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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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길을 찾아내는 법이에요.

사랑은 방법을 찾아낸다고요!

 

 

남친 저스틴이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와 나는 몇 번의 헤어짐이 있었지만 언제나 그는 다시 돌아왔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이 관계를 참을 수 없다.

  

티파니는 전 남친 저스틴과 살던 아파트를 한시라도 빨리 나오기 위해 급히 집을 구해야 했다.

그때 이 셰어 하우스의 광고를 보았다.

밤 근무를 하는 사람이 자신이 근무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아파트를 사용할 룸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오후 6시 이후부터 다음날 아침, 그리고 주말 동안은 티피가 아파트를 독차지한다.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인 리언은 밤 근무를 한다.

티피가 회사에 출근해 있는 동안은 리언이 아파트를 차지한다.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로 하나의 공간을 같이 공유하는 그들.

하나의 침대를 공유하면서 왼쪽과 오른쪽을 나눠 사용하는 티피와 리언.

  

출판사 편집자인 티피는 매사 자신감이 부족하고 저스틴 때문에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간호사인 리언은 여친 케이와의 사이가 조금씩 껄끄러워지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 리치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있는 상태였다.

내성적이고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리언은 이 모든 문제를 끌어안고 시간과 공간을 쪼개어 가며 리치를 구할 방도를 찾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지만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티피와 리언은 쪽지로 소통을 한다.

 

그들의 쪽지가 쌓여가는 만큼 그들은 서로의 상황을 조금씩 알게 된다.

이 과정이 이 이야기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편지도 아닌 쪽지가 어떻게 사랑의 메신저로 변해가는지의 과정이 참 달달하다.

그래서 단순히 로맨스 소설로 착각할 뻔했다.

 

티피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소심하고, 정신머리 없고, 뚱뚱하고, 자신감 없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저스틴의 계략으로 그녀는 자신이 그런 형편없는 여자라는 굴레에 빠져 스스로를 부당하게 취급하고 있었다.

저스틴은 그녀 주변인들을 차단하고, 그녀와 친구들의 사이를 조금씩 벌려놨다.

당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한 채로 티피는 저스틴의 손바닥 안에서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영국 런던 배경의 이 달달하고 마냥 예쁘게 전개되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공포의 그늘이 진다.

저스틴은 계획적으로 그동안 티피를 자신의 소유물로 전락시켰다.

그녀를 밑바닥까지 추락시키고는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아 올려 그녀가 자신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저스틴과 헤어지고 리언의 아파트에서 고요한 삶을 시작한 티피는 불쑥불쑥 나타나는 끔찍한 기억들을 통해

저스틴이 자신에게 가한 정신적 폭력의 잔재를 알게 된다.

 

 

앞으로도 해결 방법에만 집중해.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오는 기억이 힘겨울 거야.

하지만 이 일은 중요해. 있는 힘을 다해야 해.

 

 

그나마 티피 곁에는 그녀를 응원하고, 그녀가 자신을 찾아가는 동안을 지켜봐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녀가 옳은 길을 가도록 질타하고, 위로하고, 같이 싸워주고, 같이 울어주는 정말 좋은 친구들.

 

 

우정과 사랑과 가족문제와 가스라이팅 완벽하게 버무려 놓은 이야기가 참 매력적이다.

셰어 하우스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갖가지 이야기에 달콤 살벌한 이야기를 양념으로 뿌린 새로운 맛의 이야기.

 

 

저스틴의 교묘함을 알아 갈수록 소름이 끼쳤다.

아마도 많은 여자들이 그런 가학적인 사람에게 빠져 자신감을 잃은 채로 그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주위에서 알아채지 못하거나, 알게 되더라도 잔소리로 상처만 주는 경우가 더 많을 거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에 나오는 레이첼, 모, 거티는 티피의 친구로서 그녀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그 상황을 타계할 용기를 주는 친구들이다.

그들의 믿음과 응원과 사랑이 없었다면 티피는 어쩜 지금도 저스틴의 아파트에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티피를 바라보는 리언은 티피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본다.

나쁜 남자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던 엄마는 그들 형제에게 언제나 걱정이자 분노였다.

하지만 리언을 기다릴 줄 알았다.

섬세하게 배려하는 그 모습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가 좋다.

