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닮은 너에게 애뽈의 숲소녀 일기
애뽈(주소진) 지음 / 시드앤피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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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소녀 시리즈.

네이버 그라폴리오를 통해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숲 소녀의 작가 애뽈의 최신작이다.
나는 처음 접한 그림인데 그림에 푹 빠져 버렸다.
색감도 풍부하고, 그림 속 소녀의 모습이 굉장히 생동감이 있어 금방이라도 머리칼을 나부낄 것만 같다.

상상력이 가미된 그림은 사막화되어 가는 마음에 단비를 내려주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또 다른 세계로 빠지는 느낌이 썩 괜찮았다.
마치 어릴 적 소녀감성으로 되돌아간 기분으로 이 책을 넘겨 보았다.
그림과 짤막한 글이 한글과 영문으로 쓰여있다.

그림들을 보다가 나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의 그림은 하나의 기억을 소환시켰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많은 느낌들이 되살아났다.

 

 

 

 



천정창을 보며 나중에 저런 천정창을 낸 집에서 살고 싶었던 기억과 함께
촘촘히 박혀 있던 수많은 별들이 버거워 손에 닿을 듯 내려앉았던 밤하늘을 보았던 그 밤을 기억했다.
그런 밤하늘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거 같아서 서글프다.

한 여름 한껏 멋을 낸 숲 소녀의 그림 속에서 점점 생활인이 되어가는 친구의 모습도 떠올랐고,

얽힌 실타래 앞에서 끙끙대다 결국 싹둑 잘라내었던 실망스러웠던 인연들도 떠올렸다.

꿈속에서조차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를 생각나게 했던 밤하늘을 나는 고래.
비 오는 날 너른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로망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

나는 어째서 예쁘게 꾸미고 다니지 못하고 보이시하게만 다녔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도 해보고,
루돌프 닮은 반려견도 한 마리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다.

책을 잃다 보면 늘 곁에 두고 가끔 펼쳐보고 싶은 책들이 있다.
그림이 풍부하거나, 사진이 좋거나, 짧은 글이지만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책들.

내게 그런 책 목록에 넣어 둘 책이 하나 더 생겼다. 그림만으로 많은 추억을 떠올리고, 잊었던 감정들을 추슬렀으니...

곁에 두고 마음이 버석거릴 때마다 꺼내 숨 쉬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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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 오늘도 사회성 버튼을 누르는 당신에게
남인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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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사람은 사실 선택적인 수다쟁이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어쩌면 최대한 피곤하지 않은 수다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의 정체성에 의구심이 든다.

 

여태 외향인으로 살다 내향인으로 변화한 건지

내향인인데 사회성 버튼을 일찍 누르는 법을 터득해서 외향인으로 살았던 건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경계에서 살다 급 피곤해져서 사회성 버튼을 고장 내버리고 내향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어떤 대목에선 내가 작가님과 너무 닮은 성향이고,

어떤 대목에선 외향인 기질이 다분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예쁜 책이다.

자근자근한 이야기도.

페이지 사이사이 깨알 같은 질문과 답변도.

그 사이사이 담긴 그림들도.

 

 

사람의 의지라는 것은 강물이 아니라 우물물에 가깝다. 한꺼번에 너무 퍼올리면 바닥을 보이고, 다시 채워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내향인의 의지가 소진됐을 때 가장 먼저 불이 꺼지는 영역이 다름 아닌 사회성이다. 그게 가장 많은 화력을 잡아먹는 공장이라서 그렇다.

 

내가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 살펴볼 기회가 생겨서 안심되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까닥 없이 침잠해 있는 건 아닌지

집에만 있다가 바보가 되어 버린 건 아닌지

억지로라도 어울릴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

내 성질의 지랄맞음이 점점이 늘어 90%를 넘어가는 건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고민했던 시간이 이젠 필요 없어졌다.

 

 

나는

내향인인데

외향인 가면을 쓰고 살다 방전된 거였다.

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쓸모없이 에너지를 불태워버린 것이다.

 

우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금이었다.

 

늘 그렇듯

알고 나면 아무렇지 않은 것이

몰라서 걱정을 만든 거였다.

 

책 한 권은

아주 멀리 나를 데려가기도 하지만

아주 깊은 곳으로 나를 모셔가기도 한다.

 

이 책은

나를 깊이 있게 모셔갔다.

아주 가까웠지만 전혀 알 수 없었던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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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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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

.

그 후 그 일요일은 나와 이전의 나에 대한 모든 것 사이를 가르는 어떤 장막처럼 남게 되었다.

 

 

 

 

 

아니 에르노.

처음 읽는 작가다.

