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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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고 쓴 리뷰라고 생각했다.

리뷰가 아니다.

책을 읽고 글로 쓴 수다이다.

이야기 잘하는 친구가 책을 읽고 감상을 얘기하는데 줄거리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가다듬어 조근조근 말해주는 이야기. 같다.

작가는 어릴 때 세계명작극장이라는 만화영화를 즐겨 보면서 자랐고 에세이 연재를 의뢰받았을 때 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오래, 꾸준히, 날마다 같은 느낌으로 제목만큼은 누구라도 아는 고전명작 읽어나가기.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챽들.

내가 읽었던 책들. 을 따져가며 읽을 이유가 없다.

나와는 다른 느낌과 방식으로 인물들에 몰입하는 작가의 수다는 그 작품을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드니까.

여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고독해지는 법이다. 마치 나보다 오래 세상을 산 친구에게 잔혹한 진실을 들은 듯 명치끝이 묵직해진다.

우리 범인(보통사람)의 가장 큰 무기는 상처받아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고전을 읽노라면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이 몇 번이고 찾아온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에 이토록 마음이 이끄는대로 살아간 주인공들. 그것만으로도 구원을 받고 용기를 얻는다.

 

 

작가는 고전 속 여주인공들에게서 느끼는 해방감. 당돌함. 시대를 앞선 생각이나 행동들을 짚어내어 이야기한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끄덕이게 되고

읽고 싶어진다. 그녀들을.

남자 작가들이 써 내려간 여주인공들은 저마다 시대를 앞서갔다.

그러고 보니 그들 역시 그 시대 여성들에 대한 부당함을 소설 속에서나마 풀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쩜 순종적이고 시대상이 그리는 여성보다는 그 시대에 존재한다면 입살에 오르내릴게 뻔한 앞서가는 여성들을 더 원했는지도 모르지.

어쩜 주위에 이미 앞서가는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서 영감을 얻었을 수도 있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가

읽고 싶은 책 목록만 열심히 부풀려 놓았다.

짬짬이 읽기 좋은 책

고전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책

읽었지만 희미해졌거나 이름만 알고 있는 고전을 확인해 보는 책

나와는 다른 해석으로 색다르게 보여지는 인물들에 대한 탐색으로 좋은 책

무엇보다

정말이지 편하게 익히 안다고 생각되어지는 이야기들을 누군가 비슷한 눈높이에서 같이 수다 떨듯 얘기해 주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던 책이다.

다 큰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누는 나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여자와의 수다가 참 매력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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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 케이스릴러
김혜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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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천지 남은 가족이라곤 없는, 상냥하고 덜 배운 여자. 심지어 언제든 병자로 몰아가 필요한 만큼 쓰다 버릴 수 있는 아내.

그가 나를 선택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엄마는 불의에 일어날 일을 남편이 예방해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 바람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사실 불의는 모두 그가 일으키고 있었다.

 

 

 

 

 

케이 스릴러.

 

한국형 스릴러를 지향하는 한국에서 출간되는 유일한 스릴러 소설 브랜드이다.

한국 작가의 스릴러 기대되시나요?

 

 

엄마를 잃은 날 아이를 낳은 나는 1년이 넘도록 엄마의 무덤에 가 보지 못한다.

이래저래 방문을 미루는 남편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봤자 그곳에 엄마가 없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사위 손에 죽었다.

그리고 엄마의 무덤엔 그 사위가 모아 둔 비자금 100억이 들어있다.

그게 내가 추측하는 전부다.

남편 혼자 하는 일인지. 시아버지의 사주가 있었는진 모른다.

나와 준이도 곧 엄마처럼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캐리어에 준이와 돈을 넣어서 도망갈 준비를 한다.

예행연습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

남편이 세미나로 집을 비우는 그때가 될 것이다.

나와 준이가 사라지는 날은.

