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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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이제야는 이제서야라는 뜻도 있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목은 이제서야 언니에게처럼 느껴지지만 책을 읽게 되면 이제야 언니에게로 느껴진다.

무슨 차이지? 라고 묻는다면 "책을 읽어 보세요." 라고 말할밖에.

 

 

 

 

나도 그렇게 되었다. 소문 속 그 여자애가 되었다.

 

 

 

작년 초에 대만 작가 린이한의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었을 때의 감정이 다시 복받쳤다.

제야와 제니. 그리고 승호.

친인척들이 모여 사는 작은 동네에서 사촌끼리 다정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이 세 아이에게

당숙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터를 잡은 남자는 처음엔 꼬마들을 보면 용돈도 쥐여주고, 먹을 것도 사주고, 예쁘다고 쓰다듬어주는 항상 친절한 아저씨였다.

젊은 사람이 사업에 능해서 고향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되어 자리를 잡더니 너도나도 이 젊은 사업가의 손을 잡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소도시의 정재계 인사들을 모두 아우르는 힘을 가진 그 젊은이를 먹고사는 일이 우선인 어른들은 모두 칭찬하기 바빴다.

그가 어둠의 손길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뻗어내고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재야조차도.

 

 

잘 엮은 그물을 치고, 팔딱이는 싱싱한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기만을 기다리던 순간들. 이었겠지. 그놈에겐.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재야 탓을 했다.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내려오는 공식처럼 피해자는 나쁜 년이 되고

가해자는 그럴 수도 있지. 가 되는 그런 더러운 일. 이 재야에게 생겼다.

 

 

재야는 혼자 울었다. 남들 앞에서는 울지 않고,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잘못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했어요.

 

 

경찰도, 마을 어른들도, 친척들도, 부모마저도 재야를 그런 아이로 취급하고.

그놈에겐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젊은 혈기에. 라는 면죄부를 주었다.

더러운 세상.

비겁한 어른들.

그놈에게 그나마 대들었던 건 연약한 승호뿐이었다.

어쩜 그곳으로 재야를 불러낸 승호의 죄책감이 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때 교통사고만 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아지트는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고 해서 마수의 손길이 조금 늦어졌을망정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지는 않았을 테지.

 

 

프레드릭 배크만의 [베어 타운] 에서도 재야 같은 마야가 나온다.

마야에게도 재야와 같은 손가락질과 온갖 비난이 장착된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날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날 그 일이 없었어도 그는 분명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재야의 삶은 사라졌다.

미래가 사라진 재야의 삶은 공허와 공포가 오가는 삶이다.

막 사는 것.

매일 잊고자 하는 기억을 되풀이 사는 것.

강간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계속되었다.

꿈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에서.

학연이나 지연이나 인맥들에서 계속 되풀이되어 재야가 그 어디에서도 숨 쉴 수 없도록 만들어갔다.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는 그 어디에도 재야가 숨을 곳이 없었다.

특히나 인간관계에서는. 더더욱이 남녀관계에서는.

 

 

 

 

 

 

최진영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는데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이 있다.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상세한 장면도

적나라한 묘사도 없지만

재야의 상황이 자꾸만 머릿속에 각인되어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나는

이 고통스러움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야의 세상과 재야의 세상은 다르다.

재야의 세상은 더 답답하고, 더 우울하고, 더 외롭다.

 

그래서 더 슬프다.

 

점점이 슬픔이 쌓여가고

풀지 못한 울분이 꺽꺽 거리고

위로해 주지 못하는 마음이 파도를 친다.

 

 

미안하다.

이 세상 모든 제야에게...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기 바란다.

피해자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아예 모르는 것과 이렇게 간접적으로라도 알게 되는 것의 차이는 분명 있으므로.

청소년들의 필독서가 되길 바라고

점잖지 못한 어른들과 양심 없는 어른들의 교양 필독서가 되길 바란다.

경찰서에 비치해서 모든 경찰들이 읽기 바란다.

강간 신고가 들어왔을 때 그들이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서 배우기 바란다.