 

 

부끄러움은 그녀의 12살 6월 어느 일요일 부부 싸움 끝에 극단까지 치달았던 부모의 한순간이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은 한 소녀의 이야기다.

아니 에르노 그 자신의 이야기다.

그 한 해에 대한 그녀의 기억이 기록처럼 적혔다.

보태지도 덜하지도 않은 날것의 기억.

 

 

프랑스 시골마을의 풍경

50년대 시골 사람들의 생활

사립학교를 다니지만 그 안에서 극명한 차이를 느꼈던 소녀의 총체적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사립학교, 그곳의 품위와 완벽함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부끄러움 속에 편입된 것이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온전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에르노의 글이 그렇다.

감정의 기복 없이 최대한 냉정한 시선으로 그때의 충격과 그것을 감추고 살아내는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상인의 외동딸이었고, 학교에서 상위 성적을 유지하고 조용했지만 늘 사소함에서 부끄러움은 드러났다.

그 부끄러움마저도 너무 냉정하게 표현된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본 듯 그대로 적어 놓은 글 앞에서 낯설음을 느꼈다.

어디에서도 읽은 적 없는 느낌이다.

고요한 응시.

어떤 작가도, 아니 어떤 사람도 해낼 수 없는 글을 썼다.

이 생소함은 무언가 신경을 건드리는 게 있다.

아마도 자신에 대해서 절대 객관적일 수 없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겠지.

어떤 글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기록이다.

한 개인의 숨기지 않은 낱낱의 기록.

그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렇게라도 끄집어 내고 싶었던 찌꺼기였을까.

좀 편안해졌길 바랄 뿐이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지신들은 그 감정을 소진하고 이해하겠지만

주변에 있다 그 파편을 정통으로 맞은 아이들의 상처는 무시되기 쉬운 것이다.

그녀의 부모도 그랬다.

자신들은 잊었고

그들의 외동딸은 끝까지 그 기억에서 놓여나지 못했다.

자기 자신을 기록하는 일.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 작가. 아니 에르노.

특별한 작가를 읽느라

한 밤이 꼴딱 지나갔다.

그녀의 기억에도

아침이 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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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살인사건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3
에드거 월리스 지음, 허선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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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깊이 파고들수록 더 혼란스럽네요. 부유한 한 남자가, 그것도 지독하게 원한을 품을 만한 원수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하이드파크 공원에서 죽은 채 발견됐단 말이죠. 여자 실크 잠옷으로 가슴이 동여매어져 있고, 천으로 된 슬리퍼가 발에 신겨 있고, 중국 사자성어가 쓰인 빨간색 종이가 주머니에 들어 있었어요. 게다가 더 당혹수러운 건 수선화 한 다발이 가슴 위에 놓은 채로요.

 

 

허세가 이자 재력가인 손튼 라인.

그의 사촌이자 중국에서 형사로 지내다 귀국한 사립탐정 잭 탈링.

탈링의 조수이자 중국에서 형사였던 링추.

그들이 만나고 나서 며칠 뒤 손튼이 시체로 발견된다. 그의 시체엔 수선화 한 다발이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

 

 

손튼은 자신의 백화점에 근무하는 밀버그가 지속적으로 회삿돈을 횡령하고 있다는 심증을 가지고 탈링에게 그를 조사해달라고 의뢰하기 위해서 탈링을 만났으나 밀버그의 횡령은 잊혔고, 대신 미모의 여직원 오데트를 범죄에 엮어달라 요청한다.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오데트를 벌하기 위한 손튼의 계략에 탈링은 그 사건을 맡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손튼이 죽고 오데트는 범인으로 몰린다.

그리고 상속인이 없이 죽은 손튼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사람은 바로 탈링 자신이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손튼을 죽인 권총이 발견되는데 그 총은 바로 탈링의 총이었다.

도대체 이 사건은 어디로 흘러가는걸까?

그리고 손튼을 죽인 건 누구일까?

 

 

월리스의 이야기는 읽는 재미가 있다.

가끔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도 있지만(주로 로맨스 관련해서!) 그의 이야기에 빼놓지 않고 스며있는 게 바로 로맨스다.

이번 이야기에서 탐정이자 손튼의 살인사건을 경찰과 함께 수사하게 된 탈링은 미모의 오데트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는데 그래서 그녀에게 씌워진 혐의를 벗기고자 엄청 노력한다.

하지만 단서들은 자꾸 오데트를 향하고,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밀버그와 손튼을 죽였다며 오데트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손튼을 흠모하던 범죄자 샘 스테이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자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게다가 중국어로 적힌 사자성어는 자화번뇌(스스로 일을 자초했다)라는 뜻이 적혀있다.

