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6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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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이버 독서 카페 리딩 투데이에서 함께 읽는 책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 06

 

 

 

 

해미시는 휘몰아치는 바람과 칠흑 같은 어둠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해피 원더러의 분홍색 간판이 눈에 들어온 순간, 불현듯 날카로운 두려움이 엄습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감기에 걸린 해미시는 외로움에 진저리를 친다.

아무도 그가 아픈 걸 알지도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집에서도 해미시가 오는 걸 반기지 않는 이모 때문에 어머니가 방문을 꺼려 하자 더 우울해진다.

그때 프리실라가 자신의 지인이 조언을 구한다며 제인을 소개한다.

제인은 부유한 이혼녀로 아일린크레이그 섬에서 헬스팜을 운영하고 있다.

배타적인 섬사람들 속에서 사업을 번창시킨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서 해미시를 그녀의 사업장으로 초대한다.

욱하는 심정으로 초대에 응했지만 가는 내내 왠지 찜찜함을 느끼는 해미시.

제인이 초대한 손님들은 저마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었고, 그중에 사람들을 돌아가며 짜증 나게 하는 여자 헤더가 있었다.

전편에서 전환점을 맞은 해미시와 프리실라의 관계는 이번 편에서도 그다지 진전은 없다.

하지만 프리실라가 점점 해미시에게 관심을 보이고 다가가려 하면 이상하게 일이 꼬이고 만다.

어딜 가나 살인사건을 달고 다니는 해미시.

그 외딴섬에서도 결국 사건이 발생하고, 모두가 사고사로 생각하지만 해미시는 살인사건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해미시를 도와 같이 추리를 하는 요리책 작가 해리엇이 해미시와 프리실라 사이를 본의 아니게 방해하게 된다.

공산주의자 흉내를 내면서 로맨스 소설을 경멸하던 여자의 이중생활.

겉으로는 화려한 남성편력을 과시하지만 질투를 유발하려고 했을 뿐인 여자.

지독한 고용주 밑에서 고된 일을 하지만 그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여자.

해미시와 함께 추리의 세계로 거침없이 들어왔으나 작은 상처를 남기고 떠난 여자.

이번 편은 왠지 약간 쉬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편하게 읽은 이야기랄까?

해미시를 괴롭히던 블레어가 이번에는 그리 심하지 않았기에 좀 김이 빠진 느낌이 든다.

그러나 프리실라의 심경에 뭔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녀가 해미시 대신 그의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다음 편에서는 진도가 더 나갈 것이라 예상해본다.

해미시가 지고지순한 순정남인 줄 알았는데 매번 프리실라 대신 다른 여자들과 살짝살짝 염문을 뿌리는 걸 보는 맛도 바로 이 이야기의 재밌는 요소다.

그나저나 나는 빨리 해미시와 프리실라의 관계가 진전이 되어서 빨강 머리를 한 꼬마들도 만났으면 좋겠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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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만지 비룡소의 그림동화 271
크리스 반 알스버그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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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게임.

마지막 목표지점에서 '쥬만지'를 외쳐야만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게임이 있습니다.

                            

쥬만지는 금세 따분해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특별히 만든 정글 탐험 게임입니다.

 

 

주디와 피터는 부모님이 외출하신 동안 집을 지키고 있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외출하자마자 장난감을 몽땅 꺼내 집안을 어지럽히고 맙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방 싫증 난 피터는 심심하다고 보채죠.

그래서 두 아이는 밖에서 놀기로 합니다.

 

밖으로 나간 아이들 눈에 띈 버려진 게임 상자 쥬만지.

주디와 피터는 그 상자를 가지고 와서 게임을 시작합니다.

 

 

 

 

 

금방 끝날 거라 생각한 게임.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그 게임은 엄청난 재난을 몰고 옵니다.

 

사자에 쫓기고, 원숭이들에게 부엌이 점령당하고

코뿔소가 들이닥치고, 커다란 비단뱀이 나타나죠.

