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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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이 명랑한 사람에게조차 무거운 시절이었다.



1138년 잉글랜드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를 둘러싼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캐드펠이 머무는 수도원 역시 그 쟁탈전에서 무사하지 못했다.

어느 날 캐드펠은 고드릭이라는 조수 한 명을 맡게 된다.

캐드펠은 곧 그가 소년으로 위장한 소녀이며 그녀가 황후를 지지하는 애더니의 외동딸 고디스라는 걸 알게된다.

뭔가 사연 있는 남장소녀를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캐드펠 수사.

그들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지지 첫 장부터 두근거린다.




왕은 자신의 지시로 처형된 아흔네 구의 시신에 대한 책임은 받아들인 반면 자신의 재가도 받지 않고 누군가가 제멋대로 살해한 아흔다섯 번째 주검에 대한 책임은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티븐 왕을 지지하는 한 커플과 모드 황후를 지지하는 한 커플의 이야기가 실존 인물들과 함께 거론되니 진짜 있었던 일 아닌가 싶다.

스티븐 왕은 함락한 도시 슈루즈베리 그곳에서 모드 황후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일족을 교수형에 처한다.

시신 수습을 하던 캐드펠 수사는 시체가 한 구 더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교수형에 처한 사람들과는 다른 죽음 앞에서 캐드펠은 이 죽음을 용서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범인을 찾아 나선다.

스티븐 왕조차도 자신이 벌인 일에 슬그머니 시체를 넣어 자신의 살인을 교묘하게 감춘 자를 잡아들이라 명한다.

캐드펠은 이제 살인자도 잡아야 하고 남장을 한 채 수도원에 숨어 있는 고디스도 무사히 탈출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런 캐드펠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은근히 수작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고디스를 잡아서 스티븐 왕의 환심을 사려는 고디스의 약혼자 휴 베링어였다!






역사적 사건 속에 슬그머니 심어진 이야기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각각의 정치 성향에 따라 편이 갈라진 네 명의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이 살인사건과 적진에서 옮겨야 하는 보물들과 함께 그들을 보호하려는 캐드펠과 추적하려는 추격자 간의 머리싸움이 팽팽하게 맞서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약혼녀를 찾는 척하면서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베링어.

모드 황후에게 전해져야 하는 보물을 찾기 위해 캐드펠 수사를 이용하려는 베링어와 그를 역 이용하려는 캐드펠 수사의 머리싸움이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남장을 하고 수도원에 피신해 있던 고디스와 처형당한 오빠 때문에 비탄에 빠져 있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는 얼라인의 품위가 잘 그려진 작품이었다.

이 두 소녀의 우정이 남자들이 벌이는 팽팽한 신경전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여유 있게 다독여주었다.

이제 겨우 두 편을 읽었을 뿐인데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 푹 빠지게 되었다.

촌스럽지 않은 고전 추리소설이라 매력 넘치고

등장인물들이 모두 개성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중세 배경임에도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겠고

살벌한 살인 사건과 반전미 넘치는 재치는 요즘 스릴러도 따라잡기 힘든 반전 매력이 넘친다.

화려한 액션 없이도 쫄깃하고

예상치 못한 범인 때문에 허를 찔리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번거롭지 않게 중세 시대로 휴가를 떠날 수 있는 타임머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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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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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부수도원장이 지위와 계급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리샤르트는 혈연관계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이었다.




웨일즈 출신의 캐드펠 수사.

과거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지만 지금은 수도사로서 약재학 전문가가 된 캐드펠 수사는 과거를 뒤로하고 조용한 말년을 위해 허브를 키우며 수사로서의 직분을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 시절 수도원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성인을 모시는 것이 유행이었나 보다.

캐드펠이 몸담고 있는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도 귀더린의 위니프리드 성녀를 모셔와야 한다는 계시를 받은 콜롬바누스 수사에 의해 로버트 부수도원장을 필두로 웨일즈에 모셔져 있는 위니프리드 성녀를 모시러 출발한다.

캐드펠은 자신을 보필하는 젊은 수사 존과 함께 이 행렬에 끼게 된다.







웨일즈 출신인 캐드펠은 통역을 자처하고, 자존심 강한 웨일즈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녀를 모시러 온 잉글랜드 사람들이 못마땅하다.

그들을 대표하는 리샤르트는 위니프리드 성녀를 모셔가는 일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뜻밖의 반대에 부딪힌 수도사 일행은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아서 당혹스럽다.

영국 BBC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중세 시대가 배경임에도 전혀 그런 티가 안 난다.

빠른 전개와 강렬한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아버지 리샤르트가 죽은 채 발견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자로 몰리는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하는 쇼네드.

중세 시대 남자들의 세상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쇼네드의 당참이 인상적이었다.