 

 

이토록 무기력한 기분과 극도의 울분을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가

이토록 가만가만 이야기하는 느낌이 그래서 더 울림이 된다.

 

 

이제야 언니에게는 그래서 두 가지 의미로 느껴진다.

이제서야 이제야 언니에게...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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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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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제목처럼 미래가 멋진 신세계이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렇지 않을 거 같은 길목에서 책으로나마 미래의 ‘맛‘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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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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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예부터 집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가늠할 수없이 커다란 뱀은 영적인 존재였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롱롱이란 이름의 뱀은 그래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설이었다.

D시에 사는 사람들에겐.

 

허물로 뒤덮인 사람들이 있다.

어디서 언제 발병했는지 모르지만 어느새 사람들의 피부는 파충류처럼, 뱀처럼 허물이 일었다.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T-프로틴을 먹어야 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끊긴 뒤로는 밥 한 끼 가격의 약 값을 댈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롱롱의 전설은 허물을 벗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었다.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허물로 뒤덮인 사람들의 허물도 벗어지는 것이었다.

더 이상 가려워서 긁지 않아도 되고, 피부를 가리느라 긴 옷을 입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되고,

보통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쪽 사회는.

제약회사는.

정부는.

그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어떻게 이렇게 신비롭고 신박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내가 공포를 이용했다면 자네는 욕망을 이용한 거야.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 그게 죄라면, 자네와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비슷할 걸세.

 

 

이 가상의 세계에도 현실은 반영된다.

사람들이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필요한 건 공포를 심는 것.

현실은 언제나 소설이나 영화보다 잔인한 법이니까.

 

파충류 사육사였던 나는 다시 직업을 얻기 위해 동물원에서 도망친 뱀을 찾아다닌다.

그녀가 찾아낸 뱀은 롱롱이 맞을까?

그 뱀이 롱롱이라면 사람들의 소원은 이루어지는 걸까?

그녀도 허물을 완전히 벗을 수 있을까?

지긋지긋한 방역센터에 가지 않고도?

 

제약 회사는 롱롱 때문에 내가 끝장났다고 여기는지 몰라도 그건 틀렸어. 그들은 과학을 몰라. 과학자를 절대모르지. 자본의 논리만 좇는 자들이 뭘 알겠나? 과학자는 가설을 세우는 존재라네.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가 주는 맛이 담백하지 만은 않다.

세상과 맞물린 이야기 중에 담백한 건 없으니까.

 

이 독특한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한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뱀이 계속 등장해서 꿈자리가 뒤숭숭했지만 그럼에도 신박한 소재의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

색다른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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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마야의 모험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28
발데마르 본젤스 지음, 천은실 그림, 강민경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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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마야의 모험.

어린 꿀벌이 자신의 벌집을 나와 세상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곤충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배우는 모험 이야기.

마야의 꿈은 인간을 만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인간.

그러기 위해서 마야가 거쳐간 곤충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마야에게 세상을 가르쳐 준다.

 

 

 

 

 

 

 

 

 

 

 

마야는 행복하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방식대로 삶을 즐기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

 

세상을 모르는 어린 꿀벌은 얼마나 호기로운가!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맞이할지 알지 못하는 자들에겐 마냥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 바로 세상이다.

마야는 경험이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이며 자신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마야가 일벌로서의 삶을 택했다면 결코 알 수 없었던 삶의 경험들.

세상엔 다양한 동물이 존재하고,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고 있으며,

친절을 가장한 채 접근해서 언제든 잡아먹을 때만을 노리는 부류가 있다면,

자신이 아는 것을 아무 대가 없이 알려주는 부류도 있고,

남의 친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류도 있으며,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움츠리고 사는 부류도 있고,

스스로 잘난척하느라 함정에 빠지는 줄도 모르는 부류도 있었다.

그냥 무리 지어 꿀이나 나르는 생활을 했다면 결코 알 수 없었던 세상이었다.

낯선 곤충과 친구가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구나. 저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그래도 마야의 긍정적이고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마음이 많은 곤충들에 닿아서 친구가 되었다.