 

 

쪽지로 도배가 된 작은 집.

한 침대를 나눠서 사용하는 남자와 여자.

밤과 낮의 경계로 한 공간을 나누어 가진 사람들.

얼굴은 모르지만 쪽지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상처를 치료할 시간을 기다려 줄줄 아는 사람들.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으로 곁에 있을 줄 아는 사람들.

잘못된 사랑으로 아파하는 사람.

친구에서 연인이 된 사람.

가학적인 사랑과 안온한 사랑.

 

 

이 모든 것들이 컬러플한 털실로 잘 짜인 목도리 같은 이야기

셰어 하우스.

 

 

서로를 위해 거침없이 싸우지만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셰어 하우스.

 

 

가을에서 겨울로 변해가는 계절에 잘 어울리는 따뜻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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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못한 숲 오늘의 젊은 작가 1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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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 카페 리딩 투데이에서 함께 읽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는

조해진 작가의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이다.

어제와 오늘은 경계 없이 연결되어 날짜 구분도 모호해졌다. 지나간 시간은 시시때때로 현재를 침범했고, 기대치가 없는 미래 또한 자주 현재의 시간에 되비쳐졌다. 추억할 과거도, 꿈꿀 미래도 없었다.

 

 

 

몽환적 느낌으로 암울한 현재를 이야기한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사람들은 과거는 기억으로 보고, 미래는 꿈처럼 그려 보아도 현재만큼은 제대로 볼 수 없다.

과거에 묶여 현재를 허덕이며 걷고, 뛰는 사람들에겐 지금 그들이 지나치고 있는 숲이 보일 리 없다.

 

K시의 가스 폭발 사고.

죽은 동생.

발길을 끊은 엄마.

말을 잃어가는 할머니.

그런 과거를 지닌 미수.

그런 그녀의 방을 드나드는 어떤 소년.

그런 그녀의 곁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윤.

 

이 세 사람이 엮어가는 이 암담함을 읽고 있자니 숨이 막힌다.

출구 없는 미로를 마냥 헤매는 마음처럼 그들의 발걸음이 버겁다.

왜 이토록 세상은 그들에게 그렇게까지 잔인했어야 할까...

 

 

빚을 지는 인생이란, 생각만으로도 구토가 치민다.

 

 

미수가, 현수가, 윤이 걸머진 빚의 무게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 사회의 문제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함에 답답하다.

누군가가 저질러 놓은 죄를 다른 누군가는 하염없이 치워내야 하는 것들.

가족의 굴레는 그렇게 연약한 사람들을 갈가리 찢어 놓는다.

빚 앞에서 견뎌낼 재간이 없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지조차 하지 못한다.

서로의 버거움 앞에서 맘껏 사랑도 하지 못하는 슬픈 청춘.

 

그가 마침내 디버깅된 곳. 그곳은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완벽한 세계일 것이다.

 

 

새로운 곳.

새로운 신분.

새로운 삶.

그것들조차 이루어질 수 없었던 세계는 하나의 게임처럼 표현된다.

현수의 세계는 가상현실의 세계였다.

왜 죄는 늘 짓지 않은 사람이 벌을 받을까?

매듭이 풀리면, 아주 긴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불가해한 문장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와 어디로 가야 하고 어느 지점에서 숨죽여야 하며 어떤 모서리에서 목 놓아 울어야 하는지 알려 줄 것만 같았다.

 

 

그리움은 언젠가 만남을 이루고 만다.

간절한 그리움은.

미수에게서 풀려난 매듭은 결국 그녀의 그리움에 가닿았다.

영원히 손을 놓지 않을 그 매듭으로.

그들이 살아갈 보이지 않는 숲이 조금 더 푸릇하고, 조금 더 풍요롭길 바란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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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살아도 괜찮을까
이성진 지음 / 하모니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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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체코의 오스트라바(Ostrava)라는 먼 나라의 도시에 와서도 한국이 계속 생각났던 건, 향수보다는 염려에 가까웠다.

거긴 버스정류장에 휠체어를 끌고 온 장애인들이 많이 보였다.