 

아이들은 겁에 질리고 도망치기 바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규칙엔 이렇게 쓰여 있었죠.

 

                            

이것은 매우 중요함 : 일단 게임이 시작되면 한 사람이 황금 도시 쥬만지에 도착할 때까지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화산까지 폭발해서 용암이 흐르는 순간에도

게임의 규칙을 기억한 아이들은 계속 주사위를 던집니다.

 

게임을 끝내야만 하기 때문이죠.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지만

끈기와 인내심이 부족하고, 무엇을 해도 끝맺음을 맺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긴 그림책입니다.

 

어떤 곤란한 상황이 오더라고 끝을 보지 않으면 절대 끝나지 않는다.

 

세상일이 그렇죠.

마무리가 안된 것은 늘 후회나 좌절감으로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단순하지 않은 삶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네요.

 

사실적인 그림체와 흑백 톤의 그림이지만

컬러풀한 느낌이 드는 묘한 그림입니다.

 

영화 쥬만지의 원작입니다.

영화의 느낌을 지우고 책을 읽기를 추천합니다.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네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하기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재밌고 상상력을 발휘한 이야기가 최고라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주디와 피터가 내다 버린 게임기를 옆집 말썽꾸러기 형제가 들고 사라지는 모습 때문에 이 이야기는 절대 끝나지 않을 거 같네요.

 

어쩜 쥬만지는 우리 모두의 손에서 주사위가 던져지길 기다리는 이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열심히 주사위를 던져야 합니다.

끝은 봐야 하니까요.

끝까지 가지 않으면 쥬만지의 악몽은 계속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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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2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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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는 이런 자잘한 원칙이며 성경 구절, 인생 조언이 떠돌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어디서 온것인지, 왜 내 머릿속에 각인된 것인지 의문을 품기를 그만두었음에도 짓눌리는 기분을 느꼈다.




1부에서 캐머런은 콜리의 배신으로 동성애자임이 밝혀지고 이모와 목사님에 의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곳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제인 폰다와 애덤을 만나 절친이 된다.

한때 동성애자였던 릭 목사와 그의 이모 리디아는 그곳을 총괄한다.

비록 한적하고 쉽게 찾아가기 힘든 곳에 위치해있었지만 축복받은 풍경이 그나마 캐머런을 위로해 주는 곳이었다.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던 시기.

로키산맥 인근의 몬태나주의 작은 마을에서 12살에 부모님을 잃은 캐머런은 이모와 할머니의 품 안에서 수많은 영화 비디오를 보면서 자랐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배울 필요는 없었다.

캐머런은 늘 마음 가는 대로 가는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캐머런의 그녀들은 모두 상처를 주고 떠났다.

같은 걸 느꼈지만 그녀들은 자신들을 안으로 숨겨 버렸다.

사회에서 용납 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낼 용기가 없었던 거겠지.

하느님의 약속에서의 나날은 제인과 애덤으로 인해 숨 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그곳을 그냥 졸업해서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애당초 그것은 병이 아니었고, 절대 나아지는 것이 아니었고, 고쳐지지도 않았다.

그것을 깨달은 캐머런과 제인, 애덤은 도망치기로 한다.

그곳에서 도망쳐서 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마크는 노력했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실패했어. 왜냐하면 애초에 그건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마크는 생각했겠지.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부위를 잘라버리자고. 정말 좋은 생각 아니야?



기도로, 면담으로, 하느님을 위해 사람들이 애써 무시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려고 노력하는 그것은 절대 고쳐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캐머런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내가 걱정했던 학대나, 추행이나, 인격모독은 없었다.

하지만 가장 무지한 것은 바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 이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곳의 가르침과 믿음 자체가 문제라는 거예요. 믿지 않고 의심한다면 지옥에 갈 거라는, 우릴 아는 모든 사람이 우릴 부끄러워할 거라는,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우리의 영혼을 포기해버릴 거라는 말을 듣는다고요.