단순한 동화 같은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엔 다양한 개성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개성들을 존중하지 않을 때 자신의 개성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걸 배우게 된다.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하라.는 단순한 진리.

하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진리다.

소설가이자 시인의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가 천은실 작가의 그림과 함께 신비로운 앙상블을 이루었다.

예쁜 그림과 단순한 이야기가 상황에 따라 가장 큰 울림이 될 때가 있다.

꿀벌 마야의 모험과 함께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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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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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보라 섬에서 보란 듯이 살아가는 이야기.

생각해보면 나의 가난을 핑계로 지금껏 얼마나 많은 이들의 낭만을 비웃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다른 이의 낭만을 비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괜찮은 어른이 되는 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누군가의 SNS에 올라온 사진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사진에 담긴 풍경만으로 그 사람의 삶을 제멋대로 재단하고 있는 거 같다.

나조차도.

보라보라 섬.

이름만으로도 뭔가 따스하고, 평화롭고, 느긋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곳에서 여행이 아니라 삶을 살아낸다는 건 어떤 것일까?

김태연 작가는 영화학교를 나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런 그녀가 낯선 곳에서 낯선 이방인과 결혼하여 낯선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보라보라 한 섬에서.

그곳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더 많은 곳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는 삶.

자주 찾아오는 정전사태와 살 것보다는 구비되어 있는 것에서 살 것을 골라야 하는 마트.

영화관도, 편의시설도 없는.

보라보라~ 했지만 풍경 외에는 볼 게 없는 보라보라 섬.

가진 게 없다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 그녀의 소소한 일상들은

섬의 낭만적 풍경보다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에서 나오는 평화로움이 가장 인상적이다.

 

 

 

 

 

상대적으로 제한된 소비 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더 풍요롭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아이러니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소비할수록 우리는 더 결핍되어버리는 게 아니까 하는.

 

99마리 양을 가진 양치기가 1 마리의 양을 가진 양치기의 양을 욕심내는 것처럼

사람은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려 하는 습성이 있나 보다.

하지만 보라보라에서는 모두가 꼭 필요한 것만을 가지고 산다.

불필요한 것을 가지려 생을 낭비하지 않는 그들의 삶이 왠지 정말 제대로 된 삶인 거 같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는 게 아닐까.

이유 없이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건 없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무래도 삶의 균형이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글과 사진 속에 담긴 사람들과 풍경이 자꾸 가슴에 스민다.

이유 없이 따뜻하고, 괜스레 울컥하며, 공연히 설레게 하는 이 책. 우리만 아는 농담.

친구끼리, 가족끼리, 부부끼리.

자신들만 이해하는 농담이 있으리라.

언젠간. 이라는 말로 묶어 둔 카메라를 꺼내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곳곳의 찰나를 찍고

마음이 가는 곳의 모습을 담는다.

그리고 매일을 쓴다.

누구나 바라는 삶이지만

누구나 살고 있지 않은 삶이다.

집을 나서면 바로 바다가 있는 삶.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진리에 대한 이야기가 맘에 든다.

툭하면 정전이 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 정전 속에서 더 많은 걸 해내는 모습을 읽고 있자니

편의를 위한 시설이 결국 사람들 사이를 더욱 분리 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그래서 더 밉고, 더 애틋하고, 더 화가 나고, 더 눈물이 난다.

작가의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와 같아서 많이 공감하게 된다.

어느 곳에서 살더라도 참 예쁘게 살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와 평화와 행복이 무언지 아는 사람들의 삶.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살아가고 있는 삶을 잠시 엿보면서 내 삶의 방식을 점검해 본다.

두려움 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은 내밀어 줄 것.

어디에서 살게 되든지 간에 씩씩하게 살아낼 것.

아무리 험한 세상이더라도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믿을 것.

덜 가지는 법을 알게 되면 더 많은 자유를 갖게 된다는 걸 깨달을 것.

우리만 아는 농담.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그러나.

몰라도 되는 내일이 있으므로 나는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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