다리가 엄청 굵은 여자들도 당당히 거리를 활보했다. 옷 입는 행색이 초라했던 사람도, 집시라 불리며 누가 봐도 인종이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오스트라바 사람일 뿐이었다.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그들은 보편적인 다수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 누구도 옆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수군대지 않았으며 당연히 내가 앞에 있는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읽고 나서 리뷰가 써지지 않는 글이 있다.

이 책이 나에게는 그런 책이다.

얇은 에세이인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감상을 적기가 어려운 걸까?

 

제목만으로는 이 이야기는 유럽 각지를 돌며 여기서 한 번쯤 살아봐도 좋을까?라고 생각하는 그런 여행 에세이쯤으로 느껴졌다.

제목에 초점을 맞추자면 저자의 결론은 "살아도 괜찮다 " 이다.

 

하지만 바로 내가 옮겨 적은 저 문장들 때문에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늘 남의 눈을 의식하고, 늘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며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사회적 강자에 대한 입맛에만 맞추어 발전해온 이 빨리빨리의 사회에 길들여진 우리가

느리게, 천천히, 여유롭게, 그러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저 유럽에서 얼마나 잘 살 수 있을까?

 

 

저자는 공공정책과 도시공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유럽에 갔다.

여행 보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유럽의 도시를 돌며 그들의 삶의 방식을 보며 우리와의 접점 지대를 살피는 눈길이 이 책에 담겨있다.

 

올여름 잠시 머물다 온 맨체스터에서의 느낌이 그랬다.

뭔가를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들.

횡단보도가 있건, 없건 언제나 보행자가 우선인 거리.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다니기 편한 거리.

어떤 모습이든, 어떤 모양새든 손가락질 받거나, 수군대거나 하는 거 없이 언제나 당당한 거리.

자신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공공의 질서 앞에서는 자신의 자유도 내려놓는 거리.

사적인 게 우선이긴 하지만 공적인 질서 앞에서는 그 사적임은 잠시 접는 태도.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곳곳에 보이는 그들의 시스템이 참 부러웠다.

 

 

우리가 사는 곳, 그 속도의 변화는 우리가 이끌어 내야만 한다.

 

진정 바꾸고 싶다면 말이다.

부산 지하철에서 뜨개질을 하는 남자.

손재주가 좋아서 무언가를 만드는데 소질이 있는 남자.

세심한 눈길로 미래를 그려보는 그의 마음에 담긴 도시는 어떤 곳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가 모르는 것은 다름 아닌 느림의 미학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는 청년의 마음은 무한대이다.

이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그렇다.

무한대의 희망.

 

 

도시계획이라는 게 부동산 투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 위함을 애초에 생각도 못 한 우리네 계획은

점점 획일화되고, 점점 각박한 세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불과 20~30년 사이에 우리의 정서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졌다.

그것이 삶의 터전인 도시 설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다들 어떻게 생각할까?

 

 

 

20대 청년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미래에 희망을 가져 본다.

그가 더 살기 좋은 도시를 가꾸는데 일조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미래의 일꾼이 자신이 속한 도시의 모습을 걱정하고, 더 나은 도시로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도시는 우리에게,

무정이라는 저주를 내린 게 아니라 자유라는 선물을 준 걸지도 모른다.

 

 

옛 감성이 지금 현대와 맞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일순 거부감이 들다가도 어쩜 맞는 말이라고 끄덕여 본다.

옆집 숟가락 젓가락까지 다 알고 지냈던 그 옛 감성엔 사생활이라고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치 않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느닷없는 호구조사를 당할 때가 많다.

예전엔 모두가 한 다리만 건너도 아는 처지이기에 그런 게 통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얻은 게 자유다.

남의 눈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는 것.

경계의 선을 지키는 것.

도시의 삶이 가진 그 나름의 매력이다.

 

 

재밌는 거리, 활기찬 거리는 그 자체로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도시의 중요한 자산이다. 세계도시로 가는 위대한 여정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거리문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다양한 관점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도시의 문제점과 좋은 점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점들에 대해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단순한 여행기겠지. 하는 나의 촉은 무참히 깨졌지만.

그 무참히 깨진 상상에서 뜻밖에 만난 즐거움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앞으로의 사회가 지금보다는 좀 더 여유롭고, 느리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지금 내 나이의 어른들이 이루지 못한 것들을

지금 저자 나이의 청년들이 앞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이후의 마음이 가벼웠다.