아직 허브 가꾸기가 취미처럼 보이고 살짝살짝 자신의 과거를 보여주며 은근한 카리스마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캐드펠 수사의 매력을 반도 안 알려 준 시리즈 첫 이야기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은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과 사건을 감쪽같이 은폐하는 캐드펠 수사의 솜씨로 보아 앞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주고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물고기처럼 매끄럽고

겨자처럼 톡 쏘며

색다른 향신료들이 각자의 매력을 잘 살려내고 있는 시리즈다.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만나게 될 등장인물들이 기대되는 시리즈는 또 처음이다.

엘리스 피터스.

"마크 트웨인'의 딸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들이 모두 무사히 나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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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서점
이비 우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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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과거가 있고, 감옥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그 과거 때문에 우리는 진정으로 되고 싶은 인간이 못 되는 거잖아요.



<오펄린>

가짜 이름에 남모르는 임신, 그리고 에밀린 브론테의 발굴된 원고를 가진 1920년대의 그녀.

<마서>

책을 읽듯 사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현실은 남편의 폭력에 길들여 살다 도망친 그녀.

<헨리>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린 기억을 품고 현재는 에밀리 브론테의 두 번째 원고를 찾아 희귀본 서적계에 이름을 알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오펄린의 서점을 찾아 헤매는 남자.

세 사람의 시선으로 엮어가는 이 신비한 이야기 속에 빠져 있다 보니 무더위쯤은 쉬이 잊어버렸다.

과거와 현재가 오가며 촘촘하게 엮이는 사람들의 인연.

오펄린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자들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운명을 쥐고 흔드는 남자들의 횡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분노 게이지를 높인다.

그리고 현재에도 폭력으로 상대의 심신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에게 발목을 잡혀 사는 사람들이 교차되면서 그들의 그늘진 과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나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찬 이야기가 마음을 가득 채우는 <사라진 서점>.


처음 읽는 작가 이비 우즈의 <사라진 서점>엔 로맨스와 판타지와 책들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준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실존했던 서점과 그곳을 운영했던 실존 인물 실비아를 등장시킴으로써 오펄린의 존재는 현실과 환상 속에 섞여있다. 그래서 오펄린의 운명이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을 대변하는 거 같다.

씨줄과 날줄을 잘 엮어서 상상해 본 적 없는 이야기가 환상인 듯 현실인 듯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길 잃은 곳>을 쓴 사람은, 삶의 모든 시련이 더 큰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열쇠이며, 그 열쇠로 미래를 여느냐 아니면 문에 빗장을 지르느냐는 본인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또 그만큼 특별한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저 깊은 마음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동안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은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이 현실이 되는 상황을 겪었다.

마서와 헨리 그리고 오펄린의 인연이 내게도 닿은 것만 같았다.

<사라진 서점>은 이 세계에서 숨어지내는 곳이다.

간절한 누군가가 찾아주기를 바라는 장소.

그 장소를 지키고 가꾸어 나갈 줄 아는 사람과의 인연을 기다리는 장소다.

이 현실에도 그런 장소가 있을 거 같다.

사라진 게 아닌 숨어있는 그 장소가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에게도 그런 장소가 존재할 것만 같아서 설렘이 생겼다.

무더운 여름

잠 못 드는 나날이 계속되는 이 시기에

잠시 환상과 로맨스와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한 공간이 주는 평온함을 함께 느꼈던 이야기였다.

나만의 <사라진 서점>을 찾는 여정을 계속해야겠다.

언젠가 내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곳'을 찾게 되는 날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 테니...

"누구한테 인정받으려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인생에 갇혀 사는 인간들? 그 인간들은 자네도 자기들처럼 갇혀버렸으면 싶은 거야. 자기들만 공허감에 사무치면 억울하거든. 조심해 마서, 계속 부르주아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간 자네만의 가치를 못 보고 말 테니까."

보든 부인의 준엄한 말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말 같다.

나만의 가치를 알아내는 것이 바로 '삶'이자 '인생의 진실'이 아닐까.

지금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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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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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호러 하면 피 터지는 이야기와 잔혹한 이야기가 기본으로 장착된다.

<걷는 망자>엔 그런 대목이 한 부분 있다. <배를 가르는 호귀와 작아지는 두꺼비집>

소제목에 나와있듯이 곰을 잡으려고 설치해 놓은 철창에 아이의 배가 갈린 채 발견되는 밀실 살인이 가장 잔인하다고 해야겠다.

그나마도 이 이야기가 페로 동화와 그림 동화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 때문에 잔혹함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미쓰다 신조를 각인한 작품은 <검은 얼굴의 여우>였다.

역사물 같은 민속학적인 호러의 이야기가 참 진중해서 미쓰다 신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미쓰다 신조는 다양한 필력을 가졌는데 바로 <걷는 망자>에 담긴 사소한 듯 보이는 이야기들을 사소하지 않게 만드는 솜씨가 있다.

관에서 기어 나온 시신

망자가 다니는 길에서 본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사람

번듯해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모든 게 작게 지어진 집

여러 해가 지나서 더 작아진 집

그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마치 조커처럼 입이 찢어진 귀신 쿠치바온나

머리 없이 다가오는 여자

자시키 할멈

다섯 편에 담긴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풀이를 하려는 덴큐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다.

