 조금 답답했다.

이 여자 이렇게 상황 파악이 안 되나?라는 생각 때문에 답답했는데 어쩜 그건 조디가 토드를 너무 잘 알아서 일 것이다.

그 남자는 결국 언제든 싫증을 내고 내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

그건 조디만이 토드에게 줄 수 있는 안정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그녀가 늘 긴장하고 살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 테지만.

 

결국 모든 일은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신은 언제나 불공평한 듯이 공평한 법이니까.

헌신한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법이다.

불성실한 자에게도 그에 따르는 대가가 주어지듯이.

 

완벽한 이야기였다.

작가의 첫 소설이자 유작이라는 게 아쉽다.

다음 소설은 더 멋진 이야기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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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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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와 혼탁한 공기를 한 모금 마신 뒤 돈, 사랑, 이상같은 허황되고 실체가 없는 것을 좇으며 수십년을 보낸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냄새나는 몸뚱이 하나뿐인데 말이다.

 

 

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의 단편과 습작을 모은 작품집이다.

각 이야기당 그에 어울리는 음악이 배정되어 있다.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읽으면 좋겠다고 링크도 남겨두었다.

 

무엇이라 상상하지 마라.

 

제목으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상상했다가는 큰코다친다.

반전의 묘미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인간이란 세상에서 숨겨진 지하의 인터넷 게시판에서조차 자신에게 동조해주는 사람들의 호응을 갈구한다.

 

 

 

생활 곳곳에서

장르 불문하고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종합선물 세트처럼.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작가의 끼를 부린 단편들이 모여 춤을 춘다.

 

커피가 금기시되는 세상에서 눈을 떴다면?

지구의 시간보다 느리게 흐르는 우주 어느 곳의 우주선이 지구에 불시착하며 폭발했다면 지구는?

산타클로스 살인사건에서 제일 말이 안 되는 것은?

재야의 종소리를 듣던 연인들에게 생긴 일은?

 

영리한 작가의 기묘한 이야기들이 왜 찬호께이를 외치게 하는지 알게 해준다.

이제 겨우 두 번째 이야기를 접하는 나에게는 그의 작품을 몰아 읽기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스릴러, SF, 미스터리, 환상, 범죄, 살인, 기적, 탐정물이 총망라된 이야기의 매력들이 음악처럼 흐른다.

긴 호흡이 부담스러운 사람들과 짧지만 임팩트 있는 글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

 

어떤 책이라고 설명하기 보다 그저 읽어보라 말하고 싶다.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다양한 맛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찬호께이의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는 책.

디오게네스 변주곡.

제목처럼 가늠하기 어려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다양한 재미를 즐기느라 책이 끝나는 게 아쉽다.

 

10주년 기념 작품집의 아름다운 변주곡이 읽는 이들의 마음에 찬호께이를 새길 것이다.

모처럼 즐거운 책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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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삼국지연의보다 재미있는 정사 삼국지 1~2 세트 - 전2권 - 20만 유튜브 독자들을 소환한 독보적 역사채널 써에이스쇼의 삼국지 정사 삼국지
써에이스 지음 / 원너스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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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중학교 겨울방학 때였다. 책장 맨 위에 6권인가 8권인가 세트로 꽂혀있던 삼국지가 있었다.

호기심에 들춰보다가 앞장에 담겨 있던 그림들에서 관우와 장비의 그림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의 그림이 담겨 있었는데 나는 유독 관우와 장비의 그림에 혹 했던 거 같다.

 

세로쓰기 두 문단으로 된 아주 오래된 책이었다.

읽기도 생소한 세로 읽기를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한자도 무수히 많았지만 다 괄호 안에 쓰여 있어서 뜻도 모르면서 한글만 읽어갔다.

그렇게 내게 삼국지는 조조는 나쁜 놈!

유비, 관우, 장비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공식으로 연거푸 읽히는 시리즈가 되었다.

 

이후에 나관중의 삼국지를 박종화 님이 번역한 책을 소장하고 계속 읽었다.

해리 포터가 나오기 전까지는 심란하거나 생각이 복잡할 때 숨어드는 책이 바로 삼국지였다.

그렇게 삼국지를 읽으며 나도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유비도 관우도 장비도 제갈량도 아닌 조조였다.

 

간웅 조조.

삼국지연의에서 조조는 희대의 간웅이자 경망스럽고 잔인한 인물로 나오지만 나는 점점 조조가 유비보다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유비가 그 많은 인재들의 도움을 받고도 우유부단함에 자기 발목을 잡을 때

조조야말로 스스로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써먹으며 병법도 쓸 줄 알고, 휘하의 내로라하는 장수들도 다스릴 줄 알았다.

그런 점이 어른이 되면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읽은 정사 삼국지는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고 이야기하는 매력이 있다.

정사여서 그런지 각각의 인물에 대한 평이 골고루 이루어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삼국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가 아는 삼국지연의의 소설적 내용을 거둬낸 담백한 삼국지의 이미지랄까?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가 정사에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하니 이것은 소설적 장치였을까? 아님 정사에 기록 가치가 없어서 빼버린 것일까?

정사에 기록된 유비는 어쩜 그리도 겁이 많고, 똑똑한 처신을 한 번도 안 보여 줄까?