 

 

좀 더 따뜻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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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 헌터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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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카린 지에벨의 단편을 얼마 전 읽었다.

장편은 어떨까? 싶도록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작품 [게임 마스터]

이번에 지에벨의 신간 사이코 헌터는 제목처럼 흥미로운 소재이다.

 

바로 '인간사냥' 이라는 주 재료에 집단 폭행이 낳은 살인의 광기가 또 하나의 몰이사냥꾼을 만들어 내는 곁가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제각각 하나의 소설로 완성될 만큼의 이야기인데 어떻게 저 얇은 책에 그 두 가지 요소를 합쳐 놓았는지 읽으면서도 감탄하게 된다.

 

인간 본성에 잠재되어 있는 사냥꾼의 기질.

우린 모두 정착하기 전에 수렵인이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 책에는 인간 사냥에 맛 들인 사냥꾼들이 나온다.

 

노숙자 레미는 무차별 폭력을 당하는 어떤 남자를 구해준다.

그리고 그 남자는 레미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자신을 도와준 고마움의 표시로.

 

한 달에 1200유로. 게다가 숙식까지. 그것도 성에서.

 

 

아무 의심 없이 제안을 받아들인 레미는 그곳이 사냥터라는 걸 모른다.

성으로 가장한 인간 사냥을 위해 마련된 은밀한 사냥터라는걸.

 

 

 

 

 

 

 

디안.

그녀는 사진작가다.

업무차 출장을 온 디안은 새벽부터 바지런하게 움직이다 봐서는 안될 것을 보았다.

마을의 사냥꾼들이 한 남자를 무차별 폭행하다 그를 죽인다.

처음엔 그저 그런 시빗거리로 시작되었지만 그 남자에게서 얼마 전 살해당한 여자의 사진이 나오자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제어할 수 없는 집단적 폭력.

그리고 일어난 죽음.

그리고 완전범죄를 꿈꾸던 그들에게 그녀의 존재가 발각된다.

 

기회가 없어 못했을 뿐, 작은 불씨 하나만 지펴주면 저열하고 비천한 본능을 폭발시키는 게 바로 인간들이다. 하지만 과연 모든 인간들이 다 그럴까?

 

 

한쪽에서 인간 사냥을 즐기는 자들이 자신들이 섭외한 사람들을 도망치게 풀어놓고 사냥개를 풀어 몰이사냥을 한다.

한쪽에선 살인을 목격한 여자를 4명의 사냥꾼들이 찾기 위해 추격을 한다.

도대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

 

포식자들의 먹잇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노숙자나 불법체류자들이었다.

없어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그런 사람들.

 

시장의 법칙, 그건 바로 수요와 공급이다.

그 수요와 공급이 바로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가 상상했던 사냥에 참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꺼이 내놓을 고객들이 주변에 널려있었다.

평생, 단 한 번도 즐겨본 적 없는 최고의 사냥을 위해서.

 

 

레미는 자신처럼 그곳에 붙잡혀 온 불법 체류자들과 함께 생사를 거는 도망자가 된다.

출구 없는 사냥터에서 살기 위해 맹렬하게 도망쳐야 하는 그들.

그리고 그들을 재미 삼아 쫓는 사냥꾼들은 시시각각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노숙자 레미와 말리에서 온 사르한 체첸에서 온 형제는 사력을 다해 도망치지만 도망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죽음을 피해 낯선 세계로 도망 친 형제는 결국 사지를 벗어나 죽음의 대가를 치르는 곳으로 자진해서 걸어온 셈이다.

그들에겐 이 세상 어디에도 평화로움은 없겠지. 죽음까지도 고통스러웠을 뿐이니까.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도망치는 모습에서 인간의 다른 본성을 보게 된다.

 

악에 물든 본성과 어떤 식으로든 맺게 되는 끈끈한 결속력.

무전유죄의 법칙과 살아남은 자는 침묵해야만 한다는 사실.

그리고 진실에겐 누구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사실.

사람들은 허황된 진실보다는 날조된 현실을 더 믿는다.

 

지에벨의 이야기는 인간 본성의 원초적 감정선을 건드리는 힘이 있다.

그리고 모호하게 끝맺음을 하는 인간관계도 있다.