 

 

숨 가쁘게 몰아가는 이야기

계속되는 의심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그녀의 의심이 어쩜 약간의 정신이상을 수반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마 이 선이라는 캐릭터의 내내 불안한 모습과 엉성한 추리 때문에 그녀의 혼란한 정신 속에서 헤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도망칠 준비를 마친 그녀의 주변에서 계속 이상한 상황이 전개되고, 급기야 그녀가 몰래 숨겨 놓은 여권이 사라진다.

남편은 뭔가 아는 거 같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남편이 세미나를 떠나고 선은 준이를 데리고 도망치기 전 잠깐 바닷가를 거닐다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틈에 준이까지 잃어버린다.

누가 준이를 데려갔을까?

선은 누군가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느낀다. 그녀 주변에 몇 낯익은 얼굴들이 맴돈다. 이들 역시 남편의 사주를 받은 걸까?

아이의 실종 신고를 하고, 담당 경찰이 집으로 찾아오지만 그녀의 말들을 믿지는 않는 거 같다.

사방팔방 모두가 그녀를 미친 사람 취급하고, 남편이 돌아올 시간은 다가오고, 그전에 준이와 도망을 쳐야 하는 선이의 마음은 다급하기만 한데...

 

 

급박하다.

그리고 100억이라는 돈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답답하다.

특히 돈을 포터에 싣고 도망 다닐 땐 조마조마하다.

 

 

돈이 없어도 걱정이지만

돈이 너무 많아도 걱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많은 돈은 정말 무덤 속에다 묻어 두어야 하는 거였다.

 

 

 

 

 

여자 잡아먹는 집구석

 

 

 

시아버지 저택에서 일하는 여자의 흘리는 말을 들은 나는 시어머니의 죽음도 돈과 관계되었다고 생각한다.

1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 앞에서 그 돈을 좇는 사람들과 선의 대립은 소름 돋게 끔찍하다.

 

속도감은 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돈.

그리고 누구에게 기댈 수 없이 홀로 아이와 자신을 지켜야 하는 주인공 선.

남편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한 건지 알 수 없기에 깨림직한 부분이 남아있다.

촘촘한 이야기의 구성은 아니었지만 글 자체가 마치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 쫄깃한 느낌으로 내내 긴장하며 읽었다.

 

 

액션 영화 한 편을 본 느낌.

약간의 개연성만 보완한다면 더 훌륭했었을 거 같다는 아쉬움이 살짝있다.

 

 

뭐든

적당한 게 좋아.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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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수다를 위한 상식 퍼즐
기명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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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고도 상식스러운 책 한 권을 만났다.

저자는 대학내일에 3년 가까이 낱말퍼즐을 연재한 실력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희소성 있는 넓고 얕은 지식들을 골라 낱말퍼즐을 만들고 그것에 대한 설명도 담아 놓았다.

 

 

단어는 지금도 매일 쏟아지고 있다. 새롭게 만들어진 낱말이 아니더라도 다른 의미로 쓰이는 표현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콜라와 함께 탄산음료의 양대산맥을 이루던 '사이다'는 통쾌한 무언가를 봤을 때 터져 나오는 감탄사로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이 작업을 계속하면 그 키워드들의 묶음도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난이도에 따라 코스별로 되어있다.

낱말퍼즐 사용 설명서까지 남겨두었길래 '뭐 이렇게까지?' 생각했었다.

낱말퍼즐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라는 이 자만은 첫 번째 관문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그건 이 책이 예전처럼 그저 낱말의 뜻풀이로 되어 있기보다는 최신 용어들의 정의로 꾸며져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도전했으나 첫 관문에서 와르르 무너진 내 자존심.

내 무식을 확인한 느낌에 엄청 당황스러웠다.

 

 

 

 

 

 

예전엔 신문에 실려있던 낱말 퍼즐 푸는 재미가 있었다.

근래엔 신문을 보지 않으니 자연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 책을 받자마자 호기롭게 덤벼들었다.