그가 위대한 인물임을 알려주는 말은 수많은 백성들이 그를 따랐다는 말인데, 어쩜 자신의 안위보다는 백성들을 먼저 걱정하고 그들 편에서 결정을 하는 일들이 권력을 앞에 둔 무리들에게는 우유부단하고, 답답해 보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도 지금도 백성이나 국민을 위하는 일은 정치나 권력 앞에서 무능으로 치부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정사라 해서 좀 딱딱하고 읽기 어려울 거라 지레짐작했는데 이 책은 마치 삼국지에 대한 강의를 책으로 읽는 기분이었다.

 

 

 

 

 

 

 

삽입된 귀여운 그림체가 글을 좀 더 읽기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한눈에 현재 설명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그림으로 보여주고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주석을 따로 달아서 긴 설명 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2권에 담기에는 짧은 분량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의 기록을 다른 것이기에 삼국지연의보다는 내용이 짧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다만 삼국지의 백미 적벽대전과 제갈량의 활약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어서 아쉬웠다.

우리가 그렇게 대단하게 알았던 제갈량 역시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는 몇 글자로 묘사되는 인물일 뿐이었다.

 

쎄에이스는 유투브에서 역사를 고증하고 알아가는 채널을 운영 중이다.

그래서인지 글이 막힘없이 흐르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삼국지의 '사실'들만 나열했기에 마치 시험 전에 보는 서머리를 보는 느낌이다.

 

소설적 재미는 없었지만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을 집약해서 보여준 정사 삼국지는 삼국지의 방대한 내용에 시작할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에게 삼국지를 쉽게 대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책이다.

그리고 주관적인 접근 보다 객관적인 접근으로 현존했던 인물들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다듬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우의 청룡언월도도 적토마도 정사에선 언급되지 않았다 하니 어쩜 이것 역시 소설적 장치가 아닌가 한다.

그저 욕심만 많아 보였던 역적 동탁! 이 사람이 그렇게 출중한 무예와 지략을 가진 인물이었다니 첨 듣는 얘기다.

게다가 주변인들을 잘 대해서 인기도 많았다니 세상 첨 듣는 얘기다!

 

정사 삼국지를 읽고 나면 그동안 알았던 인물들에 대한 색다른 식견을 얻게 될 것이다.

삼국지를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는 쉽고 편견 없이 삼국지를 섭렵할 기회이고,

삼국지연의만 읽었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으로 삼국지에 출연(?) 했던 인물들을 평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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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쇼핑몰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원작 소설 새소설 5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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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 삼촌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읽기를 시작함과 동시에 멈출 수 없었다.

중학교 시절에 이미 성인의 덩치를 한 삼촌은 신분증 걱정 없이 술이나 담배를 살 수 있었지만 그런 하찮은 일에 노안을 허비하지 않았단다.

대신 도박으로 따온 돈으로 할머니와 아빠의 입을 막았던 삼촌은 홀연히 집을 떠나 정확히 20년 뒤에 돌아왔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도 삼촌은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고 나랑 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개는 어디에든 있음으로 싸움을 피할 방법 같은 건 없다는 말을 하며.

그리고 나는 부모님을 그 후로는 볼 수 없었다.

삼촌도.

 

아동 보호소에 남겨진 지 한 달 후 삼촌이 찾아와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나는 삼촌과 함께 살게 된다.

대학에 들어가 자취를 하기 전까지.

삼촌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했고, 외진 곳에 있던 그 집 뒤쪽에 창고를 만들어 물건들을 보관했다.

 

그리던 어느 날 삼촌이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삼촌의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삼촌과 관계된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사실들과 마주한다.

 

삼촌은 도대체 온라인으로 무엇을 팔았던 걸까?

 

한 눈 팔 시간 없이 몰입해서 읽은 이야기였다.

독특한 소재와 반전에 반전이 어우러진 이야기다.

짧은 분량에 쏟아 넣은 에너지가 상당하다.

 

삼촌이 운영하던 평범한 쇼핑몰엔 딥웹 사이트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살인자들이 모여 있었다.

삼촌은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살인 의뢰인을 살인자와 연결해 주는 일을 했다.

삼촌의 죽음을 알게 된 살인자들은 쇼핑몰의 창고를 털기로 한다.

 

살인자들이 몰려오는 곳에서 지안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나는 울고 있는 브라더 대신 마우스를 잡았다. 그러고는 폴더 안에서 동영상 파일을 실행시켰다.

그날의 진실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진실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지안은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삼촌은 쇼핑몰을 지안에게 남겼고, 지안은 그 쇼핑몰을 인수하거나 아니면 살인자들의 손에 죽을 운명이었다.

 

20대 평범한 대학생은 어떤 선택을 할까?

삼촌은 정말 자살한 게 맞을까?

 

정신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구고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의 앞날에 펼쳐진 살육의 현장은 한 치 앞을 모르게 만든다.

게다가 연이어 드러나는 삼촌의 비밀들은 지안을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지 예측할 수 없다.

속속 나타나는 새로운 인물들에 숨어 있는 배신자.

 

이 얇은 책에 담긴 이야기의 강도가 쫄깃하다.

그리고 지안의 선택도.

 

나는 지안이 보통의 여학생이 아니어서 좋았다.

놓인 상황 안에서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찾는 사람.

어쩜 그것을 위해 보이지 않게 그녀를 단련시켰던 삼촌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앞길을 주저 없이 택해 나아가는 지안의 여리여리하지만 강단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나도 삼촌의 일부인 걸.

지안의 이 말이 참 마음에 든다.

 

재밌고, 살벌하고, 쫄깃하지만 상당히 짧은 이야기를 읽었다.

모처럼 가뿐한 기분을 느꼈다.

 

짧아서 더 강렬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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