쥘리라는 여자와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다 언급되지 않은 이야기가 찜찜하게 남아 있다.

디안은 쥘리와 어떻게 아는 사이일까?

언급되지 않은 건 잊을밖에.

 

어차피 그들은 아름다운 시월의 어느 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살인자가 되어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재범을 하거나 말거나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끔찍한 '말기' 상태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상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뿐...

 

 

이 희생자들 중에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었을까?

오로지 자신들의 욕구를 위해 동물이 아닌 같은 종을 살해할 이유가 있을까?

순간의 광기를 거두지 못해 모두 살인자가 된 그들은 어떻게 평생 그 짐을 지고 살아갈까?

그중엔 아무런 짐도 지고 가지 않는 무감각한 사람도 존재한다.

 

이 책은 다 읽고 나서도 끝없이 쫓기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사냥꾼들이 모두 살아남아서 그런 거 같다.

어떤 처벌도 없는 이 이야기 앞에서 무력해지는 나 자신을 본다.

어쩜 지에벨의 세계는 현실과 가장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잘한 죄들은 무거운 벌을 받지만

커다란 죄들은 단죄하지 않는 이 현실의 세상이 사이코 헌터들이 사는 지에벨의 세상과 다를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위험을 건너뛰면 곧바로 다른 위험이 닥쳐 오는 세상.

지에벨이 말하고자 하는 세상이 아닐까?

 

오늘 밤은 무작정 도망 다니는 꿈을 꾸게 될 거 같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여느 날과 똑같은 하루가.

대수로울 것 없는 하루가.

양심의 가책을 벗어던진 살인범은 무고한 시민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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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마음 델핀 드 비강의 마음시리즈 1
델핀 드 비강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빠르게, 테오는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표정 없이, 시선을 내리깔고, 최대한 아껴서 말을 내뱉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말 것, 경계선으로 나뉜 두 진영에서 침묵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최고의 방책이다.

 

누군가는 위험을 감지하는 눈을 가졌다.

그건 마음의 눈이다.

고통을 겪은 사람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다.

하지만 규칙과 사회적 관습과, 방어하는 마음과 방심하는 마음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마음들에 의해 종종 묵살되고 만다.

그리고 정말 어찌 손을 쓸 수 없을 때에 가서야 우왕좌왕 책임질 사람을 갈구할 뿐이다.

 

 

12살. 이제 곧 13살이 되는 테오에겐 이혼 한 엄마와 아빠가 있다.

일주일씩 번갈아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내야 하는 어린 테오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감정의 시작 지대에서 어설픈 눈치만 늘어간다.

눈치는 침묵의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저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둘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이니까.

 

어른들은 자신들의 고통 때문에 아이의 고통을 어루만질 수 없다.

아이는. 아이니까 잊어버릴 거라 생각한다.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다정하게 물어보는 부모는 없다.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그리운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외로운지...

 

엘렌은 교사로서 그리고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로 인해 테오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직감으로 느낀다.

하지만 표면상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그저 좀 신경을 써서 지켜보라는 말 이외엔 그들도 딱히 나서서 문제를 드러나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린 테오는 마티스라는 친구가 있었지만 그 어린 친구가 그의 고통을 덜어 줄 순 없었다.

곁을 주지 않는 엄마와 점점 무너져가는 아빠 사이에서 테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보호한다. 그 무언의 약속은 때때로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이 말이 복선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학대만 학대가 아니다.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함도 학대일 수 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한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데도.

 

충실한 마음.

가족에게 가져야 하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무엇인데 스스로 침묵하게 하고, 외면하게 하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게 할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이

결국은 해친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게 누군가일 수도 있고, 그게 나일 수도 있다.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학대하는 사람도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이 쓴 글자에 피멍이 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또한 가슴에 묻어 버린다.

그것들은 차곡차곡 쌓여 결국 그들을 죽음의 강 위로 던져 버린다.

 

어떻게 해야 옳은 걸까?

 

나는 충실한 사람일까?

내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한 말이 충실하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한 행동이 충실하다 할 수 있을까?

충실한 마음의 가닥을 아직 다 모르겠다.

내가 충실한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델핀 드 비강의 이야기는 처음이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답은 우리 각자가 각각의 영역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충실하되

감각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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