예전 실력 발휘해 봐야지~ 하면서.

 

첫 번째 퍼즐을 푸는데. 거... 참.

 

아는데 낱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소싯적에 낱말퍼즐 꽤나 했는데 말이다.

설명을 읽으면 알겠는데 정확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는 이 현실~

 

위 사진은 첫 번째 퍼즐이다.

시작하는 단계라서 쉽고 비교적 많이 들어 본 단어들만 모아 놨다.

그런데.

설명을 읽으면 알 거 같은데 막상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손으로 글씨를 쓸일 없는 요즘 거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뉴스들을 읽고만 넘기기에 머릿속에 저장되기보다는 눈으로만 짚고 넘어가는 일이 많아진 데서 오는 현상이라 짐작해 본다.

손으로 써본 적 없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이 그저 흘려 읽고 넘기기에 급급했던 용어들이 이렇게 요약 설명되어 있는 걸 보니 내가 정말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파고들어가니까 몰랐던 그런 경우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의 구성은 낱말 퍼즐이 나오고 그 뒤에 퍼즐에서 중요하고 기억해야 할 거 같은 단어들에 대한 설명 등이 들어있다.

그래서 제목이 지적 수다를 위한 상식 퍼즐인 거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낱말의 의미만을 잘 외워도 당분간 잡학 상식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뒤지진 않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색다른 책 한 권에서 요즘 나의 상태를 점검해 본다는 게 새롭다.

자기계발을 위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낱말 풀이는 여러모로 많은 것을 내게 요구한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단어와 용어의 뜻을 정확하게 정의한 문구를 읽으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기계발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참고로 미국에서는 낱말퍼즐이 대표적인 지적 유희로 인정받는다.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같은 일간지는 섹션을 아예 따로 만들어, 십자말풀이를 100년째 지면에 싣고 있다.

.

.

국내에도 하루빨리 낱말퍼즐 붐이 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카페에서, 공원에서, 회사에서, 저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지식들로 지적 수다를 펼치는 것이 일상이 됐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처럼 친구들끼리 든 아니든 대화가 있는 곳에 공통된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훨씬 다양하고 즐거운 대화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즐거운 수다는 나를 더 발전시키고,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대면을 꺼리는 이유는 바로 대화에서 오는 피곤함 때문일 것이다.

일방적인 것, 관심 없는 것, 재미없는 것,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 주제가 될 때 그것에 노출된 시간만큼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럴 때 이렇게 누구에게나 필요한 상식적인 단어들이 주제가 되어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전반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의견으로 나눌 수 있다면 피곤한 수다보다는 건전한 수다에서 오는 진정한 힐링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영화를 보다 보면 복잡하거나 머리를 비워야 할 때 낱말 퍼즐을 푸는 장면들을 볼 때가 있다.

그리고 모르는 단어의 뜻을 얘기하며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들이 서서히 좁혀지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그렇게 유용하게 써먹으려면 완전하게 익숙해져야 한다.

지식을 전하는 책은 읽기 힘들고 인내가 필요하지만 이 낱말퍼즐 책은 똑같이 인내가 필요하긴 하지만 적어도 재미는 있을 거 같다.

 

이 책이 거듭 업그레이드되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지적 유희를 즐기고 난 기분이 상쾌하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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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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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믿고 보는 북로드의 신작 열세 번째 배심원이 출간되었다.

좋은 기회에 가제본으로 먼저 읽게 되었다.

 

스티브 캐버나는 인권 변호사 겸 작가이다.

나는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변호사 출신이라 그런지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묘사가 현실감 있다.

 

법정 스릴러는 언제나 좋은 이야기 거리이다.

늘 스릴 있고, 반전이 있으며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범인과 변호사

범인과 검사

때론 검사와 변호사와의 접전은 법정 스릴러의 묘미이다.

 

바비 솔로몬과 아리엘라 블룸은 지금 가장 핫한 영화배우 커플이다.