잔뜩 호기심에 읽은 괴이한 이야기를 현실 트릭처럼 쳐내는 덴큐의 추리는 그래서 이 이야기를 괴이 하지 않게 만든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미쓰다 신조를 만나는 첫 독자가 읽기에 가장 좋은 책이라고 했나 보다.

도조 겐야로 인해 무묘대학에 괴이 민속학 연구실이 생기고

그곳 지박령 같은 덴큐 마히토에게 도조 겐야가 보낸 편지를 배달하면서 괴이한 이야기를 같이 접하는 도쇼 아이.

아이는 걷는 망자를 직접 목격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아이와 덴큐의 티키타카도 재밌고 마지막에 그들의 미래를 언급한 작가의 의도도 즐겁다.

일본엔 괴담이 참 많은데 작년 여름에 미미여사의 괴담집을 읽으며 접해서인지 이제는 좀 익숙해졌다.

미쓰다 신조의 <우중 괴담>과 <괴담의 집>을 짬짬이 읽는 중인데 그 책들과는 묘하게 결이 달라서 <걷는 망자>는 다른 사람이 쓴 느낌도 든다.

다양한 색을 지닌 미쓰다 신조.

그가 풀어내는 괴이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진실을 추리하는 또 다른 미쓰다 신조의 트릭이 즐거운 작품이다.

괴담도 덴큐처럼 해석하면 무섭지 않구나를 생각하면서도 괴담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파괴하는 거 같아서 덴큐의 추리가 빗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괴담을 무서워하면서도 괴담을 수집하는 묘한 인물 덴큐와 겐야.

두 사람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어설픈 추리도 해봤는데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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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체온증 에를렌뒤르 형사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김이선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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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를렌뒤르는 왜 이 여자가, 그녀의 아버지 또한 차가운 최후를 맞이한 호숫가에서 잔인하고 외로운 운명을 맞이해야 했는지 까닭을 알고 싶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한 사람의 운명을, 그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두 문장이 <저체온증>을 관통하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마리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마리아와 엄마의 돈독한 관계를 표현하며 모녀가 빠져있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과 두 사람의 결속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묶어놓고 있는 과거의 사건.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사람의 죽음이 두 모녀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고, 어머니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마리아는 아버지의 죽음이 깃든 별장에서 목을 맨다.

자살로 마무리될 사건이지만 마리아의 친구의 제보로 에를렌뒤르는 이 자살 사건에 묘한 의문을 품게 되고,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은 채 혼자서 사건을 수사한다.

<저체온증>엔 사고사, 자살, 실종자가 나온다. 그들은 모두 얼음과 관계가 있다.

마리아의 이야기와 에를렌뒤르의 과거가 맞물리면서 얼음 아래에 숨어있던 이야기들이 삐져나온다.

삼십 년 가까이 실종 상태였던 두 사람.

사고사로 묻힌 타살.

눈 폭풍이 몰아치던 날 어린 동생의 손을 놓쳐버렸던 형의 오래 묵은 자책감들이 모여 촘촘한 이야기를 엮어간다.



"자살 역시 실종 사건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에를렌뒤르가 멋있다.

누가 뭐래도 의심이 풀리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의 끈기와 인내가 존경스럽다.

그의 묵묵함이

그의 치밀함이

그의 인내가 돋보이는 작품 <저체온증>

이 이야기에서는 해묵은 과거들이 발목 잡고 있는 현재를 보여준다.

마리아도 에를렌뒤르도 실종된 자식을 품고 사는 부모들도 모두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다.

에를렌뒤르처럼 그의 딸 역시 아버지가 없었던 과거를 되돌려 보려 애쓰고 있다.

차가운 얼음 아래 묻혔던 과거들이 스멀스멀 녹아내리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렇게 스멀스멀 과거의 상처들도 녹아내리는 이야기였다.

범죄소설이자 스릴러인 에를렌뒤르 시리즈는 그냥 범죄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시리즈다.

아이슬란드의 독특함이 양념처럼 뿌려진 이 시리즈는 다른 형사물에서 느껴보지 못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에를렌뒤르는 마르틴 베크와 발란데르를 합쳐놓은 캐릭터 같다.

베크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사건을 수사하다 한순간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아내고

발란데르처럼 가정사가 어렵지만 묵묵하게 자기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중독자이기도 하다.



우연은 의심 없는 개개인의 삶 속에 교묘하게 심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명칭이야 여러 가지 붙을 수 있겠지만, 에를렌뒤르가 몸담은 곳에서 그런 우연을 칭하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범죄.




하나의 사건을 파고파고 또 파내어 몇 십년전의 목격자를 만나게 되고 그로인해 두 가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는 <저체온증>

화려한 액션이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릴과 반전이 없어도 이 이야기는 자체로 아주 훌륭한 문학작품 같다.

형사물과 범죄물에 철학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에를렌뒤르 그 자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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