도대체 손튼과 중국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단순해 보이는 사건이 단순하지 않고,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서로 얽혀있고, 도대체가 피어날 거 같지 않은 로맨스가 피어난다.

월리스의 매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1900년대 초반 소설인데 중국인을 등장시키고, 중국에서 형사로 활약했던 영국인이 등장한다.

월리스의 추리 소설은 두 번째로 읽었는데 굉장히 다양한 인물들과 생소한 이야기들을 지어낸 작가다.

요즘처럼 심리적으로 디테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그 당시에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냈을까를 감탄하며 읽게 된다.

 

 

하지만 큰 단서는 늘 평범한 일상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밀버그라는 인물과 샘 스테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이후의 추리소설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캐릭터들의 선조 격일 거 같다.

극본을 썼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듯한 재미가 있다.

오래된 영국식 드라마 한 편을 본 느낌이다.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요리조리 흐트러 놓는 단서들과 상황들이 반전을 기다리고 있다.

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살짝~ 예측하긴 했겠지만, 그 당시에 이 소설을 접한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작품이었을 거 같다.

 

 

고전의 묘미는 추리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핸드폰 대신 공중전화나 전보를 쳐야 하고.

CCTV 대신 목격자를 찾아다녀야 하고.

모아진 단서를 눈에 새기게 들여다보며 머리를 굴려야 한다.

 

 

답답할 거 같은 고전이 뜻밖에 재미를 준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뿐이다.

요즘 날고 기는 형사들과 범죄자들의 조상님 격을 만나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에드거 월리스는 만날 때마다 새롭다.

다음 작품도 빨리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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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다시, 당신에게로
오철만 지음 / 황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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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들은 말해지지 않고 묻어두어도 좋다.

우리가 왜 지금 이곳을 걷는지 알지 못해도 된다.

 

 

 

사진이나 그림, 여행 에세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도, 그림도 아니다.

글이다.

오철만 사진작가의 글은 시 같다.

 

 

사진가들은 모두 시인이다

내면의 파도 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귀 기울여 듣고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받아적는 일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내뱉는 일

시인이 하는 일이다.

 

 

 

사진들 사이사이로 글들이 흐른다.

때론 아련하고, 때론 사무치고, 때론 허심탄회하고, 때론 정스럽고, 때론 사색적이고 때론 감정적인 글들이

사진 한 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작가의 사진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글에 더 마음이 기운다.

누군가의 심사숙고한 글이

누군가의 사색 가득한 글이

누군가의 호젓한 글이

책안에 담뿍 담겨있다.

 

 

 

그림 같은 사진도

선명한 화질도

무심한 길들도

잠시 멈춘 사람도

안개 자욱한 세상도

푸른빛 담뿍 담긴 바다도

책안에 담겨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엔 세월이 담겼다.

이리저리 찍어대서 한 컷 건지는 디지털카메라는 이해하지 못할 신중한 한 컷.

담긴 풍경을 보기까지의 시간도 인내해야 한다.

그래서 그가 수많은 시간 동안 필름인 채로 남겨 두었던 사진들을 현상하고자 했을 땐

이미 현상소가 거의 사라지고 없는 세상이 되었다.

 

오래된 필름에서 나오는 세월은 디카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의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느낌들이 뭔가 아련한 것은 그 때문인 거 같다.

 

 

모두가 그렇게 어쩔 도리가 없는 터널을 지난다. 한동안 푹 가라앉아 있다가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기를, 부디 그 시간이 짧아지기를 바랄뿐이다.

 

여행길에서

생활에서 만나지는 고달픈 인생살이도 그저 묵묵히 들어 줄밖에.

침묵으로 위로하는 모습이 든든해 보인다.

 

 

삶이 더해질수록 간직하고 싶은 장면들이 늘어날 것 같았으나 새로운 시간은 그저 과거의 시간을 밀어낼 뿐이었다.

 

 

 

글들이 깊은 밤을 날아 마음에 새겨진 시간이었다.

여행자의 마음은 늘 그렇게 놓아지는 게 많다.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고도 정작 자신의 사진은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찍고도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은 없다.

 

늘 먼 곳만 바라보다

자신 곁을 보지 못한 회한이 사무친다.

 

길은 다시, 당신에게로...

 

언제나 발자국은

먼 곳에 있더라도

되짚어 온다.

당신에게로...

 

긴 밤들을 나와 함께 했던 책이었다.

깊은 사진과 더 깊은 이야기로 마음을 어루만져 준 글이었다.

곁에 두고 싶은 책이 한 권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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