어느 날 바비가 늦게 귀가하고 보니 아내와 경호원 칼이 같은 침대에서 숨져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바비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마치 치정이 얽힌 살인사건처럼 보이는 이 사건을 맡은 잘 나가는 로펌의 변호사 루디 카프가 플린을 찾아와 변호인단에 합류하라고 제의한다.

 

에디 플린.

변호사 이전에 사기꾼이었던 전력이 있다.

절대 유죄인 사람은 변호하지 않는다.

아내와 별거 중이다.

경찰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그다지 특별할 거 없는 변호사인데 그에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과거가 있다.

그것이 그를 변호사가 되게 만들었고, 그가 죄가 없는 사람들의 편에서 변호하기로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합니까? 다른 사람이 할 거라고 기대하면서 아무도 어떤 사람을 옹호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누군가는 선의 반대편에 서 있어야죠. 제가 넘어진다면, 누군가 나타나서 제 자리를 가져가야겠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급적 오래 서 있으면 됩니다.

 

 

케인.

살인의 쾌감을 가진 연쇄 살인범으로 분장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는 특기가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면서 범죄에서 빠져나온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그는 배심원이 되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누명을 쓴 범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게 배심원들을 조정해왔다.

누명 쓴 이들은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꽤 치밀하고 인내심 많은 범인을 만났다.

게다가 영리하기까지 하다.

 

이야기는 플린과 케인 두 사람의 시선이 왔다 갔다 하면 전개된다.

그래서 더 애간장이 탄다.

 

케인은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연대감과 공감도 없었다. 케인의 마음속에는 그러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그의 밑에 있었다. 그는 특별했다.

 

 

 

첫 장부터 등장하는 케인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누굴 응원하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

케인이 덱스터 같은 범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재판이 진행되고 바비에게 불리한 증거품과 증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바비의 숨겨진 비밀이 폭로되고

영화사의 지지를 받던 로펌은 더 이상 바비를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루디는 떠나고 플린은 남았다.

케인은 자신의 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무죄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는 배심원들을 하나 둘 처치하기 시작한다.

 

플린의 활략으로 절대 불리하던 바비의 재판은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증거들과 증인들이 플린 앞에서 연거푸 무너지면서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플린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행되어 왔던 연쇄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바비에게 누명이 씌었다는 걸 파헤치게 된다.

배심원 석에서 그것을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하는 케인.

FBI가 개입하고 금방 유죄 판결을 받을 거 같았던 바비의 재판은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갈까?

 

설정이 참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자신의 죄를 뒤집어 씌운 사람의 배심원이 되어 유죄 판결을 유도하다니.

영리해도 보통 영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그는 조력자도 있고, 무엇보다 무통각증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몸도 마음도 고통이 없는 사람이 남의 고통을 알리 없음이다.

 

 

"자기가 아메리칸 드림을 죽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군요."

 

 

케인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증오는 그것의 한 부분이었다. 아마도 복수. 주로 그는 동정을 느꼈다. 돈이나 가족, 기회, 힘지어 사랑이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난한 영혼에 대한 동정.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케인에게는 위대한 미국의 거짓말이었다.

 

 

 

불운한 영혼이 만들어낸 사건들.

아무리 노력해도 무언가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 한순간의 행운으로 모든 걸 다 갖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메리칸 드림을 뜻하는 거라면...

 

케인의 고통은 그것이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잠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어쩜 축복일 수도 있다고.

고통을 모르는 마음은 고통을 이해할 수 없고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스티브 캐버나.

이 작가의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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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스 브라더스
패트릭 드윗 지음, 김시현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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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마땅한 놈이었지만, 이성을 잃고 폭발한 것이 후회된다. 통제력의 상실은 두렵다기보다 무척 당혹스럽다.

 

 

1851년 골드러시가 한창인 때 찰리와 일라이 시스터스 형제는 제독의 임무를 받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허먼 커밋 웜이라는 금 채굴꾼을 찾아내 죽이는 것이 그들의 이번 임무다.