.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것은 키라든지 귀 모양처럼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우리이게 억지로 변화를 일으키려 하면서, 우리가 변하지 못한 것은 온 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더러운 죄인이고, 모든 것이 우리의 잘못이라고 믿게 만들어요.




때리고, 상처 주고, 억압하고, 화내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인정하지 않는 것.

그 모두가 폭력이었다.

원제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은 이런 걸 의미한 거 같다.

고칠 수 없는 것을 고쳐야 한다고 쓸데없는 것들을 주입시키는 행위.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드는 행위.

스스로를 낙오자로 만드는 행위.

나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해서 나름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캐머런 주변에 있는 어른이라면 나는 그 아이를 어떻게 대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아직 모른다.

예전에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나는 그를 응원했었다.

어쩜 그는 멀리 있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내 주위에서 나랑 가까운 누군가가 캐머런이라면 나는 응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또 다른 사람에게는 타인을 제약 없이 이해하고 그가 필요로 하는 우애와 사랑을 선사할 만한 감수성을 얻는 일에 도움이 되는 책이기를 바란다.


역자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애써야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인정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선택을.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는 책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이미 많은 동성 커플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러니 나도 지금 당장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마주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냥 마음의 준비를 해두기로 했다.

그냥.

그가. 그녀가 필요로 하는 우정을 나눠 줄 감수성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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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함께 읽는 셰익스피어 20 - 4대비극, 5대희극 수록 현대지성 클래식 4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저, 찰스 램.메리 램 엮음, 김기찬 옮김, 존 에버렛 밀레이 외 그림 / 현대지성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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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읽어 보지는 않았더라도 이름이라도 들어 본 작품들이 많다.

이 책엔 4대 비극과 5대 희극, 그리고 대표작 20편이 담겼다.

요즘 호가스 셰익스피어를 읽는 중이라 원작들을 읽을 기회를 덩달아 갖게 되어 즐겁게 읽었던 책이다.

 

학생 때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무조건 적인 믿음이 있었다.

지금 어른과 여성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셰익스피어는 여성을 남성의 아래로 보는 시선들이 많은데

그 와중에도 특출한 여인네들이 등장하곤 한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포샤는 기지가 남다는 여성이었고, 겨울 이야기의 파울리나는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른 말을 했다.

재밌게도 그의 작품에선 남장 여인도 종종 등장한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그와 반대로 너무하다 싶게 희화된 여성 캐릭터도 존재한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요정 여왕 티타니아는 남편 오베론에게 속아 자신이 아끼는 남자아이를 빼앗겼지만 너무나 달갑게 수긍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카타리나는 너무나 고분고분한 인물로 탈바꿈되었고, 리어 왕의 코넬리아는 다시없을 효심으로 정성을 다하지만 죽음을 맞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순결과 효심이 항상 승리하는 게 아닌데 참으로 두려운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이야기마다 그 이야기를 배경으로 그린 명화들이 담겨 있어 각 캐릭터들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삽화 같은 느낌의 익살스러운 그림도 있고, 우아한 그림도 있다.

짧은 이야기들의 향연이라서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고전은 자칫 다 안다고 생각하고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다시 읽어 보니 내가 잘 못 기억하고 있던 부분들을 다시 수정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수많은 정보 속에서 나름 구축되어 있던 이미지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르게 해석되는 묘미가 있었다.

이래서 고전을 두고두고 읽는 거 같다.

 

나이 들어 다시 읽어 보는 셰익스피어의 이야기가 예전과 다르게 간혹 불편하게 읽히는 이유는

그만큼의 세월이 흘러 여성으로서의 삶이 좀 더 주체적이고, 힘이 생겼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내가 스무 살 때와 지금의 스무 살은 다르니까.

 

앤 타일러가 셰익스피어를 질색했다는 글을 읽고 참 독특한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그 심정을 조금 알 거 같다.

그래서 어째서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작품인 말괄량이 아가씨 길들이기를 각색했는지도 이제 더 이해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고전 속의 여인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여성의 상징이 되어 왔는지 깨닫고 나니 뇌가 서늘해진다.

