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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평점 :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슬픔은 우주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고.
아주 긴 제목이 너무 시적이라서 제목만 몇 번을 읊조렸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라는 제목은 <포털>이란 이야기에서 가져왔다.
사람들의 슬픔이 우주에 구멍을 내어 포털이 생겨난다.
아이 잃은 집 마당의 타이어 그네에도 포털이 생겼다.
숲속에 생긴 포털을 통해 아버지를 어루만질 수 있었던 형제.
수영장 필터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그것을 조사하던 경관은 그 포털 속에서 엄마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나는 사랑했던 콜렛을 만나고 싶다.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던 첫사랑 콜렛.
커밍아웃 할 수 없었던 시대에 홀로 가슴 앓이 했던 소녀는 콜렛을 만나기 위해 숲에 있는 포털을 찾는다.
그곳에서 소녀가 만난 건 무엇일까?
아버님은 노년에서 중년까지 젊어질 겁니다. 그런 뒤 청년기로, 십 대로, 그러다가 아이가 되고, 어린 나이로 죽어요. 일반적인 사인은 폐 미발달이 됩니다.
<역노화> 는 죽음을 택할 수 있는 방식 중에 하나다.
점점 어려지다 갓난아이가 되어 죽는 방식이다.
이 방법을 택하면 역노화의 진행을 지켜볼 사람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역노화를 지켜보는 딸과 점점 어려지는 아버지는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게 될까?
점점 어려지는 부모를 지켜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이 이야기를 읽으며 잠시 내 엄마가 어려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엄마와 내 나이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엄마의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내 부모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거친 인간화의 과정을 내 부모가 먼저 겪었다는걸.
자란 시대가 달랐을 뿐 그들도 나와 같은 감정으로 살았음을..
나는 많은 부분을 그들에게서 물려받았음을 깨치며 읽게 됐다...
갓난 아기가 된 아빠를 품에 안고 뛰어가는 딸의 마음이 어떤 건지 짐작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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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나를 대신할 봇 <버전들>
이 버전들이 결혼식장에서 만났을 때 봇들끼리 감정이 생길 수 있을까?
아트리스와 벤은 한 결혼식에 초대를 받는다. 그곳이 그들이 마주친 첫 결혼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빠서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그들의 버전을 대신 보낸다.
옆자리에 앉게 된 버전들은 그들이 가진 단순한 언어로 소통을 하게 되는데...
미래를 잠시 보고 온 느낌이다.
버전들과 죽은 사람들의 홀로그램이 참석하는 결혼식.
버전들의 주인들이 직접 참석했다면 마음이 통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한정되게 입력된 언어들로 자신들의 감정을 나누는 버전들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소름도 끼친다.
감정이 생기는 로봇이라니... 내가 바라는 상황은 아니다.
몇 년 전 거대 테크기업과 사이버 보안을 겨냥한 통합법안이 통과되면서 재수 없는 연애 상대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모든 앱에 의무화되었다. 우리 같은 인간들을 가려내기 위한 연애 신용점수 같은 것이 고안되어 일괄 적용된 것이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는 재수 없는 연애 상대로 찍힌 사람들이 데이트 앱에서 영구 퇴출 되는 세상이다.
와! 신박하다!
현실에도 이 제도가 생긴다면 데이트 폭력이 줄어들까?
하지만 이것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런 여자다.
퇴출된 사람들을 지지하는 모임에서조차 자신의 희생양을 찾는.
그런데 어딘지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모임에 참석했다. 여자는 그 남자를 살며시 꼬셔서 자신들의 연애 신용점수를 높이고자 한다. 그렇게 시작한 연애 과연 잘 될까?
"나는 어린 시절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생각해. 발로 차고 고함지르고 슬픔과 공포를 느끼면서, 표면 아래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주도하는 거라고."
친구들과 휴가를 간 버몬트의 한 저택. 그곳 게임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각자의 어린 시절에 그린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게임.
봉인되었던 끔찍한 기억으로 들어가는 게임룸... <내가 그린 그림>
15편의 단편들은 뛰어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마치 드라마 블랙미러를 글로 읽는 느낌이다.
모든 이야기가 실현 가능한 이야기라서 그런 미래가 곧 도달할 거 같다.
특히 가스라이터는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면 어쩌지?
묘하게 아름답지만 한편으로 아주 끔찍한 느낌을 동시에 받게 되는 이야기의 집합체였다.
이 책에서 현실화되는 소재는 몇 개나 될까?
세상이 지금처럼 정신없이 앞으로만 달린다면 한두 개 정도는 현실화가 될 거 같다.
아니면 이미 진행 중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