 

다혈질이고 과격한 형 찰리, 커다란 체구에 감수성을 겸비한 동생 일라이

두 사람이 웜을 찾으로 캘리포니아로 가는 여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이 이야기는 시종일관 자잘한 사건들과 갑자기 총질을 함으로써 상황을 종료 시키는 찰리 때문에 조마조마하다.

그리고 한없이 감성적이고, 자상하다가도 갑자기 폭발하고 마는 일라이 때문에 신나게 달리다 급제동이 걸리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카우보이 누아르라 해서 맥없이 총질이 난무하는 상황을 그렸던 내게 이 신선한 피는 정말이지 새로운 장르를 만난 기분이다.

캐나다 출신 작가의 미국 서부시대 카우보이 누아르. 는 서부시대와 카우보이의 정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 작가들을 떠나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총잡이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섬세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일을 즐기나요?"

"건건이 달라요. 어떤 일은 별난 장난 같고, 또 어떤 일은 지옥같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어떤 행위에 보수가 주어지면 그 자체로 존중할 만한 일이 되죠. 한 사람의 목숨이 내게 달려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답니다."

 

 

 

어딘지 모르게 철학적인 일라이는 가는 곳마다 정스러움을 담뿍 내려놓고 떠난다.

어째서 그가 그토록 잔인한 킬러로 이름이 나 있는지 모를 정도다.

무자비 한 총잡이인데 더할 나위 없이 여린 감수성에 따뜻한 정이 흐르는 남자다.

형 찰리랑 끝없이 투닥투닥 하며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두 사람을 보며 웃기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건 내가 여태 보아왔던 총잡이들은 잔인하거나 정의롭거나로 나뉠 수 있었는데 일라이를 지칭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일라이의 속내를 알면 알수록 그의 무심한 말투를 읽으면 읽을 수록 일라이에게 빠져들고 만다.

이러다 웜을 만나도 총은 꺼내지도 못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어이없게 살인을 저지르는 그들을 본다.

이게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

 

 

 

 

"당신 몸에는 낭만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데, 그렇죠?"

"우리 형제에게는 같은 피가 흘러. 그저 다르게 사용할 뿐이지."

 

 

 

 

 

캘리포니아에 다가갈수록 금광에 미쳐서 삶을 망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도시는 아름답지도, 낭만스럽지도 않다.

겨우 자신들 보다 먼저 파견되어 정보를 주었던 모리스를 찾아왔으나 모리스는 사라지고 없다.

그들이 찾던 웜도 사라지고 없었다.

웜과 모리스를 뒤쫓은 찰리와 일라이.

금을 좇아 제독을 배신한 모리스와 제독의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찰리와 제독의 밑에서 그만 빠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라이 그들의 만남은 어떻게 끝이 날까?

 

 

 

 

 

"이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고향을 떠났을 때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모두가 낯설게 느껴질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고요."

 

 

 

 

 

 

 

금광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온 사람들은 금을 캐고 자신을 잃었다.

일라이에게 그들의 모습은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저 신나게 쏘고, 신나게 달리고, 신나게 죽이고, 아무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총잡이를 그렸다가 된통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일라이라는 캐릭터 때문에 여태까지 쌓여있던 총잡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이야기가 마치 단편처럼 넘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건과 감정선을 넘기는 과정이 몇 페이지로 나눠서 끊어간다.

그리고 두 편의 막간극이 첨가된다. 꿈속의 장면만을 따로 편집해 놓은 것처럼.

 

소설인데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도 보고 싶어졌다.

어쩜 아마도 일라이가 보고 싶은 거겠지만.

 

 

 

 

"그럼 이것이 내 생애 마지막 살인의 시절이 되리라."

 

 

찰리와 일라이 시스터스의 두 번째 시절의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독특한 캐릭터는 늘 그 뒷얘기가 궁금하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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