작년 한 해 동안 페미니즘 미술 책들을 읽으면서 명화 속에 숨어있는 차별적 메시지를 습득한 터라

이번에 읽은 이 셰익스피어에서 내 눈에 비친 차별의 모습들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분명 셰익스피어는 그 시대에서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풍자와 은유로 세상을 고발했을 테니 내가 조금 더 고전 읽는 눈을 길러서 다시 읽는다면

재독에선 다른 부분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여태 고전 문학에 대해서 다른 곳의 세계문학전집만을 탐해왔는데

이번에 현대지성 클래식의 책들을 만나게 되어 내게는 알찬 시간이 되었다.

 

세상에 많은 책들이 있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읽어 보지 않으면 모를 그 책만의 매력이 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편집에 따라 같은 책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알았으니 나중에 독서의 질이 어느 정도 오르게 되면 같은 책 다른 편집본으로 읽어 보리라는 계획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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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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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의 중편소설 소설 향. 두 번째 이야기 윤이형의 붕대 감기.


친구가, 마음을 터놓을 곳이 딱 한 군데만 있었으면.



늘 이렇게 생각하지만 정작 나조차도 그런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흥분되었다.

이유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그녀들이 모두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경이었다가, 세연이었고, 윤슬이었다.

채이이기도 하고 현은이기도 하며 경혜이기도 했다.

모두의 마음이, 모두의 생각이, 모두의 행동이 이토록 절절하게 이해되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페미니즘을 논하고, 여성운동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것에 대해 제대로 잘 알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또 안다고 해도 올바르게 이끌어 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시간이 지나야 해. 서로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일에는 시간이 걸려.



누군가의 발자국이 남긴 길 위에 서서 이 말을 곱씹는다.

나는 분명 내 할머니나 엄마보다는 훨씬 나은 위치에 있다.

그리고 내 아래 연배의 여자들은 나보다는 더 나은 위치에 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점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서로를 이어주는 무언가로 연결된 여자들이 있었다.

책을 읽어 가며 점점 마음이 편해진다.

내 안에서 엉켜 있던 실타래를 붕대를 감듯이 감아내는 작가의 글이 내 마음의 무언가를 서서히 녹여준다.

정말.

별생각 없이 집어 든 그 어떤 것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안을 받을 때의 그 느낌이다.

서로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가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으며 책이 끝나 가는 게 아쉬웠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사람들인데 어째서 매번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채이와 현은의 차이.

세연과 진경의 차이.

이 차이는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있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윤이형 작가의 글은 처음인데 이 짧은 분량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그토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었음이 놀라울 뿐이다.

세연의 상상 속 진경이 친구가 되는 법을 얘기하는 장면이 가장 맘에 들었다.

우리 모두 친구가 되고 싶을 뿐인데.. 그 방법을 몰라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게 아닐까.

자주 보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가끔 울고 싶을 때, 말할 사람이 필요할 때, 그럴 때 나한테 전화해줬으면 좋겠어.



이런 친구가 어쩜 내가 현재 불편함을 느끼는 친구일지도 모르지.

세연처럼.

우리는 적이 아니고 같은 편이라고,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여성은 여성에게 너무 쉽게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해요. 서로를 그렇게 적대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어요.




알고 있었지만 자주 잊었던 사실을 이 책이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것.

윤이형의 이야기는 불분명했던 내 감정을 분명하게 만들어 주었고, 막연하게 느끼던 생각들을 말끔하게 정리해주었다.

요란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고, 들이대지 않아도 우리의 연대를 잘 설명해 주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동안의 내 여성 동지들과의 관계를 다시금 이해하며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안엔 그녀들이 모두 조금씩 다르게 존재했다는걸.

그리고 내 주위의 그녀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걸.

이 책을 친구들과 같이 읽고 싶어졌다.

지금은 거의 만나지 않는 그녀들과 함께 읽는다면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 가지 않을까.


그 또 다른 관계가 벌써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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